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당신은 예의 바른 크리스천입니까?”

예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반한 겸손함과 친절  상대방 인격 존중하고, 차별 없이, 예의 바르게 대해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예의를 잘 지키는 동쪽의 나라’라는 말로 중국에서 한국을 일컫는 말이다. <동이열전>에서는 고대(古代) 한국을 다음 같이 소개했다.  “그 나라는 크지만 교만하지 않고 그 병사는 강하나 침략하지 않는다. 풍속이 순후하여 길 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고 먹는 자는 밥을 미루고 남녀는 따로 거처하니 가히 동방의 군자국이라 하겠다.” 그 예의 바르고 순후하던 한국이 완전히 달라진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예의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갑질논란’이다. 매스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 고위층의 갑질을 꼬집고 있다. 그런데 그 갑질이 사회 고위층만의 문제일까?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갑질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언제부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대한민국에서 볼썽사나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예의와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들이다.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으로 불리는 사례부터 시작해서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 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횡포, 직원 폭행 및 동물학대 강요 등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백화점 주차요원을 무릎 꿇리거나 제자에게 고문을 가하고 인분을 먹인 교수도 있었다. 이쯤 되면 어이가 없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갑질은 사회 고위층과 그 가족들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들도 알게 모르게 갑질을 하고 있고, 당하고 있다. 노동시민단체 ‘직장 갑질 119’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접수된 직장 내 갑질 사례가 무려 2만3천 건에 달한다. 폭언이나 폭행, 임금체불, 괴롭힘, 부당한 업무지시, 고용보험 문제 등 갑질의 모양과 행태가 참으로 다양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김믿음 자매(가명, 34살)는 학력차별이라는 갑질을 무려 14년 동안이나 당하고 있다.   “대졸 출신 후배들이 들어오면 상사가 대놓고 저한테는 선배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으로 부르라고 지시해요. 그러면서 저한테는 ‘서번트 정신’으로 일하라고 강요하고요. 그냥 하녀처럼 일하라는 거예요. 대졸 사원들이 입사하면 ‘고졸 사원 대하는 법’을 따로 교육하기도 하고요. 거짓말 같지요? 진짜에요.”  지난 8일, 대구에서는 한 세무서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횡포를 벌였다는 내부고발이 나왔다. 부하 직원들에게 순번을 정해 밥을 사라고 하는가 하면 금요일에는 집이 있는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며 오후 3시 이후에는 모든 결재를 올리지 못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교회와 크리스천들도 갑질논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박신실 자매(가명, 33세)는 교회 다니는 사장님의 말과 태도에 상처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장님이 직원들한테 ‘마음에 안 들면 확 잘라버릴까 보다’라는 말을 수시로 해요. 사장님 기분에 따라 반응이 천차만별이라 거의 매일 눈치를 보고 있고요. 다행히 교회 다니는 분이라 주일에 등산 가자고 불러내지는 않는데, 회사에서 손 하나 까닥 하지 않아요. 사람 귀한 줄 모르고, 기분 따라 일처리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게 갑질 아니고 뭐겠어요?” 갑질논란의 더 큰 문제는 무례함을 겪은 사람이 나중에 무례한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무례함을 자주 경험한 사람들이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고 한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나중에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인 것이다. 무례함은 자신도 모르게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   책 <무례함의 비용> 저자 크리스틴 포래스는 “무례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 자신이 무례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무례한 사람들은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되어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정문정 작가 또한 비슷한 말을 했다.  “나도 무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정신적, 신체적 안락함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견지하며 무례함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하나님은 무례한 자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예절에 이르기까지 예의 바른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고 교훈하신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7장 36~50절에서 시몬(바리새인)의 무례함을 꾸짖으셨다. 시몬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는데 그때 죄인인 한 여인이 향유 담은 옥합을 가져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털로 씻은 뒤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이를 본 시몬이 “만일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당신을 만지는 이 여인이 죄인인 줄 알았을 것”이라며 업신여겼다. 그때 예수님이 시몬의 무례함을 호되게 꾸짖으셨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눅 7:44~46).  무례한 시몬은 예수님으로부터 꾸짖음을 당했고, 죄인인 그 여인은 그가 행한 예절로 말미암아 믿음을 인정받고 죄 사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 이후 노아가 농업을 시작했다.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하루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는 실수를 하게 된다. 노아의 아들 함이 그런 아버지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형제들에게 알리는 무례를 범하고 만다.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으며 얼굴을 돌려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 함은 무례로 인해 노아로부터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무례한 자의 후손이 예절을 지킨 자들의 후손의 종들의 종이 되리라’는 저주였다.  