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잠 21:14). 이 말씀을 처음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성경이 뇌물을 권하는 것인가?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출 23:8)고 분명히 금하신 하나님이 <잠언>에서는 뇌물이 분노를 그치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니 말이다.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잠언>이라는 책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성서해석학에서는 <잠언>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처방적 잠언’(prescriptive proverb)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서술적 잠언’(descriptive proverb)이다. <잠언> 21장 14절은 후자에 해당한다. “뇌물을 주라”는 명령이 아니라 세상에서 선물과 뇌물이 실제로 분노를 가라앉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기술한 것이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난다. 전반절은 ‘은밀한 선물’이 ‘노’를 쉬게 한다고 말하고, 후반절은 ‘품 안의 뇌물’이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고 말한다. 히브리 시는 후반절에서 전반절의 의미를 반복하면서 한층 더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 여기서도 ‘노’보다 ‘맹렬한 분’ 훨씬 격렬한 분노를 가리키고, 그에 대응해 ‘선물’보다 더 강한 표현인 ‘뇌물’이 사용된다. 이는 분노의 강도가 극에 달할수록 그것을 가라앉히는 데 더 큰 대가가 따른다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은밀한’과 ‘품 안의’라는 표현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건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드러내 놓고 주는 선물은 자칫 과시되기 쉽고,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이나 체면의 상처가 될 수 있다. 반면, 남몰래 건네는 정성은 상대방의 마음 깊은 곳을 움직인다. 성경에도 <잠언>과 꼭 들어맞는 사례가 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20년 넘게 쌓인 분노를 알기에 수백 마리의 가축을 앞세워 보냈다.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창 32:20). 야곱의 속마음을 보면 이것은 순수한 감사의 선물이라기보다 자기 잘못으로 빚어진 분노를 무마하려는 전략적 증여였다. 아비가일 역시 남편 나발의 무례로 온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음식을 급히 준비해서 달려갔다(삼상 25장). 이 역시 순수한 호의라기보다는 절박한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행동이었다. 두 사례 모두 순수한 선물과 정의를 왜곡하는 뇌물 경계 어딘가에 있는 ‘위기를 넘기기 위한 선물’이었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늘 뚜렷하지 않은 현실을 성경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잠언> 21장 14절의 지혜이다. 이 말씀은 뇌물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누군가 내게 분노하고 있을 때 자존심을 세우며 맞서기보다 먼저 조용히 손을 내미는 것이다. 내 잘못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관계를 회복하려는 용기, 드러내 놓고 체면을 세우는 화해가 아니라 은밀하게 마음을 전하는 겸손이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이다. 예수님도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마 5:25)고 말씀하셨다. 갈등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세상의 방식을 관찰한 <잠언>이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이다. /오은규 목사(성동광진 공동체)
2026-04-18 제1585호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최근 우리 가족에게 거룩하고 즐거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온누리성경읽기앱’으로 매일 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갖는 일이다. 말씀을 다 들은 뒤에는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매일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기도로 마무리한다.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자녀들의 기도와 고백을 듣다 보면 부모인 나도 큰 위로와 도전을 받는다. 온 가족이 말씀 안에서 하나 되어 기도로 마음을 모으는 이 시간은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깊은 은혜다. 이처럼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듣고 나누는 행위가 우리 영혼에 얼마나 큰 생명력을 불어넣는지 몸소 체험하며, 바울 사도가 골로새교회에 전했던 권면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본문의 첫머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는 권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거하다(νοικετω)’라는 헬라어는 잠시 방문하는 손님이 아니라, 그 집의 주인으로서 ‘안주하다’, ‘뿌리를 내리다’, ‘계속 머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성경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체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중심인 ‘마음’에 자리 잡고,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통치적 권위를 가진다는 뜻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πλουσω)’ 거한다는 것은 말씀이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자리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당시 유행하던 헬라의 철학이나 영지주의, 금욕주의, 신비주의 등 다양한 거짓 가르침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유일한 해답으로 ‘말씀의 내주’를 제시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세상의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속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갖게 된다. 이어지는 말씀은 말씀이 내주한 결과가 공동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라는 구절은 신앙이 결코 개인주의적인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복음은 공동체 안에서 나눌 때 그 생명력이 배가 된다. 여기서 ‘피차(αυτο)’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가르침이 어느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모든 성도가 서로를 세워가는 과정임을 나타낸다.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 위로를 받듯, 성숙한 성도는 연약한 자를 권면하고, 연약한 자는 순수한 고백으로 공동체에 신선한 도전을 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공통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 스승이자 동역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지혜(πσσοφ)’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말씀의 풍성함은 반드시 찬양의 고백으로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본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기록한다. 말씀이 머리에만 머무르면 교만이 되기 쉽고, 가슴에만 머무르면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 영혼 깊숙이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찬양과 감사가 된다. 여기서 ‘감사하는 마음으로(ντχριτι)’는 문자 그대로 ‘그 은혜 안에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형편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있다.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할 수 있는 ‘신령한 노래’를 얻게 된다. 형식적인 노래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감사의 제사가 드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말씀을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하느냐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삶의 자리로 가져가야 한다. 매일의 시간을 구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주인으로 자리 잡도록 ‘말씀이 머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며 서로에게 권면할 때 우리 입술에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감사의 찬양이 터져 나올 것이다. 말씀이 머무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는 성소임을 기억하며 말씀 앞에 우리 마음의 자리를 내어 드리기를 소망한다. / 정현석 목사 (고양은평공동체)
2026-04-04 제1583호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12절과 <누가복음> 15장 4절에서 자신을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셨다. 그리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물으신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양 100마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가 99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그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마 18:12). “너희 중 누가 100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눅 15:4).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물음표라기보다는 느낌표에 가깝다. 우리의 의견을 묻는다기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부의 말이기 때문이다. 양 무리에서 이탈한 양은 생명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양과 목자>의 저자 필립 켈러는 수년 동안 양을 치는 목자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저자는 양의 수가 한두 마리 모자랄 때면 가장 먼저 ‘내 양 중 한 마리가 어딘가에 뒤집혀 있겠구나. 빨리 찾아 일으켜 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고 고백한다. 필립 켈러의 ‘뒤집힌 양’에 대한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다. 뒤집힌 양은 등이 땅에 닿고 네 발이 허공을 향한 채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버둥거리지만 혼자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처음에는 도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매에”하고 소리 내어 울어보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그 울음소리는 오히려 맹수의 표적이 된다. 결국, 양은 두려움과 좌절감 속에서 심하게 발버둥 치다가 지쳐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게 된다. 만일 목자가 빠른 시간 안에 그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그 양은 십중팔구 죽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뒤집힌 양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네 발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는데 버둥거리는 동안 양의 흑위(되새김질 동물의 첫 번째 위) 속에 가스가 차 오르기 시작한다. 가스가 차오르면 몸의 말단, 특히 사지부터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되다가 순환이 멎어버리게 된다. 날씨가 덥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에는 뒤집힌 양이 몇 시간 내에 죽을 수도 있다. 독수리와 들개, 이리, 표범 같은 맹수들에게 뒤집힌 양은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먹잇감일 뿐 아니라 얼마 안 있어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표적으로 삼고 주시한다. 이처럼 길을 잃은 양은 뒤집혀 무력해진 채 죽거나 맹수의 공격으로 죽기 쉽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아는 목자에게 길 잃은 양의 문제는 무엇보다 급하다. 목자는 최우선 순위로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게 된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성경의 비유에는 이처럼 생명을 놓고 벌어지는 시간적 긴박함에 대한 자각이 담겨 있다. 바로 그 시간적 긴박감에서 잃은 양을 찾고자 하는 목자의 뜨거운 열정이 생겨나고, 마침내 찾아낸 양을 데리고 돌아올 때의 무한한 기쁨이 생긴다. 예수님은 자신을 잃은 양을 서둘러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시면서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시간에 대한 긴박함을 품을 것을 권면하셨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십시오”라고 드렸던 우리의 고백이 길 잃은 한 영혼을 향한 긴박한 마음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박철웅 목사 (강남B공동체)
