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가 함께 하는 기도] 여동생 가족을 위해서! 온누리가 함께 하는 기도 여동생 가족을 위해서! 제 여동생 가족을 위해 기도를 부탁합니다. 여동생의 남편이자 저의 제부인 이영길 장로(62세, 인천순복음교회)가 올해 1월 뇌출혈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의식불명에 자가호흡이 안 되는 상태입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기적처럼 회복되기를 기도해주십시오. 남편의 병환과 재정문제로 힘들어하던 제 여동생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소천하였습니다. 이 일로 온 식구가 충격을 받았고 저 역시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남은 가족들이 하나님 안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불과 두 달만에 부모를 모두 잃을 상황에 있는 조카들이 걱정됩니다.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희훈이(32세)와 희성이(28세)를 위한 기도가 절실합니다. 하나님께서 조카들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보듬어 주시기를 기도해주십시오.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기에 조카들의 믿음이 단단하게 세워지고, 하나님 안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재정문제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손길이 필요합니다. 여동생이 생전 지인들에게 큰돈을 빌려줬는데 회수가 어려운 상황이라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온갖 거짓과 기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채무자들에게 돈을 갚을 수 있는 재정과 긍휼한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사건을 변호하고 있는 강창재 장로님께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일이 해결되고 회복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주십시오. / 양지혜 집사(성동광진공동체)
2022-07-30 제1404호
[온누리가 함꼐 하는 기도] 도현이를 위해서! 온누리가 함께 하는 기도 도현이를 위해서! 제 친구 도현이(11살)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도현이는 4살 겨울 ‘희귀 소아암 신경모세포종 4기’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2년 치료 끝에 완치되었다가 7살 겨울 다시 재발했고, 1년 치료 후에 완치되었다가 9살 여름 다시 재발한 상태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도현이의 상태가 최근 많이 나빠졌다고 해요. 암이 재발한 이후 지금까지 통증이 없고, 종양들이 커지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지난 2월부터 계속 종양이 커지고 번지고 있대요. 어렵고 힘들어진 치료 때문인지 도현이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이모(도현이 엄마)에게 “이렇게 아프게 하실 거면 왜 태어나게 하셨냐”며 하나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고 해요. 하지만 늘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성령이 오셨네'라는 찬양을 좋아하는 친구에요. 도현이는 지금까지 항암치료만 40개월, 이식 3번, 양성자치료 15번, 방사능치료 30번, 항체치료 9번, 표적방사 2번, 수술 2번, 비타민치료 2년을 받았다고 해요. 그 힘든 치료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냈어요. 그런데 최근 종양의 전이 속도가 빨라지면서 너무 어려운 상황이에요. 기흉도 심해져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이모한테 듣기로는 병원에서 이미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한 상태이고, 더 이상의 치료는 도현이만 괴롭히는 일이라고 했대요. 도현이를 볼 수 있는 날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했대요. 도현이와 이모의 가족을 위해서 제발 함께 기도해 주세요.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믿어요. 하나님이 치료의 손으로 도현이를 만져주시기를 기도해 주세요. 도현이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증거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이모의 가정에도 평안과 위로, 힘을 주시기를 꼭 기도해 주세요. / 이준희 학생(양재온누리교회 꿈땅)
2022-07-23 제1403호
[대학청년부/카운트다운] 우리는 하나님 나라 개척자! 우리는 하나님 나라 개척자! 대학청년부 예배&선교 컨퍼런스 카운트다운 ‘킹덤 파이오니어’ 서빙고 본당 2,100명, 장충체육관 5,000명, 121명 선교헌신서 작성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들이 여기 다 모였다. 2022 대학청년부 예배&선교 컨퍼런스 카운트다운 ‘킹덤 파이오니어(Kingdom Pioneer)’(이하 카운트다운 ‘킹덤 파이오니어’)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모른다. 카운트다운 ‘킹덤 파이오니어’에 참가한 청년들은 한목소리로 하나님 나라 개척자가 되게 해달라고 뜨겁게 부르짖었다. 카운트다운 ‘킹덤 파이오니어’는 지난 6월 30일(목)부터 7월 3일(주일)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과 장충체육관에서 이어졌다.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일 평균 청년 1,900명(6월 30일 1,600명, 7월 1일 2,000명, 2일 2,100명), 7월 3일 장충체육관 집회에는 무려 5천여 명이 집결했다. 이날 청년 121명이 선교헌신서를 작성했다. 카운트다운 ‘킹덤 파이오니어’ 첫날에는 김승수 목사(대학청년본부장)가 ‘성령을 받으라’(왕상 18:30~40)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준비하고 계신다”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새 시대에 쓰임 받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축복했다. 집회 둘째 날인 7월 1일에는 이인호 목사(더사랑의교회)가 ‘기도의 한계를 넘으라’(대하 14:6~7)를 주제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 민족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신다”면서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는 청년들이 되라”고 권면했다. 집회 셋째 날인 7월 2일에는 주누가 선교사(GO선교회)가 ‘열방을 품으라’(눅 24:44~49)를 주제로 말씀을 선포했다. 주 선교사는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셔서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고,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간구하라”고 당부했다. 장충체육관 집회 첫 시간에는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가 ‘사명보다 더 큰 약속’(마 28:18~20)을 주제로 설교했다. 유 목사는 “하나님께서 사명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다”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강의는 이재훈 담임목사가 했다. 이재훈 담임목사는 ‘킹덤 파이오니어(Kingdom Pioneer)’(마 13:44~46)를 주제로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선포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고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다”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개척자로 사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김영재 형제(인천온누리교회)는 “이번 집회를 계기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했고, 정인아 자매(SNS청년부)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 정현주, 홍하영 기자 참가자 간증 **에서 하나님 나라 개척자로 살겠습니다! # 내 삶의 모든 자리에서 “이번 집회에 참석하면서 내 삶의 모든 자리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선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일터와 가정에 하나님께 받은 기쁨과 사랑을 흘려보내야 한다는 비전을 받았습니다. 저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기쁨을 나눠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제 모습을 통해서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사랑으로 섬기겠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제가 믿음의 첫 세대입니다. 제 삶을 통해서 가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면서 비전을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 장윤채 자매(요셉공동체) # 예배의 자리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예배의 자리가 많이 무너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기도 시간이 많이 줄었고, 신앙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회복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집회 중보기도팀을 섬겼습니다. 아웃리치나 이웃들을 섬기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예배를 먼저 회복하고, 예배가 바르게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만나야만 사명을 감당할 힘도, 일상을 살아갈 힘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자리가 회복되도록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배당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증거하려고 합니다.” / 홍동우 형제(요셉공동체) # 아웃리치 현장에서 “집이 멀어서 집회 장소까지 오는데 마음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너무 더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회에 참가하면서 그 힘들었던 마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정말 많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목사님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과 은혜가 충만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7월 말 아웃리치를 갈 예정입니다. 이번 집회에서 깨달은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웃리치를 갈 것입니다. 이번 아웃리치에서는 제가 받은 은혜를 이웃들과 나눌 것입니다.” / 최권석 형제(여호수아청년부) # 섬김의 자리에서 “온누리교회 청년부에 다닌 지 7년이나 됐는데, 카운트다운 집회에 온전히 참여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번 집회에서 저는 주차안내 봉사를 했습니다. 처음 보는 청년들과 타 공동체 목사님들과 함께 섬기면서 내심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연합과 섬김,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저의 걱정이 모두 쓸모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섬김과 헌신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싶습니다. 섬김의 자리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자리입니다. 몸은 고됐지만, 헌신과 섬김을 통해서 큰 은혜를 얻는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 김태청 형제(SNS청년부, 주차 봉사) 멘토가 청년들에게 청년 킹덤 파이오니어! “집회 내내 성령의 임재를 마음껏 누린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감동과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직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거대한 체육관이 다 찰까 하는 인간적인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체육관을 가득 메운 청년들을 보면서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과 내 믿음의 작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청년들에게 신앙이나 예배 DNA가 사라져서 그들이 교회와 예배와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집회를 보면서 코로나19 이후 청년들의 신앙이 더욱 성장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집회는 우리의 흐트러진 신앙을 추스르고, 2보 전진을 위해서 전열을 정비하는 각성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번 집회에서 청년들의 영적 갈증과 갈급함, 그리고 사모함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집회를 계기로 청년들이 킹덤 파이오니어(Kingdom Pioneer)로 헌신하는 소중한 열매가 맺히기를 소망합니다.” / 심희돈 장로(여호수아 대표 멘토)
2022-07-09 제1401호
[온누리가 함께하는 기도] 여름이와 봄이를 위해서! 온누리가 함께하는 기도 여름이와 봄이를 위해서! 한여름, 한봄 엄마입니다. 큰딸 여름이의 건강을 위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여름이는 골격형성 장애 및 여러 장기의 발육부전이 특징인 극희귀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여름이는 근육과 뼈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6살인데 막 돌 된 아이처럼 왜소합니다. 뼈와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서 흉곽이 약하고, 기도가 좁고, 휘어져 있습니다. 스스로 호흡하기 어려워서 목에 관을 삽입하고, 기계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혼자 목을 가누지도, 앉아 있지도 못해서 누워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음식을 혼자 먹고 소화할 수 없어서 배에 위루관을 삽입해 우유를 줍니다. 소리를 듣지 못했던 여름이가 2년 전 왼쪽 귀에 인공와우 수술을 했습니다. 이제야 가족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여름이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가정이어야만 했기에 하나님께서 여름이를 보내주신 줄 믿습니다. 여름이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모든 시간이 행복하도록 기도해주세요. 여름이 몸의 뼈와 근육들이 건강해져서 혼자 목도 가누고, 앉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기계 없이도 호흡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잘 먹고, 잘 자고, 배변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저희 가정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동생 봄이가 아픈 언니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도록 기도해주세요. 여름이를 간호하는 가족들이 지치지 않도록 기도해주세요. 서로 더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류은석 성도(서빙고 영아2부)
2022-06-18 제1398호
[주일강단] 약속을 믿음으로 얻는 의 약속을 믿음으로 얻는 의 로마서 4:13~25 / 이재훈 목사 믿음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믿음은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이며,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근거도 없이 뛰어드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과 증거 고, 경험을 통해서 믿음을 세워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인간의 합당한 반응은 믿음뿐입니다. 믿음 외에 그 어떤 것이 첨가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믿음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원하실 때는 인간을 완전히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믿음 없는 인간 안에 믿음을 만들어 주시는 일까지 하셔야만 했습니다. 약속을 통해 믿음의 통로가 된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재차 확인해 주시고, 그 약속을 이루심으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만들어 주시고, 그 믿음을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믿음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중요한 모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율법으로 인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인해 된 것입니다”(13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받은 약속을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약속’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약에는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생애를 요약해서 그가 받은 약속에 이름을 붙인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약속을 주신 것은 지구상의 한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한 시대에 국한된 일도 아닙니다. 온 세상,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우주적이고 범세계적인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파괴된 하나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킨다는 계획입니다. 새로운 창조,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자 모든 사람을 구속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다는 약속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세상의 상속자, 하나님 나라의 주인,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키는 주인공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을 통해서 세상의 상속자가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른 상속자입니다”(갈 3:29).