무례한 자를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례가 또 있다. 출애굽한 뒤 모세의 아내가 광야에서 죽자 모세는 구스 여인과 결혼했다. 이 일을 놓고 모세의 형과 누이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고 급기야 반감을 표현했다. 결국 미리암은 하나님의 징벌로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나님은 무례한 자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사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아야 한다. 공경심이 있어야 하고, 남의 실수를 들어 무례하게 비방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경외하는 방법일까?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사랑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예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반한 겸손함과 친절이다. 상대방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알고, 내 몸처럼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눅 10:27).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차별 없이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 예의를 행하는 대상에는 빈부귀천이 따로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의 바른 신앙을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마 5:16).    <전문가 기고>   크리스천의 에티켓과 매너  에티켓은 ‘도리((道理)’, 매너는 ‘배려’   흔히 ‘예절’을 영어로 ‘에티켓(Etiquette)’ 또는 ‘매너(Manner)’라고 쓴다. 그런데 에티켓과 매너가 어떻게 다를까? 이 질문에 한 전문가가 이렇게 답했다.  “에티켓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으로써 형식적 측면이 강하고, 매너는 그 형식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방법적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에티켓은 ‘있다, 없다’로 표현하고 매너는 ‘좋다, 나쁘다’로 표현하는 것 같다. 에티켓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이고, 매너는 상대방 입장에서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배려이다.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   악수(握手)에도 에티켓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악수는 상대방을 친근하게 끌어당길 수 있고 마음을 열게 하는 인사법이다. 악수는 19세기 황야의 무법자들이 판치던 아메리카 개척시대에 유래했다. 손에 무기가 없다는 표현으로 오른손을 잡으며 ‘당신과 잘 지내고 싶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 손을 바지에 넣은 채 악수를 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손을 잡는 강도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밝은 표정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고 약 2초 정도 흔들면서 눈을 바라봐야 한다. 간혹 악수하면서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두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다.  여자에게 무엇인가를 양보할 때 ‘레이디 퍼스트’라고 말한다. 레이디 퍼스트는 기독교 정신과 중세 기사도 정신에 입각하고 있다. 서양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레이디 퍼스트 매너를 교육 받은 탓에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가령 아내나 애인이 외투를 입고 벗을 때 꼭 도와주고, 식당이나 공연장에서 외투를 벗어 맡길 때나 찾을 때 남성이 그 역할을 한다. 식사 테이블에 앉을 때도 여자가 앉도록 의자를 빼준다. 드나들 때도 여성이나 노약자가 지나가도록 남자가 문을 열어주거나 잡아주는 것이 좋다. 좁은 계단을 올라갈 때는 남자가 여자보다 앞서고, 내려갈 때는 여자가 앞서는 것이 에티켓이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사람이 다 내리고 나서 타는 것이 상식이고, 남자는 여자와 어린이, 노약자 다음에 타고 내리는 것이 예의이다. 자동차 좌석의 상석은 운전석의 대각선 우측 좌석이 최상석이고, 맨 좌측이 두 번째 상석, 중앙이 세 번째, 운전기사 옆자리가 말석이 된다. 보도를 걸을 때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우측에 두는 것이 에티켓이다. 남자가 차도 쪽으로 걸어야 한다.    교회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   범위를 좁혀 교회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살펴보자.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수직적인 매너와 성도들과 교제하는 수평적 매너가 요구되는 곳이다.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사실 토요일부터 준비한다. 입고 갈 옷을 단정하게 다려놓고, 헌금도 미리 준비하고, 자동차 기름도 미리 채워놓는다. 주일 아침 예배에 늦지 않기 위해 토요일 밤늦게까지 TV를 시청하거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예배 안내를 하다보면 일찍 나와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예배시작 30분이나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무표정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성도들이 있다. 예배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은 예배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배를 보는 게 아니라 드린다는 개념을 잊지 말고 집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복장이 단정하지 못한 성도들도 있다. 특히 여름에 짧은 반바지(핫팬츠)에 슬리퍼를 끌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들어오는 젊은 커플들이 종종 눈에 띈다. 해변에서나 입을 법한 짧은 바지에 어깨가 드러난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온다.  주보를 나눠주며 예배 안내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 연장자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인사를 해도 받지 않거나 무시하며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가벼운 목례와 함께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정도는 해주는 게 성도로서의 매너이다. 예배 중에는 휴대폰을 옷이나 가방 안에 넣어두어야 하는데 설교 중에도 쉼 없이 SNS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예배드리는 한 시간 반 동안 휴대폰을 꺼내지 않는다고 해서 지구의 종말이 오지는 않는다.   