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잠 21:14). 이 말씀을 처음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성경이 뇌물을 권하는 것인가?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출 23:8)고 분명히 금하신 하나님이 <잠언>에서는 뇌물이 분노를 그치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니 말이다.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잠언>이라는 책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성서해석학에서는 <잠언>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처방적 잠언’(prescriptive proverb)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서술적 잠언’(descriptive proverb)이다. <잠언> 21장 14절은 후자에 해당한다. “뇌물을 주라”는 명령이 아니라 세상에서 선물과 뇌물이 실제로 분노를 가라앉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기술한 것이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난다. 전반절은 ‘은밀한 선물’이 ‘노’를 쉬게 한다고 말하고, 후반절은 ‘품 안의 뇌물’이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고 말한다. 히브리 시는 후반절에서 전반절의 의미를 반복하면서 한층 더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 여기서도 ‘노’보다 ‘맹렬한 분’ 훨씬 격렬한 분노를 가리키고, 그에 대응해 ‘선물’보다 더 강한 표현인 ‘뇌물’이 사용된다. 이는 분노의 강도가 극에 달할수록 그것을 가라앉히는 데 더 큰 대가가 따른다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은밀한’과 ‘품 안의’라는 표현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건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드러내 놓고 주는 선물은 자칫 과시되기 쉽고,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이나 체면의 상처가 될 수 있다. 반면, 남몰래 건네는 정성은 상대방의 마음 깊은 곳을 움직인다. 성경에도 <잠언>과 꼭 들어맞는 사례가 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20년 넘게 쌓인 분노를 알기에 수백 마리의 가축을 앞세워 보냈다.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창 32:20). 야곱의 속마음을 보면 이것은 순수한 감사의 선물이라기보다 자기 잘못으로 빚어진 분노를 무마하려는 전략적 증여였다. 아비가일 역시 남편 나발의 무례로 온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음식을 급히 준비해서 달려갔다(삼상 25장). 이 역시 순수한 호의라기보다는 절박한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행동이었다. 두 사례 모두 순수한 선물과 정의를 왜곡하는 뇌물 경계 어딘가에 있는 ‘위기를 넘기기 위한 선물’이었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늘 뚜렷하지 않은 현실을 성경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잠언> 21장 14절의 지혜이다. 이 말씀은 뇌물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누군가 내게 분노하고 있을 때 자존심을 세우며 맞서기보다 먼저 조용히 손을 내미는 것이다. 내 잘못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관계를 회복하려는 용기, 드러내 놓고 체면을 세우는 화해가 아니라 은밀하게 마음을 전하는 겸손이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이다. 예수님도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마 5:25)고 말씀하셨다. 갈등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세상의 방식을 관찰한 <잠언>이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이다. /오은규 목사(성동광진 공동체)
2026-04-18 제1585호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최근 우리 가족에게 거룩하고 즐거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온누리성경읽기앱’으로 매일 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갖는 일이다. 말씀을 다 들은 뒤에는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매일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기도로 마무리한다.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자녀들의 기도와 고백을 듣다 보면 부모인 나도 큰 위로와 도전을 받는다. 온 가족이 말씀 안에서 하나 되어 기도로 마음을 모으는 이 시간은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깊은 은혜다. 이처럼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듣고 나누는 행위가 우리 영혼에 얼마나 큰 생명력을 불어넣는지 몸소 체험하며, 바울 사도가 골로새교회에 전했던 권면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본문의 첫머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는 권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거하다(νοικετω)’라는 헬라어는 잠시 방문하는 손님이 아니라, 그 집의 주인으로서 ‘안주하다’, ‘뿌리를 내리다’, ‘계속 머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성경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체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중심인 ‘마음’에 자리 잡고,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통치적 권위를 가진다는 뜻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πλουσω)’ 거한다는 것은 말씀이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자리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당시 유행하던 헬라의 철학이나 영지주의, 금욕주의, 신비주의 등 다양한 거짓 가르침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유일한 해답으로 ‘말씀의 내주’를 제시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세상의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속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갖게 된다. 이어지는 말씀은 말씀이 내주한 결과가 공동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라는 구절은 신앙이 결코 개인주의적인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복음은 공동체 안에서 나눌 때 그 생명력이 배가 된다. 여기서 ‘피차(αυτο)’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가르침이 어느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모든 성도가 서로를 세워가는 과정임을 나타낸다.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 위로를 받듯, 성숙한 성도는 연약한 자를 권면하고, 연약한 자는 순수한 고백으로 공동체에 신선한 도전을 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공통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 스승이자 동역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지혜(πσσοφ)’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말씀의 풍성함은 반드시 찬양의 고백으로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본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기록한다. 말씀이 머리에만 머무르면 교만이 되기 쉽고, 가슴에만 머무르면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 영혼 깊숙이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찬양과 감사가 된다. 여기서 ‘감사하는 마음으로(ντχριτι)’는 문자 그대로 ‘그 은혜 안에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형편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있다.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할 수 있는 ‘신령한 노래’를 얻게 된다. 형식적인 노래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감사의 제사가 드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말씀을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하느냐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삶의 자리로 가져가야 한다. 매일의 시간을 구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주인으로 자리 잡도록 ‘말씀이 머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며 서로에게 권면할 때 우리 입술에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감사의 찬양이 터져 나올 것이다. 말씀이 머무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는 성소임을 기억하며 말씀 앞에 우리 마음의 자리를 내어 드리기를 소망한다. / 정현석 목사 (고양은평공동체)
2026-04-04 제1583호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12절과 <누가복음> 15장 4절에서 자신을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셨다. 그리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물으신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양 100마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가 99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그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마 18:12). “너희 중 누가 100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눅 15:4).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물음표라기보다는 느낌표에 가깝다. 우리의 의견을 묻는다기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부의 말이기 때문이다. 양 무리에서 이탈한 양은 생명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양과 목자>의 저자 필립 켈러는 수년 동안 양을 치는 목자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저자는 양의 수가 한두 마리 모자랄 때면 가장 먼저 ‘내 양 중 한 마리가 어딘가에 뒤집혀 있겠구나. 빨리 찾아 일으켜 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고 고백한다. 필립 켈러의 ‘뒤집힌 양’에 대한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다. 뒤집힌 양은 등이 땅에 닿고 네 발이 허공을 향한 채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버둥거리지만 혼자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처음에는 도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매에”하고 소리 내어 울어보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그 울음소리는 오히려 맹수의 표적이 된다. 결국, 양은 두려움과 좌절감 속에서 심하게 발버둥 치다가 지쳐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게 된다. 만일 목자가 빠른 시간 안에 그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그 양은 십중팔구 죽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뒤집힌 양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네 발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는데 버둥거리는 동안 양의 흑위(되새김질 동물의 첫 번째 위) 속에 가스가 차 오르기 시작한다. 가스가 차오르면 몸의 말단, 특히 사지부터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되다가 순환이 멎어버리게 된다. 날씨가 덥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에는 뒤집힌 양이 몇 시간 내에 죽을 수도 있다. 독수리와 들개, 이리, 표범 같은 맹수들에게 뒤집힌 양은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먹잇감일 뿐 아니라 얼마 안 있어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표적으로 삼고 주시한다. 이처럼 길을 잃은 양은 뒤집혀 무력해진 채 죽거나 맹수의 공격으로 죽기 쉽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아는 목자에게 길 잃은 양의 문제는 무엇보다 급하다. 목자는 최우선 순위로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게 된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성경의 비유에는 이처럼 생명을 놓고 벌어지는 시간적 긴박함에 대한 자각이 담겨 있다. 바로 그 시간적 긴박감에서 잃은 양을 찾고자 하는 목자의 뜨거운 열정이 생겨나고, 마침내 찾아낸 양을 데리고 돌아올 때의 무한한 기쁨이 생긴다. 예수님은 자신을 잃은 양을 서둘러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시면서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시간에 대한 긴박함을 품을 것을 권면하셨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십시오”라고 드렸던 우리의 고백이 길 잃은 한 영혼을 향한 긴박한 마음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박철웅 목사 (강남B공동체)
2026-03-21 제1581호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8:2a 개역개정).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를 어떻게 이끄셨는지, 어떻게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고 하셨음을 기억하라”(신 8:2).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2세대에게 전한 마지막 설교다. 그 핵심은 바로 “기억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 광야의 고난과 역경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다. 단순한 과거 회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현재의 삶과 연결해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근거로 삼으라는 영적 메시지다. 나약한 인간은 평안하고 배가 부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는다. 그러므로 “지난 광야의 길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키겠다는 결단을 확인시키는 메시지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광야 길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모든 것이 나의 힘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하는 감사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를 허락하신 첫 번째 목적은 ‘너희를 낮추시고’에 있다. ‘낮춘다’는 말은 고통을 겪게 한다거나 겸손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광야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자리한 의와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처방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이집트와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지만, 광야의 현실 앞에서 끊임없이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은 베푸신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들의 영적 교만을 보시고, 그들을 낮추셔서 오직 당신만 의지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처럼,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광야의 길은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늘의 양식인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게 하는 영적 훈련소였다. 하나님이 광야를 허락하신 두 번째 목적은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고 하신 것’이다. 광야 길의 고난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시험하는 장소였다.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괴롭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연단해서 정금처럼 순수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광야라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환경이 시험이 아니다. 그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는 반응이 바로 시험의 본질이다. 그 시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고, 하나님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 즉, 광야에서의 시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하는 시험대였다. 창립 40주년을 지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 온누리교회의 지난 40년 광야 여정을 다시금 돌아본다. 그 여정은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신 연단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허락하신 은혜의 시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길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고, 감사를 발판 삼아 새롭게 펼쳐질 광야의 여정, 약속의 땅을 향해 순종으로 걸어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걸어가자. / 제치윤 목사(영종온누리교회)
