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 최고의 경력과 학력 아버지학교입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경력과 학력 아버지학교입니다”
아버지학교 고문(顧問) 김성묵 장로의 30년 가정사역 여정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사)두란노아버지학교 운동본부(이하 아버지학교)는 1995년 시작됐다. 그동안 수많은 아버지를 변화시키고 가정을 살렸다. 1998년 IMF 당시 수많은 가장이 회사에서 밀려나고 좌절했고 가정이 깨졌다. 나라도, 지도자들도 무너진 가정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몰라 손 놓고 있을 때 아버지학교가 이 나라 아버지들을 살리고 가정을 살렸다. 아버지학교는 교회를 넘어 교회 밖으로,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갔다. 아버지학교 역사의 모든 순간에 김성묵 장로가 있었다. 27년 아버지학교를 이끌어온 김성묵 장로가 이제 아버지학교 고문(顧問)이 됐다. 아버지학교를 후방에서 지원한다. 지난 4월 26일 김성묵 장로를 만나 소회(所懷)를 들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김성묵 장로는 최근 코로나19 확진으로 위중한 고비를 넘겼다. 체중이 확 줄었다. 그래도 그의 상징인 미소는 변함없었다. 기자가 “27년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인사했더니 김성묵 장로가 이렇게 바로잡았다.
“아버지학교 27년, 가정사역까지 포함하면 30년이 넘습니다(웃음). 제가 처음 가정사역을 하게 된 게 1991년입니다. 온누리교회에 등록하고 1~2년쯤 됐을 때입니다. 그때만 해도 하용조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뵌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하용조 목사님이 설교 끝나고 저에게 걸어오시더니 ‘내년에도 교회를 위해 봉사해주시겠습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께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은데 길을 열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제안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네,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는 긍휼사역이 하고 싶었는데, 하용조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은 가정사역이었습니다. 가정사역이라는 말도 처음 들었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김성묵 장로가 하용조 목사의 권유를 아내 한은경 권사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은경 권사가 이렇게 말했다.
“가정사역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부부가 같이해야 할 텐데 저는 싫어요! 집에서 당신 보는 것도 지겨운데, 교회에서까지 함께 못 하겠어요.”
아내도 반대하고, 가정사역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정말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래도 기도하며 답을 구하고, 비전과 확신을 얻어갔다. 그 과정에서 김성묵 장로와 한은경 권사부터 진정한 회복을 경험했다.
“성령님이 저를 가정사역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또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 덕분에 제 인생의 사역을 만나고, 부부 사이도 완전히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학교와 김성묵 장로
김성묵 장로는 가정사역 첫 시작을 하나님의가정훈련학교와 신혼부부학교(현재 젊은부부학교)로 시작했다. 아버지학교는 1995년부터 맡아 섬겼다. 김성묵 장로는 아버지학교 정체성부터 재정립했다. 단순한 세미나가 아니라 하나의 영적 운동(Movement)으로 탈바꿈했다.
