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잠 21:14). 이 말씀을 처음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성경이 뇌물을 권하는 것인가?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출 23:8)고 분명히 금하신 하나님이 <잠언>에서는 뇌물이 분노를 그치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니 말이다.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잠언>이라는 책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성서해석학에서는 <잠언>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처방적 잠언’(prescriptive proverb)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서술적 잠언’(descriptive proverb)이다. <잠언> 21장 14절은 후자에 해당한다. “뇌물을 주라”는 명령이 아니라 세상에서 선물과 뇌물이 실제로 분노를 가라앉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기술한 것이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난다. 전반절은 ‘은밀한 선물’이 ‘노’를 쉬게 한다고 말하고, 후반절은 ‘품 안의 뇌물’이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고 말한다. 히브리 시는 후반절에서 전반절의 의미를 반복하면서 한층 더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 여기서도 ‘노’보다 ‘맹렬한 분’ 훨씬 격렬한 분노를 가리키고, 그에 대응해 ‘선물’보다 더 강한 표현인 ‘뇌물’이 사용된다. 이는 분노의 강도가 극에 달할수록 그것을 가라앉히는 데 더 큰 대가가 따른다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은밀한’과 ‘품 안의’라는 표현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건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드러내 놓고 주는 선물은 자칫 과시되기 쉽고,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이나 체면의 상처가 될 수 있다. 반면, 남몰래 건네는 정성은 상대방의 마음 깊은 곳을 움직인다. 성경에도 <잠언>과 꼭 들어맞는 사례가 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20년 넘게 쌓인 분노를 알기에 수백 마리의 가축을 앞세워 보냈다.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창 32:20). 야곱의 속마음을 보면 이것은 순수한 감사의 선물이라기보다 자기 잘못으로 빚어진 분노를 무마하려는 전략적 증여였다. 아비가일 역시 남편 나발의 무례로 온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음식을 급히 준비해서 달려갔다(삼상 25장). 이 역시 순수한 호의라기보다는 절박한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행동이었다. 두 사례 모두 순수한 선물과 정의를 왜곡하는 뇌물 경계 어딘가에 있는 ‘위기를 넘기기 위한 선물’이었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늘 뚜렷하지 않은 현실을 성경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잠언> 21장 14절의 지혜이다. 이 말씀은 뇌물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누군가 내게 분노하고 있을 때 자존심을 세우며 맞서기보다 먼저 조용히 손을 내미는 것이다. 내 잘못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관계를 회복하려는 용기, 드러내 놓고 체면을 세우는 화해가 아니라 은밀하게 마음을 전하는 겸손이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이다. 예수님도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마 5:25)고 말씀하셨다. 갈등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세상의 방식을 관찰한 <잠언>이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이다. /오은규 목사(성동광진 공동체)
2026-04-18 제1585호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최근 우리 가족에게 거룩하고 즐거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온누리성경읽기앱’으로 매일 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갖는 일이다. 말씀을 다 들은 뒤에는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매일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기도로 마무리한다.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자녀들의 기도와 고백을 듣다 보면 부모인 나도 큰 위로와 도전을 받는다. 온 가족이 말씀 안에서 하나 되어 기도로 마음을 모으는 이 시간은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깊은 은혜다. 이처럼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듣고 나누는 행위가 우리 영혼에 얼마나 큰 생명력을 불어넣는지 몸소 체험하며, 바울 사도가 골로새교회에 전했던 권면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본문의 첫머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는 권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거하다(νοικετω)’라는 헬라어는 잠시 방문하는 손님이 아니라, 그 집의 주인으로서 ‘안주하다’, ‘뿌리를 내리다’, ‘계속 머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성경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체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중심인 ‘마음’에 자리 잡고,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통치적 권위를 가진다는 뜻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πλουσω)’ 거한다는 것은 말씀이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자리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당시 유행하던 헬라의 철학이나 영지주의, 금욕주의, 신비주의 등 다양한 거짓 가르침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유일한 해답으로 ‘말씀의 내주’를 제시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세상의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속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갖게 된다. 이어지는 말씀은 말씀이 내주한 결과가 공동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라는 구절은 신앙이 결코 개인주의적인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복음은 공동체 안에서 나눌 때 그 생명력이 배가 된다. 여기서 ‘피차(αυτο)’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가르침이 어느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모든 성도가 서로를 세워가는 과정임을 나타낸다.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 위로를 받듯, 성숙한 성도는 연약한 자를 권면하고, 연약한 자는 순수한 고백으로 공동체에 신선한 도전을 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공통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 스승이자 동역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지혜(πσσοφ)’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말씀의 풍성함은 반드시 찬양의 고백으로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본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기록한다. 