2026-03-21 제1581호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8:2a 개역개정).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를 어떻게 이끄셨는지, 어떻게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고 하셨음을 기억하라”(신 8:2).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2세대에게 전한 마지막 설교다. 그 핵심은 바로 “기억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 광야의 고난과 역경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다. 단순한 과거 회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현재의 삶과 연결해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근거로 삼으라는 영적 메시지다. 나약한 인간은 평안하고 배가 부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는다. 그러므로 “지난 광야의 길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키겠다는 결단을 확인시키는 메시지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광야 길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모든 것이 나의 힘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하는 감사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를 허락하신 첫 번째 목적은 ‘너희를 낮추시고’에 있다. ‘낮춘다’는 말은 고통을 겪게 한다거나 겸손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광야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자리한 의와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처방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이집트와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지만, 광야의 현실 앞에서 끊임없이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은 베푸신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들의 영적 교만을 보시고, 그들을 낮추셔서 오직 당신만 의지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처럼,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광야의 길은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늘의 양식인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게 하는 영적 훈련소였다. 하나님이 광야를 허락하신 두 번째 목적은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고 하신 것’이다. 광야 길의 고난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시험하는 장소였다.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괴롭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연단해서 정금처럼 순수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광야라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환경이 시험이 아니다. 그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는 반응이 바로 시험의 본질이다. 그 시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고, 하나님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 즉, 광야에서의 시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하는 시험대였다. 창립 40주년을 지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 온누리교회의 지난 40년 광야 여정을 다시금 돌아본다. 그 여정은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신 연단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허락하신 은혜의 시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길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고, 감사를 발판 삼아 새롭게 펼쳐질 광야의 여정, 약속의 땅을 향해 순종으로 걸어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걸어가자. / 제치윤 목사(영종온누리교회)
2026-03-07 제1579호
[주일강단]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 <빌립보서> 3:7~16 / 이재훈 위임목사 흐린 날에는 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를 창조하시고, 낮을 다스리도록 명하신 이후부터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단지 그 해가 구름에 가려졌을 뿐입니다. 신앙생활에도 흐린 날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무관심한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시편>에도 보면 “하나님, 어찌하여 그 얼굴을 가리십니까?”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스스로를 숨기시는 하나님”이라며 그 나라와 민족의 멸망 한복판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측면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가리는 때도 있지만, 인간 스스로 만든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얼굴이 가려지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다 “보라. 여호와의 손이 너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귀가 너무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이다. 너희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사 59:1~2). 이 말씀에서 얼굴을 가린 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녀의 신분이 끊어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버지와의 사귐이 흐려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분 스스로 숨어 계시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내 머리 위에 있도록 만들고 허용한 무엇이 하나님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14세기 영국의 이름 없는 수도사가 쓴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만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려고 할 때 발견하는 것은 일종의 어둠에 속한 무지의 구름이다. 단순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한 그것이 무엇인지 식별하기 어렵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 구름은 항상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언제나 자녀를 향하고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속죄를 완성하셨기에, 모든 죄와 허물과 수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얼굴은 그 자녀를 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흐린 날 이렇게 속삭입니다. “하나님은 너를 미워하신다. 너에게 관심이 없으시다. 너에게서 돌아서셨다.”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신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회개하는 모든 죄인, 그분의 자녀에게서 돌아서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해에 있지 않습니다. 그 해가 우리를 비추지 못하도록 가리는 구름에 있습니다. 그 구름은 우리 스스로 놓아두고, 치우지 않은 것입니다. 좋은 것도 내 것이 되면 하나님을 가린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올려놓은 구름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구름을 제거하고 나서 <빌립보서> 3장의 고백을 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체험이 없으면 이 말씀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첫째, 좋은 것도 내 것이 되면 하나님을 가린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섬긴다고 확신했고, 그 확신으로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7절). 여기서 ‘유익’이라는 단어와 ‘해’라는 단어는 사업하는 사람의 회계 용어입니다. 이익과 손실이라는 칸에 적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보면 ‘유익’은 여러 개를 뜻하는 복수형이고, ‘해’는 하나를 뜻하는 단수형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력서를 이익과 유익한 편에서 적어 내려갑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것을 다 합한 순간 그 답은 바로 ‘해’, 손해였습니다. 8절에서는 그 손해가 배설물로 여겨집니다. ‘개에게 던져주는 찌꺼기’라는 풀이가 되는 말입니다. 길에다 내버리는 오물과 쓰레기를 가리킵니다. 이력서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의 혈통도, 열심도, 흠 없는 의도는 모두 좋은 것이었습니다. 죄가 아니었고, 해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해로 여길까요?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을 가리는 구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좋은 것이 내 것이 될 때,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을 가려버릴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구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를 가리는 첫 번째 구름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좋은 것들, 유익한 것들입니다. 내게 유익한 것들이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이 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구름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경쟁자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과 경쟁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구름이 됩니다. 인간적인 야망도 그렇습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분이 주시는 것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거래가 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가리는 것이 내 죄가 아니라, 내 소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도 내 사역이 되는 순간, 내 소유가 되는 순간 하나님을 가릴 수 있습니다. 사업도, 직분도 내 것이 되는 순간 구름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내가 참으로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 의, 곧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로서 난 의입니다”(8~9절).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긴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밤하늘의 별은 해가 떠올랐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해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던 이력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그에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찬란한 햇빛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나를 의롭게 하신 그 의가 있어야만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발견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C&MA 교단을 시작한 A. B. 심슨(Albert Benjamin Simpson) 목사님이 남긴 'Himself'라는 제목의 찬양 가사가 있습니다. 새찬송가에는 441장으로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이라고 번역이 됐는데, 한글 가사로 보면 원래 가사보다 조금 다른 의미로 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한때는 축복이었지만 이제는 주님이시라네. 한때는 감정이었지만 이제는 주님의 말씀이라네. 한때는 주님의 선물을 원했으나 이제는 그것을 주시는 주님을 원하고, 한때는 치유를 구했으나 이제는 주님 자신만을 구한다네.” 그래서 'Himself', 그분 자신을 구한다, 그분 자신에게 초점을 둔다는 가사의 내용입니다. 그 찬송가 가사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Everything is in Christ, Christ is everything.”(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릴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을 가리는 구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고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자 합니다”(10~11절). 8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한 바울이 10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동참함을 알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기에 모든 것을 해로 여긴 그가 10절에서는 또다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내용으로 부활의 능력과 고난의 동참함을 알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활에 이르고자 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아는 사람이 또 알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안다’는 것은 정보를 더 얻고 싶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친밀히 사귐 속에서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단어는 친밀한 부부 관계의 앎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동침함에’라고 할 때 그 안다는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시험지에 답을 쓰는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삶으로써 아는 것입니다. 사귐을 통해서 깊이 알아가는 앎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이라고 지식으로 아는 것과 병상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앎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이 고백 속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다 압니다. 그렇지만 그는 알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 순서도 주목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먼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사도 바울은 부활부터 시작합니다. 부활의 능력을 알고 고난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로 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때는 부활의 능력부터 경험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깨닫고 예수님을 알기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와 능력 속에서 그분을 만나고, 그러고 나서 십자가의 고난으로 나아가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체험적인 고백입니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된 체험이 아닙니다. 바울이 쓰는 표현들을 주목하십시오. “알고자 합니다, 얻고자 합니다, 이르고자 합니다, 잡으려고 달려갑니다” 모든 것이 진행형입니다. 아직 진행 중인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은 언제 사형 선고가 내려질지 모르는 감옥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는 알고자 했고, 얻고자 했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한 교회의 영성과 수준을 알려면 그 교회의 가장 오래된 분들을 보면 압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오래된 분들이 여전히 사도 바울처럼 이르고자 하고, 알고자 하고, 잡으려고 달려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했던, 이르고자 했던, 그리고 여전히 새신자처럼 달려가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 혹은 성경 지식이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가로막는 구름이 된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내가 아는 성경 지식, 내가 아는 교회 경험이 하나님과 나를 가리는 구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세대보다 하나님에 관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가 늘어난 만큼 하나님의 얼굴이 더 가까워졌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왔다고 여기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가려진다 셋째, 우리가 다 왔다고 여기는 순간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가려집니다. “나는 이미 얻었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갑니다. 