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맛있는 말씀 해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 면접을 앞두고 이 말씀을 붙든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투자설명서를 내밀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마라톤 출발선이나 운동경기에서 유니폼에 이 말씀을 새기기도 하고,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의 수능시험이나 유학 준비를 앞두고 이 구절을 붙들고 기도한다. 이 모든 장면은 한 가지 공통된 인식을 보여준다. <빌립보서> 4장 13절이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성공’과 ‘자기 성취’를 위한 응원 구절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은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는 아름다운 고백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모든 일에서 성공하게 해주신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식의 긍정적 사고방식이나 ‘성공 신앙’의 근거로 사용되기엔, 이 말씀의 본래 의미는 훨씬 더 깊고 오히려 정반대의 맥락에 서 있다. 본문을 담고 있는 빌립보서 4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은 지금 어떤 외적인 성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결핍과 어려움 속에서도 자족하는 삶의 태도를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11절에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말하며, 풍요나 궁핍, 배부름이나 배고픔에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안을 말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 4:11) 그러고 바로 이어지는 고백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은 ‘원하는 바를 다 이룬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바울은 단지 ‘불편한 상황’을 이겨냈던 것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을 보면 그는 매를 맞고, 돌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바다에 빠지고, 굶주리고, 헐벗고, 강도와 동족 및 거짓 형제의 위험에 시달리며, 죽을 뻔한 일을 여러 번 겪는다. <빌립보서>를 쓸 당시에도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편지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 말은, 내가 원하는 일을 모두 이룰 수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주어진 삶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고백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영웅적 성공이 아니라, 고통과 결핍, 실패의 현장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신앙의 외침인 것이다. 본문의 중심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있지 않다. 핵심은 ‘능력 주시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바울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약함 속에서도 주시는 은혜의 힘을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 말은 바로 그 능력 주시는 주님으로 인해, 오늘의 괴로움도, 내일의 불확실함도 감당해낼 수 있다는 깊은 신앙의 고백이다. 우리 역시 본문을 ‘성공의 보증서’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시련과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능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외울 때 그 고백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해주소서”라는 주문이 아니라 “주님, 어떤 상황이든 제가 믿음으로 살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는 고백이어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이야말로 ‘무엇이든 이룬다’가 아니라, ‘무엇이든 감당하게 하신다’는 복음의 능력인 것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바울의 이 고백이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우울하거나 절망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 / 오은규 목사(성동광진공동체)
2025-06-21 제1545호
[임직소감[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청지기 되겠습니다!" 2024 명예권사, 권사, 안수집사 임직 소감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청지기 되겠습니다!” 명예권사 6명, 권사 143명, 안수집사 504명 임직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청지기 653명이 세워졌다. 지난 11월 30일(토) 오후 4시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2024 권사·안수집사 임직예배’를 드렸다. 이날 권사 149명(명예권사 6명, 권사 143명), 안수집사 504명(남 170명, 여 334명)이 임직됐다. 엄정숙 명예권사(양천공동체), 나미경 권사(신용산공동체), 이승우 집사(송파B공동체), 배윤숙 집사(인천온누리교회)가 임직 소감을 보내왔다. / 편집자 주 명예권사 ‘명예권사’라는 새 이름 선교사 자녀들(MK, Missionary Kids)은 얼굴은 한국인이지만 그들의 문화는 선교지와 똑같아서 우리는 그들을 ‘초록 아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노랑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닌 초록색입니다. 그들은 청소년 시절 정체성 혼란을 크게 겪습니다. 저는 약 17년 동안 MK들의 왕엄마 사역을 마치고 2017년 선교사 은퇴를 했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4년 동안 선교 본부(GPTI)에서 간사로 자원봉사를 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내려놓았습니다. 선교 비전이 분명한 온누리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은 여전한데도 점차 속도가 느려지고, 나의 소속감과 정체성, 사명감이 점점 흐려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예배에도 나가고, 여러 성경 공부에도 참석해봤지만, 내가 초록 아이가 된 것처럼 낯선 상황이 늘 혼란스럽고 불편했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는 다양한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데,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데서 저 스스로 한정하고, 자신 없어 머뭇거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일대일제자양육을 해보겠냐는 전화를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동반자와 양육과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답니다. 계속 일대일제자양육을 하면서 이제는 온누리교회의 한 지체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섬김의 자리가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습니다. 무슨 섬김을 할 수 있을지 기도로 아뢰고 있을 즈음 명예권사 제도가 있음을 알고 신청했습니다. 제가 명예권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과업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하겠으나 온누리교회 명예권사로서의 정체성과 소속감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섬길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하니까 저절로 새 힘과 용기가 났습니다. 인생의 경주에서 바통(baton)을 새로 받고 앞을 향해 달려가려는 선수가 되어 마음을 정비하고, 임직 안수를 받을 때 성령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능력을 덧입혀주셔서 잘 달려갈 열정을 회복했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이제 선교사 호칭이 사라지고 온누리교회 ‘명예권사’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겸손과 사랑으로 공동체를 화목하게 세워가라”는 권면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온누리교회 명예권사로서 책무 수행에 힘쓸 것을 다짐합니다. / 엄정숙 권사(양천공동체) 권사 추수할 일꾼 서원! 2006년 안수집사 임직을 받고,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지냈습니다. 주위 분들이 임직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도전이 됐지만, 저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동체 리더십에게 여러 차례 권사 직분을 받으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직 부족하다며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말씀을 묵상하는데 “너는 언제까지 섬김을 받는 자로 있으려고 하느냐”는 울림이 있었고, 떨리는 심정으로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임직대상자 교육에 참여하면서 권사 직분이 나의 자랑과 명예가 되지 않고, 더 낮은 자리에서 주위를 돌아보며 섬길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에도 불구하고 임직스쿨 계획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필수 과제와 봉사 시간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과연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과제 중에 가장 부담이 큰 새벽기도회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기상 시간이 힘들고 피곤했지만,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서 말씀으로 은혜받고, 오랜 시간 마음을 짓누르던 자녀에 대한 기도제목이 응답받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새벽기도회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큐티는 또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조원들과 나누고 삶에 적용하며 풍성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날마다 큐티와 성경통독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임직스쿨에서 건강한 영성과 리더, 행복한 가정, 전도 등을 배우면서 교회와 가정,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특히 온누리교회의 비전과 5가지 영성을 배우면서 말씀 공동체와 성령 공동체를 통해 받은 은혜를 선교와 사회참여로 실천해야 한다는 임직자의 책임과 사명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교회 봉사도 많은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러빙핸드와 주차봉사, 성찬 섬김 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하는 지체들을 보면서 하나님 안에서 협력해 선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됐습니다.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숙제하듯이 빨리 하나씩 해치우려고만 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웠음을 고백합니다. 교육과 봉사를 통해 주신 새로운 비전은 제가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훈련과정을 함께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아직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주신 직분 기쁨으로 잘 감당하겠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추수할 들판으로 일꾼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라”(마 9:37). 이 말씀 마음에 새기고 추수할 일꾼으로 쓰임 받기를 서원합니다. / 나미경 권사(신용산공동체) 여자 안수집사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되게 안수집사 임직을 권유받았을 때 고민이 되었지만,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임직받아야만 할 수 있는 봉사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정말 섬기고 싶은데 임직받지 못해서 섬길 수 없다면 매우 안타까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지난해 제 몸이 많이 안 좋았는데, 그나마 임직 과정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을 때 감사함으로 순종해야겠다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믿음 상태로는 나는 정말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믿음의 성숙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임직을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가 아닌데 형식적으로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고, ‘지금 하는 섬김으로도 벅찬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재훈 위임목사님의 책 <나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를 읽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봉사와 헌신의 영역이 있다면 절대 하지 마십시오.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헌신은 억울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이 제 마음을 때렸습니다.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하는 이유는 소중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결코, 나의 성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결코, 잃어버려질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간직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라는 말씀도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이후 모든 일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었고, 교회 각 처소에서 보이지 않게 섬기는 분들의 헌신과 노력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많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각자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마음으로만 짧게 하고 넘기던 큐티에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적용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삶의 변화와 성숙을 이루는 경험을 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제 입술에서 떠나게 하셨고, 하나님 안에서 감사와 평안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0주 동안 이어진 임직스쿨은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서빙고온누리교회에서 믿음의 싹을 틔웠고, 양재온누리교회에서 자랐으며, 지금은 인천온누리교회에서 열매 맺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성장했기에 이 좋은 교육을 당연하게 누리기만 한 것 같은데 이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임직 과정에서 온누리교회의 살아있는 비전과 목표를 다시 한번 바라봤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건강한 영성을 키우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교회의 부르심에 온 마음으로 순종하고, 각자의 일터에서 하나님께 하듯 신실하게 섬기며, 더 나아가 세계를 품고 땅끝까지 전도에 힘쓰는 온누리교회 성도로서의 사명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습니다. 온누리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며 달려가는 여러 사역에 한마음으로 동참하고, 일꾼으로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고, 온누리교회 비전이 우리의 비전이 되며, 각 공동체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는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되게 섬기기를 소망합니다. / 배윤숙 집사(인천온누리교회) 남자 안수집사 대적자에서 예수의 제자로! 저는 하나님의 대적자였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무례했고, ‘내가 왜 죄인이냐?’며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나이가 많았던 대학원 입학 동기 형은 저를 처음 볼 때부터 예수님 이야기를 하며 전도했습니다. 넉살 좋고 성격 좋은 형이었는데, 그 형마저 결국 포기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타로 나간 미팅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와 교제하며 저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고난이 밀려와 위로하고 싶었는데 위로가 되지 않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아내에게 아무것도 아닌 저를 보며 교만했던 저는 좌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궁금해졌습니다. 우연히 故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제 발로 교회에 갔습니다. 그때 대학원 동기 형은 있을 수 없는 일어났다는 듯 저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오랜 시간 하나님과 등지고 살았던 저에게 성경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경통독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믿고 싶어하는 저를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나눴더니 믿음의 선배들이 놀라며 “말씀을 부어 주신다”는 이야기 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에게 던지신 “네가 낫고 싶으냐?”는 예수님의 말씀이 “네가 믿고 싶으냐?”로 들렸고, “그게 믿음”이라며 예수님이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적자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됐습니다. 극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됐지만, 신앙의 성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경험합니다. 처음 소속된 순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변하지 않는 숨겨진 모습과 죄를 하나님께서 오래 다루셨습니다. 50년 가까이 안고 살았던 상처도 발견하며 치유됨을 순예배에서 경험했니다. 불의한 자를 막으려 싸우면서 분노로 힘든 나날을 보낸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 목사님, 방장님과 대화하면서 그 짐을 벗어 던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 한 몸을 이루는 지체 공동체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대적자였던 제가 온누리교회에서 안수집사 직분을 받았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정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대적자로 살지 않게 저를 건져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공동체를 통해 저를 돌보시는 세심함도 경험했습니다. 저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죄인을 위해 아들을 내어줘야 한다면 저는 목숨을 걸고 싸우며 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제 그 사랑 앞에 서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오후 5시 50분에 들어온 품꾼입니다. 사랑이신 포도원 주인을 위해 오후 6시까지 감사하며 섬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 이승우 집사(송파B공동체)