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에게 속한 사람이 되며, 아브라함이 받았던 약속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세상의 상속자라면 우리도 세상의 상속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도 그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상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약속을 통해서 얻어지는데, 믿음에 결코 더 해지면 안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외에 율법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싸우기 위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깊이 뿌리내린 율법은 모세 시대에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율법이 주어지기 430년 전에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시점은 율법이 있기 훨씬 전입니다. 할례도 창세기 17장에서 주셨는데,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15장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어떤 요소도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약속을 믿는 것’과 ‘약속하신 분을 믿는 것’ “만일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효가 되고 약속은 파기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진노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함도 없습니다”(14~15절).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빛나게 하고, 그것을 보완하며 드러내는 도구로 쓰입니다. 약속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율법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약속이 강조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고,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일체 타협이 없습니다. 온전히 행위만을 요구합니다. 율법은 철저하게 행동 그 자체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의 복음은 믿음만을 받아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온전히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요구됩니다. 약속을 통해 얻는 믿음에 결코 더해질 수 없는 것이 율법의 행위입니다. 반면 약속을 통해 얻는 믿음에 반드시 더해져야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소망을 갖고 믿었습니다. 이는 ‘네 후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나 돼 이미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고 도리어 믿음이 굳건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롬 4:18~22절). 전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바랄 수 없는 것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믿음이 소망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조상이 됐습니다”(17절). 아브라함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믿음이 약속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입니다. 때로 약속만 바라보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거나 약속을 흔드는 상황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라는 자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된 것 아닙니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무너뜨리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는 것’과 ‘약속하신 분을 믿는 것’을 구별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는 약속하신 분께 소망을 둬야합니다. 약속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약속을 했느냐입니다. 약속하신 그분이 전능하신 분이며,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분이라는 소망을 둠으로써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바쳤습니다. 그는 약속들을 받은 사람이면서도 자기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고 불릴 사람은 이삭으로 말미암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로 말하자면 그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로부터 돌려받은 것입니다”(히 11:17~19).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니까 그 생각이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분이라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순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믿음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도 위한 것입니다”(23~24절).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동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죄와 사망 가운데 죽은 자 되었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생명을 잉태케 하신 것처럼,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활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그것을 체험했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것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셔서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죽음 가운데 다시 일어나게 하는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해 죽음에 넘겨지셨고 우리의 의를 위해 살리심을 받았습니다”(25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 믿음의 근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음의 놓이게 하고, 그분의 부활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다시 살게 하며, 의롭게 하며, 영원히 살게 하는 부활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체험했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체험합니다. 믿음이 의의 원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약속을 통해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약속을 주시고, 그가 그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우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 가운데 살게 합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것은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허황된 개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장 구체적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실제는 죄입니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장애물은 죽음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생명입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풍성하게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날마다 믿음으로 주장하며 살아가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2-08-06 제1405호
[주일강단] 오직 믿음으로 얻는 의 오직 믿음으로 얻는 의 로마서 4:1~12 / 이재훈 목사 하나님은 스스로 심고 거두고 노력한 대로 응답하심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심지 않은 데서도 거두게 하시고, 때로 우리가 심을 수 없는 것을 허락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 돕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자를 돕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많은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죄 아래 갇혀 있는 인간은 결코 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인간을 하나님이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값없이 주십니다. 로마서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한 용서로 하나님이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용서를 통해서 회복에 이르게 합니다. 잘못한 자를 처벌하고, 징벌하는데 그치는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죄에 대한 마땅한 징벌을 지급하고, 거기에 더해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해 연합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셨습니다.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 로마서 4장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언제나 이 두 단어를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그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 아닌 그 무엇을 첨가한다면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구약의 두 인물을 인용합니다. 그 인물들을 통해서 오직 은혜로만 얻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 두 인물은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이 두 인물을 인용한 이유는 하나님이 구약 시대를 관통하며 사용하신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육신의 조상, 혈통적 조상, 민족의 조상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자주 거론하지만, 그에 대한 심각한 오류와 오해, 왜곡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율법 신앙의 대표적인 개척자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율법의 대한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받은 인물이라고 왜곡해서 가르쳤습니다.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보다 불순종한 모습이 더 많습니다. 그의 믿음이 처음부터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대한 확신을 하고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불순종과 불신앙, 의심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지 않고, 랍비를 통해서 재해석된 탈무드나 미드라쉬, 이 두 가지를 해석한 여러 지침서로 종교화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곡된 책이나 정보를 많이 접하다 보면 성경 자체의 의미에서 멀어집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세력이 이단과 사이비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빠졌던 오류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잘 알았기에 아브라함을 예로 들면서 그가 마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 것처럼 가르치는 것을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믿음은 대상이 나를 찾아오는 선물 “‘그러면 우리가 육신에 따라 우리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고 합니다”(1~3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시점과 배경이 되는 상황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이름은 데라였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임재하셨습니다. 그 시점이 형제 하란이 죽었을 때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섰을 때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가족의 죽음 앞에 영혼이 민감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싶고, 예배당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그에게 약속을 주셨고, 그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견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아버지 뜻에 따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멈춰 섰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고, 그 자손을 번성케 하시고, 그 자녀를 복되게 하심으로 땅의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소원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품은 비전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이끌려갈 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이미 75세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약속이고, 자신의 형편을 보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힘없는 이주민에 불과한데 하나님이 모든 족속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주셨습니다. 믿기 어렵고, 상상하기 힘든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약속을 처음부터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저 끌려가는 믿음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창세기 15장에 이르러 약 10년이 지났을 때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건의합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서 네 자손이 태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아브라함을 데리고 나가 “하늘의 별을 보라 너의 후손이 이렇게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의 마음에 믿음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조차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그런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창 15:6). 성경에서 ‘믿음’과 ‘의’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구절이 창세기 15장 6절입니다.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모델은 단순한 믿음의 모범 정도가 아니라 원리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여러분, 참사람의 영혼과 마음은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믿음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불합리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합리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와 판단, 감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대상이 나를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으로 인도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겨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하나님이 신실하게 이루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 창세기 22장에 이르러 아브라함의 믿음이 여러 번 부침을 겪습니다.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과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불신앙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분명히 믿었다고 했는데, 16장에서 불신앙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믿음이 이렇게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할 때 일어나는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우리를 의롭다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의로우신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가장 있어야 하는 조건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믿음조차 파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실 때 두 가지 일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어 놓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 안에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믿음 자체를 일으켜 주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신실하심을 보여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그 믿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믿음 만이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믿음조차 파괴된 인간의 영혼과 마음에 하나님이 믿음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선물해 주시고,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복은 할례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할례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의로 여겨졌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은 때입니까? 