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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멋진 만남, '청년과 멘토' 진짜 멋진 만남, ‘청년과 멘토’ 멘토는 삶으로 보여주는 스승, 경험을 나눠주는 아버지 멘토,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청년들이 꼭 듣고 싶어하는 말이 있다. 인생 선배들의 경험담이다. 그만큼 살아있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 청년들은 인생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으려고 그들의 강의를 찾아보기도 하고, 서적을 구입해서 읽기도 한다. 그렇게 만난 인생 선배들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까봐 빼곡하게 메모도 해놓는다. 그런데 여기, 청년들이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인생 선배들과 정기적으로 그것도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대학청년부에서 활발하게 실시하고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 홍하영 기자 hh0@onnuri.org 살아있는 인생 경험을 주고받는 멘토와 청년들 (위 박일환 장로와 김창식 형제, 아래 신현우 집사와 안선명 형제). ‘멘토’라는 단어는 <오디세이(Odyssey)>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절친한 친구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친구 멘토에게 자신의 집안과 아들 텔레마코스를 부탁한다.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친구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친구이자 스승,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줬다. 전쟁에 나간 친구 오디세우스 대신 텔레마코스 왕자를 지혜롭고 현명한 왕으로 키워냈다. 텔레마코스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멘토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때마다 멘토는 그의 곁에서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멘토라는 이름이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현명한 지도자(충실한 조언자)’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멘토를 만나고 싶어 한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있는 청년들은 더욱 그렇다. 수많은 청년들이 인생 선배들에게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선배들의 인생 경험 그 자체가 그들이 찾아 헤매는 문제의 해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인생을 먼저 산 선배들의 경험과 진심어린 조언이 청년들에게 정말 큰 도전과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에도 청년들에게 도전과 위로, 사랑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있다. 멘토들이다. 청년들이 멘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멘토들과의 대화에서 신앙과 삶에 대한 고민과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가 그랬듯이 대청 멘토들도 청년들의 스승이자 부모, 상담사이자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나도 멘토님처럼 살아야겠다” 안선명 형제(부천드림플러스공동체)는 신앙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멘토 신현우 집사(부천드림플러스공동체 멘토)를 만났다. 안선명 형제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신앙적인 어려움과 마주했다. 이 무렵 성경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는데 마땅히 물어볼 데가 없었다. 교회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신현우 집사를 만났다. 안선명 형제와 신현우 집사는 7개월 동안 식탁교제를 나누면서 대화했다. 신현우 집사는 안선명 형제와 만나는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살아오면서 실수한 경험을 나누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7개월 동안의 만남이 안선명 형제의 신앙을 성장시켰다.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던 안선명 형제가 지금은 부천 온누리교회 찬양팀을 섬기고 있다. 그룹홈 사역도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고 있다.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일터를 ‘능력에 맞게 들어가 돈을 버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라고 생각하게 됐다. 신우회를 만들어서 동료들과 말씀을 나누고, 섬기는 신현우 집사를 보면서 일터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또한 신현우 집사의 연애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앙 안에서 아름답게 교제하는 방법을 배웠다. 매일 함께 QT하면서 교제했다는 신현우 집사 부부의 이야기가 안선명 형제가 가지고 있던 연애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신현우 집사가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이 도전이 됐다. “멘토님 덕분에 제 신앙과 삶이 많이 변화 됐어요. 멘토님이 제게 해주셨던 조언들을 삶으로 직접 보여주시니까 더 와 닿고 도전이 되더라고요. 항상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시는 멘토님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일 마주할 때마다 떠오르는 ‘멘토’ 부모는 자녀가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미리 길을 닦아준다. 먼저 걸어온 그 길에 대한 경험을 아낌없이 들려준다. 멘토도 멘티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김창식 형제(요셉공동체)는 요셉공동체에서 자신의 인생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든든한 아버지 같은 멘토를 만났다. 요셉공동체 대표멘토 박일환 장로다. 김창식 형제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올바른 신앙관과 재물관, 인격을 갖춘 크리스천 CEO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CEO 출신 박일환 장로에게 도움을 받고자 찾아갔다. 박일환 장로는 김창식 형제를 너무나 따뜻하게 맞아줬다. 크리스천으로서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알려 줬다. 얼마 전에는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다. 김창식 형제가 준비하고 있는 일들이 번번이 잘 풀리지 않아서 조급한 마음이 찾아왔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운 마음도 밀려왔다. 박일환 장로는 김창식 형제에게 본인의 실패담을 들려줬다. 그러면서 “기다리다보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조언했다. “조급하다 보면 꼭 봐야할 다른 부분을 놓치게 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박일환 장로의 조언대로 김창식 형제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차근차근 일을 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선택 앞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박일환 장로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인생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라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제 선택으로 인해 결정된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제 삶에 적용해 보니까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일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 신앙적인 고민, 결혼,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박일환 장로가 떠오를 정도다. 