2024-12-07 제1519호
맛있는 말씀해설 “...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왕하 20:19). 맛있는 말씀해설 “...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왕하 20:19).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궁의 귀한 것을 모두 보여준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왕하 20:17~18). 이 말씀에 대하여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며, 자신이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으니 선하다고 반응한다. 이 반응은 자신만 무사하면 문제없다는 태도처럼 보여 무책임해 보이고,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회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열왕기 말씀은 히스기야 왕이 병에서 회복되어 바벨론의 사신들이 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역대하 말씀을 보면 전후 사정이 더 명백해진다, 바벨론 사신의 방문은 히스기야의 병이 회복된 직후가 아니라 그의 병이 회복되고, 앗수르(앗시리아)의 군대가 물러난 그 다음이다(대하 32:31).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되고 교만해져서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다.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게 되었는데, 히스기야가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생전에는 내리지 않았다(대하 32:24~26). 히스기야가 교만해진 것은 두 번의 기적이 연거푸 일어났기 때문이다. 죽을병으로부터 기적적으로 회복되었고, 막강한 앗수르의 군대를 하나님이 물리쳐주셨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히스기야 왕의 이름이 열방에 높아졌고, 그가 교만해졌다. 열왕기 기자는 많은 내용을 생략하고 히스기야의 병과 바벨론 사신 방문 사건을 바로 연결했다. 역대하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교만이 바벨론 사신의 방문 때 다시 드러났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에게 왕궁의 모든 좋은 것을 보여준 것은 자신을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역대하 기자는 바벨론 방백들의 사신이 왔을 때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 32:31). 히스기야의 교만을 다시 드러내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그는 자신의 교만이 재차 드러났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히스기야는 과거 자신의 교만이 드러났을 때 회개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히스기야 시대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시다. 내 시대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니 선하다”라는 반응은 무책임한 반응이 아니다. 자신의 교만에 대한 또 다른 회개의 고백일 수 있다. 히스기야의 첫 번째 회개 때 하나님의 진노가 그 시대에는 내려오지 않은 은혜를 두 번째 교만을 드러냈을 때도 거두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심판의 예언을 통해 자신의 교만이 두 번째 드러남에도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것이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이 선하시며, 자신의 시대에 태평하므로 선하다”고 한 것은 하나님 은혜에 대한 고백이다. 히스기야의 고백은 미래 시대의 고통을 무시하는 무책임한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기일이 다가오기까지는 오늘도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히스기야가 심판의 말씀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오늘의 은혜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교만을 용서해주시는 그분의 선하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교만과 어리석음과 죄악을 아낌없이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 은혜를 입었다면, 그 은혜를 받기에 너무 형편없는 우리와 대조적인 선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 것처럼,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우리를 값없이 그리고 끝없이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 이은일 장로(성동광진공동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024-09-14 제1508호
[멘토가 멘티에게] “하나님 믿고 담대히 걸어가십시오!” 멘토가 멘티에게 “하나님 믿고 담대히 걸어가십시오!” “우리 인생의 답이 정해져 있나요? 하나님이 각자에게 정해주신 비전, 길, 배우자 등이 정해져 있는 걸까요?” 우리 인생은 어떠한 답을 정해 놓고 가는 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하나님과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의 길을 걷다 보면 풍성한 은혜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깨달을 때 감탄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인생이 된다. 먼저 비전과 길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과연 그 비전이 나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인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비전은 내려놓고,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는 비전을 품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다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또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떠하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가다 보면 그 길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이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또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답’을 하나님과 함께 믿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과연 ‘각자의 배우자가 정해져 있을까?’ 생각해 보자.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인 것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어찌하라는 말인가? 하나님 안에서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첫째, 지금 내게 맡겨주신 일들에 하나님의 마음을 불어 넣으며 성실히 살아가야 한다. 둘째, 배우자를 만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말씀과 성령 안에서 생각과 태도, 인격이 변화되어야 한다. 질문자의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또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질문자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걸어가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인생은 믿음의 여정과 같다. 그 믿음의 여정은 징검다리를 하나하나 건너는 것과 같다. 때로 돌 하나하나에 발을 내딛기가 두려울 수 있다. 믿음이 부족하고, 두려움이 나를 삼키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손잡아 주신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님이 능히 그 믿음의 여정에 함께해 주신다. 비록 발이 물에 빠질지라도 하나님이 친히 건져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걸어가라. 이 답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좌충우돌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나를 소개하고 싶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드러내고 싶어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학생들에게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로 일하던 중에 또 다른 꿈이 생겼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의사로서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의대에 진학했고, 현재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섬기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캄캄한 상황이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부르심에 순종하기를 축복한다. 나의 비전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믿음으로 걸어가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란다. / 김준태 멘토(남양주온누리교회)
2024-09-14 제1508호
[주일강단] 가서 제자 삼으라 가서 제자 삼으라 <마태복음> 28:16~20 /이재훈 위임목사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실 때마다 주신 말씀은 매우 간단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나를 따르라.” 3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도 매우 간단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두 가지 부르심을 받은 이들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결국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 목적이 ‘가서 제자 삼는 제자’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 명령이 기록된 것은 <마태복음서>가 기록된 목적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구원으로의 부르심이며,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로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되게 하신 것은 모든 민족의 복의 통로가 되게 하는 계획이었던 것처럼, 에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제자를 부르신 까닭은 모든 민족의 제자를 삼는 사역자로 부르는 것입니다. 갈릴리로 가야하는 두 가지 이유 예수님이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주신 곳이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열한 제자와 함께 갈릴리의 한 산에 오르셨을 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만난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번 만난 제자들은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하고 당황하며 두려웠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라. 그곳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마 28:10). 그래서 열한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이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예루살렘에 주로 계셨고, 제자들도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을 만나시고 승천하시는 게 더 간단하지 않았을까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는 적어도 120km 이상 떨어진 거리였기 때문입니다.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제자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승천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우리가 만나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명백하게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전후 문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부르심을 받은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갈릴리는 그들이 제자로 부름을 받은 지역입니다. 제자의 삶을 돌아보는 자리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부름을 받았던 곳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는지,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그 첫 순간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주신 말씀들을 기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알기 원한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기 원한다면 우리가 누구의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되새겨야 합니다. 둘째, 갈릴리가 가진 선교적 의미 때문입니다. 당시 갈릴리는 유대의 변두리였습니다. 이방과의 접촉이 많고, 이방 민족의 침입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약 말씀에 갈릴리를 어둠과 그늘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갈릴리를 표현할 때 언제나 ‘이방인의 갈릴리’라는 표현을 함께 썼습니다. 그만큼 변두리였고, 이방의 침략도 많았고, 이방인들이 섞여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철저한 유대 민족 중심의 도시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인의 도시라고 불리는 갈릴리에서 승천하시면서 이 명령을 주신 이유는 선교적 의미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소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지역에만 머물며 그들끼리 어떤 종교적 체계를 이루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며, 그들만의 예수님을 기억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방으로 퍼져 나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장소를 통해서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열한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경배 드렸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기에 그분께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때로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시기도 하고, 그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시셨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하였다’는 표현은 여기서 처음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달을 때만 진정한 경배가 나오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가 드려지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예배드리는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예배공동체에서 진정한 선교가 일어납니다. 예배공동체와 선교공동체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참된 예배자요, 참된 선교공동체가 됩니다. 예배와 선교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자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입니다. “제자 삼으라”는 명령, 선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뵙고 경배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의심했습니다”(17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도, 그 명령을 받고도,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음에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의심이 여전히 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명령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모습과 제자들이 도망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예수님이 잘못 보신 게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배신했고 자살했고 열한 명만 남았습니다. 더군다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의심하고 있는 이들을 예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이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여전히 의심이 있고,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의구심이 있기에 ‘나는 이 명령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변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한 명 중에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이들을 예수님이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의 모든 의심은 확신이 되고, 불안은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까? 이 명령을 주신 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18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이루심으로써 이 명령을 주실 수 있는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권세를 가지신 분이 우리를 이끌어 가고 계시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을 <마태복음>에서 가장 포괄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그 명령은 “제자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19~20절). 한글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이 명령에 네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가라’, ‘제자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런데 원문으로 보면 명령형 동사는 딱 한 가지입니다. “제자 삼으라”입니다. 그것만 동사이고, 나머지는 분사형입니다. 분사형은 문법적으로 동사를 보완하기 위하여 보조하는 형태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갑니까? 제자 삼기 위해서입니다. 왜 세례를 줍니까? 제자 삼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세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부활을 경험하는 새 생명의 체험이 세례입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은 교사가 학생을, 부모가 자녀를 세심하게 가르쳐 주듯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가르침으로 인해서 제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문화권에도 가는 것이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 궁극적인 목적은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이루는 것입니다. 참된 선교는 제자 삼는 것입니다. 2024년 열렸던 4차 로잔대회 서울선언 72항에서 하나님 백성의 선교가 제자 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 곧 선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을 받을 때 놀라워해야 하는 세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장차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이 명령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열한 명은 모든 제자를 대표하는 이들이기에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둘째, 그 대상이 모든 민족입니다. 