2026-03-07 제1579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3) 사슴이 알려준 제자도의 비밀 나를 따르라(3) 사슴이 알려준 제자도의 비밀 <시편> 42:1~11 / 이재훈 위임목사 <시편> 42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첫걸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 중요한 요소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 갈망은 감정의 영역이지만, 우리의 의지를 움직이고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올바른 지식이 있고, 행하려는 의지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정서가 죽어 있다면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 헐떡이는 것은 몸 전체가 목이 마를 때, 몸 안에 있는 모든 모공이 목말라 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슴은 좀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 짐승인데, 헐떡거리는 소리를 낼 정도라면 얼마나 간절히 목이 마른 상황인지를 보여줍니다(시 42:1). 사슴은 몸 안에 물을 저장할 저장소가 없기에 수시로 수분을 보충해야 합니다. 신앙생활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낙타를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면 물을 저장해서 살고, 일주일에 한 번씩만 물을 마시면 되니까 얼마나 편안하고 경제적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낙타가 아니라 사슴입니다. 사슴은 물에 아주 예민하고 자주 마셔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목마름이 살아있는 신앙과 없는 신앙은 매우 다릅니다. <시편> 기자는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 살아있습니다. 사슴이 알려주는 제자도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의 갈망이 깨어나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발걸음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갈망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종교적 활동에 불과합니다. 선물은 받지만,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갈망은 가지지 않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문제입니다. <시편> 기자가 갈망하는 것은 예배 자체가 아닙니다. 어떤 종교적 활동도 아닙니다. 성전도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목말라 합니다(시 42:2).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시편> 기자는 어떻게 이 깊은 갈망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의 갈망은 편안하고 안락한 자리가 아니라 척박한 광야에서 얻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갈망이 깊어지는 자리는 가장 척박한 광야입니다. 이 <시편> 기자는 실제로도 광야에 있습니다. 더 넓게 표현하면 세 겹의 광야에 있습니다. 세 겹의 광야에서 첫째, '사회적 광야'입니다(시 42:3). 한두 번 사람들에게 조롱받은 게 아닙니다. 종일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비난입니다. “너를 보니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 “당신을 보니 예수님 믿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조롱입니다. “교회를 보니 예수님 믿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게 한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아닐 것입니다. 반대로 최고의 칭찬은 “당신을 보니 하나님을 믿고 싶다”,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살아 계시네”, “교회를 보니 나도 예수님 믿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이 <시편> 기자는 사회적으로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너의 이 불안하고 낙심에 있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 사람은 실제로 '물리적 광야'에 있습니다(시 42:6). 요단 땅, 헤르몬 산, 미살 산은 지금 이스라엘 최북단 시리아 국경 지역입니다. 요단강의 발원지입니다. 미살 산은 아마 헬몬산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어떤 일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이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북쪽 변방으로 피신해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반역했을 때 함께 도피했던 고라 자손 중 한 사람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시편> 42편 4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집을 다니며 명절을 지키러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뻐 외치며 찬양하고,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무너지게 합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할 때 사람들은 무너져 내립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시편> 기자는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더 깊어졌습니다. 만일 그가 예루살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면, 이 <시편>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시편>의 가장 감동적인 고백들의 공통점은 모두 광야에서 쓰였다는 것입니다. 깊은 광야에서, 험한 광야에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고백과 갈망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는 '영적 광야'에 처해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조롱만 받은 게 아니고, 물리적인 광야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침체와도 싸우고 있습니다. <시편> 42편 5절과 11절에 반복되는 문구가 있습니다. “오 내 영혼아,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느냐? 왜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인데, 여기서 ‘풀이 죽어 있다’와 ‘불안해하다’라는 동사를 분석해 보면 아주 흥미롭습니다. 풀이 죽어 있다는 건 의기소침해서 가라앉은 상태이고, 불안해한다는 것은 으르렁거리며 끓어오르는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가라앉고, 한편으로는 끓어오릅니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며, 섬기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르고, 자신의 영혼을 사슴으로 비유하며, 그분을 향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침체의 상태를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표현합니다. 영적 침체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친밀함을 경험했던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이전에 하나님과 깊은 사귐과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단절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매너리즘이 아닙니다. 매너리즘은 갈망이 없는 것입니다. 영적 침체는 갈망이 있기에 괴로운 것입니다. <시편> 42편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광야에 있던 한 영혼,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물리적으로도 광야에 있고, 영적으로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의 갈망이 역설적으로 더 강렬해졌다는 것입니다. 사슴이 헐떡거리며 시냇물을 찾는 것 같이, 강렬하게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갈망을 통과하고 헤쳐 나오는 방법 이 <시편> 기자는 갈망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갈망을 통과하고 어떻게 헤쳐 나오는지를 보여줍니다. 첫째,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침체와 가라앉음 속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을 섬겼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을 예배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찬송 받으셨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은혜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 자기 자신에게 계속 말합니다. 5절을 보면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부릅니다. 여러분, 가만히 삶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말하고,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입니다. 염려의 말, 절망의 말, 두려움의 말, 근심의 말, 비교 의식의 말, 후회의 말이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계속 자기 자신에게 말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태어난 새 사람이 우리의 옛사람을 향해 계속 말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불안해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책망하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옛사람이 끊임없이 말하는 것에 끌려가면 안 됩니다. 셋째, 영혼은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그 갈망을 이어갑니다. “내가 오히려 그분을 찬양하리라”는 말씀에서 ‘오히려’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환경이 다 바뀐 뒤에 감정이 좋아지면 찬송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여전히 광야의 한복판에서 상황은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갈망이 깊이 익어가는 곳은 찬송의 자리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는 그분을 갈망하고, 광야의 한복판에서 그 갈망이 더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조롱을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시편> 42편을 붙잡고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고, 아버지를 갈망하며 살아가셨다면, 우리도 이 <시편> 말씀을 붙잡고 목마른 한 마리의 사슴처럼, 광야 속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고, 찬송하는 자리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삶의 분주함이 그 갈망을 대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갈망 없는 신앙생활은 활동에 불과합니다. 우리 안에 잃어버린 갈망이 깨어나도록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광야 속에서 이 갈망이 더 깊어짐을 감사하십시오. 매일 아침 <시편> 42편 5절 말씀을 여러분의 영혼을 향하여 먼저 말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6-05 제1592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2) 붙어있음, 그것이 곧 열매이다 나를 따르라(2) 붙어있음, 그것이 곧 열매이다 <요한복음> 15:1~8 / 이재훈 위임목사 <요한복음> 15장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진리를 단어의 이미지로 알려 줍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붙어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11절까지 11번이나 반복되는 단어가 “붙어 있으라”, “거하라”, “머물러 있으라”입니다. 헬라어 ‘메노’(meno)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제자도의 본질은 우리가 누구에게 붙어있느냐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포도나무와 가지의 연합된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들어 올리고, 붙잡고, 가지치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역할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다”(요 15:1). 이 말씀 헬라어 원문의 어순을 그대로 옮기면 “나는 포도나무, 그 참된 것이다”입니다. 강한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때로는 영광과 권세를 상징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거대한 황금 포도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진정한 포도나무는 성전의 황금으로 된 화려한 조각물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새로운 포도나무가 세워진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농부이시다”라고 말씀합니다. “내게 붙어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자르실 것이요,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손질하신다”(요 15:2). 농부의 행위를 표현하는 두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첫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자른다’입니다. 둘째, 더 많이 열매 맺도록 가지를 ‘손질하신다’입니다. 첫 번째 동사 ‘자른다’는 헬라어 아이레이(airei)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 잘라 버리신다는 의미로 해석되면 안 됩니다. 아이로(airo)라는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들어 올리다’, ‘높이 들다’라는 뜻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뻗어 나갈수록 점점 무거워져서 땅에 처지게 됩니다. 포도는 땅에 붙어서 성장하는 식물이 아닙니다. 땅에 붙어있으면 햇빛도 받지 못하고, 병충해도 쉽게 맞고, 약하기 때문에 땅에 붙어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땅에 처진 가지를 들어올려야 합니다. 들어 올려서 햇빛도 받고 영양분을 잘 보존하도록 하는 농부의 역할을 설명할 때 이 단어를 씁니다. 무조건 자르는 게 아닙니다. 이 단어의 두 번째 의미는 가지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가지가 불필요하게 자라지 않도록 생장점이 되는 곳을 자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적심’이라고 합니다. ‘아이로’라는 동사 자체가 포도 가지를 들어 올리기도 하고, 더 자라지 않도록 가지를 치는 두 가지 기능을 한 단어에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많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손질하신다’는 것은 ‘가지치기’입니다. 영양분이 불필요한 가지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농부의 역할입니다. 