웃음 가득한 멘토들의 고백 “청년들과 소통할 때 가장 행복하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멘토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신현우 집사는 “청년들과 삶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라며 “청년들을 더 섬기고, 그들을 돕기 위해 더 노력하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신현우 집사는 청년들과 더 가까워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청년부 공동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일을 맞은 청년들을 챙기고 있다. SNS 카카오톡에 생일을 맞은 청년의 이름이 뜨면 잊지 않고 간단한 선물을 전달하고 마음을 표현한다. 순모임 단체 채팅방에서 은혜 받은 말씀을 나누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청년부 리더십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윷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청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박일환 장로 역시 청년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공부하고, 순모임에도 참석하고 있다. 박일환 장로는 “청년들과 소통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박일환 장로가 이 시대 청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빚어 좋은 그릇을 만들 듯이 하나님도 여러분을 보시기에 좋은 걸작으로 빚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걸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인생을 소중하게 살아가십시오.” 박일환 장로와 신현우 집사 외에도 대학청년부에는 수많은 멘토들이 있다. 청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한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일대일 멘토링도 해주고 있다. 인생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한 청년이 있다면 주저 없이 다가가기만 하면 된다.
2019-07-14 제1254호
캠퍼스 전도집회‘희망노트’4월 30일 시작 대학 신입생 수련회 ‘Be The Man’도 실시 대학부가 캠퍼스 전도집회 ‘ 희망노트’ 를 개최한다.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오전 11시와 정오에 45분씩 명지대학교 용인캠퍼스 60주년 채플관에서 열린다. 캠퍼스 전도집회 ‘ 희망노트’ 는 말씀영상, 찬양 및 간증,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강사는 최성민 목사(온누리교회)이며 특별게스트는 가수 이미쉘, 가수 김신의(그룹 Monni), 가수 홍이삭이다. 최성민 목사(온누리교회)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캠퍼스 전도집회 ‘ 희망노트’ 에 참석해서 교회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캠퍼스 전도집회 ‘ 희망노트’ 는 매년 열리고 있다. 한편 허브공동체와 Pole2공동체는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수련회 ‘ Be The Man’ 을 개최한다. 허브공동체는 4월 28일 토요일오후 3시 양재 온누리교회 비전홀, Pole2공동체는 5월 12일부터 5월 13일까지 1박2일 동안 경기도 가평에서 실시할 예정이다. 하늘공동체는 지난 4월 7일 홍익대학교 프리스타일 스페이스 이벤트홀에서 수련회를 실시했다. / 권찬송 기자 kcs123@onnuri.org
2018-04-24 제1192호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아웃리치의 진정한 모델 ‘예수 그리스도’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아웃리치의 진정한 모델 ‘예수 그리스도’ “공동체에 등록하고 말로만 듣던 해외 아웃리치를 처음 신청했습니다. 기대감도 크고, 걱정도 됩니다. 들인 비용에 비해 감동이나 깨달음이 없으면 실망할 것 같거든요. 저의 첫 번째 아웃리치를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까요?” 아웃리치!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아웃리치는 세계 선교를 위해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일으키시는 선교의 강력한 도구이다. 그 영광스러운 부르심의 자리에 쓰임 받는 것인 만큼 어떤 마음으로 아웃리치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웃리치에 참여하는 동기가 다양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마음, 타문화 체험,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으로 섬기고 싶은 마음 등 각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여러 동기가 있다. 하지만 아웃리치팀이 구성된 이후에는 개인의 동기보다 팀워크와 팀 차원에서 사역을 생각하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 하나님은 개개인을 부르셨고, 이제는 팀으로 일하기를 기대하신다. 해외 아웃리치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현지 사역에 참여해서 돕는 것이다. 아웃리치는 선교지의 필요 때문에 개개인을 동원하는 것이고, 선교지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하는 것이다. 아웃리치의 본질이 무엇인가? 아웃리치는 ‘밖으로 나가(out)’ 필요한 대상에게 ‘다가가는 것(reach)’이다. 아웃리치의 진정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가장 영광스러운 곳을 떠나(out) 가장 비천한 땅에 오셨다(reach). 인간을 구원하려고 복음으로 오셨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러 오셨다. 아웃리치는 이웃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는 사역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한다. 자, 깨끗이 나아라!’”(막 1:41). 예수님은 고통에 처한 자를 향해 사랑의 손을 내미셨다. 아웃리치는 자기 울타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눔과 섬김의 손을 뻗는 것이다. 아웃리치는 긍휼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먼저 불쌍히 여기심으로 손을 내미셨다. 아웃리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또 아웃리치는 ‘그의 처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대셨다. 이는 그와 같이 되는 것이고, 그의 처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아웃리치는 현지에서 만나는 영혼들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하며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다. 아웃리치는 치유와 회복을 추구한다. 예수님이 “내가 원한다. 자, 깨끗이 나아라”고 말씀하셨듯이 그가 깨끗함을 받고 치유 받는 게 목적이다. 아웃리치의 진정한 목적은 대상의 회복과 치유이다. 아웃리치는 그들에게 유익을 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그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거룩한 통로가 되는 것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외 아웃리치를 준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언어, 선교적 관점을 바탕으로 선교사가 되어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웃리치 준비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오랫동안 사역하신 선교사님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게 좋다. 그 땅에 대한 문화나 역사에 대한 이해, 선교사님이 구체적으로 요청하신 것을 준비해야 한다. 