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가 멘티에게] 무너질 것인가? 발견할 것인가? 멘토가 멘티에게 무너질 것인가? 발견할 것인가? “오랜 시간 이어지는 시련과 고난에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이 듭니다. 더는 이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집트 룩소르에서 온누리신문 <멘토가 멘티에게> 코너 원고를 부탁받았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이집트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졌다. 이집트 나일강은 비 한 방울 오지 않아도 매년 정기적으로 범람한다. 나일강 상류인 에티오피아 수단 고원에 매년 같은 시기에 폭우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람기가 끝나고 물이 빠지면, 땅을 깊게 갈거나 거름을 주지 않더라도 씨를 뿌리기만 하면 풍년이다. 그래서 당시 이집트는 지상 천국처럼 여겨졌다. 이집트는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서 간 곳,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 간 곳, 야곱과 아들들이 기근 때문에 간 곳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야곱의 후손들은 기근이 끝난 후에도 이집트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몇백 년이 지나 왕조가 바뀌자 히브리인들은 노예가 되어야 했다. 부족함 없는 현재가 영원할 것 같았는데 상황이 바뀌면서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있었던 히브리인들은 그제야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친절하게도 모세를 준비시켜 놓으셨다. 모세는 파라오의 궁정에서 자라 지적 능력과 리더십이 있었지만, 혈기를 다스릴 줄 몰랐다.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내몰아 자신을 낮추게 하셨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어져 “제가 도대체 누구라고 바로에게 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히브리인들을 탈출시켰다. 그들은 이집트를 벗어나면 당장이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눈 앞에 펼쳐질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인 것은 메마른 광야와 싸움닭 같은 이방인들이었다. 히브리인들은 항아리에서 물이 쏟아지듯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쏟아 냈고, 그 결과 40년을 광야에서 살아야 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생을 마쳤다. 가나안을 원했지만, 광야에 마음을 빼앗겨 그곳에 갇히고 말았다. 광야는 시련이요, 시련은 광야다. 그러나 시련의 끝에는 가나안이 있다. 중요한 것은 ‘광야와 같은 시련에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할 것인가?’이다. 나는 이집트에서 광야를 보았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가는 길, 룩소르, 후루가다, 카이로를 가는 길이 온통 광야였다. 눈 닿는 데까지 이어지는 모래 언덕과 바위산에 초록색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이 있어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달리던 차를 세워 근처 낮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낙타와 양 떼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몇몇 목동들이 기다란 막대기를 휘두르며 양 떼를 몰았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 황량한 곳에서 양을 먹이겠다며 몰고 다니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들에게 달려가 “풀 한 포기 없는데 양들에게 무엇을 먹이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아침이슬만으로도 자라는 작은 풀이 있으며, 양들은 그것을 먹는다”고 대답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 메마른 곳에 이슬이 내리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데 샘이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곳에 무언가 있다고 했다. 그곳 광야에 무언가 있다. 내 인생이 광야 같다고 생각될 때, 또는 내 삶이 사막처럼 버려졌다고 여겨졌을 때 그곳에 무언가 있다. 작은 풀에 생명이 되는 이슬처럼, 거친 바위를 뚫고 솟아나는 샘처럼 생명이신 하나님이 계신다. 어느 날은 안토니오 수도원을 보기 위해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를 맞이한 검은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는 80이 넘은 연세에도 눈빛이 여전히 형형했으며, 말투에는 여유가 넘쳤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무척 반가워하면서 “남북한이 통일되기를 기도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표정과 말에서 진실과 사랑이 묻어났다. 거칠고 메마른 환경에서도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인품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곳, 세례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쳤던 곳,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곳, 회심한 바울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난 곳 모두 광야였다. 사랑 깊은 수도사처럼 하나님과 일대일 대면할 수 있는 곳이 광야다. 광야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가장 소중한 게 있다. 지금 같은 고민을 하는 그대들에게 광야는 시련이 아니라 축복이기를 바란다. / 임찬웅 멘토(남양주B공동체)
2025-04-12 제1536호
[맛있는 말씀 해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맛있는 말씀 해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 면접을 앞두고 이 말씀을 붙든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투자설명서를 내밀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마라톤 출발선이나 운동경기에서 유니폼에 이 말씀을 새기기도 하고,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의 수능시험이나 유학 준비를 앞두고 이 구절을 붙들고 기도한다. 이 모든 장면은 한 가지 공통된 인식을 보여준다. <빌립보서> 4장 13절이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성공’과 ‘자기 성취’를 위한 응원 구절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은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는 아름다운 고백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모든 일에서 성공하게 해주신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식의 긍정적 사고방식이나 ‘성공 신앙’의 근거로 사용되기엔, 이 말씀의 본래 의미는 훨씬 더 깊고 오히려 정반대의 맥락에 서 있다. 본문을 담고 있는 빌립보서 4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은 지금 어떤 외적인 성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결핍과 어려움 속에서도 자족하는 삶의 태도를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11절에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말하며, 풍요나 궁핍, 배부름이나 배고픔에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안을 말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 4:11) 그러고 바로 이어지는 고백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은 ‘원하는 바를 다 이룬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바울은 단지 ‘불편한 상황’을 이겨냈던 것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을 보면 그는 매를 맞고, 돌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바다에 빠지고, 굶주리고, 헐벗고, 강도와 동족 및 거짓 형제의 위험에 시달리며, 죽을 뻔한 일을 여러 번 겪는다. <빌립보서>를 쓸 당시에도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편지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 말은, 내가 원하는 일을 모두 이룰 수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주어진 삶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고백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영웅적 성공이 아니라, 고통과 결핍, 실패의 현장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신앙의 외침인 것이다. 본문의 중심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있지 않다. 핵심은 ‘능력 주시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바울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약함 속에서도 주시는 은혜의 힘을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 말은 바로 그 능력 주시는 주님으로 인해, 오늘의 괴로움도, 내일의 불확실함도 감당해낼 수 있다는 깊은 신앙의 고백이다. 우리 역시 본문을 ‘성공의 보증서’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시련과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능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외울 때 그 고백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해주소서”라는 주문이 아니라 “주님, 어떤 상황이든 제가 믿음으로 살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는 고백이어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이야말로 ‘무엇이든 이룬다’가 아니라, ‘무엇이든 감당하게 하신다’는 복음의 능력인 것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바울의 이 고백이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우울하거나 절망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 / 오은규 목사(성동광진공동체)
2025-06-21 제1545호
[임직소감[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청지기 되겠습니다!" 2024 명예권사, 권사, 안수집사 임직 소감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청지기 되겠습니다!” 명예권사 6명, 권사 143명, 안수집사 504명 임직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청지기 653명이 세워졌다. 지난 11월 30일(토) 오후 4시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2024 권사·안수집사 임직예배’를 드렸다. 이날 권사 149명(명예권사 6명, 권사 143명), 안수집사 504명(남 170명, 여 334명)이 임직됐다. 엄정숙 명예권사(양천공동체), 나미경 권사(신용산공동체), 이승우 집사(송파B공동체), 배윤숙 집사(인천온누리교회)가 임직 소감을 보내왔다. / 편집자 주 명예권사 ‘명예권사’라는 새 이름 선교사 자녀들(MK, Missionary Kids)은 얼굴은 한국인이지만 그들의 문화는 선교지와 똑같아서 우리는 그들을 ‘초록 아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노랑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닌 초록색입니다. 그들은 청소년 시절 정체성 혼란을 크게 겪습니다. 저는 약 17년 동안 MK들의 왕엄마 사역을 마치고 2017년 선교사 은퇴를 했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4년 동안 선교 본부(GPTI)에서 간사로 자원봉사를 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내려놓았습니다. 선교 비전이 분명한 온누리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은 여전한데도 점차 속도가 느려지고, 나의 소속감과 정체성, 사명감이 점점 흐려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예배에도 나가고, 여러 성경 공부에도 참석해봤지만, 내가 초록 아이가 된 것처럼 낯선 상황이 늘 혼란스럽고 불편했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는 다양한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데,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데서 저 스스로 한정하고, 자신 없어 머뭇거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일대일제자양육을 해보겠냐는 전화를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동반자와 양육과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답니다. 계속 일대일제자양육을 하면서 이제는 온누리교회의 한 지체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섬김의 자리가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습니다. 무슨 섬김을 할 수 있을지 기도로 아뢰고 있을 즈음 명예권사 제도가 있음을 알고 신청했습니다. 제가 명예권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과업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하겠으나 온누리교회 명예권사로서의 정체성과 소속감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섬길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하니까 저절로 새 힘과 용기가 났습니다. 인생의 경주에서 바통(baton)을 새로 받고 앞을 향해 달려가려는 선수가 되어 마음을 정비하고, 임직 안수를 받을 때 성령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능력을 덧입혀주셔서 잘 달려갈 열정을 회복했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이제 선교사 호칭이 사라지고 온누리교회 ‘명예권사’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겸손과 사랑으로 공동체를 화목하게 세워가라”는 권면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온누리교회 명예권사로서 책무 수행에 힘쓸 것을 다짐합니다. / 엄정숙 권사(양천공동체) 권사 추수할 일꾼 서원! 2006년 안수집사 임직을 받고,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지냈습니다. 주위 분들이 임직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도전이 됐지만, 저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동체 리더십에게 여러 차례 권사 직분을 받으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직 부족하다며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말씀을 묵상하는데 “너는 언제까지 섬김을 받는 자로 있으려고 하느냐”는 울림이 있었고, 떨리는 심정으로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임직대상자 교육에 참여하면서 권사 직분이 나의 자랑과 명예가 되지 않고, 더 낮은 자리에서 주위를 돌아보며 섬길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에도 불구하고 임직스쿨 계획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필수 과제와 봉사 시간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과연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과제 중에 가장 부담이 큰 새벽기도회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기상 시간이 힘들고 피곤했지만,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서 말씀으로 은혜받고, 오랜 시간 마음을 짓누르던 자녀에 대한 기도제목이 응답받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새벽기도회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큐티는 또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조원들과 나누고 삶에 적용하며 풍성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날마다 큐티와 성경통독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임직스쿨에서 건강한 영성과 리더, 행복한 가정, 전도 등을 배우면서 교회와 가정,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특히 온누리교회의 비전과 5가지 영성을 배우면서 말씀 공동체와 성령 공동체를 통해 받은 은혜를 선교와 사회참여로 실천해야 한다는 임직자의 책임과 사명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교회 봉사도 많은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러빙핸드와 주차봉사, 성찬 섬김 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하는 지체들을 보면서 하나님 안에서 협력해 선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됐습니다.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숙제하듯이 빨리 하나씩 해치우려고만 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웠음을 고백합니다. 교육과 봉사를 통해 주신 새로운 비전은 제가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훈련과정을 함께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아직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주신 직분 기쁨으로 잘 감당하겠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추수할 들판으로 일꾼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라”(마 9:37). 이 말씀 마음에 새기고 추수할 일꾼으로 쓰임 받기를 서원합니다. / 나미경 권사(신용산공동체) 여자 안수집사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되게 안수집사 임직을 권유받았을 때 고민이 되었지만,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임직받아야만 할 수 있는 봉사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정말 섬기고 싶은데 임직받지 못해서 섬길 수 없다면 매우 안타까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지난해 제 몸이 많이 안 좋았는데, 그나마 임직 과정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을 때 감사함으로 순종해야겠다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믿음 상태로는 나는 정말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믿음의 성숙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임직을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가 아닌데 형식적으로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고, ‘지금 하는 섬김으로도 벅찬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재훈 위임목사님의 책 <나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를 읽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봉사와 헌신의 영역이 있다면 절대 하지 마십시오.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헌신은 억울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이 제 마음을 때렸습니다.