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장애(障礙)는 장애가 될 수 없다!”

우리 교회 작은 영웅들 이야기 서빙고 주차사역팀 ‘유창준 집사’와 ‘장철현’ 성도 주차봉사를 하고 있는 유창준 집사(위)와 장철현 성도(아래)   밤하늘의 별과 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서빙고 주차사역팀 ‘유창준 집사(신용산공동체)와 장철현 성도(성북공동체)’다. 그들이 별처럼 빛나는 이유는 건강한 사람도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주차봉사를 불편한 몸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유창준 집사는 어릴 적 사고로 왼쪽 다리를 다쳐 걷는 게 불편하고, 장철현 성도는 청각장애 3급이다. 보청기를 끼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수많은 차량과 성도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우리 교회 작은 영웅들이다. 불편한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우문(愚問)에 “교회와 하나님을 위해 섬길 수 있어서 오히려 보람된다”고 현답(賢答)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정말 귀감이 되는 분들이세요. 이런 분들 또 없습니다.” 서빙고 주차사역팀 조성수 팀장의 칭찬이 자자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일까? 지난주일(8일) 그 주인공들을 만났다. 먼저 만난 이는 유창준 집사다. 그를 만나자마자 조 팀장이 왜 그토록 칭찬을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 집사는 참으로 유쾌하고 호탕한 사람이다. 군더더기도 없는 사람이다. 인터뷰 요청에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며 극구 사양하는 겸손도 갖췄다.    유창준 집사는 서빙고 주차사역팀원이다. 매주 주일 2부 예배가 시작되면서부터 마음이 급해진다. 유 집사가 섬기고 있는 구역은 교회 후문 초소다. 서둘러 초소로 향하는 그의 걸음이 조금 불편해 보였다. 그는 어릴 적 사고의 여파로 다리를 절고 있다. 유 집사는 불편한 걸음걸이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주차안내를 하고 있다. 다리를 절기 때문에 사역하는데 불편이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범선의 선장처럼 위풍당당하기까지 하다. 사실 주차봉사는 성한 몸으로도 힘겹다. 그런데 다리를 저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사역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처음에는 공동체 주차봉사를 했었는데 제가 조금 잘했나 봐요(웃음). 총무님께서 서빙고 온누리교회 주차사역팀에서 함께 봉사하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스카우트 됐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걷는 게 불편한데 주차봉사 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숙달돼서 괜찮아요. 이래봬도 주차봉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유창준 집사의 주일 일정은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그에게 주일은 ‘주차봉사의, 주차봉사를 위한, 주차봉사에 의한’ 날이기도 하다. 새벽 4시 20분에 일어나 교회에 온다. 새벽 5시 30분부터 주차봉사를 시작해서 오후 4시 30분까지 섬긴다. 중간 중간 휴식 시간이 있지만 집에 돌아가면 온몸이 뻐근할 정도로 피곤하다. 아픈 다리가 더 아프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차봉사의 자리를 한순간도 비우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주차봉사는 하나님께서 제게 맡겨주신 임무거든요. 하나님께서 제게 능력을 주시니까 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첫걸음”   서빙고 온누리교회 주차사역팀에 작은 영웅이 또 있다. 장철현 성도(42세)가 그 주인공이다. 장 성도는 청각장애 3급 장애인이다. 보청기를 끼고 있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런데 그와 함께 주차 봉사를 섬기고 있는 동료들조차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철현 성도에게 주일은 매우 기쁜 날이다. 예배도 드리고, 주차봉사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주차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제가 주차봉사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할 수 있다는 뿌듯함과 행복함이 고스란히 느껴지거든요.” 장 성도는 늘 기쁜 마음으로 주차봉사를 섬기고 있지만 주차봉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할지말지 1년 동안이나 고민했었다.  “혹시나 제가 주변에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과연 주차봉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두려웠어요. 그래서 1년 동안 고민하고 기도했어요.” 그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좋다. 뙤약볕도 상관없다. 날씨는 그가 주차봉사하는데 아무런 제한이 되지 못한다. 그 이상의 보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 주차봉사 하면서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궂은 날씨에도 무사히 주차봉사를 마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든든하게 지켜주시고 힘을 주신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정철현 성도의 아내 이경아 성도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 주차사역팀 홍행국 집사가 주차봉사를 하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후 걱정이 더욱 커졌다. “사고 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니까 남편이 더 걱정되더라고요. 마음으로는 말리고 싶지만 남편의 뜻이 워낙 확고해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봉사를 그만두라는 말 대신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고 있어요.” 장철현 성도도 주차봉사를 하면서 힘들 때가 왜 없겠는가. 그에게 주차봉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성도님들이 기다리지 않도록 빨리 안내 해드리고 싶은데 그게 물리적으로 잘 안될 때가 가장 힘들어요. 안타깝고요. 아마 다른 주차사역 팀원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교회 근처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죄송할 때가 많고요.” 그의 겸손한 대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에게 주차사역은 단순한 봉사의 개념이 아니었다. “저에게 주차봉사는 하나님을 향한 첫걸음이에요. 감사함과 섬김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듯이 주차봉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더 많은 성도님들이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주차봉사를 함께 섬겨주셨으면 정말 좋겠어요.” 유창준 집사와 장철현 성도에게 장애는 더 이상 좌절이 아니다. 단순한 불편함에 불과하다. 그들은 하나님께 믿음을 고백하고 쓰임 받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 했다. 그 행복 때문에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기쁜 마음으로 맞으면서 주차봉사를 섬기고 있다. 뙤약볕이 작렬하는 한여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늘도 성도들의 안전과 주차 편의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는 유창준 집사와 장철현 성도, 그리고 주차사역팀 모두에게 응원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서빙고 주차사역팀 봉사자 모집> 시간: 주일 오전 5시 30분~오후 3시 40분(파트타임, 풀타임 가능) 문의: 02-3215-3266, 010-4592-1652    

