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9일 월
칼럼

[미술의 원래 모습 찾기] 우유 따르는 여인(1)

미술의 원래 모습 찾기
 
우유 따르는 여인(1)
 
미술은 원래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인본주의 세계관을 좇아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신앙적 주제를 배제한 현대주의 미술로 흘러갔다. 현대미술이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열고 창조의 영역을 넓힌 면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추함과 악함도 중요한 예술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미술의 많은 부분은 더욱 극악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을 반성하며 미술이 복음 사역의 중요한 수단이자 참된 예술임을 성도들과 나누고자 연재를 시작한다. 이 글이 모든 인간 영역을 아우르며 전도하고 선교하는 총체적인 믿음의 활동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전문화된 미술·예술·문화선교가 서로 연대해 믿음의 군대를 이루고, 복음이 온 누리에 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첫 번째 작품으로 ‘우유 따르는 여인’을 살펴본다.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미술이 사실주의, 추상주의, 표현주의, 환상주의 등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나뉘는데, 이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사실주의가 거부하려는 ‘서술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서술적인 내용을 깊은 신앙적 의미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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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가 1658~1661년경에 그렸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평범한 일상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페르메이르는 당시 부엌을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그렸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여인과 빵, 우유를 비추며 화면에 생동감을 더했다. 페르메이르는 넓은 흰 벽의 작은 못 자국과 깨진 유리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여인의 노란 상의와 푸른 앞치마는 강렬한 보색 대비를 이루는데, 특히 푸른색은 당시 매우 귀한 안료인 ‘울트라마린’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사실적인 묘사에만 있지 않다. 가까이에서 보면 형태를 모두 그려 넣기보다 점과 비교적 자유로운 붓질로 생략과 암시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빛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인상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절제되면서도 생동감 있는 붓질에서 고흐의 붓 터치를 연상하게 한다. 이처럼 페르메이르는 치밀한 사실성과 뛰어난 회화적 표현을 하나의 화면에 조화롭게 담아낸 화가였다.
다시 푸른색을 살펴본다. 여인의 앞치마에 사용된 푸른색은 천연 청금석으로 만든 울트라마린이다. 당시 울트라마린은 워낙 비싸서 금을 칠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페르메이르는 그 비싼 안료를 평범한 하녀의 앞치마에 아낌없이 썼다. 색이 품은 뜻은 푸른색에서 그치지 않는다. 황금빛 상의는 왕의 존귀함과 영광을, 붉은 치마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말해, 평범한 하녀의 모습에 왕 되신 그리스도와 하늘의 영광을 암시하는 상징이 담겨 있다. 
우유 역시 단순한 풍속화의 소재만은 아니다. 성경에서 우유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생명과 풍요를 상징한다. 그 곁에 놓인 빵은 생명의 양식을 더욱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이처럼 벽의 못 자국,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깨진 유리, 그리고 빵과 우유는 모두 평범한 일상을 넘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묵상하게 하는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실주의는 전통적인 은유와 상징을 배제하고, 다양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러나 페르메이르는 사실적인 묘사 속에서도 깊은 상징성과 신앙적 의미를 함께 담아냈다. 페르메이르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렸지만, 그 현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리를 드러내려 한 화가였다(계속).
/ 강태성 대표(AD gallery 대표, 일대일통합사역팀 총무, 성북공동체)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