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잠 21:14). 이 말씀을 처음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성경이 뇌물을 권하는 것인가?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출 23:8)고 분명히 금하신 하나님이 <잠언>에서는 뇌물이 분노를 그치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니 말이다.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잠언>이라는 책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성서해석학에서는 <잠언>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처방적 잠언’(prescriptive proverb)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서술적 잠언’(descriptive proverb)이다. <잠언> 21장 14절은 후자에 해당한다. “뇌물을 주라”는 명령이 아니라 세상에서 선물과 뇌물이 실제로 분노를 가라앉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기술한 것이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난다. 전반절은 ‘은밀한 선물’이 ‘노’를 쉬게 한다고 말하고, 후반절은 ‘품 안의 뇌물’이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고 말한다. 히브리 시는 후반절에서 전반절의 의미를 반복하면서 한층 더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 여기서도 ‘노’보다 ‘맹렬한 분’ 훨씬 격렬한 분노를 가리키고, 그에 대응해 ‘선물’보다 더 강한 표현인 ‘뇌물’이 사용된다. 이는 분노의 강도가 극에 달할수록 그것을 가라앉히는 데 더 큰 대가가 따른다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은밀한’과 ‘품 안의’라는 표현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건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드러내 놓고 주는 선물은 자칫 과시되기 쉽고,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이나 체면의 상처가 될 수 있다. 반면, 남몰래 건네는 정성은 상대방의 마음 깊은 곳을 움직인다. 성경에도 <잠언>과 꼭 들어맞는 사례가 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20년 넘게 쌓인 분노를 알기에 수백 마리의 가축을 앞세워 보냈다.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창 32:20). 야곱의 속마음을 보면 이것은 순수한 감사의 선물이라기보다 자기 잘못으로 빚어진 분노를 무마하려는 전략적 증여였다. 아비가일 역시 남편 나발의 무례로 온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음식을 급히 준비해서 달려갔다(삼상 25장). 이 역시 순수한 호의라기보다는 절박한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행동이었다. 두 사례 모두 순수한 선물과 정의를 왜곡하는 뇌물 경계 어딘가에 있는 ‘위기를 넘기기 위한 선물’이었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늘 뚜렷하지 않은 현실을 성경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잠언> 21장 14절의 지혜이다. 이 말씀은 뇌물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누군가 내게 분노하고 있을 때 자존심을 세우며 맞서기보다 먼저 조용히 손을 내미는 것이다. 내 잘못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관계를 회복하려는 용기, 드러내 놓고 체면을 세우는 화해가 아니라 은밀하게 마음을 전하는 겸손이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이다. 예수님도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마 5:25)고 말씀하셨다. 갈등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세상의 방식을 관찰한 <잠언>이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이다. /오은규 목사(성동광진 공동체)
2026-04-18 제1585호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최근 우리 가족에게 거룩하고 즐거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온누리성경읽기앱’으로 매일 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갖는 일이다. 말씀을 다 들은 뒤에는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매일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기도로 마무리한다.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자녀들의 기도와 고백을 듣다 보면 부모인 나도 큰 위로와 도전을 받는다. 온 가족이 말씀 안에서 하나 되어 기도로 마음을 모으는 이 시간은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깊은 은혜다. 이처럼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듣고 나누는 행위가 우리 영혼에 얼마나 큰 생명력을 불어넣는지 몸소 체험하며, 바울 사도가 골로새교회에 전했던 권면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본문의 첫머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는 권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거하다(νοικετω)’라는 헬라어는 잠시 방문하는 손님이 아니라, 그 집의 주인으로서 ‘안주하다’, ‘뿌리를 내리다’, ‘계속 머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성경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체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중심인 ‘마음’에 자리 잡고,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통치적 권위를 가진다는 뜻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πλουσω)’ 거한다는 것은 말씀이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자리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당시 유행하던 헬라의 철학이나 영지주의, 금욕주의, 신비주의 등 다양한 거짓 가르침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유일한 해답으로 ‘말씀의 내주’를 제시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세상의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속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갖게 된다. 이어지는 말씀은 말씀이 내주한 결과가 공동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라는 구절은 신앙이 결코 개인주의적인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복음은 공동체 안에서 나눌 때 그 생명력이 배가 된다. 여기서 ‘피차(αυτο)’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가르침이 어느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모든 성도가 서로를 세워가는 과정임을 나타낸다.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 위로를 받듯, 성숙한 성도는 연약한 자를 권면하고, 연약한 자는 순수한 고백으로 공동체에 신선한 도전을 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공통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 스승이자 동역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지혜(πσσοφ)’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말씀의 풍성함은 반드시 찬양의 고백으로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본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기록한다. 말씀이 머리에만 머무르면 교만이 되기 쉽고, 가슴에만 머무르면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 영혼 깊숙이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찬양과 감사가 된다. 여기서 ‘감사하는 마음으로(ντχριτι)’는 문자 그대로 ‘그 은혜 안에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형편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있다.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할 수 있는 ‘신령한 노래’를 얻게 된다. 형식적인 노래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감사의 제사가 드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말씀을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하느냐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삶의 자리로 가져가야 한다. 매일의 시간을 구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주인으로 자리 잡도록 ‘말씀이 머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며 서로에게 권면할 때 우리 입술에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감사의 찬양이 터져 나올 것이다. 말씀이 머무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는 성소임을 기억하며 말씀 앞에 우리 마음의 자리를 내어 드리기를 소망한다. / 정현석 목사 (고양은평공동체)
2026-04-04 제1583호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12절과 <누가복음> 15장 4절에서 자신을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셨다. 그리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물으신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양 100마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가 99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그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마 18:12). “너희 중 누가 100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눅 15:4).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물음표라기보다는 느낌표에 가깝다. 우리의 의견을 묻는다기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부의 말이기 때문이다. 양 무리에서 이탈한 양은 생명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양과 목자>의 저자 필립 켈러는 수년 동안 양을 치는 목자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저자는 양의 수가 한두 마리 모자랄 때면 가장 먼저 ‘내 양 중 한 마리가 어딘가에 뒤집혀 있겠구나. 빨리 찾아 일으켜 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고 고백한다. 필립 켈러의 ‘뒤집힌 양’에 대한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다. 뒤집힌 양은 등이 땅에 닿고 네 발이 허공을 향한 채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버둥거리지만 혼자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처음에는 도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매에”하고 소리 내어 울어보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그 울음소리는 오히려 맹수의 표적이 된다. 결국, 양은 두려움과 좌절감 속에서 심하게 발버둥 치다가 지쳐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게 된다. 만일 목자가 빠른 시간 안에 그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그 양은 십중팔구 죽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뒤집힌 양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네 발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는데 버둥거리는 동안 양의 흑위(되새김질 동물의 첫 번째 위) 속에 가스가 차 오르기 시작한다. 가스가 차오르면 몸의 말단, 특히 사지부터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되다가 순환이 멎어버리게 된다. 날씨가 덥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에는 뒤집힌 양이 몇 시간 내에 죽을 수도 있다. 독수리와 들개, 이리, 표범 같은 맹수들에게 뒤집힌 양은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먹잇감일 뿐 아니라 얼마 안 있어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표적으로 삼고 주시한다. 이처럼 길을 잃은 양은 뒤집혀 무력해진 채 죽거나 맹수의 공격으로 죽기 쉽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아는 목자에게 길 잃은 양의 문제는 무엇보다 급하다. 목자는 최우선 순위로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게 된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성경의 비유에는 이처럼 생명을 놓고 벌어지는 시간적 긴박함에 대한 자각이 담겨 있다. 바로 그 시간적 긴박감에서 잃은 양을 찾고자 하는 목자의 뜨거운 열정이 생겨나고, 마침내 찾아낸 양을 데리고 돌아올 때의 무한한 기쁨이 생긴다. 예수님은 자신을 잃은 양을 서둘러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시면서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시간에 대한 긴박함을 품을 것을 권면하셨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십시오”라고 드렸던 우리의 고백이 길 잃은 한 영혼을 향한 긴박한 마음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박철웅 목사 (강남B공동체)
2026-03-21 제1581호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8:2a 개역개정).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를 어떻게 이끄셨는지, 어떻게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고 하셨음을 기억하라”(신 8:2).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2세대에게 전한 마지막 설교다. 그 핵심은 바로 “기억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 광야의 고난과 역경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다. 단순한 과거 회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현재의 삶과 연결해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근거로 삼으라는 영적 메시지다. 나약한 인간은 평안하고 배가 부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는다. 그러므로 “지난 광야의 길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키겠다는 결단을 확인시키는 메시지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광야 길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모든 것이 나의 힘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하는 감사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를 허락하신 첫 번째 목적은 ‘너희를 낮추시고’에 있다. ‘낮춘다’는 말은 고통을 겪게 한다거나 겸손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광야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자리한 의와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처방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이집트와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지만, 광야의 현실 앞에서 끊임없이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은 베푸신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들의 영적 교만을 보시고, 그들을 낮추셔서 오직 당신만 의지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처럼,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광야의 길은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늘의 양식인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게 하는 영적 훈련소였다. 하나님이 광야를 허락하신 두 번째 목적은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고 하신 것’이다. 광야 길의 고난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시험하는 장소였다.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괴롭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연단해서 정금처럼 순수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광야라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환경이 시험이 아니다. 그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는 반응이 바로 시험의 본질이다. 그 시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고, 하나님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 즉, 광야에서의 시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하는 시험대였다. 창립 40주년을 지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 온누리교회의 지난 40년 광야 여정을 다시금 돌아본다. 그 여정은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신 연단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허락하신 은혜의 시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길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고, 감사를 발판 삼아 새롭게 펼쳐질 광야의 여정, 약속의 땅을 향해 순종으로 걸어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걸어가자. / 제치윤 목사(영종온누리교회)