교회에는 다양한 봉사 영역이 있다. 그 중에서 주차봉사야말로 ‘극한 봉사’가 아닐까 싶다. 겨울이면 매서운 칼바람을 견뎌야 하고, 한여름에는 폭서에 시달린다. 요즘은 미세먼지에 노출돼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가장 큰 고통은 교회를 드나드는 성도들의 질서무시와 폭언이다. 교통신호에서 수신호가 우선한다는 것은 기본상식이다. 매주 주일 교회 입구의 복잡한 차량정리를 하고 있는 안내자의 수신호에 절대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불만이 있어도 주차봉사자에게 화를 내거나 반말과 욕설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성도이다. 어떤 교회에서 수년 동안 주차봉사를 하신 분이 “성도들이 반말을 하고, 돈을 주며 발렛파킹을 시키는 성도가 있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도 사회에 나가면 CEO인데 교회에서 도리어 시험에 든다는 그분의 푸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   요즘 교회마다 식당과 카페가 잘 되어 있다. 주일에는 사람이 몰려 정신이 없다. 식사 후에 잔반을 정리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구분해서 반납하는 것은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의 수고를 덜어준다. 식사를 받을 때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식판을 반납할 때는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기본이다. 한번은 나이 든 분이 식판을 던지며 “너 같으면 이런 걸 먹겠냐?”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모욕적인 행동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힌다고 하셨다. 온갖 교만과 죄성이 묻어나는 사람의 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순모임에서도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지난 순장수련회에서 순장이라는 직분을 ‘극한직업’으로 패러디한 콩트를 보고 모두가 공감의 폭소를 터뜨렸다. 순모임에서 질문하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요약해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훈련이다. 믿지 않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참석하는 순원인 경우 시간이 길어지면 초조해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엄수하는 훈련에 모두 협조해야 한다.   ‘모티켓’이라는 말이 있다. 모바일(Mobile)과 에티켓(Etiquette)이 결합된 용어이다. 온라인 네트워크(SNS)를 사용하면서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가장 일반화되어 있는 ‘카카오톡’ 메신저의 단체카톡방에서 받는 스트레스 지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단톡방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때에는 불만이나 인신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공지사항은 관리자가 맨 위로 올려 다른 대화에 밀리지 않도록 해놓아야 한다. 누군가 공지사항을 올렸을 경우에는 당분간 상관없는 내용의 글은 올리지 말고, 그 공지에 대한 답변들이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행사나 개인사진들은 묶어 보내기 기능으로 보내야 단출하다. 개인사진은 본인한테나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공해에 불과하다.  선진국의 기준을 공공질서와 투명성에 두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어린이합창단 수십 명을 인솔해서 미주 순회공연을 간 적이 있다. 어린이들이 외국항공 기내에서 어찌나 떠들던지 책임자로 불려나가 마이크를 들고 여러 번 조용히 시킨 적이 있었다. 자녀를 한 명 정도 낳아 왕자와 공주로 키우는 젊은 엄마들은 공공질서를 해치는 자녀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이 시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시킨 예절교육의 참맛을 알 필요가 있다.  자유란 질서를 지킬 때 주어지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상대방 중심의 사고와 태도를 가진 성숙한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정과 학교, 교회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지속적인 예절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홍보대행사 대표, 칼럼니스트)      <발문> 이 시대는 예절교육의 참맛을 알 필요가 있다.  자유란 질서를 지킬 때 주어지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상대방 중심의 사고와 태도 가진  성숙한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19-04-14      제1241호

[국내캠퍼스] “내가 왜 자해를 하냐고요?”

기획 교회가 다음세대를 지킵시다!   “내가 왜 자해를 하냐고요?” 우리나라 중학생 7.9%, 고등학생 6.4% 자해 경험 부모, 교사, 목회자의 적절하고 건강한 대처가 약   “너 왜 그랬어? 진짜 죽으려고 그랬어?” “나도 왜 그런지 몰라요”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들은 왜 스스로 자기 몸에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청소년들은 순간의 감정을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감정을 일으키는 호르몬 수치가 아동기에 비해 200배 이상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전두엽 발달은 느린 편이다. 그래서 감정과 행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를 제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심리적·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다. “도와 달라”는 외침을 자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른들(부모, 교사, 목회자)이 자해를 시도하는 청소년들이 보내는 진짜 메시지를 알아채고, 적절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김영선, 홍하영 기자   청소년 자해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일부 청소년들의 일탈이나 반항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누가 봐도 밝고, 예의도 바르고, 성적도 좋은 청소년들도 자해를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자해 청소년들은 “마음이 힘들면 자해를 한다”고 밝혔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도 청소년들의 자해는 ‘살고 싶다는 신호’라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우울하고 고민이 많은 청소년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자해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어려움을 공감해주고 함께 해결해줄 어른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난해 교육부가 우리나라 청소년 7만 명이 자해 