아웃리치 준비와 훈련을 철저히 하고, 현장에 갈 때는 비워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많은 것을 하고 돌아올 거라는 기대와 달리 준비한 것을 모두 펼치지 못해도 그 땅의 영적인 상태를 보고, 기도하고, 선교사님과 교제하는 것만으로도 영적인 유익을 얻는 것이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우월하기에 무엇인가 줄 것을 가져가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한다. 형제의식과 동등한 수평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잘하는 것과 준비한 것을 나누면서 동시에 그들이 가진 것을 상호교환하는 만남과 사역이어야 한다. 해외 아웃리치는 우리의 영적 성숙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준비 단계부터 팀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 되고, 겸손하게 사역을 감당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훈련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아웃리치가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만 붙들며 나아가자! / 이승민 목사(길청년부)
2022-06-25 제1399호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제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진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났고, 이 문제 극복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목사님!" 운동선수에게 슬럼프가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믿음의 성도들에게도 슬럼프가 존재한다. 슬럼프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한번 슬럼프에 빠지면 그동안 쌓아왔던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의 탑이 흔들리고, 결국에는 무너져버리고 만다. 이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열심히 그리고 올곧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한 번쯤 세상의 유혹과 신앙의 회의감이 들면서 흔들릴 수 있다. 그 흔들림이 균열을 만들고, 균열이 슬럼프로 이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생에 찾아오는 유혹과 그로 인해 흔들리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슬럼프에 빠졌을 때 헤어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연약해서 누구나 흔들릴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흔들림으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결심해야 한다. 비록 내가 흔들리고 무너졌을지라도, 면목 없고 염치없지만 다시금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를 보자. 이 비유에서 성경은 둘째 아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받고 집을 떠나 먼 나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다. 머지않아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돼지 사료로 쓰이는 쥐엄나무 열매마저 먹지 못하는 비참한 상황까지 갔다. 그제야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있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평안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염치없고 면목 없지만,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거리가 멀리 있는데도(눅 15:20) 아들을 알아보고 뛰쳐나가 안아주고 입을 맞추며 맞이했다. 신앙의 슬럼프로 인해 잠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면 하나님은 아직 멀리 있어도 우리를 향해 달려오셔서 안아주실 것이다. 바라기는 성경 속 둘째 아들처럼 모든 것을 잃고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잃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다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 어디 있으랴" 모든 아름다운 꽃도 흔들리면서 핀다. 그러니 조금은 흔들려도 괜찮다. 조금은 멀어져도 괜찮다. 흔들리지 않고 멀어지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금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줄기를 조금씩 곧게 세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예쁜 꽃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 / 오현교 전도사(여호수아청년부)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는 청년들의 신앙적인 고민과 질문에 대학청년부 목회자들이 조언과 격려를 건네는 코너다. 질문 및 고민 보내실 곳: joo@onnuri.org
2022-06-18 제1398호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문자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적용하라!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문자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적용하라! “구약에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 있는 걸로 압니다. 그렇다면 피가 섞인 음식(선지, 순대 등)을 먹으면 안 되는 건가요?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나요?”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오랜 역사를 거쳐 기록된 책이다. 현대에 지어진 책이 아니어서 여러 성경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성경통독을 해본 사람이라면 ‘우리 시대에 어디까지 성경을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오늘 같은 질문이다. “구약에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 있는데, 우리는 피가 섞인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가?” 등의 궁금증 말이다. 실제로 구약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오늘날에도 선지해장국을 드시지 않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적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기보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적용한 것이다. 물론 성경 말씀을 삶에서 어떻게 해서든 지켜나가려는 그 마음과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바를 더욱 정확하게 알고 살아낸다면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더욱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피를 먹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은 레위기 17장에 자세하게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피는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피는 생명 그 자체 혹은 생명의 근원(창 9:4~5, 레17:11)으로 간주했다. 모든 생물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둘째, 피는 속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피는 그 자체에 포함된 ‘죽음’과 ‘생명’이라는 이중 개념으로 인해 죽음을 생명으로 바꿔 놓는 유일한 속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히 9:22). 