말씀이 머리에만 머무르면 교만이 되기 쉽고, 가슴에만 머무르면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 영혼 깊숙이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찬양과 감사가 된다. 여기서 ‘감사하는 마음으로(ντχριτι)’는 문자 그대로 ‘그 은혜 안에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형편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있다.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할 수 있는 ‘신령한 노래’를 얻게 된다. 형식적인 노래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감사의 제사가 드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말씀을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하느냐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삶의 자리로 가져가야 한다. 매일의 시간을 구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주인으로 자리 잡도록 ‘말씀이 머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며 서로에게 권면할 때 우리 입술에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감사의 찬양이 터져 나올 것이다. 말씀이 머무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는 성소임을 기억하며 말씀 앞에 우리 마음의 자리를 내어 드리기를 소망한다. / 정현석 목사 (고양은평공동체)
2026-04-04 제1583호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12절과 <누가복음> 15장 4절에서 자신을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셨다. 그리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물으신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양 100마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가 99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그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마 18:12). “너희 중 누가 100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눅 15:4).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물음표라기보다는 느낌표에 가깝다. 우리의 의견을 묻는다기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부의 말이기 때문이다. 양 무리에서 이탈한 양은 생명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양과 목자>의 저자 필립 켈러는 수년 동안 양을 치는 목자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저자는 양의 수가 한두 마리 모자랄 때면 가장 먼저 ‘내 양 중 한 마리가 어딘가에 뒤집혀 있겠구나. 빨리 찾아 일으켜 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고 고백한다. 필립 켈러의 ‘뒤집힌 양’에 대한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다. 뒤집힌 양은 등이 땅에 닿고 네 발이 허공을 향한 채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버둥거리지만 혼자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처음에는 도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매에”하고 소리 내어 울어보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그 울음소리는 오히려 맹수의 표적이 된다. 결국, 양은 두려움과 좌절감 속에서 심하게 발버둥 치다가 지쳐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게 된다. 만일 목자가 빠른 시간 안에 그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그 양은 십중팔구 죽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뒤집힌 양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네 발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는데 버둥거리는 동안 양의 흑위(되새김질 동물의 첫 번째 위) 속에 가스가 차 오르기 시작한다. 가스가 차오르면 몸의 말단, 특히 사지부터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되다가 순환이 멎어버리게 된다. 날씨가 덥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에는 뒤집힌 양이 몇 시간 내에 죽을 수도 있다. 독수리와 들개, 이리, 표범 같은 맹수들에게 뒤집힌 양은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먹잇감일 뿐 아니라 얼마 안 있어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표적으로 삼고 주시한다. 이처럼 길을 잃은 양은 뒤집혀 무력해진 채 죽거나 맹수의 공격으로 죽기 쉽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아는 목자에게 길 잃은 양의 문제는 무엇보다 급하다. 목자는 최우선 순위로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게 된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성경의 비유에는 이처럼 생명을 놓고 벌어지는 시간적 긴박함에 대한 자각이 담겨 있다. 바로 그 시간적 긴박감에서 잃은 양을 찾고자 하는 목자의 뜨거운 열정이 생겨나고, 마침내 찾아낸 양을 데리고 돌아올 때의 무한한 기쁨이 생긴다. 예수님은 자신을 잃은 양을 서둘러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시면서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시간에 대한 긴박함을 품을 것을 권면하셨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십시오”라고 드렸던 우리의 고백이 길 잃은 한 영혼을 향한 긴박한 마음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박철웅 목사 (강남B공동체)
2026-03-21 제1581호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8:2a 개역개정).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를 어떻게 이끄셨는지, 어떻게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고 하셨음을 기억하라”(신 8:2).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2세대에게 전한 마지막 설교다. 그 핵심은 바로 “기억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 광야의 고난과 역경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다. 단순한 과거 회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현재의 삶과 연결해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근거로 삼으라는 영적 메시지다. 나약한 인간은 평안하고 배가 부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는다. 