경험이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가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실시했는데 중학생 51만 4710명 중에서 4만505명(7.9%)이 ‘자해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고등학생은 45만2107명 중에서 2만9026명(6.4%)이 ‘자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교육관계자들은 실제로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자해 경험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청소년 자해에 대한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자해’를 검색하면 6만 여 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연관 검색어로 #우울 #상담 #고민 #자해 #자살 #자해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등 다양한 해시태그를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에 자해경험을 나누는 자해계(자해를 공유하는 SNS 계정)들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자해계는 자극적인 사진과 문구로 청소년들의 자해를 부추기는 악의 온상일까? 이에 대해 자해러(자해계를 운영하는 청소년)들은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공유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몇몇 자해러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아봤다. 그들은 “SNS에 자해를 공유하는 행위를 사춘기의 작은 일탈, 관심을 끌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고 못 박으면서 “SNS는 소통의 창구일 뿐이며, 얼굴조차 모르는 이들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어서 자해계를 운영한다”고 강조했다. N학생(16세)은 “너무 힘든데 털어 놓을 데가 없어서 SNS에 자해 사진을 공유한다”고 했다. J 학생(16세)도 “자해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랬는데 가족들은 나무라기만 해서 그나마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자해 경험을 나눈다”고 털어놨다.   자해를 유일한 탈출구로 인식    혹자들은 이러한 세태를 두고 ‘패션자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청소년들이 남들에게 자랑할 용도로 자해를 선택한다고 비난한다. 언론 역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해놀이’가 유행한다는 보도를 쏟아내며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어려움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왜곡된 발상이다.  청소년들이 정말 자랑하고 싶어서, 단순히 관심을 받기 위해 자해를 선택하는 것일까? 이러한 이유로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은 전체 자해 청소년의 4%도 되지 않는다.  손꼽히는 청소년 자해 전문가 마이클 홀랜더 교수는 청소년 자해 원인으로 세 가지 요인을 꼽았다. 첫째, 압도적인 감정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거나 혼란스러운 상태를 조절하기 위해서, 둘째, 무감각하고 공허한 존재라는 끔찍한 느낌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셋째, 자신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서 자해를 선택한다고 예상했다. 중학교 3학년인 J학생은 양 손과 발목이 흉터투성이다. 전부 스스로 낸 상처들이다. J학생은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자해를 시도한다. “솔직히 자해를 끊고 싶은데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칼을 들고 몸을 그을 때마다 제가 우울한 게 조금씩 사라져요. 하고나면 아파서 다른 생각이 안 나거든요. 자해는 제가 우울한 걸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J학생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상처가 나면 온 신경이 상처에 집중돼 우울한 감정을 순간적으로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늦은 밤 혼자 있는 시간에 주로 자해를 한다. 부모님도 J학생이 자해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그치거나 화를 낼 뿐 위로해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과 반 친구들도 J학생이 자해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주변 친구들 중에도 자해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상처를 보고 ‘나는 더 심했었어’라는 애들이 있어요. 말은 안 하지만 자해를 하는 애들도 꽤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 친구 중에서 진짜 밝고, 전교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 애가 있는데 자해를 하더라고요” N학생(16세)의 왼 팔에는 자해의 흔적이 가득 차 있다. 자해를 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N학생은 불안하거나 너무 힘든데 털어 놓을 곳이 없을 때 자해를 한다. “자해를 처음 시작한건 친구가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했을 때였어요. 불안하고 떨리고 무서워서 손으로 팔을 긁었어요.” N학생은 그날 이후 자해의 늪에 빠졌다. 지금은 1~2주에 한 번씩 자해를 하고 있다. 팔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손가락 끝을 바늘로 꿰매기도 한다. 자해 횟수를 줄이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한다. “자해를 하면 안 되는걸 아는 데도 끊기가 어려워요. 중독성이 있거든요. 자해를 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고요.”   호주의 청소년 자해 문제 대처   청소년들의 자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호주에서도 지난 10여 년 전 부터 유행처럼 번진 청소년 자해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호주 정부는 청소년들의 자해를 통제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10대 소녀의 10%가량이 자해를 경험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따라 호주 정부는 청소년들의 자해를 ‘비통하고 충격적인 당면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헤드 스페이스’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25세 이하 청소년이면 누구든지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자에게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을 보장 받으며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접근성이 용이한 곳에 마련되어 있다, 호주 전역에 ‘헤드 스페이스’가 100곳 넘게 설치되어 있다. 또한 호주 정부는 ‘be you’라는 청소년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에 동참하고 있는 학교가 4,400곳이 넘는다. 