이는 나도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기 때문입니다”(12절).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쫓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 붙잡힌 증거가 무엇입니까? 붙잡으려고 쫓아간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께 붙잡히지 않은 사람은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붙잡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빌립보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혹시 다른 무슨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내시리라는 것입니다”(15절). 자신을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온전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그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말할 수 있는데,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위해 푯대를 향해서 좇아갑니다”(13~14절). 자신의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마치 결승점에서 더 빨리 가려고 몸을 앞으로 쭉 뻗듯이 달리는 주자처럼 예수님께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이 고백을 <무지의 구름>을 쓴 저자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 무지의 구름이 당신의 머리 위, 곧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있듯이, 당신의 밑, 곧 당신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는 망각의 구름(cloud of forgetting)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들을 당신 아래에 두어 당신과 당신의 하나님 사이에 있지 않게 하십시오.” 발아래 두라는 것입니다. 위에 두지 말고 아래 두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잊어버린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둘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어둠을 제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낮 12시부터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 심판의 어둠을 통과하시는 그 3시간, 그 어둠을 지나가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얼굴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지식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발아래 두고, 구름을 뚫고 하나님의 얼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다 왔다고 여겼던 자기만족을 내려놓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자기 교만과 야망과 두려움이 망각의 구름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과 나 사이에 두지 말고, 발아래 둠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여 나아가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 비추시고,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 향하여 드시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9-04 제1604호
[주일강단]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1:19~25 / 이재훈 위임목사 마땅히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몰라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알면서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하는 줄 알면서 하지 않습니다. 말을 조심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화가 나면 말로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염려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간격을 오래 붙들고 살아서 당연하게 여기는데, 본래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생각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생각하신 바를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도 본래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죄가 우리에게 들어온 이후에 생각과 행함이 분리된 것입니다. 말씀, 영혼을 비추는 거울 “그러므로 누구든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이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약 4:1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에서 자유함을 받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습은 생각과 행함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앎과 행함 사이에 간격이 있습니다. 이 간격이 바로 우리에게 미친 죄의 영향력이자 흔적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해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22절). 단지 실수했거나 게으르다고 지적하지 않습니다. ‘속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감정을 속인다는 게 아닙니다. ‘계산을 잘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다’는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중요한 한 단계를 지났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 행함이 없다면 스스로 계산을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감동한 것을 순종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깨달은 것을 실천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동이나 동의, 깨달음이나 결심, 그 어떤 것도 순종이 아닙니다. “만일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자기의 생긴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거울을 보고 돌아서서는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금방 잊어버립니다”(23~24절).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거울을 보며 얼굴이나 외모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살핍니다. 당시에는 투명하고 정확하게 보이는 거울이 없었습니다. 청동을 문질러서 만든 거울이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자세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씻지 않고 잊어버린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모습이 바로 거울을 자세히 살피고도 돌이켜서는 잊어버리는 모습과 같다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네 가지 의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말씀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첫째, 이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약 1:18).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낳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결심하고 노력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뜻을 따라 말씀을 통해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우리를 낳은 통로가 된 진리의 말씀입니다. 둘째, 이 말씀은 ‘우리 마음에 심겨진 말씀’입니다(21절). 어떤 분들은 사람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양심이나 이성이 아니냐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받으라’는 동사를 보십시오. 밖에서 온 것, 곧 하나님이 심어주신 것입니다. 심는 일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의 말씀을 이미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셋째, 그 말씀은 ‘영혼을 능히 구원할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에 심긴 말씀이 영혼을 능히 구원합니다. 영혼은 우리의 존재와 생명 전체를 의미합니다. 구원의 값은 십자가에서 이미 다 치러졌습니다. 마음에 심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고, 그 말씀이 온전한 구원을 이룰 때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넷째, 이 말씀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25절). 온전한 율법, 곧 자유의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보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계명보다 구원이 먼저 있었습니다. 율법이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죽은 문자로 남아 우리를 정죄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 말씀이 되었을 때, 자유를 누리는 율법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같은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는 법에서 자유케 하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율법 안에 거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자리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 곧 하나님의 율법 안에 머문다는 것을 ‘그 안에 거한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우리가 본래 지음을 받은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 말씀에 대한 태도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해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22절). 이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요, 우리를 낳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들려오면 우리는 이끌려 가게 됩니다. 이 말씀은 마음에 심겨진 말씀이고, 영혼을 구원할 말씀입니다. 자유케 하는 그 말씀 안에 우리는 이미 들어 있습니다. 없는 것을 내놓으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말씀이 표현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는 진리의 말씀이 새겨져 있고, 손에는 자유케 하는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함이 없는 것은 씻을 물이 준비되어 있고 더러운 것도 있는데 씻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의 거울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비추는 것이 아니라 씻김의 자리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이며, 믿음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십자가 은혜와 사랑, 회복을 날마다 경험하는 것이 실천입니다. 없는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깨달은 것,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대한 태도를 우리의 관계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천천히 하며 노하기도 천천히 하십시오”(19절).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닫고, 자신의 말만 빨리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도 동일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자신의 말을 삼가고, 분노를 삼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마음에 심긴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백성이 구경거리를 보러 나오는 것처럼 네게 나와서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 네 말을 듣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행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탐욕을 추구하고 있다. 너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네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다.”(겔 33:31~32).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심긴 말씀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입니다. 내가 이 말씀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노에 사로잡힐 때보다 마음이 닫힐 때가 없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화내기를 더디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 사람은 자신이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25절). 직역하면 ‘그의 행함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만일 복이 행함의 삯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꾼일 뿐입니다. 복이 행함의 자리에 있는 것이라면, 그 과정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행함 때문에 복을 받는 게 아니라, 그 행함 안에서 복을 받습니다. 순종하는 과정 자체에 복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에 있던 미움의 쇠사슬이 풀려나기 시작합니다. 그 행동이 이미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섬긴 뒤에만 복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몸을 굽혀 내가 누군가를 섬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순종을 미룰 때, 실천을 미룰 때 늘 같은 말을 씁니다. 조금 더 기도한 뒤에, 마음의 준비가 되면, 형편이 좋아지면. 이 변명들이 그쳐지고, 바로 지금, 오늘 행하는 실천이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이 간격은 우리 스스로 메울 수 없습니다. 이 간격을 메워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의롭게 된 것과 우리의 죄인 된 상태를 연결해 주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끊임없이 아는 것과 행하는 간격을 좁혀가시는 분입니다. 이미 듣고, 마음에 심긴 말씀을 끝까지 주장하고, 행함으로 연결하는 복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8-28 제1603호
