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캠퍼스] 품성은 온라인에서도 보인다! 

기획_크리스천과 품성 시리즈 2. 온라인에서도 지켜야 할 품성     온라인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연결 … ‘네티켓’을 지키자!  응원 댓글 달아 격려하는 ‘선플’과 ‘릴레이 감사일기’ 제안      ‘네티켓’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네트워크’와 ‘에티켓’의 합성어다. 인터넷과 SNS 등 온라인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총칭하는 말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지키고 보여야 할 우리들의 품성을 지칭한다. 일상(오프라인)에서 예절과 매너를 지키듯이 온라인 세상에서도 좋은 품성을 보여주고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선하고 품성 좋은 지킬 박사였다가 온라인 세상에만 들어가면 난폭하고 악을 행하는 하이드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크리스천들이 사용하는 온라인 세상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순, 다락방, 공동체 등 다양한 교회구성원들이 어울리는 SNS에서 차마 말은 못했지만 눈살 찌푸린 적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네티켓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대한민국 전체 1,952만 가구 중에서 1,943만 가구(99.5%)가 인터넷을 사용한다. 인터넷 이용자 수 4,528만 명, 스마트폰 이용자 5,011만 명(국내 이동통신 3사 기준), 하루 평균 인터넷 이용 시간 5시간 14분, 한국인 1인당 하루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3시간이다. 더 이상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다양한 정보 습득은 물론이고, 쇼핑, 정보 공유, 취향 과시, 관계망 확장 수단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을 이용하고 있다.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상공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어폭력 혹은 비매너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부작용도 있다.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내용의 댓글(악플), 허위사실 유포, 인신공격,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사이버 명예훼손이 가져 온 비극 마음의 큰 상처에서 극단적 선택까지   “우리는 가족의 시신으로 보상금 장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참사에서 겨우 살아남은 부상자가 치료받을 수 있기를 원할 뿐이다.” 지난 4월 일어난 진주 방화살인사건으로 한순간에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잃은 유가족들이 일부 누리꾼들의 악플로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가해자의 이상행동을 수차례 신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과 부상당한 가족들이 완치 될 때까지 치료비 전액을 요구한다는 언론보도가 전해지자 일부 누리꾼들이 “또 국가타령이냐”, “보상금을 노리고 발인 미루는 것 아니냐”며 악플을 달았기 때문이다. 이 악플로 유가족과 부상당한 사람들이 또 한 번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어디 이뿐인가. 악플에 시달리던 한 여고생이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지난 2007년 S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한 한 여고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 여고생은 체중을 40kg 감량하고 방송에 출연했는데 당시 패널로 출연했던 아이돌 멤버와 찍은 사진이 화근이 됐다. 그 아이돌의 팬들이 이 여고생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사이버 공격을 가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연예인들의 피해 또한 매우 심각하다. 가수 유니, 탤런트 정다빈, 최진실 등도 루머로 인한 악성 댓글에 괴로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와 같은 사이버 명예훼손(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이나 인격, 신분 등의 사회적 평가에 해를 끼쳐 손해를 입히는 일) 사건이 최근 5년 동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2월 발표된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접수된 사건은 1만4661건으로, 2014년 7447건에 비해 두 배나 늘었다. 일반 명예훼손 사건이 지난 5년 동안 연 1만5천건 수준임을 감안하면 사이버 명예훼손이 일반 명예훼손 건수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이버 명예훼손 폐해가 심각해지자 최근 법원에서는 처벌 강도를 높였다. 악플을 다는 것만으로도 최대 3년9개월까지 징역형을 줄 수 있도록 양형기준을 신설했다. 무심코 혹은 재미로 비방댓글이나 악플을 달았다간 큰 코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천태만상 無개념, 無동의, 無예절, 폭력    온라인 공간에서의 비매너와 무개념 행동은 악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박현민 형제(비신자, 29세)는 얼마 전 지인이 보낸 메시지를 받고 몹시 불쾌했다.   “지인이 자꾸 게임 광고를 보내더라고요. 게임하다가 하트가 모자라니까 연락처가 링크된 사람들한테 무심코 보내는 것 같아요. 문제는 평소에 연락도 잘 안하던 사람이라는 거예요. 안부 인사도 없이 갑자기 광고성 문자가 오니까 너무 짜증나더라고요. 없던 정까지 뚝 떨어지더라고요.” 김유정 자매(타교회, 28세)는 SNS 단체 채팅방을 이용하다가 불쾌한 일을 겪었다.  “아는 오빠가 아무 말도 없이 저를 단체 채팅방에 초대하더라고요. 그 채팅방에는 저랑 관계가 불편했던 사람도 있었어요. 솔직히 당장 나가고 싶었지만 채팅방에 있던 사람들이 왜 퇴장했냐고 물어볼 것 같고, 또 초대한 오빠 체면도 있고 해서 못 나가고 있어요. 단체 채팅방에 초대할 때는 그 사람에게 먼저 의사를 물어보는 게 기본 매너 아닌가요?” 상황과 기본예절에 어긋나는 단어(은어, 줄임말 등)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도 문제이다.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ㅋㅋ”(웃음), “ㅇㅇ”(응)과 같은 약어를 사용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난다. K교수(38세)가 이에 대해 한소리 했다.  “학생들이 성적이 궁금하고 걱정돼서 교수한테 연락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에 연락해서는 친구들에게나 보낼법한 이모티콘 등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불쾌하더라고요.” 더 심각한 문제는 가상공간에서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라는 학교폭력이 유행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을 뜻하는 말인데,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친구를 단체 채팅방에 초대해서 무작정 욕설을 퍼붓고, 피해 학생을 촬영한 영상으로 조롱하고 수치심을 주는 행동이다. 사이버 불링 피해를 입은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일이 있어 우려된다.  이처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품성 좋지 못한 행실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네티켓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우리의 네티켓이  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일 수도 있다    1994년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의 버지니아 셰어 교수가 제시한 ‘네티켓의 핵심원칙 10가지’를 소개한다.   1. 인간임을 기억하라.  2. 사이버 세상도 실제 세상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라.  3. 자신이 어떤 곳에 접속해 있는지 알고 그곳 문화에 어울리게 행동하라.  4.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라.  5. 온라인에서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라.  6.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라.  7. 논쟁은 절제된 감정 아래 행하라.  8.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하라.  9. 당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마라.  10.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서하라.    아무리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가상공간이라고 해도 그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까지 가상이 아니다. 결국 온라인도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다. 이에 따른 예절이 필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상식이다. 단체 채팅방에 누군가를 초대를 할 때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게 우선이다. 또한 단체 채팅방의 목적과 상관없는 글이나 몇몇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친분 과시용 글은 비매너이다. 상대방과 직접 마주하지 않거나 상대방을 모르는 상황에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인터넷 환경의 특성을 잘 살펴야 한다. 표정이나 제스처를 통해 알 수 있는 비언어적 표현이 배제된 상태에서 오가는 표현과 글은 자칫 오해나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댓글이나 게시글을 올릴 때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선플(긍정적인 평가를 하여 쓴 댓글)과 릴레이 감사일기 쓰기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 용기와 희망이 필요한 사람들의 SNS에 응원 댓글을 달아 격려하는 운동이다. 하루 동안 있었던 감사한 일들을 묵상하고, 그것을 SNS에 공유하는 것도 좋다. 감사일기를 써줄 다음 대상자를 선택한 다음 해시태그(#)를 달아서 감사일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면 더욱 좋다.  이제는 일상 예절 못지않게 온라인 예절이 중요해졌다. 무심코 올린 댓글과 게시글, 단체 채팅방에서의 적절한 의사소통 태도가 그 사람의 품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우리의 네티켓이 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고, 위로를 줄 수도 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기고>   SNS에도 품성이 있다! 우리가 꼭 갖춰야 할 ‘SNS 품성’과 ‘매너’   현대인들을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 없이 살기 어려운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라고 부를 만큼 우리는 휴대폰 없이 생활하기 힘들어졌다. 휴대폰을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콘텐츠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에 나타난 와이즈앱 조사(지난해 3월 기준)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유튜브 사용 시간 257억분, 카카오톡 179억분, 네이버 126억분, 페이스북 42억분이다. 모바일에서의 콘텐츠 소비 성향이 텍스트와 이미지에서 동영상으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틱톡, 위챗, 라인, 밴드 등 SNS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를 생산 및 소비하고 있고, 반응과 공유를 통해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한다. 유튜브에는 1분마다 72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업로드 되고, 페이스북에서는 사용자들이 300만 개의 콘텐츠를 공유하며, 매일 23만장의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게재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과 소셜미디어는 생물처럼 움직이고 확장되고 있다. 유통, 쇼핑, 금융과 핀테크, 교통, 의료, 엔터테인먼트와 방송까지 논스톱 서비스로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에 따라 SNS에서도 갖춰야 할 품성과 매너가 요구된다.    