농부는 포도나무가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가지를 끊임없이 돌보고, 그 가지에서 열매가 맺어지도록 끝까지 돌보고 챙기는데 이 모습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정결케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끊임없이 우리를 들어 올리시고, 붙잡아 주시고, 불필요한 영역을 가지를 치십니다. “머물러 있으라” 받아들임과 동역자 <요한복음> 15장 3절 말씀을 보면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과 보혈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미 깨끗해졌습니다. 하지만 더욱 깨끗해지도록 하나님이 가지를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서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연단하시고 아들로 받으신 사람들마다 채찍질하신다”고 했습니다. 연단하시고 채찍질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손길이 바로 포도나무 가지를 섬세하게 붙들고, 때로는 가지를 치시는 농부 되시는 아버지의 사랑 행위입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 말씀은 우리 스스로 예수님께 붙을 수 있는 것처럼 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리스도께 붙은 존재가 되었으니, 붙어있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계속 주장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 “죄에 대해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 산 자로 여기라”고 명령하신 것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머물러 있으라”는 것은 우리 행함 이전에 받아들임입니다. 여러분, 가지의 본분은 포도나무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나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저 받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된 상태를 계속 주장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가지를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나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생명을 흘려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가지에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가 없어도 완전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없어도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그러나 열매 맺으시는 일, 곧 이 세상에 예수님의 생명을 흘려보내는 일은 가지인 우리를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자들은 아닙니다. 그분의 동역자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우리를 내어 드리고,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은 오직 만물을 창조하시며, 만물을 붙드시며, 만물을 그 뜻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평가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한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만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가지가 열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가지는 운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도의 본질입니다. 제자도의 본질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느냐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주 혼동하는 한 가지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사역과 활동을 하지만, 사역과 열매가 다를 수 있습니다. 많은 일을 했지만, 열매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열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나는 그분의 가지로서 연결되어 있는가?”, “그분의 가지로서 붙어있는가?”, “그분의 가지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늘 되새겨야 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붙어있는 게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께 잡혔다”고 말합니다. “그 잡힌 것을 따라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 거하는 것, 그분께 붙어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붙잡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하라, 내 안에 머무르라”는 명령은 무거운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붙잡고 계신 예수님께 우리를 내어 드리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자도의 본질,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의 열매 <요한복음> 15장 6절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말씀은 기도 응답에 대한 놀라운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앞부분에 방점을 두고 읽어야 합니다. “만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이 가장 중요한 기도의 조건,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그분과 연결되면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뜻,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그리스도가 이루시는 것을 구하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 된 자로 포도나무에 연결되고, 예수님 안에 거할 때 기도가 삶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통로가 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제자가 되고 이것으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요 15:8). 제자도의 본질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의 열매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머무르라, 붙어있으라”는 명령은 선물입니다. 우리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다시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포도나무요 나는 그분의 가지입니다”라고 여기고, 말씀 앞에 늘 귀 기울일 때 나타나는 열매가 제자의 삶입니다. 제자의 삶에서 나타나는 고백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입니다. 예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도록 그분께 연결되고, 붙어있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5-29 제1591호
[주일강단] 상한 갈대 위에 드리운 날개 상한 갈대 위에 드리운 날개 <룻기> 2:1~13 / 이재훈 위임목사 가정을 생각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진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정 안에서 때로 불행해 보이는 과정을 통해서 아름다운 결말로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하신 목적으로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괴롭고 힘들어하는 여정을 통해서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시야는 매우 좁아서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는 것은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편안한 삶으로만 인도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한 갈대 같은 나오미의 가정 <룻기>는 절망과 고난에 빠져 있던 ‘나오미’라는 여인의 가정이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에 쓰임 받는 가정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룻기> 1장에 나타난 나오미의 가정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매우 쓴 맛을 보았습니다. 쓰디쓴 하나님의 섭리, 매우 준엄해 보이는 하나님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베들레헴이 고향이었던 이 가정이 모압으로 이주하고,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두 이방 여인을 며느리로 들였지만, 한 명은 돌아가고, 룻만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에게 나오미가 외쳤습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마라. 마라라 부르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고 나를 고통 가운데 두셨기 때문이다.” ‘나오미’란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 ‘마라’는 ‘쓰다’입니다. 쓰디쓴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괴롭게 하셨고, 쓰디쓴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기> 2장에서 하나님의 쓰디쓴 섭리가 달콤한 섭리로 변화됩니다. 어떻게 상처 입고 절망 가운데 있는 가정이 하나님의 소망으로 다시 살아나는지 그 섭리를 보여 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사 42:3). 상한 갈대는 아주 강한 바람에 의해서 한 번 꺾여진 갈대입니다.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없을 것처럼 꺾여진 갈대입니다. 더 강한 바람이 불면 끊어져 버릴 것 같은 갈대입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상한 갈대와 같은 가정이었습니다. “나를 마라라 부르라”는 그 외침은 상한 갈대의 외침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상한 갈대 같은 가정들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깊은 상처와 갈등이 있는 가정입니다.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 있는 상한 갈대 같은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상한 갈대 같은 나오미의 가정에 하나님의 날개가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한 갈대 위에 드리워진 날개 “여호와께서 당신의 행실에 대해 갚아 주실 것이오. 당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보호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당신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룻 2:12). 보아스는 나오미의 가정을 알고 있었고, 모압 여인 며느리 룻을 알고 있었습니다. 룻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룻의 발걸음을 단지 착하고 선한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믿음의 행위’로 해석한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분이 그 갈대 위에 날개를 드리우시는 것입니다. 부러진 갈대를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룻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입니다. 상한 갈대 위에 드리워진 날개가 상처 입은 가정에 소망이 찾아오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움직이고 계신다 오늘 말씀은 이 질문에 대답합니다. “상한 갈대처럼 상처 입은 가정에 어떻게 소망이 찾아오는가?”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할 때 먼저 움직이고 계십니다. <룻기> 2장은 룻이 생계를 위해 이삭을 주우러 나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이삭을 줍는 것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최저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어머니를 위해 자진해서 이삭을 주우러 나갔습니다. 시어머니가 시킨 것도 아닙니다. 룻은 먼저 시어머니에게 허락도 구합니다. 자신이 나오미의 며느리라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어쩌면 어머니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일 수도 있어서 “이삭을 주우러 나가도 될까요?”라고 허락을 구하고 나갔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밖으로 나가 추수하는 사람들을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녀가 일하고 있던 곳은 엘리멜렉의 친척인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룻 2:3). ‘우연히’라는 단어를 씁니다.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녀의 우연이 우연히 일어났다.” 두 번 ‘우연’이라는 단어를 써서 강조합니다. 이렇게 표현한 것은 우연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연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할 때, 우연이 아님을 강조할 때 이런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우연이 겹쳐 있습니다. 첫 번째 우연은 룻이 일꾼을 따라갔는데 보아스의 밭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연은 바로 그날 보아스가 자신의 밭을 방문했다는 것입니다. 부유한 지주였던 보아스는 매일 밭에 나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밭에 나가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우연이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두세 가지 우연처럼 보이는 일이 연이어 겹쳤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일이 두세 번 연이어 일어나거나 동시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완벽하신 섭리임을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이 두 가지 우연은 나오미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이미 일어났습니다. 나오미가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이미 보아스를 준비하고 계셨고, 룻을 준비하고 계셨고, 추수 때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우연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나오미는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상한 갈대 같은 가정에 소망이 찾아오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절망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이미 움직이고 계십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할 때에도 일하고 계신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심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가정이 나오미처럼 절망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먼저 움직이고 계심을 믿음으로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이미 소망의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절망의 가정에 기대 이상의 넘치는 은혜를 둘째, 하나님이 절망의 가정에 기대 이상의 넘치는 은혜를 보내십니다. 보아스가 밭에 도착해일꾼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라고 인사합니다. 그랬더니 일꾼들도 “여호와께서 주인 어르신께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때는 사사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주인과 일꾼들이 이렇게 인사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경건한 가정이 룻의 일터에도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보아스가 룻을 발견합니다. 종일 열심히 일하는 룻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룻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다섯 가지 은혜가 룻에게 베풀어집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자신의 밭에 계속 있으라”고 말합니다. 다른 남자 일꾼들에게 “룻을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음껏 마시라”고 하고, 식사에 초대해서 베풀기도 합니다. 마지막이 은혜롭습니다. 원래 이삭은 떨어진 것만 주울 수 있는 것이 율법인데,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부러 이삭을 빼서 떨어뜨려라. 주울 수 있게.” 