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하는 이유는 소중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결코, 나의 성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결코, 잃어버려질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간직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라는 말씀도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이후 모든 일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었고, 교회 각 처소에서 보이지 않게 섬기는 분들의 헌신과 노력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많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각자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마음으로만 짧게 하고 넘기던 큐티에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적용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삶의 변화와 성숙을 이루는 경험을 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제 입술에서 떠나게 하셨고, 하나님 안에서 감사와 평안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0주 동안 이어진 임직스쿨은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서빙고온누리교회에서 믿음의 싹을 틔웠고, 양재온누리교회에서 자랐으며, 지금은 인천온누리교회에서 열매 맺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성장했기에 이 좋은 교육을 당연하게 누리기만 한 것 같은데 이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임직 과정에서 온누리교회의 살아있는 비전과 목표를 다시 한번 바라봤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건강한 영성을 키우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교회의 부르심에 온 마음으로 순종하고, 각자의 일터에서 하나님께 하듯 신실하게 섬기며, 더 나아가 세계를 품고 땅끝까지 전도에 힘쓰는 온누리교회 성도로서의 사명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습니다. 온누리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며 달려가는 여러 사역에 한마음으로 동참하고, 일꾼으로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고, 온누리교회 비전이 우리의 비전이 되며, 각 공동체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는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되게 섬기기를 소망합니다. / 배윤숙 집사(인천온누리교회) 남자 안수집사 대적자에서 예수의 제자로! 저는 하나님의 대적자였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무례했고, ‘내가 왜 죄인이냐?’며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나이가 많았던 대학원 입학 동기 형은 저를 처음 볼 때부터 예수님 이야기를 하며 전도했습니다. 넉살 좋고 성격 좋은 형이었는데, 그 형마저 결국 포기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타로 나간 미팅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와 교제하며 저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고난이 밀려와 위로하고 싶었는데 위로가 되지 않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아내에게 아무것도 아닌 저를 보며 교만했던 저는 좌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궁금해졌습니다. 우연히 故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제 발로 교회에 갔습니다. 그때 대학원 동기 형은 있을 수 없는 일어났다는 듯 저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오랜 시간 하나님과 등지고 살았던 저에게 성경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경통독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믿고 싶어하는 저를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나눴더니 믿음의 선배들이 놀라며 “말씀을 부어 주신다”는 이야기 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에게 던지신 “네가 낫고 싶으냐?”는 예수님의 말씀이 “네가 믿고 싶으냐?”로 들렸고, “그게 믿음”이라며 예수님이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적자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됐습니다. 극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됐지만, 신앙의 성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경험합니다. 처음 소속된 순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변하지 않는 숨겨진 모습과 죄를 하나님께서 오래 다루셨습니다. 50년 가까이 안고 살았던 상처도 발견하며 치유됨을 순예배에서 경험했니다. 불의한 자를 막으려 싸우면서 분노로 힘든 나날을 보낸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 목사님, 방장님과 대화하면서 그 짐을 벗어 던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 한 몸을 이루는 지체 공동체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대적자였던 제가 온누리교회에서 안수집사 직분을 받았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정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대적자로 살지 않게 저를 건져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공동체를 통해 저를 돌보시는 세심함도 경험했습니다. 저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죄인을 위해 아들을 내어줘야 한다면 저는 목숨을 걸고 싸우며 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제 그 사랑 앞에 서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오후 5시 50분에 들어온 품꾼입니다. 사랑이신 포도원 주인을 위해 오후 6시까지 감사하며 섬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 이승우 집사(송파B공동체)
2024-12-07 제1519호
맛있는 말씀해설 “...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왕하 20:19). 맛있는 말씀해설 “...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왕하 20:19).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궁의 귀한 것을 모두 보여준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왕하 20:17~18). 이 말씀에 대하여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며, 자신이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으니 선하다고 반응한다. 이 반응은 자신만 무사하면 문제없다는 태도처럼 보여 무책임해 보이고,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회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열왕기 말씀은 히스기야 왕이 병에서 회복되어 바벨론의 사신들이 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역대하 말씀을 보면 전후 사정이 더 명백해진다, 바벨론 사신의 방문은 히스기야의 병이 회복된 직후가 아니라 그의 병이 회복되고, 앗수르(앗시리아)의 군대가 물러난 그 다음이다(대하 32:31).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되고 교만해져서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다.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게 되었는데, 히스기야가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생전에는 내리지 않았다(대하 32:24~26). 히스기야가 교만해진 것은 두 번의 기적이 연거푸 일어났기 때문이다. 죽을병으로부터 기적적으로 회복되었고, 막강한 앗수르의 군대를 하나님이 물리쳐주셨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히스기야 왕의 이름이 열방에 높아졌고, 그가 교만해졌다. 열왕기 기자는 많은 내용을 생략하고 히스기야의 병과 바벨론 사신 방문 사건을 바로 연결했다. 역대하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교만이 바벨론 사신의 방문 때 다시 드러났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에게 왕궁의 모든 좋은 것을 보여준 것은 자신을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역대하 기자는 바벨론 방백들의 사신이 왔을 때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 32:31). 히스기야의 교만을 다시 드러내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그는 자신의 교만이 재차 드러났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히스기야는 과거 자신의 교만이 드러났을 때 회개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히스기야 시대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시다. 내 시대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니 선하다”라는 반응은 무책임한 반응이 아니다. 자신의 교만에 대한 또 다른 회개의 고백일 수 있다. 히스기야의 첫 번째 회개 때 하나님의 진노가 그 시대에는 내려오지 않은 은혜를 두 번째 교만을 드러냈을 때도 거두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심판의 예언을 통해 자신의 교만이 두 번째 드러남에도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것이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이 선하시며, 자신의 시대에 태평하므로 선하다”고 한 것은 하나님 은혜에 대한 고백이다. 히스기야의 고백은 미래 시대의 고통을 무시하는 무책임한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기일이 다가오기까지는 오늘도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히스기야가 심판의 말씀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오늘의 은혜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교만을 용서해주시는 그분의 선하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교만과 어리석음과 죄악을 아낌없이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 은혜를 입었다면, 그 은혜를 받기에 너무 형편없는 우리와 대조적인 선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 것처럼,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우리를 값없이 그리고 끝없이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 이은일 장로(성동광진공동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024-09-14 제1508호
[주일강단] 더 큰 일도 보게 될 것이다 주일강단 더 큰 일도 보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45~51 /박종길 목사 예수님은 먼저 소수의 사람들을 택해서 제자로 세우십니다. 부족하고 불충분한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이 그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키우십니다. 제자 삼으시고, 훈련하고 교육해서 하나님 나라 큰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제자로 불러주시고,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시고, 아시고, 부르십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분입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 예언자들도 기록했던 그분을 우리가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시오!’ 나다나엘이 물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빌립이 말했습니다. ‘와서 보시오!’”(45~46절).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우리도 부르십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그분을 쫓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다섯 명의 제자를 부르십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과 나다나엘, 그리고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사도 요한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이 다섯 명을 각기 다른 방법으로 부르십니다. 그들을 만나고, 선택하고, 회심하는 일이 각기 다릅니다. 그 사람에게 맞게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를 때도 각 사람에게 맞게 존중해 주시고 배려해 주십니다. 안드레와 또 한 명은 “무엇을 구하느냐?”라는 질문으로, 베드로는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빌립은 “나를 따르라”는 명령으로 부르십니다. 나다나엘은 그의 편견을 제거하고, 메시아를 확인하는 은혜로운 말씀으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지금 모습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부르십니다. 우리도 현재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미래의 모습으로 부르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부르시는 예수님 오늘 본문 45~46절에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친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간절한 사랑으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분을 소개하고,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이 있습니까? 빌립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 전하는 자리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은 나다나엘의 반응이 굉장히 부정적입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면서 출신 배경으로 그분을 판단합니다. 나다나엘도 갈릴리 출신인데 불구하고 선입견과 출신 배경으로 예수님을 무시합니다. 갈릴리는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열왕기상> 9장을 보면, 다윗왕과 솔로몬에 의해서 성전과 자기 왕궁을 지을 때 많은 백향목과 잔나무, 금 등을 북쪽에 있는 두로왕 히람에게 빌립니다. 솔로몬 때 히람왕이 공사 대금을 요구합니다. 그때 솔로몬이 뜬금없이 갈릴리에 있는 20개 성읍을 떼어서 그 값을 치르게 합니다. 갈릴리가 하루아침에 이방 나라에 속하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두로왕 히람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볼품없고 쓸모없다는 뜻으로 ‘가불’이라고 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행하고 수치스러운 사건입니다. 언제든지 뚝 떼어서 다른 나라에 줄 수 있는 대접을 받았고, 이스라엘에서도 그렇게 취급했던 곳이 갈릴리입니다.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예수님을 소개받았을 때 “나사렛에서 선한 게 나겠냐?”며 무시합니다. 세상은 출신을 따지기도 하고, 집안이나 학벌, 직업이나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제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직업이나 배경, 지역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는 어부도 있었고, 가난한 갈릴리 출신도 있었습니다. 세리도 있었고, 열혈당에 있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부르십니다. 빌립이 배타적이고 편협적인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시오”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판단하지 않거나 제한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부르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아시는 예수님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참 이스라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는 거짓된 것이 없다.’ 나다나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보았다’”(47~48절). 나다나엘은 갈릴리 가나 출신입니다. 나다나엘을 보고 예수님이 “여기 참 이스라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는 거짓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놀라서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이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표현을 랍비들의 문학에서는 ‘그가 율법을 묵상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문화에서 어떤 사람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것은 그가 기도하고, 명상하고, 말씀을 묵상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영적인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찾고, 교제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화과나무 아래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묵상하고, 찾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영적 무화과나무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영적인 사람인 것, 간사함이 없는 사람인 것을 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 숨을 곳이 없습니다. 결국, 빌립에게 핀잔주었던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대답했습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49절).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아셨습니다. 우리도 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아픔과 고민,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도와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부르시고 아시기 때문에 참 생명의 길,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를 보시는 분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던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제 그보다 더 큰일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50~51절). 예수님이 야곱의 사닥다리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묵상했던 내용을 아시는 것 같습니다. 나다나엘이 참 이스라엘 사람이고, 이스라엘 사람이었던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서 더 큰 일도 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은 축복임을 약속하십니다. 나다나엘의 까칠한 성격, 편협한 기질을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의 겉모습, 말투, 성격, 부족한 과거를 문제 삼지 않으시고 미래의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현재의 나다나엘을 보시는 게 아니라 미래의 나다나엘을 보십니다. 