[주일강단] 자유를 섬기는 교회 자유를 섬기는 교회 <누가복음> 4:16~30 / 이재훈 위임목사 ‘ 자유’ 라는 단어는 성경이 들어오고,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이 들어오면서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자유’ 라는 단어는 복음의 전파와 역사를 같이 합니다. 자유는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습니다. 역사를 보면 자유는 총칼에 빼앗기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를 얻은 국민 스스로 자유를 내어준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1900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이 독일의 국민이 투표와 환호로 얻은 자유를 나치 독재자의 손에 넘겨주는 것을 목격한 후,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씁니다. 근대 신분 제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를 얻은 국민이 해방감과 함께 고독과 불안을 느끼기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불안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찾아옵니다. 묶여 있을 때는, 통제받을 때는 몰랐던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만한 내면의 힘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자유를 짐으로 여기고, 벗으려고 다시 도피한다는 것입니다. 에릭 프롬이 관찰한 도피의 길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복종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지는 짐을 강한 지도자에게 넘겨버리고, 그 힘에 기대어 안정을 찾는 것입니다. 둘째, 파괴입니다.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된 대상을 미워하고, 부수고, 파괴하는 데서 자신의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셋째, 동조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다수가 생각하는 대로 따르며 군중 속에 숨는 것입니다. 1930년대 독일 국민은 이 세 가지 길을 걸었습니다. 독재자에게 열광하고, 어느 한 민족을 증오하며, 다수의 의견이라고 밀어붙이는 사회는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빼앗기기 전에 먼저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유와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자유를 가진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유를 버리고, 그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했습니다. 스스로 자유를 선포한 첫날 인간은 숨었고, 두려워했고, 불안해했습니다. 뿌리 뽑힌 나무처럼, 자유의 무게를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기댈 곳을 찾았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 우상’ 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친 인간이 우상에게 도피하는 것입니다. 에릭 프롬과 같은 시대에 같은 어둠을 바라보며 다른 자리에서 길을 찾은 사람이 있습니다.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루너(Emil Brunner)입니다. 에릭 프롬이 자유를 내어주며 도망치는 인간의 마음을 지적했다면, 에밀 브루너는 자유를 삼키는 국가를 지적합니다. 국가를 구원자로 믿는 순간 우상이 되고, 국민은 그 우상의 종이 됩니다. 국가는 타락한 이 세상에서 불의를 억제하고,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보호할 책임을 하나님께 받은 기관입니다. 국가는 구원자가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국가가 지켜야 할 것은 정의입니다. 그 정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근거해야 하고, 다수의 합의나 시대 유행이 아닙니다. 또 다른 방향에서 자유는 정의가 지켜야 할 으뜸가는 몫입니다. 자유는 국가가 베푸는 선물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이미 각 사람에게 주신 몫입니다. 각 사람을 국가의 부속품으로 만드는 질서는 아무리 정의의 이름을 붙여도 정의가 아닙니다. 국민은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국가에게 자유를 내어주고, 국가는 자유의 책임을 공의로 지켜주지 못하고 도리어 가져가면서 자신을 구원자처럼 여길 때 전체주의가 피어납니다. 이것이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입니다. 자유로운 나라의 참 성벽은 군대나 헌법 전에, 국가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국민입니다. 자유를 지키는 것은 정의이고, 정의를 완성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정의만으로는 국가가 움직일 수 없고,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결국,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랑은 사람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정의를 이루고, 참된 자유를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와 무거운 세금에 눌려 백성들이 정치적 자유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에게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셨으니 얼마나 가슴이 뛰었겠습니까?(18~19절) 사람들은 예수님이 로마를 몰아내는 자유를 가져다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낭독에는 그 회당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두 가지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이사야> 58장 6절을 추가하셨습니다. 종살이에서 풀려난 백성들이 정작 자신들 곁에 눌려 있는 자를 풀어주지 않는다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58장과 61장을 연결하시며 “해방 받은 백성이 이루지 못한 일을 이제 내가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를 얻고도 자유를 나누지 못한 실패의 역사를 이제 자유케 하시는 분이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이사야> 61장에 본래 있으나 예수님이 읽지 않으신 말씀입니다. 61장 2절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며…”라고 되어 있는데, 예수님이 후반부를 읽지 않으시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보복의 날, 곧 심판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복의 날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속해 있기에 읽지 않으셨고, 예수님이 지금 여신 시대는 원수 갚는 날이 아니라 은혜의 해라는 선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21절). 정의와 사랑을 이룰 수 있고, 자유를 우리에게 진정 주시는 분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유를 얻는 방법을 가르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가 되셨습니다. 한 인격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은 정의를 요구하지만, 그 정의를 이룰 힘이 없습니다. 자신을 희생할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정의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셨습니다. 참된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 <누가복음> 24장 47절의 ‘ 죄 용서’ 는 자유와 같은 단어입니다. 자유는 죄 사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인간들이 왜 자유로부터 도피합니까? 그 뿌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죄 사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참된 자유와 연결됩니다. 복음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유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축복이 되고, 하나님을 떠날 때 저주가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다시 예배하게 될 때 우상이 필요 없게 됩니다. 우상이 필요 없는 사람들만이 자유로부터 도피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은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 5:1).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육체의 만족을 위한 기회로 삼지 말고 도리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십시오”(갈 5:13).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는 말씀이 자유를 얻게 된 이들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서로의 자유를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자유케 하신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분이 십자가로 값 주고 사신 이웃의 자유를 함께 섬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미워할 권리를 포기하고 용서하는 자유, 자기의 몫을 내어놓고 섬기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경험한 사람들이 한 사회의 자유를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참된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자녀들, 십자가로 진정 자유케 된 이들, 죄 사함을 받은 이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자유를 섬기는 교회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국가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전체주의는 교회를 길들이려 했고, 예배하는 교회를 두려워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자유를 섬기는 교회란 자유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어떤 권력과 이념도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하게 합니다. 예배는 세상을 향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만이 예배받으실 분이요, 국가, 이념, 권력, 다수의 여론, 돈도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자유를 섬기는 교회는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사람을 키웁니다. 복종의 길에 들어서지 않을 사람, 어떤 지도자도 우상으로 삼지 않을 사람을 키웁니다. 다수에 숨지 않고 진리를 따를 사람을 키웁니다. 자유를 섬기는 교회는 억눌린 이웃을 자유케 하는 일을 섬깁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억눌린 이웃, 이주민들, 탈북민들, 독거인들,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고통받는 이들, 그들을 돌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유는 빼앗기기 전에 먼저 버림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깨어 예배하며, 자유를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8-21 제1602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12) 살아 있는 제물이 되십시오 나를 따르라(12) 살아 있는 제물이 되십시오 <로마서> 12:1~2 / 이재훈 위임목사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붙인 죄목 중 하나는 ‘무신론자’, 신이 없는 자들입니다. 당시 종교로 인정받으려면 신전과 제물, 제단이라는 세 가지가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 세 가지가 없는 종교는 그리스도인들뿐이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평가입니다. 새벽마다 목숨을 걸고 예배하던 사람들이 예배가 없다는 조롱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제단을 쌓지 않았습니까?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박해가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곧 제단이요, 그들의 인생이 곧 살아있는 제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지혜, 그분의 지식, 헤아릴 수 없는 그분의 판단을 찬양합니다(롬 11:33). 그다음에 오늘 본문이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1절). 산에 비유하면 11장까지 정상에 오르는 것이고, 12장부터 내려오는 길입니다. 정상에서 본 것을 가지고 현장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교리와 삶은 한 산의 두 비탈입니다. 복음은 삶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그 삶이 흘러나오는 근원과 동력을 말씀합니다. 그 근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도덕과 철학은 충고와 권면만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그것이 가능하게 해 줍니다. 여러분,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듭니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헌신하게 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자비하심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올바로 응답하게 합니다. ‘은혜’라는 헬라어 단어 ‘카리스(Charis)’에서 감사라는 말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가 나왔습니다. 감사는 은혜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비하심 위에서 오늘 본문의 중심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드리라’는 단어도 제물을 제단 위에 올려놓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산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모순입니다. 원래 제단에서 죽어야 제물이 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살아서 제단에 올라가는 제물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히 10:14).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단번에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고, 그 제사로 죄의 값이 모두 지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사는 죄를 씻는 제사가 아닙니다. 속죄제가 아니라 감사제입니다. 값을 치르는 제사가 아니라, 값을 치러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구약의 제사와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과 제물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제사장과 제물이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곧 제사장이요, 곧 제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제물이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제단을 쌓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가 드려졌기에, 그분이 제물이 되셨기에, 이제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들도 제물이 되는 것이고,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과한 생명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가 되었기에, 십자가를 통과해서 다시 산 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진 자가 산 제물이라는 것입니다(롬 6:13). 살아있는 제물,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한 생명만이 이 제단 위에 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 제물’이란 우리가 만들어낸 업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미 일어난 십자가와 부활을 살아내는 우리의 삶입니다. 