룻의 자존심을 지켜 주면서도 넘치도록 채워 주는 섬세한 이 마음은 법과 의무를 초월하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보아스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그의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요, 자신이 가진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룻의 헌신을 단순한 효성이나 미덕으로만 해석한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는 룻의 행동을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날개’는 <시편> 기자들의 깊은 신앙 고백이 담겨 있는 단어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신뢰하오니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난이 지나갈 때까지 피할 것입니다” (시 57:1). “하나님께서 너를 그 깃털로 감싸 주시니 네가 그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며 그 진리가 네 방패와 성벽이 되리라”(시 91:4). <시편> 곳곳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 은혜를 사모할 때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기를 기도했던 언어로 룻의 삶을 해석한 것입니다. 모압에서 빈손으로 베들레헴으로 따라온 이방 여인의 발걸음,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던 룻의 고백이 바로 여호와의 날개 아래 피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날개가 되는 사람과 사역 <룻기> 3장에 가면 이 ‘날개’라는 단어가 보아스의 옷자락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카나프’라는 단어가 3장 9절 “당신의 옷자락으로 저를 덮어 주십시오”라고 룻이 보아스에게 간청할 때 쓰였습니다. 2장 12절에서 ‘여호와의 날개’라고 했던 ‘날개’라는 단어가 ‘옷자락’이라는 단어로 쓰인 것입니다. 직역하면 “당신의 날개로 저를 덮어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날개가 없으니 옷자락이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단어를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룻을 위해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받으러 온 네게 하나님께서 상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기도했던 보아스가 자신이 하나님의 날개가 된것입니다. 기도한 사람이 기도의 응답이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개를 위해 기도한 보아스가 스스로 하나님의 날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상한 갈대와 같은 가정에 날개를 펴 주실 때 기도하는 사람이 그 가정의 날개가 되도록 하십니다.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그 가정을 구원하는 여호와의 날개가 되게 하십니다. 보아스가 바로 그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날개가 되는 사역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이홈 사역’은 매우 귀합니다. 버림받은 한 생명을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해 위탁 가정이 되고, 입양 가정이 되는 하나님의 날개입니다. 마음으로 낳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날개가 되는 가정입니다. 제이홈 사역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룻을 위해 기도해 주다가 자신이 룻의 응답이 된 보아스처럼, 우리 모두 가족과 자녀를 위해 기도하다가 하나님 날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당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재산을 사 줌으로써 생계를 이어가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그걸 위해서는 룻을 아내로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그 시대는 고엘, ‘기업을 무른다’, 영어로는 ‘리디머’, ‘구속자’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보아스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 가리키고 있는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보아스와 룻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나는 다윗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진정한 구속자이심을, 절망 가운데 있는 모든 가정에 소망을 주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눈이 열릴 때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보인다 셋째, 믿음의 눈이 열릴 때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보입니다. 룻이 일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돌아가 모은 이삭을 가져다 드렸고, 자신이 일한 밭 주인의 이름이 보아스라고 말했을 때 나오미가 말합니다.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바란다! 그가 죽은 우리 식구들에게 친절을 베풀더니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그칠 줄 모르는구나.’ 그리고 이어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가까운 친척이니 우리를 맡아 줄 사람 가운데 하나다’”(룻 2:20). 나오미는 보아스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이며,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사람인 것을 알았지만, 보아스가 희생하고 헌신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감히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잊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나오미가 믿음의 눈을 열게 되었고, 소망을 품게 되었고, 방향을 잡게 되었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보아스를 이미 알았지만 보지 못했듯이, 하나님이 준비해 놓고 계신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절망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소망의 길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 가운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 속담 뒤에 있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모두 무너진 것 같은 상황에도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가정에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구속자가 되었듯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나오미와 룻의 가정을 구속하고 은혜를 베풀었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값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위해 하나님의 날개를 구하다가 자신이 날개가 되었듯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가 하나님의 날개가 되셨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자녀를 위한 하나님의 날개 그늘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날개 그늘을 경험할 때, 또 다른 누군가의 하나님 날개로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가정은 결코 우리 스스로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도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날개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평강을 누리는 가정이 됨을 감사하고, 절망스러운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가정되기를 바랍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하나님의 날개를 경험한 것처럼, 상한 갈대 같은 모든 가정에게 여호와의 날개 그늘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5-15 제1589호
[주일강단]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족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족 <마가복음> 3:31~35 / 이재훈 위임목사 오늘 본문에서 매우 당혹스러운 장면을 만납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찾아왔는데, 매우 냉정하게 거절하시는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가르치신 분이 정작 자신의 가족에게 왜 이렇게 차갑게 반응하시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속에는 매우 중요한 교훈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 말씀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결코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영적인 가족’이라는 더 중요하고, 더 깊은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의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앞의 문맥을 살펴야 합니다. <마가복음> 3장은 세 부분이 샌드위치처럼 맞물려 있습니다. 20절과 21절을 보면 가족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출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2절부터 30절까지는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비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31절부터 35절이 예수님의 가족이 도착해서 부르는 장면입니다. “예수의 가족들은 ‘예수가 미쳤다’라는 소문을 듣고서 예수를 붙잡으러 찾아다녔습니다”(마 3:21). ‘붙잡으러’라는 표현은 단순한 방문이 아닙니다. 강제로 데려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조차 올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구약의 율법을 잘 알았던, 누구보다 먼저 메시아 오심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에 힘입어 일하는 ‘사단의 종’이라고 매도하고 비방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가족들의 인간적인 사랑에 떠밀려 사역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반문은 가족에 대한 차가움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뜨거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맏아들입니다. 맏아들이 종교 지도자들과 대립하는 관계에 있고, 서기관들이 귀신 들린 자처럼 취급하고, “미쳤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충돌하는 것을 막아보려고 가족과 함께 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상황에서 단호하셨고, 가족의 만류를 거절하셨습니다. 가족을 ‘하나님의 자리’ 아래에 두고자 하셨다 예수님 말씀의 의미는 가족을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족을 상대화하신 것입니다. 가족을 절대적인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고, 그보다 절대적인 자리인 하나님 자리 아래에 두고자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서 ‘미워하다’라는 단어는 절대적으로 비교할 때 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너무 커서 가족을 향한 사랑조차 그 앞에서는 미움처럼 보일 정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절대적인 수준으로 올리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그것이 우상이 되며,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가족이 하나님보다 중요한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은 절대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의 우선순위가 바르게 놓일 때만 온전한 사랑이 됩니다. 가족을 우상으로 만들면 무너지게 되고, 가족을 하나님 아래 둘 때 비로소 살아납니다. 영원한 가족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그러고는 곁에 둘러서 있는 그들을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마 3:33~35). 여기서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시고’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중요한 말씀들을 하실 때 항상 이 행동을 하셨습니다. 의도적인 시선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시며 “보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가족 선언입니다. 혈연이 아닌 사람들을 가리켜 ‘내 가족’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혈통이나 출신, 신분이나 나이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오직 하나의 표지만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들입니다. 참된 영적 가족 관계는 같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서 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실제 역사에서 많은 사람의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주후 3세기 북아프리카에서 순교한 젊은 귀족 여인 ‘페르페투아’를 기억합니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젊은 귀족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녀에게 아버지가 울면서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감옥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는 예수님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처형되었습니다. 누가 이 여인을 어리석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디트리히 본회퍼가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아내나 자녀, 국가나 어떤 전통 중에서도 하나님 부르심의 순간에 그 사람을 막을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시선을 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손양원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정양순 사모님이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남편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종입니다. 만약 당신이 주님을 배반하고 집에 돌아오는 것,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감옥에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냉정해 보이는 말씀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공동체가 진정한 가족이라는 영적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육신의 가족을 대하셨을 때와 동일한 태도였습니다. 가족의 표지가 핏줄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는 관계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만이 가족의 권한을 갖고 계시며, 그분이 우리를 가족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영원한 가족은 생물학적 가족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입니다. 이 땅에서 혈육은 한시적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 너머의 가족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며, 혈연의 가족을 더 깊이, 더 온전히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족,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공동체 예수님이 가족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정의하시는 것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족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창세기> 1, 2장을 보면 하나님이 가족을 만드신 뒤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가족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기초 단위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가족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관계입니다. 