[신앙에세이] 이주민과 하나님 나라
신앙에세이
이주민과 하나님 나라
저는 젊은 시절까지 말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보다 덮어놓고 믿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26년 동안 선교사로 살면서 성경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주와 이주민의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진 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고 하셨고, 아브람은 순종해 이주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성경을 배워 온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사람들과 친구가 되며,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 보니 이스라엘만 보이던 자리에 가나안, 이집트, 모압, 바벨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과 그 관계에서도 뜻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 12:3)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처음부터 모든 민족을 향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지만, 낯선 땅에서 기근과 두려움, 불안과 의심, 실수를 겪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연약함 속에서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완벽한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은혜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간 강제 이주의 피해자였고, 노예와 죄수로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총리로 세워 이집트와 주변 민족과 자기 가족까지 살리셨습니다(창 45:5). 이주민의 현재 조건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도움받는 외국인 노동자도 훗날 자기 민족을 섬기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으나 미디안 광야에서 나그네가 되어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습니다(출 2:22). 하나님은 그곳으로 찾아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잊힌 사람을 잊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사람을 함께 발견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어머니의 백성이 제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룻 1:16)라고 고백하며 낯선 베들레헴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보아스는 그를 배려하고 보호했고,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주민은 도움받는 손님이 아니라 함께 예배하고 식사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이웃입니다.
예수님도 헤롯을 피해 어린 시절 이집트로 피신하셨습니다(마 2:13~15).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를 친히 겪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어떻게 따르는가의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결혼이민자, 난민이 함께 살아갑니다. 이들은 언어의 장벽, 불안정한 고용, 임금 체불, 체류 불안, 차별을 겪습니다. 저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첫째, 이주민을 도움받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이웃으로 보아야 합니다. 둘째, 이주민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에 응답해야 합니다. 셋째, 이주민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야 합니다. 넷째,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섯째, 지역사회와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그 복은 모든 민족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주민은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부르시는 이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주민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때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함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최명현 선교사(화성M센터)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성경을 배워 온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사람들과 친구가 되며,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 보니 이스라엘만 보이던 자리에 가나안, 이집트, 모압, 바벨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과 그 관계에서도 뜻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 12:3)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처음부터 모든 민족을 향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지만, 낯선 땅에서 기근과 두려움, 불안과 의심, 실수를 겪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연약함 속에서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완벽한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은혜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간 강제 이주의 피해자였고, 노예와 죄수로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총리로 세워 이집트와 주변 민족과 자기 가족까지 살리셨습니다(창 45:5). 이주민의 현재 조건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도움받는 외국인 노동자도 훗날 자기 민족을 섬기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으나 미디안 광야에서 나그네가 되어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습니다(출 2:22). 하나님은 그곳으로 찾아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잊힌 사람을 잊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사람을 함께 발견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어머니의 백성이 제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룻 1:16)라고 고백하며 낯선 베들레헴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보아스는 그를 배려하고 보호했고,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주민은 도움받는 손님이 아니라 함께 예배하고 식사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이웃입니다.
예수님도 헤롯을 피해 어린 시절 이집트로 피신하셨습니다(마 2:13~15).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를 친히 겪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어떻게 따르는가의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결혼이민자, 난민이 함께 살아갑니다. 이들은 언어의 장벽, 불안정한 고용, 임금 체불, 체류 불안, 차별을 겪습니다. 저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첫째, 이주민을 도움받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이웃으로 보아야 합니다. 둘째, 이주민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에 응답해야 합니다. 셋째, 이주민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야 합니다. 넷째,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섯째, 지역사회와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그 복은 모든 민족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주민은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부르시는 이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주민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때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함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최명현 선교사(화성M센터)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