2026-03-07 제1579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8)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에게 나를 따르라 (8)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에게 <요한일서> 1:3~7 / 이재훈 위임목사 우리는 공동체에 기대하며 참여합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 다르거나 기대가 무너지고 때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열심을 내어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고,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대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로 생각하지만, 때로는 더 악화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오늘 말씀에 근거하면, 사귐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귐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올바른 공동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깊이 홀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 깊이가 관계 속에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관계만이 ‘진정한 공동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파합니다. 이는 여러분과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입니다.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가득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3~4절). 요한이 이 편지를 읽는 성도들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그 사귐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끼리의 사귐, 곧 수평적인 사귐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사귐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모양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가로축부터 절대 세울 수 없습니다. 세로축부터 세워진 다음에 가로축을 덧붙이는 것처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의 뿌리가 없으면 우리의 모든 수평적 사귐은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귐’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코이노니아(Koinonia)’는 단순히 함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공유한다고 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때로 물질을 공유할 때도 쓰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 성도에게 헌금을 요청해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함께 참여할 때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 복음 증거에 함께 참여하는 것에도 쓰였습니다. 무엇을 함께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함께 가지고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귐은 비교할 수 없는 더 깊은 사귐을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모시고, 그분을 함께 공유한 자로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사귐의 본질, 이 사귐의 방향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공동체는 힘을 잃어버리고, 시험을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서로에게 닿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우회한 친밀함은 아무리 따뜻해 보여도 결국 위태롭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사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관계만이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교제 안으로 우리를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참된 사귐의 조건 ‘빛’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함께 교제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고전 1:9). 위에서부터 내려온 이 사귐은 우리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 예수님을 통한 사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입니다. 곧 하나님은 빛이시니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여전히 어둠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는 거짓말하는 것이며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5~6절). 요한이 사귐을 말하다가 ‘빛’을 말씀합니다. 참된 사귐의 조건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이란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신을 감추지 아니하시고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 거짓이 전혀 없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에서 시작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거룩, 곧 빛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곧 빛 앞에 설 때에야 우리가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 앞에 선다는 것은 십자가 앞에 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인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할 만큼 우리의 죄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 빛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모든 더러움이 드러납니다. 어둠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사귐은 과연 이 빛 가운데 여전히 견딜 수 있는 사귐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귐은 빛 가운데서의 사귐인가, 아니면 어둠을 함께 나누는 사귐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어둠의 일에 함께 참여하면서 서로의 죄를 덮어주고 가까워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빛이 들어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기 때문에 빛 가운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닙니다.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직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설 때 연약함, 허물, 죄를 정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귐의 조건입니다. 우리가 빛 되신 하나님 앞에 서면서 자신의 허물과 죄가 그 거룩하신 빛 앞에서 드러나게 될 때 정직하게, 겸손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서로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은 빛 가운데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에게는 서로 사귐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7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빛 앞에서 드러난 죄를 깨끗하게 해 주는 사귐입니다. 빛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면 서로 부끄러워 등을 돌릴 거라는 생각은 오해요, 착각입니다. 도리어 빛 가운데 행하면 진정한 사귐이 가능합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사귐, 공동체의 비밀이 있습니다. 빛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지만, 빛 가운데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깨끗한 사람들이 어떤 자격을 갖추고 모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이 드러나지만, 예수의 피로 정결함을 입고 서로 용서를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공동체에서 때로 상처를 받고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공동체 참여할 때 마음속에 이상적인 그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환상이 깨지는 것 또한 은혜입니다. 환상이 깨질 때 우리 눈앞의 진짜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점투성이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은 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충분히 깨끗해서 사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마음에 들 만큼 괜찮은 사람이어서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순서가 반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더럽고 추한 죄인이지만 그 피로 씻음을 받은 이들이 서로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으로 출발해서 빛 가운데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 만일 공동체에서 외롭다면 그 외로움의 뿌리를 다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혹시 나는 사람에게서 채워지기를 바라며 옆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이 채워줄 수 없는 자리를 요구하면 모두가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으로부터 출발해서 빛 가운데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은 공동체라는 사귐의 뿌리가 분명할 때 수평적 사귐이 올바로 갈 수 있습니다. 공동체와 순예배는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함께 빛 가운데로 걸어가기로 약속한 작은 공동체입니다. 순예배가 살아나는 길은 재밌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함께 그리스도와 십자가 앞에 서는 데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고, 서로를 용서하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이 사귐이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완벽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 되었을 때 그 자체가 세상에 증거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서로에게 가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위로 올라갈 때 닿습니다. 서로가 그 빛을 향해 걷다 보면 어느새 같은 빛 아래서 나란히 걷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서로에게 다가간 사귐은 세상 그 무엇도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향해 다시 걸어가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위를 보고, 그다음 옆을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7-10 제1597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7) 한적한 곳에서 다시 세워지는 삶 나를 따르라(7) 한적한 곳에서 다시 세워지는 삶 <마가복음> 1:32~38 / 이재훈 위임목사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자꾸 뒤로 밀리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시간이 없어서가 아닐지 모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분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내가 해야 하는 의무로만 느껴진다면 번거로운 숙제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가 만나고 싶은 분이라면 언제나 기쁘게 시간을 내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늘 “혼자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은 누구보다 많은 일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홀로 기도하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35절). 예수님 앞에 서면 우리의 변명이 힘을 잃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리시고, 밤늦도록 병자를 고치시고 맞이한 다음 날 새벽, 예수님은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 기도 시간 직후에도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또 찾고 있었지만, 그 무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시고 또 다른 마을들로 향하셨습니다. 쫓기며 분주한 이유 본문에 나온 ‘그날 저녁 해 진 후에’라는 표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32~33절).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일하거나 이동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일몰 때까지 기다렸다가 해가 지자 일제히 병든 식구와 친구들을 둘러업고 몰려온 것입니다. 회당에서 귀신을 내쫓으시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다는 소문으로 인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중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병이 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저녁 무렵부터 모여든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면 아마 자정을 넘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새벽이었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예수님이 경험하신 ‘문 앞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의 요청과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늘 처리해야 될 일, 응답해야 할 메시지, 채워줘야 할 기대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이것들을 외면해서는 사회 속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늘 급한 일에 쫓기는 삶을 살다 보면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삶에 충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두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늘 급한 일에 쫓기는 삶이 있고, 부르심에 충실한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 해를 돌아볼 때 늘 같은 고백을 합니다. 긴급한 일에 중요한 일을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휴대폰 알람 소리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주시는 알람은 늘 나중으로 미룹니다. 우리의 손은 세상의 부름에는 항상 빠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한없이 느립니다. 우리가 늘 급한 일에 쫓기고 분주한 데는 숨은 이유가 있습니다. 