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질문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다 천국을 살아내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다
천국을 살아내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같은 예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교회 안에서도 다툼과 분쟁을 겪고 상처를 받는 걸까요?”
청년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교회에 처음 정착한 이들, 또는 오래 섬기다가 지쳐 쉬고 있는 이들의 공통된 고백이기도 하다. 신앙인으로서 교회를 사랑하지만, 때때로 교회가 가장 힘든 곳이 되어버릴 때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세 가지 대답을 나누고자 한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상처 입은 인간들이 함께 살아간다. 성경은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르지만, 동시에 ‘연약함을 가진 자들’이라고 묘사한다. 베드로와 요한, 바울도 예외가 아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선교 동역자였던 바울과 바나바조차 큰 다툼을 겪는다. 서로를 믿고 사랑했던 두 사람이지만, 마가 요한을 데려가는 문제를 두고 의견이 갈렸고, 결국 다른 길을 간다.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조차 완전한 평안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교회란 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함께 자라는 곳이 교회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다툼이 생길 때, 그것은 교회가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복음이 필요한 자들의 공동체라는 증거일 수 있다.
둘째, 교회는 성장이 필요한 미성숙한 ‘자아’들이 부딪히는 현장이다
청년 사역을 하면서 가장 자주 접하는 관계의 갈등은 ‘다름’보다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해왔는데 너는 왜 그렇게 안 해?’라는 충돌이 더 많다. 이는 세대를 넘어 교회 안에서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다. 20대 청년의 언어와 50대 장년의 언어가 다르고, 기도 스타일이나 예배 문화, 심지어 옷차림도 때로는 갈등의 불씨가 된다.
우리는 신앙인이지만, 여전히 자아의 성장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완전한 성품을 얻는 게 아니다. 성령 안에서 조금씩 나를 내려놓고, 타인을 존중하고, 자기중심성을 다듬어가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교회는 바로 그 ‘성품 훈련소’다. 갈등이 없는 것이 성숙이 아니라, 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하고,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가는 게 성숙이다.
셋째, 상처와 갈등조차 하나님은 ‘성장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사실 굉장히 현실적인 고통을 전제한다. 예수님은 제자들 간에 갈등이 있을 것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반복적으로 “용서하라”, “화목하라”,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에서 경험하는 갈등은 때로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고, 오히려 더 깊은 공동체성을 배우게 만든다. 문제는 다툼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다. 그 갈등을 통해 ‘우리가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사랑을 선택하고 있는가’다. 어쩌면 교회에서 겪는 상처는 우리가 ‘진짜 사랑’을 배울 기회일 수 있다. 누군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주시는 게 아니라 인내를 발휘할 기회를 주신다. 때론 그 상황과 감정이 힘들고 고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이끌어 주신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다. 하지만 천국을 살아내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함께 기도하고 눈물 흘리고 다시 일어나 서로를 붙드는 자리가 교회이다. 상처가 없으면 좋겠지만, 그 상처를 통해 함께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 최재윤 목사(대학청년부)
2025-06-28
제15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