호주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청소년 자해가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일이다. ‘be you’ 프로그램은 회복력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호주 청소년들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상처를 받거나 견디기 힘든 일이 있을 때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다. 호주의 중학교에서는 수학이나 과학처럼 교과 과목으로 회복력을 가르치고 있다. 회복력 교과서를 살펴보면 문제 상황을 설정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을 결정하며 그 이유를 토론한다. 학생들에게 미리 대처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자해 청소년에 대한 매뉴얼이 존재하긴 하지만 경기도 교육청과 대구 교육청을 제외하고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자살과는 다른 문제인 자해를 함께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해 청소년을 이해하고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루 속히 관련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보급될 필요가 있다. 자해 문제 극복을 위한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도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자해청소년을 위한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부모와 교사들이 있다. 그들은 일과를 마친 이후 밤늦게 모여 청소년들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청소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공부하고 있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호소하고 있는 아픔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어른들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어른들은 몰라요.” 자해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어려움이 바로 이것이다. 청소년들이 자해하는 것을 알게 된 어른들이 좀처럼 따듯한 말을 건네주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이 힘든지, 왜 자해를 하는지는 말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저 다그치기만 한다. 이러한 대응은 자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청소년들이 자해를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견자들의 첫 대응이 중요하다. 지난해 5월 한 중학교에서는 자해하는 청소년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학생의 상처를 더욱 악화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교사가 학교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몸에 칼빵하는 X은 반장할 자격이 없다”는 등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가한 것이다. 담임교사의 폭언이 있던 그날 이후 그 청소년의 자해는 더욱 심해졌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교회에서 자해 청소년을 발견한 교사가 그를 불러다 “왜 그랬느냐”고 다그쳐 묻기도 하고, 수시로 아이의 팔을 확인하기도 했다. 걱정 때문에 한 행동이었지만 그 청소년은 씻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자해 흔적을 발견하면 무턱대고 혼내지 말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한다.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이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부모, 교사, 목회자가 자해를 시도하는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따뜻하게 안아주고, 자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판단하거나 비나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면 된다. 또한 자해를 일탈의 통로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보내는 도움 요청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구조신호에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한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 순간 함께 울어주고, 연고와 반창고로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만으로도 효과적이다. 비난과 다그침은 문제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과 인정’   청소년이 자해를 완전히 멈추는 것은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것이 아니다. 짧게는 일주일이 될 수도 있고 길게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변증법적행동치료(DBT)의 창시자 마이클 홀랜더 교수는 저서 <자해 청소년을 돕는 방법>에서 “청소년 자해문제는 몇 걸음 전진과 한 걸음 후퇴를 반복하는 과정임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부모들은 청소년 자녀가 자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만사를 포기하고 자녀가 자해를 멈추게 하는 것에 집중하거나, 자녀의 자해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자해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원하는 것은 ‘안정과 인정’이다. 청소년들은 안정을 얻기 위해 자해를 선택한다. 인간의 몸은 상처가 나면 고통을 견디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데 이때 일시적인 안정을 느낄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안정을 느낄 수만 있다면 자해를 줄여나갈 수 있다. 오감을 이용한 방법도 효과가 있다. 소리, 접촉, 입, 동작을 활용하는 것이다. 잔잔한 음악 듣기, 향초나 입욕제를 활용하기, 마사지, 얼음 먹기, 걷기, 심호흡하기 등이 효과적이다. 인정은 부모들이 청소년들과 소통하는데 가장 필요한 자세이자 태도다. 청소년들의 감정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말의 옳고 그름에 집중하면 대화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의 자해를 알 수 있는 신호 몇 가지가 있다. 긴 옷을 선호하고, 더운 여름에도 긴팔 옷을 고집한다. 또한 피부 노출이 예상되는 상황을 회피한다. 베이거나 긁힌 상처, 멍 등이 자주 보이는데 그때마다 넘어졌거나 할퀸 상처라는 변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면도기 등과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소지하고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신호를 보내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다그치거나 혼내지 말고 천천히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문 기관으로 연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1) 청소년 위기 문자 상담 시스템 ‘다 들어줄 개’ 모바일 어플 ‘다 들어줄 개’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다 들어줄 개’ 페이스북 메신저 ‘다 들어줄 개’ 1661-5004 번호로 문자 상담 2) 24시간 전화 상담 자살예방핫라인 1577-0199 청소년 전화 1388 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3) 공공 청소년 상담기관: 각 누리집에서 해당 지역 검색 전국 Wee센터 www.wee.go.kr 전국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www.kyci.or.kr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료 상담 가능) 4) 의료기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kacap.or.kr에서 지역 검색