홀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무리에 휩쓸리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홀로 하나님과 마주하는 자리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로 채우고 분주하게 만듭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로 도망치고, 관계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홀로 있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과 단둘이 있지 못하는 사람은 상황과 무리에 휩쓸려 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압박이 예수님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더 열심히’가 아니라 ‘물러남’ 기도하러 가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찾아 나섰습니다(36~37절). ‘뒤를 샅샅이 뒤져 사냥하듯 추적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도자들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가장 큰 유혹은 ‘대중의 유혹’입니다. 많은 사람이 찾고 따른다는 그 짜릿함을 좀처럼 뿌리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모순이 나타납니다. 더 열심히, 더 효과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분주함은 사실 도피일 때가 많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허영심 때문입니다. 둘째, 스스로 결단하기 싫어서 남이 정해주는 대로 떠밀려 사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허영심과 게으름 때문에 실상은 바쁘지 않아도 되는데 바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답을 예수님이 보여주십니다(35절).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매우 이른 새벽’, ‘아직 어둑어둑할 때’는 시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장소도 강조합니다. ‘외딴곳으로 가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예수님이 기도하셨습니다. 육체의 피곤을 넘어서는 목마름,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갈망, 모든 상황에서 부르심을 따라가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에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큐티’(Quiet Time)의 기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외딴곳’은 곧 광야입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던 그 광야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홀로 기도하시는 장면을 세 번 기록합니다. 첫 번째가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인 이 새벽입니다. 두 번째는 오병이어 기적 이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할 때 산으로 물러가 혼자 기도하시던 때입니다. 세 번째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에서 홀로 기도하시던 때입니다. 이 세 가지 경우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찾고 높이려 할 때마다 예수님은 도리어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홀로 엎드리셨습니다. 여기에 열쇠가 있습니다. 밀려드는 무리의 요구 앞에서 예수님의 답은 ‘더 열심히’가 아니라 ‘물러남’이었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다급한 요청과 보고 앞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집중하셨습니다. 수많은 무리의 요구 앞에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중의 박수가 아니라,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며 언제나 사명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군중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이 중요했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가 그분의 하루를 붙잡아 세웠습니다(38절). 예수님이 물러나서 기도하시는 것을 통해서 이루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의 길을 거절하시고, 고난받음으로 이루시는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끝까지 그 길을 가셨습니다. 무리를 거절하신 예수님의 물러남은 우리를 끌어안는 것이었습니다. 인기의 자리에 머무르는 대신, 잃어버린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침내 구원하기 위한 발걸음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보냄을 받은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님은 그 길에서 이탈하지 않으셨고, 십자가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시기 위해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각오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심에 기초하면 얼마 못 갑니다. 예수님이 끊임없이 물러나시며 한적한 곳에 기도하신 이유는 우리를 끌어안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적한 곳에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얻어내는 종교적인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기 전에,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는 예수님이 먼저 열어주신 기쁨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분은 단 한 번도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기를 쉬신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만나시려고 하늘의 영광을 비우셨고, 새벽마다 광야로 나가셨으며, 마침내 십자가까지 나아가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응답입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시간을 내어주신 분을 우리가 기쁨으로 만나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통해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교정됩니다. 매일매일의 큐티가 제자도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종교적인 수행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나아갈 때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잡히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다시 정립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삶의 우선순위가 계속해서 바로잡힙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한적한 곳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다른 마을로 가는 발걸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장 깊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가장 멀리 보냄을 받게 됩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는 땅끝을 향해 걸어가는 선교의 발걸음이 됩니다. 골방의 기도가 열방의 선교로 이어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쁘셨던 예수님의 삶이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통해 열방의 선교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이 “나를 따르라” 하시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요청에 기쁘게 응답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에 온전히 충성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7-03 제1596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6)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 나를 따르라(6)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 <마태복음> 3:13~17 / 이재훈 위임목사 지금까지 살면서 잊히지 않는 누군가의 음성이 있습니까? 눈을 감으면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한 목소리입니다. 지치고 낙심해서 절망할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주는 목소리, 모두가 등을 돌릴 것 같은 상황에서 “괜찮아, 너는 소중해”라고 말해주는 목소리입니다. 부모님의 음성일 수도 있고, 스승의 음성일 수도 있고, 친한 친구의 음성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규정하는 어떤 음성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 음성은 우리를 평생 짓누르고, 어떤 음성은 우리를 평생 떠받칩니다. 어떤 음성을 마음 깊이 새기고 사느냐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결정합니다. 500년 전, 한 음성을 붙잡고 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입니다. 그는 담대한 종교 개혁을 일으켰지만, 담대한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 매우 소심했고, 두려워했고, 자책에 자주 시달렸습니다. 밤이 되면 마귀가 귓가에 다가와 그가 지은 죄의 목록을 끝없이 읊어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죄를 짓고도 네가 무슨 하나님의 사람이냐? 이런 죄를 지은 사람이 무슨 개혁이냐?”라는 음성이 그의 영혼을 짓누를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마틴 루터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대응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잘못한 사람은 아니다”라는 변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책상에 라틴어 ‘바프티자투스 숨(나는 세례를 받았다)’이라는 의미의 문장을 써놓고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문장을 그가 무너질 때마다 붙잡았던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가 이루어낸 게 아니었습니다. 이미 선물로 주어진 음성이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었으므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었다는 음성입니다. 그 음성이 마귀의 정죄를 물리쳤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했고, 끝까지 서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처럼 우리의 자리에 내려오셨기 때문에 우리를 붙잡아 주는 음성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들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붙드셨던 한 음성이 있었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던 그 때 하늘에서 들려온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요단강으로 인도합니다. 요단강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죄를 자백하는 사람들의 줄입니다. 자기 죄를 고백하며 물에 잠겼다가 올라옴으로써 세례를 받는 줄이 이어졌습니다. 그 줄에 자백할 죄가 없으신 분이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 막아섰습니다. 요한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줄을 잘못 서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를 고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 그러자 요한은 그대로 따랐습니다”(15절). 여기서 ‘의’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기보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뜻을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백성의 허물을 짊어지고 죄인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메시아가 죄인 중 하나가 됨으로써 그 백성의 죄를 짊어지셔야 한다는 말씀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를 이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는 단순히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의 자리, 곧 우리가 서야 할 자리에 완전히 서시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인정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정할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회개해야 할 우리의 자리, 죄 씻음을 받아야 할 우리의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에 서주셨기에 우리가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분의 의로우심을 우리가 덧입게 하시려고 우리의 죄인 됨을 그분이 짊어지신 것입니다. 자신을 우리와 동일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분을 따르고, 그분과 사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처럼 우리의 자리에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려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속에서 올라오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한다’”(16~17절). 첫째, 하늘이 열렸습니다. 닫혀 있던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저절로 열린 게 아닙니다. 누군가에 의해 열린 것입니다. 하늘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이 열린 것은 오랫동안 침묵하셨던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시는 신호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수백 년 동안 한 사람의 선지자도 일어나지 않고, 한 번의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던 침묵의 시대를 깨뜨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셨습니다. 성경에서 비둘기는 여러 그림으로 예표됩니다. <창세기>에는 비둘기라는 명칭은 없지만,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운행한다’는 표현은 마치 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비둘기의 출현은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홍수 심판 이후 노아가 비둘기를 풀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심판의 물이 가라앉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둘기는 온유함, 순결함, 평강의 표시였습니다. 예수님 위에 임하신 성령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온유하신 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이 세상의 강함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온유함과 순종에서 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셋째,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 장면에 뚜렷하게 나타나신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가 예수님의 이 세례 받는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하나 됨과 교제가 잠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매우 기뻐하는 자라” 그 가운데 들려온 음성,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매우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의 의미를 매우 깊이 음미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말씀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입니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고, 이삭을 다시 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는 돌이킴 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으로 보내신 진정한 이삭, 새로운 이삭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칼을 들었던 아브라함을 향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창 22:12). 오랜 세월이 흘러 사도 바울이 이 표현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롬 8:32).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드린 순종을 통해서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내어주신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삭은 칼을 면했지만, 하나님의 독생자는 그 칼을 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내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노라’ 하시리라. 