실수나 연약함 가운데 우리를 두지 않으시고 더 나은 자리, 더 성숙한 자리, 더 건강한 자리로 인도하시면서 “삶 속에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변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과거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지금 모습으로 우리를 제한하지 않으시고 “더 큰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변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을 같이 지내도 변하지 않고, 심지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이 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아시고, 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불러주십니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님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야곱의 사닥다리, <창세기> 28장을 새롭게 해석해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했던 야곱이 보았던 사닥다리 꿈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해 가다가 한 장소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됐습니다. 야곱은 거기에 있던 돌을 가져다가 머리에 베고 누워 잤습니다. 그가 꿈에 보니 사닥다리 하나가 땅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창 28:10~12). 야곱의 사닥다리가 이제 예수님의 사닥다리가 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 율법 혈통을 상징한다면, 예수님은 온 세상의 복음과 은혜를 상징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새로운 벧엘, 즉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를 보여줍니다. 야곱이 보았던 그 사닥다리가 예수님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사닥다리이고, 중보자입니다. 이 땅에 많은 길이 있지만, 천국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이 묵상했던 야곱의 새 사닥다리가 바로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다나엘과 예수님의 만남에서 세 가지 교훈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율법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사닥다리로 옮겨졌습니다. 둘째, 나다나엘의 삶이 자기중심적이었다면, 이제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십자가와 구원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셋째, 묵상과 명상의 자리에서 삶의 역동적인 축복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지역적이고, 폐쇄적이고, 편협했던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통해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세계 선교를 위해 쓰임 받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제자 삼으십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19~20).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온 세상에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제자’라는 표현이 269번이나 사용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세 번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방인들과 유대인을 분리 구별하기 위한 표현에 사용됩니다. 예수님이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셔서 제자 삼으신 것처럼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수없이 많은 실수를 저지르는 우리를 믿어주시고, 부르시고, 아시고, 보시는 분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우리를 제자로 불러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냉담하게 절망하고 좌절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부르시고, 아시고, 보시는 예수님과 함께 선교의 사명을 담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제 그보다 더 큰 일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아시고, 보시며, 제자로 초청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을 약속하시는 예수님 말씀을 붙잡고 그분과 동행하며 승리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07-12 제1548호
[주일강단] 그가 속히 오시리라 그가 속히 오시리라 <요한계시록> 22:12~21 /이재훈 위임목사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도 무엇인가 마음에서 빠져있거나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마련입니다. 지구상에서 자연환경이 가장 좋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다고 합니다만, 그 이면에 많은 우울증 환자가 있고, 자살률이 높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북유럽을 예로들 수 있습니다. 북유럽은 해마다 UN에서 발표하는 행복지수가 거의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우울증 환자가 있고, 자살률도 높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환경에 거하는 사람들도 무엇인가 빠져있는 것 같은 갈급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누려야만 했고, 누릴 수 있었던 낙원에 대한 향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었고, 누려야만 했던 낙원에 대한 향수는 이 세상을 아무리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도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최초의 낙원이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에게는 그 향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 개의 나무입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요, 또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금지된 나무입니다. 이 두 나무를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발전시키고 성숙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두 나무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먼저 생명나무는 그 실과를 먹음으로써 육신이 영원히 죽지 않는 상태로 점점 변화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영원히 존재케 하고, 더 높은 수준의 생명력으로 존재하게 하는 특별한 나무를 창조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지정하신 것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금지된 명령을 지키는 반응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킵니다. “먹지 말라”는 말씀 앞에 서면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의지적으로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존재로서 영원히 성장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먹음으로써, 하나는 먹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는 단계에서 죄를 지을 수 없는 단계로,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단계에서 타락할 수 없는 단계로 성숙하고, 영생을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두 나무 사이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먹지 말라”는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만일 생명나무의 실과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상태에서 먹으면 생명력이 악을 향하여 강화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동산에서 쫓아냄으로써 생명나무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차단하신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한 인간은 점점 그 생명이 소멸되는 유한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갈보리 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이루었고,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첫째 아담 안에서 타락해서 죽음에 이르렀던 모든 인류가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어린 양 되신 그분의 죽음으로 인하여 온전한 구원과 회복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의 풍요로운 축복 속에서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세상의 악이 가득한 한복판에서 순종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생명나무 취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는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창세기> 2장에서 인간이 잃어버렸던 낙원이 회복되어 나타납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있었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없는 게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금지되었던 생명나무는 다시 나타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사라진 이유는 시험이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3절에 “저주가 없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저주가 없다는 것은 불순종이 없다는 것이고, 모든 인생의 고통과 불안, 아픔의 원인이 되었던 죄와 불순종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저주가 없는 동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명나무만 존재하는 동산이 나타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온전히 회복된 것이며, 타락 이전의 상태보다 높은 수준으로 변화된 동산을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나타난 동산에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시작되어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동산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해서 이루어진 낙원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서 보좌에 앉으신 분에게 모든 경배가 드려지고, 그분이 그 보좌에서 통치하시며, 심판하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앉으신 보좌가 <계시록>의 중심입니다. 이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는 통치의 보좌이며, 심판의 보좌이며,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보좌입니다. 우리에게 예비된 동산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갈 곳,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원래 있어야 하는 동산을 잃어버렸지만, 다시 그 동산에 가게 될 것입니다. 이 동산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계시록> 22장 14절에서 “생명나무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문들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가려고 자기의 옷을 빠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생명나무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옷을 빨았다’는 것은 희게 되었다, 의의 옷, 그리스도의 옷,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는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긴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로부터 어떤 것이라도 없애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도성에서 그의 몫을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19절). 생명나무를 취하지 못하고, 거룩한 도성에서 쫓겨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생명나무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그 도성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행하는 일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또 다시는 저주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도성에 있고 그의 종들이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계 22:3). 그 이전에는 누구도 하나님 보좌 앞으로 직접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린 양의 보좌 앞에 누구든지 직접 나아가 섬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섬김’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배이고, 또 하나는 활동입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보좌 앞에서 예배할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한 활동이 있습니다. 천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에는 활동이 있습니다. 섬김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일할수록 기쁨이요, 은혜요, 감사요, 찬양입니다. 그 자체가 예배입니다. 천국에서는 예배와 일이 분리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영원한 천상에서의 섬김은 어떠한 상처도 없고, 섬길수록 더 깊은 감사와 생명의 능력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 누리고,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다스린다 둘째,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며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4절). 이전에는 결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과 대면하게 됩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대면했다 할지라도, 아무리 깊이 하나님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다스리게 됩니다. “다시는 밤이 없겠고 그들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므로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통치할 것입니다”(5절). 보좌에 앉으신 분이 이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종들과 함께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종으로 쓰는 것에서 만족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과 함께 통치하는 데까지 참여시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통치에 참여합니다. 이 동산에서는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전혀 충돌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와 인간의 자유가 조화를 이루는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동산을 요한이 보고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동산을 보여준 천사에게 경배를 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그렇게 하지 마라. 나는 너희들과 함께 섬기는 종 된 자이니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야단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자 죄성입니다. 초자연적인 기적과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만 경배해야 하는데, 그 통로가 된 존재를 자꾸 경배하려 합니다. 요한에게는 천사가 그 대상이었습니다. 예배는 오직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속히 다시 오십니다” 마지막 교훈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속히 다시 오실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갈 것이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다’”(7절). “‘보라. 내가 속히 갈 것이다. 내가 줄 상급이 내게 있으니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12절). “이 모든 것을 증언하신 이가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내가 속히 갈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절). 우리 편에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지만, 예수님 편에서는 ‘내가 다시 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속히 오신다고 했습니다. 긴급성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조급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긴급한 것을 깨달으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조급한 삶은 도리어 긴급하고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조급하게 살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에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긴급성을 깨달으려면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고, 주목해야 합니다. 헬라어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어떤 목적이 이루어지는 성취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조급한 인생을 살면 크로노스에 휩쓸려갑니다. 그러나 ‘카이로스(하나님의 시간)’를 바라보는 사람은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우리 인생에 반드시 있어야 될 카이로스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사건입니다. 카이로스가 우리 삶의 목표가 될 때 크로노스에 휩쓸리지 않고, 조급한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지 못하면 반드시 이 시대에 휩쓸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속히 오신다는 긴급성과 함께 또 하나의 긴급성이 있습니다. 다시 오실 신랑을 맞이해야 하는 영혼들을 초청해야 하는 긴급성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오라’고 외치십시오. 목마른 사람은 오십시오.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값없이 받으십시오”(17절). 또 하나의 ‘오라’는 초청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해서는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라는 소망으로 그분의 오심을 바라며 소망하고, 영혼들을 향해서는 “목마른 자들이여 오십시오”라는 초청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바라고,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소망하는 영혼은 반드시 생명수의 근원이 되시며, 우리의 신랑 되신 그분을 맞이해야 할 영혼들을 향해 “주님이 속히 오실 것이니 당신들도 속히 오십시오”라고 초청하는 선교의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과 마지막 동산에 함께 들어가야 할 영혼들을 향한 구원의 초청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요한계시록>에 순종하며 사는 이 시대의 삶입니다. 마지막 때 예수님 다시 오심을 사모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06-28 제1546호