이 밖에도 피를 마시는 행위는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이 즐겨 행한 제사 의식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이유를 통틀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성결’을 유지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백성들도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레 11:45).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단순히 피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문제로 여기는 게 아니다. 이미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성되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으며, 동시에 이방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모두 선하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딤전 4:4).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믿음과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성결을 위해 피를 금지하셨다면, 오늘날 나의 삶에서 동일하게 성결을 위해 금지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믿음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거룩한 고민과 씨름하며 살아갈 때 우리 삶에 말씀의 진리가 온전히 세워질 거라 확신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성도’로 부르신다. / 김한국 전도사(여호수아청년부) *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는 청년들의 신앙적 고민에 대학청년부 목회자들이 조언과 권면을 건네는 코너이다. 질문 및 고민 보내실 곳: joo@onnuri.org
2022-06-11 제1397호
[라떼는 말이야] 영적 태도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 라떼는 말이야 영적 태도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 청년들 순예배에 함께하는 ‘순라운딩’은 청년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한다. 청년세대의 신앙관과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기도제목을 통해 청년들의 삶과 고민을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귀한 자녀로 불러주신 이들이 잘 세워지도록 도와야한다는 사명을 다시 한번 다져본다. 그런데 믿지 않는 세상 청년들처럼 불안과 염려, 상처로 인해 기쁨과 소망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믿음의 청년들이 적지 않다. 넘쳐나는 미디어를 통해 유해한 영상들에 이목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현실, 세상을 지배하는 물질주의와 편가르기, 여러 격차는 청년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나아가 주님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기쁨 넘치는 삶의 비밀까지 가려버린다. 흔히들 영적 전쟁을 일부 귀신들린 자들, 사단의 싸움이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살아가는지 아니면 사단의 다스림 속에 살아가는지 선택하는 싸움이 바로 영적 전쟁이다. 삶의 매 순간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치열한 영적 전쟁 영역이다. 청년들에게 권면하고 싶다. 일상의 활동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 유혹과 절망감을 이기고, 소망을 되찾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매일의 영적 공급을 통해 건강한 영혼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물을 통해 우상과 노예근성에 물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내면의 독소를 없애고서야 언약의 땅을 향한 광야의 길을 시작하게 하셨듯, 나의 시간을 드리는 영적 규칙을 세우고 지키며 세상 찌꺼기들을 그때그때 해독해야 다시 일어나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오래전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이 나왔다. 원제목은 ‘Too busy not to pray’다.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청년의 때가 얼마나 바쁘고 분주한지 잘 안다. 하지만 바쁠수록 하나님 은혜 안에 더욱 머물러야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 청년 여러분이 바로 미래이고, 희망이다. 미래를 만드는 것은 나의 믿음이다.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큰일을 기대하며 임재 안에 머물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향한 영적 태도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 더이상 사람과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걱정과 근심을 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권능이 넘치는 역동적인 삶이 될 것이다. 청년들과 만나고 그들의 고민을 들으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넘치는 정보의 시대에서 즉각적인 해답을 원하는 세대인지라 이해가 간다. 그러나 문제에 직면한 크리스천의 대응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How to do’보다는 ‘How to be’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문제에 대한 세상적 분석과 인맥 및 방법 찾기보다 나의 영적 상태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몇 년 전 재정적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때의 불안한 마음은 내가 그동안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우쳐줬다. 상황에만 몰두하려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눈물로 회개기도를 했을 때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늘 듣던 말씀을 주셨다. 태어나게 하신 목적과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나의 존재를 다시 깨닫게 하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다시 선포할 수 있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 덕분에 염려와 불안이 아니라 기쁨과 찬양으로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체험했다. 요셉의 형통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총리가 됐을 때가 아니라 절망적인 노예의 삶이 시작될 때 주어졌다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처럼, 내게도 고난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주신 평안과 형통함의 시간이었다. 형통이란 문제가 해결되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문제가 문제 되지 않는 상태다. 파도를 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거친 파도 위를 걸어갔던 베드로처럼, 청년들도 형통의 원리를 발견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진정한 보호자는 하나님뿐이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오히려 언약을 주시며 깊은 사랑과 영원한 축복을 주신다. 지난 2년 동안 중단되었던 해외 아웃리치에 많은 청년이 지원했다고 한다. 모집 공고를 낸 당일 대부분 인원을 채웠다고 한다. 아웃리치를 통해 그 땅과 민족에 손을 내밀어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내고,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부요함을 담아 안고 오는 청년들 되기를 기도한다. 청년들을 사랑하고, 축복한다! / 오범규 장로(여호수아청년부)