산 제물의 유일한 문제는 자꾸 제단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죽은 제물은 내려오지 못하는데, 산 제물은 다리가 있기 때문에 자꾸 내려옵니다. ‘살아있다’는 또 다른 의미는 ‘계속된다’입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아침마다, 매일 순간마다 우리는 제단 위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드리십시오”라고 하지 않고, “여러분의 몸을 드리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헬라 시대 세계관으로는 있을 수 없는 표현입니다. ‘살아있는 제물’이라는 것도 모순이지만, ‘몸을 드리는 것이 거룩하다’는 것도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헬라 시대 이원론은 영은 선한 것이요, 몸은 악이라고 생각했던 플라토니즘(Platonism)에 빠져있었습니다. 우리의 몸을 악하게 여겼고, 몸을 무덤으로 여겼던 시대에 몸을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몸은 하나님이 지으신 작품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요,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셔서 입으신 몸이요, 마지막 날 영광스럽게 될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원론적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받으십니다. 마음은 숨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몸이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하는가가 곧 그 사람의 실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술과 혀가 축복하면 축복의 통로가 되고, 우리의 손이 드려지면 이웃을 돕는 사랑의 손길이 되고, 발이 드려지면 복음을 증거하는 필요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의 눈을 드리면 사람의 허물보다 아픔과 연약함을 먼저 보게 됩니다. 드림, 변화, 그리고 분별 몸으로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물을 또 ‘영적 예배’라고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영적’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이성’ 혹은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집니다. 이성에 합당한 예배, 말씀에 합당한 예배입니다. 그리스도로 임하신, 그리스도가 입으신 육신에 대해서 말씀에 합당한 몸으로 드려지는 것이 곧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라는 단어는 섬김과 봉사 전체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한 주간은 168시간입니다. 그러나 예배당에서 예배하며 보낸 시간은 한두 시간입니다. 나머지 시간 전체가 제단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곧 삶이 예배이며, 예배가 곧 삶입니다. 2절의 ‘이 세대’는 지금 흘러가고 있는 시대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 자체, 보이는 세상 자체는 악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 정신, 철학, 가치관, 세계관입니다. “본받지 말라”는 것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틀에 우리가 들어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시대정신’이라는 말로 그 틀에 사람들을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교육 제도와 내용까지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틀은 힘이 셉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부어지고, 부어지면 굳어버리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이어지는 말씀에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했습니다. 이 ‘변화’의 의미는 본질 형태의 변화입니다. 본질이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틀에 갇히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형성된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1절에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드린 사람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드림이 먼저이고, 변화가 그다음에 일어나고, 세 번째가 분별입니다. 분별은 제물로 제단에 드려진 자가 얻는 시야입니다. 지혜입니다. 지식입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다르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 자들에게는 분별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고, 원하시는 뜻을 분별하며 살아갑니다. 2000년 전 로마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제단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신을 따르는 자들이요, 무신론자들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진정 제단에 드려진 산 제물임을 보고 계셨습니다. 제단이 없다던 그들의 예배가 마침내 로마 제국을 바꾸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서도 제단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십니다. 우리가 일하는 삶의 현장이 제물이 드려지는 제단이라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 제단에 몸을 드리는 사람이 변화를 받고, 변화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 살아갑니다. 그 길을 앞서 걸어가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우리의 남은 평생이 세상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거룩한 제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8-14 제1601호
[News] 온 누리와 함께 감사와 기쁨을! 온 누리와 함께 감사와 기쁨을! 2026 사르밧 프로젝트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 나눔 10월 11일까지 순, 개인별 헌금 및 나눔대상자 접수 2026 사르밧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9월 5일 (토)부터 10월 11일(일)까지 순 또는 개인이 참 여할 수 있다. 사르밧 프로젝트는 추수감사절 의 감사와 기쁨을 온 누리와 함께 나누는 행사 다. 도움이 필요한 성도, 교회 밖 이웃, 외부 기 관에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을 전달한다. 사르밧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순과 개인은 10월 11일(일)까지 사르밧 프로젝트 헌금을 각 캠퍼스 지정 계좌에 봉헌하면 된다. 헌금액 은 쌀 20kg 한 포대 가격인 65,000원을 기준으 로 하되, 순의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순 단위로 참여할 때는 입금자명에 공동체, 다락 방, 순 이름을 일곱 자 이내로 기입하면 된다 (예: 한강마리아2순). 개인이 참여할 때는 이 름과 생년월일을 적으면 된다(예: 온누리 851006). 개인 헌금은 연말정산에도 반영된다. 송금 계좌는 서빙고 하나은행 573-910019-1 4805, 양재 하나은행 573-910021-35705다. 다른 캠퍼스는 각 캠퍼스 지정 계좌를 이용하 면 된다. 나눔대상자 추천도 받는다. 선정 순위는 온 누리교회 공동체 소속 성도 1순위, 외부 기관 2순위, 외부 개인 3순위다. 대상자 접수는 공 동체를 통해 이메일로만 가능하다. 10월 11일 (일)까지 이메일(서빙고: 26thanksgiving@n aver.com, 양재: hyomin2021@naver.com)로 보내면 된다. 이메일을 보낼 때는 공동체 담당 목사와 대표장로를 참조인으로 반드시 포함 해야 한다. 본문에는 ‘**공동체 ***목사님과 ***대표장로님께 승인받음’이라는 문구를 기재해야 한다.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은 공동체가 추천한 대상자에게 현지 업체가 직접 발송한다. 서빙 고와 양재를 제외한 캠퍼스는 상황에 맞춰 대 상자에게 전달하면 된다. 서빙고에서 쌀 발송 을 원하는 캠퍼스는 담당자가 대상자 리스트 를 취합해 10월 11일(일)까지 서빙고로 접수 하고, 서빙고 계좌로 금액을 이체하면 된다. 문의: 02-3215-3434(서빙고), 각 캠퍼스 담당자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드 교회’ 10월 12~14일 서빙고온누리교회 2026 온누리사역축제(OMC, Onnuri Minis try Conference)가 오는 10월 12일(월)부터 14일(수)까지 ‘하이브리드 교회’를 주제로 열 린다. 온누리교회 리더십 및 성도, 국내 체류 선교사, 협력 기관 리더십 등이 참석한다. 10월 12~14일 오전에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총 여섯 차례 주제 강의를 한다. ‘하이브리드 교회’의 의미와 구체적 방향을 제시할 예정 이다. 오후에는 선택 강의와 저녁 오픈 집회 가 열린다. 선택 강의는 온누리교회 14개 사역본부가 주관하고, 저녁 오픈 집회에서는 이 재훈 위임목사, 김우준 목사(지구촌교회), 김다위 목사(선한목자교회)가 말씀을 전한다. 2026 온누리사역축제는 리더십 수련회를 겸한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순장, 각 사역팀 리더십은 최소 하루 이상 참석해야 한다. 임 직 훈련생은 하루를 선택해 오전부터 오후까 지 모든 일정에 참석해야 한다. 행사 기간 온 누리교회의 모든 스쿨과 강의, 기도모임은 온 누리사역축제 참석으로 대체된다. 참가신청 방법 및 이수 학점 관련 내용은 추후 안내한 다. 문의: 02-3215-3234(3122, 3534) / 홍하영 기자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9~10월 CGN 정기후원의 달 글로벌 선교 미디어 CGN이 9월과 10월 을 정기후원의 달로 정하고, ‘선교지와 복 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를 주제로 후원 행사를 한다.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를 비롯해 춘천새순교회, 방주교회, 안 양제일교회 등 협력교회에서도 후원행사 가 이어진다. 9월 19일(토)과 20일(일)에는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CGN 정기후원 약정 행사를 개최한다. CGN이 정기후원의 달을 맞아 특집 다 큐멘터리 ‘땅끝의 증인들’을 공개한다. 9월 19일(토) 자정 퐁당, 오전 10시 CGN 유 튜브, 9월 20일(일) 오전 10시 30분 CGN TV에서 방송한다. ‘드림온브릿지’ 캠페인 도 시작한다. 디지털 사각지대에서 헌신 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위성 인터넷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CGN 정기후원은 전화(02-796-2243) 또는 홈페이지(cgntv.net), 모바일로 참여할 수 있다. / 박지혜 기자 2026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 ‘Reset’ 2026년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 이하 2026 하비스트)가 9월 25일 (금)부터 27일(일)까지 파주 영산수련원에 서 ‘Reset(To Folow Christ)’ 을 주제로 열린다. 네팔, 몽골, 아랍 등 16개국에서 온 이주민과 차세대가 참석할 예정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의 2026 하비스트 참가비 지원을 위한 후원금과 이주민 가정을 위한 추석선물세트, 시상 품 등 물품 기증을 받는다. 추석선물세트, 프로그램 시상품, 영양제, 간식, 학용품 등 을 9월 20일(일)까지 안산M센터로 보내 면 된다. 2026 하비스트에 함께할 자원봉 사자 150명도 모집한다. 참가신청은 9월 15일까지 QR코드로 하면 된다. 회비는 2박 3일 7만 원, 1박 2일 및 당일 참가 4만 원. 후원: 하나은행 573-810033-13205 온누리교회 문의: 031-491-9650 / 박지혜 기자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 참가자 모집 가을학기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 참가자를 모집한다. 9월 11일부터 12월 11일까 지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2시 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진행된 다. 간단한 간식을 나누며 교제하고, 공동체성 경읽기와 신앙 서적 읽기(팀켈러 목사의 )를 한다. 문의: 010-4549-2925 / 박지혜 기자 대전온누리교회 창립 23주년 대전온누리교회 창립 23주년 감사예배를 9월 5일(토)과 6일(일) 대전온누리교회본당과 세종교육관 본당에서 드린다. 이재훈 위임목 사 축하 영상 상영, 유현목 목사(대전온누리 교회 담당) 설교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에게 떡을 제공한다. 유현목 목사(대전온누리교회 담당)는 “대전 온누리교회가 창립 23주년을 맞이할 수 있도 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면서 “성도 모두가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다음세대와 이웃, 열방을 향해 나아가며, ‘ACTS29’ 비전을 계속 써 내려가는 교회 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 남현영 기자
2026-09-05 제1604호
[News] “Reset(To Follow Christ)!” “Reset(To Follow Christ)!” 2026년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파주 영산수련원 온누리M미션에서 2026년 이주민 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 이 하 2026 하비스트)를 개최한다. ‘ Reset(To Folow Christ)’을 주제로 막 오르는 2026 하비스트는 9월 25 일(금)부터 27일(일)까지 파주 영산 수련원에서 진행된다. 하비스트는 온누리M미션에서 매 년 개최하는 이주민 추석연합수련 회다. 2026 하비스트에서는 네팔, 러 시아,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 트남, 아랍,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 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필리핀, 한국 등 16개국에서 온 이 주민과 차세대, 한국인 스태프와 봉 사자 9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재훈 위임목사, 해롤드 김 목사 (OEM 담당), 이아르뚜르 목사(서빙 고 러시아예배 담당), 김태완 목사 (온누리M미션 본부장)가 강사로 나 선다. 김태완 목사는 “2026 하비스트가 열방의 이주민들이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자로 거 듭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가정과 공동체, 민족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롭게 변화되기를 함께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2026 하비스트 봉사자도 모집한 다. 주차, 안내, 예배 자막, 무대FD, 중보기도, 식사 안내, 환경미화, 의 료 등 분야에서 이주민 형제자매들 을 섬기게 된다. 집회 기간 전체뿐 아니라 당일 봉사도 가능하다(숙소 요청 가능). 참가신청은 9월 15일까 지 QR코드로 하면 된다. 후원: 하나은행 573-810033-13205 온누리교회 문의: 031-491-9650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하반기 온라인커뮤니티 개강 9월 29일부터 매주 화 오후 8시 온라인 하반기 온누리 온라인커뮤니티(이하 온라인커뮤니티)가 개강한다. 9 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8시 온라인(Zoom)으로 진 행된다. 참가신청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 또는 하단 QR코 드로 하면 된다. 온라인커뮤니티는 20세 이상 온누리교회 성도 중에서 여러 사정으로 공동체 활동이 어려운 이들이 온라인에서 모이고 교제하 는 공동체다. 소그룹으로 묵상 내용과 삶을 나 누며 신앙 성숙을 돕는다. 이번 학기에는 여성민, 김철희 목사가 강의한다. 문의: 카카오채널 ‘온누리 온라인커뮤니티’ / 홍하영 기자 하반기 시니어아카데미 참가자 모집 2026 하반기 시니어아카데미(서 빙고, 양재, 부천)가 개강한다. 서빙 고온누리교회에서는 ‘청바지: 청춘 은 바로 지금’을 주제로 9월 2일부 터 11월 25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두란노홀에서 진행된다. 찬양콘서트, 특별강의, 가을 소풍 등 이 이어진다. 양재온누리교회는 9월 9일부터 12 월 2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드림홀에서 열린다. 예배와 간 증, 특별강의, 가을 소풍 등을 한다. 부천온누리교회는 10월 10일부터 11월 28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1 시 비전홀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된 다. 예배, 레크리에이션, 야유회, 미 술활동 등을 한다. 시니어아카데미 참가를 원하는 성도들은 개강일 현장에서 등록하 면 된다. 만 65세 이상 성도가 대상 이다. 회비는 5만 원. 문의: 02-3215-3220(서빙고) 02-570-7349(양재) 010-5334-8413(부천)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가을학기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 개강 9월 11일~12월 11일 매주 금 오전 9시 30분 가을학기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이 개강한다. 9월 11일부터 12월 11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30 분부터 오후 12시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진행된다. 가을학기 공동체성경읽기모임에서는 4장 13절 말씀을 따라 공동체가 함께 모여 말씀과 신 앙 고전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눈으로 읽고, 나누면서 신앙 성장과 성숙을 도모한다. 신앙 고전은 팀켈러 목 사의 를 읽는다. 간단한 간식을 나누며 교제하 고, 오전 10시부터 공동체성경읽기와 신앙 서적 읽기 를 한다. 문의: 010-4549-2925 / 박지혜 기자