[주일강단] 새 하늘과 새 땅 [주일강단] 새 하늘과 새 땅 <요한계시록> 21:1~8, 22~27 /이재훈 위임목사 흔히 예수님 믿고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이 우리에게 온다’고 합니다. 또한 ‘천국’이라는 단어 대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주신다는 약속으로 귀결됩니다. 성경에서 약속된 미래는 죄로 망가져 있고, 무너져가는 세상에 심판이 있을 것인데, 심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온전히 새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 그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들은 신실하고 참되니 너는 기록하여라.’ 그는 또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시작과 끝이다. 내가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줄 것이다’”(5~6절).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이 죄로 말미암아 깨어지고 혼돈 가운데 있었지만, 이제 심판과 구원을 통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목적을 이루신다는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을 때 마지막 종말에 이루어질 “다 이루었다”는 선언을 미리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만물이 새롭게 되는 역사가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계시록>에서 “다 이루었다”는 선포가 확실하게 성취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두 세대가 중복되는 현재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의 때를 확대해 보면 두 세대가 중복되는 현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부활 승천하셨고,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시는 그 기간에 이미 옛 시대는 끝나고 새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 가운데 옛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재림의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만물이 새롭게 될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종말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안에 형성되는 종말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완성되는 종말,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는 종말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두 시대가 중복되는 이 기간은 긴장의 기간이요, 고난의 기간이요, 싸움의 기간입니다. 이미 다 이루셨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기간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기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존재로서 마지막 날에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아야 할 기간입니다. 또 두 시대가 중복되는 기간은 선교의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선교가 완결될 때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옛 시대의 세상 속에 살지만 새 시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영원에 속한 사람으로서 옛 시대에 묶여있는 영혼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도록 헌신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어느 날 두 시대의 중복이 끝날 것입니다. 옛 시대에 속한 모든 것이 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넘어가지 못한 모든 것은 무서운 죽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회복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일은 기억나지 않을 것이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기뻐하고 영원히 즐거워하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의 성읍으로 창조하고 그 백성을 즐거움의 백성으로 만들겠다’”(사 65:17~18).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을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고, 이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 변화를 설명하는데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회복입니다. “그리고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더 이상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나 우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이다. 이는 처음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3~4절).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할 것이며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7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우리 하나님이시며, 나는 그의 백성인가? 우리는 그분의 백성들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백성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있는 이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끊어져야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서 21장 7절에서 ‘이기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겼다는 것은 회개했다는 의미입니다. 악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이들은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나라 도시의 회복 둘째, 하나님 나라 도시의 회복입니다. “또 나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자기 남편을 위해 화장한 신부처럼 준비돼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2절). “그러고 나서 천사는 성령으로 나를 이끌어 크고 높은 산으로 데려가 거룩한 도성, 곧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 도성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이 빛은 수정처럼 빛나는 벽옥과 같았습니다”(10~11절). 거룩한 도성, 도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조하셨는데, 마지막에는 인류에게 새 예루살렘 도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도시에 모여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를 만들었지만, 하나님이 도시를 구속하셔서 낙원의 축복을 회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로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도시이자 동시에 낙원이며, 성전입니다. 이제 큰 도성 바벨론은 멸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해 주신 도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공간의 회복, 영토의 회복, 도시의 회복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시, 새 예루살렘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타락한 음녀이지만, 새 예루살렘은 순결한 신부입니다. 바벨론은 마귀들이 드나드는 장소이지만,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바벨론의 화려함은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데서 나왔지만,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애통과 신음과 슬픔으로 가득 찼지만, 새 예루살렘은 기쁨과 빛으로 충만합니다. 바벨론은 세상 나라들을 타락시켰지만, 새 예루살렘은 나라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화해시킵니다. 새 예루살렘의 길이와 폭, 높이가 1만2천스타디온이라고 합니다.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2천2백km인데, 당시 로마 전체 영토와 얼추 비슷한 크기라고 합니다. 새 예루살렘을 사각형으로 묘사한 것은 고대 사람들이 완벽한 도시를 상상할 때 사각형으로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완벽한 도시입니다. 하나님이 더 좋은 도시, 더 축복된 도시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임재와 통치의 회복 셋째, 하나님 나라 임재와 통치의 회복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도성 안에 성전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도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필요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도성을 비추며 어린양께서 도성의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22~23절). “그들이 나라들의 영광과 존귀를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돼 있는 사람들 외에 모든 속된 것과 가증한 것과 거짓을 행하는 사람은 도성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26~27절).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장 이전에는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하늘로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고, 하늘에서 말씀하시고, 천사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21장 이전에는 보좌에 앉으신 분은 하늘에만 계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땅에 계시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보좌에 계신 분이 하늘에 계시지만, 이 땅에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예배자들 그리고 핍박받는 교회에 숨어계시듯 임재하셨습니다. 그런데 21장에 들어와서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통치가 땅으로 내려오심으로써 그분의 통치가 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하늘과 땅의 간격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21장 초반부에 “장막이 함께 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 의미가 아닙니다, 하늘의 하나님 보좌 통치가 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는 통치의 회복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입니다. 그로 인해서 옛 시대에 이 세상에 존재했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혼돈과 악을 상징하는 바다가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슬픔과 눈물이 없습니다. 애통이 없습니다. 거짓과 부정과 우상숭배하는 이들이 없습니다.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곧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과 다른 발광체와 빛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도성을 비추고, 어린 양이 도성의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없기 때문입니다. 닫힌 문이 없고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곳에는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모든 악의 세력이 완전히 사라지기에 죽음이 없고, 슬픔이 없고, 눈물이 없고, 거짓이 없고, 부정이 없고, 어둠도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세워집니다. 우리도 육신의 몸을 입을 때와 다른 차원이 됩니다. 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옛 시대에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가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었지만, 만물이 새롭게 됨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합니다. 하나님이 새 창조를 이루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어린 양의 문화가 짐승의 문화를 대신하고, 생명의 문화가 죽음의 문화를 대신하고, 평화의 문화가 불안과 두려움의 문화를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 되고,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회복되고, 그분의 도성이 회복되고, 그분의 통치가 온전히 회복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끊어내며 끝까지 죄 가운데 있는 이들을 심판하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십니다. 여러분,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말씀하는 책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마지막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종말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종말을 알고, 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세상 가운데 담대합니다. 휩쓸리지 않습니다. 이기는 자로 끝까지 승리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06-21 제1545호
[주일강단] 천년왕국과 흰보좌 심판 천년왕국과 흰보좌 심판 <요한계시록> 20:1~15 /이재훈 위임목사 <요한계시록> 19장에서는 마지막 날 우리가 만날 주님의 모습을 두 가지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첫째, ‘신랑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어린 양의 결혼잔치에 신랑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우리는 신부로서 만나야 합니다. 신부의 책임은 거룩하고 정결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랑을 기쁨으로 맞이하도록 순결한 옷을 입고, 의로운 행실로 자신을 단장해야 합니다. 둘째, 싸우는 전사로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악과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흰말을 타고 오시는 분으로 묘사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장군이 승리하면 흰말을 타고 나타났기에 ‘흰말을 타고 오시는 분’은 전쟁에서 승리하신 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신랑과 전쟁에서 싸우는 전사는 전혀 다른 성격입니다. 이는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라 보완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두 가지 측면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신랑과의 친밀한 연합 그리고 기쁨과 축복의 자유 측면이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과 싸워야 하는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랑을 신부가 만나는 친밀함의 기쁨과 악과 싸워 승리하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곧 구원입니다. 날마다 신랑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기쁨과 기대와 소망을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림으로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를 따라 승리하는 구원받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 함께 군사로 참여하는 모습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악과 싸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악으로부터 건져내시기 위해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싸우는 군대 장관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구약에 많은 전쟁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용과 짐승들과 싸우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흰말을 타신 그리스도의 승리 <요한계시록> 19장 후반부에 흰말을 타신 그리스도의 세 가지 이름이 나타납니다. 첫째, ‘충성과 진실’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셋째, ‘왕의 왕, 주의 주’입니다. “그는 옥에서 나와 땅의 사방에 있는 나라들, 곧 곡과 마곡을 현혹해 전쟁을 위해 그들을 집결시킬 것입니다. 그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알과 같을 것입니다”(8절). 모든 용의 세력, 사단의 세력을 집결시킴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려 하나 마지막 전쟁에서 흰말을 타신 그리스도의 예리한 칼과 쇠지팡이로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십니다. 여러 번 전쟁이 반복되고, 16장에 나오는 마지막 심판이 19장과 20장에서 반복되며, 점진적으로 구체화되는 표현 방법을 주목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이를 ‘점진적 반복’이라고 합니다. 앞서 주어진 내용을 요약하고, 또 다시 설명하는 방법으로 각도를 조금씩 달리하면서 동일한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연대순으로 여러 사건을 맞춰놓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여러 경고성 심판이 있지만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백성들에게는 곧 구원의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되어 있다는 진리의 말씀을 여러 이미지와 환상, 표현들을 통해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굳이 시점을 따지자면, <요한계시록> 12장에 나타난 사건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한 여인이 잉태해서 해산할 때가 됐는데 큰 붉은 용이 나타나 아이를 삼키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이려는 용의 공격입니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미가엘과 천사들이 용과 용의 사자들과 싸워 하늘에서 용을 쫓아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때 이미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난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 이미 사단은 결박되었습니다.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단은 이 땅에서 활동하지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과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요한계시록> 20장은 마지막 심판과 사단과의 싸움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줍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천년’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을 네 부분으로 나눠 살펴보면, 20장 1~3절에서는 한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사슬로 사단 마귀 곧 옛 뱀을 천년 동안 묶어놓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풀려나는데 4~6절에서는 순교자들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통치한다고 말씀합니다. 