내가 이제 여호와의 율례를 선포하리라.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셨도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시 2:6~7).왕 중의 왕으로 예수님이 오셨다는 선언을 미리 예언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보내신 그 아들이, 만왕의 왕이신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죽기 위해서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말씀에서는 ‘기뻐하는 자’라는 표현과 함께 그는 ‘고난받는 종’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그리고 끝내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는 종으로 오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표현은 단순한 칭찬이 아닙니다. 단순한 소개도 아닙니다. 메시아로 오시는 분의 일종의 취임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향해 “이제 너는 죄인들을 위하여, 온 세상을 위하여 고난받는 종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분을 고난받는 종으로 세상에 보내셨음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왕좌에 오르시는 왕이신 동시에 자기 백성의 죄를 지고 가는 종으로서 영광과 고난이 함께 선포된 것입니다. <시편> 2편에 “내가 오늘 너를 낳았도다”라는 구절이 있지만, 이 음성에는 ‘낳았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세례의 순간 비로소 아들이 되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굳이 이 세례의 장면에서 그 음성이 들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음성을 들으셨을 때는 공생애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의 질병도 고치지 않고, 설교도 하지 않으신 그 순간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음성을 먼저 들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보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랑의 관계,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을 먼저 하셨습니다. 이 음성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만 들려왔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 공생애 전체를 떠받쳐 주는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곧바로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40일 금식 끝에 사탄이 공격합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 공격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천사들이 받들게 하라(마 4:3~7). 돌을 떡으로 만들고, 놀라운 기적을 보임으로써 고생하지 않고 영광을 얻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공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험을 <신명기> 말씀을 통해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시험에 넘어지지 않은 더 깊은 이유는 바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그 음성이 예수님을 붙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이 예수님의 공생애 전체를 붙잡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사역하신 게 아닙니다. 이미 주어진 인정과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일을 하셨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칭송하든 공격하든 결코,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변화산에서도 똑같은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때 구름이 나타나 그들 위를 덮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의 말을 들으라!’”(마 9:7).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며 들었던 그 음성이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던 걸음마다 들려온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을 사셨던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담당하시는 모든 여정, 예수님의 공생애를 붙잡아 주셨던 음성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였습니다. 나 자신과 가정, 공동체, 이 세상과 선교의 자리에서도 예수님께 들려온 이 음성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들려진 그 음성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과 연합된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들려옵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 자리에 서주셨기에,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자리에 있기에 그분에게 들려온 음성이 곧 우리에게 들려온 음성입니다. <로마서> 8장 15~16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내려오셨던 그 성령이 이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 내가 기뻐하는 자다.” 여러분, 이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듣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에서 들려온 음성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음성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내려고 신앙생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을 얻어내려고 애쓰는 신앙은 늘 불안합니다. 내가 충분히 노력했는지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주어진 이 음성, 이미 받은 사랑에서 시작된 신앙은 자유롭습니다. 우리의 약함조차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나의 약함을 자랑하리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도리어 그 약함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나의 약함조차 자랑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 음성이 광야를 지나 십자가를 향해 나가던 예수님을 붙잡았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그 음성을 붙잡고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그 음성을 붙잡아야 합니다. 먼저 ‘나 자신의 자리’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요 내 기뻐하는 자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루를 시작한다면 모든 시험을 거뜬히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음은 ‘가정의 자리’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신 상태에서 먼저 축복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녀가 무엇을 이루기 전에 먼저 축복하고 사랑을 선언해야 합니다. 네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음성을 부모가 자녀에게 먼저 전해줄 때, 자녀가 그 음성을 붙잡고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누가 서로 잘났는가?” 견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기뻐하시는 자”라는 음성을 함께 듣는 자리입니다. 비교와 경쟁을 뛰어넘는 자리입니다. ‘이 세상과 선교의 자리’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자, 기뻐하는 자로서 고난받는 종이 되셨던 예수님처럼, 이 세상을 위해서, 복음이 증거되게 하려고, 고난받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과 용기와 헌신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은 사랑이 흘러넘쳐서 세상 속으로 흘러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요단강에서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이 이미 열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드려서 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물속으로 들어오신 그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음성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6-26 제1595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 (4) 바위 틈새에서 바라본 영광 나를 따르라 (4) 바위 틈새에서 바라본 영광 <출애굽기> 33:12~23 / 이재훈 위임목사 기도는 영혼의 창문입니다.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운 지, 혹은 하나님과 얼마나 상관없이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개인의 건강과 자녀, 사업과 관계의 문제 등 모든 기도제목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기도제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도제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하는 갈망 모세가 있는 자리가 그랬습니다. 모세는 출애굽 기적의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고,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는 특권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만하면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나를 따르라’를 주제로 제자 됨의 증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되었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분에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갈급함같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갈망과 그분의 임재를 갈급해하는 영혼입니다. 오늘은 거기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어야 할 중요한 증거를 찾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심,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하는 갈망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바위 틈새에 두시고 그 손으로 덮어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간 뒤 그 뒷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바위 틈새에서 모세가 보았던 영광이 무엇인지,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어야 할 갈망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내가 주를 알게 하소서” <출애굽기> 33장 12절에서 17절까지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가 나옵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하나님을 배신한 이후 이루어진 대화입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으로 가도록 허락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주시겠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하신 선물은 주시지만, 하나님은 함께 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니 여차 하면 내가 가는 도중에 너희를 멸망시킬지 모르니 말이다”(출 33:3). 여러분이 모세였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그래도 약속의 땅은 들어갈 수 있으니 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포기하지 않고 겸손하고 간절하게 중보기도합니다. 모세의 간구를 보면 그 갈망이 한 단계씩 깊어집니다. 그 간구에 응답하실 때마다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도 한 단계씩 깊어집니다. 모세가 가장 먼저 구한 것은 무엇인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13절을 보면 “주의 길을 내게 가르쳐 주셔서 내가 주를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무엇을 구하기 전에 모세는 하나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갈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친히’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파님(Panim), 얼굴입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내 얼굴이 가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너와 함께’라는 표현은 해석을 돕기 위해 덧붙인 번역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모세를 향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모세를 부르셨기에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명확하게 분석하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분명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주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아예 우리를 여기서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나와 주의 백성들이 주께 은총을 입었는지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와 주의 백성들이 지면의 다른 모든 백성들과 어떻게 구별되겠습니까?’”(15~16절). 모세의 기도는 어떤 내용입니까? 약속의 땅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것보다, 모든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다 받아도 그것을 주시는 분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선물보다 선물을 주신 분이 더 귀하다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진노를 만들어내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패역한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이 이 백성들과 함께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가 말한 그대로 내가 하겠다. 네가 내 은총을 입었고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절). 모세에게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이 모세가 기도한 대로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하고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과도 함께 하십니다. 약속의 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백성들과 함께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간구와 중보에 응답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또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 기도제목이 바로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그러면 부탁입니다만, 내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18절). 모세는 이미 임재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더 구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갈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의 마음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은 결코 거기서 멈추지 못합니다. 그분을 더 알기를 원하고, 그분을 더 보기를 원하고, 그 영광을 보기를 갈망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에게 있어야 갈망은 그분을 더 알기 원할 뿐만 아니라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제자의 마음속에 있어야 하는 증거입니다. 제자도를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로 먼저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행함으로 제자로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연결되어 있는 존재,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께 목말라 해야 합니다. 그분과의 교제를 깊이 추구하면서 응답을 받습니다. 