 2018-04-27      제1192호

[인물] “춤은 나의 신앙고백이자 삶입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춤추는 예배자 ‘최종천 형제’   온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춤꾼이 있다. 최종천 형제(53세, 서빙고 누리사랑부)다. 그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 말하는 것까지 불편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계단을 오를 때 벽을 짚어도 다리를 절뚝거리고, 말도 자주 더듬는다. 그런 그가 춤을 춘다. 춤출 때만큼은 장애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춤 실력도 빼어나다. 2003년 무용단 ‘트러스트’에 입단해 ‘데칼로그’, ‘시선 1+1’ 등의 작품에서 출연했다. 지난 3월에는 평창 장애인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두리 새로 서로 하나’ 공연에 출연했다. / 이소정 기자 s2868@onnuri.org   ▶ 춤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최종천 형제     참 보기 드문 사람이다. 신앙도 깊은데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도 깊다. 거기다 마음씨까지 곱다. 춤추는 예배자 최종천 형제 말이다. 그는 3남1녀 중 첫 째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 김상예 권사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종천이를 가진지 석 달 되었을 무렵 정말 큰 뱀이 제 발 위로 지나갔어요.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 일이 뱃속에 있는 종천이에게 영향을 준 거 같아서 늘 미안하고 안타까워요.”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눈의 띄게 느렸다. 일곱 살이 되서야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었다. 9살 때는 특수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홀로 대전으로 갔다. 대전에서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가족이 있는 서울로 다시 왔다. 서울에서 일반중학교를 졸업했지만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1년 동안 국립재활원에서 사진식자(문자를 촬영해 판본 원고를 작성하는 것)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다 1997년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년 뒤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다. 힘든 시절을 보낼 때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곳은 교회였다. “교회에서 검정고시 공부를 했어요. 교회에만 오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하고 좋더라고요.”   하나님과 신앙 그리고 가족   최종천 형제에게 하나님과 교회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지금도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났다. “일주일에 성경 300장을 읽었어요. 읽는 양이 조금씩 늘어나더라고요. 많게는 일주일에 900장을 읽은 적도 있어요.” 성경 읽는 재미에 푹 빠진 그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팔다리가 쑤시고 심장이 답답했다. 고약한 악취까지 났다. 그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쳤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쑤시고 아팠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지더라고요. 더 놀라운 것은 악취가 세상에서 맡아볼 수 없는 향기로 바뀌더라고요.” 최종천 형제는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다. 그날 이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계속 커져만 갔다. 지금도 매주 교회 오는 것이 얼마나 기대되고, 즐거운지 모른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자체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의 주일 일과를 보면 교회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주일은 이른 시간부터 시작된다. 오전 6시30분에 집을 나서서 교회에 오는데 단 한 번도 이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 서빙고 온누리교회에 도착하면 본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봉사자가 없으면 안내를 자청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분들 중에 노약자들이 많잖아요.