2026-08-29 제1603호
[News] 여호수아처럼, 약속의 땅으로! 여호수아처럼, 약속의 땅으로! 온누리교회 차세대사역본부 여름사역 종료 여름캠프 1만 명, 국내외 아웃리치 1,090명 참가 차세대사역본부가 2026년 여름사역을 종료 했다. 올해 온누리교회 차세대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호수아의 믿음의 여정을 따라 걸었다. 차세대사역본부 여름사역은 7월과 8월 이어 졌다. 여름 캠프, 아웃리치, QT하고 수박먹자 등 그 내용도 풍성했다. 차세대 여름 캠프에는 국내 13개 온누리교회 캠퍼스 차세대 소속 학 생 1만여 명이, 아웃리치에는 국내 27개 팀 566명, 해외 32개 팀 524명이 참가했다. 예수님의꿈아이(영아부・유아부・유치부)와 꿈이자라는땅(유년부・초등부・소년부) 여름 캠프는 7월 4일(토)부터 8월 9일(일)까지 ‘여호수아, 약속의 땅으로’를 주제로 이어졌다.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 본당과 온누리청소년 센터, 이천 자연나라, 포천염광수련원, 피노키 오청소년수련원, 너구리 문화마을 등지에서 열렸다. 성경 퀴즈, 적용 놀이, 체험 활동 등을 했다. 파워웨이브 여름 캠프는 ‘돌파’를 주제로 7 월 17일(금)부터 8월 4일(화)까지 국립평창청 소년수련원, 서해안청소년수련원, 양평숲속작 은나라, 원주힐링파크 등지에서 열렸다. ‘두려 움을 돌파하라’, ‘불가능을 돌파하라’, ‘망설 임을 돌파하라’를 소주제로 찬양과 설교, 주제 강의, 기도회 등을 했다. 차세대 여름 아웃리치는 지난 8월 21일(금) 부터 22일(토)까지 진행된 양재 초등2부 아웃 리치가 대미를 장식했다. 올해 차세대 아웃리 치 국내팀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 경기 도 부천, 충청북도 보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 등지에서 노방 전도, 성경학교, 어르신 섬김 등을 했다. 해외 아웃리치는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일본, 몽골 등지에서 어린이캠프, 노방 전도, 환경 미화 등을 했다. 한편 차세대 슬기로운 방학생활 ‘QT하고 수 박먹자’는 지난 7월 20일(월)부터 8월 15일 (토)까지 진행됐다. QT 교재 <예수님이랑 나랑>, <예수님이 좋아요>, <새벽나라> 와 CGN 퐁당 콘텐츠를 활용해서 개인 QT 및 가족 QT를 했다. 차세대사역본부는 23일(일) ‘QT하고 수박먹자’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수박 간식을 배부한다. 이한비 학생(도곡 파워웨이브 고등부)은 “수 련회의 은혜와 감동을 넘어 아웃리치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은혜를 경험할지 기대하며 참 여했다”면서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아이들의 미래와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과 그 가정을 위해 잊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다짐했 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여름 아웃리치 동영상 공모전 및 간증 모집 8월 31일까지 영상 60~90초, 간증 A4용지 1장 미디어사역본부에서 ‘여름 아웃리치 동영 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8월 31일(월)까지 여 름 아웃리치 영상을 60~90초 분량으로 제작 해서 이메일(onnurismart@gmail.com) 또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온누리아웃리치2026), 온누리교회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o nnuri.acts29) 태그,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응모하면 된다. <온누리신문>에서는 여름 아웃리치 간증과 사진을 모집한다. A4용지 1장 분량의 간증과 함께 가로형 사역 사진, 작성자 최근 정면 사 진을 이메일(wisdom7@onnuri.org)로 제출하면 8~9월에 순차적으로 게재 한다. 2026년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 해’를 주제로 이어지는 올해 여름 아웃리치 에는 국내외 346팀 7,298명이 참가했다. 성인 공동체 국내 35팀 1,630명, 해외 55팀 1,126명, 대학청년부 국내 138팀 2,493명, 해외 59팀 959명, 차세대 국내 27팀 566명, 해외 32팀 524명이 열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 하고 있다(8월 21일 기준).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성찬용 포도즙 제조 서빙고, 8월 31일과 9월 1일 양재, 9월 1일…교회식당 운영안 해 성찬용 포도즙을 제조한다. 서빙고온누리교회 8월 31일(월)과 9월 1일(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양재온누리교회 9 월 1일(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회 식당에서 제조한다. 이 기간 교회 식당은 운영하지 않는다. 봉사 신청은 하단 QR코드로 하면 된다. 임 직 대상 권사, 남녀 안수집사 후보들이 대상이다. 봉사 시 간 8시간을 인정해 준다. / 홍하영 기자 온누리공동체 하반기 개강예배 온누리공동체 하반기 개강예배를 드 린다. 8월 25일(화)부터 9월 12일(토)까 지 공동체별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 2026년 하반기에도 예수님의 부르심 에 순종하며 제자의 길을 걷는 뜻깊은 행사를 한다. 9월 5일(토)~6일(일) ‘사르 밧 프로젝트’, 25일(금)~27일(일) ‘온누 리M미션 추석 연합수련회 하비스트’, 10월 12일(월)~14일(수) ‘OMC(온누리 사역축제)’, 21일(수)~22일(목) ‘러브소 나타 이와테’, 11월 21일(토)~22일(일) ‘ 엔젤트리(후원참여)’, 12월 19일(토)~20 일(일) ‘성탄주일예배’ 등이 이어진다. /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2026-08-22 제1602호
[News]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여름 아웃리치, 국내 200팀 4,689명, 해외 146팀, 2,609명 여름 아웃리치 동영상 공모전, 아웃리치 사진 및 간증 모집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 열기가 계속 이 어지고 있다.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를 주 제로 진행되는 올해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 치에는 국내 200팀, 4,689명, 해외 146팀 2,609 명이 참가한다(8월 14일 기준). 국내 아웃리치는 충남 보령, 강원 춘천 등지에서 이미용 봉 사, 노방전도 등을 한다. 해외 아웃리치는 캄 보디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사역자 블레싱, 벽화 사역 등을 한다. 아웃리치 참가자들은 출 발 전 반드시 안전관리 수칙을 확인 및 점검 해야 한다. 강리안 성도(대전온누리교회)는 “여름 아웃 리치를 계기로 선교는 내가 서 있는 가정과 일 터에서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예수님의 사 랑으로 섬기는 일상 속 실천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미경 안수집사(양재A공동체)는 “예수님 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면서 “예수님이 주신 섬김의 기쁨을 잊지 않 고, 교회와 이웃을 사랑으로 든든히 세워가는 사명자가 되겠다”고 고백했다. 미디어사역본부에서는 ‘여름 아웃리치 동 영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여름 아웃리치 영 상을 60~90초 분량으로 제작해서 8월 31일 (월)까지 이메일(onnurismart@gmail.com) 또 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온누리아웃리치 2026), 온누리교회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onnuri.acts29) 태그, 다이렉트 메시지(DM) 로 응모하면 된다. 에서는 여름 아웃리치 간증과 사진을 모집한다. A4용지 1장 분량의 간증과 가로형 사역 사진, 작성자 최근 정면 사진을 이메일(wisdom7@onnuri.org)로 제출하면 < 온누리신문>에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러브소나타 이와테’ 참가자 모집 8월 20일까지 러브소나타 홈페이지 신청 ‘러브소나타 이와테’ 참가자를 모집한다. A 팀은 10월 21일(수)부터 23일(금)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아오모리공항을 이용한다. B팀은 10 월 21일(수)부터 24일(토)까지 3박 4일 일정으 로 하나마키공항을 이용한다. 참가비는 A팀 126만 원, B팀 152만 원이다(항공료와 숙박, 식 사 등 현지 체재비 포함). 선착순 모집한다. 참가를 희망하는 성도는 8월 20일(목)까지 러 브소나타 홈페이지(www.lovesonata.org)에서 신청하면 된다. 참가신청 이후 3일 이내에 여권 사본 제출과 접수비 납부를 해야 한다. 접수비 는 A팀 60만 원, B팀 70만 원이다. 잔금은 9월 10일(목)까지 완납해야 한다. 카드 결제는 1인 당 50만 원까지 할 수 있다. 러브소나타 이와테는 ‘온 세상을 덮는 하나님의 사랑’(요 7:38)을 주제로 10월 21일(수) 과 22일(목) 토사이클래식홀에서 열린다. 21일 세미나와 가스펠나이트, 22일 리더십 포럼 과 러브소나타 집회가 이어진다. 문의: 02-570-7415 /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장로아카데미 하반기 참가자 모집 8월 31일까지 목회행정실 신청 2026 장로아카데미 하반기(오픈강좌) 참가자를 모집한다. 9월 15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서빙고온 누리교회 믿음홀에서 진행된다. 이전에 장로아카데미 수강을 마친 장로들이 대상이다. 장로아카데미 참가를 희망하는 온누리 교회 장로들은 8월 31일(월)까지 목회행 정실 김경렬 간사(mtop1@nate.com)에게 신청하면 된다. 정원 15명, 참가비는 무료. 장로아카데미는 온누리교회 장로들의 영적 성숙과 리더십 개발, 상호 친교 및 온누리교회의 영적 유산을 이어가는 과 정이다. 지난 4월 14일부터 5월 26일까지 이어진 상반기 장로아카데미에는 온누리 교회 장로 25명이 참가했다. 문의: 02-3215-3234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성찬용 포도즙 제조 성찬용 포도즙을 제조한다. 서빙고온누리교 회 8월 31일(월)과 9월 1일(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양재온누리교회 9월 1일(화) 오 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회 식당에서 제조 한다. 서빙고온누리교회 성찬팀, 임직 봉사자, 양재온누리교회 권사회, 성찬팀, 임직 봉사자 들이 참여한다. 이 기간 교회 식당은 운영하 지 않는다. 문의: 02-3215-3533(서빙고) 02-570-7522(양재) 독후감대회 ‘온누리썸머북케이션’ 온누리교회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독후감대 회 ‘온누리썸머북케이션’ 제출 마감이 일주 일 남았다. 참가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8월 23 일(일)까지 독후감을 200자 원고지 10장 이상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A4용지 글자 크기 12, 1,000자 이상). 원고는 온누리도서관에 직 접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 이메일 (onnurilibrary@naver.com)로도 접수할 수 있다. 문의: 02-3215-3110
2026-08-15 제1601호
[서초B, NGO 메디엑세스, 브릿지33+ 태국 아웃리치] 벌써, 다시 가고 싶다! 서초B, NGO 메디엑세스, 브릿지33+ 태국 아웃리치 벌써, 다시 가고 싶다! 땀방울, 웃음과 눈물, 아이들의 노래, 마주 웃던 얼굴들 평균 나이 60세, 55명, 5박 7일. 조합되 기 어려워 보이는 이 단어들을 보석으로 엮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 서초B공 동체, NGO 메디엑세스 라파팀, 브릿지 33+공동체 연합 아웃리치팀(이하 연합 아웃리치팀)이다. 이들이 지난 7월 25일 (토)부터 31일(금)까지 태국에서 연합 아 웃리치를 했다. 선교사들의 발을 씻기 고, 아픈 이들을 진료하고, 아이들과 함 께 뛰어놀았다. 그 꿈결 같은 시간을 담 았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 벌써, 다시 가고 싶다.’ 지난 7월 31일(금) 오전 9시 40분. 태국 수완 나품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한국 땅에 발을 딛자마자 이 생각부터 했다. 모두 같은 마음이라 더 신기하고, 특별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얼른 쉬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이번엔 달랐다. 함께 간 사람들 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벌써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과 차를 팔아 산 그 땅에서 태국은 인구 95%가 불교를 믿는 나라다. 그 나라 헌법에도 ‘국왕은 불교도’라는 조항이 명시돼 있을 만큼, 불교는 태국에서 신앙을 넘 어 국가 정체성으로 여겨진다. 그 영향으로 태 국 기독교는 2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음에도 여전히 인구 1%대에 머물러 있다. 그 좁은 길에서도, 그 땅을 너무 사랑해서 복 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연합 아웃리치팀 사역지였던 ‘엘드림기독국제학교 ’ 가 그 시작이자 주인공이다. 1996년, 주태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근무하 던 유철준 집사(서초B공동체, 글로비전선교회·엘드림기독국제학교 공동 이사장)는 선교사 들을 만날 일이 잦았다. 그들과 대화하다가 태국 선교사들의 가장 큰 고충이 자녀 교육이라 는 걸 알게 됐다. 이후 유철준 집사가 이규식 선교사(글로비전선교회·엘드림기독국제학교 공동 이사장)가 담당하는 임마누엘선교교회를 섬기게 되면서 두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게 됐다. 선교사 자녀 50명을 학교에서 돌보 면 선교사 25명이 자녀 걱정 없이 오지로 떠날 수 있고, 선교사 한 사람이 100명에게 복음을 전하면 2,500명에게 닿을 수 있을 거로 여겼다. 그 꿈이 조금씩 영글어갔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이규식 선교 사가 유철준 집사에게 “좋은 땅이 나왔습니다 ”라고 연락했다. 땅 가격은 시세의 3분의 1, 크 기는 무려 1만 9천 평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찬양 ‘천국은 마치’ 가사처럼, 집과 차를 팔아 기어이 그 땅을 샀다. 진흙 위에 시멘트가 발리 고, 건물이 세워지는 동안 이학일 장로(서초B 공동체, NGO 메디엑세스 이사)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헌신이 더해졌다. 그렇게 그 땅이 전 세계에서 온 아이들이 뛰놀며 하나님 을 찬양하는 축복의 장(場)이 됐다. 2020년 3월 9일 태국 방라뭉에 설립된 이 국제학교에는 12 개국(태국, 한국, 중국, 러시아, 폴란드 등)에서 온 학생 51명이 재학 중이다. 열방의 방주가 되 어 하나님의 일꾼들이 배출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기도하며 가르치고 있다. 연합 아웃리치팀은 지난 7월 25일(토) 이 학교 기숙사에 짐을 풀며 5박 7일의 여정을 시작 했다. 첫날부터 부엌은 ‘식사섬김팀’ 차지였 다. 낯선 주방에서 팀원들의 끼니를 챙기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역만리 타국에서 받아 든 집밥 한 끼가 지친 팀원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됐다. 둘째 날엔 방라뭉 새빛교회에서 연합예배를 드렸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이들이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했다. 