 2019-03-24      제1238호

[사역] 크리스천 청년들이 말하는 결혼에 대한 솔직한 속내

“그래도 나는 결혼하고 싶다!” 크리스천 청년들이 말하는 결혼에 대한 솔직한 속내 솔루션, 잔소리 그만! 조건 내려놓고! 교육과 양육!          (기성세대)    (청년들)       (교회) (작은 글씨로)     “결혼은 빡센 거야. 얼마나 빡센 거냐면 넬슨 만델라도 이혼했거든. 넬슨 만델라는 지옥 같은 감옥생활을 27년이나 했는데 마누라하고는 6개월 만에 이혼했다고!”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배우 크리스 록이 어느 토크쇼에서 한 말이다. 넬슨 만델라조차도 결혼생활이 어려웠다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결혼은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다. 결혼 전부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20~30대 청년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 부동의 1위가 “결혼 언제 할거니?”이다. 생각만 해도 설레고 행복할 것 같은 결혼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크리스천 청년들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실적 어려움 등으로 크리스천 청년들마저도 결혼을 두려워하고 주저하고 있다. 청년들의 결혼문제 해결을 위하여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혼인한 부부가 2만6,800명으로 전년보다 800명(-2.9%) 감소했다.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우리나라 혼인 건수는 전년(26만4500건)보다 6,800건이나 줄었다. 이 또한 사상 최저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혼인 건수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결혼은 필수’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비혼주의가 계속 늘고 있다. 미혼(未婚, 아직 결혼하지 않음 혹은 그런 사람)과 비혼(非婚, 결혼하지 않음 혹은 그런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아직’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N포털사이트에서는 ‘미혼이라는 어휘가 혼인은 원래 해야 하는 것이나 아직 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며 ‘혼인 상태가 아닌 미혼보다 ‘비혼’을 주체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아예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응답하는 청년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8년)이 우리나라 20~44세 미혼 인구 2,383명(남성 1096명, 여성 1287명)에게 결혼 의향을 물었더니 남성 59.8%가 ‘결혼 의향 있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5.3%가 ‘결혼 의향 있다’고 응답했다. 3년 전 조사결과 남성 74.5%, 여성 64.7%에 비해 각각 14.7%포인트, 19.4%포인트 줄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내놓았다. 모바일 잠금화면 플랫폼을 운영하는 NBT가 고객 1,3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인식 관련 설문조사’에서 미혼 남녀 10명 중 9명이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천 청년들, 결혼을 말하다    크리스천 청년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온누리교회 가정사역본부 ‘크리스천결혼문화팀’이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여호수아, SNS, S브릿지공동체) 소속 싱글 청년 30명(20대 후반~40대 중반)을 만나 결혼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들어봤다. 크리스천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결혼으로 인한 부담과 불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A자매(30세, 여호수아공동체)는 “언니가 시댁과의 관계, 육아 문제, 경력단절로 인해 힘들어하는 걸 보고 결혼하면 포기할 게 너무 많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B자매(38세, 여호수아공동체) 또한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녀는 “결혼은 여자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 같다”면서 “희생을 감내할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면 결혼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단언했다. C자매(S브릿지공동체)는 “엄마처럼 희생적으로 살 자신이 없어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둘째,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D형제(S브릿지공동체)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결혼 시기를 놓치고 나니까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버렸다”면서 아쉬워했다. E자매(여호수아공동체)는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직장을 얻고 나서야 결혼할 생각을 하게 됐다”고 지적하면서 청년들이 결혼을 꺼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F형제(S브릿지공동체)는 “현실적으로 서울 시내에 집을 마련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여자친구 부모님이 ‘자네 (집 마련할 돈도 없이) 지금까지 뭘 했나?’고 물어보신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고 씁쓸해 했다.  셋째, 크리스천이라서 결혼이 더 어렵다. G형제(41세, SNS공동체)는 “보수적인 교회 안에서 사귀다 헤어지면 다른 지체들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연애를 주저한다”고 털어놨다. H형제(29세, SNS공동체)는 “크리스천들은 배우자 조건에 세상에서 따지는 조건에다 신앙까지 더하다보니 세상 사람들보다 문이 더 좁다”고 지적했고, I형제(여호수아공동체)도 “크리스천에게는 ‘거룩’이라는 배우자 조건이 따라 붙어서 솔직히 결혼하기가 더 어렵다”고 꼬집었다.  