아니면 할례를 받지 않은 때입니까? 할례를 받은 때가 아니라 할례를 받지 않은 때입니다”(9~10절). 창세기 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건은 할례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할례는 창세기 17장입니다. 창세기 순서 자체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받은 이후 14년이 지나서야 할례 제도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를 하나님 백성의 증거처럼 여겼던 잘못된 오류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앞에 의롭게 되는 증거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인쳐지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자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품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않고 정당한 대가로 여겨지나 일하지 않고도 경건치 않은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집니다”(4~5절). 일한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것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맞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은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 스스로 심은 것을 거두는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행한 보상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우리가 도울 수 없는 영역의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죄에 대해서는 스스로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종교의 원리는 한마디로 보험과 같은 원리입니다. 보험금을 내면 나중에 문제가 있을 때 보상금을 받는 구조입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원리는 우리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 다 이루어진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하여 이루어진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종교적인 보험의 원리로 내가 행한 선행, 내가 행한 어떤 일에 대한 보상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신앙의 왜곡입니다. 철저하게 예수께서 이루신 일을 근거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삶입니다. 그것을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봉사, 선행, 헌신도 이것을 기초해서 출발해야만 올바른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서는 축복 사도 바울이 두 번째 증거로 인용한 인물이 다윗입니다.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사람의 복에 대해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불법을 용서하시고 죄를 덮어 주시는 사람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않으실 사람은 복이 있다’”(6~8절). 다윗은 오직 은혜로 의롭게 되는 것이 가장 절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의 아내와 간통하고,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죽이는 끔찍한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이 깊은 죄에 빠져 있다가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회복의 길을 걸으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죄를 용서받고 그 죄가 씻겨진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 마음에 교활함이 없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시 32:1~2). 죄를 짓고 난 이후에 고백하지 않고 숨기고 있었을 때 겪었던 고통도 고백합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시 32:3~4절). 정죄함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설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고백합니다. 다윗이 용서받은 죄는 간음과 살인죄만이 아닙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포함된 원죄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죄 가운데 있음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죄를 변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 임한 새 생명이 성령의 능력으로 타락한 옛 생명을 끊어내고 몰아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가 필요하고, 성령님이 필요한 이유는 참된 회개를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옛 성품을 못 박고,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옛 생명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타락한 옛 성품과 영향력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게 먼저입니까? 아니면 회개가 일어나는 것이 먼저입니까? 이 순서는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값없이 의롭다 함이 먼저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아직 원수였을 때, 아직 회개하지 않고 불경건한 상태였을 때 하나님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을 때도 하나님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일이 먼저 일어납니다. 단 우리가 회개할 때 그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은혜의 복음이 들려질 때 사람들이 회개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회개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지 용서받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복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복을 주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많은 허물과 죄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다윗을 자유케 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과 즐거운 교제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두 예화입니다. 오직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복이 임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을 의롭게 하신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복을 날마다 누리며 체험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2-07-30 제1404호
[주일강단] 오직 은혜로 얻는 의 오직 은혜로 얻는 의 롬 3:21~31 / 이재훈 목사 로마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오직 은혜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죄 아래에 있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을 어떻게 하나님이 구원하시는가에 대한 소식입니다. 복음은 죄를 용서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받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은 구원의 소극적인 면입니다. 구원의 적극적인 면은 의롭게 됨으로써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수 있는 의를 선물로 주시는 통로가 되셨습니다. 모든 일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은혜로 이루어졌기에 우리에게 오직 믿음만이 요구됩니다.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이 전달되지 않은 이방인들도 죄인임을 깨닫는 도구가 있습니다. 도덕과 양심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별개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입니다”(21절).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위대한 전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구원이 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 가운데 생명이 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 유죄 판결이 내려진 이들에게 ‘무죄’라는 판결이 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도 바울이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은혜로 주어지는 의에 대하여 예언하시고 증거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별개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21~22절). 하나님의 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용서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의입니다. 관계를 회복하시는 의입니다. 죄인인 이들을 값없이 의롭다 하시며 관계를 회복하시는 의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기로 하셨고, 이를 실행하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덧입혀 주심으로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일방적, 주권적, 주도적으로 선언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용서하시며, 관계 회복을 요청하시며,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반응 ‘믿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그분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지금 이때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자신이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분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23~26절). 성부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을 ‘칭의’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우리의 구속을 위해 ‘회목제물’이 되신 것이고, 우리에게 하신 일이 ‘구속’입니다. 이 두 가지 행하신 일을 기초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속자가 되시고, 화목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자로 구속(救贖)이라는 단어를 보면 ‘값을 주고 다시 사서 자유케 한다’는 의미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구약 역사에 구속의 그림자들, 구속을 설명하는 예표들이 많이 나옵니다. 룻기에서 ‘보아스’라는 사람이 구속자가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빚을 지거나 죄를 범해서 노예나 죄수가 되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자유케하는 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 제도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통하여 죄의 종 상태에 있는 우리를 예수님의 핏값으로 대가를 지불하시고 자유케 하시는 구속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그분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25절). 여러분, 죄 용서가 없이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죗값을 치르신 것이 구속이라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게 하신 것은 화목제물 되심입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여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 선물입니다. 우리 편에서는 칭의가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매우 값진 대가를 지불한 선물입니다. 그 대가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가 구속받았고, 그분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매우 값비싼 은혜입니다. 그 값비싼 은혜가 우리에게는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그 값비싼 은혜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은 믿음뿐입니다. 우리의 어떤 행함도, 공로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반응할 뿐입니다. 우리는 매우 값진 것들이 값없이 주어진 은혜라는 것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가장 소중한 생명조차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도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하는데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마땅히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용서와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 받을 자격이 없고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혜를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랑과 차별을 완전히 배제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의는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배제합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 중에서 빠져야 하는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 오직 은혜의 복음은 인간의 자랑을 완전히 배제합니다. “그렇다면 자랑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어떤 법으로입니까? 행위로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입니다”(27절). 자랑은 인간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교만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는다면 반드시 제거되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 자랑입니다. 자랑의 다른 말이 ‘자기 의’입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믿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기 의’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둘째, 오직 은혜의 복음은 인간 안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차별을 배제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22절). “하나님이 유대 사람만의 하나님입니까? 이방 사람의 하나님은 아닙니까? 진실로 이방 사람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할례받은 사람도 믿음으로 인해, 또한 할례받지 않은 사람도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고 인정하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29~30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만을 요구하심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율법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모든 이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길이 오직 한 길이기에, 오직 은혜와 믿음이라는 한 길 안에서 믿음을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오직 한길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의롭게 됩니다. 그 길 안에서 아무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외에 어떤 요소로도 하나님께 나갈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떤 요소로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를 의롭다 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를 구속할 이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을 받고, 예수님 안에서만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차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서 밖에 있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다음 네 가지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소유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의’를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셋째, ‘하나님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로서만 이뤄졌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의’는 오직 믿음으로서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오직’이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인간의 불의함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오직 은혜로 얻은 구원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감사와 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2-07-23 제1403호