셋째, 이 명령을 받은 제자의 숫자가 열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소수의 열한 명에게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명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다음날부터 잠을 못 이루었을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열한 명의 제자가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또 하셔야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열한 명이 어떻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습니까? 열한 명으로부터 출발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고, 그 열한 명을 통해 예수 믿고 제자 된 이들은 그 시대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만나는 한 사람을 통해서 놀랍게도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고, 예수님의 제자가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문제는 이 명령을 얼마나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가입니다. 만일 교회가 이 명령을 가볍게 여기면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많은 교회가 다툼과 분열로 얼룩지고, 능력을 잃어버리고, 예배의 감동이 없고, 기도의 역사가 없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로 귀결됩니다. 이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 명령을 ‘선택’으로 여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열한 명으로 시작된 명령의 순종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제자 삼았습니다.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은 것입니다. 그 시대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 삼으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에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할 뿐만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메말라 가는 영혼들을 총체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배고픈 자들의 빵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난민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기도 하고, 생명의 위협에 처한 이들을 보호하고, 법적인 노예로 있는 이들을 자유케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20절b).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입니다. 언젠가 이루어질 약속이 아니라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하지 못할까요? 예수님의 이 명령과 상관없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여러 나라와 민족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돕고 지원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 모든 성도가 이 명령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순종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1-10 제1572호
[주일강단] 평범함 속의 비범함 [주일강단] 평범함 속의 비범함 <고린도전서> 10:31 /이재훈 위임목사 한 해를 돌아보면 특별한 사건이나 충격적인 사건만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한 해의 99% 이상은 매우 평범한 일상입니다. 또 다른 한 해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특별한 체험이나 사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너무 평범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고전 10:31). 먹고 마시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입니다.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일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된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은 거룩함에는 예외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함의 영역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교회와 세상, 주일과 평일을 나누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순간은 어느 한 순간도 제외될 수 없습니다. 생활할 때뿐만 아니라, 잠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함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우리의 생각의 지평을 훨씬 넓혀줍니다. 화란 자유대학교를 설립할 때 개교 연설이 명문장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라고 외치지 않는 영역은 단 한 인치도 없다.” 과학과 예술, 정치와 비즈니스, 교육과 가정,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가 “나의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는 영역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살림을 하는 것, 학생이 공부를 하는 것,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 친구를 만나는 사소한 만남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는 영역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모든 삶의 영역이 거룩함의 영역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동기와 목적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평범한 일상이 영광이 될 수 있습니까? 첫째, 동기와 목적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춰질 때 가능합니다. 17세기 시인이자 목사였던 조지 허버트는 많은 신앙시를 남겼습니다. 그분의 시가 많은 찬송가 가사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한 찬송시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여, 범사에 주를 보게 하시고 나 무슨 일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게 하소서. 유리를 보는 자의 눈, 유리에 머물 수도 있으나 원한다면 그 너머로 천국을 볼 수 있습니다. 범사에 주와 더불어 하면 천한 일이란 없습니다. ‘주를 위해’ 그 한 마디에 모두 밝고 깨끗해집니다.” ‘범사에 주와 더불어 하면 천한 일은 없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비범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어떤 영역, 어떤 일이건 그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속한 것임을 의식할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거룩한 예배의 제단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이 ‘영적 허영심’입니다. 영적 허영심이란 큰일을 할 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처럼 보이는 일은 내 힘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 오만입니다. 모든 삶의 가장 사소해 보이는 행동조차도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단순히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먹는 것은 평범한 행위지만 그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음식이 만들어질 때까지 수고한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에게도 감사하고, 그 음식을 통해 누군가와 화해하고 화목하며, 누군가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비범한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동기와 목적이 똑같은 식사지만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분의 죽음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받아 먹으라, 이것을 받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늘 우리는 먹고 마십니다. 우리의 먹고 마심이라는 행위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고, 그분과 우리의 연합을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 생존을 위한 본능에 머물지 않고 그 힘으로 섬기고 나누고 베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동기와 목적을 품을 때 비범한 행위가 되는 겁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노동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업과 거래를 통해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공의를 나타내고자 일한다면 그것은 선교입니다.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의롭게도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면 선교 행위입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비즈니스 활동이지만 세속적인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목수가 나무로 작품을 만들고, 주부가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자녀를 잘 양육하는 모든 일상적인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그분은 그 모든 행위를 예배로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쓴 로렌스 형제는 학자 수도사가 아닙니다. 그가 하는 수도사의 일은 요리사였습니다. 그 전에는 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했습니다. 수도원에서 지극히 작은 일, 요리하는 일, 설거지하는 일, 누군가의 신발을 고쳐주는 일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묵상하며 쓴 책이 수백 년 동안 영적 고전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비범한 일을 이루어야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 동기와 목적이 그것을 가늠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순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질문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덕을 세우는 일” 둘째, 다른 사람을 위해 덕을 세우는 일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먹고 마시는 일을 언급하는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거대한 상업 도시였고, 그만큼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고린도 시장에서 유통되는 육류 대부분은 신전에 바쳐졌던 제물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심각한 논쟁이 일어납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지식이 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학적으로 올바른 정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상은 실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고, 그러므로 그 제물을 먹는다고 해서 영적으로 내가 오염되는 것 아니다. 그 우상의 어떤 세력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먹을 수 있다.” 이것이 사실 정답입니다. 올바른 지식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지식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지식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그들은 지식에 근거해 자신의 신앙의 자유를 누리면서 시장에서 고기를 자유롭게 사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믿음이 약한 자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믿음과 양심이 약한 이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느냐?’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힘들어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실족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신약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모든 교회가 이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어떤 이들은 먹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바울은 나에게는 평범하고 당연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을 절제하고,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지식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 지식에 사랑이 없을 때는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그래서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나 사랑은 덕을 세운다”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자유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덕을 세우기 위해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유로운 일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곧 덕을 세우는 일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유대 사람에게든지 그리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의 교회에든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나도 모든 일에 모두를 기쁘게 하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합니다. 이는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32~33절).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수평적으로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내 곁에 있는 성도들이 나의 행동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고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헬라어 ‘오이코도메’는 ‘집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거대한 집, 공동체라는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들, 우리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 직장에서의 사소한 행동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영적 건물을 짓는 벽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십시오”(고전 10:23~24). 이중적인 생활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덕을 세우는 행동’이라는 기준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왜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에 의해 판단을 받아야 하고 제한을 받아야 됩니까?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하면 되는데, 왜 나의 감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적을 받아야 됩니까?” 그 대답이 31절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31절). 먹고 마시는 건 자유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것으로 인해 시험 드는 이가 있다면 하지 않는 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는 먹을 수 있지만, 누군가 시험 드는 일이 있다면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초점을 맞추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비범함이란 지식으로 남보다 높은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세워주기 위해 기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침묵하는 인내가 모여서 하나님의 집, 공동체가 세워져 가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드려지는 삶입니다. 세기의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은 “그리스도인은 움직이는 성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의 일상을 읽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듯이, 우리 삶의 단 1분 1초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밖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상은 모두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낼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가 있다는 하나님 섭리의 관점을 가져야합니다. 나의 자유와 권리 이전에 하나님의 영광, 이웃에게 덕을 끼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배려하는 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결단하십시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비범한 영광을 나타내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1-03 제1571호