모세는 응답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갈망하며 궁극적으로 구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합니다. ‘영광’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카보드(Kabod)’인데, ‘무게’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깃털처럼 가벼운 사람이 있고, 묵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무게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분을 통하여 모든 것이 통치되는 무게, 하나님 자체의 무게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달랐습니다. 흙장난에 머무르지 않고 바다 자체를 바라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그분의 영광에 대한 목마름, 그분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삶의 선택 기준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의 실체는 선함입니다” 모세의 간구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데, 우리의 예상과 다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하겠고 내가 네 앞에 내 이름 여호와를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19절). 모세는 주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내 모든 선함을 내 앞으로 지나가게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영광을 구했는데 선하심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놓쳐선 안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 영광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당시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의 신을 무서운 빛으로 떠올렸다고 합니다. 쏟아지는 빛, 사람들을 무섭게 하는 빛, 사람들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빛입니다. 이방 신들의 임재는 그저 힘을 자랑하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선하심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영광은 무엇입니까? 선함이 발견될 때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같이 선함의 열매가 나타날 때 우리는 영광스러움을 봅니다. 하나님 영광의 실체는 선함입니다. 14절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내 얼굴이 가리라, 내가 친히 너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20절에서는 정반대로 “네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라고 하십니다. 똑같은 얼굴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그런데 14절에서는 “내 얼굴이 가리라”라고 하셨는데, 20절에서는 “그 얼굴은 볼 수 없다, 보게 되면 살 자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순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얼굴, 기꺼이 보여주시는 얼굴이 있고,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얼굴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이 보게 되면 죽는 얼굴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가려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만 보여주심으로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것을 하나님의 낮추심, ‘어코모데이션’(Accommodation)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어른이 아기들과 대화할 때 눈높이에 맞춰서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모세에게 그렇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갈망에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 영광을 안전하게 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러고 나서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자, 내 가까운 곳에 바위가 있으니 그 위에 서 있어라. 그러면 내 영광이 지나갈 때 내가 너를 바위 틈새에 두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내 손으로 덮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가 내 손을 뗄 것이니 너는 내 뒷모습만 보고 내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다’”(21~23절). 하나님의 영광을 모세에게 보여주시되, 그 영광을 보고 죽지 않도록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위 틈새에 모세를 두고 손으로 덮어주시고 그 영광이 지나간 후에 그 뒷모습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에 복음이 나타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바위틈에 숨겨주셨고, 그 손으로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갈라진 바위틈은 우리가 그 안에 숨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안전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존재, 곧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오래된 찬송가 가운데 이런 가사들이 있습니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반석은 바위를 뜻합니다. 바위가 열려 내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찬송 가사 ‘만세 반석 열린 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안전한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을 덮으시네’는 오늘 본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를 위해 갈라지고 열린 반석 틈에 숨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안전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차 오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모세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뒷모습만 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시대가 열렸습니다. “‘어둠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셨기 때문입니다”(고후 4:6). “그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요 1:14). 모세가 보기를 갈망했지만, 뒷모습만 보았던 영광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닫혀 있던 그 얼굴이 그리스도 안에서 활짝 열리며 “와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위틈에 숨어서 손바닥에 가린 채 보았지만, 우리는 바위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다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일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습니다”(고후 3:18).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 내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반석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갈망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원했던 것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도 주셨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영광이었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모세는 바위 틈새에서 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바위 틈새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세는 뒷모습만 보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6-12 제1593호
[News] 여호수아, 약속의 땅으로 여호수아, 약속의 땅으로 7~8월 차세대사역본부 여름 캠프 및 아웃리치 여름 캠프 1만여 명, 아웃리치 59개 팀 1,090명 참가 온누리교회 차세대사역본부의 여름사역이 본격 시작됐다. 7월과 8월 성경 인물 ‘여호수 아’의 삶과 신앙을 배우고 닮아가는 여름 캠 프와 아웃리치가 이어진다. 여름 캠프에는 국 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차세대 113개 부 서 1만여 명의 학생이 참가한다. 아웃리치에 는 국내 27개 팀 566명, 해외 32개 팀 524명이 참가한다. 예수님의꿈아이(영아부·유아부·유치부)와 꿈이자라는땅(유년부·초등부·소년부) 여름 캠프는 ‘여호수아, 약속의 땅’을 주제로 열린 다. 7월 4일(토)부터 8월 9일(수)까지 온누리교 회 각 캠퍼스 본당과 온누리청소년센터, 이천 자연나라, 포천 염광수련원, 피노키오청소년 수련원, 너리굴 문화마을 등지에서 성경 퀴즈, 적용 놀이, 체험 활동 등을 한다. 예수님의꿈 아이와 꿈이자라는땅이 대상이다. 파워웨이브(중고등부) 여름 캠프는 ‘돌파’ 를 주제로 7월 17일(금)부터 8월 4일(화)까지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서해안청소년수련원, 도교교원연수원, 양평숲속작은나라, 원주힐링 파크 등지에서 진행된다. ‘두려움을 돌파하라 ’ , ‘ 불가능을 돌파하라’, ‘망설임을 돌파하라’ 를 소주제로 찬양과 설교, 주제 강의, 기도회 등을 한다. 차세대 여름 아웃리치는 7월 3일(금)부터 8 월 30일(일)까지 국내외에서 팀별로 진행한 다. 국내 팀은 전라남도 담양, 경기도 부천, 충 청남도 보은,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노방 전 도, 성경학교, 어르신 섬김 등의 사역을 한다. 해외 팀은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일본, 몽골 등지에서 어린이 캠프, 노방 전도, 환경 미화 등을 한다. 한편, ‘2026 교사 기도회’가 지난 7월 1일 (수)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믿음으로 걷는 교사들’을 주제로 열렸다. 차세대 교사 와 부모, 성도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설교는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가 ‘요단강 도 하’를 주제로 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 714연합기도대성회, 7월 17~18일 잠실학생체육관 ‘ 714연합기도대성회’(이하 714기도회)가 7월 17일(금)과 18일(토)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사 62:6)를 주제로 막 오른다. 7장 14절 말씀에 기초해 매년 7월 열리는 한국 교회 연합 기도 운동이다. 참가를 희망하는 교회와 성도들은 714연합기도운동 홈페이지(714praymov.org) 나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올해 714기도회에서는 이틀 동안 총 5개 세 션이 진행된다. 7월 17일(금) ‘세션 1’에서는 이기용 목사가 설교하고, 안광복 목사, 이해영 목사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찬양은 신길교회 찬양팀이 한다. ‘세션 2’에서는 이인호 목사 가 설교하고, 김도훈 목사, 김형석 목사가 기 도회를 인도한다. 찬양은 더사랑의교회 찬양 팀이 찬양한다. 7월 18일(토) 이어지는 ‘세션 3, 4, 5’에서는 문대원 목사, 이재훈 목사, 이정규 목사가 메 시지를 전한다. 기도회는 이요한 목사, 류성룡 목사, 이지훈 목사, 남경우 목사, 이종필 목사, 김경석 목사가 인도한다. 찬양은 온누리교회 찬양팀과 아이자야 61이 한다. 문의: 02-868-8425 예수 따라 열방으로! 여름 아웃리치 국내외 323개 팀 6,379명 참가 2026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가 시작됐다. 올해 7월과 8월 이어지는 여름 아웃리치에는 성인공동체, 대학청년부, 차세대 국내외 323개 팀 6,379명이 참가한다(7월 1일 기준). 국내 아웃리치는 경남 통영, 전남 해남, 충남 보은 등지에서 교회 보수, 마을 전도, 군장병 초청 잔치 등을 한다. 해외 아웃리치는 인도네시아 롬복, 일본 요코하마, 태국 파타야 등지에서 선교지 방문, 선교사 위로, 현지교회 연합 집회 등의 사역을 한다. 미디어사역본부에서는 ‘2026 여름 아웃리치 동영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8월 31일(월)까지 올해 여름 아웃리치 영상(릴스, 숏츠 등)을 60~90초 분량으로 제작해서 응모하면 된다. 영상은 가로, 세로 형식 모두 사용 가능하고, 90초 이상 영상은 심사에서 제외한다. 비공개 지역 등 노출되지 않아야 할 정보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제작 영상은 온누리교회 인스타그램 계정(@onnuri.acts29) 태그, 다이렉트 메시지(DM), 해시태그(#온누리아웃리치2026)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 전송하면 된다. 이메일(onnurismart@gmail.com) 제출도 가능하다. <온누리신문>에서는 여름 아웃리치의 생생한 은혜와 감동이 담긴 간증과 사진을 모집한다.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까지 간증(한글 파일 기준 글자 10포인트로 A4 용지 1장)과 사진(사역 사진, 간증을 쓴 성도 사진)을 이메일(hha0@onnuri.org)로 보내면 된다. 제출한 간증은 7~8월 <온누리신문>에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 홍하영 기자 수원 창립 23주년 감사예배 7월 5일 오전 9시, 11시 30분 수원온누리교회가 창립 23주년 감사예배를 ‘ 하나가 되다 우리가 되다’(요 17:21~23)를 주제로 7월 5일(일) 오전 9시와 11시 30분 명 지대학교 채플관 예배당에서 ‘세대 통합예배 ’ 로 드린다. 7월 7일(화)~9일(목) 오후 7시 30 분 기흥 ICT밸리 1층에서는 말씀집회가 열린 다. 장경철 교수(서울여대 기독교학과 교수)가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 6월 28일에는 공동체 리더십과 사역팀 별 찬양인도자 및 싱어를 대상으로 리더십 예 배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김승훈 목사(수원온 누리교회 담당), 장동원 목사(예배본부 본부 장), 황병원 장로(예배포럼 및 예배학교 장로) 가 강의했다. 수원온누리교회는 사도행전적 비전을 품고 다음세대와 이주민 등을 섬기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2026-07-04 제1596호
[News]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 ‘714연합기도대성회’ 7월 17~18일 잠실학생체육관 500여 한국 교회 2만여 성도 참석… 참가신청 홈페이지, QR 나라와 민족, 교회를 위한 초교파 연합 기도 운동 ‘714연합기도대성회’(이하 714기도회) 가 오는 7월 17일(금)과 18일(토) 잠실학생체 육관에서 열린다. 17일(금) 오후 4시부터 8시 30분까지, 18일(토) 오후 1시 30분부터 8시까 지 집회가 이어진다.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 는 교회’(사 62:6)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집회에는 500여 한국 교회 2만여 성도가 참석할 예정이다. 714기도회는 이틀 동안 총 5개 세션으로 진 행된다. 7월 17일에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 세션 1’,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세 션 2’가 이어진다. 18일에는 오후 1시 30분부 터 3시 20분까지 ‘세션 3’, 오후 3시 40분부터 5시 20분까지 ‘세션 4’,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 세션 5’가 진행된다. 각 세션에서 이기용 목 사(신길교회), 이인호 목사(더사랑의교회), 문 대원 목사(대구동신교회), 이재훈 목사(온누 리교회), 이정규 목사(시광교회)가 메시지를 전한다. 기도회는 안광복 목사(청주상당교회), 이해영 목사(성민교회), 김도훈 목사(신림동 산교회), 김형석 목사(필그림교회), 이요한 목 사(수원순복음교회), 이지훈 목사(범어교회), 남경우 목사(GMTC), 이종필 목사(세상의빛 교회), 김경석 목사(강서침례교회), 류성룡 목 사(흩어진화평교회)가 인도한다. 찬양은 신길 교회, 더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찬양팀과 아 이자야61이 한다. 714기도회 참가신청은 714연합기도운동 홈 페이지(714praymov.org)나 하단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714연합기도대성회는 7장 14절 말씀에 기초해 매년 7월 열리는 한국 교회 연합 기도 운동이다. 올해로 4번째 행사다. 문의: 02-868-8425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양지온누리교회 새 이름 ‘용인온누리교회’ 6월 27~28일 교회 창립 14주년 감사예배 양지온누리교회가 지난 6월 25일(목) 부터 ‘용인온누리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대표적인 지역명을 교회 이름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용인온누리교회 ‘창립주일 감사예배’ 도 드린다. 6월 27일(토) 오전 9시, 28일 (일) 오전 9시와 11시 30분 김사무엘홀 (본당)에서 ‘교회 창립 14주년 감사예 배’를 드린다. 일요주일예배에 참석하 는 성도들에게는 국수를 제공한다. 