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 “…그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이 크게 다윗에게 임했습니다…”(삼상 16:13).
맛있는 말씀 해설
“…그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이 크게 다윗에게 임했습니다…”(삼상 16:13).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성경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밌던 것은 다윗의 이야기였다. 작은 소년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을 무찌르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하는 용맹한 모습은 어린 나에게 영웅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도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은 지금도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러나 다윗이 실제 왕이 되기까지는 1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삼하 5:4). 왜 다윗은 사울처럼 바로 왕이 되지 못했을까? 사울의 기름 부으심과 다윗의 기름 부으심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고대 근동에는 극소수의 민족만이 왕에게 기름을 부었다. 이스라엘도 그중 하나였는데,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왕에게도 기름을 부었다. 이는 협약이나 언약의 의미를 넘어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셨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사울과 다윗의 기름 부음 방식에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을 때 ‘기름병’을 사용하게 하셨고, 다윗에게는 ‘기름뿔’을 사용하게 하셨다. 병은 쉽게 깨지지만, 뿔은 견고하고 오래 지속되며 고귀함과 능력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사울의 기름 부음은 일시적인 반면, 다윗의 기름 부음은 영구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윗의 계보에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의미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윗을 왕으로 세우지 않으셨을까?
사울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획하신 때가 아니었다. 백성들의 요구로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이었다(삼상 9:4~7). 반면 다윗은 ‘나를 위해서’(삼상 16:3), 즉, 하나님을 위해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이는 하나님이 아주 오래전에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창 12:3, 22:17~18)을 이루시기 위함이며, 유대인의 진정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계획이었다. 전자가 인간 중심적이라면, 후자는 하나님 중심적인 선택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울과 다윗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사울에게도 성령의 능력을 허락하셨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을 때도(삼상13:12~13) 회복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또다시 불순종하며 자신을 위한 전리품을 남겼고,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삼상15:1~12).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들을 찾기 위해 성실히 의무를 다했던 사울, 왕으로 소개되는 군중들 앞에서는 짐꾸러미 속에 숨어있던 부끄럼 많고 소심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뻔뻔하게 자신의 잘못을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다윗은 왕의 기름 부음을 받고 성령이 임했지만, 사울 왕을 섬기고, 수금을 연주하며 그를 위로했다. 다윗은 자신의 기름 부음을 주장하지 않았고, 섬김을 통해 성령의 능력을 나타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 구약시대처럼 기름 부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임재를 직접 경험하며 내주하시는 성령을 따라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간구하고, 그 기름 부으심을 통해 능력을 행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단순히 능력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 즉 성령 충만함은 먼저 성령의 속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다윗이 기름 부음 받았을 때처럼, 섬기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함이란 그런 것이다. 물론 은사적인 능력도 있지만, 섬김이 없는 자에게는 온전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설령 능력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사울처럼 성령이 떠나가고, 거짓된 능력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간구해야 하는가? 겸손히 섬김으로 성령의 능력을 나타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삼을 것인가?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온전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러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상상해 보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의 머리에서 얼굴로 흘러내리고, 다시 옷깃까지 적시는 충만함(시 133:2)을 경험한다면 과연 교회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 능력이 드러날 수 있을지를 말이다. 성령의 온전한 기름 부으심이 머리에서부터 얼굴을 타고 흘러 옷깃을 적시듯, 우리를 충만하게 감싸며 겸손히 섬기는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삶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승철 목사(양천공동체)
2025-02-22
제15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