[주일강단]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빌 2:5~8 / 노치형 목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부르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한번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말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과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때가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는 베드로가 고백했고, 우리가 고백하는 바로 그 고백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거짓과 죄악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신 구원자,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사건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에 더 큰 희망이 생겼고, 우리의 목적지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구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날마다 우리의 고백이 된다면 구원받은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거짓에 매어 있고, 흔들리고, 고민하고, 낙망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자라서 죄악으로 가고, 죄악 된 세상을 바꿔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을 만납니다. 죽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많지만, 그것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구원자 예수님을 만났고, 들었고, 알고 있습니다. 이제 더 깊이 만나야 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자의 위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지만,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셨지만 기득권을 취할 것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한 그대로 살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두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네 가지 이유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두시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문제의 핵심은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곳으로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더욱 불안하고, 초조하고, 조급하고, 쉽게 절망하는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숨기려고 합니다. 숨기고자 하는 마음은 상처 때문에 생겼습니다. 마음이 쉽게 상처 받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상처 속에서 자랐는데 잘 성장했다는 것은 상처에 잘 대응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또 감정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감정을 바르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치유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성경 인물들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아담과 하와의 ‘잘못된 수치심’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잘못된 수치심을 가졌습니다. 육체적인 노출을 부끄러워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에는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가인의 ‘잘못된 인정 욕구’입니다. 가인의 잘못된 인정 욕구는 하나님이 한번 자신의 예배를 거절했다고 해서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예배는 한 번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의 거절이 가인의 마음을 무너지게 했습니다. 셋째, 사울의 ‘억압된 기억들’입니다. 사탄은 사울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넷째, 요나의 ‘상한 감정들’입니다. 하나님이 본인이 원하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고 감정이 상한 것입니다. 다섯째, 38년 된 병자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모든 희망과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낫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시는데도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여섯째, 가룟 유다의 ‘과중한 책임감’입니다. 유다의 리더들이 예수님을 잡자마자 가룟 유다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무관심하게 대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완전히 무너집니다. 순간의 성취가 절망의 공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책임감이 겹치고 또 겹치다 보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러한 마음을 바르게 풀지 못하면 결국 분노로 가게 됩니다. 분노는 결국 폭력으로 이어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극단적인 선택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선택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모든 인류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히 12:2). 예수님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셨습니다(마 3:17, 17:5). 예수님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하나님과 대화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이든 밤이든, 일이 많든 적든,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믿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이 온전한 치유를 체험하려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복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태아에게까지 침투해 있는 죄악의 영향력을 정결하게 해주시려고 둘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태아에게까지 침투해 있는 죄악의 영향력을 정결하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죽음의 결과가 죄로부터 온다고 말씀합니다. 죄의 침투력이 태아에게까지 간다고 말씀합니다. 죄는 거짓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거짓된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자녀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죽음으로밖에 갈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거짓, 죄악, 죽음의 침투력이 태아에게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태아로 오셨고, 태아로 죽는 아이까지 죄와 거짓과 죽음의 영향력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태아까지도 정결하게 하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합니다. 생명과 죽음의 무한 반복의 허무함을 완전하게 끊어 버리기 위해서 셋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생명과 죽음의 무한 반복의 허무함을 완전하게 끊어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낮춰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8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여기서 ‘멸망한다’는 것은 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죽음과 생명을 반복하는 허무의 공허함을 완전하게 끊어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부활 생명의 탈출구 알려주시기 위해서 넷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죽음 이후에 경험하게 될 부활 생명의 탈출구를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부활 생명은 죽음의 세력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탈출구를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탈출구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가 가장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부활 생명만이 탈출구입니다. 그것을 믿고 따라가는 자만이 마지막의 아름다움을 예수님과 함께 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빌 2:9~11절). 부활의 탈출구는 우리가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라고 선포할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우리를 거짓과 죄악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신 구원자,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자의 위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선포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요, 구원자요, 심판자”임을 고백할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며, 태아 때부터 영향력을 받고 있던 거짓과 죄악과 죽음으로부터 해방 시켜 주실 것입니다. 부활의 탈출구로 인도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증거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갈라지고 무너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삶을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사명을 맡았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소망이요, 예수가 우리의 생명이고, 예수가 우리의 사랑이심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기쁨으로 안내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그 아름답고 눈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2-07-16 제1402호
[맛있는 말씀 해설]“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마 18:20) 맛있는 말씀 해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마태복음 18장 20절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모임에서 혹은 교제하는 중에 자주 언급하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대체로 이 말씀을 공동체의 규모가 작거나 소수의 구성원일지라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것이라면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그 모임과 공동체를 축복할 때 사용하곤 한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정말 그 맥락에서 주신 것일까? 이 말씀이 등장하는 마태복음 18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그의미와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매우 특별한 상황 즉,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범죄와 용서에 대한 훈육 상황을 배경으로 주어진 말씀이다(마 18:15~20). 예수님이 죄를 짓고 서로 갈등 중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가르쳐주셨는데, 죄로 인하여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 취해야 할 실제적인 단계를 열거하셨다. 첫째, 만일 어떤 형제가 죄를 범했다면 그 당사자하고만 권면해서 화해를 도모하라는 것이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 18:1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리스도인들의 용서와 화해의 첫째 방법은 개인적이고, 은밀한 권고에 있다. 이렇게 하면 당사자의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화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개인적인 권면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용서와 화해의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두세 명의 증인을 개입시켜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마 18:16). 이것은 범죄한 형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신중하게 이 문제를 다루라는 의미로 주어졌다. 셋째,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의 기회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교회의 권위로써 해결할 것을 말씀하셨고, 그럼에도 끝까지 거부한다면 그를 불신자와 같이 여기라고 선언하셨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 예수님은 죄 문제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교회에 맡기셨다. 곧 ‘매고 푸는’ 신적 권위가 교회에 주어졌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확신을 주신 것이다(마 18:18). 오늘 말씀은 범죄한 사람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문제, 나아가 교회의 합법적인 권징에 대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예수님은 범죄한 사람에 대하여 교회가 어떠한 결정을 이루고자 할 때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19절)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의 일치된 기도가 필요하고, 하나님은 여기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두세 사람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서 죄의 문제, 화해 혹은 징계의 문제라는 어려운 일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간구하는 교회가 바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이라는 표현이 담고 있는 진정한 맥락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함께 있을 거라는 약속이다.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자리와 때로는 안타까울지라도 징계를 선언하는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함께 하실 거라는 약속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징벌이 아닌 화해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 단락 전후에 일관성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한 마리의 양도 잃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뜻을 보여준 ‘잃어버린 양의 비유’(마 18:12~14) 바로 뒤에 이어지고,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이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해 징계를 받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 비유’(마 18:21~35) 바로 앞에 있다. 이 두 가지 비유는 누군가 죄를 지었거나 혹은 그릇된 길로 가버린 사람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마태복음 18장 20절 말씀을 일반적인 예배 모임이나 기도 모임, 친교의 자리에서 사용한다면 그것을 굳이 틀린 적용이라고 지적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왜냐하면 그 모임이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라면 근본적으로 사람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할 것이며, 서로에게 피차 죄를 용납하고 화해하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구절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공동체 사이에 놓여 있는 죄와 범죄에 대해 더욱 간절한 청산을 소망하며, 서로를 용서하고 더욱 성숙한 화해를 이루려는 소망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끝없는 용서와 온전한 화해를 이루는 모임에 함께 하신다. / 이해영 목사(남양주온누리교회)
