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캠퍼스] 하나님 사랑이 곧 이웃사랑이다!

신년기획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방법 2. 이웃사랑 이웃사랑, 크리스천의 정체성이자 존재이유   <서울역희망공동체 봉사자들이 동자동 쪽방촌 주민을 찾아가 섬기고 있다.>   온누리교회가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라’를 표어로 내걸고 2020년 새해를 힘차게 출발했다. 본지에서는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성도들에게 제안하고, 실천하기를 독려하고자 신년기획 코너를 마련했다.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그 두 번째 방법은 이웃사랑이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웃사랑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 5:14).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31).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 2:8).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며 진리가 그 사람 안에 있지 않습니다”(요일 2:4).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라고 못 박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라면 응당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크리스천의 정체성이자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작은 실천이 이웃들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이웃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잘하는 걸까? 헌금 많이 하고, 구제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면 이웃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만약 이웃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는 방법을 그렇게 믿고 있다면 돈도 많아야 하고, 시간도 많아야 하고, 거창한 마음까지 있어야 할지 모른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이웃사랑은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할 수 있다. 허정우 성도(성동광진공동체)와 황시영(19세)군의 사례를 보면 크리스천들이 이웃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허정우 성도는 지난해부터 서울역희망공동체에서 봉사하고 있다. 서울역희망공동체는 온누리복지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관리하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그들의 생활지원을 돕고 있는 사회선교팀이다. 허정우 성도가 서울역희망공동체에서 쪽방촌 주민들을 섬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단순했다.  “제가 대기업에 다녔는데 승진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치열함이 너무 컸어요. 남들과 비교해가며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했고요. 2018년 퇴사하고 창업을 하게 되면서 회사 다닐 때 가질 수 없었던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회사 다닐 때는 못해본 봉사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허정우 성도는 쪽방촌 주민들이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주민들의 작은 변화가 허정우 성도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인 셈이다.   “처음 쪽방촌 주민들을 만났을 때는 마음의 빗장이 굉장히 단단하더라고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방문했더니 조금씩 마음을 열더라고요, 저에게 불행했던 과거사를 털어놓기도 하고, 언젠가 부터는 덥수룩한 수염을 깎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희가 오기를 기다리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예수이야기를 꺼내면 듣지도 않더니 지금은 ‘아멘’으로 화답하시고요.”  허정우 성도는 아주 단순한 계기로 이웃사랑을 시작했고,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일상이 되었다. 더 많은 성도들과 함께 이웃사랑을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   “사실 저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숙제 같고 행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유혹이 너무 많고, 잘 할 수 있을까, 이웃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만나는 이웃들을 제 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 달라 보이더라고요. 그분들이 진짜 제 가족처럼 느껴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감사하는 습관까지 생겼어요. 사실 제가 이웃들에게 얼마나 큰 것을 드릴 수 있겠어요?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기도해 드리는 것밖에는 없어요. 그 작은 실천이 이웃들을 변화시키더라고요.”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   황시영 군은 “서빙고 온누리교회 이웃사랑팀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크다”고 인사했다. 황시영 군은 할머니(97세)와 아버지와 함께 보광동에서 산다. 엄마는 없다. 황시영 군의 기억에는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황시영 군이 아주 어릴 때 부모가 이혼했기 때문이다.  황시영 군은 고령의 할머니, 바쁜 아버지 사이에서 외롭게 자라야만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있으니까. 그런데 늘 곁에 있어주던 할머니가 세월의 흐름까지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나이가 더 들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외출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곤 했는데, 할머니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로는 그나마 가던 교회에도 발길을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시영 군의 집에 서빙고 이웃사랑팀이 찾아왔다.  “할머니가 서빙고 이웃사랑팀의 방문을 너무 즐거워하세요. 언제 또 오나 하고 기다리시는 걸 보고 제 마음이 안심이 되더라고요. 서빙고 이웃사랑팀이 저희 집에 오셔서 할머니와 아버지 안부를 물어주시고, 기도도 해주시고, 할머니 건강도 챙겨주는 게 너무 감사해요.” 서빙고 이웃사랑팀의 꾸준한 방문이 황시영 군과 할머니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서빙고 이웃사랑팀의 선물은 그게 다가 아니다. 서빙고 이웃사랑팀의 추천으로 황시영 군이 서빙고 권사회로부터 장학금을 받게 됐다. 황시영 군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것은 덤이다.  “저희 가족들을 계속 찾아와 주시고, 챙겨주시고, 도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 사랑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황시영 군은 온누리교회가 더 많은 사람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할머니와 저처럼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온누리교회가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꾸준하게 관심 가져주시고, 찾아와주십시오. 서빙고 이웃사랑팀이 없었다면 할머니와 저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서빙고 이웃사랑팀처럼 저도 커서 기부도 하고,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웃사랑을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본인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이웃사랑은 돈이 많아야 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 하는 일이 아니다. 허정우 성도와 황시현 군이 말하는 이웃사랑은 결코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저 이웃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면 된다. 소외된 이웃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다. 찾아주는 이 하나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달래줘야 한다. 이웃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고, 말벗이 되어주고, 기도해주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면 된다.   새해에는 작지만 큰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자.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를 보고 세상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요 13:35).     문의: 02-3215-3434, 3436

