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우리는 영적 군사입니다

  이재훈 목사   에베소서 6장 10~20절   영적 싸움을 피할수록 더 큰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용맹스럽게 나아갈 때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는 믿음의 용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영적 전쟁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 정확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을 시리즈로 설교하는 동안 이 말씀을 매주 동일하게 진행합니다. 영적 전쟁의 각 부분을 세부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이 시리즈 설교가 끝날 때 이 본문을 모두 암송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고 봉독하는 것이 아니라 암송해서 매일 묵상할 수 있도록 매주 조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적 전쟁과 진정한 평화   구약에는 전쟁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대가 현대보다 전쟁이 많아서일까요? 아닙니다. 고대나 현대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역사가에 의하면 과거 3천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기간이 268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 20세기만 해도 약 2억 명 가량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전쟁들은 혈과 육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생존 전쟁입니다. 전쟁이야기는 구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 10:34). 매우 특이한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을 통해 분명 예수님께서 우리의 평화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 본인은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상반되는 것 같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싸움에서 우리가 이기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가 되십니다. 그러나 그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싸움 과정에서 고난 받으셨고 그 싸움의 절정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싸움에서 패배하신 것 같지만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승리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싸울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평화가 무엇입니까? 적에게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도 평화인 것처럼 보입니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에게 식민 지배를 당할 때도 평화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싸워 이겨서 자신의 주권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악’은 ‘선’에 대한 반역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우리에게 전쟁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전쟁은 혈과 육으로 인하여 싸우는 생존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때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영적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의 본질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영들과의 전쟁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며 빛과 어두움의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었던 천사 중에서 타락한 무리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해서 일어나는 전쟁입니다. 후에 말씀드리겠지만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라고 하니까 하나님과 사탄이 대등하게 싸우는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은 처음부터 대등하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원론적인 세계관은 선과 악이 대등하게 처음부터 존재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악은 선에 대한 배반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성어거스틴은 ‘악이란 선에 기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악이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세상의 악을 보아도 선을 이용합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은 처음에는 믿게 합니다.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선을 이용하고 악용함으로써 악을 이룹니다. 악은 반드시 선에 기생합니다. 그것은 악은 선에 대한 반역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바로 영적 전쟁의 시작입니다.   거대한 하나님 군대의 일원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축복하시는 백성들에 대한 악한 영들의 공격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전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칼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예수님까지 공격했던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칼을 들고 싸워야합니다. 구약에 ‘여호사밧’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당시 주변에 있던 모압과 암몬의 큰 세력들이 공격해 왔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싸울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식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아하시엘’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역 10:15b).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영적 전쟁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는 것은 사사롭게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하나님 군대의 일원으로써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전쟁을 보십시오. 치열한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사들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싸우기 싫은데도 싸우는 것입니다.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위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때로는 지도자의 결정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모든 군사들은 개인의 목적과 계획대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에 대항하는 공격과 전쟁 속에서 우리가 그 일부분이 되어서 싸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 속한 전쟁의 부분으로 싸우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법칙을 기억하며 이 전쟁에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쟁   하나님께 속한 전쟁은 하나님께서 지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령관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전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쟁이 아무리 힘들고 치열해 보이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보여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의 여러 전쟁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때로는 연약하고 부족해 보여도 승리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민족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전쟁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명예, 하나님의 영광이 달려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순종하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믿음의 싸움입니다. 