2022-07-16 제1402호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고아를 돌보셨을 것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고아를 돌보셨을 것이다! 자립준비청년과 위기청년 섬기는 ‘선한울타리사역’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 한다. 인생에는 반반 선택지가 없다. 무엇인가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크리스천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 기준이 무엇일까? 예수님이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 확실하고 흔들림 없는 선택은 예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지면에서는 선택의 순간 예수님의 뜻과 생각을 묻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성도와 사역팀을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할 주인공은 사회선교부 ‘선한울타리사역팀’이다. 선한울타리사역팀은 자립준비 청년(보호종료아동: 만 18세 되어 보육원을 퇴소하는 청년) 및 가정불화로 인한 위기 청년들을 위한 종합적인 자립지원사역을 하고 있다. 주거지원(선한울타리센터), 멘토링, 신앙훈련, 자립 훈련 등의 사역을 통해서 자립준비청년들과 위기청년들이 사회에 건강하게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선한울타리사역팀이 강서구 화곡동에 남성 자립준비청년과 위기청년들을 위한 선한울타리센터를 오픈했다.사진 위는 선한울타리센터 전경, 아래는 숙소 내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인데 비자발적으로 사회에 나가야 하는 청년들이 있다. 자립준비 청년들이다.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다. 자립준비 청년은 ‘보호종료아동’의 새로운 이름이다. 아동양육시설(보육원),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가 되면 보호가 종료되는 청년들을 말한다. 자립준비 청년(보호종료아동)들은 그 시작부터가 힘들고 버겁다. 시설을 퇴소하면서 소정의 자립정착금을 받는데, 지자체마다 금액이 다르다. 대략 500만 원 정도다. 그 돈으로 숙소를 마련하고, 살림살이를 구매해야 한다. 정부에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자립 수당 30만 원을 3년 동안 지원해준다. 지난해부터 5년으로 지원 기간이 연장되었지만 매달 월세와 식비 등을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자립준비청년들이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의식주가 불안정하다. 학업이나 진학은 꿈꾸기 어렵다.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오면서 어둠의 손길이 내미는 유혹을 뿌리치기도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정서적 외로움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은 힘들고 고민이 생겨도 도움이나 조언을 구할 믿을 만한 어른이 없다. 한 해 평균 자립준비청년 2,500명이 준비되지 못한 채 사회로 떠밀려 나오고 있다. 사회선교부 선한울타리사역팀에서는 자립 준비 청년들의 딱한 사정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2020년 제이홈(온누리교회 입양위탁가정 커뮤니티)을 주축으로 선한울타리사역팀을 조직했다. 선한울타리사역팀의 첫 사역으로 지난해 3월 용산구 보광동에 숙소를 마련해 여성 자립준비청년 1명을 지원했다. 올해 선한울타리사역의 지경이 확대됐다. 강서구 화곡동에 남성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숙소 ‘선한울타리센터’(강서구 화곡동)를 오픈했다. 화곡동 선한울타리센터에는 자립준비청년, 가정불화로 길거리에 내몰린 위기청년 등 도움이 필요한 청년 5명이 입주했다. 선한울타리센터 무상임대한 김을형 집사 화곡동 선한울타리센터가 개소할 수 있었던 것은 김을형 집사의 헌신 덕분이다. 선한울타리센터 건물을 김을형 집사가 제공했다(5년 무상임대). 김을형 집사는 선한울타리사역에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소유 건물(다가구주택)을 흔쾌히 쾌척했다. 건물 리모델링 비용총 1억5천만 원 중에서 1억2천만 원도 부담했다. 김을형 집사는 정말 겸손했다. 오히려 섬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그에게서 작은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에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무상임대할 수 있어서 오히려 제가 감사하고 기쁩니다.” 김을형 집사는 오랜 기간 주재원으로 일했다. 1987년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6년, 미국에서 8년, 동티모르에서 2년을 지냈다. 김을형 집사의 어머니는 아들이 타국에서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한국에 작은 건물을 지었다. 바로 그 건물을 선한울타리센터로 무상임대했다. 사실 김을형 집사의 기부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모교(대학교)에도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김을형 집사가 기부 활동을 이어가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제가 돈을 벌고 재산을 불리게 된 경위를 보면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고백밖에 할 게 없습니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제 능력으로는 재산을 모을 수 없었습니다. 돈이 선한 쪽으로 흘러가면 하나님께서 갑절로 채워주십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은 제 것이 아닙니다. 잠시 맡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깝다고 여기지 않고 기부할 수 있습니다. 선한울타리사역에 기부한 이유는 이제 만 18세밖에 되지 않은 청년들에게 스스로 살라고 등 떠미는 것은 그들을 두 번 버리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진 것으로 그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김을형 집사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게 된 청년들에게 따뜻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배고파 봐야 배부름의 감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절대로 처지를 비관해서 주저앉지 말고, 남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만 18세 청년들은 아직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 조희망 형제(가명, 25세)가 화곡동 선한울타리센터에 입주했다. 조희망 형제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을 나왔다. 새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나와 함께 살았는데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했습니다. 형과 누나도 많이 때렸고요. 매 맞는 어머니를 보면서 새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커졌습니다. 불안정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너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희망 형제의 3남매 모두 불안하고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 친형과 누나는 일찌감치 가출했다가 여러 범죄와 사고에 연루돼 소년원에 갔다. 그 여파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형은 교도소에, 누나는 결혼해 아이를 둘 낳았는데 얼마 못 살고 이혼했다. 조희망 형제는 고등학교 때부터 오토바이 배달과 공사장에서 막일하면서 모은 돈을 들고 가출했다. 친구 집에서 지내기도 하고, 운 좋게 정부에서 지원하는 LH 임대주택에 들어간 같은 처지의 친구에게 몸을 잠시 의탁하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빌라를 임대해서 살기도 했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보증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날 위기에 처한 그에게 선한울타리사역팀과의 만남은 기적 그 자체였다. 하나님이 주신 보금자리가 틀림없다. 조희망 형제가 선한울타리사역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곳저곳 전전하면서 몸도 마음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새아버지 원망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저는 부모가 있는데도 고아처럼 지냈습니다. 너무 외롭고 힘들었는데 온누리교회와 선한울타리사역팀 덕분에 마음 편히 지낼 보금자리가 생겼습니다. 선한울타리센터에 입주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가장 큰 걱정거리가 해결되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지금 신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새 보금자리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혹자는 만 18세면 다 큰 성인인데 왜 도와줘야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 18세는 다 큰 성인이 아니다.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할 나이다. 청소년기본법에서는 만 24세까지를 청소년으로 간주한다. 우리나라 민법은 만 19세 이상, 선거법은 만 20세부터 성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 18세는 미성년이다. 그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사회에 적응하도록 교회가 끝까지 도와야 한다. 예수님이라면 그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 68:5). 문의: 사회선교부 02-3215-3434, 3436 후원: 온누리교회-선한울타리 하나은행 573-910020-36505
2022-07-16 제1402호
[혐오사회에 사랑심기] 젠더혐오 /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줘라! 크리스천의 또 하나의 사명 ‘혐오사회에 사랑심기’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줘라! 젠더갈등 원인 ‘인간의 죄성’, 해결책 ‘창조질서 회복’ 갈등과 다툼, 분열이 만연하다. 그래서 오늘날을 가리켜 ‘혐오의 시대’라 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차별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혐오(嫌惡)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다른 세대와 성별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모습의 이웃을 품지 못하고,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나’를 잣대로 세우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경계의 대상이 된다. 그 잣대에 만족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도 혐오 대상이다. ‘젠더혐오’도 그렇다. 서로 다른 성별의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누가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지 저울질하며 서로를 헐뜯는다. 사회 문제로까지 번진 젠더갈등과 젠더혐오를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한은경 권사(두란노어머니학교)에게 그 해답을 물었다. / 편집자 주 요즘 젠더갈등과 젠더혐오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가장 크고 중요한 사회적 갈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사랑하기 바빠야 할 2030 남녀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하고, 비난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젠더갈등과 젠더혐오의 해결책을 찾기 전에 그 시작과 이유를 아는 것이 좋겠다. 젠더갈등과 젠더혐오의 시작에 페미니즘(feminism,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이 있다. 많은 여성이 페미니즘에 호의적이다. 꼭 필요한 운동이자 깨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가치관이라 여긴다.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온 여성들이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다. ‘성(sex, gender, Sexuality)으로부터 기인하는 차별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남아선호사상,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아온 한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감한다. 우리 세대만 해도 여성이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착취당하기 일쑤였다. 나만 하더라도 아버지께 “쓸데없는 가시나”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듣고 자랐다. 다행히 우리 집은 어머니께서 딸들도 공부를 시켜주셨지만,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다.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 들어가 돈을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태거나 오빠와 남동생 뒷바라지를 했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니 그 존재의 가치가 얼마나 폄하되었는지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죄성… 남성들 대부분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점을 공감한다. 그런데 최근 2030세대 젊은 남성들은 “남성이 오히려 역차별 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이전과 달리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이 시대를 반영하는 말 중 하나다. 젊은 남성들은 교사와 간호사 등 특정 직종 취업에서 역차별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실제 초·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남자 교사 비율이 전체 30%에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초등학교는 20%를 겨우 웃도는 정도다. 이 때문에 남성 할당제에 대한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여성들은 또 어떤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유리천장에 반발한다. 유리천장은 ‘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이다. 실제 지난 3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를 집계했는데, 한국이 10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주요 상장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8.7%로 조사 대상국 중에서 한국이 가장 낮았다. OECD 평균은 28%다. 이러한 사회현상이 지속하면서 남녀의 관계가 어느 순간 경쟁 구도에 들어섰다. 누가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는지, 어느 편에 혜택을 줘야 마땅한지 저울질하기 바쁘다. 조금의 이해와 양보도 없이 서로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리는 지경이다. 내가 쥐고 있는 것 중에서 하나라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갈등을 빚고, 결국 서로를 미워한다. 남녀가 서로를 미워하는 젠더갈등과 젠더혐오의 원인은 결국 ‘인간의 죄성’이다. 인간의 죄성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만들어낸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性)을 이분법적인 사고로 나누고, 성별로 팀을 맺어 상대를 재단하게 만든다. 돕는 배필로 창조된 남과 여 젠더갈등과 젠더혐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어느 한 성별에 권력을 주신 적이 없다. 서로를 평등하게 만들어졌고, 상보적인 관계로 창조하셨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성되도록 관계를 형성해두셨다. 많은 여성이 기독교를 “가부장적인 종교”라고 말한다. 그 주장의 근거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는 말씀을 인용한다. 나 역시 말씀을 제대로 깨닫기 전에는 이 말씀이 불편했다. 하나님이 왜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시는지, 존경할 부분이 없는 남편을 왜 존경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여성들의 행복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숨겨 있다. 그 말씀 뒤에 이어지는 남편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함께 봐야 이해가 쉽다. 하나님은 남편들에게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고 하셨다. 왜 하나님은 아내들에게 남편을 존경하라고 하셨고,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을까? 먼저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남자들은 인정받을 때, 여자들은 사랑받을 때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낀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정체성을 확립한 후에야 남을 돌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내에게 인정과 존중을 받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수 있고, 남편에게 사랑을 받은 아내가 남편을 존경할 수 있다. 남편을 향한 아내의 복종,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남편이 위에 있는 존재이기에 복종하고 존경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남편을 존중하라는 말의 뜻은 결국 여성이 행복해지는 방법, 즉 남편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각자 다른 남녀의 역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돕는 배필로서 평등한 관계로 창조하셨지만, 분명 차이를 두셨다. 신체적, 정서적, 심지어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까지 차이가 있다. 남성은 여성보다 신체적 능력이 우월하다. 키가 더 크고, 근육량도 많고, 힘이 세다. 반면 여성은 남성보다 정서적 능력이 더 뛰어나다. 더 잘 공감하고, 이해하고, 남을 보살필 줄 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남자와 여자에게 각기 다른 능력을 주셨을까? 하나님께서 차이를 만드신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보면 남자는 죽도록 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더한다고 하셨다(창 3:16~17).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남자에게 신체적인 능력을, 자녀를 낳고 기르기 위해 아내에게 정서적인 능력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에 따른 역할을 이해해야 진정한 평등을 얻을 수 있다.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때 비로소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나님이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청년들을 위한 기도로 글을 마치고 싶다. “사랑의 하나님, 많은 청년이 혼란 가운데 있음을 아시지요? 청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거듭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미래를 알게 하시고, 말씀 안에서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하옵소서.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는 관계임을 깨닫고, 주님 뜻 안에서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가는 청년들이 되게 하소서.”