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시도록 제가 안내해드리고 있어요.”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뇌성마비 장애인이 노약자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돕기 위해서 봉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다. 그는 2부 예배를 드린다. 항상 본당 가운데 맨 앞줄에 앉아 있다. 2부 예배가 끝나면 곧장 장애인을 위한 예배공동체 ‘누리사랑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콘서트홀로 이동한다. 누리사랑부에서 최종천 형제를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칭찬일색이다. 그는 누리사랑부에서 자막 섬김과 점심식사 잔반처리를 도맡아서 하고 있다. 누리사랑부 소속 지체가 아프기라도 하면 심방도 간다. 이 모든 일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좋아서 한다. 그 어떤 장애물도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을 결코 가로막지 못한다. 최종천 형제는 효심도 깊다. 누리사랑부에서 간식을 나눠주면 먹지 않고 꼭 가방에 챙긴다.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먹기 위해서다. 절대 간식을 혼자 먹는 법이 없다. “선물을 받으면 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저를 길러주신 부모님께 평생 효도하며 살아야죠. 그게 도리잖아요.”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지 모른다. 왜 장애인으로 낳았냐고 원망할 수도 있고, 몸이 불편한 자신을 먼저 돌봐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결코 그런 일이 없다. 요즘 세상에 이런 효자 보기가 쉽지 않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최종천 형제에게 온누리교회는 정말 특별한 교회다. 제2의 인생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온누리교회에 왔다. 그리고 2003년 당시 누리사랑부 담당목사의 추천으로 무용단 트러스트에 입단했다. 그의 제2의 인생이 그렇게 막 올랐다. “장애인 역할을 맡아줄 배우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마음가는대로 춤을 췄는데 그 자리에서 발탁이 됐어요. 춤을 추는데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어머니는 아들이 무용하는 것을 만류했다. 불편한 몸으로 춤을 춘다기에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아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최종찬 형제는 38세에 춤꾼이 되었다. 무용은 그와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통로였다. 무용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무용을 시작한지 2개월 만에 체중이 5kg나 빠질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그가 처음으로 출연한 작품은 ‘데칼로그(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몸으로 표현한 공연)’인데 그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린다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했어요. 공연 마치고 느낀 뿌듯함과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몰라요.” 춤추는 예배자로 제2의 인생을 만끽하는 그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또 찾아왔다. 2005년 목욕하고 나오다 넘어져서 허리뼈가 골절됐다. 그 사고로 독일과 멕시코에서 열리는 공연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모든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실의에 빠져 있는 그를 하나님이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2012년 무용단 트러스트 김형희 단장이 최종천 형제를 다시 불렸다. 그리고 접었던 꿈의 날개를 펴고 또 다시 비상하도록 도왔다. 장애인 단체 7곳을 돌아다니면서 단막극 공연을 했다. 2018년 평창 장애인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공연 ‘두리 새로 서로 하나’에도 출연했다. 그에게 춤은 신앙고백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이다. “춤을 통해 저와 같은 장애인들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 건강이 허락한다면 천국 가는 그날까지 춤추면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릴 거예요.”  

 2018-06-03      제1199호

[온누리축제] “부모님께 가장 큰 행복을 선물했습니다”