사적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작은 세포로 창조된 것입니다.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살아계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루는 단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작은 세포와 같은 관계입니다. 가족의 친밀함은 같은 식탁을 나누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데서 옵니다. <마가복음> 3장 35절 말씀은 가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가족을 돌아봅니다. 우리 가족은 무엇을 중심으로 모입니까? 식탁을 중심으로 모입니까? 돈을 중심으로 모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입니까? 혹시 가족을 우상으로 여기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교회 형제자매를 진정한 가족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동료처럼 여기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을 함께 행하는 가족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냉정해 보이는 이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면 얼마나 따뜻한지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의 범위를 넓혀주셨기 때문입니다. 혈육만으로는 외로운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함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족들을 만나 외롭지 않게 됩니다. 성경은 가족 없는 자리에 서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 주십니다. 같은 하나님으로, 같은 십자가로 우리를 만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자매로 불러주셨습니다(히 2:11~12). 예수님이 맏형이 되어 주시고, 맏아들이신 분이 우리를 형제로 받아 주셨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로 불러주셨습니다. 그 증명서가 십자가입니다. 그분이 흘리신 피로 우리가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함께 행하는 자리에 설 때, 예수님의 형제자매가 되고, 가족이 됩니다.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호칭입니다. 우리 가족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공동체가 되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족이 되는 영적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5-08 제1588호
[News] "선교는 교회의 심장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심장입니다!” 2026 온누리 IN2 콘퍼런스 5월 24일까지 비서구권 교회지도자, 목회자 및 선교 리더십 참석 2026 온누리 IN2 콘퍼런스가 ‘선 교는 교회의 심장입니다’를 주제로 Acts29비전빌리지 김사무엘홀에서 지난 5월 19일(화)부터 5월 24일(일) 까지 이어진다. 온누리교회 선교 비 전과 사역 노하우 등을 비서구권 교 회지도자들에게 전수할 예정이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비서구권 교회 지도자를 비롯해 온누리교회 목회 자 및 선교사역팀 리더십, 봉사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2026 온누리 IN2 콘퍼런스에서는 설교와 강의, 소그룹 토의, 1인극 공 연, 순예배 시연, 선택 강의 등의 프 로그램이 이어지고 있다. 강의는 이 재훈 위임목사, 박종길 목사(서빙고 온누리교회 담당), 이기원 목사(회 복사역본부장), 김홍주 목사(2000선 교본부장), 함태경 본부장(CGN), 최 성완 장로(두란노아버지학교 이사 장) 등 온누리교회 목회자와 선교사 역자 20여 명이 한다. 이재훈 위임목사는 ‘Movement 인가? Monument인가?’(막 2:18~2 2)를 주제로 강의했다. 이 목사는 “ 교회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 우는 몸 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면 서 “선교가 교회의 심장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각 교회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동적인 원동력이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토니 리스턴 목사(Tony Liston, Hki 총회장)는 “예수님이 맡기신 사 명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어떤 역할 을 감당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배 울 수 있었다”면서 “이번 콘퍼런스 에서 전수받은 내용을 교회와 성도 들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면서 선교 적 사명을 이루는 일에 끝까지 힘쓰 겠다”고 다짐했다. 온누리 IN2 콘퍼런스는 비서구권 교회 지도자들에게 온누리교회의 선교 비전과 사역을 소개하는 프로 그램이다. 2012년 ‘비타민C’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지난해 ‘온누리 IN2 콘퍼런스’로 명칭을 바꿨다. 현 재까지 비서구권 14개 국가 교회지 도자 2천 명이 참석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여성기도부흥운동 마리아행전‘왕의 기도’ 6월 10~12일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여성기도부흥운동 ‘마리아행전’이 오는 6월 10 일(수)부터 12일(금)까지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열린다. 올 해 마리아행전 주제는 ‘왕의 기도’(요 17:1)다. 3일 동안 매일 오전 10 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집회가 이어진다. 2026 마리아행전 ‘왕의 기도’에서는 10일 이재훈 위임목사 ‘자신을 위한 왕의 기도’, 11일 정명호 목사(혜성교회) ‘교회를 위한 왕의 기도 ’ , 12일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원로목사) ‘세상을 위한 왕의 기도’ 를 주제로 말씀을 전한다.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 성도들은 6월 10일(수)과 11일(목) 양재 사 랑홀, 나머지 캠퍼스 성도들은 각 캠퍼스 본당에서 모인다. 12일(금)에 는 모든 캠퍼스 성도들이 양재온누리교회에서 모여 연합기도회를 한 다. 10일과 11일은 양재온누리교회 집회실황을 각 캠퍼스로 송출하고, 유튜브로는 송출하지 않는다. 참가를 원하는 성도들은 5월 24일(일)과 31일(일) 주일예배와 수요오 전여성예배 이후 각 캠퍼스 로비에 설치되는 접수데스크나 목회행정 실에서 신청하면 된다. 회비는 2만 원. 선착순 모집한다. 온라인 및 전 화 신청은 받지 않는다. 문의: 02-3215-3667(서빙고), 02-570-7277(양재) 각 캠퍼스 목회행정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크리스천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세미나, 성도∙상담사역자 등 356명 참석 2026 정신건강세미나가 지난 5월 19일(화)부터 21일(목)까지 서빙고 온누리교회 비전홀에서 열렸다. 불 안을 해결하고 싶은 성도, 그들을 돕고 싶은 성도 및 리더십, 교역자 등 356명이 참석했다. 2026 정신건강세미나에서는 정신, 정서, 통합을 주제로 강의가 이어졌다. 권수영 교수, 김성진 진료부장, 이헌주 교수, 채정 호 교수, 장석연 원장, 채규만 교수, 최용일 장로, 정주호 대표, 유현주 교수, 남윤영 박사, 안해용 목사, 이 기원 목사가 강의했다. 전순분 권사(한마음정신회복예 배)는 “이번 세미나는 큰 위로와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며 “앞 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치유를 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고 다짐했다. / 홍하영 기자 ‘기차는 행복을 싣고’ 전도사역본부, 청풍리조트로 부모맞춤전도여행 전도사역본부에서 드디어 내일(5 월 25일)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리조 트로 ‘부모맞춤전도여행’을 떠난 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기차는 행 복을 싣고’다. 65세 이상 믿지 않는 부모님과 함께 기차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시간이다. 가족의 소 중함을 다시 돌아보고 마음을 나누 기 위해 마련됐다. 기차 안에서는 가족 레크리에이 션, ‘고∙미∙사(고마웠던 것, 미안했 던 것, 사랑한다는 고백)’ 포스트잇 편지쓰기, 가족사진 찍기, 가족 사연 방송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포스트잇 편지와 가족사진은 청풍 리조트에 전시하고, 기차 방송실을 이용해서 신청곡과 사연도 소개할 예정이다. 청풍리조트 연회장에서는 식사와 콘서트, 여성민 목사의 메시지, 결신 카드 작성, 산책 등을 한다. 가수 이 무송 집사가 사회를 보고, 가스펠싱 어 지미선, 하모니카 연주자 최상미 등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세례식은 청풍리조트와 귀갓길 기차에서 한 다. 특히 출발 전부터 세례 신청자 28명이 접수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1,100여 명 약정 지난 5월 16일(토)과 17일(일) 국 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열 린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약정 행사에 성도 1,100여 명이 참여했다. 약정 금액은 집계 중이다.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약정 행사에서는 주일예배 특순, 홍보부 스 및 포토부스 운영, 사진전 등을 했다. 김광동 장로(NGO 더멋진세 상 대표)는 “NGO 더멋진세상과 함 께 더 멋진 세상을 만드는 더멋진가 족이 되어주신 성도들께 감사하다” 면서 “성도님들이 보내주신 사랑과 관심을 열방에 생명의 물로 흘려보 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NGO 더 멋진세상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남양주온누리교회에서는 5월 24 일(일)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약정행사를 한다. 문의: 02-2271-2246
2026-05-23 제1590호
[News] 더멋진가족, 생명의 물이 되다! 5월 16~17일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약정행사’ 작정서 작성 및 홈페이지, QR코드, 전화로 신청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약정행사가 ‘더 멋진가족, 생명의 물이 되다’를 주제로 5월 16 일(토)과 17일(일) 열린다. 이날 온누리교회 모 든 예배에서 나눠주는 정기후원 약정서를 작 성해서 제출하거나 NGO 더멋진세상 홈페이 지에서 참여하면 된다. QR코드 또는 전화(02-2271-2246)로도 신청할 수 있다.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약정행사에서는 주일예배 특순, 홍보부스 및 포토부스 운영, 사진전 등을 한다. ‘더멋진챔버’가 특순하고, 홍보부스에서는 NGO 더멋진세상 소개, 후원 약정서 작성, 이벤트 등을 한다. 포토부스는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에 설치되고, 사진 전은 5월 8일(금)부터 17일(일)까지 양재온누 리교회 원형홀에서 열린다. NGO 더멋진세상은 2010년 설립된 국제개 발 NGO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전 세 계 23개국에서 지역개발, 긴급구호, 난민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외 사업 에 약 59억 원을 집행했다. KOICA, GGGI 등 기관협력 사업까지 합하면 117억 원 규모의 사업을 운영했다. NGO 더멋진세상의 핵심 사업은 ‘더멋진마 을 조성사업’이다. 지난해 아프리카 5개국, 아 시아 4개국, 아메리카 3개국에서 식수, 보건, 교육, 농축업, 주거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해 마을 주민들 스스로 자립하도록 도왔다. 르완 다에서는 영양결핍 아동과 취약 여성 가정 258명을 대상으로 ‘자립역량강화사업’을 했고, 남수단에서는 우물 설치와 수리를 통해 약 5,700명에게 깨끗한 식수를 공급했다. 인도적 지원 사업도 이어졌다. 사이클론 피 해를 입은 스리랑카의 약 1,185가정(4,639명) 을 대상으로 긴급구호를 했고, 우간다 남수단 난민 정착촌 약 6만 명에게 식수, 의료, 양계 훈련 등의 지원을 했다. KOICA, GGGI, UND P 등과 ‘르완다 빈곤 여성 자립역량강화사업 (20억 원)’, ‘세네갈 지속 가능 농 업 기반 구축사업(16억8천만 원) ’ 등 기관협력사업도 수행했다< 관련기사 5면>. 문의: 02-2271-2246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크리스천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5월 19~21일 ‘2026 정신건강 세미나’ 2026 정신건강 세미나 ‘크리스천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불안과 우울에 대한 통합적 치 료와 돌봄’ 참가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신청 을 서둘러야겠다. 하단QR코드로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5만 원(식사, 간식비 및 교재 비 포함). 현장 신청도 가능하다. 2026 정신건강 세미나는 5월 19일(화)부터 21일(목)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에서 열린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우울과 불안에 대한 실제적인 강의가 이어진다. 이기원 목사 (회복사역본부장)는 “많은 성도 들이 참석해서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의: 02-3215-3532 / 남현영 기자 여성기도부흥운동 마리아행전 ‘왕의 기도’ 6월 10~12일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여성기도부흥운동 ‘ 마리아행전’이 ‘왕의 기도’를 주제로 오는 6월 10일(수)부터 12일(금)까지 국내 온누 리교회 13개 캠퍼스에서 막 오른다. 3일 동 안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집회 가 이어진다. 6월 10일(수)과 11일(목) 서빙고, 양재온누 리교회 성도들은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 나머지 캠퍼스 성도들은 각 캠퍼스 본당에 서 모인다. 마지막 날인 12일(금)에는 양재 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연합기도회를 한 다. 10일과 11일은 양재온누리교회 집회 실 황을 각 캠퍼스로 송출한다. 유튜브로는 송 출되지 않는다. 마리아행전 ‘왕의 기도’에 서는 10일 이재훈 위임목사 ‘자신을 위한 왕의 기도’, 11일 정명호 목사(혜성교회) ‘ 교회를 위한 왕의 기도’, 12일 유기성 목사 (선한목자교회 원로목사) ‘세상을 위한 왕 의 기도’를 주제로 말씀을 전한다. 참가를 원하는 성도들은 5월 16일(토)과 17일(일) 주일예배와 수요오전여성예배 후 각 캠퍼스 로비에 설치되는 접수 데스크나 목회행정실에서 신청하면 된다. 문의: 02-3215-3667(서빙고), 02-570 7277(양재), 각 캠퍼스 목회행정실 / 홍하영 기자 2026 한국 교회 학부모 기도회 5월 20일 오전 10시 30분 영락교회 본당 다음세대와 교육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 2026 한국 교회 학부모 기도회’가 오는 5월 20일(수) 오전 10시 30분 영락교회 본당에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눅 23:38)를 주제로 열린다. 2026 한국 교회 학부모 기도회에서는 이재훈 위임목사, 한기채 목사, 김운성 목사, 김은호 목 사, 박상진 교수, 함승수 교수가 강의한다. 같은 날 오후 12시 50분 영락교회 50주년 기 념관 5층에서는 결과 발표 및 기자간담회가 열린다. < 한국 교회 성도 유권자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 정이다. 문의: 02-3675-3927
2026-05-16 제1589호