크리스천 SNS 사용자 유형과 매너    SNS 사용자 중에는 다른 사람이 올리는 콘텐츠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방관형, 올리는 내용마다 읽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좋아요’와 ‘아멘’으로 화답하는 두루뭉술형,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하고, 심지어 내쫓는 독재자형, 반대로 본인이 나가버리는 소심형, 열심히 목사님의 설교를 퍼다 나르며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형, 틈만 보이면 자신이나 제품에 대해 홍보하는 틈새시장형, 밤늦게까지 콘텐츠를 올리는 올빼미형, 프로필 사진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숨기는 가면형 등이 있다.  SNS 단체 채팅(단톡)방이나 밴드에 상대방을 초대할 때는 미리 개인 메시지로 그 모임의 성격을 얘기해주고 동의를 얻은 다음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운영자는 서로 상관관계가 없는 자신의 지인들을 일방적으로 단톡방에 모아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사이버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해서 바로 빠져나가기를 한다.  단톡방에서 경조사 등 중요한 공지를 올리거나 전체 의견을 묻는 글이 올라와 있을 때 그에 대한 댓글이 충분히 달리기도 전에 전혀 상관없는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붙인 댓글들이 도대체 어떤 내용에 대한 의견인지 동문서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공지나 상대의 글을 길게 누르면 ‘복사, 삭제, 답장, 전달’의 메뉴가 뜨는데, ‘답장’을 클릭해 의견을 달면 소통의 혼선을 줄일 수 있다.  시간 에티켓도 중요하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급한 공지가 아닌 이상 다음 날로 미뤄야 한다. 특히 해외 동포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시차를 고려하지 않고 본인의 얼굴이 나온 행사 사진들을 수십 장씩 올리는 경우가 있다. 묵음 처리를 해놓지 않으면 잠이 다 깬다. 사진은 본인한테나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공해다. 또 새벽잠이 없는 분들이 아침 5시부터 메시지를 보낼 때가 있는데 가능한 오전 7시 이후에 올리는 것이 SNS 예의다.  지인 중에 소상공인 단톡방을 운영하는 분이 있다. 이 회장님은 카리스마가 넘쳐 평소 눈팅(인터넷상에서 게시판에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만 하고 댓글을 달지 않는 회원들을 용서하지 않는 품성의 소유자다. 아침마다 “출첵(출석 체크) 1번, 출첵 2번, 출첵 3번…”을 외치며 회원들이 단톡방에서 스스로 출석체크를 하게 한다.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단호하게 퇴장시킨다. 정말 피곤한 리더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은 거부할 수 없어 열심히 따르는 분위기다. 이렇게 구성원들을 내쫓는 독재자형 품성의 리더가 있는가 하면, 차라리 본인이 나가버리는 소심형 품성의 리더도 있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을 함께 찍는 한 동호인 단톡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렵게 섭외한 장소를 여러 번 공지했는데도 다른 회원들의 반응이 미온적이자 갑자기 리더가 단톡방을 나가버렸다. 모든 계획에 차질을 빚는 황당한 일이었다. 불특정다수가 모인 단톡방에서는 아무 말 없이 나가는 게 차라리 나을 수 있으나, 친한 지인들끼리 모인 방에서는 일단 설명을 하고 나가는 게 피차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크리스천들이 지켜야 할 SNS 예절   크리스천 단톡방의 특징이 있다. 아침마다 은혜로운 설교 말씀이 텍스트나 영상으로 올라올 때 형식적인 답변으로 경직된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누가 큐티나눔을 올리면 가끔은 그 내용에 대해 단 한 줄이라도 공감 댓글을 달아주면 좋은데 그냥 “아멘”만 줄줄이 달린다. 물론 그것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야 낫지만, 이 “아멘”이 영혼 없는 멘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페이스북 게시물에 읽지도 않고 무조건 ‘좋아요’를 누르거나 코멘트를 달지 않고 링크만 공유하는 것도 좋지 않다.  크리스천들도 때로는 사람 냄새 풍기며 편안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오로지 “아멘” 뒤에 자신을 숨기고 거룩한 이미지만 유지하려는 경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심지어 목표한 사역을 위해 힘을 모으고 움직여야 하는데, 공지사항에는 답변도 하지 않고 모임에도 나오지 않고 협조도 하지 않으면서 매일 미사여구를 담은 장문의 기도문만 단톡방에 올리는 사람도 있다. 이는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마치 긴 옷을 입고 길거리에 서서 남들이 듣도록 큰 소리로 기도하는 대제사장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기도는 외식(外式)하지 않고 은밀하게 골방에서 주님께 하는 편이 낫다.    SNS에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열심히 콘텐츠를 퍼다 나르는 사람들이 진솔하게 자신의 깨달음이나 간증을 나눠주면 더 좋으련만, 매일 아침 인공지능 로봇같이 여기저기에서 목사님 메시지만 퍼 나르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답글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나도 SNS를 통틀어 2만 명의 친구와 팔로워들이 있다 보니 돌고 도는 동일한 콘텐츠를 자주 만난다. 감사하게도 아침마다 성경말씀이나 묵상, 설교를 보내주는 분들이 많다. 솔직히 읽을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CCM을 첨부해서 보내주시는 한 선배님의 짧은 콘텐츠 외에는 주기적으로 전체 삭제를 하고 있다. 제발 그만 보내라고 말하고 싶지만 혹시나 상처받을까봐 꺼낼 수가 없다.  선교사님들이나 사역자들 중에 상대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매일 말씀을 보내주다가 기도제목과 함께 헌금을 요청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만 그건 감동을 주시는 대로 자신이 결정하면 될 일이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 없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분이 매일 말씀과 사진을 보내주기에 궁금증을 참고 있다가 한 달쯤 지난 뒤 “실례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우리가 어디서 만났었나요?”라고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분이 어떻게 자기를 기억 못할 수가 있냐며 화를 내더니 그때부터 내 메시지를 차단해 버렸다. 아마 복음방송 재직 시절 만난 목사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죄송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속이 후련했다. 가능하면 카톡 프로필에는 본인의 사진을 올리는 게 좋다.  할 말이 많더라도 단톡방에서는 공개적인 논쟁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모임이 깨지는 단초를 만들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침묵하거나 움직이기 때문이다. 간음한 여인을 현장으로 끌고 와 예수님을 시험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누구든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긍휼(공감)과 지혜가 우리의 SNS 품성에 스며들도록 노력해야겠다.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칼럼니스트, 홍보대행사 대표) <발문> 예수님의 긍휼(공감)과 지혜가  우리의 SNS 품성에 스며들도록 노력해야겠다.  