[주일강단]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일강단]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누가복음> 1:26~38 / 이재훈 위임목사 세상에서는 후손들이 조상의 삶과 그 업적을 기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상들이 후손인 그분을 미리 전하고, 예언하고, 어떤 삶을 사실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훌륭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메시아로 인정된 게 아닙니다. 메시아로 오시기로 예언되었고, 그 예언대로 메시아의 소명을 이루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실 의무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과 세상을 내버려두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풍성하신 사랑과 자비하심 때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시기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진노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삼키고, 죄를 이기고, 이 세상과 공중의 타락한 권세들을 무찌르는 능력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친히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담의 후손 가운데서는 그 누구도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가 없었고, 하늘의 천사들 가운데서도 합당한 능력을 갖춘 이가 없었습니다. 오직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여자에게서 나게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 첫 번째 예언이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네 자손과 여자의 자손 사이에 증오심을 두리니 여자의 자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그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을 타락하도록 유혹한 뱀에게, 곧 사단에게 주신 심판과 저주의 말씀 가운데 장차 보내실 구원자를 여자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는 말씀에는 구원의 약속이 포함되지 않고, 뱀에 대한 저주의 말씀, 사단에 대한 심판의 말씀 속에 담아 주신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곧 사단에 대한 심판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의로운 심판을 통과하며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죄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육신하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사단에게 종이 되어 버린 모든 인간과 세상의 죄를 담당하신 그 십자가의 죽음, 그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인의 후손을 통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처녀에게 잉태케 하시는 두 가지 의미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고 그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사 7:14). ‘친히’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지하고, 거부할지라도 강권적으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태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실의 후손 가운데 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거라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는 일을 기대할 리 없습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이루어졌듯이, 모든 인간이 구원을 기대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처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신 아들을 통해서 임마누엘, 함께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다윗의 왕실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인의 후손, 처녀에게 아들을 잉태케 하신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힘으로는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자는 인류 바깥에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 인류는 구원자를 스스로 낳을 수 없고, 교육이나 문명의 발전을 통해서도 구원자를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은혜,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가 없는 완전한 인성을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죄한 상태로 태어나신 것은 처녀의 아들로 태어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과 보호하심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습니다”(마 1:16). 이 족보의 의미는 <창세기> 3장 15절과 <이사야> 7장 14절에 예언된 대로 여인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이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오되 처녀에게서 태어나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타락 직후 주어진 말씀부터 시작해서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언과 역사적 사건을 통해 장차 오실 그분을 준비하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처녀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요셉만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 육신의 어머니를 택하실 때 마리아라는 믿음의 여인을 주목하셨습니다. 그것은 전례 없는 신비로운 일, 그리고 위험한 일을 요셉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오해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응답했고,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성경은 동정녀 탄생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 충격적이고, 당황스럽고,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마리아의 반응을 통해 소개합니다.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라고 인사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에 당황하고 놀랍니다. 이러한 인사법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건한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에게 “은혜를 입은 자여”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경건한 삶을 살지 않았던 여인이었다면, 천사의 음성을 구별하지 못하고 놀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무감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날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천사의 인사와 소식을 듣고 놀라워합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들의 신분과 역할 “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보아라. 네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는 위대한 이가 될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다. 그는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30~33절).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해준 이 소식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압축하고 또 압축한 것입니다. 이 짧은 말씀이 구약의 요약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또다시 놀라워하며 질문합니다. “처녀인 제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마리아의 말은 의심과 불신의 말이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마리아와 비슷하지만 정반대 의도가 담긴 사례가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제사장 사가랴의 질문입니다. 사가랴는 나이든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자녀가 없어서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는데 그때가 늦은 나이였습니다.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여기는 때였습니다. 그때 사가랴가 “제가 어떻게 이 말을 확신하겠습니까? 나는 늙었고 내 아내도 나이 많았습니다. 징조를 보여주십시오”라고 응답했습니다. 사가랴의 ‘어떻게’는 ‘불신의 어떻게’입니다. 두 사람 모두 천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출생에 대한 고지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어떻게’라고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예배합니다. 똑같은 찬송을 부릅니다. 입술로는 똑같은 가사를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과 영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다 아시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질문은 믿음으로 수용하는 자세에서 가르침과 설명을 기대하는 질문입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령께서 네게 임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심으로 네게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역사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임하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므로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주기 위하여 사례를 듭니다. 보아라 네 친척 엘리사벳도 그렇게 많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라 불렸는데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째가 됐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다”(35~37절). 성경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가정에서 아이를 낳는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사례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 가정들에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낳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하나님이 전능한 능력으로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미리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그러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에게서 떠나갔습니다(38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통로로 자신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순간적인 충동이 아닙니다. 평소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어떤 표적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전해준 그 음성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어떤 표적 대신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덮으심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당시 알려진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처녀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마리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천사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는 어둡고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로마의 압제가 있었습니다. 여성의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힘겨운 착취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시 권세자들과 지도자들은 부패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례의 한복판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성육신으로 오신 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은혜가 부어집니다. 여러분, ‘기쁨’과 ‘은혜’는 뜻이 통하는 단어입니다. 연결된 단어입니다. 은혜가 바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리아처럼 은혜를 입은 자로, 기뻐하는 성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27 제1570호
[주일강단] 성육신3. 만물의 으뜸, 교회의 머리 [주일강단] 성육신3. 만물의 으뜸, 교회의 머리 <골로새서> 1:15~20 /이재훈 위임목사 성탄의 본질은 성육신입니다. 성육신을 깊이 묵상하지 않고 성탄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성육신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으로 설명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신 그분만이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지된 열매를 먹는 날엔 정녕 죽으리라”하신 그 말씀대로 이뤄져야만 했고, 그 말씀을 따라 사망과 멸망 가운데 처해 있는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말씀인 그분이 육신이 되어 죽음을 친히 담당하시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성육신은 자신을 비우신 하나님의 겸손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놀라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신 그분이 자신을 비우시고, 그 영광과 권리와 능력을 비우시며,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신 겸손한 마음입니다.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지극히 높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겸손한 마음을 묵상하는 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하나님 아들 설명하는 두 단어 <골로새서> 1장에서 바울은 성육신을 우주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를 창조 이전의 상태로 데리고 갑니다. 이 땅에서 하늘로 데려갑니다. 성육신은 단순히 하나님이 아기로 태어나신 정도의 사건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20절에서 성탄을 우주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육신의 주체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두 단어로 설명합니다. 첫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여기서 ‘형상’은 ‘본질을 나타내는 실체’라는 뜻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 어떤 형상도 하나님을 온전히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형상만이 그분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형상 일부분을 보여주신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듣고 보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계획을 세우고, 약속하고 실행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형상의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완전히 보여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온전히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둘째,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입니다. 단지 시간적 순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 위에 초월해 계신 주권자’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와 동일한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표현합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만들어졌고, 그분을 통해 만들어졌고, 그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골로새 교회 당시 유행했던 이단적인 가르침이 ‘영지주의’입니다. 넓게 보면 육은 악하고, 정신과 영은 선하다고 했던 플라톤 철학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성육신을 공격하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통 인간은 아니지만 피조물 중 하나, 천사 같은 존재 아니면 하나님과 동등하지는 않은, 하나님보다 조금 열등한 존재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가르침이 당시 골로새 교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올바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창조의 근원이자 통로, 통치자 “하나님의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곧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과 주권들과 권력들과 권세들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아들로 인해 창조됐고 아들을 위해 창조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 함께 서 있습니다”(15~17절). 바울은 예수님을 창조의 근원이자 통로, 통치자로 소개합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이 창조된 이유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 주권, 권력, 권세들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다’라는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는 성육신의 목적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성육신은 그분 안에서 세워진 권세들이 그분의 통치를 거부했을 때 그 통치권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성육신은 통치의 사건입니다. 성탄은 세상의 통치권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주권 선포의 날입니다. 창조주의 통치를 거부한 타락한 권세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다시 통치를 회복하고,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16절에서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 보좌들, 주권들, 권력들, 권세들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17절 마지막에 ‘만물이 그분 안에 함께 서 있다’는 말씀에서 영어 ‘시스템(System)’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어원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만물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이 움직이는 시스템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 안에 권세가 있습니다. 보좌, 주권, 권력, 권세는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세우신 선한 질서와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권세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반역했을 때 하나님을 반역하는 영적 권세에 휩쓸린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의 정세와 권세는 타락하고 악해진 권세를 의미합니다. 이 둘을 연결시키면, <골로새서> 1장에 나오는 보좌, 주권, 권력, 권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 세우신 선한 질서와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6장에서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의 권세가 되어버립니다. 성육신하신 분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 권세의 악한 모습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가장 선하시고 온전히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을 때 세상의 악한 권세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육신의 끝은 십자가입니다.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길은 단지 ‘탄생’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분의 죽음을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육신,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슬러 대적하는 조문들이 담긴 채무 증서를 제거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로 권력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공개적인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14~15절). 성육신하신 분의 목적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그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권세, 원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통로가 되게 하신 주권, 권력, 권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권세가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모든 타락한 권세와 권력을 무장해제 시키셨습니다. 