[News] 기차는 행복을 싣고 ‘기차는 행복을 싣고’ 전도사역본부 청풍리조트로 부모맞춤전도여행 5월 25일 오전 9시 서울역 출발 … QR코드로 참가신청 전도사역본부에서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리조트로 ‘부모맞춤전도여행’을 떠난다. ‘기차는 행복을 싣고’를 주제로 5월 25일(월) 오전 9시 서울역에서 출발한다. 기차 안에서는 레크리에이션, 포스트잇 편지 쓰기, 가족사진 찍기, 가족 사연 방송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포스트잇 편지와 가족사진을 청풍리조트에 전시하고, 기차 방송실을 이용해서 신청곡과 사연도 소개할 예정이다. 청풍리조트 연회장에서는 식사와 콘서트, 여성민 목사의 메시지, 결신 카드 작성, 산책 등을 한다. 가수 이무송 집사와 가스펠싱어 지미선, 하모니카 연주자 최상미 등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세례식은 청풍리조트와 귀갓길 기차에서 한다. 60세 이상 부모님과 함께 기차 타고 전도 여행을 떠날 성도들은 하단 QR코드로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1인당 5만 원. 여성민 목사(전도사역본부장)는 “그동안 많은 부모님이 부모맞춤전도여행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 받았다”면서 “부모님께 복음을 전하고 싶은 성도들은 이번 기차여행에 꼭 함께해 달라”고 초청했다. 강희창 팀장(전도사역본부)은 “이번 부모맞춤전도여행이 기차 소리 ‘칙칙폭폭’이 ‘축축복복’으로 들리게 되는 행복한 추억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문의: 02-3215-3214 /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5월 9~10일 온누리 가정주일 가정의 달 행사 및 가정예배 캠페인 실시 5월 9일(토)과 10일(일)은 ‘가정주일’이다. 온누리교회는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가정주일’로 지킨다. 국내 온누리교회 13개 캠퍼스에서 가정의 달 행사를 개최한다. ‘가정’을 주제로 설교하고, 예배에 참석한 70세 이상 성도들에게는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국내 온누리교회 로비, 주차장, 서빙고 이천만광장 등에 포토존을 설치해서 가족사진을 찍는 이벤트를 한다. 온누리교회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홍보 부스도 설치한다. ‘최고의 가족 사랑은 가정예배의 실천입니다’를 주제로 가정예배 캠페인도 한다. 가정예배 가이드도 제공한다. 일상 가정예배, 대화식 가정예배, 전통 가정예배 등 세 가지 가정예배 형식 소개가 담겨 있다. 가정예배를 실천하는 성도들의 간증도 볼 수 있다. 한편, 5월 10일(일)에는 차세대 야외행사가 열린다. 이날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 도곡교육관에서 바이킹, 에어바운스, 슬라이드 등 놀이시설을 운영한다. CGN에서도 ‘차세대 이벤트’를 한다. 서빙고에서는 사진 촬영 및 액자 제작, 양재에서는 추억의 선물 뽑기를 한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더멋진가족, 생명의 물이 되다 5월 16~17일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약정행사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약정행사가 5월 16일(토)과 17일(일) ‘더멋진가족, 생명의 물이 되다’를 주제로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열린다. 이날 온누리교회 예배에서 나눠주는 정기후원 약정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거나 NGO 더멋진세상 홈페이지(abetterworld.or.kr)에서 참여할 수 있다. NGO 더멋진세상 정기후원 약정행사에서는 주일예배 특순, 홍보부스 및 포토부스 운영, 사진전 등을 한다. ‘더멋진챔버’가 특순하고, 홍보부스에서는 NGO 더멋진세상 소개, 후원 약정서 작성, 이벤트 등을 한다. 포토부스는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에 설치되고, 사진전은 5월 8일(금)부터 17일(일)까지 양재온누리교회 원형홀에서 열린다. 문의: 02-2271-2246 / 홍하영 기자 2026 한국 교회 학부모 기도회 5월 20일 오전 10시 30분 영락교회 본당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이하 사학미션)가 다음 세대와 교육 회복을 위한 ‘2026 한국 교회 학부모 기도회’를 개최한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눅 23:38)를 주제로 5월 20일(수) 오전 10시 30분 영락교회 본당에서 열린다. 한국 교회의 신앙 유산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와 이 땅의 교육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자리다. 이날 기도회에는 이재훈 위임목사(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 이사장),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김운성 목사(영락교회),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박상진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함승수 교수(명지대학교)가 강사로 참여한다.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가 주최하고,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명지대학교 교육미션센터, 한국기독교학교연합회가 공동 주관한다. ‘2026 한국 교회 학부모 기도회’ 2부에서는 ‘<한국 교회 성도 유권자 인식 조사> 결과 발표 및 기자간담회’가 열린다. 오후 12시 50분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 5층에서 진행된다. 함승수 교수(명지대학교)가 <한국 교회 성도 유권자 인식 조사>, 박상진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가 <전국 시도 교육감 후보 정책 분석>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학원선교 및 교육부 교역자, 기독 학부모 등 관심 있는 성도들은 참석할 수 있다. 문의: 02-3675-3927(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 ‘2026 정신건강 세미나’ 5월 19~21일 오전 10시 서빙고 비전홀 2026 정신건강 세미나 ‘크리스천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불안과 우울에 대한 통합적 치료와 돌봄’이 5월 19일(화)부터 21일(목)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 비전홀에서 열린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된다. 참가신청은 5월 10일(일)까지 하단 QR코드로 하면 된다. 참가비는 5만 원(식사, 간식비 및 교재비 포함). 참석자는 전문상담사 자격 취득에 필요한 공개사례발표회 참석 1회를 인정받을 수 있다. 2026 정신건강 세미나에서는 ‘정신’, ‘정서’, ‘통합’을 중점으로 강의가 이어진다. 1일차 ‘불안은 죄가 아닙니다: 몸과 신경계로 이해하는 신앙의 회복’, ‘불안의 스펙트럼 치유: 영성챙김을 중심으로’ 등을 주제로 권수영 교수(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 채정호 교수(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등이 강의한다. 2일차 ‘애착과 불안: 안정애착으로의 여정’, ‘우울과 자살의 경계에서 만나는 하나님’ 등을 주제로 유현주 교수(Soh 심리영성센터 소장), 안해용 목사(목회자마음돌봄센터 센터장) 등이 강의한다. 3일차 ‘몸은 마음의 다른 이름입니다’, ‘기독교인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불안에 대한 통합적 치료와 돌봄’ 등을 주제로 정주호 대표(한동대학교 글로벌 리더십학부 겸임교수), 이기원 목사(회복사역본부장) 등이 강의한다. 한편, 책 <크리스천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두란노)가 5월 15일 출간된다. 이 책에서는 불안에 대해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성경적으로 통찰을 한다. 고통 속에 있는 성도들이 신앙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돌봐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문의: 02-3215-3532 / 남현영 기자
2026-05-09 제1588호
[News] 가정,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선물! 가정,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선물! 5월 3일 차세대주일, 5월 9~10일 가정주일 5월 9일과 10일, 온누리교회 가정의 달 행사 온누리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선물 ‘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특별한 시간을 마 련했다. 5월 3일 차세대주일, 9~10일 가정주 일로 지킨다. 9일과 10일에는 국내 13개 온누 리교회에서 가정의 달 행사를 개최한다. 5월 첫째 주(2~3일)와 둘째 주(9~10일) 주일예배 에서는 ‘가정’을 주제로 설교한다. 5월 3일(일)은 ‘차세대주일’이다. 야외행사 는 우천 예보로 인해 5월 10일(일)에 한다. 이날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 도곡교육관에 서 바이킹, 에어바운스, 슬라이드 등 차세대를 위한 놀이시설을 운영한다. CGN에서도 ‘차 세대주일 이벤트’를 한다. 서빙고에 촬영부스 를 설치해서 사진을 촬영하고, 액자를 제작해 선물로 제공한다. 양재에서는 추억의 선물 뽑 기 이벤트를 한다. 5월 9일(토)과 10일(일)은 ‘가정주일’이다. 온누리교회는 매년 5월 둘째 주 주일을 ‘가정 주일’로 지킨다. 이날 예배에 참석하는 70세 이상 성도들에게는 카네이션을 달아 준다. 국 내 온누리교회 캠퍼스에서 ‘온누리교회 가정 의 달 행사’도 개최한다. 교회 로비, 주차장, 서빙고온누리교회 이천만광장 등에는 포토존을 설치해서 가족사진을 찍는 이벤트를 한다. 각 캠퍼스 로비에는 온누리교회 가정사역 프 로그램을 소개하는 홍보 부스도 설치한다. 또한 가정예배 캠페인도 한다. ‘최고의 가족 사랑은 가정예배의 실천입니다’를 주제로 가 정예배 가이드를 제공한다. 가정예배 가이드 에는 세 가지 가정예배 형식(일상 가정예배, 대화식 가정예배, 전통 가정예배) 소개와 가정 예배를 실천하는 성도들의 간증 등이 담겨있 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크리스천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5월 19~21일 ‘2026 정신건강 세미나’ 2026 정신건강 세미나 ‘크리스천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불안과 우울에 대한 통합적 치 료와 돌봄’이 5월 19일(화)부터 21일(목)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에서 열린다. 오전 10시부 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된다. 참가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5월 10일(일)까 지 하단 QR코드로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5만 원(식사, 간식비 및 교재비 포함). 참석자는 전문상담사 자격 취득에 필요한 공개사례 발표회 참석 1회를 인정받을 수 있다. 2026 정신건강 세미나에서는 ‘정신’, ‘정서 ’, ‘통합’을 주제로 강의가 이어진다. 채규만 교수(한국 및 미국 임상 심리전문가), 김성진 진료부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권수영 교 수(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 채정호 교수(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주 교수(연세대학교 미래융합연구원), 장 석연 원장(그로웨이브 심리상담센터), 유현주 교수(Soh 심리영성센터 소장), 안해용 목사 (목회자마음돌봄센터 센터장), 남윤영 박사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 최용일 장로 (청담경희한의원, 청담경희한방연구소 원장), 정주호 대표(한동대학교 글로벌 리더십학부 겸임교수), 이기원 목사(회복사역본부장)가 강의한다. 한편, 책 (두란노)가 오는 5월 15일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은 불안에 대해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성경적으로 다각적인 통찰을 하며, 고통 속에 있는 성도들이 신앙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어 떻게 이해하고 돌봐야 하는지 구 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문의: 02-3215-3532 부모맞춤전도여행 ‘기차는 행복을 싣고’ 5월 25일 오전 9시 서울역 출발 전도사역본부에서 ‘부모맞춤전도여행’ 을 떠난다. ‘기차는 행복을 싣고’를 주제로 충북 제천시 청풍리조트를 간다. 5월 25일 (월) 오전 9시 서울역에서 출발한다. 기차 안에서는 레크리에이션, 포스트잇 편지 쓰 기, 가족사진 찍기, 가족 사연 방송 등의 순 서가 이어진다. 포스트잇 편지와 가족사진 을 청풍리조트에 전시할 예정이다. 청풍리 조트에서는 식사, 콘서트, 여성민 목사의 메 시지, 결신 카드 작성, 산책 등을 한다. 가수 이무송, 가스펠싱어 지미선, 하모니카 연주 자 최상미 등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세례식 은 청풍리조트와 귀갓길 기차에서 한다. 60세 이상 부모님과 함께 기차를 타고 전도 여행을 떠날 성도들은 하단 QR코드로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1인당 5만 원. 문의: 02-3215-3214 /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5월 2~3일 ‘대중교통 이용의 날’ 지정 차량만 교회주차장 이용 대중교통 이용의 날 캠페인이 5월 3일(일) 오후 6시까지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에서 이어진다. 이 기간 교회주차장 이용이 제한된다. 교회주차장은 거동이 불편한 성도 와 주차카드 발급 차량 중에서 75세 이상 어 르신, 장애인, 임산부, 36개월 이하 동반 자녀 가 있는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다. 다자녀(3명 이상) 가정의 차량은 주차장 입구에서 확인한 다음 입차할 수 있다. 5월 3일(일)에만 교회를 오가는 셔틀을 운행한다. 영종온누리교회 창립 3주년 감사예배 5월 2~3일 모든주일예배 영종온누리교회 창립 3주년이다. 5월 2일 (토)과 3일(일) 모든 주일예배를 감사예배로 드린다. 도육환 목사(영종온누리교회 담당)가 말씀을 전한다. 5월 3일(일) 오후 12시에는 차 세대와 지역 주민을 위한 ‘제2회 말우물어린 이축제’를 개최한다. 도육환 목사는 “영종온누리교회가 선교 구 조선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란다”며 “배에 승선한 모든 성도가 각자의 은사와 달란트로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승조원으로 세 워지기를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영종온누리교회는 2023년 5월 7일 ‘하늘을 향한 새로운 항해’를 비전으로 내걸고 국내 11번째 캠퍼스로 창립했다
2026-05-02 제1587호
[장애인주일 특집]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인사역본부 부모와 교사들의 솔직담백한 고백 장애인사역본부 공동체 부모와 교사들 을 만났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고 담백 한 고백을 들었다. 누군가는 자녀가 처 음 장애 진단을 받던 날 병원 계단을 기 억했고, 누군가는 장애인 자녀가 그린 작품을 전시한 날의 기쁨을 고백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장애인과 함께 걷는 길에서 경험한 감동을 노래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려고 목적지에 맞게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탔는데, 착륙지는 이탈리아가 아닌 알래스카의 어느 공항이었다.” 장애인 자녀를 맞이하는 부모의 당혹감을 표현한 이 문장이 낯선 비유처럼 들리지만, 그것을 몸으로 겪어낸 이들에게는 가장 정확한 고백이다. 오랜 시간 ‘장애’라는 칼바람이 부는 북극에서 사는 방법을 익혀온 이들의 솔직 담백한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원망도, 불평도 어려웠던 그 시간 자녀의 장애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이선아 성도(부천온누리교회)는 아들 윤후(부천 사랑부)의 장애 검사 결과지를 받던 20여 년 전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또래보다 발달 속도 등이 범주를 벗어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도, 막상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병원 계단에서 통곡하고 말았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7살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료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이후 희귀 난치 질환 진단과 수술, 뇌전증 대발작, 척추측만증 교정 수술까지 더 큰 난관들이 찾아왔다. 그 모든 시간을 버티면서도 원망도, 불평도 편하게 뱉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해진다는 말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남편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게 보였고, 저는 계속 울부짖으며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하시네요’라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이 죄가 되어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봐 애써 머리를 흔들며 애꿎은 기도 시간만 늘렸습니다.” 이지영 자매(강동 사랑부)의 어머니 오금옥 성도(강동온누리교회)도 딸의 장애 진단 앞에 무너져 내렸다. 이지영 자매가 4살 될 무렵, “자폐증입니다. 혼자 살아가기 힘들 겁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신(神)을 원망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없다, 부처님도 없다’며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모든 신을 끄집어 와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아이의 장애가 나의 죄라 여기며 세상의 눈치, 가족의 눈치, 아이의 눈치를 보면서 그 암흑 같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박혜신 자매(서빙고 예수사랑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도, 김수 자매(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도, 김재원 형제(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도 다르지 않았다. 자녀의 장애 진단 앞에 상한 마음을 감추고 끝나지 않을 그 세월을 살았다. 하나님 원망도 해보고, 울며불며 매달려 보면서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뎠다. 북극에도 봄은 온다 시간이 흘렀다. 살을 에는 칼바람만 부는 것 같았던 북극에도 따스한 볕이 드는 봄이 찾아왔다. 인생의 계절이 바뀌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윤후 형제가 올해 스무 살이 됐다. 뇌전증 대발작은 여전히 찾아오고, 희귀 난치 질환은 평생 안고 가야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이선아 성도는 그 기쁨의 비결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부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윤후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사랑부 선생님들의 사랑과 헌신이 우리 가정에 기쁨을 가져다줬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충분히 유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지영 자매는 혼자 밥을 차려 먹고, 대중교통을 타고, 치료기관을 찾아간다.