 2020-01-19      제1279호

[국내캠퍼스] 25년 만에 온누리교회 방문한 리안 목사의 간증

만나고 싶었습니다 “온누리교회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 25년 만에 온누리교회 방문한 리안 목사의 간증 “고향에는 언제 돌아갈거니?” 故 김사무엘 목사의 질문을 피하던 한 미얀마인 청년이 있었다. 한국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비전을 얻고 망명했던 인도로 돌아갔던 청년이 2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것도 목회자가 되어서 말이다. 그 주인공은 리안 목사다. 리안 목사는 현재 호주 멜버른에서 성도 1천3백 명이 모이는 빅토리아친교회를 섬기고 있다. 리안 목사는 온누리교회와 함께 미얀마 선교를 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호주에서 중국을 경유해서 19시간 만에 한국에 왔다. 한국은 25년 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눈부시게 성장해 있었다. 온누리교회부터 찾았다. 리안 목사에게 온누리교회는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는 제가 몹시 그리워했던 그대로 늘 포근한 곳이에요. 작은예수 40일 새벽예배에서 짧게나마 온누리교회 성도님께 인사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얀마민주화운동, 망명… 우여곡절 끝에 오게 된 한국   리안 목사가 청년시절일 때 고국 미얀마는 격동기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미얀마 군부정권에 대항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는데 교사였던 리안 목사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열심히 민주화운동을 하던 리안 목사는 군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인도에 망명했다 그리고 1994년 한국에 왔다. “미얀마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인도로 피신했는데 인도에서도 미얀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인사들을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인도에서 머무는 것도 위험할 것 같아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굉장히 헌신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온누리교회에 와보니까 정말 그렇더군요. 온누리교회에서 보낸 시간은 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어요.” 당시 온누리교회 미얀마예배는 뚬재우 목사가 섬기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연이 닿아 온누리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리안 목사는 서울근교 공장에서 일했다.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주일에 쉬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예배드리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미얀마에서의 민주화운동, 인도로의 망명, 보장되지 않은 신분 등 불안한 삶 속에서 리안 목사가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그토록 예배를 사모하는 이유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것도 있지만 한국에서 기댈 수 있는 곳이 오직 교회뿐이었거든요. 당시 구로에서 온누리M미션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드리고 나서 서빙고 온누리교회에 다시 와서 성경훈련을 받기도 했어요. 그만큼 갈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리안 목사는 故김사무엘 목사에게 일대일제자양육과 Bee성경공부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꾸준히 훈련을 받았는데 리안 목사의 삶이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것 같았다. 변화는 뜻밖의 장소에서 시작됐다. 공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리안 목사는 선임근로자 대우를 받았다. 동료들에게 자신의 보너스까지 나눠주며 생산량을 높이자 공장 사장이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리안 목사는 미얀마예배에서도 리더로 쓰임 받으면서 온누리교회 선교의 비전을 보고 배웠다. “故김사무엘 목사님이 저만 보면 ‘고향에 언제 갈 거야? 리안 너도 결혼하고 하나님 나라 위해서 일해야지’라고 물으셨어요. 그때마다 ‘언젠간 가겠죠’라며 넘기곤 했는데 어느 날 김사무엘 목사님의 바람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해야겠다는 비전이 생겼어요. 