그 권세에 끌려 다니는 모든 채무 증서를 제거하셨습니다. 죄의 빚을 다 갚아주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일곱 마디 남긴 말씀 가운데 한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다 갚았다”, “너의 빚은 끝났다”, “다 지불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서 갚아야 될 모든 죄 값이 십자가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우리가 더는 타락한 권세의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유인이 되었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육신의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두 개의 면류관을 쓰고 계십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만물의 으뜸이 되신 것이고, 또 하나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성육신은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건입니다. 타락한 이 세상을 재창조하시기 위해서 성육신하심으로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 곧,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십니다. 그분은 근본이시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친히 만물 가운데 으뜸이 되시려는 것입니다”(18절). 오늘 본문 15절에서 17절의 그분은 창조의 근원이십니다. 18절에서는 새 창조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육신하심과 죽으심, 부활하심을 통해 그분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옛 창조의 주인이신 분이 만물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새 창조를 이루시기 위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건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시고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여기서 머리란 단순한 지도자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생명을 공급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모든 통치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탄을 통해 성육신의 신비를 믿는 것입니다. 만물의 으뜸이신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통치자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과 사역, 가정과 생각 위에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 진리, 생명 19절에서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아들 안에 거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충만’이라는 단어가 당시 유행했습니다. ‘플레로마(Pleroma)’라는 단어인데, 당시 만연했던 영지주의에서는 여러 신, 천사 같은 존재가 모두 신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신성한 능력과 영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하신 그분의 육체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께로 가려면 천사를 통해야 된다고 해서 천사를 예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헛되고, 오직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모든 것이 아들로 인해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20절). 하나님은 모든 신성과 능력을 성육신하신 그분 안에 나타내기를 기뻐하셨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성육신의 목적은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그분과 화목하게 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또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고후 5:18~19). 예수님 십자가의 피는 인간의 죄를 넘고, 인간의 죄에 대한 구원을 뛰어넘으며, 우주 전체의 깨어짐과 분열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화목하게 하는 재물입니다. 성육신의 목적은 인간의 영혼 구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분이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몸 된 교회 역시 십자가의 피로 ‘화목하게 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성탄은 단지 교회의 절기가 아닙니다. 성탄은 만물이 하나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만물의 으뜸이 되신 사건입니다.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성육신하신 목적이 계속이루어지도록 나타내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으로서, 세상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감당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육신하셔서 온전한 통치자로 임하신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임으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20 제1569호
[News] "선교는 온누리교회의 심장입니다!" “선교는 온누리교회의 심장입니다!” 1월 10일과 11일 2차‘2026 선교헌금 작정’ 선교헌금작정서, QR코드, 온라인, 전화 참여 2차 ‘ 2026 선교헌금 작정’ 을 1월 10일(토)과 11일(일)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예배에서 한다. 이날 온누리교회 모든 예배에서 나눠주는 ‘ 선교헌금작정서’ 를 작성해서 제출하거나 영상예배 QR코드,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 더보기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 전화로 참여할 수 있다. 선교헌금 작정을 희망하는 성도들은 ‘ 자동 이체(CMS)’ 나 ‘ 봉투’ 중에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개인정보, 금액 등을 정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개인정보 수집 및 제공 동의도 반드시 해야 한다. 선교헌금 증액 및 해지는 전화(02-3215-3616)로 문의하면 된다. 자동 이체 방식으로 선교헌금을 봉헌하는 성도들은 자동으로 연장된다. 자동이체 날짜는 매월 25일이다. 봉투로 선교헌금을 봉헌하는 성도들은 ‘ 선교헌금작정서’ 를 다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이찬양 선교사(잠비아)는 “고통스러운 고난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는 하나님의 약속과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의 사랑 덕분”이라며 “늘 기도와 선교헌금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채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관련 기사 4면>. 한편 2026 선교사 간증집 <눈물이 기쁨 되어>를 출간했다. 전 세계에서 사역하는 온누리교회 파송 선교사 19유닛의 간증이 담겨있다. 1월 11일(일) 예배 이후 성도들에게 배포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로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문의: 02-3215-3616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17일까지 오전 5시 30분 각 캠퍼스 본당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가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1월 17일(토)까지 오전 5시 30분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본당에서 이어진다.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과 CGN에서 실시간 중계한다.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2주 차에는 1월 12일(월) 정재욱 목사 ‘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 13일(화) 신동식 목사 ‘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 14일(수) 양재경 목사 ‘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6~69), 15일(목) 노규석 목사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20), 16일(금) 변대섭 목사 ‘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1~5), 17일(토) 이재훈 위임목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한다. 토요일에는 모든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연합예배를 드린다. 이정민 성도(서빙고온누리교회)는 “그동안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과 나 자신을 믿고따랐던 것을 회개하며 작은예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면서 “새해에는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가는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공동체성경읽기’시작 유튜브 채널, 2부 새벽기도회, 공동체성경읽기 모임 ‘공동체성경읽기’ 가 시작됐다. 공동체성경읽기는 세 가지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 첫째, 매일 자정 유튜브 ‘ 365 성경읽기’ 채널(www.youtube.com/@every365bible)에 업로드되는 ‘ 절기별 영상’(하루 15~17분 분량)을 시청하면 된다. 2월부터는 온누리교회 공동체성경읽기 앱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공동체가 함께 참여할 때는 공동체별 SNS 단체대화방을 개설하고, 공동체 총무나 순장, 정해진 사역자가 매일 자정에 업로드되는 영상 링크를 공유하면 된다. 성경 읽기 진도표는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하단(교인지원센터→자료실)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책갈피형 성경 읽기 진도표도 제공한다. 책갈피형 성경 읽기 진도표는 1월 한 달 동안 온누리교회 안내데스크 및 헌금함에 비치한다. 둘째, ‘ 서빙고온누리교회 2부 새벽기도회’에 참석한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6시 30분 선교관 비전홀에서 진행된다. 셋째, ‘ 공동체성경읽기 모임’ 에 참여한다. 구체적인 일정과 장소 등은 추후 공지한다. 문의: 02-3215-3239 / 박지혜 기자 차세대 패션집회 ‘Unshakable’ 1차 1월 30일~2월 1일, 2차 2월 1~3일 2026 차세대 파워웨이브 연합수련회 패션(PASSION, 이하 패션집회)이 막 오른다. 1차 1월 30일(금)부터 2월 1일(일), 2차 2월 1일(일)부터 3일(화)까지 배재대학교(대전광역시 서구 배재로 155-40)에서 ‘ Unshakable(흔들리지 않는)’ 을 주제로열린다. 2026 패션집회에서는 개회예배, 저녁집회, 파워페스티벌, 주제 강의, 폐회예배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참가를 원하는 차세대들은 부서별로 제공된 참가 신청 링크에 접속해서 신청서를 작성하면된다. 김선재 목사(차세대본부장)는 “패션집회 ‘Unshakable’ 에 참가하는 모든 청소년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고당부했다. / 홍하영 기자
2026-01-10 제1572호
[News] "온누리의 새해는 선교와 함께 시작합니다!" “온누리의 새해는 선교와 함께 시작합니다!” 1월 3~4일, 10~11일‘2026 선교헌금 작정’ 선교헌금작정서,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전화 참여 온누리의 새해는 선교와 함께 시작된다. ‘2026 선교헌금 작정’ 을 1월 3~4일과 10~11일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예배에서 한다. 이날 예배에서 나눠주는 ‘ 선교헌금작정서’ 를 작성해서 제출하거나 영상예배 QR코드,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 더보기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 전화로도 참여할 수 있다. 선교헌금 작정에 참여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자동이체(CMS)’ 나 ‘ 봉투’ 중에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개인정보, 금액 등을 정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개인정보 수집 및 제공 동의도 반드시 해야 한다. 선교헌금 증액 및 해지는 전화(02-3215-3616)로 문의하면 된다. 자동이체 방식으로 선교헌금을 봉헌하는 성도들은 자동으로 연장된다. 자동이체 날짜는 매월 25일이다. 봉투로 선교헌금을 봉헌하는 성도들은 ‘ 선교헌금작정서’ 를 다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온누리교회는 선교헌금 119억 원(11,934,019,785원)을 선교사 후원(62%), 선교사역비(15.5%), 시설운영비(9.6%), 기관 지원(8.9%), 행정운영비(4.1%) 등에 사용했다. ‘2026 선교헌금’ 은 선교사 후원(60%), 선교사역비(16%), 기관 지원(9%), 시설운영비(9%), 행정운영비(5%)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이재훈 위임목사는 목회서신에서 “선교는교회의 심장”이라면서 “새해에도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 명령에 순종하며 끊임없이 나아가자”고 권면했다<관련기사4면>. 한편 2026 선교사 간증집 <눈물이 기쁨 되어>가 출간됐다. 전 세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19유닛의 간증이 담겨있다. 1월 4일과 11일 일요주일 예배 이후 성도들에게 배포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로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문의: 02-3215-3616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나를 따르라’ 1월 5~17일 매주 월~토 오전 5시 30분 각 캠퍼스 본당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가 시작된다. 1월 5일(월)부터 17일(토)까지 매일 오전 5시 30분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본당에서 열린다.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과 CGN에서는 실시간 중계를 한다. 토요일에는 전세대가 함께 예배드린다.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첫째 주에는 1월 5일(월) 이재훈 위임목사 ‘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눅 2:49), 6일(화) 도육환 목사 ‘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눅 7:24), 7일(수) 유현목 목사 ‘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막 10:35~40), 8일(목) 김승수 목사 ‘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 16:21~28), 9일(금) 김승훈 목사 ‘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 8:22~25), 10일(토) 노희태 목사 ‘ 너희 중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겠느냐?’(마 6: 25~34)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한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새해에도‘공동체성경읽기’ 유튜브 채널, 2부 새벽기도회, 공동체성경읽기 모임 새해에도 ‘ 공동체성경읽기’ 를 한다. 공동체 성경읽기에 참여를 희망하는 성도와 공동체는 세 가지 방법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첫째, 매일 자정 유튜브 ‘ 365 성경읽기’ 채널에 업로드되는 ‘ 절기별 영상’ 을 시청하면 된다(2월부터는 공동체성경읽기 앱을 통해 제공). 하루 15~17분 분량이다. 공동체가 함께 참여할 때는 SNS 단체대화방을 개설하고, 공동체 총무나 순장, 정해진 사역자가 매일 자정에 업로드되는 영상의 링크를 공유하면 된다. 성경읽기 진도표는 온누리교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책 갈피형 성경읽기 진도표는 1월 한 달간 온누리교회 안내데스크 및 헌금함 위에 비치 될 예정이다. 둘째, ‘서빙고온누리교회 2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것이다.월요일부터금요일까지 오전 6시 30분 선교관 3층 비전홀에서 진행된다. 셋째, ‘ 공동체성경읽기 모임’ 에 참석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일정과 장소 등은 추후 공지한다. 문의: 02-3215-3239 / 박지혜 기자 청년부 리더십 콘퍼런스, 대학부 연합 콘퍼런스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는‘겨울 아웃리치’ 대학청년부 ‘ 청년부 리더십 콘퍼런스’ , ‘ 대학부 연합 콘퍼런스’ , ‘ 겨울 아웃리치’ 가 이어진다. 2026 청년부 리더십 콘퍼런스는 1월 9일(금)부터 11일(일)까지 영산수련원(경기도 파주시조리읍 등원로 391번길 42)에서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진행된다. 대학부 연합 콘퍼런스는 1월 9일(금)부터 11일(일)까지 소망수양관(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건업길 122-83)에서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이어진다. 대학청년부 겨울 아웃리치는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약 한 달 동안 이어진다. 일본, 대만, 베트남 등지에서 노방전도, 부흥집회, 현지 청년 집회, K-문화 사역 등을 할 예정이다.
2026-01-03 제1571호