 2019-07-14      제1254호

[사역] 신앙은 품성으로 드러난다!

 기획_크리스천과 품성 시리즈 1. 신앙은 품성으로 드러난다 2. 온라인에서도 지켜야 할 품성 3. 당신의 말에 숨어있는 품성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의 품성으로 예수와 교회 판단  크리스천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닮아가는 노력해야  ‘품성(品性)’이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는 품성을 ‘사람 된 바탕과 성질, 성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비슷한 말로 인격, 인품 등이 있다. 영어로 품성은 ‘Character(캐릭터)’이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품성을 “한 인간의 개인적 본질을 구분해주는 속성이나 특성들의 통합된 총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품성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고유한 특성(캐릭터)과 성질이다. 인품, 됨됨이, 성향, 기질, 성격 등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말이다. 크리스천에게는 믿음뿐만 아니라 품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나는 예수를 좋아하나 크리스천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간디).  마하트마 간디가 성경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어느 주일,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기독교인이 되는 방법을 물어보려 했다. 그런데 간디는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했다. 안내원이 그에게 자리를 내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간디는 교회에 발걸음조차 하지 않았다.  간디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고 끝까지 힌두교인으로 남았던 한 가지 이유는 좋지 못한 품성을 가진 크리스천 때문이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좋은 품성을 가지지 못한 크리스천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를 손가락질 하고, 교회를 미워하게 만드는 일이 눈만 뜨면 벌어지고 있다. 도가 지나친 정치적 발언과 막말을 일삼는 목사, 편법을 감행해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대형교회 목사, 부자세습에 반대하는 목사가 암에 걸리자 “세습 반대하니 하나님이 암 걸리게 하셨다”며 조롱한 동료 목사, 딸 친구를 성추행한 것도 모자라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불법 촬영을 시도한 목사 등 교회와 일부 목사들의 행동이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영적인 리더들이 일탈을 일삼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신앙이 성격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품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문제가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문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품성을 보고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믿음이 먼저인가? 품성이 먼저인가?   미혼 크리스천들에게 그 유명한 난제(難題)를 던지면 뭐라고 대답할까?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다. “믿음이 먼저인가? 품성이 먼저인가?” H자매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신앙보다 품성”이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품성 좋은 사람은 당장 믿음이 없더라도 나중에 전도했을 때 좋은 신앙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아무리 크리스천이라도 무례하고 남 배려할 줄 모르면 곤란해요. 성격이나 인격은 쉽게 바뀌지 않거든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잖아요.”  배우자 선택뿐만 아니라 성공을 위해서는 품성이 중요하다. <좋은 품성은 성공의 동력이다>의 저자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펙보다 품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지식, 정보, 창의력, 기술 등)에 품성을 곱한 것이 성공이다. 능력이 있어도 품성 수준이 낮으면 진정한 성공을 이룰 수 없다.”  책 <좋은 품성은 성공의 동력이다>의 부제가 ‘행복하려면 품성을 계발하라’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진정한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좋은 품성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품성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한다. 미국 인명사전에 졸업생 100명당 3명이 등재되는 학교, 하버드와 예일 등 명문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학교, 세계에서 가장 큰 고등학교 도서관을 보유한 학교, 미국 사회 전역에 걸쳐 시대적 지도자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 ‘꿈의 학교’로 통하는 고등학교 ‘필립스 아카데미’가 명문학교가 된 이유는 세계 최고 수준의 커리큘럼과 시설이 아니다. 바로 건학이념 때문이다.  “Not for Self”(이기심을 버려라).  