크리스천결혼문화팀이 만난 온누리교회 청년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이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크리스천의 배우자 조건이 결혼을 더 힘들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충격이 적잖았다. 교회가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청년들이 결혼을 한다.    청년들의 말 속에 그 해답이 있다   그렇다면 결혼을 위해서 기성세대, 청년들, 교회는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청년들의 말 속에 그 해답이 있다.  기성세대들은 미혼 청년들에게 ‘왜 결혼 안 하느냐?’라는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결혼문제로 스트레스를 주거나 ‘결혼은 선택’이라는 청년들의 인식이 잘못됐다는 지적 또한 말아야 한다. 비혼에 긍정적인 젊은 세대에게 “모두 너를 위해서”라는 잔소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년들의 생각과 인생을 적극적으로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J자매(S브릿지공동체)는 “부모님이나 어른들, 직장에서도 결혼문제로 스트레스를 준다”면서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청년들의 적극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결혼의 주체가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변화는 ‘너무 높은 배우자 조건을 내려놓는 것’이다. 결혼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결혼을 그렇게 하고 싶은데도 너무 높은 배우자 조건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조건을 내려놓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교육과 양육을 해야 한다. K자매(S브릿지공동체)는 “결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기준이나 틀을 깨주는 세미나와 훈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회공동체에 소속되기 전까지 비혼주의자였다는 M형제(S브릿지공동체)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결혼에 대한 소망을 발견하도록 교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부탁했다. F형제(S브릿지공동체) 또한 공동체에 소속 되고 나서 결혼을 꿈꾸게 되었다. 그는 “일대일 제자양육과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나를 바라보며 결혼을 생각하게 됐다”면서 “크리스천들이 너무 세상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은 3천 달러(1977년 GNI 수치) 시대에 결혼했던 부모 세대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갈수록 결혼이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천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좁고 험한 길을 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사명이라면 우리는 그 길을 꼭 가야만 하다. 교회가 끝까지 함께 있어주고 힘이 되어줄 것이다. F형제가 꼭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그 형제의 말 한마디가 이 시대 청년들의 진짜 속마음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결혼하고 싶다!”   *크리스천 결혼문화팀(가정사역본부) 문의: 김태오총무 010-5628-8872   기고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기  화려한 웨딩박람회에 이어 결혼 청첩장이 오기 시작하는 계절 3월이다. 얼마 전 YTN에서 외신 보도를 인용해 ‘볼리비아에서 공식적으로 단 한 마리만 남아있던 희귀종 개구리가 마침내 짝을 찾았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올해 열한 살로 박물관 수족관에서 살고 있는 세후엔카스 물개구리 ‘로미오’는 기후 변화와 수로 건설, 전염병 탓에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었다. 10년 넘도록 동족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동물학자들의 노력으로 서식지가 발견되어 암컷을 찾아냈다는 소식이다. 로미오와 짝짓기를 하게 된 암컷 개구리에게는 ‘줄리엣’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생태계의 경사이다.    사슬처럼 엮여있는 취업, 결혼, 출산   한국 속담에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는데 짚신보다 존귀한 생명체가 우여곡절 끝에 짝을 찾았다니 기쁜 일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 청년들은 짚신이나 희귀종 개구리보다 짝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짝을 찾아도 결혼하기가 어렵다. 청년 취업률이 낮으니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다 해도 맞벌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니 출산이 늦어진다. 또 출산을 한다 해도 아이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으면 여성은 복직을 포기해야 한다. 혼자 벌어서는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출금 등을 갚아나갈 길이 요원하니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된다.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를 키우다 사교육비라도 보태려고 재취업의 문을 두드려보면 경력단절 여성이 느끼는 취업의 벽이 학력에 관계없이 높고도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미혼남녀 약 2,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녀가 없어도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남자 28.9%, 여자 48%로 나타났다. 기혼남녀는 자녀를 2명 정도 갖기를 원했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 1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평균 결혼 연령은 현재 남자가 33세, 여자가 31세인데 이는 10년 전보다 4세 이상 높아졌다. 결혼식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요즘 강남지역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하려면 200명 하객을 기준으로 2천5백만 원, 500명 기준으로 4천만 원이 든다고 한다. 예식 비용만 그렇다. 한 웨딩업체에서 조사한 결혼비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2억3천만 원이 드는데 그 중에서 주택자금이 1억6800만 원으로 73%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마저도 전세금 정도이다. 남자가 지는 짐이 더 크다. 평범한 서민에게 특히 노후대책을 해야 하는 부모의 입장이나 예비신랑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닐 수 없다. 4대보험이 되는 직장에 취업이라도 하면 초봉 비율이 적용된 액수만큼 대출이 되지만,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무직은 결혼에 대한 희망을 품기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대중들은 종종 외신이 전하는 세기의 결혼식 뉴스를 접하면 자신과는 상관없는 달나라 이야기 같아 허탈하다. 