[News]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1일 성탄주일예배 24일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25일 성탄감사찬양예배 온누리교회가 온 누리와 함께 풍성하고 따뜻한 성탄절을 보낸다. 12월 20~21일 성탄주일예배, 24일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25일 성탄감사찬양예배를 드린다.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캠페인과 문화 행사도 내년 초까지 이어진다. ‘성탄주일예배’ 는 12월 20일(토)과 21일(일)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드린다. 이날 예배에서는 찬양사역팀이 ‘ 성탄 칸타타’를 한다. 12월 21일(일) 차세대 예배에서는 ‘성탄가정예배 가이드’ 가 담긴 갑티슈를 선물로 준다. 12월 24일(수)에는 ‘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이 열린다. ‘ Love Came Down(사랑이 오셨네)’ 을 주제로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에서진행된다. 서빙고는 오후 7시 30분 본당, 양재는 오후 7시 30분 사랑홀에서 열린다. 부천은오후 7시 30분 본당에서 ‘ 선물’ 을 주제로 크리스마스 패밀리 워십, 남양주는 오후 7시 30분 본당에서 ‘ 한 구유 이야기’ 를 주제로 성탄절 콘서트, 영종은 오후 7시 30분 백향목홀에서 ‘Joyful Christmas’ 를 주제로 성탄전야제를 한다. ‘성탄감사찬양예배’ 는 12월 25일(목) 1부 오전 9시, 2부 11시 30분, 3부 오후 1시 50분본당에서 드린다(서빙고와 양재 기준). 부천,수원, 대전은 1부 오전 9시, 2부 오전 11시 30분, 인천은 1부 오전 9시, 2부 오전 11시, 남양주, 강동, 양지, 영종, 제주는 오전 11시, 평택은 오전 10시 30분에 성탄감사예배를 드린다.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캠페인과 문화 행사도 풍성하다. 전도대상자를 순예배에 초대해서 교제의 기쁨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는 ‘ 열린순예배’ 를 드린다.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순에서 연말까지 기획하고 실행한다. 여러 사정으로 순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나 마음에 품고 기도하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을 초대해서 영화관, 음식점, 카페 등에서 자유롭게 순예배를 드리면 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에서 ‘열린순예배 <가이드북>’ 을 제공한다. 온누리 아트비전에서는 정기 회원전 ‘ 크리스마스 선물전’ 을 개최한다. 2026년 1월 4일(일)까지 온누리청소년센터 2층 온누리 아트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소품을 작품당 20만 원에 판매하고, 그 수익금 절반을 NGO 더멋진세상에 후원한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2025-26 송구영신 및 신년예배 1월 5~17일‘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2025-26 송구영신 및 신년예배’ 를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본당에서 드린다. 송구영신예배는 12월 31일(수) 서빙고와 양재 오후 7시, 오후 9시, 오후 11시 부천 오후 8시, 오후 10시, 수원 오후 8시 30분, 오후 11시, 대전 오후 9시, 오후 11시, 인천 오후 7시, 오후 9시, 평택 9시, 남양주, 강동, 양지, 영종, 제주는 오후 11시에 드린다. 신년예배는 서빙고와 양재 1월 1일(목) 오전 9시, 오전 11시 30분, 부천, 대전 오전 10시, 남양주, 인천 오전 11시에 드린다. 수원, 평택, 강동, 양지, 영종, 제주는 신년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1월 5일(월)부터 17일(토)까지는 ‘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가 이어진다.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오전 5시 30분 국내 온누리교회 캠퍼스 본당에서 진행된다.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과 CGN에서 실시간 중계한다. 이재훈 위임목사, R.T.Kendall 목사,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 강부호 목사(양재온누리교회)가 말씀을 전한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대청, ‘크리스마스 블레싱’ 시작 12월 28일까지 전국 30여 개 지역에서 대학청년부 ‘ 크리스마스 블레싱’ 이 시작됐다.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들이 12월 20일(토)부터 28일(일)까지 전국 30여 곳으로 흩어진다. 크리스마스 블레싱은 전국의 지역 교회, 군부대, 그룹홈, M센터 등지를 찾아가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하는 대학청년부의 대표적인 겨울 사역이다. 올해는 서울(서초, 강동, 은평 등), 경기(고양, 안산, 파주 등), 충청(단양, 음성, 옥천 등), 경남(진주, 산청, 하동 등), 전라(김제, 남원, 군산 등) 등 전국 30여 개 지역에서 이웃 초청 잔치, 어린이 성경학교, 마을 전도, 새벽송, 노방 찬양, 이주민 연합 예배, 군장병 초청 집회, 자립준비청년 멘토링 등을 한다. 지난 12월 6일(토)부터 13일(토)까지 이어진 ‘사랑愛나눔’ 은 막을 내렸다. 올해는 서울 시내 주민센터 및 복지관과 협력해서 사역했다. 온누리교회 소속 청년 1,100명이 홀몸 어르신과 다문화가정, 차상위계층 등 1,075가구에 물품을 선물했다. 이웃들에게 전달한 선물은 온누리교회를 드러내지 않고, 지역 교회와 기관 이름으로 전달했다. / 홍하영 기자 NGO 더멋진세상, 스리랑카 사이클론 피해 지역 긴급구호 NGO 더멋진세상이 사이클론 ‘ 디트와(Ditwah)’ 로 큰 피해를 본 스리랑카 주민들에게 식수와 식료품, 위생용품 등 긴급구호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의약품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스리랑카 사이클론 피해 복구를 돕는 모금운동도 전개한다. 동참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NGO 더멋진세상 후원계좌(하나은행 573-910009-09905)로 후원금을 보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02-2271-2246)로 문의하면 된다. 현재 스리랑카는 사이클론의 영향으로 저지대와 산간 지역 건물이 무너지고, 연쇄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엄청나다. 대규모 침수 피해까지 겹치면서 생활이 어려운 지경이다. / 홍하영 기자 평택온누리교회 창립 20주년 12월 21일 오전 11시 30분 본당 평택온누리교회 창립 2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12월 21일(일) 오전 9시, 오전 11시 30분 본당에서 드린다. 신동식 목사(평택온누리교회 담당) 설교, 창립 20주년 기념 감사 케이크 커팅식, 성탄 칸타타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평택온누리교회는 2005년 12월 25일 국내 일곱 번째 캠퍼스로 창립했다.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정을 섬기고, 젊은 부부와 차세대 양육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박지혜 기자
2025-12-20 제1569호
[News]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대학청년부 겨울사역‘사랑愛나눔’,‘크리스마스 블레싱’ 홀몸 어르신, 다문화가정, 차상위계층, 지역 교회, 군부대 등 섬김 올겨울에도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들고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간다. 2025 대학청년부 겨울사역이 막 올랐다. 지난 12월 6일(토)부터 ‘ 사랑愛나눔’ 이 시작됐고, 12월 20일(토)부터 ‘ 크리스마스 블레싱’ 이 이어진다. ‘사랑愛나눔’ 은 서울 시내 주민센터, 복지관, 지역 교회 등과 함께 홀몸 어르신, 다문화 가정, 차상위계층 등에 식료품과 생필품을 전달하는 사역이다. 온누리교회 이름 대신 지역 교회와 기관 이름으로 이웃들에게 선물을 전달한다. 올해 ‘ 사랑愛나눔’ 에는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 1,100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이웃 1,075가구를 방문할 계획이다. ‘크리스마스 블레싱’ 은 지역 교회와 군부대, 그룹홈, M센터 등지를 방문해서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사역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블레싱은 서울시 서초구, 강동구, 은평구, 경기도 고양시, 안산시, 파주시, 충청북도 단양군, 음성군, 옥천군, 경상남도 진주시, 산청군, 하동군 등 30여 개 지역에서 한다. 이웃 초청 잔치, 어린이 성경학교, 마을 전도, 이주민 연합 크리스마스 예배, 군장병 초청집회, 자립준비청년 멘토링, 새벽송, 성탄 전야제 행사, 노방찬양 등을 한다. 지난해 ‘ 사랑愛나눔’ 에는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 955명이 참가했다. 서울 시내 주민센터, 복지관, 지역 교회 등과 연합해서 이웃 1,185가구에 쌀과 김치, 생필품을 전달했다. ‘ 크리스마스 블레싱’ 에는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 2,324명이 전국 23개 지역 교회, 군부대, M센터 등지를 찾아가 이웃 초청 잔치, 어린이 성경학교, 마을 전도 등을 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이웃과 함께“메리 크리스마스”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5’, ‘열린순예배’ 온누리교회가 이웃과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5’ 와 ‘열린순예배’ 가 이어진다.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5’ 는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며 성도들이 만든 그림과 사진으로 이웃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크리스마스 축제다. 이벤트에 참여한 60명을 선발해서 그 성도들의 이름으로 자립준비 청년들에게 크리스마스 쿠키와 카드를 전달한다. 축제에 참여하기 원하는 성도들은 크리스마스 카드(그림, 캘리그래피, 사진, 디지털 아트 등)를 직접 만들어서 제출하면 된다. 인스타그램 DM이나 해시태그(#온누리의크리스마스2025), 이메일(onnurismart@gmail.com), 우편(서울 용산구 이촌로 347-11 온누리교회 본관 지하 1층, 소셜 네트워크 팀 이경희 사역자) 중에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순에서 연말까지 ‘열린순예배’ 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여러 사정으로 순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나 마음에 품고 기도하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을 초대해 영화관, 음식점, 카페 등에서 자유롭게 순예배를 드리면 된다. 2025 성탄 예배는 12월 24일(수)과 25일(목) 드린다. 수요목양예배 ‘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은 12월 24일(수)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열린다. 성탄찬양예배는 12월 25일(목)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에서 드린다. 서빙고 기준 1부 오전 9시, 2부 11시 30분, 3부 오후 1시 50분에 본당에서 드린다. / 홍하영 기자 CGN 다큐 영화 ‘무명(無名)’수상 제17회 한국기독언론대상 해외선교부문 최우수상 CGN이 제작한 다큐 영화 ‘ 무명(無名)’ 이 한국기독언론인연합회(CJCK)가 주최한 ‘2025 한국기독언론대상 해외선교부문 최우수상’ 을 수상했다. 12월 4일(목) 새문안교회 언더우드홀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현재 영화 ‘ 무명(無名)’ 은 영화 1:1 결연 캠페인 ‘ 무명(無名)의 복음 릴레이’ 와 ‘ 찾아가는 상영회’ 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 무명(無名)의 복음 릴레이’ 는 후원금 1만 원당 1명의 선교사가 영화 ‘ 무명(無名)’ 을 볼 수 있도록 CGN이 초대하는 캠페인이다. ‘ 찾아가는 상영회’ 는 미자립교회 목회자와 성도, 재소자, 해외 선교사와 한인 디아스포라를 위해 지역 교회나 교도소, 지역 영화관 등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캠페인이다. 문의: 02-3275-9363 / 홍하영 기자 온누리교회 장로 64명 장립 2025 장로장립예배 명예장로 3명, 시무장로 61명 온누리교회 신임 장로 64명이 세워졌다. 12월 6일(토) 오후 4시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 2025 장로장립예배’를 드렸다. 명예장로 3명, 시무장로 61 명이 장립됐다. 2025 장로장립예배는 당회서기 이인용 장로 대표기도, 장로합창단 특별찬양,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설교, 최이정 장로 장립자 간증, 합심기도, 서약, 세족식, 이재훈 위임목사 안수기도 및 선포, 이재규 장로 권면, 크룩스 특순, 선물 증정, 장로의 기도와 답가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신임 장로들은 ‘ 2025 장로사관학교’를 수료하고, 노회에서 치른 장로고시를 통과했다. / 홍하영 기자 NGO 더멋진세상, 스리랑카 사이클론 피해 지역 긴급구호 NGO 더멋진세상이 스리랑카 사이클론 ‘ 디트와(Ditwah)’ 피해 지역에서 긴급구호를 한다. 스리랑카는 현재 저지대와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침수, 건물 붕괴, 연쇄적 산사태가 발생해서 일상이 마비된 상황이다. NGO 더멋진세상은 스리랑카 수재민들에게 식수, 식품, 위생용품 등 긴급구호 물품을 지원하고, 치료와 전염병 예방을 위한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다. 스리랑카 사이클론 디트와 피해 지역 긴급구호에 동참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NGO 더멋진세상 후원계좌(하나은행 573-910009-09905)로 후원금을 보내면 된다. 문의: 02-2271-2246 / 홍하영 기자
2025-12-06 제1567호
[2026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2026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1.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2. 그들은 왜 평생 선교를 했을까?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황재숙 명예권사, 노국자 권사, 채현석 집사에게 묻다 “그냥.” 세 사람에게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공통으로 돌아온 대답이었다. 아무 의미도, 뜻도 없다는 의미의 말이 결코 아니다. 선교는, 선교헌금은 숨을 쉬듯이, 밥을 먹듯이 아주 자연스럽지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그 특별함을 ‘그냥’이라는 말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들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년 선교헌금을 작정하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선교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선교는 온누리교회의 심장입니다’라는 슬로건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그 주인공은 황재숙 명예권사, 노국자 권사, 채현석 집사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사실, 질문 자체가 식상해서 물을지말지를 고민했었다. 그렇다고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질문이었다. "처음 선교에 관심을 두고, 선교헌금을 작정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세 사람 모두 각자 삶의 모양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세 사람에게는 공통된 대답과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선교와 선교사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들 마음의 뿌리부터 분명 선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는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라는 표현에 깊이 감동하고, 선교헌금 작정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온누리교회에 와서 교육받으면서 신앙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마음에 쏙 와닿았습니다. ‘내가 선교 현장에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선교사님들의 선교에 동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선교헌금을 시작했고, 멈출 수 없었습니다.” 노국자 권사는 선교사들의 어려운 현실이 담긴 <선교사의 편지>를 읽고 기도와 후원을 결심했다. “20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파송한 어느 선교사님이 후원이 너무 절실해서 금식하며 사역하고 있다는 편지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낼 때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축복했는데, 보내고 나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매일 밤 9시에 동역자들과 함께 그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매년 선교헌금 작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채현석 집사는 젊은 시절 동료 선교사를 돕던 경험이 선교헌금 작정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몸담았던 선교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면서 그분들을 위해 조금씩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온누리교회에 와서 매년 새해 첫 주와 둘째 주일에 선교헌금 작정 행사에서 틀어주는 선교사님들의 영상을 보고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온누리교회에서는 본격적으로 선교에 동참할 수 있겠구나, 선교사님들과 마음을 함께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헌금은 저에게 선교사님들과 함께 나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선교헌금을 향한 마음을 오랜 세월 지키는 것이다. 사실 오래도록 한마음을 지키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변하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채현석 집사는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린 마음과 헌신을 무겁게 받아들이시고, 삶 가운데 반드시 보상하신다는 의미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는 ‘이 상황에서 계속 선교헌금을 해도 괜찮을까?’ 걱정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직장이 달라지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것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채 집사는 “보상이 반드시 물질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어떤 이에게는 건강으로, 어떤 이에게는 평강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삶의 안정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가 믿음으로 선교헌금 작정 행사에 동참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 고백을 듣는 내내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들이 주는 생활비로 지내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그 시기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이럴 때일수록 선교헌금은 절대로 줄이면 안 된다’였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덕분에 더 큰 믿음으로 선교헌금을 작정했습니다.” 그날 이후 나타난 변화를 떠올리면서 황 명예권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날 이후 아들의 사업이 조금씩 안정되었고, 겪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도 하나둘씩 해결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고치신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감사였습니다.” 중요한 건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려는 마음 노국자 권사는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성도들에게 “망설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선교헌금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수님이 두 엽전을 가장 큰 헌금으로 받으셨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을 권할 때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께 우리가 커피 한잔 대접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느냐?’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직접 대접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으로 마음을 조금씩 나눠서 동참하자는 뜻입니다” 채현석 집사는 노국자 권사의 제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했다. 그는 각자의 형편에 맞게 시작하되, 그 안에서 믿음을 조금씩 넓혀갈 것을 권면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조금 부담되지만 해볼 수 있겠다’는 지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려는 마음입니다.” 채현석 집사는 이 마음과 다짐을 훈련에 비유했다. “내가 1미터를 뛸 수 있는데, 늘 1미터만 뛰면 성장이 어렵습니다. 익숙한 수준에 머무르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시도가 성장을 이끕니다. 선교헌금 작정 역시 믿음의 성장을 위한 도전이 필요합니다” 은총, 관심, 하트 풍선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선교헌금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 세월 선교헌금을 이어오며 깨달은 본질이 그 한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는 선교헌금을 ‘은총’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시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고 보장해 주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노국자 권사는 선교헌금을 ‘관심’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내가 드린 선교헌금이 어느 나라로, 어떤 선교사에게 전달되는지를 알면 부담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깁니다. 그 관심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되어서 선교헌금으로 이어집니다.” 채현석 집사는 선교헌금을 ‘하트 풍선’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기도 모임에서는 기도를 선교지를 향해 쏘는 미사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선교헌금은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들께 따듯함과 위로, 힘을 전하는 하트 풍선 아닐까요?”