2022-06-04 제1396호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 “공동체(순)에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 때문에 제가 상처를 받은 적이 있고 나서 엮이기 싫어졌습니다.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그 사람과 척을 질 수도 없고 기분이 너무 안 좋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동체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교회는 온전하고 완성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다. 그래서 우리 안에 갈등과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꼭 기억할 것은 공동체의 머리가 되시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이다.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이 반드시 공동체를 책임지실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신비한 공동체다. 너무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있지만, 머리 되시는 예수님께서 인도하셔서 가장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기보다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예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그러면 친히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를 기억하면 좋겠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격 있고 조건 있을 때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롬 5:8).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조건 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이다. 내가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때 바라봐야 할 것이 바로 이 사랑이다. 사람을 바라보면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받을 자격이 없었던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사랑할 힘이 생긴다. 내가 어려워하는 그 지체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임을 기억하라. 그러면 내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깨닫고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이 모든 어려움을 통해서 나를 새로운 단계로 성장시키실 것을 기대하라. 성경을 보면 관계의 갈등과 어려움을 모든 믿음의 선조들이 경험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이다. 그는 형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리는 일을 당했던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형들의 악함까지 사용하셔서 가장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노예로 팔려간 일이 요셉의 인생을 망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이 요셉의 인격과 신앙을 훈련했고,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셔서 많은 사람을 살리게 하셨다. 갈등과 상처가 있을 때 그 모든 것을 통해서 행하실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축복한다. 오직 기도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포기하지 말고, 믿음과 사랑의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 때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나의 인격과 신앙을 한 단계 성장시켜 주시는 방법이 될 것이다. 원수 갚는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로마서 12장 후반부를 보면 관계에 문제가 생기다 못해 원수처럼 여기게 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가 나온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롬 12:19)라고 했다. “네 원수가 굶주려 있으면 먹이고 목말라 하면 마실 것을 주어라 이로써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을 것이다”(롬 12:20)라고 권면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히려 그를 축복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분명하게 원수를 갚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세상에서 가장 공의로우신 심판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판자의 위치에 서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우리 인생에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 김승수 목사(대학청년부 본부장) *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는 청년들의 신앙적 고민과 질문에 대학청년부 목회자들이 조언과 격려, 답을 건네는 코너다. 질문이나 고민 보내실 곳: joo@onnuri.org
2022-06-03 제1395호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방언 여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방언 여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순장님이 방언기도 하는 걸 보고 저도 방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기도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딴생각에 빠집니다. 방언하면 기도도 더 오래 할 수 있고, 집중도 잘 된다고 해서 방언 받으려고 치유집회 같은 곳에 가서 안수기도도 몇 번 받아봤는데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방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언을 못 하는 사람은 기도할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알려주세요, 목사님!” 상담 혹은 대화를 하면서 많은 크리스천이 방언을 사모하는 것을 발견했다. 집회에서 누군가가 방언에 대해 간증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방언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의 표지로 이해되기도 하고, 그 사람의 신앙심이 깊다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방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적인 우월감을 경험하기도 하고, 방언을 못 하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게서 선물로 주신 것 중에 하나다. 고린도전서에 방언의 은사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당시 고린도교회 역시 방언을 성령의 은사로 이해했다. 그런데 안타깝게 방언의 은사로 인해 고린도교회가 영적 분열과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방언을 포함한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일이다. 나의 능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나님의 일 가운데 하나가 방언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방언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은사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은사가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방언의 은사 또한 마찬가지다. 방언의 은사를 통해 내가 속한 공동체와 세상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지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나는 청년 시절 교회를 위한 특별기도회 기간에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다. 