그러므로 “지난 광야의 길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키겠다는 결단을 확인시키는 메시지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광야 길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모든 것이 나의 힘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하는 감사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를 허락하신 첫 번째 목적은 ‘너희를 낮추시고’에 있다. ‘낮춘다’는 말은 고통을 겪게 한다거나 겸손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광야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자리한 의와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처방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이집트와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지만, 광야의 현실 앞에서 끊임없이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은 베푸신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들의 영적 교만을 보시고, 그들을 낮추셔서 오직 당신만 의지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처럼,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광야의 길은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늘의 양식인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게 하는 영적 훈련소였다. 하나님이 광야를 허락하신 두 번째 목적은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고 하신 것’이다. 광야 길의 고난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시험하는 장소였다.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괴롭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연단해서 정금처럼 순수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광야라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환경이 시험이 아니다. 그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는 반응이 바로 시험의 본질이다. 그 시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고, 하나님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 즉, 광야에서의 시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하는 시험대였다. 창립 40주년을 지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 온누리교회의 지난 40년 광야 여정을 다시금 돌아본다. 그 여정은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신 연단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허락하신 은혜의 시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길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고, 감사를 발판 삼아 새롭게 펼쳐질 광야의 여정, 약속의 땅을 향해 순종으로 걸어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걸어가자. / 제치윤 목사(영종온누리교회)
2026-03-07 제1579호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4) 뜻밖의 선택 사사기 강해(4) 뜻밖의 선택 <사사기> 3:12~17, 27~30 / 이재훈 위임목사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물은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바로 ‘에훗’이라는 사사입니다. 그는 ‘과연 이 사람이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사 에훗은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가나안 정복에서 기여도가 가장 떨어졌습니다. 또 에훗에 대한 설명을 보면 ‘오른손을 쓰지 못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장애를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의 관점으로 볼 때 ‘리더로 합당할 수 없다’는 평가가 들어 있는 표현입니다. 누구나 그 사람이 구원자가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가 한 일을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그는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러 갔다가 거짓말로 속이고, 그를 찔러 죽이는 암살을 했습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그를 구원자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뜻밖의 나라를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 하나님은 뜻밖의 나라를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또다시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그들이 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해 이스라엘을 맞서게 하셨습니다”(12절). ‘또다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옷니엘’이 가져다준 40년의 평온이 끝나자, 이스라엘은 또다시 같은 길을 갔습니다. 죄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같은 것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악한 자의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습니다. 언제나 거짓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줄거리는 이름과 사정만 바뀔 뿐 늘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타락했는지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과 인간이 죄를 짓는 방법은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매번 뜻밖입니다. 매번 다릅니다. 이번에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징계하시는 방법도 뜻밖입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기 때문에 먼 친척이기도 했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올라올 때 모압은 벌벌 떨던 나라였습니다. 대개 하나님이 <사사기>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실 때 ‘원수의 손에 넘기셨다’, 또 ‘파셨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에글론에 대해서만 ‘강하게 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나라를 하나님이 강하게 하셔서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신 것입니다. 모압이 암몬과 아말렉을 끌어모아서 요단을 건너와 종려나무 성읍을 정복했습니다.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얻은 첫 승리의 땅이고, 여호수아가 저주했던 바로 그 땅을 모압이 차지한 것입니다. 첫 열매의 성읍을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도구로 사용하는 민족이 정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모압에 의해서 이루어진 종살이가 18년입니다. ‘구산 리사다임’ 밑에서는 8년이었습니다. 돌이키지 않는 백성들에게는 징계가 점점 길어집니다. 그 18년 동안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를 15절의 한 단어가 설명합니다. ‘조공’ 혹은 ‘공물’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민하’라고 하는데, <레위기>에서 곡물로 드리는 제사, 곧 소제를 드릴 때 쓰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들이 모압 왕에게 바쳐진 것입니다. 