필립스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을 미국과 세계 사회에 이바지할 리더로 길러내기 위해서 건학이념을 강조한 교육을 실천하는데 모든 열정을 기울인다고 한다.     품성을 강조하는 고등학교가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14년 개교한 충남삼성고등학교 도 ‘바른 품성’을 건학이념으로 내걸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눈앞의 대학입시가 아니라 학생들의 인생을 준비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66일 기적의 용광로(MSMP)’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학생들이 66일 동안 합숙하면서 9가지 생활습관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9가지 습관은 시간 준수, 올바른 식사 예절, 규칙적인 운동 습관, 인사 잘하기, 바른 말 쓰기, 규칙 지키기, 바른 수업 태도, 학습계획 수립, 자기주도 학습이다. 사소해 보이는 습관과 매너를 함양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신기한 것은 입시위주 교육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학교 졸업생들의 명문대 진학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2017년 1회 졸업생 9명, 2회 졸업생 12명, 3회 졸업생 9명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 충남삼성고등학교에서는 바른 품성을 강조한 교육이 가져 온 고무적인 성과라고 여기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 되기   성경에서도 크리스천의 품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이 크리스천의 좋은 품성을 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가르침이 팔복(八福) 교훈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애통하는 자는, 온유한 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마 5:3~10).   팔복 중에서 앞의 네 가지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와 품성을 가져야 하는 지를 설명한 것이고, 뒤의 네 가지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품성을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이 여덟 가지 품성을 지닌 자는 복이 있고, 하늘의 상이 크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도 품성에 대한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  사랑에 대한 정의는 또 어떠한가. 성경은 사랑을 설명할 때에도 품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 13:4~6).  이밖에도 순종, 정직, 감사, 겸손, 근면, 배려, 자선, 기쁨 등 율법과 선지자들의 교훈, 사도들의 생활지침이 모두 품성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품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지금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면 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타기, 노약자를 보면 조용히 자리 양보하기, 환경과 자원보호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기(종이컵 대신 텀블러,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에코백),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 이용), 재래시장이나 노점에서 채소 파는 할머니한테 물건 값 깎지 않기, 뒤에 오는 사람을 배려해서 출입문 잡아주기, 택시비 거스름돈 받지 않기 등이다. 사소해 보여도 우리나라 천만 크리스천이 이 일을 실천한다면 엄청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의 품성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판단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좋지 않은 품성 가진 크리스천으로 인해서 제2의 간디가 나와서는 안 된다. 크리스천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의 품성을 닮아가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기고>   크리스천의 품성에 대한 고찰 참된 품성은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할 때 형성     ‘품성’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생각나는가? 마음가짐? 그 사람의 어떤 행위? 얼굴의 생김? 입은 옷? 품성은 이러한 것들 하나하나가 아니고 그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품성은 사람 개개인에 관한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든,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독특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품성   일반적으로 우리가 품성을 말할 때 “그 사람은 좋은 품성을 가진 사람이다” 혹은 “그 사람 품성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좋은 품성’과 ‘나쁜 품성’을 대비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인들과 달리 크리스천에게는 특별히 좋은 품성이 요구된다.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 교회 다닌다고 하는데 품성이 좋지 않아”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좋은 품성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참된 크리스천의 품성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전적인 헌신과 노력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행동이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믿음이 있는 척하고, 겉모양만 보여주기를 원하는 것은 좋은 그리스도인의 품성과 거리가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했다면 우리의 품성과 행동도 그분의 부르심에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위선자가 되고, 화가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품성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람됨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품성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품성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척도이다.  