당시 내가 출석하던 교회에 큰 어려움이 있어서 교회 전체가 기간을 정하고 집중적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때였다. 그때 나는 방언의 은사를 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도회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다. 방언의 은사는 구한다고 무조건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지 않다고 해서 주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성령은 같다고 말한다(고전 12:4).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 분별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셨다(고전 12:10). 사람마다 주어진 은사가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사명이 다르다. 그러나 그것을 허락하시고 뜻하신 바를 이루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방언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은사 중에 하나다. 무엇이 우월한 것이고, 무엇이 열등한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안타깝게 우리 안에 은사의 다양성을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방언과 같이 평범해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주목하는 은사가 중요하고 우월해 보이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 가운데 방언이 아니지만 다른 것이 주어져 있음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방언을 통해 역사하실 일과 계획이 있다면 방언을 은사로 주실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거라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방언 여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따라 이루어진다. 방언하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분명히 하나님은 다른 은사와 방법으로 뜻과 계획을 우리 삶 가운데 이루고 계시기 때문이다. 방언에 대한 사모함이 있다면 기도로 구하라. 다만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구하고 고백하라(마 26:39, 막 14:36, 눅 22:42). 하나님께서 그 기도와 간구를 기억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 / 정한효 목사(하늘대학부)
2022-05-21 제1389호
[라떼는 말이야 ] 더 어릴수록, 더 자주, 더 쉽게 라떼는 말이야 더 어릴수록, 더 자주, 더 쉽게 “새내기 부모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맘카페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보면 벌써 저런 것을 해야 하나 걱정되다가도 안 하면 내 아이가 뒤처질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녀 양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그리스도인은 자녀 양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는 크리스천 부모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주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의 신분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삶 속에서 말씀에 의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어린 나이일수록 올바른 자녀 양육의 방향이 서야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천은 모든 삶의 해답을 성경에서 우선적으로 찾아야 한다. 자녀 양육에 대한 해답도 먼저 성경에서 그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릴 때 모습을 찾아보면 어린 나이임에도 율법학자들과 성전에서 말씀을 나눌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했고, 이런 모습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매우 사랑스러운 존재로 인정받았다고 되어 있다. 예수님도 말씀을 매우 어린 시기부터 익혔음을 볼 수 있다.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분명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으로부터 혹은 주변 환경 속에서 말씀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을 거라고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예수님은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분이기에 일반 사람과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매우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말씀 속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다. 크리스천 부모는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양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맘카페와 같은 모임은 믿음의 공동체가 아니어서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이나 기능적인 면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크리스천 부모는 자녀들이 어린 시기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너무 어렵지 않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성경 내용을 이야기 풀어가듯 자녀에게 들려주거나 부모님이 매일 큐티하고 묵상한 말씀을 쉽게 설명해주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말씀을 습득하게 된다. 어린 자녀들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부모가 전하는 이야기를 흡수한다. 오히려 다른 습관이나 의식구조가 형성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확신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때 교회학교에서 우화처럼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말씀해주신 선생님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나이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나보다 센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이 보호해주시는구나!’라는 마음이 명확하게 새겨졌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소중한 자녀에게 생명과도 같은 진리의 말씀을 최대한 쉽고 가깝게 접하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인 우리가 먼저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자녀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말씀의 양육 위에 다양한 교육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말씀과 능력이 자녀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주리라 믿는다. 내 아들은 현재 대학생이다. 아들이 어린 나이에 외국 생활을 경험하면서 이렇게 양육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매우 후회된다. 지금은 아들과 큐티 묵상을 서로 나누면서 깊은 교제를 하고 있지만, 초등학교 때 다른 교육만큼이나 말씀 양육에 우선순위를 두고 힘썼다면, 아들이 이른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풍성하고 온전한 인도하심을 체험하며 성장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이른 나이에 경험하지 못하게 한 것이 부모로서 아쉽고 미안할 뿐이다. 더 어릴수록, 더 자주, 더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전달하는 부모가 되기를 바란다. / 김성훈 멘토(허브대학부)