2025-12-20 제1569호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은 희망 그 자체!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은 희망 그 자체! 우크라이나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 “엄마가 배고프면 안 되잖아요.”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마을. 두 소년이 구호품으로 받은 통조림을 엄마의 무덤가에 내놓으며 말했다. 두 소년의 엄마는 폭격을 피해 지하실에 숨어 몇 날 며칠을 지내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다가 굶주림 속에 세상을 떠났다. 국경에서 이 소식을 접한 어느 선교사 부부가 두 소년을 찾아갔다. 함께 식사하며 어린이 성경을 전달했고, 2년 동안 그 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그 참혹한 절망의 땅, 눈물의 땅에서 한 줄기 빛을 발하며 희망의 꽃을 피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NGO 더멋진세상 협력 선교사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가 그들이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사실 처음부터 우크라이나를 마음에 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선교 역사를 알고 싶어서 던진 ‘왜 우크라이나인가요?’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청년 시절, 영락교회에서 봉사하던 두 사람은 선교 비전을 품고 부부가 되었다. 하나님과 선교, 목회를 더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 신학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 일산 세광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며 목회에서 얻는 보람과 기쁨에 선교의 소명을 잊을 뻔했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신학교에서 강사로 초청받았다. “일주일 동안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준비를 하는데, 학장님이 함께 사역하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낯선 땅, 우크라이나에서 사역이 시작됐다. 40대 황금의 시간 10년을 드리고자 시작한 사역이 벌써 20년이 되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우크라이나에서 사역하면서 늘 ‘왜 우크라이나일까?’라는 질문을 품었다. 20여 년이 지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터지고 그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며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난민들이 국경을 넘으며 절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아픔이 제 눈물이 되었을 때 그제야 ‘하나님이 바로 이때를 위해 우리를 이곳에 보내셨구나’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40장 1절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을 질문의 답으로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면 충분합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자신들을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곳의 언어와 문화, 정서가 한국보다 익숙해졌다. 그곳에서 세월이 20년이다. 오랜 시간 그곳에서 교회 개척, 지도자 훈련, 한글학교, 묵상집과 신앙 서적 보급(약 19만 권), 심장병 환아 수술 지원 등의 사역을 했다. 사람을 세우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그들 곁에 문영기 장로와 황명덕 권사 부부(이촌공동체)가 이끄는 ‘선의재단’이 있었다. 문 장로와 황 권사의 아낌없는 기도와 후원이 사역에 큰 도움이 됐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비영리법인 선의 우크라이나’를 설립하고, 문서사역을 했다. 묵상집과 신앙 서적 19만 권을 우크라이나 곳곳에 보급했다. 수천 권의 책을 직접 분류하고 발송하는 고된 육체노동의 연속이었지만,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질 때면 힘이 났다. “고된 작업으로 몹시 지쳐있었는데, 교도소에서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큰 범죄를 저질러서 12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23세 청년 레오니드가 묵상집을 읽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제 마음에는 예수님이 주신 소망과 사랑이 있습니다’라는 그 청년의 고백을 읽는 순간 피곤함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사역이 힘든 날이면 ‘주님, 레오니드 한 사람의 변화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힘을 얻습니다.” 심장병 환아 수술비 지원을 받은 한 엄마의 편지도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 엄마는 “어린 제 아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희 가정에 머물던 재앙이 사라졌습니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절망 속에 좌절하던 가족이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편지와 소식은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에게 사역을 이어갈 힘이자 기쁨이 됐다. 난민이면서, 난민을 돕는 사역자 기쁨과 감사, 보람이 가득했던 20년이 잿빛으로 변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에서 교민 철수 명령을 내렸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도 인근 국가인 루마니아로 피신했지만, 마음은 항상 국경 너머 우크라이나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경으로 수많은 난민이 몰려들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 국경 근처 도시로 향했다. “엄마들이 한 손으로는 아이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을 들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가족과 생활 터전을 모두 잃었으니 그 아픔을 어찌 말로 다하겠습니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 도움의 줄 손길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자기도 난민이면서 동시에 난민을 돕는 사역자가 된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난민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가족과 마을, 집을 잃은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 무렵, NGO 더멋진세상과 동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NGO 더멋진세상과 2019년부터 ‘더 멋진 마을 개발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연되던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될 무렵 전쟁이 터진 것이다. NGO 더멋진세상과 온누리교회가 난민들을 위해 지체없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전쟁 소식을 듣자마자 중보기도는 물론이고, 후원금과 긴급구호 물품을 빠르게 보냈다. 긴급 구호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우크라이나로 구호 물품을 보낼 통로가 필요했다. 그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다. 전쟁 피해가 심각했던 부차에 사는 성도 미꼴라이, 나타샤 부부에게 연락이 왔다. 연락이 끊겨 생사조차 알 수 없어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 저희 살아 있어요!”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 문자를 받고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기쁨의 통곡을 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존한 미꼴라이, 나타샤 부부에게 회복할 시간을 가지라고 권면했지만, 그들은 주변에 더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며 부차에 머물렀다. 우크라이나 입국이 금지되었던 기간에 그 부부를 통해 부차와 체르노빌 인근 지역 등 피해가 심했던 지역에 구호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다. 지금, 우크라이나에 거센 부흥의 불길이 불고 있다. 전쟁 전후를 비교한 통계를 보면, 우크라이나 교회 예배 참석률이 17%에서 42%로, 기도 생활은 19%에서 48%로, 자원봉사 참여율은 5%에서 26%로 급증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는 10%에서 85%까지 치솟았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영적으로 목말라 있습니다. 평일에도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합니다. 고통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난민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먹을 것이나 잠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라는 말씀 한 구절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품고 용기 얻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지금 체르노빌 원전을 포함하는 이반키우 지역의 전쟁고아 77명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전쟁 중 부모가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본 극심한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위탁가정의 주거지 마련, 아이들이 꿈을 키우며 공부할 수 있는 컴퓨터실,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작은 극장, 맘껏 뛰놀 수 있는 풋살 경기장 같은 시설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페도립브카 마을의 오염된 식수 해결, 시도로비치 마을의 선교회관 복구, 모자원 및 조손가정을 위한 센터건립 등 해야 할 사역이 많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지원이 단순한 구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 선교 주자를 세우는 거룩한 나눔’이라고 강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이제 그 빚을 갚을 때입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우리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성품이 선하고,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며, 고난을 통해 더욱 단단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그들의 손을 잡아준다면, 믿음으로 일어서서 자신들을 침공한 러시아, 쇠퇴한 유럽의 교회, 더 나아가 이슬람권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연일 포탄이 날아드는 우크라이나에서 지금도 많은 한국 선교사가 현장을 떠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두려움 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울고 있는 사람들 곁에 머무르고 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도 7월 말 다시 우크라이나로 간다. 그곳에서 예배를 회복하고, 사람을 세우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그들은 희망 그 자체다. 이제 우리가 그들과 함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166101-04-021656 김태한(UKR 복음주의신학교)
2025-07-19 제1549호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 그 외로운 어르신들을 찾아온 천국!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 그 외로운 어르신들을 찾아온 천국!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아주 특별한 방문 온누리교회 올해 표어‘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표현이‘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준비된 신부만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준비된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 성품을 닮은 사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온누리신문>에서 바로 그들,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 다섯 번째 주인공은‘S브릿지 이웃사랑팀’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은 매월 홀몸 어르신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아프고, 외롭고, 쓸쓸한 홀몸 어르신들에게 천국을 선물하고 있다. 그들의 아주 특별한 방문을 소개한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사회선교본부 서빙고 이웃사랑팀과 함께 S브릿지공동체 이웃사랑팀(이하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서빙고동, 동빙고동, 보광동, 청파동에 사는 홀몸 어르신들의 집을 찾는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씩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하고 말벗이 되어 드린다. 건강은 어떤지, 지난달에는 무슨 일이 있었 는지, TV에서 본 드라마는 어땠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묻고 답하며 봄날의 햇살 같은 따듯한 시간을 선물한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작은 천국이 만들어진다. 나를 잊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게… S브릿지 이웃사랑팀은 2021년부터 이 사역을 했다.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한복판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르신들의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직접 찾아가는 것 말고는 도움을 드릴 방법이 없었기에 결단을 내렸다. 당연히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조치를 강력하게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 홀몸 어르신 가정 방문’ 사역이 그렇게 시작됐다. S브릿지공동체 자체적으로 이웃사랑팀을 만들고, 사회선교본부와 함께 사역을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아프고, 외롭고, 쓸쓸한 어르신들이 코로나19로 인해고립까지 된 최악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예수의 사랑을 품은 교회와 성도들이 나선 것이다. 홀몸 어르신 가정 방문 사역은 한시적인 게 아니다. 계속 이어지고 있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매월 홀몸 어르신 댁을 방문해서 지역상품권과 반찬 등을 전달한다. 결코 물질적인 도움만 드리는 게 아니다. 홀몸 어르신들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존재가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특별한지 모른다. 홀몸 어르신들이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방문을 “한 줄기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다. 홀몸 어르신들에게 S브릿지 이웃사랑팀은 ‘ 아무도 찾지 않는 나를 잊지 않는 존재’ 이다. 김동숙 어르신(74세, 보광동)은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방문하는 날이면 심장이 요동친다. 평소에는 TV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데,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방문하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방문 그 자체가 천국이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천사들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오는 날만 되면 심장이 벌렁거려요. 