신약 곳곳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의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때로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두려움에 빠져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늘 깨어있다고 하지만 깨어있지 못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때로는 졸고 있고, 때로는 두려움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지 않으시다면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왜 세상이 어지러운지 모르겠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정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나마 살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인 동시에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을 둘러서 진을 치고 구원하십니다(시 34:7).”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천사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영의 존재도 믿어야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면서 하나님 나라 일에 쓰임 받는 천사들의 존재도 믿어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천사들이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 주위에 진을 치고 보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며 살아가고자 할 때 우리의 힘과 능력만으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우리를 돕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하나님의 천사가 도왔습니다. 예수님을 도왔던 천사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믿지 못하는 사이에,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돕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 가족들과만 인사하면 안 됩니다. 우리를 돕고 있는 천사에게도 수고 많으셨다고 인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사를 통한 보호하심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를 경외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의지와 선택으로 악의 길로 걸어간다면 천사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천사도 인격적인 존재이고, 우리도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할 때 우리가 주를 경외하지 않는 걸음으로 나아간다면 천사들의 보호막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삶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인 동시에 우리가 싸워야 할 전쟁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과 함께하심, 우리의 믿음과 순종의 결합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권력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2절). 우리의 싸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싸워야 할 전쟁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께 맡긴다는 것을 이렇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다 싸워주시겠지.” “나는 넋을 놓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주님께서 알아서 다 하십니다.” 물론 그런 영역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졸고 있을 때도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부분이 있지만, 믿음의 싸움은 내가 싸워야 합니다. 만일 ‘주님께서 알아서 싸워주시겠지’라고만 생각하면 우리의 영적 책임을 떠넘기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생각을 하면 우리가 죄를 범할 때 마치 주님께서 싸움에서 져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악한 영에 의하여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변명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은 악한 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싸워야 할 싸움을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강건하지 않았고, 내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았고, 내가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진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 나의 인격적인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면 왜 주 안에서 강건하라고 하고,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은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 믿음으로 순종하며, 그분의 임재하심에 내어드리고,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는 치열한 영적 싸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찬양 몇 곡 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이 영적 전쟁은 주님의 임재 약속과 함께하심의 약속과 더불어 우리의 믿음과 순종이 결합될 때 승리를 경험할 수 있는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승리 경험하는 ‘믿음의 용사’   오늘은 영적 전쟁의 서론에 해당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예수님께서 싸우시고, 성령님께서 지원하시는 전쟁에 참가하는 군사들이라는 것입니다. 소수의 몇 사람만 대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싸워야 하는 군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전쟁이 싫습니다. 체질상 저와 맞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그런 전쟁은 목회자들이나 대표자들이 싸우는 것 아닙니까? 저는 믿은 지도 얼마 안 됐습니다. 제발 이 전투에서 빼주십시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는 초신자든 오래된 성도든 상관없이 이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갈수록 이 전쟁이 민감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어린아이 때 싸우는 전쟁이 있고, 장성했을 때 싸우는 전쟁이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 영적 전쟁을 피하려하고, 무시하면서 살아가면 더 큰 위기와 어려움이 생깁니다. 믿음의 삶에서 당하는 위기는 영적 전쟁이 때문이 아니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합니까, 도망갈 때 뒤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합니까? 