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감사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주일강단
감사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누가복음> 17:15~19
/ 박종길 목사
감사는 참 아름답고, 감사는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은혜입니다. 감사는 상황과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우리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조건적인 감사가 일시적인 기쁨을 준다면, 무조건적인 믿음의 감사는 우리의 신앙에 영원한 기쁨을 줍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큰 감사입니다. 감사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삶을 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고, 구원의 진리에 굳건히 서고, 복음으로 영생을 얻고,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귀한 삶을 사는 비결이 감사입니다. 감사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감사에 대한 세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표현할 때 진정한 감사
첫째, 표현할 때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습니다.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15~16절).
오늘 본문에 열 명의 한센병 환자가 나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는데, 한 명만 돌아와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자기를 고쳐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를 낫게 해 주신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합니다. ‘엎드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높이며, 진정으로 감사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를 표현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자그만 것이라도 감사를 표현할 때 더 큰 감사가 열립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이 한센병을 고쳐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했는데, 이 감사로 인해서 영혼까지 구원받는 더 큰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랑,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감사는 표현될 때 진정한 감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감사하는 것에 서툴고, 감사를 표현하는 것을 조금 어색해 합니다. 문화적인 이유도 있고, 감사를 감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만함도 있습니다. 감사를 감사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생각이 허망해졌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두워졌습니다”(롬 1:21).
감사하지 않는 마음의 깊은 뿌리에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만함, 어리석음, 죄가 있습니다.
감사가 표현될 때 더 큰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감사를 표현해야 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
성경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행복하고, 잘 되고, 믿음 가운데 승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고, 행복하게 살고, 하나님이 주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모든 일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게 우리에게 축복이 되고, 감사하는 게 우리를 승리하게 하고, 감사하는 게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감사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거나 놓치면 불평과 불만이 찾아옵니다. 감사를 잃어버릴 때 우리는 남과 비교하고, 그 비교 속에서 교만하든지 아니면 열등감에 괴로워합니다. 절망하고, 분노와 시기, 질투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천국의 행복을 빼앗깁니다. 감사를 표현하고 고백하십시오. 감사가 사랑의 선물로 나눠지는 것이 우리를 행복의 잔치로 초대하는 초청장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을 고백하고, 내가 받은 사랑과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현할 때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고,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그 감사가 축복의 자리, 행복의 잔치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감사를 선택할 때 형통의 문이 열린다
둘째, 감사를 선택할 때 형통의 문이 열립니다.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열 명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명은 어디에 있느냐? 이 이방 사람 말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되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이냐?’”(17~18절).
감사는 선택입니다. 열 명의 한센병자가 나음을 얻었는데, 감사를 표현하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한 사람은 한 명이었습니다. 우리는 불평과 원망, 섭섭함과 분노, 좌절과 절망을 선택할 수도 있고, 감사와 기쁨, 용기와 희망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사는 선택입니다. 우리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 상황과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조건으로 얻어지는 행복이라기보다 그 상황과 형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입니다. 어떻게 묵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얻어지는 게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슬프고 아프고 어려운 상황에도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그분의 주권이 나와 함께함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나를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이성, 판단보다 뛰어난 하나님을 믿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감사를 택할 때 형통의 문이 열리고, 구원의 문이 열립니다.
요나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죄를 범했고, 풍랑이 이는 바다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위해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고, 그 물고기 뱃속에 갇혀 생명을 유지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살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러나 내가 감사의 노래로 주께 제물을 드릴 것입니다. 내가 서원한 것을 내가 잘 지킬 것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부터 옵니다”(욘 2:9).
요나가 비록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징계를 받았지만, “나는 감사의 노래로 주님께 나가겠습니다. 내가 서원한 것을 지키겠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라고 기도하며 믿음을 선택하고, 감사를 고백합니다.
여러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처음에는 받은 것을 감사하지만, 점점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는 감사로 나아가게 되고, 그 감사가 우리를 더 큰 형통의 문, 구원의 문으로 인도합니다. 한 사람의 신앙 성숙은 감사의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결코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한다면 사단의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감사가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감사가 우리의 어두운 상황에 빛을 비춰 줍니다. 감사는 조건으로 얻어지는 행복이 아닙니다. 감사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감사를 선택할 때 더 큰 형통의 문이 열립니다.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역경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불행을 끝내는 도구일 뿐 아니라 더 큰 감사의 문을 여는 형통의 도구입니다.
감사는 상황을 뛰어넘는 마중물
셋째, 감사는 상황을 뛰어넘는 마중물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했다’”(19절).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고, 감사를 선택했던 사마리아 사람은 영혼이 구원받는 축복을 얻습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와 축복을 여는 열쇠이자, 마중물입니다. 상황을 뛰어넘는 마중물입니다. 마중물은 적은 양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얻는 물이 엄청납니다. 끝이 없습니다. 감사가 이와 같습니다. 감사는 이 사마리아 사람처럼 육체적인 병을 치유 받는 것 이상으로 영혼이 구원을 받는 큰 축복을 얻게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기가 겪었던 어려운 상황들을 고백합니다. 매를 셀 수 없이 맞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고 말합니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39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나 있었고, 로마 사람들에게 매질 당한 것이 세 차례나 있었고, 돌에 맞은 것이 한 차례였습니다. 그는 망망대해에 빠져 꼬박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해마다 고된 여행을 하면서 여러 개 강을 건넜고, 강도들을 피해 다니고, 벗들과 다투고, 적들과도 싸웠습니다. 도시에서도 위험에 처하고, 시골에서도 위험에 처하고, 태양이 작렬하는 사막의 위험과 폭풍이 이는 바다의 위험도 겪었습니다. 형제로 여겼던 사람에게 배신도 당했습니다. 단조롭고 고된 일, 중노동을 했고, 길고 외로운 밤을 여러 차례 지내고, 식사도 자주 거르고, 추위에도 상하고, 헐벗은 채 비바람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게 아니라 그 어려움조차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라고 고백하고, 자신의 약함마저 기뻐하고 감사하고 자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위해 여러분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골 3: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감사가 우리를 형통의 문으로, 축복의 문으로, 행복의 잔치로 초청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우리를 축복으로 인도하는 마중물입니다. 상황을 뛰어넘어 감사하십시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가사가 다음과 같습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 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 이제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감사로 닫힌 문을 열고, 감사를 축복의 마중물 삼아 메마른 삶과 영혼을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로 가득 채우십시오. 감사는 표현할 때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감사를 선택할 때 형통의 문이 열리게 합니다. 감사는 상황을 뛰어넘는 마중물입니다. 감사로 무한한 축복의 근원이고, 생수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넘쳐흐르게 하고, 막혀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하며, 승리하는 삶을 사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4-10-06
제15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