너무 기대돼서 옷도 예쁘게 입고 기다린다니까요. 평소에는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거나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는데, S브릿지 이웃사랑팀만 오면 내 마음이 천국이 되지요. 나는 결혼을 안 해서 가족이 없는데, S브릿지 이웃사랑팀 덕분에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김동숙 어르신이 처음부터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방문을 반긴 것은 아니다. 낯을 많이 가리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해서 첫 방문 때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기도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S브릿지 이웃사랑팀에게 포기란 없었다. 김동숙 어르신의 마음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철마다 맛있는 과일을 가져가고,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햄버거를 사다 드리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다. 항암치료로 고생하는 어르신을 위해 십시일반회비를 모아 침대도 선물했다. 어디 그뿐인가. 길이 좁고 가파른 동네라 침대 배달이 안 된다고 해서 직접 그 큰 침대를 어르신 집까지 옮겨 드렸다. 그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그 까칠하던 김동숙 어르신이 눈물을 보이며 S브릿지 이웃사랑팀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 지금은 누구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열렬한 팬이 됐다. 이정림 팀장(S브릿지 이웃사랑팀)은 홀몸 어르신들이 마음을 열어주실 때 금은보화를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홀몸 어르신들이 마음을 여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가 찾아오지 못하도록 일부러 모진 말을 던지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도 저희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홀몸 어르신들은 하나님이 저희에게 맡기신 한 영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찾아뵐 것입니다.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도 괜찮습니다. 홀몸 어르신들이 아주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시면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립니다. 금은보화를 얻은 것처럼 기쁩니다. 어르신들의 미소 한 번이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합니다.” 박순정 어르신(80세, 보광동)도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그들이문을 두드리면 버선발로 뛰쳐나와 반긴다. 뜨듯하게 아랫목을 데워뒀다가 내어주는 큰 사랑을 주면서도 따듯한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몹시 미안해하신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찾아올 일이 없습니다. 아들 내외가 가끔 오기는 하는데, 그마저도 없는 날에는 종일 벽만 보고 있습니다. 하도 말을 안 해서 입술이 말라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나를 잊지 않고 매월 찾아와 줍니다.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모릅니다. 나한테는 아들밖에 없는데, 살가운 딸들이생긴 것 같아 정말 좋습니다.” 박순정 어르신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다가 S브릿지 이웃사랑팀이 일어날 때가 되면 옛날 이야기를 또 끄집어내신다. 그들이 가는 게 못내 아쉽고, 조금이라도 사람의 온기를 더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박지혜 자매(S브릿지공동체)는 박순정 어르신에게 같은 이야기를 열댓 번도 더 들었지만, 그 마음을 알기에 지겹지 않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혼자 얼마나 외로우셨겠어요? 이야기 나눌 친구도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저희의 방문이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더 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옛날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외로운 어르신들의 마음을 알기에 같은 이야기라도,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더라도 더 잘 들어드리고싶습니다. 예수님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친히 찾아가셨던 것처럼, 저도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찾아가 그분들에게 삶의 작은 기쁨이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존재는 홀몸 어르신들에게 단순한 봉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방문이 어르신들에게 웃음꽃을 피워주고, 메말랐던 마음에 사랑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그 아름다운 섬김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그리운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그저 시간을 쪼개고 마음을 내는 것이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S브릿지 이웃사랑팀 모두가 겸손했다. 김신실 자매(S브릿지공동체)는 홀몸 어르신을 섬기는 일은 ‘ 작은 선함을 실천하는 기회’ 라고 했다. “故 이어령 교수님이 생전 인터뷰에서 ‘ 파 뿌리 하나와 같은 선함이 누구에게나 있다’ 고 말씀하신 걸 들었습니다. 저에게도 그 작은 선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에서의 섬김은 그 작은 선의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기회입니다. 어르신들이 저희를 만날 때마다 무척 행복해하시고,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신은주 자매(S브릿지공동체)는 홀몸 어르신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저희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보면서 이 사역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 귀한 사역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어르신들과 마음을 나누고, 그분들께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어르신들이천국 가실 때까지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켜드릴 것입니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사랑을 전할 때마다 천국이 가까워진다.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든 따뜻한 말 한마디에, 손꼽아 기다려지는 발걸음에, 외로움을 덜어주는 손길 속에 천국이 존재한다. S브릿지 이웃사랑팀의 섬김이 홀몸 어르신들의 하루하루를 천국으로 바꾸고,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처 럼 말이다. 이웃사랑팀 사역 문의: 010-9802-2395
2025-04-11 제1536호
[르포] 그 아픈 눈물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과 함께! 다 타고, 무너지고, 생명도 잃고… 그 아픈 눈물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잿빛이었다. 진짜 다 타고, 무너지고, 너무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그 현장은 정말 참혹하고 끔찍했다. 지난 3월 22일(토)부터 열흘 가까이 이어진 경북 산불이 가져온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그 크고 무서운 산불을 겨우 진화했더니, 이제는 검게 그을린 깊은 상처가 드러났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그 푸르던 숲이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렸다. 주민들의 눈물이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을 위로하고, 그 아픈 눈물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워야 했다. 그것이 교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가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을 파견했다. 그들과 동행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찾아가는 길부터 쉽지 않았다. 거리도, 교통편도 그리고 마음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영양군 석복면을 찾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그 푸르던 곳이 온통 검게 그을렸다. 모든 것이 검고, 노랗고,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석보면 포산리마을은 정말 처참했다. 검게 탄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고,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전소된 트럭도 보였다. 검게 탄 트럭 위에 놓인 새하얀 국화꽃이 말할 수 없는 처참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을 만났다. “산에서 불덩이가 날아와 마을 구석구석에 폭탄처럼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불길을 피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마을 사람들이 논 한가운데로 모였겠습니까? 대피할 공간이 없어서 뻥 뚫린 논이 안전할까 싶어서 그곳에 모였습니다.” 주민들은 겪어보지 않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 떨었다. 산불은 5분 만에 8km를 달려와 모든 걸 집어삼켰다. 발전기와 통신장비마저 망가뜨려 전기도, 전화도 끊겼다. 주민들이 완전히 고립됐다. “여기 있으면 죽겠다 싶어서 차를 몰고 무작정 내려갔습니다. 불길이 차를 넘어 다니더라고요. 연기가 가득해서 앞은 하나도 안 보이고…. 참말로 여기서 죽는갑다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무사히 빠져나왔는데, 옆 동네에서는 길에 갇혀 죽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무섭고 기가 찹디다.”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분명 희망이 살아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절망과 슬픔이 드리운 현장에서 한 가닥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온누리교회가 파견한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의 위로와 헌신이 주민들에게 위안이 됐다. 온누리교회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은 NGO 더멋진세상과 대학청년부 5개 공동체에서 모인 청년 10명이다. 지난 3월 30일(일) 대학청년부 주일예배에 긴급구호팀 모집 광고를 내자마자 청년들이 발벗고 나섰다. 하루 만에 긴급구호팀을 결성했다. 이기세 형제(여호수아청년부, 조달팀장)는 잠시 생업을 내려놓고 긴급구호에 뛰어들었다. “이번 경북 산불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특히 고령의 어르신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고 도울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긴급구호팀원 모집 광고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회사에 양해를 구했더니 흔쾌히 지지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과 헌신이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그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의 하루는 새벽 3시부터 시작됐다. 가장 먼저 식사팀이 나섰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아침 식사 배식과 배달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날 즈음인 새벽 5시 30분부터는 안내팀과 조달팀이 도시락 포장과 배식을 했다. 주민들의 식사가 끝나도 쉴 틈이 없었다. 설거지와 다음 식사를 곧바로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청년들은 틈틈이 회의하며 이재민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섬길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그 아름다운 청년들의 입술에서는 찬양이 흘러나왔다. 식사팀 이호준 형제(SNS청년부, 식사팀장)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산불로 생활 터전을 잃고 피난처에 계신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게 의식주 해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더욱 정성스럽게 준비했습니다. 저희가 만든 음식을 드시면서 위로받고, 예수님의 사랑이 주민들에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은 이재민들에게 긴급구호 물품도 전달했다. 4월 3일(목) 아침 일찍 식사 배급을 마치고 긴급구호 물품을 포장했다.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옷가지를 담았다. 기독교 마을공동체 보나콤(대표: 강동진 목사)에서 준비한 양말과 속옷, 수건, NGO 더멋진세상에서 지원한 트레이닝복 2천여 벌을 상자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주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가 전달되기를 소망하는 기도도 함께 담았다. 긴급구호품은 이재민들이 대피해 있는 마을회관과 체육관, 교회 등지를 찾아가 직접 전달했다. 이하용 형제(여호수아청년부, 안내팀장)는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다. “경북 산불 긴급구호 팀원들이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도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것처럼 손발이 정말 잘 맞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팀이 만들어졌을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협력했습니다. 오로지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섬기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의 마음이 주민들에게도 전달됐다. 마음마저 잿빛으로 물들었던 주민들이 서서히 미소를 보였다. 한 사람 두 사람 미소가 번지더니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만개했다. 따듯한 밥 한 끼, 건네진 옷 한 벌, 그리고 진심 어린 위로의 말 한마디 덕분에 굳었던 표정이 풀리고, 미소를 되찾았다. 삶의 터전을 잃은 슬픔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고,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포산리마을 주민 한인숙 씨는 다 타버린 논밭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었지만,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의 따뜻한 밥 한 끼에 위안을 얻었다. “우리 동네는 딱 두 집 빼고 다 타 버렸습니다. 전기와 물마저 끊겨서 꼼짝없이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한창 농사철인데 논밭과 농기구가 잿더미가 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너무 막막하고 암담합니다. 그래도 경북 산불 긴급구호팀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음식을 먹으면서 사랑을 느꼈습니다. 배도 채우고, 텅 빈 마음도 채웠습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비친 산불 피해 현장은 말 그대로 참혹 그 자체였다. 그래도 누군가 손을 내밀고, 함께 울어주면서 다시는 없을 것 같았던 희망을 되찾았다. 분명 희망이 살아 있었다. 이제 우리의 기도와 도움의 손길을 이어진다면 다시 생명이 움트고, 그 푸르던 절경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4-05 제15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