7~10절에서는 천년이 다 차면 사단이 결박에서 풀려나 전쟁을 위해 세력을 집결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불타는 유황못으로 던지심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11~15절에서는 희고 큰 보좌 앞에서 생명책에 근거해 모든 이들을 심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천년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사건들을 표현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천년을 문자적으로 실제 기간이라고 해석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재림했다는 것입니다. 19장에서 예수님이 재림하셨기에 20장이 예수님 재림 이후 천년이 되는 것입니다. 20장과 21장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재림해도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시작되지 않고 천년이라는 기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재림 이후 천년이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천년설’이라고 합니다. ‘천년전에 재림’ 혹은 ‘재림 후에 천년’이라고 정리하면 됩니다. 천년 동안 통치가 이루어지고, 천년 후에 진정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것입니다. 한 번에 재림을 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천년 왕국의 시간이 지난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한국교회 선배님들도 많이 받아들였고, 서구권의 많은 성도도 이 관점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종말을 가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해석이 어느 하나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조금 더 균형 있는 해석인지를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또 하나는 천년이라는 기간이 문자적으로 실제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천년의 시점이 재림 후가 아니라 재림 전에 있을 거라는 해석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데, 재림 전에 천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후천년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 천년의 기간에 매우 중요한 영적 부흥이 일어날 거라고 설명합니다. 영향력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주장하는 분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천년이라는 숫자가 왜 문자적인 숫자일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앞에 나오는 14만 4천이라는 숫자, 또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숫자가 문자적인 숫자라고 볼 수 없는데, 이것만 문자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칼뱅이나 루터, 초대교회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학자들은 문자적인 천년이 아니라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와 다시 오실 때 기간, 그 세대가 곧 천년이라고 했습니다. 최후의 심판을 이미 <계시록> 15장에서 말씀했는데도 16장, 19장, 20장에 계속 나옵니다. <계시록>이 연대순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도 연대적인 순서대로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의 처음 오심과 다시 오심 사이에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를 ‘무천년설’이라고 하는데, 저는 ‘현천년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현재가 곧 천년이라는 것입니다. 20장에 나오는데 천년이라는 기간에 사단이 무저갱에 묶인다는게 중요합니다. 천년이 문자적이냐 상징적이냐는 것보다 중요한 게 일정 기간 사단이 묶여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만국을 현혹하지 못한다 “그는 용, 곧 마귀이며 사탄인 옛 뱀을 붙잡아 1,000년 동안 묶어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봉인해 1,000년이 차기까지 다시는 만국을 현혹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일 후에 그는 잠시 동안 풀려나야 할 것입니다”(2~3절). 사단을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봉인해 천년 동안 만국을 다시는 현혹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천년 혹은 현천년설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와 재림,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사단이 결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말씀 해석의 키는 ‘다시는 만국을 현혹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전체 활동이 결박된 게 아니라 만국을 현혹하는 활동이 결박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만국을 현혹하는 활동을 했지만,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다시 오실 때까지는 사단의 영향력이 매우 축소되는 상대적 결박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간 사단이 일부 활동을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건드리지 못하는 절대적 결박이 된 것입니다. 천년 동안 결박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만국을 현혹하는 데 있어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과 다르게 제한됐다는 것이고, 완전히 결박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완전히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기점으로 사단은 더는 만국을 현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관련해서는 절대적으로 결박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백성들의 구원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이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핍박과 박해는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서 성도들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사단이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도록 절대적으로 결박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부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만국을 현혹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기간이 천년 동안의 결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인 통치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되고 거룩합니다. 이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아무 권세도 갖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돼 그와 함께 1,000년 동안 통치할 것입니다”(6절).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가 왕노릇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승리 이후 주의 재림 사이 천년 동안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통치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인 통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 왕으로서 세상을 통치한다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중보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심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우리가 영향력을 미치는 중보적인 통치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통치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다스림의 통치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을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삼중의 과정이 구성됩니다. 20장 1~3절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 곧 세상에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중간 상태가 있습니다. 이 중간 상태는 하늘의 왕노릇하는 것입니다(계 20:4~6). 세 번째는 영원히 우리가 낙원에서 왕노릇하는 것입니다(계 21:1~8, 9; 22:5).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권세를 가진 자로 살아야 합니다. 공의로운 심판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우리는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마지막 날이 임할 때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회개하도록, 그리스도와 함께 중보적인 통치자가 되어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심판이 아닙니다. 창조입니다. 20장에서 흰보좌에 앉으신 분이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이지만, 21장에서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은 세상은 결코 그 상태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06-14 제1544호
[News] 한국 교회여, 여호와께 돌아가자! 한국 교회여, 여호와께 돌아가자! ‘714연합기도대성회’ 7월 14일 오후 2시 한양대학교 올림픽체육관 한국 교회 200개, 선교 단체 26개, 목회자, 선교사, 성도 등 1만 명 참석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으로 다시 나아간다. ‘714연합기도대성회’가 ‘여호와께 돌아가자’(호 6:1)를 주제로 7월 14일(월)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올림픽체육관에서 막 오른다. 한국 교회 200개, 선교 단체 26개, 목회자, 선교사, 성도 등 1만 명이 참석한다. 714기도대성회는 세 개 세션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세션(오후 2시)에서는 이인호 목사(더사랑의교회), 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환영 인사와 비전 소개, 안광복 목사(청주상당교회) 설교가 이어진다. 정명호 목사(혜성교회)와 김용석 목사(서울반석교회)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찬양은 청주상당교회 찬양팀이 인도한다. 두 번째 세션(오후 4시 15분)에서는 이인호 목사가 714 기도 비전을 소개하고, 유기성 목사(위드지저스미니스트리)가 말씀을 전한다. 박성수 목사(부산온누리교회)와 이건호 목사(순복음대구교회)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찬양은 선한목자교회 찬양팀이 한다. 세 번째 세션(오후 6시 50분)에서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제4차 로잔대회 및 714연합기도대성회를 소개하고, 최병락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가 말씀을 전한다. 문대원 목사(대구동신교회), 이신사 목사(남군산교회), 이해영 목사(성민교회), 이인호 목사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찬양은 강남중앙침례교회 찬양팀이 한다. 714연합기도대성회 참가신청은 하단 QR코드로 하면 된다. 온누리교회 성도 1천 명을 모집한다. 타 교회 성도는 714연합기도운동본부 홈페이지(714praymov.org)에서 신청하면 된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성도는 사전에 문의(02-868-8425)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안내 봉사자가 배정 좌석을 안내한다. 이번 행사는 714연합기도운동본부가 주최하고, 한국로잔위원회 후원, 복음과도시, 위드지저스미니스트리, 한국세계선교협의회, M-bridge가 협력한다. / 홍하영 기자 복음과 사랑 품고 열방으로! 여름 아웃리치 국내외 318개 팀 6,368명 참가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복음과 사랑 품고 열방으로 떠난다. 2025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가 본격 시작됐다. 국내외 총 318개 팀 6,368명이 참가한다. 국내 아웃리치는 춘천, 제주, 태안, 광주, 서천, 여수 등지에서 진행된다. 193개 팀 4,340명이 참가한다. 해외 아웃리치는 네팔, 스리랑카, 일본, 튀르키예 등지에서 이어진다. 125개 팀 2,028명이 참가한다(7월 8일 기준).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에서는 어린이 사역, 마을 미화, 교회 보수, 목회자 및 선교사 위로, 마을 전도 등을 한다. 아웃리치 가는 온누리교회 성도들은 반드시 교회에 현황 및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내 아웃리치는 공동체에, 해외 아웃리치는 2000선교에 보고하면 된다. 안전사고와 감염병 예방도 철저히 해야 한다. 한편 미디어본부에서 ‘2025 여름 아웃리치 동영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7월 1일(화)부터 8월 31일(일)까지 여름 아웃리치 영상(릴스, 숏츠 등)을 60~90초 분량으로 제작해 응모하면 된다. 팀당 최대 1편 출품할 수 있다. 영상을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해시태그(#온누리아웃리치2025) 하거나 온누리교회 공식 인스타그램(@onnuri.acts29)에 다이렉트 메시지로 보내면 된다. 이메일(onnurismart@gmail.com)로도 응모할 수 있다. <온누리신문>에서는 여름 아웃리치 사진과 간증 원고를 모집한다.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까지 간증(한글 파일 기준 글자 10포인트로 A4 용지 1장)과 아웃리치 사역 사진 및 간증자 사진을 이메일(hha0@onnuri.org)로 보내면 된다. / 홍하영 기자 차세대 교사 부흥집회 개최 7월 18일 오후 9시 서빙고 본당, 양재 사랑홀 차세대 교사 부흥집회가 ‘기도, 다음세대를 향한 소망의 불씨’를 주제로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11일(금) 1차 집회가 열렸고, 2차 집회는 7월 18일(금) 오후 9시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과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강부호 목사(양재), 노희태 목사(서빙고)가 설교한다. 차세대 학생들이 율동과 콰이어로 섬길 예정이다. 차세대 교사 부흥집회는 교사와 학부모가 교회, 가정, 학교에서의 신앙 양육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는 자리다. 다음세대를 마음에 품은 차세대 교사와 부모, 성도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지난 7월 11일(금)에 열린 1차 집회는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과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열렸다. 박종길 목사(서빙고), 노희태 목사(양재)가 설교했다. 차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교사와 부모, 성도 등이 참석했다. 문의: 02-3215-3523 / 홍하영 기자 <일대일제자양육 성경공부> 개정 4판 출간 <일대일제자양육 성경공부> 개정 4판을 출간했다. 7월부터 일대일제자양육을 시작하는 성도들은 반드시 개정 4판을 사용해야 한다. 이미 양육 중인 성도들은 기존 교재를 사용하면 된다. 일대일제자양육 성경공부 개정 4판에서는 전반적인 언어와 구성, 문장 표현을 다듬고, 보충 설명 등을 추가해 성경적 이해와 실제 적용을 돕는다. 교재 구성과 구체적 실천을 독려할 수 있는 항목들도 추가됐다. 양육자 훈련 권고 내용을 기록하고, 부록도 개편했다. 자세한 사항은 <표>로 정리해두었다(QR코드 참고). / 홍하영 기자 한일청년연합집회 ‘The Way’ 성료 한국과 일본 목회자, 청년 등 참석 한일청년연합집회 ‘The Way’가 양국 청년들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재확인하며 막을 내렸다. 한일청년연합집회 ‘The Way’는 지난 7월 4일(금)~5일(토) 요코하마 사카에 공회당과 혼고다이 그리스도 교회에서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전 4:9)를 주제로 막 올랐다. 한국과 일본 목회자와 청년 등 4일 420여 명, 5일 260여 명이 참석했다. 4일(금) 이서진 목사, 사기사카 타이치 목사, 5일(토) 노다 가츠토시 목사, 아사자와 요시토 목사가 메시지를 전했다. 김창호 목사는 “앞으로 한일청년연합집회를 통해 청년들이 다음 세대 부흥의 주역으로 일어서길 바란다”면서 “내년 7월, 동경기독교대학(TCU)에서 열릴 집회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관련기사 4면>.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7월 비전헌금, ‘FCBH’ 후원 7월 12(토)~13일(일) 봉헌하는 7월 비전헌금은 선교단체 ‘FCBH’를 후원하는 데 사용된다. ‘FCBH(Faith Comes By Hearing)’는 ‘오디오 복음 선교단체’다. 전력 공급이 어렵거나 문해율이 낮은 공동체를 위해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녹음하고 번역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로 전하는 사역을 한다. 온누리교회는 2018년 10월부터 FCBH 아시아와 사역을 함께 하고 있다. 이번 비전 헌금은 2033년까지 모든 종족에게 오디오 성경을 보급하는 비전에 활용될 예정이다. <관련기사 5면>. / 박지혜 기자
2025-07-13 제1548호