양재경 목사(용인온누리교회 담당)는 “용인온누리교회의 지난 14년은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과 은혜의 발자취였다”면서 “새 이름으로 거듭난 용인온누리교회가 앞으로도 지 역사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다음 세대를 세우며, 복음의 본질을 붙드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차세대 여름사역 본격 시작! 7~8월 교사 기도회, 여름 캠프, 아웃리치 온누리교회 차세대사역본부의 여름사역이 본격 시작됐다. ‘2026 여름사역을 위한 교사 기도회’가 포문을 연다. 2026 교사 기도회가 7월 1일(수)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믿음으로 걷는 교사들’을 주제로 진행된다. 차세대 교사와 부모, 차세대 여름사 역을 위해 기도하기 원하는 성도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설교는 박종길 목사(서빙고 온누리교회)가 한다. 7월과 8월 차세대 여름 캠프가 이어진다. 국 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차세대 113개 부 서, 학생 1만여 명이 참가한다. 차세대 여름 캠프는 ‘여호수아, 약속의 땅으 로’를 주제로 이어진다. 7월 4일부터 8월 9일 까지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 본당 및 외부에서 성경 퀴즈, 적용 놀이 등을 한다. 예수님의꿈 아이(영아부∙유아부∙유치부)와 꿈이자라는 땅(유년부∙초등부∙소년부)이 대상이다. 파워웨이브(중고등부)는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돌파’를 주제로 외부에서 여름 캠 프를 개최한다. ‘두려움을 돌파하라’, ‘불가 능을 돌파하라’, ‘망설임을 돌파하라’를 소주 제로 찬양과 설교, 강의, 기도회 등을 한다. 차세대 여름 아웃리치에는 국내 27개 팀 566명, 해외 32개 팀 524명이 참여한다. 국내 팀은 전라남도 담양, 경기도 부천 등에서 성 경학교, 어르신 섬김 등의 사역을 한다. 해외 팀은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에서 어린이 캠프, 노방 전도 등을 한다. 한편, ‘교사 강습회’가 막을 내렸다. ‘여호 수아, 약속의 땅으로’를 주제로 지난 5월 30 일(토)부터 6월 27일(토)까지 이어졌다. 국내 외 온누리교회 차세대 교사 1,500여 명이 참 석했다. / 홍하영 기자 2026 한일청년연합집회 ‘The Way’ 7월 3~4일 일본 인지이시(TCU) 러브소나타본부가 주관하는 ‘2026 한 일청년연합집회 The Way(이하 2026 T he Way)’가 ‘He wil make your paths straight(그가 네 길을 곧게 하시리라)’ (잠 3:6)를 주제로 7월 3일(금)과 4일(토) 일본 인지이시 문화홀과 도쿄기독교대 학에서 열린다. 7월 3일 인지이시 문화홀 에서 열리는 2026 The Way 집회에서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설교하고, 토미야스 스미토(크리스천 싱어송라이터), 해금 연주자 조형주 자매가 특순한다. 7월 4일(토) 도쿄기독교대학에서 진행 되는 ‘YUME CONFERENCE(유메 콘 퍼런스)’에서는 레크리에이션, 선택식 강의, 한일연합기도회 등이 이어질 예정 이다. 선택식 강의에서는 야마구치 요이 치 목사(도쿄기독교대학 특별교수) ‘전 쟁 후 80년 회개, 화해, 노력’, 키쿠치 미 노루 목사(도쿄기독교대학 특임교수) ‘ 성경 고고학의 세계’, 신경훈 목사(갈렙 공동체 담당) ‘청년, 오늘을 살다!’, 오카 자와 하지메(ESC Japan) ‘얼티밋 프리 스비’, 야마가타 노부히로 목사(하토가 야복음자유교회 협력) ‘신앙과 진로 선 택’, 시무아 토모키(hi-b.a) ‘친구에게 복음을’ 이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2026 예배&선교 콘퍼런스 ‘카운트다운’ 목회자와 관계자, 청년 등 9,124명 참석 대학청년부가 주최하는 2026 예배&선교 콘 퍼런스 카운트다운(이하 카운트다운)이 막을 내렸다. 올해 카운트다운은 6월 19일(금)부터 21일(일)까지 장충체육관에서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진행됐다. 목회자와 관계자, 청년 등 9,124명(19일 1,620명, 20일 2,181명, 21일 5,323명) 참석했다. 조용범 형제(수원온누리교회)는 “카운트다 운에서 경험한 예배와 연합을 일상으로 돌아 가서도 이어가도록 형제자매들과 나누고 싶 다”고 말했다. 이준기 형제(여호수아공동체)는 “인생의 홍 해 앞에서도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식었던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고 고백했다. / 박지혜 기자
2026-06-27 제1595호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아웃리치 발대식 6월 24일 19시 30분 서빙고 본당 성인, 대학청년부, 차세대 307개 팀 6,023명 아웃리치 참가 2000선교본부가 주최하는 2026 아웃리치 발대식이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를 주제로 6월 24일 (수)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 회 본당에서 열린다. 올해 국내외 아웃리치에 참가하는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아웃리치의 의미를 되 새기고, 열방과 선교를 위해 뜨겁게 기도한다. 아웃리치 발대식은 당회서기 민 문기 장로 대표기도, 온누리 선교사 특순,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 회 담당) 아웃리치팀 소개 및 축복, 이재훈 위임목사 메시지, 김홍주 목 사 아웃리치 교육 및 합심기도 등의 순서가 진행될 예정이다. 아웃리치 교육에서는 지역별 치안, 여행보험, 숙소, 이동수단, 예방접종 등 안전과 관련된 사항을 배우고 점검하는 매 뉴얼을 배포한다. 올해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 에는 성인, 대학청년부, 차세대 307 개 팀 6,023명이 아웃리치에 참가한 다(6월 17일 기준). 국내 아웃리치는 경남 통영, 전남 해남 등지에서 교 회 노후 건축물 수선, 방문 전도 등 을 한다. 해외 아웃리치는 인도네시 아 롬복, 일본 요코하마 등지에서 신학교 섬김, 현지교회 연합사역 등 을 한다. 온누리신문에서는 여름 아웃리 치 사진과 간증 원고를 모집한다. 매주 월요일까지 간증과 가로 사진 을 이메일(wisdom7@onnuri.org) 로 보내면 된다. 간증은 한글 파일 기준 글자 10포인트 크기로 작성하고, 간증자 이름과 직분, 공동체(소 속), 연락처를 포함해 A4 용지 1장 분량으로 작성하면 된다. 사진은 가 로 형태의 사역 사진과 간증자 최근 정면 사진을 보내면 된다. 접수된 간증은 7~8월 에 순차 적으로 게재한다. 문의: 02-795-9085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예배&선교 콘퍼런스 ‘카운트다운’ 연합예배 6월 21일 오후 2시부터 6시 30분까지 장충체육관 대학청년부가 주최하는 ‘2026 예 배&선교 콘퍼런스 카운트다운(이 하 2026 카운트다운)’ 일요주일 연 합예배를 6월 21일(일) 오후 2시부 터 6시 30분까지 장충체육관(서울 중구 동호로 241)에서 드린다. 박종 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 담당)‘ TURN 회심’, 양승훈 선교사(불어 권 선교회) ‘DONE 완성’, 이재훈 위임목사 ‘WIN 승리’를 주제로 메 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함께 예배드 리기 원하는 성도라면 누구나 참가 할 수 있다. 참가비는 없다. 2026 카운트다운은 ‘나를 따르라 ’ (마 16:24)를 주제로 막 올랐다. 집 회 첫째 날(19일)에는 황성은 목사(창동염광교회) ‘CALL 부르심’, 둘 째 날(20일) 김다위 목사(선한목자 교회) ‘OBEY 순종’, 문대원 목사 (대구동신교회) ‘UNITY 연합’, 이 용규 선교사(인도네시아) ‘ NATIO NS 열방’ 등을 주제로 메시지를 전 했다. / 박지혜 기자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 7월 17~18일 ‘714연합기도대성회’ 714연합기도대성회(이하 714기도 회)가 7월 17일(금)과 18일(토)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사 62:6)를 주제 로 열린다. 17일(금) 오후 4시부터 8 시 30분까지, 18일(토) 오후 1시 30 분부터 8시까지 집회가 이어진다. 이번 714기도회는 이틀 동안 총 5 개 세션으로 진행된다. 세션마다 말 씀과 기도, 찬양 등의 순서가 이어 진다. 말씀은 이기용 목사(신길교 회), 이인호 목사(더사랑의교회), 문 대원 목사(대구동신교회),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이정규 목사(시 광교회)가 전한다. 기도회는 안광복 목사(상당교회), 이해영 목사(성민 교회), 김도훈 목사(신림동산교회), 김형석 목사(필그림교회), 이요한 목사(수원순복음교회), 류성룡 목사 (흩어진화평교회), 이지훈 목사(대 구범어교회), 남경우 목사(GMTC), 이종필 목사(세상의빛교회), 김경석 목사(강서침례교회)가 인도한다. 찬 양은 신길교회, 더사랑의교회, 온누 리교회 찬양팀과 아이자야61이 한 다. 714기도회 참가신청은 714연합기 도운동 홈페이지나 하단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 출하면 된다. 문의: 02-868-8425 / 홍하영 기자 2026 Hidden Paradise(진리로 가는 항해) 7월 4일 ‘로스쿨생을 위한 힐링콘서트’ 로스쿨생을 위한 힐링콘서트 ‘ 2026 Hidden Paradise’(부제: 진리 로 가는 항해)가 7월 4일(토) 오전 11시 반포한강공원 채빛섬 애니버 셔리홀에서 열린다. 로스쿨기독인 연합회가 주최하고, 온누리교회 맞 춤전도팀과 OLF(온누리법조인모 임)가 후원한다. 전국 비신자 로스 쿨 재학생, 졸업생 및 저년차 법조 인을 초청한다. ‘ 2026 Hidden Paradise’ 에서는 공연, 법조 선배들과의 식사, 토크 쇼, 샌드아트, 메시지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 리교회 담당)가 말씀을 전하고, 윤동환 교수(해커스법아카데미) 응원, 홍인석 변호사 공연, CRUX 특순, 박진아 작가 샌드 애니메이션을 선 보인다. 로스쿨생 및 저년차 법조인에게 쉼과 복음을 선물하고 싶은 성도들 은 하단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 해서 제출하면 된다. 문의는 카카오 채널 ‘2026 Hidden Paradise’ 또는 이메일(lawchristianu@gmail.com) 로 하면 된다. 참가신청 은 1차 6월 24일(수), 2 차 7월 1일(수) 마감한다. / 홍하영 기자 6월 20~21일 ‘입양위탁주간’ 입양 및 위탁 정보 홍보부스 설치 6월 20일(토)과 21일(일)은 ‘입양 위탁주간’이다. 이날 온누리교회 사 회선교본부 제이홈과 온누리울타 리에서 각 캠퍼스 로비에 홍보부스 를 설치한다. 입양 및 위탁 정보, 제 이홈 및 온누리울타리 사역 안내를 한다. 오는 7월 19일(일) 열리는 ‘제 이홈-온누리울타리 세미나’ 정보 도 제공한다. 제이홈은 입양∙위탁 가정 공동체다. 2014년 설립되어 건 강한 입양과 위탁 문화를 만들고 있 다. 온누리울타리는 보육원 아동 결 연 및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사 역팀이다. 2021년부터 보육원 아동 및 자립준비청년들을 돕고 있다. / 홍하영 기자 김영길 총장 소천 7주기 추모예배 6월 27일 오후 5시 김영길 장로(前 한동대학교 총 장) 소천 7주기 추모예배를 오 는 6월 27일(토) 오후 5시 온누 리청소년센터에서 드린다. 이번 예배는 ‘배워서 남주자’ 는 김영길 총장의 교육 철학을 기억하고, ‘교육을 통한 사회 변 화’라는 한동대학교의 비전을 나누는 자리다. 이재훈 위임목 사가 말씀을 전하고, 한동대학 교 동문 선교사가 간증한다. 동 문, 후원자 등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의: 010-9281-1063
2026-06-20 제1594호
[News] '카운트다운' Follow me! '카운트다운' Follow me! 2026 예배&선교 콘퍼런스 카운트다운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장충체육관 대학청년부가 주최하는 2026 예배&선교 콘퍼런스 카운트다운(이하 2026 카운트다운)가 ‘나를 따르라’(마 16:24)를 주제로 막 오른다. 6월 19일(금)부터 21일(일)까지 장충체육관(서울 중구 동호로 241)에서 열린다. ‘예배의 회복’과 ‘선교의 부흥’을 비전으로 삼은 청년들이 다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열방을 향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2026 카운트다운에서는 6월 19일(금) 황성은 목사(창동염광교회) ‘CALL 부르심’, 20일(토) 김다위 목사(선한목자교회) ‘OBEY 순종’, 문대원 목사(대구동신교회) ‘UNITY 연합’, 이용규 선교사(인도네시아) ‘NATIONS 열방’, 21일(일)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 ‘TURN 회심’, 양승훈 선교사(불어권 선교회) ‘DONE 완성’, 이재훈 위임목사 ‘WIN 승리’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한다. 찬양과 특순, 합심기도, 결신 등의 순서도 이어질 예정이다. 참가신청은 카운트다운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QR코드 참고). 회비는 3만 원(일요주일 연합예배는 무료). 참가신청을 한 다음 카운트다운 홈페이지 ‘My Page’에서 신청 내역을 확인하고, 현장 접수에 필요한 QR코드를 발급받아야 한다. 최성민 목사(대학청년부 본부장)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신앙은 식지 않고 더욱 뜨겁게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면서 “초대교회의 예배 열정과 복음을 향한 사명을 회복하며, 그 어느 때보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모든 분을 카운트다운에 초대한다”고 말했다. 예배&선교 콘퍼런스 카운트다운은 2011년 시작된 집회다. 청년들의 영적 부흥과 선교 헌신을 목표로 2년마다 개최하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여성기도부흥운동 마리아행전 ‘왕의 기도’ 국내 온누리교회 및 해외 비전교회 3,078명 참석 2026 여성기도부흥운동 마리아행전 ‘왕의 기도’가 막을 내렸다. 6월 10일(수)부터 12일 (금)까지 이어진 집회에는 국내 온누리교회 및 해외 비전교회에서 마리아 3,078명이 참석 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예수님의 기도를 배웠다. 2026 마리아행전에서는 10일(수)과 11일(목) 양재온누리교회 집회 실황을 각 캠퍼스 본당 에 송출했다. 12일에는 양재 사랑홀에서 다함 께 모여 연합 기도회를 했다. 첫째 날(10일)에는 송정미 사모 특순, 조호영 목사 오프닝 메시지, 이재훈 위임목사 설교, 기도회 등을 했다. 둘째 날(11일)에는 찬양, 정 명호 목사(혜성교회) 설교, 기도회 등을 했다. 셋째 날(12일)에는 찬양, 유기성 목사(선한목 자교회 원로목사) 설교, 기도회, 세리모니 등 을 했다. 강민정 성도(도곡공동체)는 “하나님 앞에 나 아가 나의 깊은 곳에 자리한 죄와 연약함부터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소망했다. 마리아행전은 나라와 민족, 교회와 가정, 다 음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여성기도부흥운동’ 이다. 지난 2010년 시작해서 올해 17번째 집회 를 열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 7월 17~18일 ‘714연합기도대성회’ 714연합기도대성회(이하 714기도회)가 오 는 7월 17일(금)과 18일(토) 서울 잠실학생체 육관에서 막 오른다.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 는 교회’(사 62:6)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 에는 500개 한국 교회 2만 여 성도가 참석할 예정이다. 714기도회에서는 7월 17일 오후 4시부터 8 시 30분까지, 18일 오후 1시 30분부터 8시까 지 집회가 이어진다. 17일 이인호 목사(더사 랑의교회), 유기성 목사(위지엠) 환영, 이기용 목사(신길교회), 이인호 목사 말씀, 안광복 목 사(상당교회), 이해영 목사(성민교회), 김도훈 목사(신림동산교회), 김형석 목사(필그림교 회)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18일에는 김다위 목사(선한목자교회), 이재 훈 목사(온누리교회) 환영, 문대원 목사(대구 동신교회), 이재훈 목사, 이정규 목사(시광교 회) 말씀, 이요한 목사(수원순복음교회), 류성 룡 목사(흩어진화평교회), 이지훈 목사(대구 범어교회), 남경우 목사(GMTC), 이종필 목사 (세상의빛교회), 김경석 목사(강서침례교회) 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참가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714연합기도운 동 홈페이지(www.714praymov.org) 또는 하 단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문의: 02-868-8425 / 홍하영 기자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아웃리치 발대식, 6월 24일 오후 7시 30분 2000선교본부가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 를 주제로 6월 24일(수)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2026 아웃리치 발대 식’을 개최한다. 이재훈 위임목사 메시지, 아웃리치를 위한 중보기도, 아웃리치 지침 및 교육 등을 할 예정이다. 국내외 아웃리치 참가자 및 공동체 리더십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참가신청은 아웃리치 팀장이 대표로 6월 17일(수)까지 하단 QR코드로 하면 된다. 에서는 여름 아웃리치 사진과 간증 원고를 모집한다. 매주 월요일까지 간증 (한글 파일 기준 글자 10포인트로 A4용지 1 장)과 사진(가로 형태 사역 사진, 간증을 쓴 성 도 사진)을 이메일(wisdom7@onnuri.org)로 보내면 7~8월에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 박지혜 기자
2026-06-13 제1593호