2022-05-21 제1394호
[라떼는 말이야 ] 예수님의 사랑을 위한 어리석음 라떼는 말이야 예수님의 사랑을 위한 어리석음 “직장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습니다. 관리자(임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단도 아닙니다. 팀장님은 과장님을 지적하고, 과장님은 밑에 직원 지적합니다. 상사의 지사 사항을 후배 사원들에게 전달하면 잔소리로 치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저를 꼰대 취급할까봐 지적도 주저하게 됩니다. 애매한 위치에 처한 제 자신이 처량하고 씁쓸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멘토님!” 직장생활을 해본 선배로서 지금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처음 출근하던 날이 떠올랐다. 사회(은행)에 첫발을 디딘 날 지점장님과 커피 타임에 나눴던 대화가 문득 생각났다. 지점장님이 내게 “첫 출근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자네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가? 출세하고 싶은가?”라고 질문하셨다. 나는 당연히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지점장님이 선배로서 비결을 가르쳐주겠다며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방법은 딱 두 가지네. 하나는 자기가 맡은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로 적을 만들지 말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며 좋은 인맥을 구축하는 것이야.” 나는 두 번째 성공법을 마음판에 깊이 새기고 지금까지 실천하려고 노력해왔다. 부하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상사가 탐욕스럽게 느껴진다. 실무자의 고충을 알면서도 상급자의 무리한 지시에 침묵하는 중간관리자 역시 비겁하다고 정죄하기 쉽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타인을 밟는 것이 다반사인 세상에서 철저한 을의 입장을 강요받는다고 생각하면 낙심하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직장이란 생계의 중요한 수단이자 생활터전이다. 크리스천들에게 직장은 또 다른 사역의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2~3).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랬듯이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현대 직장인들에게 믿음 안에 굳게 서서 항상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권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울 사도가 세상의 냉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고 기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하나님께 선택받고 인도받은 자로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복음 전도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함에 있다는 비전을 확실히 붙들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통이 수반되는 중에도 모든 것을 주님이 맡기신 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누군가의 권력욕과 성공욕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는 존재로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이 “내가 너의 참 주인이고 필요한 곳에 내가 너를 보냈다. 거기가 많이 힘들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힘을 내어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믿음을 기초로 힘든 직장에서 심리적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는 말씀에 힘입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선포하기를 감히 권면한다. 세상의 자기중심적 관점으로는 오직 주님 뜻대로, 더 낮은 곳으로 기꺼이 향하고자 하는 마음과 삶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무지에서 기인한 어리석음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위한 어리석음이다. 세상의 어떤 동정 어린 시선에서도 자유할 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영적인 존재다. 직장에서 일관된 모습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성실히 임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상황과 입장에 따라 변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성경 말씀에 따라 진심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가장 성공적이고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의 욕심 때문에 구하지 못할 때, 성령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형제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중보기도해 주신다(롬 8:27).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신다(고전 2:9~11). / 양준홍 장로(갈렙청년부 멘토)
2022-05-20 제1390호
[라떼는 말이야] 하나님이 보내주신 배우자 찾기 라떼는 말이야 하나님이 보내주신 배우자 찾기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고 싶어서 수년째 기도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형제님들을 유심히 보기도 하는데 제 마음에 든 형제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거나 결혼했습니다. 소개팅도 해봤는데 조건이 좋으면 교회를 안 다니고, 믿음이 있으면 다른 조건이 제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제 기준이 높은 걸까요? 그렇다고 마음에 안 드는데 만날 수는 없잖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와주세요, 멘토님!” 내 배우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사도 바울은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심 같이 하십시오”(엡 5:25)라고 말했다. 나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심같이 사랑해주고, 나를 위해서는 어떤 수고와 희생도 해줄 수 있는 형제를 만나 결혼하기를 바란다. 결혼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믿음은 다 보고 알고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는 것이다. 나의 경험이나 생각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나를 향한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된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배우자에 대한 직업, 직장, 학벌, 외모, 가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것들을 마음에 두고 내게 행복한 가정과 안정된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는 남성을 찾게 된다. 여기서 질문하고 싶다. ‘돈은 얼마나 오래 갈까? 사회적 지위는 얼마나 오래 갈까? 외모는 얼마나 오래 갈까?’ 보이는 상황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나는 8년 전 회사를 설립했다. 내가 너무 잘 알고 있고, 크게 성공해서 외국 회사에 매각했던 정밀화학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너무 잘 될 것을 확신했는데 해외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공장 건축이 중단될 위기에 빠졌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이 내 상황을 염려했고, 다른 사업체까지 어려움으로 들어갔다. 