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린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거라던 아이가 씩씩하고 명랑한 청년 작가가 됐다. 이지영 자매가 견뎌낸 그 숱한 세월이 엄마 오금옥 성도를 하나님 앞으로 초대했다. “지영이가 저를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의 삶을 통해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려내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봄볕은 이 가정에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김수 자매, 김재원 형제, 박혜신 자매, 최희민 형제에게도 찾아왔다. 그들은 지금 ‘장애인 청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장애인 청년 작가 5인(김수, 김재원, 박혜신, 이지영, 최희민)이 사랑홀갤러리(서빙고온누리교회 신관 1층)에서 장애인의 달 특별전 ‘우리들의 찬양’을 열고 있다. 박혜신 자매는 지난해 연말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도 하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가 지난해 연말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을 꺼냈다. 박혜신 자매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활짝 핀 자목련 그림을 구매했고, 그 그림을 품에 안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 속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저는 혜신이의 그림을 보면 하나님의 미소를 대하는 듯합니다. 성도들이 갤러리 복도를 오가면서 손 내미시는 하나님을 만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재원 형제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에게는 전시회보다 “행복하다”는 아들의 고백이 더 큰 선물이었다. “재원이가 전시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행복하다’는 고백을 참 많이 했습니다. 재원이의 그림을 보고 ‘위로 받았다’, ‘소중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등의 평을 남겨주시는 관객들과 만나면서 큰 용기도 얻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사랑홀갤러리에 걸린 아이들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와 따뜻한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김수 자매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딸의 은사를 성도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온누리교회 장애인 예배가 우리 모녀의 안식처입니다. 늘 위로와 사랑을 받기만 하다가 특별전을 열고 작게나마 성도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수가 이 기회를 좋은 토양 삼아 더 큰 믿음의 자녀로 성장할 것입니다.” 곁에 머무는 사랑, 페이스메이커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디는 이들 곁에서 묵묵히 품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사역본부 교사들이다. 정길우 성도(서빙고 사랑부 교사)는 직장 신우회 활동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장애인 시설에서 무려 20여 년을 봉사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년퇴직 이후 공동체에서 장애 자녀를 둔 가정들을 만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이유를 어느 주일 발견한 ‘사랑부 교사 모집’ 광고에서 알 수 있었다. 무작정 사랑부 예배를 찾아갔고, 교사로 지원했다. 사랑부를 섬기면서 정길우 성도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랑부 여름 캠프에서 한 형제의 배변을 돕고 샤워를 시키다가 문득 아무 거리낌 없이 섬기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그때 동료 교사가 건넨 한마디가 그 기쁨의 정체를 알려줬다. “‘사랑부가 아니면 이런 경험을 평생 못 했을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기에 할 수 있는 일이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부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은 멀리서 돕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해 문석윤 성도(서빙고 예수사랑부 교사)에게 예수사랑부를 섬기던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싱어를 구하고 있으니 함께 섬기자고 제안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선택인지 망설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사 43:1)을 붙들고 예수사랑부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8개월이 흘렀다. “예수사랑부 청년들을 보면 순전한 예배자가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이곳에 10년 이상 몸담고, ‘나의 남은 삶은 이곳’이라 고백하는 선배 교사들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사랑부가 그 이름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경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2년째 부천 사랑부 총무로 섬기는 김도훈 집사(부천온누리교회)도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어느새 가장 소중한 사역지가 됐다. 대학생이 된 딸도 함께 교사로 섬기고 있다. 찬양할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 뛰는 사랑부 청년들의 미소에서 예수님을 본다. “마라톤에는 선수 곁에서 속도를 조절해 주는 페이스메이커가 있습니다. 사랑부에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뛰어줄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사랑부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여러분의 섬김이 사랑부 아이들에게 평생의 온기를 나눠줄 큰 빛이 될 것입니다.” 이탈리아행 비행기에서 내려 북극에 섰던 이들이 그 땅에서 이글루를 짓고 있다. 북극의 모진 추위를 이기고 튼튼하고 따듯한 이글루를 함께 지어줄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문의: 02-3215-3263
2026-04-18 제1585호
[예수를 따르는 사람]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캠퍼스 복음화’ 꿈꾸는 백은희 교수의 확신 “나를 따르라”(마 16:24). 2026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전제한 그리스도의 엄중한 명령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한 모든 이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온누리신문>에서‘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과 고백을 듣는다. 그 일곱 번째 주인공은‘국립공주대학교 백은희 교수(양재온누리교회)’다. 그녀는 캠퍼스를 선교지로 여기고, 자신의 달란트와‘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라는 선교 도구를 사용해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는‘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현장 이른 아침, 아직 캠퍼스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인데 강의실 불이 하나둘 켜졌다. 그리고 전공 서적 대신 성경책을 든 예배드리는 사람들, 교수와 학생, 지역 교회 성도들이 모였다. 국립공주대학교 신우회 소속 교수들, 기독동아리 학생과 간사, 지역 교회 성도들이다. 그들은 무릎부터 꿇었다. 그리고 학교와 학생들, 캠퍼스 복음화를 간구하며 뜨겁게 부르짖었다. 그들은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교단과 소속을 넘어 기독교 공동체 이름으로 하나 된다. 그들의 기도와 예배는 특별하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선교지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는 선교 도구”라는 고백을 일상에서 증명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 갈망이 캠퍼스 복음화라는 엄청난 비전을 완수하는 원동력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지난해 KUPM(전국교수선교회)과 CCC연합평창대회에서 백은희 교수의 발표로 전국 대학 기독 공동체에 소개되며 점차 더 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바로 국립공주대학교 교수신우회와 기독동아리가 함께 드리는 ‘ 국립공주대기독연합예배’ 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는 2010년대, 국립공주대학교 음악교육과 백기현 교수가 교수신우회 회장을 역임할 당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로 시작했다. 기독동아리 학생들과 간사, 교수들이 함께 모여 ‘ 복음 전도’ 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린 연합예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지경이 넓어졌다. 지금도 ‘CCC(Campus Crusade for Chris), JDM(Jesus Disciple Movement), DFC(Disciples For Christ), SFC(Student For Christ), ESF(Evangelical Student Fellowship), IVF(Korea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 비전선교단’ 등 주요 기독동아리 구성원들과 간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 장로와 권사, 선교사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매주 적게는 7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의 인원이 모인다. 캠퍼스와 지역 교회가 연결되는 통로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의 특징이 뚜렷하다. 교수신우회, 기독동아리, 지역사회 교회와 함께하는 연합예배는 개강 및 공강 감사예배만 드리는 게 아니다. 매 학기 약 11주 동안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주 수요일 오전 8시부터 8시 50분까지 진행된다. 예배는 기독동아리 학생들의 찬양을 시작으로 교수신우회 교수들의 기도, 간사 및 지역사회 목회자들의 말씀 나눔으로 이어진다. 또한 국립공주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생에게 문이 활짝 열린 예배다. 이 지속성과 개방성은 학생들이 복음을 더욱 쉽게 접하는 환경을 만든다. 기독동아리에 가입한 대부분 학생은 이미 크리스천이다. 신앙을 가진 학생들을 돌보고 신앙 안에서 굳건하게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연합예배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학생들이 친구 초대로 왔다가 부담 없이 예배드리고,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복음은 관계에서 전해지기 때문이다. 연합예배의 핵심은 ‘ 연합’ 에 있다. 국립공주대학교 6개 기독동아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이 늘 그 자리를 함께한다. 모든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하나님이 주신 캠퍼스 복음화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가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선교 도구인 이유가 바로 그것 이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삶으로 보여주는 신앙 “최근 대학가는 상대적 가치관의 혼란과 영적 황폐함, 갈수록 교묘해지는 이단 및 사이비 단체의 포교로 인해 복음화가 더욱 어려워지는 실정입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에서 크리스천 교수님들이 예배의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은 학생들에게 큰 힘과 영적 귀감이 됩니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이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수들에게 이 여정이 쉬운 길은 아니다. 치열한 연구 성과와 업적 평가가 생존과 직결되는 대학에서 매주 시간을 내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작지 않은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백은희 교수의 생각은 분명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는 게 훨씬 큰 축복이고, 영향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백은희 교수는 그래서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자리’ 라고 고백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이 영향력을 전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그들의 신앙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말로 전하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큰 울림을 준다고 믿습니다. 저와 같은 믿음과 확신을 가진 교수님들이 교수신우회에서 활동하고, 기독동아리와 학생들이 서로 연결되어 함께 드리는 연합예배는 그 존재만으로도 전도의 파급력이 대단합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제자도 실천’ 백은희 교수가 생각하는 ‘ 예수를 따르는 삶’은 특별한 환경이나 특정 순간에만 드러나는게 절대 아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 곧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 제자도 실천이 핵심이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는 저의 선교지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수 전하는 일을 함께하며 선교 도구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복음을 전하며, 캠퍼스 복음화의 꿈을 이뤄내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제자도 실천이라고 확신합니다.” 특수교육과 교수로서 장애 학생을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는 백은희 교수는 일과 업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고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묻습니다. 하나는 ‘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 또 다른 하나는 ‘ 이 일이 장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입니다. 이 두 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하면 비록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고 시간을 내어야 하는 힘든 선택일지라도 기꺼이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순종입니다” 그렇게 선택한 일을 할 때에는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을 상기한다고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백은희 교수가 대학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지입니다. 특별한 사역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강의실과 연구실, 학생들을 만나는 모든 장소가 복음을 전하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2026-04-10 제1584호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엄학실 성도가 압록강 건너 예수 따르기까지 “나를 따르라”(마 16:24). 2026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전제한 그리스도의 엄중한 명령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한 모든 이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온누리신문>에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과 고백을 듣는다. 그 네 번째 주인공은 엄학실 성도(부천한사랑공동체)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제가 배운 역사 교과서 속 미국 선교사들은 '하느님을 전한다면서 사과를 훔쳐먹어 이마에 도적이라 새긴 자들'이었습니다.” 엄학실 성도에게 하나님은 첫인상이 아주 나빴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고, 선교사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두메산골에서 자란 엄학실 성도에게 신이라는 개념은 삶의 영역 밖에 있었다. 국가가 곧 절대였고, 김일성 일가는 신을 넘어선 존재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를 담은 <혁명역사도록>을 줄줄 외우며 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은 스쳐 지나는 왜곡된 이야기 속 인물, 나쁜 사람으로만 남아 있었다. 