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모서리 덮어주기
크리스천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모서리 덮어주기
결혼하고 시간이 지나 이불을 새로 바꾸려고 구경 다닐 때였습니다. 가게마다 이불이 똑같이 접혀 있었고, 직원은 여러 개를 펼쳐서 보여주셨습니다. 새 이불은 다 예뻐서 적당히 골라 잘 샀는데, 제게는 이불을 펼치기 전 모습과 펼친 후 모습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왜 이불을 저렇게 정리해 두는 걸까?’
커다란 이불을 펼치면 보통 사각형입니다. 네 귀퉁이가 모두 뾰족한 직각 모양이죠. 이불 가게에서는 종이접기에서 ‘대문접기’라고 부르는 모양으로 양쪽을 가운데로 향해 접어 겹친 뒤, 길어진 양쪽도 다시 대문접기로 접습니다. 이렇게 접으면 뾰족한 모양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불 겉면과 충전재가 모두 보드랍고 보송보송해서 마치 둥둥 떠다니는 구름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돌아와 모든 이불을 그렇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꺼내고 넣기도 좋고, 뾰족한 모서리가 보이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저에게도 모서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움, 교만, 이기심…. 그러다가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는 말씀을 읽으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아주 큰 죄도 용서해 주시고, 다시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듯한 하나님의 침묵은 저를 더 회개하고 겸손하게 만들곤 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수많은 모서리를 잘 다듬어 주시고, 때로는 숨겨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 사랑과 은혜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나 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제가 받은 하나님의 ‘덮어주시는 사랑’을 잊곤 합니다. 먹기 싫은 음식을 입안에 감추고는 먹은 척하는 아이, 학습지가 하기 싫어서 한두 장씩 찢어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숨기는 아이, 문제집 뒤에 있는 정답을 보고 베끼고는 다 풀었다는 아이, 청소를 안 하고는 했다고 말하는 아이, 시험지에 받아 와야 하는 부모님 사인을 자기가 대신 해 온 아이, 교회에 간다고 해 놓고 가지 않은 아이…. 선생님이나 부모님이라면 아이들의 이런 일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할 때 티가 나는 게 아이겠죠? 아이들의 모든 잘못을 덮어주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가르칠 건 가르치고, 덮어 줄 건 덮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가르칠 때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저도 아이에게 지나치게 차갑게 가르치고, 지난 잘못을 들춰 혼내곤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죄와 허물을 들추지 않고 덮어주시고 감춰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저를 일으키고 살아나게 했습니다. 자책과 우울로 헤매던 저를 거기서 끌어내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제 상황과 속마음을 다 알고도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포근한 이불 같습니다. 저를 감싸주고 보호해 주는 이불, 그리고 그 위를 부드럽게 토닥이는 손길입니다.
요즘 큐티하며 <에스겔>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을 보니 이스라엘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명령을 망각하고, 혐오스러운 일을 했고 죄를 지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죄에 빠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레위인의 모든 허물을 아시면서도 “그러나 내가 성전의 직무와 모든 시중과 그 안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다”(겔 44:14)라고 하시며 다시 그들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죄를 미워하시면서도 죄인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기다려 주시며, 허물을 덮고 다시 곁에 두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은 정말 측량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큽니다. 저들에게도, 저에게도 깊은 신뢰나 충성됨이 없고, 죄와 회개가 오래도록 반복되는데도 하나님은 오직 사랑으로 덮고 품어 주십니다.
사랑은 보통 자신이 받은 만큼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큰 사랑은 당연하게 여기고, 키우거나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그 사랑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노력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이들의 부족함을 덮어주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최민혜 교사(부천온누리교회, 석천초등학교, <야누시 코르차크 아이들을 편한 길이 아닌 아름다운 길로 이끌기를> 저자)
커다란 이불을 펼치면 보통 사각형입니다. 네 귀퉁이가 모두 뾰족한 직각 모양이죠. 이불 가게에서는 종이접기에서 ‘대문접기’라고 부르는 모양으로 양쪽을 가운데로 향해 접어 겹친 뒤, 길어진 양쪽도 다시 대문접기로 접습니다. 이렇게 접으면 뾰족한 모양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불 겉면과 충전재가 모두 보드랍고 보송보송해서 마치 둥둥 떠다니는 구름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돌아와 모든 이불을 그렇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꺼내고 넣기도 좋고, 뾰족한 모서리가 보이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저에게도 모서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움, 교만, 이기심…. 그러다가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는 말씀을 읽으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아주 큰 죄도 용서해 주시고, 다시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듯한 하나님의 침묵은 저를 더 회개하고 겸손하게 만들곤 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수많은 모서리를 잘 다듬어 주시고, 때로는 숨겨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 사랑과 은혜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나 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제가 받은 하나님의 ‘덮어주시는 사랑’을 잊곤 합니다. 먹기 싫은 음식을 입안에 감추고는 먹은 척하는 아이, 학습지가 하기 싫어서 한두 장씩 찢어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숨기는 아이, 문제집 뒤에 있는 정답을 보고 베끼고는 다 풀었다는 아이, 청소를 안 하고는 했다고 말하는 아이, 시험지에 받아 와야 하는 부모님 사인을 자기가 대신 해 온 아이, 교회에 간다고 해 놓고 가지 않은 아이…. 선생님이나 부모님이라면 아이들의 이런 일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할 때 티가 나는 게 아이겠죠? 아이들의 모든 잘못을 덮어주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가르칠 건 가르치고, 덮어 줄 건 덮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가르칠 때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저도 아이에게 지나치게 차갑게 가르치고, 지난 잘못을 들춰 혼내곤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죄와 허물을 들추지 않고 덮어주시고 감춰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저를 일으키고 살아나게 했습니다. 자책과 우울로 헤매던 저를 거기서 끌어내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제 상황과 속마음을 다 알고도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포근한 이불 같습니다. 저를 감싸주고 보호해 주는 이불, 그리고 그 위를 부드럽게 토닥이는 손길입니다.
요즘 큐티하며 <에스겔>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을 보니 이스라엘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명령을 망각하고, 혐오스러운 일을 했고 죄를 지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죄에 빠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레위인의 모든 허물을 아시면서도 “그러나 내가 성전의 직무와 모든 시중과 그 안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다”(겔 44:14)라고 하시며 다시 그들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죄를 미워하시면서도 죄인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기다려 주시며, 허물을 덮고 다시 곁에 두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은 정말 측량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큽니다. 저들에게도, 저에게도 깊은 신뢰나 충성됨이 없고, 죄와 회개가 오래도록 반복되는데도 하나님은 오직 사랑으로 덮고 품어 주십니다.
사랑은 보통 자신이 받은 만큼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큰 사랑은 당연하게 여기고, 키우거나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그 사랑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노력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이들의 부족함을 덮어주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최민혜 교사(부천온누리교회, 석천초등학교, <야누시 코르차크 아이들을 편한 길이 아닌 아름다운 길로 이끌기를> 저자)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