미얀마에 돌아가면 죽는 거나 다름없으니 인도로 갔어요.”   또 다른 사역지 호주를 가다   1997년 한국을 떠나 인도에서 생활하던 리안 목사는 2000년 호주로 향했다. 호주에는 인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망명한 미얀마인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당시 리안 목사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결심보다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미얀마인들을 보살피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두 아이를 둔 리안 목사 가족은 작은집을 임대해서 살았는데 그 집은 미얀마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나 다름없었다. 리안 목사는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근로자들 13명과 작은 가정예배를 먼저 개척했다. 농장에서 일하면서 틈 날 때마다 미얀마인들의 정착을 도왔는데 그 일에 너무 매진한 나머지 정작 본인 일에 소홀해서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가 호주를 잘 아니까 미얀마인들이 집구하고, 학교 등록하는 등의 일들을 도와줘야지요. 도울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휴가를 쓰면서까지 도왔어요. 그래도 시간이 부족해서 아프다고 거짓말까지 했어요. 그러다 농장주에게 들켜서 해고를 당했어요, 어떻게 살지 막막해하고 있었는데 성도들이 이참에 신학교에 가서 목회를 하라고 제안하더라고요. 자기들이 지원해 주겠다면서요.” 신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리안 목사의 고생이 배가됐다. 학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신학교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무조건 일했다. 리안 목사의 차에는 늘 작업복과 공구가 준비돼 있었다. 오죽했으면 교수들이 리안 목사의 안색을 보고 꼭 병원에 가보라고 당부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오전에 수업이 있으면 오후에 일하고, 오후에 수업이 있으면 오전에 일했어요. 집에는 미얀마인들이 가득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늘 아침에 일찍 나오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집근처 쇼핑몰 바닥에 앉아서 공부했어요. 하루는 일하다가 수업에 늦어서 눈에 띄는 화장실에서 급하게 옷을 갈아입었는데 알고 보니 여자화장실이었어요. 그 모습을 본 한 교수님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시면서 저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더라고요. 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펑펑 우시면서 자기 연구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셨어요.”   미얀마 복음화 위한 선교를 꿈꾼다   2006년 리안 목사는 우여곡절 끝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리안 목사의 소문난 섬김이 입소문을 탔다. 그 덕분인지 빅토리아친교회가 나날이 부흥했다. 지금은 성도 1천3백여 명의 출석하는 큰 교회로 성장했다. 빅토리아친교회는 선교를 매우 열심히 하고 있다. 미얀마, 인도, 말레이시아, 호주 등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을 섬기고 있고, 미얀마 복음화를 위해서 8명의 선교사를 파송해서 6개 지역을 섬기고 있다. 신학생 18명도 후원하고 있다. 리안 목사는 온누리교회와 함께 미얀마 복음화를 위한 선교를 했으면 좋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온누리교회가 가진 선교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미얀마에 복음을 전하고, 열방에 흩어져 있는 미얀마인들을 섬기는 선교를 한다면 분명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온누리교회 일대일제자양육도 저희 교회에 접목해보고 싶습니다.” 리안 목사가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다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고 했다. “온누리교회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터닝포인트예요. 제가 온누리교회 성도님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을 거예요. 온누리교회가 저처럼 한국을 찾은 수많은 이주민들을 섬겨주십시오. 그들이 돈 대신 생명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섬겨주십시오.”

 2020-01-19      제1279호

[국내캠퍼스] 새해에는 공동체 성경읽기! 