[마리아행전] "예수님처럼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겠습니다!” 나와 교회, 민족과 세상을 위한 왕의 기도! “예수께서 이말씀을하시고눈을 들어 하늘 을 우러러보시고 기도하셨습니다”(요 17:1a).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이 눈을 들어 하 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셨다. 자신을 위해, 제 자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마리아들이 바로 그 왕의 기도를 따라, 나와 교회, 민족과 세상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첫째 날, 자신을 위한 왕의 기도 6월 10일(수) 오전 9시 40분,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마리아들이 하나둘 모였다. 이윽고 예배당이 그녀들의 기도로 채워졌다. 오전 10시, 집회가 시작됐다. Blossom 챔버의 연주와 찬양이 울려 퍼졌다. 송정미 사모의 특 순이 끝나고, 조호영 목사(여성사역본부장)가 단상에 올랐다. “내 욕심과 뜻을 앞세우는 기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어떤 기도를 원하시는지 배워보십시 오.” 첫째 날 설교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왕의 기도’(요 17:1~5)를 주제로 했다. 기도회는 김정희 목사(양재여성사역)가 ‘자신을 위한 기도’ 를 주제로 인도했다. 둘째 날, 교회를 위한 왕의 기도 마리아행전 둘째 날 집회는 The Blessing 챔 버의 연주와 찬양, 기도로 시작됐다. 설교는 정 명호 목사(혜성교회)가 ‘세상 안으로 보내심 을 받은 자들의 기도’(요 17:6~19)를 주제로 했다. 마리아들의 기도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 졌다. 둘째 날 기도회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 다. 김현실 목사(부천 여성사역)가 ‘교회를 위 한 기도’를 주제로 인도했다. 말씀을 잃지 않 는 교회가 되도록,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 하지 않는 교회가 되도록, 진리로 거룩해지는 교회가 되도록 부르짖었다.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회도 이어졌다. 이윤재 목사(수원 여성사역)가 ‘정치, 법, 사회를 위한 기도’를, 김미정 목사(인천 여성사역)가 ‘교육, 문화, 미디어를 위한 기도’를 주제로 인도했다. 셋째 날, 세상을 위한 왕의 기도 집회 마지막 날,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마리아들이 모였다. 설교는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원로목사) 가 ‘아버지, 하나 되게 하소서’(요 17:20~26) 을 주제로 했다. 기도회는 배순양 목사(제주 여 성사역) ‘북한, 통일을 위한 기도’, 권오향 목 사(남양주 여성사역) ‘열방을 위한 기도’를 주 제로 인도했다. 백미는 세리머니였다. 마리아 들이 서로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손을 맞잡고 축복했다. / 홍하영, 박지혜, 남현영 기자 인터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 평소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왕, 선 지자,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하나 님 나라가 임하고,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도도 꾸준히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단의 계략을 분별할 지혜와 영적 전쟁을 감 당할 능력을 주셨음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 다. 그런데 첫날 메시지를 들으면서 기도의 은 사를 충분히 사용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 다. 세상의 우상뿐만 아니라 제 안의 우상도 돌아봤습니다. 이것을 무너뜨릴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며, 마지막 시대 성도 에게 순교적 신앙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겼습 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제가 죽기를 원합니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보자” 다”라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부 어주시는 사랑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웠 습니다. 그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비로소 타인 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다고 믿습니 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한 삶은 예배하는 일상에서 시작된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존 재로 지으셨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참된 예 배자로 부르고 계신다 고 믿습니다. / 이승진 집사(강남B공동체)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보자" 평소에도 교회를 위한 기도를 매일 드렸는 데,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결국 점점 악해질 텐데, 내가 기도한다고 달라 질까’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지만, 그 기도가 실제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품은 채 마리아행전 자리에 앉았 습니다. 말씀을 듣는데 무엇인가 달라지기 시 작했습니다. 우리가 연합해서 기도할 때 하나 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 내 기도가 작아 보여도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음으로 붙 들게 됐습니다. 특히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 보자”라는 말씀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함 께 기도하는 지체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한 군 대가 되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 니다. 교육, 미디어, 정치 등 세상의 모든 영역 을 위해서 지금보다 구체적으로, 더욱 민감하 게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포함해서 하루 한 시간은 기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기도할 제목이 많아졌습니다. 교회 리더십을 위해, 세속화되는 이 시대를 분별하기 위해, 다음세 대를 위해 더 깊이 무 릎 꿇겠습니다. / 박진영 집사(이수공동체)
2026-06-13 제1593호
[장애인주일 특집]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인사역본부 부모와 교사들의 솔직담백한 고백 장애인사역본부 공동체 부모와 교사들 을 만났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고 담백 한 고백을 들었다. 누군가는 자녀가 처 음 장애 진단을 받던 날 병원 계단을 기 억했고, 누군가는 장애인 자녀가 그린 작품을 전시한 날의 기쁨을 고백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장애인과 함께 걷는 길에서 경험한 감동을 노래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려고 목적지에 맞게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탔는데, 착륙지는 이탈리아가 아닌 알래스카의 어느 공항이었다.” 장애인 자녀를 맞이하는 부모의 당혹감을 표현한 이 문장이 낯선 비유처럼 들리지만, 그것을 몸으로 겪어낸 이들에게는 가장 정확한 고백이다. 오랜 시간 ‘장애’라는 칼바람이 부는 북극에서 사는 방법을 익혀온 이들의 솔직 담백한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원망도, 불평도 어려웠던 그 시간 자녀의 장애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이선아 성도(부천온누리교회)는 아들 윤후(부천 사랑부)의 장애 검사 결과지를 받던 20여 년 전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또래보다 발달 속도 등이 범주를 벗어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도, 막상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병원 계단에서 통곡하고 말았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7살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료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이후 희귀 난치 질환 진단과 수술, 뇌전증 대발작, 척추측만증 교정 수술까지 더 큰 난관들이 찾아왔다. 그 모든 시간을 버티면서도 원망도, 불평도 편하게 뱉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해진다는 말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남편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게 보였고, 저는 계속 울부짖으며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하시네요’라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이 죄가 되어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봐 애써 머리를 흔들며 애꿎은 기도 시간만 늘렸습니다.” 이지영 자매(강동 사랑부)의 어머니 오금옥 성도(강동온누리교회)도 딸의 장애 진단 앞에 무너져 내렸다. 이지영 자매가 4살 될 무렵, “자폐증입니다. 혼자 살아가기 힘들 겁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신(神)을 원망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없다, 부처님도 없다’며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모든 신을 끄집어 와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아이의 장애가 나의 죄라 여기며 세상의 눈치, 가족의 눈치, 아이의 눈치를 보면서 그 암흑 같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박혜신 자매(서빙고 예수사랑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도, 김수 자매(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도, 김재원 형제(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도 다르지 않았다. 자녀의 장애 진단 앞에 상한 마음을 감추고 끝나지 않을 그 세월을 살았다. 하나님 원망도 해보고, 울며불며 매달려 보면서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뎠다. 북극에도 봄은 온다 시간이 흘렀다. 살을 에는 칼바람만 부는 것 같았던 북극에도 따스한 볕이 드는 봄이 찾아왔다. 인생의 계절이 바뀌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윤후 형제가 올해 스무 살이 됐다. 뇌전증 대발작은 여전히 찾아오고, 희귀 난치 질환은 평생 안고 가야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이선아 성도는 그 기쁨의 비결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부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윤후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사랑부 선생님들의 사랑과 헌신이 우리 가정에 기쁨을 가져다줬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충분히 유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지영 자매는 혼자 밥을 차려 먹고, 대중교통을 타고, 치료기관을 찾아간다.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린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거라던 아이가 씩씩하고 명랑한 청년 작가가 됐다. 이지영 자매가 견뎌낸 그 숱한 세월이 엄마 오금옥 성도를 하나님 앞으로 초대했다. “지영이가 저를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의 삶을 통해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려내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봄볕은 이 가정에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김수 자매, 김재원 형제, 박혜신 자매, 최희민 형제에게도 찾아왔다. 그들은 지금 ‘장애인 청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장애인 청년 작가 5인(김수, 김재원, 박혜신, 이지영, 최희민)이 사랑홀갤러리(서빙고온누리교회 신관 1층)에서 장애인의 달 특별전 ‘우리들의 찬양’을 열고 있다. 박혜신 자매는 지난해 연말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도 하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가 지난해 연말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을 꺼냈다. 박혜신 자매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활짝 핀 자목련 그림을 구매했고, 그 그림을 품에 안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 속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저는 혜신이의 그림을 보면 하나님의 미소를 대하는 듯합니다. 성도들이 갤러리 복도를 오가면서 손 내미시는 하나님을 만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재원 형제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에게는 전시회보다 “행복하다”는 아들의 고백이 더 큰 선물이었다. “재원이가 전시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행복하다’는 고백을 참 많이 했습니다. 재원이의 그림을 보고 ‘위로 받았다’, ‘소중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등의 평을 남겨주시는 관객들과 만나면서 큰 용기도 얻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사랑홀갤러리에 걸린 아이들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와 따뜻한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김수 자매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딸의 은사를 성도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온누리교회 장애인 예배가 우리 모녀의 안식처입니다. 늘 위로와 사랑을 받기만 하다가 특별전을 열고 작게나마 성도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수가 이 기회를 좋은 토양 삼아 더 큰 믿음의 자녀로 성장할 것입니다.” 곁에 머무는 사랑, 페이스메이커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디는 이들 곁에서 묵묵히 품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사역본부 교사들이다. 정길우 성도(서빙고 사랑부 교사)는 직장 신우회 활동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장애인 시설에서 무려 20여 년을 봉사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년퇴직 이후 공동체에서 장애 자녀를 둔 가정들을 만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이유를 어느 주일 발견한 ‘사랑부 교사 모집’ 광고에서 알 수 있었다. 무작정 사랑부 예배를 찾아갔고, 교사로 지원했다. 사랑부를 섬기면서 정길우 성도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랑부 여름 캠프에서 한 형제의 배변을 돕고 샤워를 시키다가 문득 아무 거리낌 없이 섬기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그때 동료 교사가 건넨 한마디가 그 기쁨의 정체를 알려줬다. “‘사랑부가 아니면 이런 경험을 평생 못 했을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기에 할 수 있는 일이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부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은 멀리서 돕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해 문석윤 성도(서빙고 예수사랑부 교사)에게 예수사랑부를 섬기던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싱어를 구하고 있으니 함께 섬기자고 제안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선택인지 망설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사 43:1)을 붙들고 예수사랑부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8개월이 흘렀다. “예수사랑부 청년들을 보면 순전한 예배자가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이곳에 10년 이상 몸담고, ‘나의 남은 삶은 이곳’이라 고백하는 선배 교사들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사랑부가 그 이름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경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2년째 부천 사랑부 총무로 섬기는 김도훈 집사(부천온누리교회)도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어느새 가장 소중한 사역지가 됐다. 대학생이 된 딸도 함께 교사로 섬기고 있다. 찬양할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 뛰는 사랑부 청년들의 미소에서 예수님을 본다. “마라톤에는 선수 곁에서 속도를 조절해 주는 페이스메이커가 있습니다. 사랑부에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뛰어줄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사랑부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여러분의 섬김이 사랑부 아이들에게 평생의 온기를 나눠줄 큰 빛이 될 것입니다.” 이탈리아행 비행기에서 내려 북극에 섰던 이들이 그 땅에서 이글루를 짓고 있다. 북극의 모진 추위를 이기고 튼튼하고 따듯한 이글루를 함께 지어줄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문의: 02-3215-3263
2026-04-18 제1585호