[예수 따라, 성령 따라] 국내 온누리교회 탐방 3. 양지온누리교회 예수 따라, 성령 따라 국내 온누리교회 탐방 3. 양지온누리교회 선교 위해 태동했고, 선교 위해 기능한다! 양지온누리교회의 뿌리 깊은 선교 역사와 미래 올해는 온누리교회 창립 40주년이다. 온누리교회는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사명을 따라 ‘Acts29 비전’을 써내려가고 있다. <온누리신문>에서 Acts29 비전이 완수되는 바로 그 현장을 찾아간다. ‘예수 따라, 성령 따라’를 주제로 국내 온누리교회 캠퍼스와 협력 기관을 탐방하며 그 아름다운 현장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사역과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세 번째 여정은 ‘양지온누리교회’다. 박철웅 목사에게 양지온누리교회의 뿌리 깊은 선교 역사와 역할에 관해 들었다.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양지온누리교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선교’다. 어쩌면 가장 뿌리 깊은 선교 역사와 선교를 위한 역할을 자랑하는 교회가 양지온누리교회다. ‘Acts29 비전빌리지’에서 선교훈련원 TIM 국제선교회와 함께 선교의 최일선에서 장단기 선교사 배출, 교회 리더십 양성 및 영성 회복 등을 완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지온누리교회와 Acts29 비전빌리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두 기관 모두 선교를 위해 태동했고, 선교를 위해 기능하고 있다. 그 시작은 ‘2천/1만 비전 선포’였다. 하용조 목사가 1994년 2천/1만 비전을 선포하고, 비전을 완수하는 훈련장으로 ‘온누리벧엘교회’와 ‘온누리이천만훈련원’을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창립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온누리교회 소유의 땅이 없었다. 그런데 1996년 목회자 부재로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기 어려웠던 낙원벧엘교회 성도들이 온누리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온누리교회는 낙원벧엘교회의 노후된 건물을 보수하고, ‘온누리벧엘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이상규 목사를 담당목사로 파송했다. 그 터에 있던 건물을 보수해 ‘온누리이천만훈련원’도 세웠다. 온누리이천만훈련원은 선교사들을 위한 영적 훈련장으로 사용되다가 전 세계에서 사도행전적 바로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한 거점인 ‘온누리세계선교센터(OWMC)’로 거듭났다. 김사무엘 선교사를 초대 원장으로 세우고, 선교 정책을 수립하고 연구하는 ‘2000선교본부’,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는 ‘두란노해외선교회(TIM)’를 창립했다. 그리고 2010년, 온누리세계선교센터가 ‘Acts29 비전빌리지’로 다시 한번 도약했다. 2005년 말에는 온누리벧엘교회 모든 성도가 온누리교회 등록 성도로 전환했고, 2012년 6월 온누리벧엘교회가 ‘양지온누리교회’로 거듭나며 온누리교회 10번째 캠퍼스로 탄생했다. 이상규 목사에 이어 황종연 목사, 김영배 목사, 도육환 목사가 양지온누리교회를 섬겼다. 2022년부터는 박철웅 목사가 사역하고 있다. 선교지에 있지 않지만, 선교지를 경험하는 교회 양지온누리교회가 Acts29 비전빌리지 안에 위치하면서 선교적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졌다. 선교사의 안식과 회복, 선교사 후보자들의 훈련, 그리고 성도들의 선교적 삶이 교차하면서 ‘선교지에 있지 않지만, 선교지를 경험하는 교회’라는 독특한 특징을 형성했다. 박철웅 목사는 양지온누리교회가 가진 독특한 특징을 다음같이 설명했다. “양지온누리교회는 Acts29 비전빌리지 안에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Acts29 비전빌리지에서 선교 훈련을 받는 후보자들, 안식년을 보내거나 잠시 본부사역을 하는 선교사들과 함께 머물게 됩니다. 선교사들과 함께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성도들이 선교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선교 현장을 생생하게 접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양지온누리교회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자 특색입니다.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양지온누리교회가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 둘러싸인 교회’라는 점이다. 김사무엘홀에서 예배드리고 나서 예배당 커튼이 올라가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움을 환기해 준다. 은퇴 선교사와 안식 선교사들의 쉼과 회복을 위한 자연 쉼터를 마련하고자 했던 故 하용조 목사의 뜻과도 맞닿아 있다. 날마다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교회 양지온누리교회는 선교와 함께 태동한 교회답게 그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다. 한 예로 ‘온누리나누리사역팀’이 있다. 온누리나누리사역팀에서는 성도들이 기증한 물품을 재판매해서 얻은 수익금으로 선교지 유치원에 놀이터를 설치하거나 선교사들의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 구매 등을 돕고 있다. 해외 아웃리치 같은 선교 기반 사역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또한 양지온누리교회 성도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선교적 삶을 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외진 지역이라는 한계가 있다. 다음 세대가 접근하기 어려운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양지온누리교회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차세대 사역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성경학습 프로그램 ‘어와나(Awana)’다. 어와나(Awana)는 놀이와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말씀을 배우고, 협동심을 키우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연령별로 구성되어 있다. 젊은 부부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수요오전여성예배’, ‘마더와이즈’ 등을 통해서 젊은 부부들과 그들의 자녀가 양지온누리교회에서 자리 잡고, 다음 세대가 신앙 안에서 성장하도록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양지온누리교회가 ‘경험하는 교회’에 머무르지 않고 날마다 한 걸음 더 성장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이 꿈꾸는 ‘선교적 미래’ 무엇보다 양지온누리교회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주 특별하고 귀하게 여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하고, ‘일당백’이기 때문이다. 650명 규모의 캠퍼스 교회가 다양한 사역과 프로그램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양지온누리교회 성도들이 1인 2역, 3역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박철웅 목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헌신하는 양지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양지온누리교회 성도들의 그 아름다운 헌신을 선교적 미래를 꿈꾸고 이뤄가는 소중한 발걸음으로 여긴다. 양지온누리교회가 꿈꾸는 선교적 미래는 명확하다. 양지온누리교회 모든 성도가 ‘선교적 삶’을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지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보내는 선교사’, ‘보냄 받은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따라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 “양지온누리교회 모든 성도가 영적으로 성숙해져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선교훈련원에서는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선교지와 선교사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시안기도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양지온누리교회의 더 많은 성도가 선교의 열정으로 시안기도모임에 참여해서 온누리 선교를 위한 기도가 다시 한번 뜨겁게 부흥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2025-06-28 제1546호
[News] 평강의 복 예수 그리스도! 평강의 복 예수 그리스도! 2025 마리아행전 ‘평강의 복’ 3,272명 참석 “평강의 복 누리고, 세상에 흘려보낼 것 다짐” 나라와 민족, 가정과 교회, 다음세대의 평강을 구하는 마리아들의 부르짖음은 결국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했다. 2025 마리아행전 ‘평강의 복’이 준 교훈은 바로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였다. 지난 6월 11일(수)부터 13일(금)까지 양재 온누리교회와 각 캠퍼스에서 막 올랐다. 순백의 마리아 3,272명이 참가했다. 집회 첫날, 송정미 사모 특순, 조호영 목사 환영 인사 및 오프닝 메시지, 이훈 목사(길벗다문화센터) 설교, 합심기도회 등이 이어졌다. 이훈 목사는 ‘평강에서 평강으로’(사 26:3)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했다. 이 목사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평강의 복을 누리면서 그 복을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나타내야 한다”면서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마음 깊이 새기고, 그 마음으로 살고, 평강을 전하는 귀한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합심기도회는 김정희 목사가 인도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악,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 부모세대의 죄에 대한 회개기도를 했다. 집회 둘째 날, 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메시지, 합심기도회 등을 했다. 정갑신 목사가 ‘평강의 길, 짐과 쉼’을 주제로 설교했다. 정 목사는 “우리가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약속보다 내 감정과 판단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라며 “참된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심기도회는 이윤재 목사, 배순양 목사, 김현실 목사가 인도했다. 한국 교회, 세계 교회, 정치 지도자, 대한민국, 청년과 교회학교, 다음세대, 기독사학재단 등을 위해 부르짖었다. 집회 셋째 날, 온누리교회 모든 마리아가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모였다. 이재훈 위임목사 메시지, 합심기도회, 세레모니 등이 이어졌다. 이재훈 위임목사는 ‘고요하고 평온하게’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했다. 이 목사는 “평강을 잃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교만”이라며 “의의 말씀으로 연단된 분별력을 가지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합심기도회는 권오향 목사, 김미정 목사가 인도했다.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감사와 찬양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임을 선포하는 기도, 예수님 다시오심을 선포하는 기도, 북한을 위한 선포 기도, 전쟁으로 평강이 깨진 열방을 위해 기도했다. 고우진 권사(안양평촌공동체)는 “두려움과 불안이 큰 이 시대에 성도는 평강의 은혜를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가족, 순 식구들, 지인들에게 평강의 메시지를 전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서연주 성도(강남A공동체)는 “누군가에게 힘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며 “마리아행전을 통해 말씀으로 은혜 받고 기도함으로써 삶에서 실천해 나가겠다”고 고백했다. / 홍하영, 박지혜 기자 법조인맞춤전도집회 ‘Justice For You’ 6월 16일 오후 6시 45분 서빙고 본당 법조인맞춤전도집회 ‘Justice For You’(부제: 법과 정의, 그 너머의 삶)가 드디어 막 오른다. 6월 16일(월) 오후 6시 45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진행된다. 법조인맞춤전도집회 ‘Justice For You’에서는 식사와 공연, 토크쇼, 이재훈 위임목사 메시지, 편지 읽기, 결신, 축복의 시간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손범수, 진양혜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가수 선예, 소프라노 강혜정, 가스펠 보컬 밴드 크룩스 등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토크쇼는 ‘법조인으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진행된다. 손범수, 진양혜 아나운서 사회, 윤세리, 이은경, 최태형, 조혜은 변호사가 패널로 참여한다. 법조인맞춤전도집회 참가자들은 행사 당일 오후 5시 30분부터 서빙고온누리교회 로비에서 등록 확인을 하고, 6시 10분부터 본당에 입장할 수 있다. 6시 45분부터 식사가 시작되고, 집회는 7시 30분 시작된다. 접수 확인 문의는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저스티스포유’ 채팅창에서도 할 수 있다. 한편 법조인맞춤전도집회를 위한 ‘요청자기도모임’이 지난 5월 26일(월)과 6월 2일(월)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두란노홀에서 열렸다. 법조인과 전도집회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방법 교육, 집회 준비 안내, 초대장 및 주차증 배부 등을 했다. 문의: 카카오톡플러스친구 ‘저스티스포유’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2025 차세대 여름캠프 시작 7월 5일~8월 10일 국내 캠퍼스 및 외부 2025 차세대 여름캠프가 시작된다. 예수님의꿈아이(영아부, 유아부, 유치부)와 꿈이자라는땅(유년부, 초등부, 소년부)은 ‘하나님의 꿈을 입은 요셉’을 주제로 7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 본당 및 외부에서 진행된다. ‘꿈을 주신 하나님’, ‘함께하신 하나님’, ‘인도하신 하나님’ 등 과별 주제로 성경 퀴즈, 적용 놀이, 체험활동 등의 프로그램을 한다. 파워웨이브(중고등부)는 7월 25일부터 8월 10일까지 외부에서 캠프를 한다. ‘His Plan’을 주제로 찬양집회, 강의, 기도회 등을 개최한다. 한편, 지난 5월 31일(토)부터 이어진 차세대 어드벤처(Adventure) 교사강습회가 6월 15일(일) 막을 내린다. 교사, 목회자, 학부모를 대상으로 기도회, 주제강의, 찬양강습, 교재강습 등을 했다. 문의: 02-3215-3521 CGN, ‘사랑으로 함께’ 캠페인 종료 성도 1,045명 참여, 2억7천1백여 만 원 모금 선교 미디어 CGN이 최악의 산불로 삶과 신앙의 터전을 잃은 경상도 지역 이재민과 교회들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기 위해 지난 4월 4일부터 5월 30일까지 실시한 ‘사랑으로 함께’ 캠페인이 종료됐다. 성도 1,045명이 참여해 2억7천1백여 만 원을 모금했다. 모금액 전액 산불 피해 이재민과 교회를 돕는 데 사용한다. CGN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해 ‘사랑으로 함께’ 캠페인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특별모금, 2021년 미혼 한부모 가정, 2022년 동해안 산불 피해 이재민과 교회를 돕는 캠페인을 했다. ‘사랑으로 함께’ 모금 사용 내역은 추후 CGN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할 예정이다. 문의: 02-796-2243 FA 24기 청년 선교사 모집 7월 6일까지 서류 접수 FA(Frontier Agency movement) 24기 청년 선교사를 모집한다. 7월 6일(일)까지 서류 접수를 마감한다. 7월 19일(토)과 26일(토) 면접을 진행하고, 최종 청년 선교사를 선발한다. 8월 12일부터 9월 5일까지 4주 동안 국내합숙훈련을 하고, 9월 23일부터 2026년 2월 3일까지 18주 동안 현지사역을 한다. FA 24기 파송 국가는 네팔, 일본, 인도네시아다. FA 24기 지원 자격은 온누리교회 등록 성도(1년 이상)이자 대학청년부 공동체 소속(6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35세 이하 미혼(89년생 8월 이후 출생), 세례 교인,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한다. FA 24기 참가신청은 하단 QR코드로 하면된다. ‘FA 24기 선교사 신청서’(하단 QR 참고)를 작성하고 제출하면 된다. 신청서 제출을 한다음에는 신청서 하단에 있는 구비서류를 다운받아 작성하고, 이메일(fa@tim.or.kr)로 보내면 된다. 구비서류는 FA 선교사 지원서 1부, 추천서 3부(온누리교회 목회자, 공동체 리더십, 지인), 가족관계증명서, 최종학력증명서, 건강검진서다. 문의: 070-4464-8105
2025-06-14 제1544호
[news] 마리아행전 '평강의 복' 막 오른다! 마리아행전 '평강의 복' 막 오른다! 6월 11~12일 각 캠퍼스 본당, 13일 양재 사랑홀 이훈 목사, 정갑신 목사, 이재훈 위임목사 메시지 드디어 2025 마리아행전 ‘ 평강의 복’ 의 막이 오른다. 6월 11일(수)부터 13일(금)까지 오전 10시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진행된다. 6월 11일(수)과 12일(목)에는 양재온누리교회 집회 실황을 각 캠퍼스에 전송한다. 서빙고온누리교회에서는 예배 중계를 하지않는다.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 마리아들은 양재 사랑홀, 캠퍼스 마리아들은 소속 캠퍼스 본당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하면 된다. 마지막 날인 13일(금)에는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온누리교회 모든 마리아가 한 자리에 모여 연합기도회를 개최한다. 마리아행전 참가를 원하는 마리아들은 참가신청을 서둘러야 한다. 토요주일예배(7일), 일요주일예배(8일) 이후 각 캠퍼스 로비에 설치되는 접수데스크나 목회행정실에서 신청하면 된다. 당일 회비는 4만 원(간식, 물 포함)이다. 6월 10일까지 등록하면 회비를 2만 원 할인해준다. 마리아행전 참가자들은 밝은 색 상의와 짙은 색 하의를 입어야 하고, 등록 팔찌는 집회기간 내내 착용해야 한다. 특히 집회 기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교회에 와야 한다. 양재온누리교회에서는 교회와 양재역 주차장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2025 마리아행전 ‘ 평강의 복’ 에서는 이훈 목사(길벗다문화센터) ‘ 평강에서 평강으로’(사 26:3)’ , 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 평강의 길, 짐과 쉼’(마 11:28~30), 이재훈 위임목사 ‘ 평강을 누리는 영혼의 기도’(시 131편)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한다. 조호영 목사(여성사역본부장)는 “세상의 염려가 아닌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라며 “그 평강 안에서 나라와 민족, 교회와 다음세대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는 마리아행전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문의: 02-3215-3667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법과 정의, 그 너머의 진리를 향해! 법조인맞춤전도집회‘Justice For You’ 6월 16일 오후 6시45분 서빙고 본당 법조인맞춤전도집회 ‘Justice For You’(부제: 법과 정의, 그 너머의 삶)가 6월 16일(월) 오후 6시 45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막 오른다. 행사 당일 오후 5시 30분부터 로비에서 등록 확인을 하고, 오후 6시 10분부터 본당에 입장할 수 있다. 좌석은 선착순으로 배정된다. 법조인맞춤전도집회는 판사, 검사, 변호사, 법대 교수 등 법조인을 초대해, 인간의 정의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소개하는 축복의 장(場)이다. 식사, 공연, 메시지, 축복의 시간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손범수, 진양혜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가스펠 보컬 밴드 크룩스, 가수 선예, 소프라노 강혜정 등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메시지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전한다. 참가신청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나 각 캠퍼스 로비에 설치된 홍보부스에서 하면 된다. 신청서에 초대 대상자인 법조인의 정보를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참가신청 3일 이내 접수 확인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준다. 접수 확인 문의는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 저스티스포유’ 채팅창에서도 할 수 있다. 한편 법조인맞춤전도집회를 위한 ‘ 요청자기도모임’ 이 지난 5월 26일(월)과 6월 2일(월)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두란노홀에서 열렸다. 요청자들이 함께 모여 초대 대상자인 법조인과 전도집회를 위해 기도했다. 전도방법 교육, 집회 준비 안내, 초대장 및 주차증 배부 등도 했다. 양웅 장로(법조인맞춤전도집회 기획팀장)는 “많은 법조인이 법조인맞춤전도집회에 와서 깊은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을 경험하고, 진정한 정의인 예수님을 만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하나님의 꿈을 입은 요셉’ 2025 차세대‘어드벤처’시작! 2025 차세대 ‘ 어드벤처’(Adventure)가 ‘ 하나님의 꿈을 입은 요셉’ 을 주제로 시작됐다. 올해 차세대 어드벤처 교사강습회는 5월 31일(토)부터 6월 15일(일)까지 한다. 지난 5월 31일(토) 온누리청소년센터에서 1차 교사강습회가 열렸다. 서빙고, 수원, 강동,남양주, 양지온누리교회 차세대 교사들이 참가했다. 2차 교사강습회는 6월 7일(토) 양재온누리교회 기쁨홀에서 열렸다. 양재, 평택, 수원 차세대 교사들이 참가했다. 3차 교사강습회는 6월 14일(토) 부천, 인천, 대전 차세대 교사들을 대상으로 각 캠퍼스에서 진행한다. 15일(일)에는 제주온누리교회에서 교사강습회를 한다. 한편, 차세대 여름캠프는 7월부터 8월까지 부서별로 외부 및 국내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에서 열린다. 문의: 02-3215-3521 함께 만드는 기독 콘텐츠! CGN '콘텐츠 기획안 공모전' CGN이 성도들과 함께 기독 콘텐츠를 제작한다. CGN ‘ 콘텐츠 기획안 공모전’ 이 열린다. 개인 또는 4인 이내 팀으로 구성된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6월 22일(일)까지 구글폼(QR 참고)으로 기획안을 접수하면 된다. CGN 콘텐츠 기획안 공모전은 1차 서류 심사(6월 30일~7월 3일), 2차 PT 심사(7월 7~10일)를 거쳐 8월 말 최종 당선작을 선정한다.대상(1팀) 300만 원, 2등(1팀) 100만 원, 3등(2팀) 50만 원을 준다. 공모 부문은 ‘ CGN TV’와 ‘ 기독 OTT ‘ 퐁당’ 및 CGN 유튜브 채널’이다. 두 플랫폼 중에서 하나를선택해 콘텐츠를 제안하면 된다. 문의: 02-796-9800 6월 비전헌금, 대학청년부 여름 사역 후원 6월 7~8일 봉헌하는 6월 비전헌금은 ‘ 대학청년부 여름 아웃리치 및 단기선교’ 를 후원하는 데 사용한다. 올해 대학청년부 여름 아웃리치는 ‘D to V’(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D-day)에서 다시 오실 승리의 그날(V-day)을 향하여)를 주제로 진행된다. 국내 아웃리치 56개 지역 133개 팀 2,827명, 해외 아웃리치 28개국 63개 팀919명이 각 지역으로 흩어진다(6월 4일 기준). 국내팀은 고양, 남양주, 강동 등지에서 군 장병 초청잔치, 어린이사역 등을, 해외팀은 일본, 과테말라, 케냐 등지에서 어린이 캠프, 난민사역 등을 할 예정이다.