2022-07-02 제1400호
안전관리위원회가 제안하는 건강한 여름나기! 안전관리위원회가 제안하는 건강한 여름나기! 여름은 외부활동이 늘고, 고온다습한 데다 자연재해가 잦아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 계절이다. 교회에서 계획한 여름 행사를 은혜롭게 마무리하려면 기도로 준비하고, 위험요소들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지혜를 이미 주셨다. 성경에는 건축, 통행, 질병, 식품안전 등에 관한 매뉴얼이 율법 형식으로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성경은 백성들의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최초의 ‘안전매뉴얼’인 셈이다. 이번 여름 야외활동할 때 숙지해야 할 안전 관련 주의사항을 유형별로 정리했다. 1. 감염병 예방 1) 코로나19 코로나19 감염자가 크게 줄었지만, 아직 소멸한 상태는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종이 계속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손 소독 및 손 씻기 등 기본 수칙을 생활화하고, 실내 활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백신 접종 및 감염 후유증이 있는 사람들의 면역력 저하가 예상되므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무리한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수칙> 손 씻기 생활화 기침 예절 실천 올바른 마스크 착용 물놀이 여분의 마스크 준비 다중이용시설 에어컨 및 선풍기 바람 직‧근접 지양 이상 증세 있으면 신속한 검사 및 외부 접촉 자제 2) 원숭이두창 원숭이두창(Monkeypox)은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질환이다. 증상이 있는 감염자와 밀접 접촉을 통해서 감염된다. 미국질병청(CDC)에 따르면 감염자의 혈액이나 체액이 피부 상처 및 점막에 직접 접촉할 때 감염된다. 원숭이두창의 특징은 코로나19에 비해 전염력은 낮지만, 잠복기가 길고(최대 21일), 뚜렷한 증상이 없어서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주요 증상은 발열, 피부 발진 등이다. 발진은 발열 이후 1~3일 이내 시작하고, 머리부터 시작해 전신으로 퍼진다. 항공기나 버스 등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사례는 없지만, 수영장 등 이용자 밀도가 높은 다중이용시설에서는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원숭이두창 감염 예방수칙> 감염 환자 및 의심자 직간접적 접촉 금지 감염 의심자 접촉 물품 사용 금지 손 씻기 및 알코올 손소독제 사용 생활화 원숭이두창 유행지역 여행 자제 발생 우려 지역에서 매개 의심 동물 접촉 지양 2. 여름철 질병 예방 1) 식중독 여름철 가장 흔한 질병 중 하나가 식중독이다. 식중독은 음식물 섭취를 통해 소화기가 감염되어 설사, 복통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질환이다. 식중독은 주로 식품에 들어 있는 미생물이 생산한 독소, 동식물 자체에 내재한 독소, 화학 물질에 의한 중독, 세균에 의한 감염 등으로 발생한다. 식중독균에 감염되면 복통과 설사, 고열, 어지럼증 등이 수반되어 건강을 해치고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게 된다. <식중독 예방수칙> 지하수 끓여 먹기 조리 및 섭취 전 손 씻기 등 청결 관리 육류, 해산물 등 생식 금지 야생 채취 버섯 및 열매 섭취 지양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안전 보관 상온에 3시간 이상 방치된 음식물 폐기 신선한 식재료 선별 사용 식품 조리 전 사용 기구 세척 및 소독 육류, 해산물 칼/도마 구분 사용 유통기한 경과 및 보관 불량 식재료 폐기 위생상태 검증된 식당 이용 2) 고체온증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에 달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우리 몸에도 이상이 생기기 쉽다. 고체온증은 우리 몸에 필요한 수분과 염분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이상 증세다. 단계별로 증세 차이가 있다. 불볕더위에 장시간 노출되면 ‘열경련’이 발생한다. 근육에 쥐가 나는 것 같은 통증이 팔과 다리 등에 나타난다. 정도가 더 심해지면 ‘열피로 현상’을 보인다. 무더위로 숨이 막히는 상황에서는 몸이 무기력해지는데, 갈증이 심하고 어지러우며 속이 메스꺼운 증상이 나타난다. 이 단계가 지나 땀이 계속 나고 맥박이 빨라지면 위험한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 이 단계가 바로 ‘열사병’이다. 상태가 심하면 체온이 39℃ 이상 오르고, 의식을 잃고 쓰러질 수 있다.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열경련과 열피로 단계는 시원한 곳에서 쉬면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면 진정되지만, 열사병의 경우는 응급조치 이후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고체온증 예방수칙> 물을 자주 마셔서 충분한 수분공급 직사광선에 노출 시간 최소화 충분한 휴식 및 체온 유지를 위한 샤워 제철 과일 충분한 섭취로 영양 보충 공기 소통 잘 되는 편한 옷 착용하고 외출하기 불가피한 외부 활동을 할 때 모자와 선글라스 착용 폭염주의보 등 기상특보 숙지 카페인/알코올 음료 자제, 미네랄/염분 섭취 3. 야외 활동 주의사항 산이나 들, 강이나 바다 등지에서 활동할 때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 상황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일부는 사고로 이어진다. 돌발상황에 대한 준비나 대응이 소홀하면 그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 현지 사정에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길을 잃거나 고립될 수 있고, 뱀에 물리거나 벌에 쏘여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며, 진드기 등에 물려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야외활동 사고 예방수칙> 어두워지기 전에 안전한 장소로 복귀 인적 드문 휴대전화 불통 지역 진입 자제 해안 갯벌이나 섬을 방문할 때 만조시간 숙지 계곡에서는 국지성 강우 대비 범람 가능성 대비 뱀에 물린 부위에서 5~10cm 떨어진 곳을 끈으로 묶고 병원 이송 벌떼의 공격을 받으면 머리 감싸고 30m 이동, 곤충용 퇴치 스프레이 사용 방어 벌에 쏘이면 신용카드 등을 이용해 벌침 제거하고, 항히스타민제 복용 및 병원 치료 쓰쓰가무시병 등 유행지역에서는 야외 노출 행동 자제 4. 장마 및 홍수 장마로 누적 강수량이 많거나 집중 호우가 내리면 저지대 주택 등이 침수되거나 하천 제방이나 도로가 유실되어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산사태나 범람 등으로 재산 손실은 물론이고, 인명피해를 동반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침수와 함께 감전 사고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장마 및 홍수 사고 예방수칙> 폭우로 침수가 예상될 때 누전 차단기를 작동해서 전기 공급 차단 손이 젖은 경우 고무장갑 등 활용해서 전기 공급 차단 침수 때 가로등, 교통 신호 제어함 등 공공 전기 설비 접근 금지 과거 침수로 고립 이력이 있는 지역 진입 자제 도로유실 위험이 있는 산복도로 및 제방 도로 통행 자제 차륜이 2/3 이상 물에 잠긴 도로 구간 진입 금지 5. 여름철 차량 이용 여름철에는 교통사고 외에 차량 관련 주의사항이 있다. 차량 실내 온도가 상승하면서 차 안에 있는 인화성 물질에 의한 화재가 발생할 수 있고, 어린이나 애완견 등을 홀로 차내에 머물게 하면 질식사 위험이 크다.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적정한 휴식을 취하면서 운전 피로에 의한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여름철 차량 안전을 위한 예방수칙> 휘발성 액체나 기체가 담긴 제품 차내 방치 금지 엔진 공회전 상태로 장시간 에어컨 가동 금지(1시간 이상) 노후 차량의 경우 배선계통 등 사전 점검하고 사용 노상 및 외부공간 주차 때 창문 일부 개방 에어컨 가동하고 밀폐된 차량에서 수면 금지 전세버스의 경우 차량 노후도 점검(차량검사증, 타이어마모 등) 장거리 운전할 때 2시간마다 휴식 6. 해외출입국 이번 여름에는 해외 아웃리치 등 봉사활동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유보됐던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변경된 출입국 관련 내용과 해외안전 정보를 숙지해서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을 해야 한다. <해외출입국 안전 예방수칙> 여행 대상국 코로나19 관련 백신 접종 및 PCR 검사 요구 기준 확인 전염병 창궐 및 감염 우려 지역 방문 자제 현지 의료실정 파악하고 필수 의약품 등 사전 확보 말라리아 예방 접종 등 방역 관련 필요를 사전에 확인 및 준비 테러위험, 분쟁지역 등 여행경보단계 사전 숙지 이후 이동 경로 설정 방문지 기상여건 및 지역 환경을 고려한 복장 준비 격오지 등 험지 이동할 때 비상 연락망 유지 도난 및 강도 대비 개별이동 지양, 귀중품 분산 보관 온누리교회 안전관리분과위원회에서는 성도들의 안전한 신앙생활을 위해 교회 내외의 사고 예방 활동을 수행하고, 아웃리치 등 단체 외부활동과 관련한 안전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안전관리분과위원회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언제든지 달려가 섬긴다. 부디 여름철 안전을 위한 주의사항들을 잘 숙지하고 활용해서 은혜로운 여름 보내시기를 바란다. / 박용훈 팀장(서빙고 안전관리위원회)
2022-07-02 제1400호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명을 지키셨을 것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명을 지키셨을 것이다! 생명 지키고 살리는 청년들 ‘라이프 가드’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후라이드치킨을 먹을까? 양념치킨을 먹을까? 그 고민 끝에 짬짜면이 나왔고, 반반치킨이 나왔다.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인생에는 반반 선택지가 없다. 무엇인가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크리스천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 기준이 무엇일까? 예수님이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 확실하고, 흔들림 없는 선택은 예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지면에서는 선택의 순간 예수님의 뜻과 생각을 묻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성도와 사역팀을 소개한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대학부(허브, 하늘, Pole2) 청년들이 생명 지키는 '라이프 가드' 봉사를 하고 있다. 위부터 차례대로 베이비박스 봉사팀, 아름다운피켓 봉사팀, 안산M센터 봉사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나 4:10~11). 성경은 한결같이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매우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다(요 3:16).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5:9).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으로 그 사랑을 몸소 증명하고 실천하셨다.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 크리스천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생명을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 크리스천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여기, 생명을 지키는 사명을 완수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 청년들은 대학부 ‘라이프 가드(Life Guard)’ 활동에 흠뻑 빠져있다. 라이프 가드는 온누리교회 3개 대학부(하늘, 허브, Pole2대학부) 청년들이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봉사팀의 이름이다. 분야는 총 4개다. 베이비박스와 미혼모를 돕는 팀(아이돌봄팀, 봉사지원팀), 안산M센터 이주민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을 돕는 팀, 낙태 반대 운동을 하는 단체 ‘아름다운피켓’의 캠페인을 돕는 팀, 청운노인복지센터 어르신들에게 서비스와 도움을 제공하는 팀이다. 팀마다 적게는 열 명부터 많게는 80여 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미혼모와 아기, 태아를 지킨다! 김경민 자매(허브대학부)는 베이비박스 아이 돌봄 봉사하면서 처음 갓난아기를 안아봤다.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목을 못 가누는 아기를 안는다는 게 처음에는 부담이 됐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하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베이비박스 봉사를 하면서 그렇게 작은 아기를 처음 봤습니다. 처음 아기를 안았을 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내 눈에도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한 아기인데, 하나님께는 얼마나 더 귀하고 소중한 생명일까?’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김경민 자매는 평소 미혼모를 섬기고 싶었다. 그녀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봤는데 개인이 봉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교회에서 미혼모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봉사를 기획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대학부 예배 광고에서 ‘라이프 가드’ 팀원 공고가 났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신청했다. 라이프 가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감동과 보람을 담뿍 체험하고 있다. “아기를 못 키우겠다며 베이비박스에 놓고 간 엄마가 오늘 왔더라고요. 힘들더라도 자신이 아기를 키우겠다면서 찾아온 것입니다. 정말 기쁘고 너무 잘됐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안타까운 점도 있다. 베이비박스 아이돌봄팀은 일주일에 네 번(월, 화, 수, 금요일) 주사랑공동체를 방문해서 아기들을 돌본다. 여러 명의 봉사자가 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한 명만 가서 봉사한다. 주사랑공동체 환경과 여건상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돌봄팀에 87명이나 지원했는데 모두 참여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주사랑공동체 공간 자체가 협소하기도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인원이 오는 것을 주저하더라고요. 한 번에 한 명만 가서 아이를 돌보고 옵니다.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중보기도로 달래고 있습니다.” 김경민 자매가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친부모가 아기를 찾아가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끝까지 부모가 아기를 찾지 않아서 외로이 자라는 아기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육의 부모는 곁에 없지만, 영의 부모 하나님이 그 아이들을 지켜주시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미혼모들과 아기들을 실제로 돕는 일에도 관심 가져 주십시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운동에 동참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현장을 직접 경험해보시기를 권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송지나 자매(허브대학부)는 ‘아름다운피켓’ 생명존중 캠페인에 함께 하고 있다. 아름다운피켓은 낙태 반대 및 태아의 소중함을 알리는 프로라이프 비영리 단체다. 송지나 자매와 청년들이 지난 5월 5일 아름다운피켓이 신촌에서 진행한 어린이날 캠페인에 봉사자로 참여했다. “젊음의 거리 신촌에서 낙태 반대와 태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홍보하는 캠페인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민이 호응해주시고, 퀴즈나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기뻤습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아름다운피켓의 생명존중 캠페인을 오해하는 일부 시민들의 항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이 호응해주셨는데, 더러 거칠게 항의하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이런 행사를 어린이날에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 행사 목적이 무엇이냐, 자기는 우리의 의견(태아도 생명이다)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항의하더라고요. 일부 시민이 아름다운피켓의 생명존중 캠페인을 오해하고 항의하는데 당황해서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쉽습니다.” 아름다운피켓의 생명존중 캠페인을 하면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고, 낙태에 관한 생각을 바꾸게 만든 수확도 있었다. “사람들이 낙태 반대, 낙태 합법화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러 단체와 미디어에서 낙태 합법을 외치니까 별생각 없이 ‘그런가 보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께 왜 낙태 합법화를 반대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니까 그제야 이해하고 수긍하시더라고요. 우리끼리 낙태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외부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낙태 합법화의 문제를 알려야 합니다. 그 일에 청년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태아를 지키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더 많은 청년이 이 뜻깊은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지킨다! 이지호 자매(허브대학부)는 안산M센터에서 다문화 아이들을 섬기는 봉사를 한다. 이 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다. “학원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이런 마음일까 싶었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어떤 아이인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잖아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이들을 보고 싶고, 함께 있어 주고 싶어서 봉사하게 됐습니다.” 안산M센터 봉사팀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매월 셋째 주 금요일 M센터에 놀러 오는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고, 레크리에이션 하고, 같이 밥 먹는 게 봉사의 전부다. 그런데 그 단순한 봉사가 절대 가볍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줄 때 더 커집니다. 이 사역 하나로 뭐가 달라지냐, 이 아이들이 하나님 믿게 되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조그맣고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열매 맺을 거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사랑과 기도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살릴 수 있고, 세울 수 있고,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라이프 가드 봉사야말로 세상의 빛 역할을 감당하는 사역입니다. 더 많은 청년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2022-06-04 제1396호