[예수를 따르는 사람]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캠퍼스 복음화’ 꿈꾸는 백은희 교수의 확신 “나를 따르라”(마 16:24). 2026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전제한 그리스도의 엄중한 명령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한 모든 이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온누리신문>에서‘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과 고백을 듣는다. 그 일곱 번째 주인공은‘국립공주대학교 백은희 교수(양재온누리교회)’다. 그녀는 캠퍼스를 선교지로 여기고, 자신의 달란트와‘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라는 선교 도구를 사용해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는‘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현장 이른 아침, 아직 캠퍼스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인데 강의실 불이 하나둘 켜졌다. 그리고 전공 서적 대신 성경책을 든 예배드리는 사람들, 교수와 학생, 지역 교회 성도들이 모였다. 국립공주대학교 신우회 소속 교수들, 기독동아리 학생과 간사, 지역 교회 성도들이다. 그들은 무릎부터 꿇었다. 그리고 학교와 학생들, 캠퍼스 복음화를 간구하며 뜨겁게 부르짖었다. 그들은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교단과 소속을 넘어 기독교 공동체 이름으로 하나 된다. 그들의 기도와 예배는 특별하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선교지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는 선교 도구”라는 고백을 일상에서 증명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 갈망이 캠퍼스 복음화라는 엄청난 비전을 완수하는 원동력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지난해 KUPM(전국교수선교회)과 CCC연합평창대회에서 백은희 교수의 발표로 전국 대학 기독 공동체에 소개되며 점차 더 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바로 국립공주대학교 교수신우회와 기독동아리가 함께 드리는 ‘ 국립공주대기독연합예배’ 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는 2010년대, 국립공주대학교 음악교육과 백기현 교수가 교수신우회 회장을 역임할 당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로 시작했다. 기독동아리 학생들과 간사, 교수들이 함께 모여 ‘ 복음 전도’ 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린 연합예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지경이 넓어졌다. 지금도 ‘CCC(Campus Crusade for Chris), JDM(Jesus Disciple Movement), DFC(Disciples For Christ), SFC(Student For Christ), ESF(Evangelical Student Fellowship), IVF(Korea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 비전선교단’ 등 주요 기독동아리 구성원들과 간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 장로와 권사, 선교사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매주 적게는 7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의 인원이 모인다. 캠퍼스와 지역 교회가 연결되는 통로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의 특징이 뚜렷하다. 교수신우회, 기독동아리, 지역사회 교회와 함께하는 연합예배는 개강 및 공강 감사예배만 드리는 게 아니다. 매 학기 약 11주 동안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주 수요일 오전 8시부터 8시 50분까지 진행된다. 예배는 기독동아리 학생들의 찬양을 시작으로 교수신우회 교수들의 기도, 간사 및 지역사회 목회자들의 말씀 나눔으로 이어진다. 또한 국립공주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생에게 문이 활짝 열린 예배다. 이 지속성과 개방성은 학생들이 복음을 더욱 쉽게 접하는 환경을 만든다. 기독동아리에 가입한 대부분 학생은 이미 크리스천이다. 신앙을 가진 학생들을 돌보고 신앙 안에서 굳건하게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연합예배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학생들이 친구 초대로 왔다가 부담 없이 예배드리고,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복음은 관계에서 전해지기 때문이다. 연합예배의 핵심은 ‘ 연합’ 에 있다. 국립공주대학교 6개 기독동아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이 늘 그 자리를 함께한다. 모든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하나님이 주신 캠퍼스 복음화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가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선교 도구인 이유가 바로 그것 이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삶으로 보여주는 신앙 “최근 대학가는 상대적 가치관의 혼란과 영적 황폐함, 갈수록 교묘해지는 이단 및 사이비 단체의 포교로 인해 복음화가 더욱 어려워지는 실정입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에서 크리스천 교수님들이 예배의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은 학생들에게 큰 힘과 영적 귀감이 됩니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이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수들에게 이 여정이 쉬운 길은 아니다. 치열한 연구 성과와 업적 평가가 생존과 직결되는 대학에서 매주 시간을 내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작지 않은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백은희 교수의 생각은 분명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는 게 훨씬 큰 축복이고, 영향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백은희 교수는 그래서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자리’ 라고 고백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이 영향력을 전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그들의 신앙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말로 전하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큰 울림을 준다고 믿습니다. 저와 같은 믿음과 확신을 가진 교수님들이 교수신우회에서 활동하고, 기독동아리와 학생들이 서로 연결되어 함께 드리는 연합예배는 그 존재만으로도 전도의 파급력이 대단합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제자도 실천’ 백은희 교수가 생각하는 ‘ 예수를 따르는 삶’은 특별한 환경이나 특정 순간에만 드러나는게 절대 아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 곧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 제자도 실천이 핵심이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는 저의 선교지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수 전하는 일을 함께하며 선교 도구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복음을 전하며, 캠퍼스 복음화의 꿈을 이뤄내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제자도 실천이라고 확신합니다.” 특수교육과 교수로서 장애 학생을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는 백은희 교수는 일과 업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고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묻습니다. 하나는 ‘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 또 다른 하나는 ‘ 이 일이 장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입니다. 이 두 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하면 비록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고 시간을 내어야 하는 힘든 선택일지라도 기꺼이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순종입니다” 그렇게 선택한 일을 할 때에는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을 상기한다고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백은희 교수가 대학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지입니다. 특별한 사역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강의실과 연구실, 학생들을 만나는 모든 장소가 복음을 전하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2026-04-10 제1584호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엄학실 성도가 압록강 건너 예수 따르기까지 “나를 따르라”(마 16:24). 2026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전제한 그리스도의 엄중한 명령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한 모든 이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온누리신문>에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과 고백을 듣는다. 그 네 번째 주인공은 엄학실 성도(부천한사랑공동체)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제가 배운 역사 교과서 속 미국 선교사들은 '하느님을 전한다면서 사과를 훔쳐먹어 이마에 도적이라 새긴 자들'이었습니다.” 엄학실 성도에게 하나님은 첫인상이 아주 나빴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고, 선교사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두메산골에서 자란 엄학실 성도에게 신이라는 개념은 삶의 영역 밖에 있었다. 국가가 곧 절대였고, 김일성 일가는 신을 넘어선 존재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를 담은 <혁명역사도록>을 줄줄 외우며 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은 스쳐 지나는 왜곡된 이야기 속 인물, 나쁜 사람으로만 남아 있었다. 엄학실 성도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뜨린 끔찍한 경험이 있었다.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고,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던 그녀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의 방향을 잃었다.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이 떠나고 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막막함뿐이었습니다. 손주들 밥을 축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차피 죽을 거라면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심은 곧 국경을 향한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압록강으로 향하던 길 위에서 엄학실 성도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을 찾았다. “3월의 압록강은 녹지 않은 얼음과 불어난 물로 가슴 높이까지 차올라 있었습니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느님, 하느님, 내가 압록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른 채 드린 저의 첫 번째 기도였습니다.” 압록강에 다다른 그녀의 눈앞에 믿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강 위로 쓰러져 다리처럼 놓여 있었다. 그 덕분에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 한 구절이 나를… 중국에서의 삶 역시 쉽지 않았다. 공안의 단속을 피해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옮겨야 했다. 이전보다 형편은 조금 나아졌지만, 불안은 여전했다. 함께 중국으로 건너온 딸은 가사도우미, 엄학실 성도는 농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마음 한편에는 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엄학실 성도의 입술에서 다시 같은 이름이 흘러나왔다. “하느님, 우리 딸과 손자가 공안에 잡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우리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게 해 주십시오.” 그때도 여전히 그것이 기도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절박한 순간마다 무심코 부르게 되는 이름이었다.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딸이 한국으로 떠나자고 제안했다. 점점 자라는 손자를 위한 선택이었다.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그날 밤 꿈이 엄학실 성도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미 중국으로 도망쳐온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나려니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너희가 먼저 가서 좋으면 나를 데리러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꿨습니다. 넓고 길고 곧은 길 위에 큰 개 세 마리가 죽어있는 꿈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꿈에 나온 개가 경찰을 뜻합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아, 안전하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딸에게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일터에 거짓말하고 나온 딸과 손자와 함께 밤 11시에 창문을 넘어 도망쳤습니다.” 엄학실 성도는 여러 경로와 재판을 거쳐 한국대사관 방콕 수용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성경책을 봤다. “방콕 수용소에는 한국 영화와 책 그리고 성경책 등이 있었습니다. 문득 ‘북한은 왜 그렇게 성경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핍박했을까?’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일하려고 국경을 넘나들던 시절 성경책을 겉옷에 숨겼다가 공안에 붙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성경책이 무엇이길래 그렇게까지 할까?’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성경 읽기가 곧 ‘통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이 한 구절이 엄학실 성도의 마음을 붙잡았다. 나도 하나님을 믿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마침내 한국에 도착한 엄학실 성도는 하나원에서 만난 동기에게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인도받은 곳이 부천온누리교회 한사랑공동체다. 그곳에서 엄학실 성도의 신앙이 비로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말씀과 사랑이 그녀를 감쌌고, 김혜경 목사와 한사랑공동체의 돌봄 덕분에 하나님 앞에 서는 믿음이 조금씩 생겼다.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마다 하나님께 말을 걸었고, 새벽과 밤을 기도로 채웠다. 그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또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했다. "평소처럼 새벽에 혼자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 <레위기> 11장 45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책을 펼쳐서 확인해 봤더니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명령이라고 느꼈습니다. 연약한 저는 매일 넘어지고 또 엎어지겠지만, 하나님의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엄학실 성도에게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말씀 앞에 서는 삶, 말씀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이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는 것이 그녀가 이해하는 예수 제자의 모습이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을 보면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뜰만 밟듯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것을 붙들고 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가지를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첫 자리에 놓고, 삶의 모든 순간에 기도하며, 예배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현장이 곧 선교지가 되어야 합니다." 엄학실 성도는 복음 통일을 바라보며 그날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북한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어떤 경로로든 하나님을 만나고,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복음 통일이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가족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도록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 훈련받으며, 준비해야 합니다.”
2026-03-21 제15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