사탄이 우리 등 뒤에서 공격하도록 내어줘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견고해질수록 이 싸움은 맹렬해집니다. 이 세상의 전쟁은 끝나기도 하고, 냉전도 있고, 휴전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전쟁은 냉전도 없고 휴전도 없습니다. 사탄과의 평화협정은 없습니다. 사탄은 거짓 평화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만 합니다. 세상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이 전쟁에서 예외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전쟁에서는 명예 제대도 없습니다. 의가사제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도망갈 수도 없고, 대체복무도 없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모순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병역의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전시 중인 하나님 나라의 전쟁에서 병역을 거부하면 적에게 자신을 밥으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영적 병역 거부를 했을 때 일어나는 비참한 사건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구약의 사건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집트에서 능력을 보여주셨고, 광야를 지나는 동안 놀라운 기적과 은혜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앞두고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는 자리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왜 거부했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그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 땅에 들어가서 싸우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만일 싸움 없이 들어가라고 했다면 아무 말 없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서 싸우라고 하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땅에 거인들이 있어서 두려웠고, 둘러싸인 성벽이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며 싸우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38년 동안이나 광야를 유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배우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익숙해졌습니다. 광야에 익숙하다 보니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하심에 안주하려 했던 것입니다. 싸우기를 거부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에 빠져서 불순종하고, 안일한 태도로 악의 영과 죄와 싸우기를 거부하면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더 크게 방황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악의 영과 싸우는 군사들입니다. 일주일 내내 적들에게 패배하고, 주일날 교회가 패배를 보고하는 자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승리를 보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싸우는 것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과 보호하심과 승리가 약속된 크고 위대하시고, 강하신 용사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싸우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싸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패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용맹스럽게 나아갈 때 놀랍게 베풀어 주신 영적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는 믿음의 용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믿음과 순종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18-08-12      제1209호

[대청] 청년,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하다

전국대학청년수련회 ‘The One’ 청년 660명 참석 꿈꾸는 청년들 “말씀 듣는 것보다 흥분되는 일 없다”   ▶ 2018 The One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이 뜨겁게 기도하고 있다.   2018 전국대학청년수련회 ‘The One’ 집회(이하 The One 집회)는 이 시대 청년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삶의 이유를 발견한 축복의 장이었다.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청년 660여 명이 부르짖는 소리가 전주대학교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집회 시작 전부터 달궈진 열기가 집회 마지막 날까지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강동의 형제(전주영광교회)는 “청년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흥분되는 일은 없다”면서 “이번 The One 집회는 이 시대 청년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장이었다”고 고백했다.  대학청년부본부장 김승수 목사는 ‘새로운 꿈 새로운 시작’을 주제로 강의했다. 김 목사는 청년들에게 “좋은 직장, 좋은 학교, 승진보다 더 좋은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꿈을 꿔라”고 권면했다. 배상민 교수(KAIST)는 ‘창의적 디자인과 그를 통한 사회공헌 활동’을 주제로 강의했다. 배 교수는 “무엇이든 나눌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는데 사용하길 바란다”고 권면했다. 주옥같은 메시지들이 끊임없이 선포됐다. 하정완 목사(꿈이 있는 교회) ‘꿈’, 이용규 선교사(<내려놓음> 저자) ‘믿음의 의미’, 이상억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상담학) ‘자존감, 하나님 앞에서 확정된 마음’, 이상준 목사(양재 온누리교회) ‘나의 달려갈 길’, 임은미 선교사(KOSTA 강사) ‘Leder의 삶’, 정진호 교수(평양과학기술대학) ‘통일, 역사의 비탈에 서다’를 주제로 강의했다. 청년들이 삶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일터’, ‘이성교제’, ‘이단’ 관련 특강도 호응이 뜨거웠다. 손한길 형제(송정제일교회)는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이웃들과 함께 하는 크리스천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최성준 형제는 “늘 일터 환경에 불평했었는데 통일 이후 엔지니어로 북한을 섬기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니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2018-08-12      제1209호

[사역] 르포_일본 오카야마(홍수피해 지역)에 가다