신년기획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방법 1. 공동체 성경읽기 모세부터 사도 바울, 예수님이 해온 성경읽기 방법 온누리교회가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2020년 새해를 힘차게 출발했다. 본지에서는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성도들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방법은 공동체 성경읽기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성경읽기는 마음처럼 쉽지 않다. 오죽하면 새해 대표적인 작심삼일 포부가 성경일독일까.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말이다. 혼자서 한다면 말이다. 성경을 1년 내내 꾸준히 읽을 수 있는 아주 탁월한 방법이 있다.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성경을 읽는 것이다.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싹트는 사랑은 덤이다. 오늘(12일) 오후 9시부터 시작되는 ‘공동체 성경읽기’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좋다. 공동체 성경읽기 예배를 1년 동안 드리는 것만으로도 신약성경(누가복음 제외)을 완독할 수 있다.  성경읽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성경은 말씀의 중요성과 말씀 읽기를 강조하는 구절로 구성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말씀이라”(벧전 1:17).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갓난아기들은 어미의 젖이 없으면 살 수 없다.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다. 젖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갓난아기들처럼 크리스천은 하나님 말씀의 젖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반드시 성경을 가까이하고, 읽어야 하는 이유다.    왜 공동체 성경읽기인가?    그렇다면 왜 공동체 성경읽기일까? 공동체 성경읽기는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 것일까? 공동체 성경읽기는 혼자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읽는 또 하나의 예배다. 공동체 성경읽기의 역사가 매우 깊다. 구약의 모세부터 사도 바울, 예수님이 해온 성경읽기 방법이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공동체 성경읽기를 통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애굽 생활에 젖어있던 폐해가 컸다. 노예근성에 젖어있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누구이며, 장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줘야만 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과 명령을 공동체 성경읽기를 통해 백성들에게 전달했다(신 5~6장).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신 5:1).  모세에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 역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모세가 했던 것처럼 함께 말씀을 읽고 들었다(수 9:30~35).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듣기 위해 모였다는 기록이 없다.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듣는 일상이 없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과 사명, 부르심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왕국이 분열되고 말았다.  그러다 남유다 16대 왕인 요시야 때 공동체 성경읽기가 부활했다(왕하 22~23장). 요시야 왕이 성전보수를 하려 했는데 그곳에서 오래된 율법서가 발견됐다. 요시야는 율법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여선지자 훌다에게 사람을 보냈고, 훌다는 이스라엘에 큰 재앙이 내릴 것을 예언했다. 재앙의 예언을 들은 요시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성전으로 불러내 말씀을 읽는 것이었다. 요시야는 율법서에 쓰인 대로 모든 백성들에게 언약을 세워 지키게 했다. 성경은 요시야를 온 마음과 온 정신과 온 힘으로 여호와를 향한 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23:5). 사도 바울 또한 공동체 성경읽기를 강조했다.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공동체 성경읽기를 하면서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가르치라고 권면했다.  “내가 갈 때까지 그대는 성경 낭독과 설교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여라”(딤전 4:13).  여기서 ‘성경 낭독’이라는 표현을 영어 성경에서는 ‘Public reading of Scripture’라고 표기하고 있다. 공동체 성경읽기를 의미한다. 그냥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성경읽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도 공동체 성경읽기를 하셨다. 예수님은 공동체 성경읽기를 하면서 두루마리 말씀을 펼쳐 읽은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그 시간에 선포하셨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께서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나셨습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으시고 두루마리를 펼쳐 이렇게 기록된 곳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눅 4:16~19).    성 어거스틴의 회심, 그 결정적 계기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사, 사상가이자 성자, 교회가 낳은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성 어거스틴은 한때 마니교에 심취했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했었다. 그 방탕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어린아이의 ‘성경을 읽으라’는 목소리 덕분이었다.  “난데없이 어린아이의 노래 소리를 들었습니다. ‘집어 읽으라 집어 읽으라’는 후렴이 연거푸 들려왔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며 노는 게임이 있었던가 하고. 그러나 전에 그런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그치고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 책을 움켜쥐고 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내 눈이 처음으로 닿는 곳을 읽었습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내가 그 구절을 읽는 순간, 확신의 빛이 밀물처럼 내 마음 속으로 밀려들어오고, 모든 의심의 어둠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회심한 성 어거스틴은 참회록(고백론), 신국론(神國論), 삼위일체론 등을 저술했다. 후대 크리스천들의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 허랑방탕한 탕자에서 위대한 기독교 지성인으로 변모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다름 아닌 성경읽기의 힘이었다. 우리가 성경읽기를 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물론 성경을 읽는 일이 쉽지는 않다. 성경 읽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많지만 대부분 바쁘거나 강제성이 없어서, 좋아하는 말씀만 골라서 읽어서,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나오면 건너뛰거나 성경책을 아예 덮어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을 혼자 읽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것이다.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읽으면 분명 다르다. 밥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고 외롭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으면 맛도 좋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성경읽기도 마찬가지다. 새해에는 공동체 성경읽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자(신 6:6). 그것이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2020-01-12      제12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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