품성은 우리의 성실, 행동, 도덕, 성질에서 그 진실이 드러난다. 품성이 좋든 나쁘든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윤활유 역할을 하거나 그 반대 작용을 하게 한다. 그것이 진리이다.  품성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배울 수 있다. 참 크리스천의 품성은 단순히 개인의 기질이 아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성령의 열매의 총화이다.  좋은 품성은 사람들이 서로 교제할 때 상승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품성은 그리스도의 표현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생활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선하게 행할 수도 있고, 나쁘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것을 잘 활용할 수도 있고, 반대로 무시할 수도 있다.  품성은 우리의 생활을 조정한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와 닮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추구하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우리에게 행하도록 명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사랑하고, 화평하며, 오래 참고, 친절하고, 선하며, 성실하고, 온유하며, 자기통제를 행해야 한다(갈 5:22~23).  진정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품성은 온전히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형성될 수 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중요한 품성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서 나온다. 그밖에도 용서, 겸손, 공정, 용기, 우정, 감사, 책임, 만족, 관용, 순결, 거룩, 자신, 격려, 순종, 지혜, 긍휼, 열정, 솔선수범, 부지런함, 사려 깊음 등이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품성이다.    나의 품성 점검해보기    그렇다면 내가 좋은 품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음 질문들은 나의 품성을 알아보기 위한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을 통해서 내가 크리스천으로서 얼마나 좋은 품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면 좋겠다.  첫째, 나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즐긴다. 둘째,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하나님에게로 향한다. 셋째, 나는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넷째,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다섯째, 나는 나의 장래에 대해 우려한다. 여섯째, 나는 집에서도 혀를 다스린다. 일곱째, 나는 용서하는 사람이다. 여덟째, 나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다. 아홉째, 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간구한다. 열째, 나보다 못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돕는다(표 참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렇지 않다’, ‘대체로 그렇다’, ‘매우 그렇다’로 해보면 자신의 성품이 어디에 속해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크리스천의 좋은 품성은 용모나 마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선하고 좋은 품성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행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품성은 거짓이고, 위선일 수밖에 없다.   선한 품성은 단순히 어떤 일을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에 앞서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고 지나가는 구급차를 보고 환자가 늦지 않게 병원에 도착해서 목숨을 구하기를 기도하는 마음 등이 바로 크리스천의 좋은 품성이다.  품성은 책에서 배우거나 설교를 듣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번 얻었다고 오래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품성은 개개인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유지될 수 있다.  / 박동순 명예장로(OCC공동체, 초대 주이스라엘 대사)   <나의 품성 점검해보기> 1 나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즐긴다 2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하나님께로 향한다 3 나는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4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5 나는 내 장래에 대해 우려한다 6 나는 집에서도 내 혀를 다스린다 7 나는 용서하는 사람이다 8 나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다 9 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에게 간구한다 10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돕는다 11 나는 삶을 축복한다 12 나는 내 성공이 인정을 받지 못할 때는 불안하다 13 나는 신사이다 14 다른 운전자가 나에게 불합리한 운전을 해도 나는 그를 곧 용서한다 15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선물 사는 것을 좋아한다 16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을 행한다 17 나는 기도할 때 가난한 자를 위해 기도한다 18 나는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19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더 생각하면서 잠을 깬다 20 나는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 목소리를 높인다 21 