  “예수의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 오카야마와 함께 울다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이 먼지와 쓰레기로 뒤덮인 오카야마 수해 지역 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아니 물벼락이었다. 지난 7월 8~9일, 그 이틀 동안 7월 한 달 동안 올 강수량의 2.7배가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진 폭우는 순식간에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마비마을을 집어삼켰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폭우에 가재도구 챙길 정신도, 대피할 시간조차 없었다. 옥상이나 2층 베란다에서 수건을 흔들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7월 25일부터 8월 1일까지 온누리교회 소속 NGO 더멋진세상(신원석 목사, 이가일 PM)을 중심으로 대학청년부(김동휘, 이성환, 안재성, 임재민, 노희국, 이수현), 일본어예배부(김삼인 전도사, 요시오카 리에 자매)에서 긴급구호팀을 파견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곳에서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은 더위와 먼지, 쓰레기와 싸워가며 구슬땀 흘렸다. 살인적인 폭염과 태풍 경보도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의 열정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 현장에 동행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하레노 쿠니에 요우코소”(청명한 나라에 온 걸 환영합니다) 지난 7월 25일, 오카야마공항에 도착한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을 반기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그렇다. 오카야마는 일본에서도 청명하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살기 좋은 곳이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커녕 원자력발전소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 안전한 곳이라고 자부하던 곳이다. 일본 5대 전래동화 ‘모모타로(복숭아동자) 이야기’를 탄생시켰을 만큼 복숭아가 유명한 풍성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바로 그 풍성하고 평화롭던 오카야마에 재앙이 닥쳤다. 지난 7월 8~9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그 폭우로 오카야마현뿐만 아니라 서일본 일대(히로시마현, 에히메현 등)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 총무성 소방청 보고(8월 1일 현재)에 따르면 사망자 220명, 가옥 파괴 5,074채, 반파된 가옥도 4,592채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4일, 이들 수해지역을 ‘특정비상재해’ 지역으로 지정했다. 한신대지진, 동일본 대지진을 포함해서 일본 정부가 특정비상재해를 지정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진이 아닌 호우 재해로 인한 지정은 일본 역사상 처음이다. 설상가상, 폭염과 잇따른 태풍경보로 복구가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내 가족의 고통처럼 여겨져서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마비 마을은 그 아름답던 모습이 아니었다. 홍수로 터전을 잃었는데 폭염으로 재해복구 의지마저 없었다. 도움을 주는 손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먼지와 쓰레기만 가득했다.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은 ‘오카야마 그리스도 재해지원센터’로 사용되고 있는 ‘히로에성약그리스도교회’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온 크리스천 자원봉사자들이 이 센터에 모이고 있다.  일본인 자원봉사자 고토 요이치 씨(일본국제기아대책기금)는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을 누구보다 반겼다. 우리를 보자마자 “덥고 위험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온누리교회가 먼저 나서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재해지원센터 스태프 이토 아야 씨도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을 통해 홍수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하나님과 만나는 귀한 기회가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의 첫 임무는 수마가 휩쓸고 간 가옥의 잔해를 치우는 일이었다. 후나마 씨의 2층 양옥집을 찾았다. 벽과 집, 차고, 창고와 마당의 나무까지 진흙 범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긴급구호팀 도착 하루 전부터 수돗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급수 받은 물로 생활했기 때문에 복구는 생각도 못해봤단다. 물이 너무 많아 생긴 재난인데 물이 없어서 복구를 못했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은 온몸이 땀으로 젖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잔해를 치웠다. 창고를 철거하고, 마당에 있는 나무도 뽑았다. 대량의 쓰레기도 운반했다. 긴급구호팀 요시오카 리에(일본어예배) 자매가 특히 마음 아파했다. 그녀의 고향이 오카야마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향집의 피해는 없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긴급구호팀원 모집 소식을 듣자마자 신청했다.  “이 집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니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생각나서 눈물이 났어요.” 리에 자매뿐만이 아니다.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 모두가 선한 이웃의 심정으로 오카야마에 왔다. 재난을 당한 오카야마 사람들의 고통이 마치 내 가족의 고통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온몸이 썩은 물로 뒤덮여도…    특명이 떨어졌다. ‘마비 아동관’(마비 지역 아동센터) 복구 작업 의뢰가 들어온 것. 일본은 지금 이중고를 겪고 있다. 불볕더위와 연이은 태풍경보가 그것이다. 그 때문에 관청이나 다른 단체에서 운영하는 재해본부들은 문을 닫거나 복구 작업을 일시중단 한 상태이다. 지금 자원봉사자를 파견하고 있는 기관은 오직 오카야마 그리스도 재해지원센터 밖에 없다. 역시, 이웃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선한 이웃이 되는 이들은 크리스천들이다.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은 가장 힘든 아동관 천장을 해체했다. 나사를 돌리고 천장을 떼어냈더니 고여 있던 썩은 물들이 쏟아졌다. 온몸이 썩은 물로 뒤덮였지만 그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동관 안팎에 산적해 있는 쓰레기도 치웠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오죽했으면 살인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으니 20분 일하고 10분 쉬자고 했던 일본인 관리자의 말이 지켜지지 않았다.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의 열정에 현장 담당자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정말 대단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자원봉사자로 온 김승희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는 “온누리교회 청년들이 일본 사람 다섯 명분 역할을 한다”며 뿌듯해했고, 쿠사이 목사(재해지원센터장) 또한 “한국 청년들 덕분에 아동관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면서 “염치없지만 온누리교회에서 봉사팀을 또 보내주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은 그들과 함께 있었을 뿐이다. 그들의 상황을 듣고, 기도하고, 조그마한 힘을 보탰을 뿐이다. 그 자체가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후나마 씨의 표정이 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후나마 씨는 미신자이다. 그런 그가 기도로 복구작업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과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눈물 흘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교회가 보여준 사랑과 정성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모두가 외면하는 곳에 찾아와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온누리교회 긴급구호팀과 헤어지며 오카야마 그리스도 재해지원센터 스태프 아야 씨는 “관광으로라도 좋으니 오카야마에 꼭 다시 들러 달라”고 부탁했다. 그 힘든 복구 작업을 또 하러 와달라고 하기에는 미안했던 모양이다.   마비 마을 사람들은 이번 홍수로 너무 큰 상처와 피해를 입었다. 지금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이 회복될 때까지 도와야 한다.   

 2018-08-05      제12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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