2025-06-07 제1543호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 그 외로운 어르신들을 찾아온 천국!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 그 외로운 어르신들을 찾아온 천국!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아주 특별한 방문 온누리교회 올해 표어‘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표현이‘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준비된 신부만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준비된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 성품을 닮은 사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온누리신문>에서 바로 그들,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 다섯 번째 주인공은‘S브릿지 이웃사랑팀’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은 매월 홀몸 어르신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아프고, 외롭고, 쓸쓸한 홀몸 어르신들에게 천국을 선물하고 있다. 그들의 아주 특별한 방문을 소개한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사회선교본부 서빙고 이웃사랑팀과 함께 S브릿지공동체 이웃사랑팀(이하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서빙고동, 동빙고동, 보광동, 청파동에 사는 홀몸 어르신들의 집을 찾는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씩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하고 말벗이 되어 드린다. 건강은 어떤지, 지난달에는 무슨 일이 있었 는지, TV에서 본 드라마는 어땠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묻고 답하며 봄날의 햇살 같은 따듯한 시간을 선물한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작은 천국이 만들어진다. 나를 잊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게… S브릿지 이웃사랑팀은 2021년부터 이 사역을 했다.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한복판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르신들의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직접 찾아가는 것 말고는 도움을 드릴 방법이 없었기에 결단을 내렸다. 당연히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조치를 강력하게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 홀몸 어르신 가정 방문’ 사역이 그렇게 시작됐다. S브릿지공동체 자체적으로 이웃사랑팀을 만들고, 사회선교본부와 함께 사역을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아프고, 외롭고, 쓸쓸한 어르신들이 코로나19로 인해고립까지 된 최악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예수의 사랑을 품은 교회와 성도들이 나선 것이다. 홀몸 어르신 가정 방문 사역은 한시적인 게 아니다. 계속 이어지고 있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매월 홀몸 어르신 댁을 방문해서 지역상품권과 반찬 등을 전달한다. 결코 물질적인 도움만 드리는 게 아니다. 홀몸 어르신들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존재가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특별한지 모른다. 홀몸 어르신들이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방문을 “한 줄기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다. 홀몸 어르신들에게 S브릿지 이웃사랑팀은 ‘ 아무도 찾지 않는 나를 잊지 않는 존재’ 이다. 김동숙 어르신(74세, 보광동)은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방문하는 날이면 심장이 요동친다. 평소에는 TV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데,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방문하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방문 그 자체가 천국이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천사들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오는 날만 되면 심장이 벌렁거려요. 너무 기대돼서 옷도 예쁘게 입고 기다린다니까요. 평소에는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거나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는데, S브릿지 이웃사랑팀만 오면 내 마음이 천국이 되지요. 나는 결혼을 안 해서 가족이 없는데, S브릿지 이웃사랑팀 덕분에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김동숙 어르신이 처음부터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방문을 반긴 것은 아니다. 낯을 많이 가리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해서 첫 방문 때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기도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S브릿지 이웃사랑팀에게 포기란 없었다. 김동숙 어르신의 마음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철마다 맛있는 과일을 가져가고,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햄버거를 사다 드리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다. 항암치료로 고생하는 어르신을 위해 십시일반회비를 모아 침대도 선물했다. 어디 그뿐인가. 길이 좁고 가파른 동네라 침대 배달이 안 된다고 해서 직접 그 큰 침대를 어르신 집까지 옮겨 드렸다. 그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그 까칠하던 김동숙 어르신이 눈물을 보이며 S브릿지 이웃사랑팀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 지금은 누구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열렬한 팬이 됐다. 이정림 팀장(S브릿지 이웃사랑팀)은 홀몸 어르신들이 마음을 열어주실 때 금은보화를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홀몸 어르신들이 마음을 여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가 찾아오지 못하도록 일부러 모진 말을 던지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도 저희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홀몸 어르신들은 하나님이 저희에게 맡기신 한 영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찾아뵐 것입니다.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도 괜찮습니다. 홀몸 어르신들이 아주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시면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립니다. 금은보화를 얻은 것처럼 기쁩니다. 어르신들의 미소 한 번이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합니다.” 박순정 어르신(80세, 보광동)도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그들이문을 두드리면 버선발로 뛰쳐나와 반긴다. 뜨듯하게 아랫목을 데워뒀다가 내어주는 큰 사랑을 주면서도 따듯한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몹시 미안해하신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찾아올 일이 없습니다. 아들 내외가 가끔 오기는 하는데, 그마저도 없는 날에는 종일 벽만 보고 있습니다. 하도 말을 안 해서 입술이 말라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나를 잊지 않고 매월 찾아와 줍니다.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모릅니다. 나한테는 아들밖에 없는데, 살가운 딸들이생긴 것 같아 정말 좋습니다.” 박순정 어르신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다가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일어날 때가 되면 옛날 이야기를 또 끄집어내신다. 그들이 가는 게 못내 아쉽고, 조금이라도 사람의 온기를 더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박지혜 자매(S브릿지공동체)는 박순정 어르신에게 같은 이야기를 열댓 번도 더 들었지만, 그 마음을 알기에 지겹지 않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혼자 얼마나 외로우셨겠어요? 이야기 나눌 친구도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저희의 방문이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더 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옛날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외로운 어르신들의 마음을 알기에 같은 이야기라도,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더라도 더 잘 들어드리고싶습니다. 예수님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친히 찾아가셨던 것처럼, 저도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찾아가 그분들에게 삶의 작은 기쁨이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존재는 홀몸 어르신들에게 단순한 봉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방문이 어르신들에게 웃음꽃을 피워주고, 메말랐던 마음에 사랑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그 아름다운 섬김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그리운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그저 시간을 쪼개고 마음을 내는 것이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S브릿지 이웃사랑팀 모두가 겸손했다. 김신실 자매(S브릿지공동체)는 홀몸 어르신을 섬기는 일은 ‘ 작은 선함을 실천하는 기회’ 라고 했다. “故 이어령 교수님이 생전 인터뷰에서 ‘ 파 뿌리 하나와 같은 선함이 누구에게나 있다’ 고 말씀하신 걸 들었습니다. 저에게도 그 작은 선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에서의 섬김은 그 작은 선의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기회입니다. 어르신들이 저희를 만날 때마다 무척 행복해하시고,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신은주 자매(S브릿지공동체)는 홀몸 어르신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저희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보면서 이 사역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 귀한 사역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어르신들과 마음을 나누고, 그분들께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어르신들이천국 가실 때까지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켜드릴 것입니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사랑을 전할 때마다 천국이 가까워진다.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든 따뜻한 말 한마디에, 손꼽아 기다려지는 발걸음에, 외로움을 덜어주는 손길 속에 천국이 존재한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섬김이 홀몸 어르신들의 하루하루를 천국으로 바꾸고,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처 럼 말이다. 이웃사랑팀 사역 문의: 010-9802-2395
2025-04-11 제1536호
[르포] 그 아픈 눈물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과 함께! 다 타고, 무너지고, 생명도 잃고… 그 아픈 눈물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잿빛이었다. 진짜 다 타고, 무너지고, 너무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그 현장은 정말 참혹하고 끔찍했다. 지난 3월 22일(토)부터 열흘 가까이 이어진 경북 산불이 가져온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그 크고 무서운 산불을 겨우 진화했더니, 이제는 검게 그을린 깊은 상처가 드러났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그 푸르던 숲이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렸다. 주민들의 눈물이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을 위로하고, 그 아픈 눈물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워야 했다. 그것이 교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가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을 파견했다. 그들과 동행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찾아가는 길부터 쉽지 않았다. 거리도, 교통편도 그리고 마음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영양군 석복면을 찾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그 푸르던 곳이 온통 검게 그을렸다. 모든 것이 검고, 노랗고,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석보면 포산리마을은 정말 처참했다. 검게 탄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고,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전소된 트럭도 보였다. 검게 탄 트럭 위에 놓인 새하얀 국화꽃이 말할 수 없는 처참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을 만났다. “산에서 불덩이가 날아와 마을 구석구석에 폭탄처럼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불길을 피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마을 사람들이 논 한가운데로 모였겠습니까? 대피할 공간이 없어서 뻥 뚫린 논이 안전할까 싶어서 그곳에 모였습니다.” 주민들은 겪어보지 않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 떨었다. 산불은 5분 만에 8km를 달려와 모든 걸 집어삼켰다. 발전기와 통신장비마저 망가뜨려 전기도, 전화도 끊겼다. 주민들이 완전히 고립됐다. “여기 있으면 죽겠다 싶어서 차를 몰고 무작정 내려갔습니다. 불길이 차를 넘어 다니더라고요. 연기가 가득해서 앞은 하나도 안 보이고…. 참말로 여기서 죽는갑다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무사히 빠져나왔는데, 옆 동네에서는 길에 갇혀 죽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무섭고 기가 찹디다.”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분명 희망이 살아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절망과 슬픔이 드리운 현장에서 한 가닥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온누리교회가 파견한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의 위로와 헌신이 주민들에게 위안이 됐다. 온누리교회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은 NGO 더멋진세상과 대학청년부 5개 공동체에서 모인 청년 10명이다. 지난 3월 30일(일) 대학청년부 주일예배에 긴급구호팀 모집 광고를 내자마자 청년들이 발벗고 나섰다. 하루 만에 긴급구호팀을 결성했다. 이기세 형제(여호수아청년부, 조달팀장)는 잠시 생업을 내려놓고 긴급구호에 뛰어들었다. “이번 경북 산불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특히 고령의 어르신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고 도울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긴급구호팀원 모집 광고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회사에 양해를 구했더니 흔쾌히 지지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과 헌신이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그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의 하루는 새벽 3시부터 시작됐다. 가장 먼저 식사팀이 나섰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아침 식사 배식과 배달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날 즈음인 새벽 5시 30분부터는 안내팀과 조달팀이 도시락 포장과 배식을 했다. 주민들의 식사가 끝나도 쉴 틈이 없었다. 설거지와 다음 식사를 곧바로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청년들은 틈틈이 회의하며 이재민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섬길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그 아름다운 청년들의 입술에서는 찬양이 흘러나왔다. 식사팀 이호준 형제(SNS청년부, 식사팀장)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산불로 생활 터전을 잃고 피난처에 계신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게 의식주 해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더욱 정성스럽게 준비했습니다. 저희가 만든 음식을 드시면서 위로받고, 예수님의 사랑이 주민들에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은 이재민들에게 긴급구호 물품도 전달했다. 4월 3일(목) 아침 일찍 식사 배급을 마치고 긴급구호 물품을 포장했다.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옷가지를 담았다. 기독교 마을공동체 보나콤(대표: 강동진 목사)에서 준비한 양말과 속옷, 수건, NGO 더멋진세상에서 지원한 트레이닝복 2천여 벌을 상자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주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가 전달되기를 소망하는 기도도 함께 담았다. 긴급구호품은 이재민들이 대피해 있는 마을회관과 체육관, 교회 등지를 찾아가 직접 전달했다. 이하용 형제(여호수아청년부, 안내팀장)는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다. “경북 산불 긴급구호 팀원들이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도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것처럼 손발이 정말 잘 맞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팀이 만들어졌을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협력했습니다. 오로지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섬기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의 마음이 주민들에게도 전달됐다. 마음마저 잿빛으로 물들었던 주민들이 서서히 미소를 보였다. 