나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과도 잘 지낸다 22 다른 사람들의 필요가 나의 필요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3 나에게 나쁜 생각이 날 때는 가능하면 마음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 24 어떤 비극이 일어난 것을 듣거나 읽었을 때 내 마음이 매우 아프다 25 나의 현재 모습을 좋아한다 26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갖기를 희망한다 27 나는 인내성 있는 사람이다 28 다른 사람이 나를 잘못 다룰 때, 나는 그를 피하거나 침묵으로 대한다 29 나는 내 돈 주기를 즐거워한다 30 온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 31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괴로워한다 32 나는 내 생명이 참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33 나는 불평을 한다 34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나를 당황하게 해도 나는 평정을 잃지 않는다 35 나는 내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을 용서한다

 2019-06-30      제1252호

[사역] 사촌교회와 농어촌선교팀의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구원열차! <사촌교회에서 가수 노사연 집사를 초대해 마을주민전도집회를 열었다.>   교인이라곤 꼬부랑 할머니 5명, 한 달 헌금 고작 5만3천원. 이종민 목사가 사촌교회(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에 부임한 2015년의 모습이다. 그 작고, 열악하기 그지없던 사촌교회에 부흥과 기적이 일어났다. 이종민 목사가 5년 동안 사천시 사남면 일대 13개 마을을 매일같이 방문해서 전도한 열매가 맺힌 것이다. 5년 새 교인이 50명으로 늘었다. 무려 10배나 부흥했다. 또한 사촌교회는 2015년부터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사촌교회에서 진행된 서빙고 온누리교회 농어촌선교팀의 아웃리치도 그 일환이다. 더 많은 주민들을 초대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수 노사연 집사와 온누리전도학교, 전도폭발팀, 이미용팀, 수기팀도 합세했다. TV에서나 보던 연예인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천시가 들썩였다. 평생 교회 문턱 한번 밟지 않은 어르신들이 교회에 오고, 세례를 받았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지난달 27일(토) 서빙고 온누리교회 농어촌선교팀 아웃리치가 진행되고 있는 사천교회를 찾았다. KTX를 타고 진주로 향하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거센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천지역 날씨는 흐렸다. 저녁에 있을 집회를 치르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에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진주에서 택시를 타고 사천시로 들어가서 서빙고 농어촌선교팀 박진호 팀장과 강명원 집사를 만났다.  “사촌교회가 있는 곳은 강원도보다 더 산골짜기에요.” 서울에서 출발한지 6시간 만에 사촌교회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말뜻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교회가 파묻혀 있었다. 이곳은 영적으로도 척박한 곳이다. 마을마다 있는 절과 무당집들이 교회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내가 우리 목사님 덕분에  이라가 살고 있다 아이가…”   사촌교회 이종민 목사를 만났다. 이 목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 산골까지 와서 목회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기도 정말 오기 싫었다고. 사방이 산으로 꽉 막힌 시골이라는 것도 기가 막히지만, 주변 환경도 영적인 상태도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택은 낡고 쓰레기가 가득했다. 사택에서 쥐와 지네가 너무 많이 나와서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교통이 너무 안 좋아서 아이들 통학도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종민 목사가 사촌교회에 온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들도 내 백성이다. 네가 섬겨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종민 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도시의 좋은 목회지를 뒤로 하고 사촌교회로 왔다. 성도라고는 할머니 5명이 고작이었다. 한 달 헌금 5만3천원으로는 교회운영은커녕 전도하기도 빠듯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다. 간절히 기도하며 방법을 찾았다.  전도부터 했다. 가장 돈이 안 드는 계란 한판을 사서 7시간 동안 구웠다. 구운 계란을 먹고 혹여나 어르신들이 목이 막히지 않을까 요구르트까지 곁들여 전도선물세트를 만들었다. 그걸 들고 매일 마을을 돌면서 어르신들을 만났다. 어르신들이 교회 마당이라도 밟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전도했다. 이종민 목사는 부임한 첫해 7개 마을, 이듬해 9개 마을, 그 이듬해 12개 마을, 올해 1개 마을이 더 늘어서 13개 마을을 섬기고 있다. 열과 성으로 전도했더니 주민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한기임 할머니(83세)도 그 중 한 명이다. 한기임 할머니는 2017년 7월부터 교회에 나온 늦깎이 성도다. 계기는 화재였다. 밭에 일하러 간 동안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집에 불이 났다. 홀라당 다 타버렸다. 실의에 빠진 할머니를 위로하고, 도움을 준 건 사촌교회 이종민 목사와 윤지숙 사모였다. 친척집에 피신해 있던 한기임 할머니를 찾아가 옷도 사주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보태며 위로했다. 그 정성에 한기임 할머니가 감격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바로 그 주부터 사촌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우리 목사님 덕분에 이라가 살고 있다 아이가.”    “예수님 믿으십시오!  사촌교회로 오십시오!” 이종민 목사가 올해 계획을 세우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유명 가수를 초대해서 주민초청집회를 열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도와줄 교회를 붙여주십시오.” 하나님이 기꺼이 응답하셨다. 