엄학실 성도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뜨린 끔찍한 경험이 있었다.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고,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던 그녀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의 방향을 잃었다.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이 떠나고 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막막함뿐이었습니다. 손주들 밥을 축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차피 죽을 거라면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심은 곧 국경을 향한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압록강으로 향하던 길 위에서 엄학실 성도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을 찾았다. “3월의 압록강은 녹지 않은 얼음과 불어난 물로 가슴 높이까지 차올라 있었습니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느님, 하느님, 내가 압록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른 채 드린 저의 첫 번째 기도였습니다.” 압록강에 다다른 그녀의 눈앞에 믿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강 위로 쓰러져 다리처럼 놓여 있었다. 그 덕분에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 한 구절이 나를… 중국에서의 삶 역시 쉽지 않았다. 공안의 단속을 피해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옮겨야 했다. 이전보다 형편은 조금 나아졌지만, 불안은 여전했다. 함께 중국으로 건너온 딸은 가사도우미, 엄학실 성도는 농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마음 한편에는 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엄학실 성도의 입술에서 다시 같은 이름이 흘러나왔다. “하느님, 우리 딸과 손자가 공안에 잡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우리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게 해 주십시오.” 그때도 여전히 그것이 기도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절박한 순간마다 무심코 부르게 되는 이름이었다.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딸이 한국으로 떠나자고 제안했다. 점점 자라는 손자를 위한 선택이었다.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그날 밤 꿈이 엄학실 성도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미 중국으로 도망쳐온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나려니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너희가 먼저 가서 좋으면 나를 데리러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꿨습니다. 넓고 길고 곧은 길 위에 큰 개 세 마리가 죽어있는 꿈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꿈에 나온 개가 경찰을 뜻합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아, 안전하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딸에게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일터에 거짓말하고 나온 딸과 손자와 함께 밤 11시에 창문을 넘어 도망쳤습니다.” 엄학실 성도는 여러 경로와 재판을 거쳐 한국대사관 방콕 수용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성경책을 봤다. “방콕 수용소에는 한국 영화와 책 그리고 성경책 등이 있었습니다. 문득 ‘북한은 왜 그렇게 성경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핍박했을까?’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일하려고 국경을 넘나들던 시절 성경책을 겉옷에 숨겼다가 공안에 붙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성경책이 무엇이길래 그렇게까지 할까?’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성경 읽기가 곧 ‘통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이 한 구절이 엄학실 성도의 마음을 붙잡았다. 나도 하나님을 믿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마침내 한국에 도착한 엄학실 성도는 하나원에서 만난 동기에게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인도받은 곳이 부천온누리교회 한사랑공동체다. 그곳에서 엄학실 성도의 신앙이 비로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말씀과 사랑이 그녀를 감쌌고, 김혜경 목사와 한사랑공동체의 돌봄 덕분에 하나님 앞에 서는 믿음이 조금씩 생겼다.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마다 하나님께 말을 걸었고, 새벽과 밤을 기도로 채웠다. 그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또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했다. "평소처럼 새벽에 혼자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 <레위기> 11장 45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책을 펼쳐서 확인해 봤더니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명령이라고 느꼈습니다. 연약한 저는 매일 넘어지고 또 엎어지겠지만, 하나님의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엄학실 성도에게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말씀 앞에 서는 삶, 말씀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이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는 것이 그녀가 이해하는 예수 제자의 모습이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을 보면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뜰만 밟듯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것을 붙들고 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가지를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첫 자리에 놓고, 삶의 모든 순간에 기도하며, 예배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현장이 곧 선교지가 되어야 합니다." 엄학실 성도는 복음 통일을 바라보며 그날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북한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어떤 경로로든 하나님을 만나고,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복음 통일이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가족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도록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 훈련받으며, 준비해야 합니다.”
2026-03-21 제1581호
[2026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2026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1.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2. 그들은 왜 평생 선교를 했을까?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황재숙 명예권사, 노국자 권사, 채현석 집사에게 묻다 “그냥.” 세 사람에게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공통으로 돌아온 대답이었다. 아무 의미도, 뜻도 없다는 의미의 말이 결코 아니다. 선교는, 선교헌금은 숨을 쉬듯이, 밥을 먹듯이 아주 자연스럽지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그 특별함을 ‘그냥’이라는 말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들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년 선교헌금을 작정하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선교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선교는 온누리교회의 심장입니다’라는 슬로건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그 주인공은 황재숙 명예권사, 노국자 권사, 채현석 집사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사실, 질문 자체가 식상해서 물을지말지를 고민했었다. 그렇다고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질문이었다. "처음 선교에 관심을 두고, 선교헌금을 작정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세 사람 모두 각자 삶의 모양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세 사람에게는 공통된 대답과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선교와 선교사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들 마음의 뿌리부터 분명 선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는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라는 표현에 깊이 감동하고, 선교헌금 작정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온누리교회에 와서 교육받으면서 신앙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마음에 쏙 와닿았습니다. ‘내가 선교 현장에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선교사님들의 선교에 동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선교헌금을 시작했고, 멈출 수 없었습니다.” 노국자 권사는 선교사들의 어려운 현실이 담긴 <선교사의 편지>를 읽고 기도와 후원을 결심했다. “20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파송한 어느 선교사님이 후원이 너무 절실해서 금식하며 사역하고 있다는 편지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낼 때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축복했는데, 보내고 나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매일 밤 9시에 동역자들과 함께 그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매년 선교헌금 작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채현석 집사는 젊은 시절 동료 선교사를 돕던 경험이 선교헌금 작정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몸담았던 선교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면서 그분들을 위해 조금씩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온누리교회에 와서 매년 새해 첫 주와 둘째 주일에 선교헌금 작정 행사에서 틀어주는 선교사님들의 영상을 보고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온누리교회에서는 본격적으로 선교에 동참할 수 있겠구나, 선교사님들과 마음을 함께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헌금은 저에게 선교사님들과 함께 나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선교헌금을 향한 마음을 오랜 세월 지키는 것이다. 사실 오래도록 한마음을 지키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변하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채현석 집사는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린 마음과 헌신을 무겁게 받아들이시고, 삶 가운데 반드시 보상하신다는 의미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는 ‘이 상황에서 계속 선교헌금을 해도 괜찮을까?’ 걱정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직장이 달라지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것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채 집사는 “보상이 반드시 물질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어떤 이에게는 건강으로, 어떤 이에게는 평강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삶의 안정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가 믿음으로 선교헌금 작정 행사에 동참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 고백을 듣는 내내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들이 주는 생활비로 지내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그 시기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이럴 때일수록 선교헌금은 절대로 줄이면 안 된다’였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덕분에 더 큰 믿음으로 선교헌금을 작정했습니다.” 그날 이후 나타난 변화를 떠올리면서 황 명예권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날 이후 아들의 사업이 조금씩 안정되었고, 겪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도 하나둘씩 해결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고치신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감사였습니다.” 중요한 건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려는 마음 노국자 권사는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성도들에게 “망설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선교헌금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수님이 두 엽전을 가장 큰 헌금으로 받으셨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을 권할 때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께 우리가 커피 한잔 대접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느냐?’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직접 대접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으로 마음을 조금씩 나눠서 동참하자는 뜻입니다” 채현석 집사는 노국자 권사의 제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했다. 그는 각자의 형편에 맞게 시작하되, 그 안에서 믿음을 조금씩 넓혀갈 것을 권면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조금 부담되지만 해볼 수 있겠다’는 지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려는 마음입니다.” 채현석 집사는 이 마음과 다짐을 훈련에 비유했다. “내가 1미터를 뛸 수 있는데, 늘 1미터만 뛰면 성장이 어렵습니다. 익숙한 수준에 머무르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시도가 성장을 이끕니다. 선교헌금 작정 역시 믿음의 성장을 위한 도전이 필요합니다” 은총, 관심, 하트 풍선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선교헌금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 세월 선교헌금을 이어오며 깨달은 본질이 그 한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는 선교헌금을 ‘은총’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시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고 보장해 주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노국자 권사는 선교헌금을 ‘관심’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내가 드린 선교헌금이 어느 나라로, 어떤 선교사에게 전달되는지를 알면 부담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깁니다. 그 관심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되어서 선교헌금으로 이어집니다.” 채현석 집사는 선교헌금을 ‘하트 풍선’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기도 모임에서는 기도를 선교지를 향해 쏘는 미사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선교헌금은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들께 따듯함과 위로, 힘을 전하는 하트 풍선 아닐까요?”
2025-12-20 제15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