“정말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역이 아니라 영적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세미나로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학교의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동역자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아버지학교가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고 격려해주셨을 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30년 넘는 가정사역 외길인생, 기억나는 일이 참 많다. 김성묵 장로가 입술을 떼는 순간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수많은 간증 중에서 김성묵 장로가 가장 보람된 순간으로 꼽은 일은 아버지학교가 지상파 방송에 보도된 일이다. 아버지학교가 유명해져서 기억 남는 게 아니다. 그 방송 덕분에 아버지학교가 교회를 넘어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교도소 보안과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가 교회에서 아버지학교를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교도소장을 설득했다면서 교도소에서 아버지학교를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교도소 여기저기서 아버지학교를 했는데 MBC에서 방송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아들이 다른 사람이 되어서 회개하고 반성하는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우리 아들을 이렇게 만든 게 아버지학교라며 이 좋은 걸 방송에서 알려야 하지 않느냐고 제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학교가 MBC 방송에 나갔습니다. 2000년에는 KBS ‘추적60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IMF로 수많은 남자들이 직장에서 밀려나고 위기에 처했는데 아무도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는데 아버지학교에서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고 들었다며 소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60분 방송 중에 무려 20분이 아버지학교 내용이었습니다. 그 방송을 계기로 아버지학교가 세상 속으로, 전국으로, 전 세계로 알려지고 퍼져나갔습니다. 하나님이 때마다 필요한 멘토와 동역자들을 보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김성묵 장로의 가정사역 30년, 아버지학교 27년을 그 짧은 대화로 다 들을 수 없었다. 못다 한 수많은 말 속에는 그의 인생 멘토였던 하용조 목사와 27년 동고동락한 아버지학교 동역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내와 가족이 있었다. 김성묵 장로가 30년 가정사역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 인생 최고의 경력과 학력은 아버지학교입니다.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아버지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이제는 고문(顧問)으로 아버지학교를 뒤에서 섬기고 지원하겠습니다. 제 건강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건강해야 하나님이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멘토로서 건강한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평생 아버지학교와 함께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학교 동역자 여러분께>
“아버지학교는 ‘생명나무 공동체’입니다”
지난 27년 동안 이어온 아버지학교 리더십 자리를 내려놓으며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감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난 27년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하고 자격 없는 저를 아버지학교 리더십으로 세우시고, 필요할 때마다 좋은 멘토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황은철 목사님과 도은미 사모님 부부를 통해 아버지학교를 만났고, 故 하용조 목사님이 저에게 아버지학교 비전과 방향, 아버지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재훈 목사님은 아버지학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도전을 주셨습니다. 권준 목사님, 박종길 목사님 등 많은 목사님의 따뜻한 격려와 지지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둘째, 여러 동역자님의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아버지학교는 수많은 동역자의 땀과 눈물, 뜨거운 헌신의 결과입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기꺼이 자신의 물질과 생명과 재능을 드려 전국 방방곡곡, 전 세계로 달려간 헌신자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시대적 사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상에 미쳐 우리를 힘들게 만들더니, 이제 아버지학교에 미쳐 우리를 힘들게 합니까?”라고 했던 아내가 저의 사명과 비전을 누구보다 이해해주었습니다. 경영하던 회사를 정리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저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든든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제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었습니다.
이제 아버지학교를 이끌어 가실 새로운 최성완 이사장님과 여러 리더십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아버지학교는 ‘생명나무 공동체’입니다. 어렵고 힘든 위기의 때에 더욱 정체성을 확인하고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한 남성으로 살아가고, 가정의 목자로서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교회 지도자로서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 문화를 따르지 않는 경건한 남성, 가정의 목자,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학교 운동의 정체성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영적 운동입니다. 아버지학교의 본질을 지켜야 합니다. 아버지학교의 본질은 성령 운동, 삶의 실천 운동, 연합운동입니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가치관이 변하고, 세계관이 변하고, 성품이 변하는 것입니다. 아버지학교는 삶의 실천 운동입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라는 고백은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겠다는 고백이자 결단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소금과 빛으로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아버지는 영향력입니다. 가정, 교회, 직장, 사회에서 아버지로서 선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사회적 아버지 운동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주 먼 길이고, 쉽지 않은 길입니다. 치열한 영적 전쟁의 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긴밀한 연합이 필요합니다. 지부와 지부가 서로 연합하고, 국내외 사역의 지경을 넓혀 간다면 아버지학교의 새로운 회복과 부흥의 바람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버지학교는 제 인생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냈던 곳입니다. 남은 날들도 아버지학교를 위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학교운동을 우리 후손에게 아름다운 유산으로 남기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는 아버지학교운동을 하신 분이야”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함께 최선을 다합시다.
/ 김성묵 장로(두란노아버지학교 고문)
2022-05-20
제13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