서빙고 온누리교회 농어촌선교팀이 지난 2월 우연히 사촌교회를 방문했다. 이종민 목사가 서빙고 농어촌선교팀원들을 보자마자 “가수초청집회를 하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수 노사연 집사 초청집회가 막 올랐다. 집회는 저녁 5시에 시작하는데, 교회에는 아침부터 몰려든 주민들로 바글바글했다.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사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맛있는 밥도 차려주고, 이미용팀은 예쁘게 파마도 해줬다. 수기팀과 이재성 집사(한의사)의 한방진료도 인기 만점이었다. 전도팀은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저녁 5시. 집회장소가 된 마을입구 공터는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구원열차’를 주제로 진행된 천국잔치를 축하하고자 사천시장을 비롯해서 시의원, 면장, 부면장 등 지역 유지들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드디어! 하루 종일 기다리던 가수 노사연 집사가 무대에 등장했다. 마을이 떠나가라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제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엄마가 생각나서입니다. 여러분들을 보니까 엄마가 생각나네요. 엄마가 사랑했던 찬송 ‘내일 일은 난 몰라요’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걸 믿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노사연 집사의 찬양은 예수를 모르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던 사천 주민들을 위한 애절한 기원(祈願)이었다. 신동식 목사(서빙고 농어촌선교팀)도 주민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이라며 운을 띄운 신 목사는 밀양 어느 시장통에서 국밥장사를 하셨던 할머니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국밥장사를 하시던 할머니가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좋아했던 할머니한테 꼭 해드리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을 여러분께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으십시오. 사촌교회로 오십시오. 사촌교회가 이 마을과 여러분을 구원하는 구원열차입니다. 거기에 타면 여러분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속는 셈 치고 사촌교회에 꼭 한번 나와 주세요!” 애타게 부르짖는 신동식 목사의 호소에 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다. 다음날 주일예배에 새신자 16명이 교회에 왔다. 7명은 그 자리에서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세례를 받았다.   장명자 권사(노원공동체)는 “정신없이 준비했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주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했고, 이성미 집사(농어촌선교팀)는 “이번 아웃리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 그 자체였다”고 고백했다.  이종민 목사가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농어촌교회는 우리 마음의 고향과 같습니다. 고향 같은 농어촌교회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농어촌교회가 굶주리고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십시오.” 문의: 02-3215-3434, 3436   <사천교회에서 온 편지>   “영원히 서로의 꽃이 되어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초스피드 5G시대와 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왠지 걸맞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상대방과 경쟁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이 세상의 모습에 교회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올 여름, 서빙고 온누리교회 농어촌선교팀 아웃리치가 제가 섬기고 있는 경남 사천 사촌교회에서 3일 동안 열렸습니다. 이번 아웃리치가 열리게 된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였다는 말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사역이 제 인생에서 과연 몇 번이나 찾아올까요? 여러분과 같은 분들을 제 인생에서 과연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분명 하나님의 천사들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여러분들이 보고 싶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제 앞에 그려집니다. 서빙고 온누리교회 농어촌선교팀이 사촌교회에 오셔서 이 못난 목사를 만나 참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가 너무나 간절했기에 모든 힘을 쏟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분들을 힘들게 했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신동식 목사님을 비롯해서 이영근 장로님, 박진호 팀장님, 총무님과 여러 임원들 및 팀원들, 한방진료 이재성 집사님, 주방팀의 여러 권사님들, 얼굴에 페인트 묻혀가며 높은 종탑에서 붓질했던 여러분들, 더운 날씨에 마을을 누볐던 전도팀과 주민들의 머리카락을 예쁘게 잘라주고 말아준 이미용팀 등 모두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진 이 빚을 갚는 방법은 제가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전해질 사촌교회의 소식은 분명 변화된 모습이리라 믿습니다.  사람들은 화사하게 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꽃이 지고나면 그 아름다움을 잊어버립니다. 저는 시간이 지나고 꽃잎이 떨어져도 잊지 않겠습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 마지막 꽃잎이 떨어지는 날이 온다 해도 사촌교회를 위해 수고하신 여러분들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영원히 서로의 꽃이 되어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종민 목사(사촌교회) 

 2019-08-18      제12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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