이주민 자녀 섬기는 김금희 원장, 정태욱 성도 부부 크리스천이 세상에 보여야 할 자화상 보석보다 귀한 섬김! 이주민 자녀 섬기는 김금희 원장, 정태욱 성도 부부 모처럼 활짝 웃었다. 지난 5월 27일 남양주 썸머힐어린이집에서 열린 ‘한국어말하기 대회’에 참석한 아프간특별기여자 가족들이 말이다. 자녀 걱정은 만국 공통인데 어린이집에 잘 적응한 자녀들을 보면서 아프간특별기여자들의 기분이 얼마나 좋았을까? 아프간특별기여자 자녀들과 이주민 자녀들을 섬기는 썸머힐어린이집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요즘 평생을 다음세대 교육에 헌신한 보람을 만끽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적자를 감수하며 이주민 자녀들을 섬기는 보석보다 귀한 부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매달 수백만 원씩 적자가 나면 어떨까? 아마 하루하루가 끔찍할 것이다.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북누리공동체, 썸머힐어린이집)는 멀쩡한 집까지 팔아서 적자를 메꾸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부는 한 푼이라도 아끼고 더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돈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 김금희 원장, 정태욱 성도 부부가 운영하는 썸머힐어린이집에서는 이주민 자녀들을 돌보고 있다. 다른 어린이집에서는 이주민 자녀들을 돌보기 어렵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말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희 부부는 남양주시에서 썸머힐어린이집 두 곳을 운영하다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리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2017년 무렵 운영이 잘 되던 어린이집은 휴원하고, 나머지 한 곳은 2020년에 정리했습니다.” 다시는 어린이집을 운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에게 다시 썸머힐어린이집을 운영하게 하셨다. 김금희 원장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원아를 모집했다. “어린이집을 3년 휴원하면 다시 개원해야 하는 법이 있습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휴원했으니 다시 개원하라는 교육부의 안내를 받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매월 수백만 원씩 적자가 나던 때라 폐원하고 싶었는데 폐원도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외부 강의를 다니면서 적자를 메꾸려고 노력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뜻이라 생각하고 아파트까지 팔아서 썸머힐어린이집을 다시 살리기로 했습니다.” 망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일 이주민의 자녀들을 돌보다! 심기일전한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는 2020년 썸머힐어린이집 원아를 모집했다. 홍보하느라 노력과 돈이 많이 들었는데 결과가 비참했다. 118명이 정원인데 모집된 원아가 18명에 불과했다. 김금희 원장은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망하니까 그전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망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하지 못하는 일 말입니다.” 정태욱 성도는 2020년 초에 온누리교회 비전헌금 영상을 보고 이주민을 마음에 품었다. 그리고 이주민들의 자녀들을 돌보겠다고 다짐했다. “이주민 자녀 한명을 돌본다고 저희가 더 많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망하지 않았더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긴 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이주민 자녀를 단 한 명이라도 보내 주신다면 주님의 뜻으로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기다렸는데 거짓말처럼 이주민 부모와 자녀가 찾아왔습니다.”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를 찾아온 이주민 자녀는 K국 출신 부모를 둔 은혜(가명)였다.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돌보려는데 등록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은혜가 우리나라와 K국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은 미등록 이주 아동이었기 때문이다. 정태욱 성도가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은혜가 썸머힐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었다. 은혜가 썸머힐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서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가 다시 한번 하나님께 조건을 걸었다. “이주민 자녀 한 명 만 더 보내 주시면 정말 하나님 뜻으로 알고 헌신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성공회 선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장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있는데 한국말을 전혀 못 한다며 도와줄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B국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광호(가명)는 7년 동안 엄마와 함께 집에서만 생활했다. B국에서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엄마 품에서 돌보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선교단체가 수소문 끝에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를 소개했다. “은혜와 광호 같은 아이들을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고 합니다. 전국에 2만여 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부모가 불법체류자여도 국내에서 출생한 자녀가 14세가 되기 전까지는 국가에서 교육을 제공합니다. 이 기간 부모들도 강제 출국을 시킬 수 없습니다. 부모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를뿐더러 아이들을 받아주는 교육기관이 별로 없습니다.” 전국에 이주민 자녀들 돌보는 어린이집이 많아지기를…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는 은혜와 광호를 섬기면서 정말 많은 일을 경험했다. 생소했던 행정절차의 달인이 되었고, 어린이집 학부모들을 설득하고, 이주민 부모들을 교육하는 경험도 했다. 썸머힐어린이집에서는 매주 1회씩 채플을 하는데 이 채플을 통해 이주민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주민 자녀들을 섬기는 게 익숙해질 무렵 남양주온누리M센터에서 아프간특별기여자 자녀들을 섬겨달라는 연락이 왔다. “남양주온누리M센터를 섬기는 한 성도님께서 썸머힐어린이집에서 채플을 하는 것을 기억하고 저희에게 아프간특별기여자 자녀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것은 아프간특별기여자 부모들의 결정이라 저희는 기도만 할 뿐이 없었습니다. 아프간특별기여자 부모들이 남양주 일대 어린이집을 둘러보고 선택한 곳이 저희 썸머힐어린이집이었습니다. 이주민 자녀를 돌본 경험이 없는 다른 어린이집에서는 모두 사양했기 때문입니다.” 김금희 원장은 아프간특별기여자 자녀들과 부모들을 섬기는데 38년 교육 경력을 모두 쏟아내고 있다. 하루하루가 보람차다는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고 있다. “오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를 그동안 훈련 시키셨다고 확신합니다. 아마 제가 38년 교육 경력이 없었더라면, 은혜와 광호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썸머힐어린이집이 아프간특별기여자 자녀들을 섬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아이들이 급하게 아프간을 떠나면서 받은 상처가 아직 많습니다. 그 상처가 아물고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말 큰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는 아프간특별기여자 자녀들을 섬기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다. 전국에 썸머힐어린이집처럼 이주민 자녀들을 섬기는 어린이집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김금희 원장과 정태욱 성도 부부의 삶이 풍성해지기를 온누리가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 “미등록 이주민 자녀들이 고립되지 않고, 신앙을 어린 시절부터 썸머힐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전국의 기독어린이집에서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섬기는 기쁨이 너무 커서 재정의 어려움을 잠시 잊고 있지만, 저희 가정의 재정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를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2022-06-04 제1396호
환경 지킴이 ‘박희윤 집사’ 크리스천이 세상에 보여야 할 자화상 평범함의 위대함! 환경 지킴이 ‘박희윤 집사’ 평범하게 사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꾸준하게,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은혜다. 여기, 평범함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한 성도가 있다. 그 주인공은 대전온누리교회 ‘박희윤 집사’다. 지난 5월 22일 “특출난 게 없어서 도무지 인터뷰할 게 없다”는 박희윤 집사를 만났다. 세종특별자치시 금강변을 걸으면서 주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방에 늘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너무나도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의 신앙과 삶 이야기를 들었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박희윤 집사는 주일이면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가끔은 걸어서 교회에 오기도 한다. 작은 실천이 무너진 창조질서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택시를 이용할 때는 전도도 한다. “사실 승용차를 타고 교회 오는 게 더 힘듭니다. 주차하려면 여간 신경 쓸 게 많거든요. 대중교통으로 교회에 오면 집에서 조금 일찍 나오는 수고는 감수해야지만, 장점이 훨씬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서 건강도 지키고, 환경도 지키잖아요? 저는 택시를 타면 잔돈을 안 받거나 요금보다 조금 더 드립니다. ‘요즘 밥값도 많이 올라서 부담이 큰데 점심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하면 기사님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도 알릴 수도 있고요. 주보나 온누리신문을 전해줘도 좋습니다.” 집에서는 안 쓰는 전기 코드 뽑는 것이 기본이다. 장을 볼 때는 장바구니를 챙기고, 종이 영수증을 받지 않는다. 식당에서 식사한 뒤에는 “음식이 정말 맛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희윤 집사에게는 화장실에서 물 아끼기, 중고거래, 텀블러 이용, 골프채로 보행기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선물하기 등 평범하지만 위대한 습관이 20가지쯤 더 있다. 평범한 위대함이 모여 자칭타칭 ‘환경 지킴이’ 박희윤 집사를 만들었다. 평범한 공무원, 자나 깨나 환경을 생각하다! 박희윤 집사는 신앙생활도 평범하게 시작했다. 박희윤 집사는 결혼하면서 아내 유금은 권사의 권면으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 꼭 감고 교회에 다녔더니 믿음이 생겼다. “우리 유 권사가 결혼하려거든 교회를 꼭 다녀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 마음이 몹시 가난했던 모양입니다. 말씀이 참 달고, 성도들과 교제가 정말 좋더라고요. 별 탈 없이 교회를 다녔습니다. 대전온누리교회는 2007년부터 출석했습니다.” 박희윤 집사는 직장생활도 평범했다. 대전광역시에서 일반행정공무원으로 41년을 근무하다 몇 년 전 정년퇴직 했다. 박희윤 집사의 말에 의하면 본인은 늘 기본을 지키는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늘 시민들을 위하고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조금 더 편안할까 고민하는 자세’가 공무원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공무원이 지켜야 할 기본과 자세를 늘 잊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상을 주시더라고요. 청렴결백한 공무원들에게 수여하는 상 ‘청백리상’을 받고 특별승진도 했습니다.” 박희윤 집사가 자나 깨나 환경을 생각하게 된 것도 공무원 시절 환경업무를 담당하면서부터다. 박희윤 집사는 대전시청 환경부서에서 근무할 당시 시에 ‘쓰레기 제로화 도시’를 제안했다. 몇 달 동안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다니고, 쓰레기 매립장을 방문하면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깨달았다. “재활용이 허울만 좋지 실천율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문제가 여러 가지 있는데 쓰레기가 아닌 것까지 쓰레기가 되는 것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분명 더 쓸 수 있는 멀쩡한 물건이 버려지는 게 너무 많습니다. 쓰레기양이 업체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쓰레기가 줄어들면 관련 업체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으니까 민감한 게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쓰레기 제로화를 실천하기에는 시기상조였던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의식도 부족해서 쓰레기 제로화 도시를 실천하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부터 변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한가지씩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박희윤 집사의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을 풀어 놓자면 끝이 없다. 매일 실천하는 습관이 20가지가 훌쩍 넘는다.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방향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다. 누가 보면 유별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보이지 않게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박희윤 집사가 쓰레기 제로화 도시를 추진할 때는 그토록 어려웠던 일들이 박희윤 집사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고, 이제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실천하는 일들이 대세가 되고 있다. 국내외 여러 도시와 지자체에서 쓰레기 제로화 도시를 표방하며 노력하고 있다. 박희윤 집사의 제안 대중교통, 중고장터, 소금과 빛! 박희윤 집사는 지난 3월 2일부터 4월 17일까지 실시한 사순절 창조질서 회복캠페인 ‘보시기에 좋았더라’에 동참하면서 환경보호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환경과 생명 보호를 위한 실천을 나누는 경험이 그렇게 즐거웠다고 한다. 박희윤 집사가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제안하는 실천이 29가지나 된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제안 세 가지만 소개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중고장터를 애용하고’, ‘일터와 일상에서 소금과 빛 되기’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교회에 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환경도 아끼고, 교회 주변 이웃들도 배려하고, 노약자와 차세대 가정에 교회 주차장을 양보할 수 있잖아요? 몇 년 전부터 교회에서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좀처럼 자리 잡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성도들이 앞장서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고장터를 많이 이용하는 것도 박희윤 집사가 제안한 환경을 지키는 작지만 좋은 습관 중 하나다.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파는 문화가 꽤 자리를 잡았습니다. 쓸 수 있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는 문화가 교회에도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빙고온누리교회에는 중고물품을 기증받아 팔아 선교하는 ‘나눔장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 나눔장터 같은 중고상점이 자생(自生)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희윤 집사가 가장 마음을 많이 담은 제안은 일터와 일상에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다. “한번은 골목에 계속 쓰레기가 쌓인다는 민원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가봤더니 CCTV도 있고 경고 안내문도 큼지막하게 붙어있었습니다. 경고와 처벌이 있어도 쓰레기가 쌓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화단을 예쁘게 만들었더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그 골목 화단처럼 일터와 일상에서 생명을 지키고, 환경을 아끼는 소금과 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금 수고스럽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면 됩니다.”