몇 주 동안 연습한 특순도 이어졌다. 이한규 목사(서초B공동체 담당)의 설교는 영어와 태국어로 동시 통역됐고, 성도들은 연신 “아멘”으로 화답했다. 오후엔 이 학교를 섬기는 유철준 집사, 조혜 숙 권사 부부와 이규식, 최영미 선교사 부부, 그 사역을 이어받은 이반석, 이기쁨 선교사 부부를 위한 블레싱이 이어졌다. 그 얼굴에 씌워 줄 화관은 전날 밤늦도록 팀원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55명의 팀원이 세 부부의 발과 어 깨에 손을 얹고 눈물의 기도를 했다.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가 흔한 이 학교 구석 구석을 ‘방역팀’이 소독약을 짊어지고 돌기 시작한 것도 이날부터였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 원래는 태국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의료봉사가 이번 아웃리치의 중심 사역이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태국 정부가 제동을 걸었 다. 몇 달을 준비한 계획은 방콕 한인 성도와 태국을 섬기는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소규 모 진료로 바뀌었다. 진료소를 찾은 이들 상당수가 병원 문턱조차 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통역 없이는 진료 한 번 받기도 어려웠고, 보험이 안 될 때는 진료비 와 약값이 한 달 생활비와 맞먹었다. 그래서 웬 만큼 아파서는 참는 게 익숙해진 이들이었다. 진료는 병원이 아닌 예배당(방콕한인연합교회, 더블레싱한인교회)에서 했다. 수액 걸이가 없어서 빨랫줄과 보면대에 링거를 걸었다.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수액이 다 떨어질 때까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눴다. 치과 진료실도 사정은 비슷했다. 전용 의자 대신 매트리스 한 장을 펴거나 일반 의자 머리맡에 목베개를 걸어 대신했다. 그들에게 ‘ NGO 메디엑세스 라파팀’의 진료는 가뭄에 내린 단비 같았다. 안경자 권사(방콕한인연합교회)가 감사 인사 를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진료도 봐주시고,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제대로 치료는 받고 있는지 물어주시는 그 따 뜻한 마음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어금니가 깨진 채로 몇 해를 참아온 최도열 선교사가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태국에서 일반 병원에 가면 진료비도 만만 치 않을뿐더러, 그 수준을 믿고 맡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진료를 받고, 쉼 과 위로를 얻게 되니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낯선 땅에서 몇십 년을 홀로 버텨온 선교사들을 위한 블레싱 자리도 마련했다. 팀원들이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화관과 선물을 전달하며 축복했다. 태국에서 22년째 교회 개척 사역을 하는 정영란 선교사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직 선교사들을 만나려고 이 먼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과 화관을 씌워주시고, 극진한 보살핌과 치료까지 해주셔서 제가 공주가 된 것 같았습니다.” 흔들리는 유치를 뽑고 나온 임하엘 어린이 (임진석, 양윤희 선교사 자녀)도 인사했다. “이가 흔들려서 걱정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어린이들과 함께 놀아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 요. 태국에 친구들이 많이 없어서 심심할 때가 많았거든요.” 의료팀이 진료소 불을 밝히는 동안 ‘청소년 사역팀’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은 태국 땅의 어린 영혼들을 품었다. 엘드림기독국제학교와 반진자이 고아원(Baan Jing Jai Children Home)에서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 웃으며, 예수의 사랑을 전했다. 뙤약볕 아래서 아이들과 함께 물총을 쏘며 놀고, 제기를 차고, 줄넘기를 뛰고, 색칠 놀이를 했다. 작은 사진관을 차려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고, 액자와 키링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깜짝선물을 줬다. 반진자이 고아원 아이들이 연합 아웃리치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전부터 노래 하나를 몰래 연습했다고 했다.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를 한 소 절 한 소절 불렀다. 그 노래 한 곡이 며칠 간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냈다. 비행기가 태국 하늘을 벗어나던 밤,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사진을 몇 번이고 꺼내봤다. 팀원들의 땀방울, 선교사들의 웃음과 눈물, 서툰 한국어로 부르던 아이들의 노래, 뙤약볕 아래 서 마주 웃던 얼굴들이 자꾸만 나를 그 땅으로 다시 끌어당겼다. 그 땅을 사랑한 이들의 마음이 나에게도 옮겨붙은 모양이었다.
2026-08-15 제1601호
[마리아행전] "예수님처럼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겠습니다!” 나와 교회, 민족과 세상을 위한 왕의 기도! “예수께서 이말씀을하시고눈을 들어 하늘 을 우러러보시고 기도하셨습니다”(요 17:1a).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이 눈을 들어 하 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셨다. 자신을 위해, 제 자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마리아들이 바로 그 왕의 기도를 따라, 나와 교회, 민족과 세상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첫째 날, 자신을 위한 왕의 기도 6월 10일(수) 오전 9시 40분,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마리아들이 하나둘 모였다. 이윽고 예배당이 그녀들의 기도로 채워졌다. 오전 10시, 집회가 시작됐다. Blossom 챔버의 연주와 찬양이 울려 퍼졌다. 송정미 사모의 특 순이 끝나고, 조호영 목사(여성사역본부장)가 단상에 올랐다. “내 욕심과 뜻을 앞세우는 기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어떤 기도를 원하시는지 배워보십시 오.” 첫째 날 설교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왕의 기도’(요 17:1~5)를 주제로 했다. 기도회는 김정희 목사(양재여성사역)가 ‘자신을 위한 기도’ 를 주제로 인도했다. 둘째 날, 교회를 위한 왕의 기도 마리아행전 둘째 날 집회는 The Blessing 챔 버의 연주와 찬양, 기도로 시작됐다. 설교는 정 명호 목사(혜성교회)가 ‘세상 안으로 보내심 을 받은 자들의 기도’(요 17:6~19)를 주제로 했다. 마리아들의 기도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 졌다. 둘째 날 기도회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 다. 김현실 목사(부천 여성사역)가 ‘교회를 위 한 기도’를 주제로 인도했다. 말씀을 잃지 않 는 교회가 되도록,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 하지 않는 교회가 되도록, 진리로 거룩해지는 교회가 되도록 부르짖었다.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회도 이어졌다. 이윤재 목사(수원 여성사역)가 ‘정치, 법, 사회를 위한 기도’를, 김미정 목사(인천 여성사역)가 ‘교육, 문화, 미디어를 위한 기도’를 주제로 인도했다. 셋째 날, 세상을 위한 왕의 기도 집회 마지막 날,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마리아들이 모였다. 설교는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원로목사) 가 ‘아버지, 하나 되게 하소서’(요 17:20~26) 을 주제로 했다. 기도회는 배순양 목사(제주 여 성사역) ‘북한, 통일을 위한 기도’, 권오향 목 사(남양주 여성사역) ‘열방을 위한 기도’를 주 제로 인도했다. 백미는 세리머니였다. 마리아 들이 서로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손을 맞잡고 축복했다. / 홍하영, 박지혜, 남현영 기자 인터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 평소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왕, 선 지자,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하나 님 나라가 임하고,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도도 꾸준히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단의 계략을 분별할 지혜와 영적 전쟁을 감 당할 능력을 주셨음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 다. 그런데 첫날 메시지를 들으면서 기도의 은 사를 충분히 사용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 다. 세상의 우상뿐만 아니라 제 안의 우상도 돌아봤습니다. 이것을 무너뜨릴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며, 마지막 시대 성도 에게 순교적 신앙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겼습 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제가 죽기를 원합니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보자” 다”라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부 어주시는 사랑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웠 습니다. 그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비로소 타인 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다고 믿습니 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한 삶은 예배하는 일상에서 시작된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존 재로 지으셨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참된 예 배자로 부르고 계신다 고 믿습니다. / 이승진 집사(강남B공동체)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보자" 평소에도 교회를 위한 기도를 매일 드렸는 데,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결국 점점 악해질 텐데, 내가 기도한다고 달라 질까’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지만, 그 기도가 실제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품은 채 마리아행전 자리에 앉았 습니다. 말씀을 듣는데 무엇인가 달라지기 시 작했습니다. 우리가 연합해서 기도할 때 하나 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 내 기도가 작아 보여도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음으로 붙 들게 됐습니다. 특히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 보자”라는 말씀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함 께 기도하는 지체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한 군 대가 되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 니다. 교육, 미디어, 정치 등 세상의 모든 영역 을 위해서 지금보다 구체적으로, 더욱 민감하 게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포함해서 하루 한 시간은 기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기도할 제목이 많아졌습니다. 교회 리더십을 위해, 세속화되는 이 시대를 분별하기 위해, 다음세 대를 위해 더 깊이 무 릎 꿇겠습니다. / 박진영 집사(이수공동체)
2026-06-13 제1593호
[장애인주일 특집]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인사역본부 부모와 교사들의 솔직담백한 고백 장애인사역본부 공동체 부모와 교사들 을 만났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고 담백 한 고백을 들었다. 누군가는 자녀가 처 음 장애 진단을 받던 날 병원 계단을 기 억했고, 누군가는 장애인 자녀가 그린 작품을 전시한 날의 기쁨을 고백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장애인과 함께 걷는 길에서 경험한 감동을 노래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려고 목적지에 맞게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탔는데, 착륙지는 이탈리아가 아닌 알래스카의 어느 공항이었다.” 장애인 자녀를 맞이하는 부모의 당혹감을 표현한 이 문장이 낯선 비유처럼 들리지만, 그것을 몸으로 겪어낸 이들에게는 가장 정확한 고백이다. 오랜 시간 ‘장애’라는 칼바람이 부는 북극에서 사는 방법을 익혀온 이들의 솔직 담백한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원망도, 불평도 어려웠던 그 시간 자녀의 장애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이선아 성도(부천온누리교회)는 아들 윤후(부천 사랑부)의 장애 검사 결과지를 받던 20여 년 전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또래보다 발달 속도 등이 범주를 벗어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도, 막상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병원 계단에서 통곡하고 말았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7살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료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이후 희귀 난치 질환 진단과 수술, 뇌전증 대발작, 척추측만증 교정 수술까지 더 큰 난관들이 찾아왔다. 그 모든 시간을 버티면서도 원망도, 불평도 편하게 뱉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해진다는 말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남편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게 보였고, 저는 계속 울부짖으며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하시네요’라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이 죄가 되어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봐 애써 머리를 흔들며 애꿎은 기도 시간만 늘렸습니다.” 이지영 자매(강동 사랑부)의 어머니 오금옥 성도(강동온누리교회)도 딸의 장애 진단 앞에 무너져 내렸다. 이지영 자매가 4살 될 무렵, “자폐증입니다. 혼자 살아가기 힘들 겁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신(神)을 원망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없다, 부처님도 없다’며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모든 신을 끄집어 와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아이의 장애가 나의 죄라 여기며 세상의 눈치, 가족의 눈치, 아이의 눈치를 보면서 그 암흑 같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박혜신 자매(서빙고 예수사랑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도, 김수 자매(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도, 김재원 형제(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도 다르지 않았다. 자녀의 장애 진단 앞에 상한 마음을 감추고 끝나지 않을 그 세월을 살았다. 하나님 원망도 해보고, 울며불며 매달려 보면서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뎠다. 북극에도 봄은 온다 시간이 흘렀다. 살을 에는 칼바람만 부는 것 같았던 북극에도 따스한 볕이 드는 봄이 찾아왔다. 인생의 계절이 바뀌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윤후 형제가 올해 스무 살이 됐다. 뇌전증 대발작은 여전히 찾아오고, 희귀 난치 질환은 평생 안고 가야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이선아 성도는 그 기쁨의 비결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부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윤후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사랑부 선생님들의 사랑과 헌신이 우리 가정에 기쁨을 가져다줬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충분히 유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지영 자매는 혼자 밥을 차려 먹고, 대중교통을 타고, 치료기관을 찾아간다.