지난해 12월 12일 인도에서는 1억 달러(1130억원)를 쓴 슈퍼프라임급 금수저들의 결혼식이 있었으니 아시아 최고 갑부 릴라이언스그룹 회장의 딸 이샤 암바니와 피라말그룹 회장의 아들 아난드 피라말의 결혼식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비욘세, 에릭슨 외에 HP, 골드만삭스, JP모건의 최고경영자들, 한국에서는 S그룹 부회장이 참석했다고 한다. 27층 저택에서 수일간 진행된 이 결혼식을 위해 전세기가 100여 차례 VIP들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 접한 세기의 결혼식도 있었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이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 사건이었다. 돈 앞에 영부인의 지조를 버렸다며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이 있다. 재클린 여사는 남편이 암살된 지 5년 후 시동생 로버트 케네디마저 암살되자 공포감에 시달렸고 재력과 힘을 갖춘 오나시스야말로 자신과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오나시스는 오래 전부터 그녀를 연모해왔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불과 2년이 못되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사랑해서 한 결혼도 현실에서 허덕이며 살다보면 그 사랑이 환멸로 바뀌기 쉬운데 부와 명예가 동기가 된 결혼은 곧 한계를 드러낸다. 세기의 이혼도 있다. 아마존 회장 제프 베조스가 전 폭스 앵커 로렌 산체스와 바람을 피워 전처와 이혼하면서 합의금으로 내놓은 돈이 75조원에 이른다.  이 정도 부자들의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한국에서의 결혼 비용은 빈부 차가 크다. 시어머니 될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실생활에 별 필요도 없는 병풍 하나에 수억 원을 들여 혼수를 해가는 집안을 본 적이 있다. ‘결혼’에 대한 준비보다 ‘결혼식’에 대한 준비에 치중하는 풍속도 문제이지만 아내와 남편, 며느리와 사위, 부모로서 새로운 역할이 시작되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나 힘들어진 사회구조가 안타깝다. 직장이 없는 청년은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결혼할 엄두를 못 내고, 전문직에서 일하는 인력은 너무 바빠서, 혹은 현재의 삶이 편하고 익숙해서, 본인이 나이 먹어가는 걸 자각하지 못해서 결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혼하기 좋은 도시, 아이 양육하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수십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있다. 결혼의 중요성을 어필하는 강좌 개설, 데이트 핫플레이스나 프로포즈존 조성, 썸타는데이 제정, 신혼부부 주택 전월세 이자 지원책에 출산장려금도 경쟁이라도 하듯 대폭 올리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내놓은 6세 미만 자녀수당 지급정책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청년일자리 마련, 결혼자금 지원, 어린이집 운영확대 등 현실을 반영한 정책 수립이 계속되어야 한다. 사회에서도 기혼여성들에 대한 배려와 경력단절 여성들의 재취업, 아빠들의 육아휴직 등 기업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 많다. 또한 과다한 혼수문화 자제 등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결혼시즌이 되면 유복한 가정의 자제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커플들의 청첩장도 많이 받고 싶다.    크리스천이 더 결혼하기 힘들다   크리스천 청년들의 결혼은 더욱 어렵다. 극동방송 재직 당시 수년간 제작진행을 맡았던 ‘김수민의 해피패밀리’라는 가정사역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공개구혼 코너가 방송된 날이면 전국에서 부모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전문 커플매니저도 아니었지만 자녀들의 짝을 찾아달라는 애절하고도 간곡한 호소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일단 연락처를 받아놓곤 했다. 그런데 믿음만 좋으면 된다고 하던 분들이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학력, 외모, 직장, 집안, 재력, 장래성 등을 따졌고 거기에 믿음까지 좋아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으니 부모 마음에 드는 배우자감을 찾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모 대학의 명예교수인 한 장로님의 가정에 늦은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아들딸이 있었다. 특히 아들은 첫사랑이 이혼녀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억지로 헤어지게 만든 어머니에 대한 복수심으로 나이 50세가 넘도록 혼자 살며 결혼 권유만 하면 벌컥 화를 낸다고 탄식하셨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둘이었다가 하나가 되는 원리이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하나였다가 갈라지는 시점에서 그 성공 여부가 가려진다.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라는 결혼의 원리를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기 때 아담과 하와를 통해 알려주셨다. 그러나 유교의 뿌리가 깊은 한국 사회에서는 정신적인 독립과 불효의 차이를 혼동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결혼은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것이다. 에덴동산에는 사랑과 결혼, 생육과 번성, 일터와 풍성한 먹거리, 생태계 및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가 있었다. 죄로 인해 이 모든 축복이 단절되었지만 감사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회복되었다.  물론 결혼하면 무조건 행복하다든가 결혼이 모든 것의 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 사는 것보다 많은 책임과 고통이 따른다. 자신의 일을 하며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결혼을 하는 한국 문화에서 미혼 청년들이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배우자를 선택하고 순조롭게 가정을 이루며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줘야 하는 책임도 있다. 가장 중요한 이 일에 주변에서 많은 관심과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홍보대행사 대표, 칼럼니스트)    <발문> 물론 결혼하면 무조건 행복하다든가  결혼이 모든 것의 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 사는 것보다 책임과 고통도 따른다.  그러나 성경적 가치관으로 배우자 선택하고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 물려줘야 하는 책임도 있다

 2019-03-17      제12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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