맞춤전도집회 ‘행복드림콘서트’ … 142명 결신, 102명 세례 신청     이보다 더한 감동이 또 있을까? 눈물, 사랑, 섬김, 헌신, 기도 무엇 하나 감동 아닌 것이 없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복음을 전한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지난 14일, 서빙고 온누리교회 본당에서 막 오른 부모초청 맞춤전도집회 ‘행복드림콘서트’에는 부모와 자녀 402명이 참석했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특별하지 않은 참가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백혈병 투병 중인 아들이 부모를 초청하고, 올해 91세 된 아버지도 오셨다. 아버지를 두 번째 초청한 아들도 있었고, 저 멀리 부산에서 오신 할머니도 계셨다. 그들 모두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은혜요, 기쁨이요, 천국잔치였다. / 이소정, 권찬송 기자   ▶ 지난 14일 행복드림집회에 참석한 자녀가 부모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다.       “아들의 진심이 느껴지더라고요….” 박현규 성도(SNS공동체)의 부모님(박노일 62세, 하옥자 61세)이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박현규 성도는 군대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때부터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각자 알아서 종교 활동을 하자”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계속 기도했다. 그 아름다운 청년 박현규 성도에게 느닷없는 시련이 찾아왔다. 재작년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제가 조금이라도 온전할 때 부모님께 꼭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투병 중에도 부모님께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 힘든 와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 아들을 보고 부모님의 마음이 흔들렸다. 복음을 확실하게 받아드리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때마침 부모초청 맞춤전도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신청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부모님께 교회에서 좋은 콘서트를 한다고 초청했다. 부모님은 아들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승낙했다. 그렇게 항암치료 받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져 모자와 마스크를 쓴 아들과 부모가 함께 교회에 왔다. 아들의 진심이 부모의 마음을 흔들었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왜 우리 아들이 그토록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아들과 함께 예수님 믿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요.” 임영빈 집사(송파공동체)는 올해 91세 되신 아버지와 어머니(83세)를 초청했다. 임 집사의 아버지 임달순 어르신은 이날 최고령 참가자였다. 임영빈 집사가 집안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기도하고 복음을 전했는데 부모님을 전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덧 아버지 연세가 91세가 되었다. “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신데 정신은 맑으세요.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으실 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 집사는 교회에 가자는 초청에 흔쾌히 응하시고 말씀을 집중해서 듣는 부모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 제 부모님께서 교회에 온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아버지는 교회를 안 좋아하시고, 어머니는 절에 다니셔서 교회에 올 가능성이 거의 없었거든요. 이번 집회를 계기로 부모님을 전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어요.”   자녀들의 숙원 풀어주는 전도의 장(場)   특별한 사연이 있는 참가자들이 또 있다. 김성은 성도(성동광진공동체)는 아버지(김영훈 69세)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초청했다. 지난해 맞춤전도집회 행복콘서트에 참가하신 아버지께서 교회에 마음을 여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초청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 봤어요. 교회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를 또 교회에 초청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김성은 성도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씀드릴지를 고민하다가 부모초청 맞춤전도집회 행복콘서트를  홍보하는 전화인터뷰 영상을 찍기로 했다.  “조마조마했어요. 영상을 찍는데 신기하게 아버지께서 못 이기는 척 교회에 오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내년에도 초대해주면 또 오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손녀가 할머니를 초청한 참가자도 있었다. 이소정 성도(SNS공동체)는 부산에 계신 외할머니 박복남 어르신(85세)을 초청했다. 이소정 성도가 이번 부모초청 맞춤전도집회 행복콘서트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외할머니께서 불심이 깊으셔서 복음 전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어떻게 전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엄마도 막막해하셨는데 부모초청 맞춤전도집회가 열린다는 광고를 보고 이때다 싶었어요.” 이소정 성도는 집회 일주일 전 부산에 직접 내려가 외할머니를 초청했다. 외할머니는 소녀의 초대를 받고 교회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집회 하루 전날 외할머니와 이소정 성도의 엄마 이은수 성도(부산서면교회)가 함께 서울에 왔다. 특히 이은수 성도가 어머니께 난생 처음 쓴 편지를 읽어드리자 외할머니, 엄마, 손녀 삼대가 함께 흐느껴 울었다. “부처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이제 하나님 믿을 거예요. 원래 오늘 허리 치료하러 병원 가는 날인데 여기 오느라 못갔어요. 그런데 아프던 허리가 오늘은 하나도 안 아프네요.” 역시 부모초청 맞춤집회 행복드림콘서트는 자녀들의 숙원을 풀어주는 전도의 장(場)이었다. 이날 맞춤전도집회에 참석한 부모 242명 중에서 142명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했고, 102명이 세례를 신청했다.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최고의 효도   사랑하는 부모님, 아들 현규입니다. 제가 백혈병에 걸린 후부터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돈도 아니고. 세상에서의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부모님께 전달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행복은 부모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버지, 어머니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삶이야말로 최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최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 그 어떤 가정보다 사랑이 넘치고 선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행복드림콘서트가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일생에서 가장 귀한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박현규 성도(SNS공동체)   가장 소원하는 한 가지   사랑하는 어머니, 4남매 키우느라 열손가락 지문이 다 달도록 모진 세월을 이겨내셨지요. 그 은혜에 보답도 못하고 여기까지 왔네요. 결혼해서 3남매를 키워보니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장애가 있는 둠빔이가 제 삶에 얼마나 큰 기쁨과 위로와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감사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소원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 믿고 영원한 나라 천국에 손잡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절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어머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풍성히 누리며 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 이은수 성도(부산서면교회)

 2018-05-20      제11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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