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린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거라던 아이가 씩씩하고 명랑한 청년 작가가 됐다. 이지영 자매가 견뎌낸 그 숱한 세월이 엄마 오금옥 성도를 하나님 앞으로 초대했다. “지영이가 저를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의 삶을 통해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려내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봄볕은 이 가정에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김수 자매, 김재원 형제, 박혜신 자매, 최희민 형제에게도 찾아왔다. 그들은 지금 ‘장애인 청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장애인 청년 작가 5인(김수, 김재원, 박혜신, 이지영, 최희민)이 사랑홀갤러리(서빙고온누리교회 신관 1층)에서 장애인의 달 특별전 ‘우리들의 찬양’을 열고 있다. 박혜신 자매는 지난해 연말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도 하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가 지난해 연말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을 꺼냈다. 박혜신 자매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활짝 핀 자목련 그림을 구매했고, 그 그림을 품에 안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 속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저는 혜신이의 그림을 보면 하나님의 미소를 대하는 듯합니다. 성도들이 갤러리 복도를 오가면서 손 내미시는 하나님을 만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재원 형제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에게는 전시회보다 “행복하다”는 아들의 고백이 더 큰 선물이었다. “재원이가 전시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행복하다’는 고백을 참 많이 했습니다. 재원이의 그림을 보고 ‘위로 받았다’, ‘소중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등의 평을 남겨주시는 관객들과 만나면서 큰 용기도 얻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사랑홀갤러리에 걸린 아이들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와 따뜻한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김수 자매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딸의 은사를 성도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온누리교회 장애인 예배가 우리 모녀의 안식처입니다. 늘 위로와 사랑을 받기만 하다가 특별전을 열고 작게나마 성도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수가 이 기회를 좋은 토양 삼아 더 큰 믿음의 자녀로 성장할 것입니다.” 곁에 머무는 사랑, 페이스메이커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디는 이들 곁에서 묵묵히 품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사역본부 교사들이다. 정길우 성도(서빙고 사랑부 교사)는 직장 신우회 활동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장애인 시설에서 무려 20여 년을 봉사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년퇴직 이후 공동체에서 장애 자녀를 둔 가정들을 만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이유를 어느 주일 발견한 ‘사랑부 교사 모집’ 광고에서 알 수 있었다. 무작정 사랑부 예배를 찾아갔고, 교사로 지원했다. 사랑부를 섬기면서 정길우 성도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랑부 여름 캠프에서 한 형제의 배변을 돕고 샤워를 시키다가 문득 아무 거리낌 없이 섬기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그때 동료 교사가 건넨 한마디가 그 기쁨의 정체를 알려줬다. “‘사랑부가 아니면 이런 경험을 평생 못 했을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기에 할 수 있는 일이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부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은 멀리서 돕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해 문석윤 성도(서빙고 예수사랑부 교사)에게 예수사랑부를 섬기던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싱어를 구하고 있으니 함께 섬기자고 제안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선택인지 망설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사 43:1)을 붙들고 예수사랑부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8개월이 흘렀다. “예수사랑부 청년들을 보면 순전한 예배자가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이곳에 10년 이상 몸담고, ‘나의 남은 삶은 이곳’이라 고백하는 선배 교사들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사랑부가 그 이름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경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2년째 부천 사랑부 총무로 섬기는 김도훈 집사(부천온누리교회)도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어느새 가장 소중한 사역지가 됐다. 대학생이 된 딸도 함께 교사로 섬기고 있다. 찬양할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 뛰는 사랑부 청년들의 미소에서 예수님을 본다. “마라톤에는 선수 곁에서 속도를 조절해 주는 페이스메이커가 있습니다. 사랑부에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뛰어줄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사랑부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여러분의 섬김이 사랑부 아이들에게 평생의 온기를 나눠줄 큰 빛이 될 것입니다.” 이탈리아행 비행기에서 내려 북극에 섰던 이들이 그 땅에서 이글루를 짓고 있다. 북극의 모진 추위를 이기고 튼튼하고 따듯한 이글루를 함께 지어줄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문의: 02-3215-3263
2026-04-18 제1585호
[예수를 따르는 사람]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캠퍼스 복음화’ 꿈꾸는 백은희 교수의 확신 “나를 따르라”(마 16:24). 2026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전제한 그리스도의 엄중한 명령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한 모든 이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온누리신문>에서‘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과 고백을 듣는다. 그 일곱 번째 주인공은‘국립공주대학교 백은희 교수(양재온누리교회)’다. 그녀는 캠퍼스를 선교지로 여기고, 자신의 달란트와‘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라는 선교 도구를 사용해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는‘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현장 이른 아침, 아직 캠퍼스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인데 강의실 불이 하나둘 켜졌다. 그리고 전공 서적 대신 성경책을 든 예배드리는 사람들, 교수와 학생, 지역 교회 성도들이 모였다. 국립공주대학교 신우회 소속 교수들, 기독동아리 학생과 간사, 지역 교회 성도들이다. 그들은 무릎부터 꿇었다. 그리고 학교와 학생들, 캠퍼스 복음화를 간구하며 뜨겁게 부르짖었다. 그들은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교단과 소속을 넘어 기독교 공동체 이름으로 하나 된다. 그들의 기도와 예배는 특별하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선교지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는 선교 도구”라는 고백을 일상에서 증명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 갈망이 캠퍼스 복음화라는 엄청난 비전을 완수하는 원동력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지난해 KUPM(전국교수선교회)과 CCC연합평창대회에서 백은희 교수의 발표로 전국 대학 기독 공동체에 소개되며 점차 더 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바로 국립공주대학교 교수신우회와 기독동아리가 함께 드리는 ‘ 국립공주대기독연합예배’ 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는 2010년대, 국립공주대학교 음악교육과 백기현 교수가 교수신우회 회장을 역임할 당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로 시작했다. 기독동아리 학생들과 간사, 교수들이 함께 모여 ‘ 복음 전도’ 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린 연합예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지경이 넓어졌다. 지금도 ‘CCC(Campus Crusade for Chris), JDM(Jesus Disciple Movement), DFC(Disciples For Christ), SFC(Student For Christ), ESF(Evangelical Student Fellowship), IVF(Korea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 비전선교단’ 등 주요 기독동아리 구성원들과 간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 장로와 권사, 선교사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매주 적게는 7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의 인원이 모인다. 캠퍼스와 지역 교회가 연결되는 통로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의 특징이 뚜렷하다. 교수신우회, 기독동아리, 지역사회 교회와 함께하는 연합예배는 개강 및 공강 감사예배만 드리는 게 아니다. 매 학기 약 11주 동안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주 수요일 오전 8시부터 8시 50분까지 진행된다. 예배는 기독동아리 학생들의 찬양을 시작으로 교수신우회 교수들의 기도, 간사 및 지역사회 목회자들의 말씀 나눔으로 이어진다. 또한 국립공주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생에게 문이 활짝 열린 예배다. 이 지속성과 개방성은 학생들이 복음을 더욱 쉽게 접하는 환경을 만든다. 기독동아리에 가입한 대부분 학생은 이미 크리스천이다. 신앙을 가진 학생들을 돌보고 신앙 안에서 굳건하게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연합예배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학생들이 친구 초대로 왔다가 부담 없이 예배드리고,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복음은 관계에서 전해지기 때문이다. 연합예배의 핵심은 ‘ 연합’ 에 있다. 국립공주대학교 6개 기독동아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이 늘 그 자리를 함께한다. 모든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하나님이 주신 캠퍼스 복음화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가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선교 도구인 이유가 바로 그것 이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삶으로 보여주는 신앙 “최근 대학가는 상대적 가치관의 혼란과 영적 황폐함, 갈수록 교묘해지는 이단 및 사이비 단체의 포교로 인해 복음화가 더욱 어려워지는 실정입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에서 크리스천 교수님들이 예배의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은 학생들에게 큰 힘과 영적 귀감이 됩니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이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수들에게 이 여정이 쉬운 길은 아니다. 치열한 연구 성과와 업적 평가가 생존과 직결되는 대학에서 매주 시간을 내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작지 않은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백은희 교수의 생각은 분명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는 게 훨씬 큰 축복이고, 영향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백은희 교수는 그래서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자리’ 라고 고백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이 영향력을 전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그들의 신앙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말로 전하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큰 울림을 준다고 믿습니다. 저와 같은 믿음과 확신을 가진 교수님들이 교수신우회에서 활동하고, 기독동아리와 학생들이 서로 연결되어 함께 드리는 연합예배는 그 존재만으로도 전도의 파급력이 대단합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제자도 실천’ 백은희 교수가 생각하는 ‘ 예수를 따르는 삶’은 특별한 환경이나 특정 순간에만 드러나는게 절대 아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 곧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 제자도 실천이 핵심이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는 저의 선교지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수 전하는 일을 함께하며 선교 도구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복음을 전하며, 캠퍼스 복음화의 꿈을 이뤄내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제자도 실천이라고 확신합니다.” 특수교육과 교수로서 장애 학생을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는 백은희 교수는 일과 업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고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묻습니다. 하나는 ‘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 또 다른 하나는 ‘ 이 일이 장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입니다. 이 두 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하면 비록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고 시간을 내어야 하는 힘든 선택일지라도 기꺼이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순종입니다” 그렇게 선택한 일을 할 때에는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을 상기한다고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백은희 교수가 대학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지입니다. 특별한 사역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강의실과 연구실, 학생들을 만나는 모든 장소가 복음을 전하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2026-04-10 제15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