내가 평생 하지 말았어야 할 최악의 결정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나를 비방해도 아내는 나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해줬다. 우리 부부는 진정으로 회개기도를 했다. 아내가 어느 날 밤 내게 와서 말했다. “여보, 우리 이제 부도나는 거야?”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아내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내 평생 다시는 아내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만약 기도하는 아내가 없었고, 내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 무서운 시련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도 매년 50% 성장과 수익을 내는 회사로 바뀌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축복하시면 내가 한 최악의 결정도 최고의 결정으로 바꿔주신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부부가 믿음의 기도로 하나 될 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가정은 부부가 서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도하며 믿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성화 되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결혼 이후에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믿음은 없지만 세상의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와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나라 갈 때는 그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19~31)에 나오는 부자처럼 구원받지 못한 남편은 죽으면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배우자를 찾아보자. 나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해놓으신 최고의 배필을 만나게 될 것이다. / 문영기 장로(W청년부 멘토) * ‘라떼는 말이야’는 청년들의 삶과 신앙적인 고민에 대해 대학청년부 멘토들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 조언과 위로를 건네주는 코너이다. 고민이나 질문 보내실 곳: joo@onnuri.org
2022-05-20 제1391호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그 마음과 헌신, 섬김에 반응하시는 하나님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그 마음과 헌신, 섬김에 반응하시는 하나님 “십일조를 못 내고 있어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생활비, 학자금 대출 상환, 부모님 용돈(생신, 명절) 등을 제하고 나면 저축할 돈도 빠듯합니다. 그렇다 보니 십일조 금액이 크게 느껴지고 아까운 마음 반 하나님께 못 드리고 있다는 죄책감(미안함) 반입니다.” 어렵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진심과 전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을 보면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물질과 시간에 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해 진심으로 예배하고, 한 영혼을 향한 전심으로 사역과 선교를 섬기는 성도님들이 많다. 나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부모님 아래서 신앙을 배웠다. 지금도 그 자세를 본받고자 하는 마음을 지키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지나며 청년들의 취업이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어려워졌고, 가정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자금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호황에서 태어나 불황에 던져진 세대’라는 세간의 평가를 실감할 때가 많다. 그러나 물질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부요함으로 교회를 섬기는 청년들이 많다. 우리 교회에는 매년 해외 아웃리치를 떠나는 청년들을 위해 크고 작은 후원을 하는 익명의 청년 성도들이 많다. 선교지와 CGNTV,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을 위해 꾸준한 섬김의 손길을 결단하는 분들도 많다. 성인이나 청년이나 한 성령 안에서 영적인 부요함을 가진 성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늘 감사와 영예로 여긴다. 한편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비용과 장래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로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을 망설이는 성도들을 만날 때가 있다. 충분히 공감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망설임으로 하나님께 송구함을 느끼는 마음 자체가 귀한 것이라는 격려를 꼭 하고 싶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어린 시절 동대문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셨다. 월급쟁이와 달리 수입을 예상할 수 없거나 예상하더라도 맞는 경우가 잘 없다. 어떤 달은 수입보다 지출이 커서 십일조를 무엇을 근거로 드려야 하는지 고민하셨던 부모님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두 분도 질문하신 분과 같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교회에 보탬이 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셨다.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어떻게든 드리려고 애쓰곤 하셨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셨고, 그 마음이 담긴 물질이 크든 작든 잊지 않으셨다. 신앙 공동체에서 물질적 헌신은 교회와 선교,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종교 개혁의 선봉이었던 루터는 성도의 진실한 회심(回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세 가지 면에서 회심해야 한다. 먼저는 머리의 회심, 다음은 가슴의 회심, 마지막으로 지갑의 회심이다. 어떤 성도가 회심하면 그의 지갑도 따라서 회심하며, 그가 하나님 앞에서 물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회심의 수준을 보여준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임한 이후 물질적 헌신을 통해 초대 교회가 세워졌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와 야고보는 바울이 사도가 되었을 때 가난한 성도를 위한 물질적 후원을 가르쳤다. 바울은 훗날 고린도교회 등을 통해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교회에 재난 지원금을 보냈다. 초대 교회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물질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교회가 존재할 수 있었다. 헌금은 공동체와 선교를 후원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부탁이다. 하나님은 물질의 부족함이나 장래의 불확실함으로 망설이는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신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십일조나 선교 후원과 같은 물질의 헌신과 섬김을 결단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헌신과 섬김에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 이서진 목사(CHPLUS청년부)
2022-05-20 제139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