2022-05-29 제1394호
[두란노] 복음을 읽는 새로운 습관! 복음을 읽는 새로운 습관! 두란노서원, 기독교 독서 플랫폼 ‘두플러스’ 출시 두란노서원에서 국내 최초 기독교 독서 플랫폼 ‘두플러스’(이하 두플러스)를 출시했다. 두플러스는 두란노서원의 ‘두’와 더하기(+)라는 뜻의 ‘플러스’를 합친 단어다. 웹사이트와 앱에서 전자책, 매거진, 오디오북, 온라인 클래스 등을 월정액으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다. 두플러스를 적극 활용해서 성도들에게 ‘복음 읽는 새로운 습관’을 선물하고 싶다는 두란노서원의 포부가 참 멋지고 당차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9~10). 두란노서원의 핵심 가치가 담긴 성경 말씀이다. 두란노서원은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42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이제 그 일을 온라인에서도 하고자 지난 5월 17일 국내 최초 기독교 독서 플랫폼 ‘두플러스’를 출시했다. 신앙 중심의 독서 플랫폼 두플러스 서비스는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다양한 도서(전자책), 오디오북, 매거진 등을 월정액으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구독형 콘텐츠 서비스다. 매월 일정 금액을 내면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도서 콘텐츠들을 횟수, 시간, 개수 제한 없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PC, 태블릿, 모바일 등 모든 온라인 기기에서 이용할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독서 플랫폼과 두플러스의 가장 큰 차이는 ‘기독교 독서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두플러스와 비슷한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여러 독서 플랫폼이 있지만, 신앙 서적이 중심이 된 플랫폼은 없다. 신앙 서적이 구비되어 있어도 다양하지 않고, 찾기가 어렵다. 두플러스는 순수 복음 콘텐츠만 모아두었다. 생명의 삶, 목회전문잡지, 바이블칼리지 영상, 우리말 성경 등 두란노서원에서 제공하는 모든 신앙 자료들을 두플러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신앙 서적을 주로 읽고, 복음 콘텐츠를 모아 보고 싶은 성도들에게 두플러스 출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두플러스에서는 두란노서원에서 제작한 전자책 약 550여 종을 모두 제공한다. 책의 텍스트를 귀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오디오북은 현재 40여 종에 다다른다. 앞으로도 더 많은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선보일 예정이다. 두플러스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더욱 풍성해지도록 다양한 기능을 선보였다. 우선 이용자가 이용하는 QT를 비롯한 모든 콘텐츠 활동 기록을 ‘내 서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홈화면에 있는 ‘나의 QT 지수’는 한 달 동안 QT 한 기록을 퍼센티지(%)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고, 이용자가 설정한 시간에 QT 알림을 받을 수 있어서 QT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성도들과 신앙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크리스천 커뮤니티 기능도 있다. 두플러스는 신앙 콘텐츠를 혼자 읽고 간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 QT 내용, 신앙 서적과 영상 리뷰 등을 함께 나눌 수 있다. 두플러스에서 운영하는 클럽에 가입하면 ‘30일 챌린지 코너’에서 다른 성도들과 기도, 감사일기, 신앙 서적 읽기 등 다양한 도전을 함께 할 수도 있다. 두플러스에서 제공하는 기능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복음을 읽는 새로운 습관’이라는 두플러스의 타이틀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두플러스와 함께라면 복음이 담긴 신앙 서적을 매일 읽으면서 날마다 풍성해지는 새로운 신앙 습관을 만들 수 있다. 두플러스의 네 가지 ‘구독 플랜’ 두플러스의 이 좋은 서비스를 누리고 싶다면 ‘구독 플랜’을 이용하면 된다. 두플러스는 ‘도서 플랜’, ‘QT 플랜’, ‘스마트 플랜’, ‘프리미엄 플랜’ 등 네 가지 구독 플랜을 제공한다. ‘도서 플랜’은 전자책과 오디오북 등 도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서비스다. 월 9,9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신앙 서적을 많이 읽는 성도들에게 유용하다. ‘QT 플랜’은 모든 연령의 QT 자료를 볼 수 있다. 차세대 QT지 <예수님이랑 나랑>, <예수님이 좋아요>부터 청장년층이 사용하는 <생명의 삶>까지 월 9,900원에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세대별 영어 QT 자료도 제공한다. 자녀와 함께 QT하는 가정에서 활용하면 유용하다. 도서 플랜과 QT 플랜 서비스를 모두 사용하고 싶다면 ‘스마트 플랜’을 이용하면 된다. 스마트 플랜은 월 1만5천 원이다. 여기에 <생명의 삶 PLUS>, <목회와 신학>, <그 말씀> 등 목회 자료까지 활용하기 원하는 목회자, 신학생, 리더들은 ‘프리미엄 플랜’을 이용하면 좋다. 프리미엄 플랜은 월 2만 원이다. 두플러스 구독 플랜을 신청하는 이용자들에게 첫 달 무료 이용 혜택을 제공한다. 무료 이용 기간이 끝나면 월 정기 결제를 한다. ‘단체 구독 플랜’도 있다. 순예배, 교회, 선교단체, NGO기관, 신학대학, 신우회, 크리스천 커뮤니티 등 공동체에서 QT나 신앙 서적을 함께 공유하고 싶을 때 이용하면 좋다. 단체 구독 플랜은 연 단위로 결제하고, 지정 회원에게 플랜 이용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단체 구독하면 론칭 기념 할인을 해준다. 사역칼럼 새로운 신앙의 놀이터 ‘두플러스’ 두플러스의 시작은 두란노서원 창립 30주년 하용조 목사님의 ‘디지털 두란노 전환’ 선포였다. 디지털 신앙 콘텐츠 제작을 원하셨던 하용조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말 성경 앱’, ‘생명의 삶 앱’ 등이 출시되었다. 그 뒤로도 두란노서원 유튜브 채널, 바이블칼리지 온라인 강의 등 여러 온라인 콘텐츠가 제작되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비대면 시대가 앞당겨졌다. 디지털 신앙 콘텐츠에 대한 필요성과 요구가 더욱 증가했다. 그 변화에 발맞춰 두란노서원에서 만든 여러 디지털 콘텐츠를 보완하고 합해서 두플러스를 개발했다. 두플러스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디지털 공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음 콘텐츠를 함께 즐기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두플러스라는 이름 또한 공간의 제한을 넘어 어디서나 복음을 접할 때 그 열매가 더욱 맺힌다는 의미의 ‘플러스’와 그 열매가 맺히는 곳을 두란노서원이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두란노서원의 ‘두’를 따서 만들었다. 두플러스는 두란노서원 제작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역할만 수행하지 않는다. 이용자가 콘텐츠를 보고, 듣고, 기록하고, 나누며 경험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나서 콘텐츠가 담은 복음이 확장하도록 기획되었다. 두플러스가 성도들에게 새로운 신앙의 놀이터가 되기를 소망한다.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놀며 성장하듯이, 성도들이 두플러스 안에서 마음껏 복음 콘텐츠들을 즐기면서 신앙의 성숙을 이루기를 바란다. 더욱 다양한 신앙의 놀이기구들이 비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두플러스의 서비스는 앞으로 계속 변화할 예정이다. 여러 크리스천 콘텐츠 제작 기업들과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 두란노서원의 콘텐츠 외에도 다양한 출판사, 작가, 기업들의 풍성한 콘텐츠를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꿈꾼다. 나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목마르던 해외 거주 선교사와 이민자들에게도 영적 갈증을 해갈해 주는 시원한 우물이 되리라 기대한다. 특별히 해외에 계신 선교사님들에게 정기구독권 후원은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디지털 컨텐츠를 통해 선교사님들의 현지 사역에 새로운 활력이 넘쳐흐르기를 소망한다. 디지털 스트리밍과 구독 경제에 익숙한 시대다. 세상에 흘러넘치는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에서 구별되는 복음 콘텐츠를 전하는 일에 두란노서원의 두플러스가 하나님 뜻에 합당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 박태성 장로 (두란노서원 경영이사)
2022-05-28 제13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