한 사람 두 사람 미소가 번지더니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만개했다. 따듯한 밥 한 끼, 건네진 옷 한 벌, 그리고 진심 어린 위로의 말 한마디 덕분에 굳었던 표정이 풀리고, 미소를 되찾았다. 삶의 터전을 잃은 슬픔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고,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포산리마을 주민 한인숙 씨는 다 타버린 논밭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었지만,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의 따뜻한 밥 한 끼에 위안을 얻었다. “우리 동네는 딱 두 집 빼고 다 타 버렸습니다. 전기와 물마저 끊겨서 꼼짝없이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한창 농사철인데 논밭과 농기구가 잿더미가 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너무 막막하고 암담합니다. 그래도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음식을 먹으면서 사랑을 느꼈습니다. 배도 채우고, 텅 빈 마음도 채웠습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비친 산불 피해 현장은 말 그대로 참혹 그 자체였다. 그래도 누군가 손을 내밀고, 함께 울어주면서 다시는 없을 것 같았던 희망을 되찾았다. 분명 희망이 살아 있었다. 이제 우리의 기도와 도움의 손길을 이어진다면 다시 생명이 움트고, 그 푸르던 절경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4-05 제1535호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 옥에 갇힌 자들에게… 회개의 통로 ‘새사람사역팀’ 이순남 권사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 옥에 갇힌 자들에게… 회개의 통로 ‘새사람사역팀’ 이순남 권사 온누리교회 올해 표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표현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준비된 신부만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준비된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 성품을 닮은 사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온누리신문>에서 바로 그들,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 네 번째 주인공은 회개의 통로 ‘새사람사역팀’의 이순남 권사다. 이 권사는 오랜 시간 옥에 갇힌 자들이 회개하고, 예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그 아름다운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회개’를 이렇게 설명한다. ‘기독교 신앙생활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요건의 하나. 살아온 삶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하여 죄인임을 반성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뜻을 세워 새로운 생활로 돌아가는 일’. 또 다른 사전에서는 ‘기독교 신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죄에서 떠나는 구원의 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 중요한 회개의 통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새사람사역팀’이다. 새사람사역팀은 재소자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새사람사역팀이 재소자를 대신해 용서를 구하거나 회개하는 게 아니다. 오직 복음, 그 복음을 통해서 재소자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고 회개하도록 돕는다. 개인의 변화, 그것은 새 성전의 탄생 온누리교회 새사람사역팀에서는 수도권과 충청권 12개 교도소와 구치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재소자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거듭나도록 돕고 있다. 얼마나 귀한 사역인지 모른다. 그런데 새사람사역팀원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역으로 여기는 정서 때문이다.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역이다. 새사람사역팀이 왜 필요하고, 교회와 성도들이 왜 헌신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순남 권사가 설명했다. “새사람사역은 엄청난 열매가 있습니다. 단순한 복음 전도가 아닙니다. 한 개인이 변하고, 그 변화로 인해서 새 성전이 탄생하는 사역입니다. 수많은 재소자가 출소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세상에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죄인이었던 그들이 변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변화가 새 성전의 탄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새사람사역팀이 왜 필요하고, 우리가 왜 이 사역에 헌신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죄인인 내가 회개의 통로로 이순남 권사가 새사람사역팀에서 섬기게 된 계기가 있다. 기도 중에 받은 말씀이 결정적이었다. “주민센터 사회복지과에서 일하다가 딸의 산후조리를 도우려고 독일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제게 “다른 곳으로 놓임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성경을 열심히 찾았는데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순예배에서 이 이야기를 나눴고, 섬김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순모님이 저를 2019년 상반기에 새사람사역팀에 연결해주셨습니다.” 새사람사역팀에서의 섬김이 순탄하지 않았다. 딸의 산후조리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랜 시간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순남 권사의 마음에서 새사람사역팀이 떠나지 않았다.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새사람사역팀을 섬겨야 하는데…’라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우연히 새가족사역팀과 새사람사역팀을 함께 섬기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제게 새사람사역팀의 회계로 섬겨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주민센터에서 일하기 위해 따놓은 컴퓨터 자격증이 있었고, 20대 시절 회계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담당 간사님을 매일 찾아가 배웠습니다. 새사람사역팀 회계로 섬기면서 다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사람사역팀에서 쓰임 받기 위해 훈련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순남 권사는 새사람사역팀에서 열심을 냈다. 그렇지만 사역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기도의 힘이 아니었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도 많았다. “처음 만나는 재소자 중에 경계가 아주 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일부러 상처주는 말들을 쏟아냅니다. 지난해 가을 저와 연결된 두 명의 재소자가 그랬습니다. ‘다음부터는 나오지 않겠다’, ‘교재를 버리겠다’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찌나 마음이 힘들던지 마무리 기도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동안 원형탈모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순남 권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섬김을 이어온 이유가 있다. 그녀도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새사람사역팀에서 섬기며 깨달았습니다. 저도 죄인인데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았기에 복음의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처럼 재소자들도 예수님을 만나면 달라집니다. 그들도 반드시 거듭납니다.” 이순남 권사의 간절한 바람과 소망처럼 재소자들이 진짜 달라졌다. 역시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면 변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매 순간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으면서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재소자들에게 진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재소자들이 먼저 저에게 사과하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고 9주를 보냈습니다. 마지막 만남에서 재소자 한 명이 제게 ‘올해 하반기에 1:1 멘토링을 신청할 테니까 다시 만나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재소자에게 ‘살아있다면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웃으면서 작별했습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다시 만나달라”는 재소자의 부탁에 이순남 권사가 ‘살아있다면 다시 만나자’고 답한 이유가 있다. 그녀는 늘 ‘지금, 이 섬김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헌신하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헌신을 이어오는 이순남 권사가 자신의 기도제목을 나눴다. “제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재소자들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어느덧 제 나이가 72살입니다. 갈렙이 많은 나이에도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저도 비슷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주시기를, 회개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더불어 새사람사역팀에서 동역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소자들이 회개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헌신해 주십시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또 다른 죄인을 구원하고자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문의: 010-3242-8743
2025-04-05 제1535호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 그 청년들의 아름다운 헌신 그 청년들의 아름다운 헌신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 제작한 ‘Lambup팀’ 2025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이하 40일 새벽기도회)의 은혜와 감사 그리고 기쁨이 날로 커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기도로 새벽을 깨우고, 날마다 삶 속에서 그분을 닮아가고 있다”는 성도들의 간증이 줄을 잇고 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보이지 않는 헌신자들의 섬김이 만든 열매가 분명하다. 여기에도 40일 새벽기도회를 더 은혜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헌신자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SNS공동체 소속 청년들로 구성된 ‘Lambup(어린양+Wake Up)팀’이다. 그들이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제작한 장본인들이다. 그들을 만나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최근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가 성도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그만큼 이목을 끌고, 40일 새벽기도회 참여를 독려하는 효과가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제작한 ‘Lambup팀’은 정말 급하게 만들어졌다. 40일 새벽기도회 시작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탄생했다. 팀원도 다섯 명(김대현 기획, 홍승호, 배순호, 정주현 개발, 김진수 디자인)뿐이다.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프로젝트는 최성민 목사(대학청년부 본부장, SNS공동체)가 제안했다. SNS공동체에서 ‘I WILL테크팀’으로 활약하던 청년들과 새로 영입한 청년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청년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누구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Lambup팀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고민도 없이 바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길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시간, 단 일주일! 밤을 지새우는 수밖에… 문제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 제작에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동안 Lambup팀원 모두가 밤을 지새웠다. 밤낮없이 헌신해서 ‘출석’, ‘말씀’, ‘묵상’ 기능이 제공되는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완성했다. 사실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 제작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다.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획 의도는 매우 단순했다.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40일 새벽기도회에 더 많이, 더 유익하게 참여하도록 돕는 게 전부였다. 김대현 형제(기획 담당)는 40일 동안 이어지는 새벽기도회에 성도들이 지치지 않고 참여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싶었다. “40일 동안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포기하지 않고 40일 새벽기도회에 참여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출석 스탬프’ 기능으로 새벽기도회 참여를 독려하고, ‘말씀카드’를 공유하고 기록하는 등의 기능을 추가해서 40일 새벽기도회에서 받는 은혜를 나누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진수 자매(디자인 담당)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하는 웹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다. “모든 성도가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에 접근하는데 불편함이 없고,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시각적으로도 편안함을 제공하는 디자인을 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웹페이지 제작과정이 곧 예배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제작하면서 Lambup팀원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큰 은혜를 받았다. 홍승호 형제(개발 담당)는 어머니가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제가 제작한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어머니가 사용하시는 것을 보고 성도님들께도 도움이 되겠구나’ 확신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그리고 교회의 선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아서 무척 기뻤습니다.” 정주현 형제(개발 담당)는 홍보 웹페이지를 제작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40일 새벽기도회 참여 동기가 만들어졌음을 깨달았다. “사실 제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제작하면서 마음과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정말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집중하고 마음을 쏟아내며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에게도 40일 새벽기도회에 참여해야겠다는 동기가 만들어졌습니다.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개발했는데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거룩한 찔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Lambup팀원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제작하는 과정 자체가 예배였다고 고백했다. “팀원 모두가 일주일 동안 잠을 줄여가며 웹페이지 개발에 참여했는데 누구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제작하는 모든 과정이 저희가 하나님을 더욱 앙망하고, 예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헌신과 섬김이 보석보다 귀한 이유 Lambup팀에게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 제작 프로젝트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각자의 달라트인 IT 기술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세워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배순호 형제(개발담당)가 오랫동안 소망했던 IT사역에 대한 소망과 포부를 밝혔다. “IT 기술 분야가 사역과 선교에 더 많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비전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40일 새벽기도회 홍보 웹페이지를 제작하면서 그 소망과 비전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그 일에 제가 쓰임 받고, 헌신하는 방법을 기도하며 구할 것입니다.” 김진수 자매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언제든 감사하며 헌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Lambup팀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섬길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고 도전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할 것입니다.” 최성민 목사는 Lambup팀의 헌신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면서 앞으로도 하나님 나라와 교회 그리고 성도들을 섬기는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청년들이 비전을 품고, 섬기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교회의 또 다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의 비전과 섬김이 커지는 만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청년들이 Lambup팀입니다. 이 청년들의 헌신과 섬김이 보석보다 귀한 이유입니다.”
2025-03-22 제15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