백성들이 애써 수고하고 거둔 추수의 곡식들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으로 바쳐졌습니다. 바알을 섬기던 백성들이 에글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붙든 우상은 우리를 먹여주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거짓으로 풍요를 약속합니다만, 나중에는 공물을 요구합니다. 성공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바치게 됩니다. 사람의 인정을 섬기는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바치게 됩니다. 하나님께 드릴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재물과 삶을 우상에게 내어줄 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리고를 내어주고, 소중한 것을 모두 내어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구원자를 세워 주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인 왼손잡이 에훗을 그들의 구원자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칠 선물을 그를 통해 보냈습니다”(15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회개의 의미는 아닙니다. 아파서 내는 신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구원자를 세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끈질기게 죄로 되돌아가지만, 하나님은 끈질기게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뜻밖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사사기> 1장에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한 지파로 단 한 번 나올 뿐입니다. 내세울 것이 없는 지파입니다. 또 ‘베냐민’이라는 이름 자체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손의 아들들 가운데 나온 왼손잡이, 히브리어를 그대로 옮기면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오른손이 불편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고, 어려서부터 왼손을 단련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흠입니다. 결함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구원자로 기대하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근거는 에훗을 조공을 보내는 심부름꾼으로 세운 것입니다. 공물, 조공을 바치는 사람으로 왜 에훗을 선택했을까요? 모압이 경계하지 않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조공을 바치는 일은 굴욕적입니다. 굴욕적인 일을 할 때 그 나라의 군사령관을 보내겠습니까? 자존심 강하고, 애국심 강한 사람이 조공을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그 일에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이 알맞습니다. 상대방이 의심하지 않을 사람, 겉으로 볼 때 싸울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 시시해 보이는 사람, 무시해도 될 것 같은 사람이 조공을 들고 갑니다. 그래야 모압 왕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의심하지 않을 한 사람이 에훗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다윗도 그렇게 선택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뜻밖의 선택을 통해 행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봐야 합니다. 사람들의 선택에서 밀려나는 이가 하나님의 선택에서도 밀려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뜻밖의 선택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전 1:27).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면서 그 방법까지 정해 드리려고 합니다. 옷니엘 같은 사람을 계속 기대합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은 사람, 우리가 부끄러워하던 약함, 또 닫힌 것 같았던 길에서 뜻밖의 선택으로 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훗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을 인정하시거나 칭찬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을 인정하시거나 칭찬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16절에서 26절까지 에훗이 칼을 직접 만들어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찹니다. 오른손잡이라면 주로 왼편에 칼을 찹니다. 왕의 경호대가 몸을 수색했다면 왼쪽을 집중적으로 살폈을 것이고, 오른쪽에 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오른편 다리에 칼을 숨겨서 들어갔습니다. 조공을 바치고 일행과 함께 돌아가다가 다시 길갈 근처에서 발길을 돌려 “왕에게 은밀히 아뢸 말이 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되돌아갔습니다. 왕은 그를 믿고 신하들을 내보냈습니다. “은밀히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습니다”라는 말에 속아 신하들을 물러가게 한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는데, 에훗이 가져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칼이었습니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 허벅지에서 칼을 뽑아 왕의 몸을 찔렀습니다. 그동안 조공을 받아서 살쪘던 왕의 몸이 공물이 되고,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옷니엘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영이 에훗에게 임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과 부정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우리가 적을 물리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사고방식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교회 역사에서 에훗의 이름을 앞세워 칼을 든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 주석가들은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에훗은 왕이 없던 시대에 주어진 부르심이었고, 그의 방법까지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함으로써 나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 넓게 보면 처음부터 없어도 되는 칼이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앞에 충성되었다면 에글론이 여리고를 정복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에훗이 암살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사기>에 나타나는 폭력과 잔인함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반복되는 죄악입니다. 그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을 삶의 모델이나 원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굽어 있는 막대기로도 곧은 줄을 그을 수 있는 분입니다. 줄이 곧게 그어졌다고 해서 그 막대기가 반듯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운 상황 가운데 나타나셔서 굽은 막대기로도 역사하심을 이루십니다. 그러나 굽어 있는 것 자체를 하나님이 인정하시지는 않습니다. 또 에글론 같은 이는 하루 만에 무너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당시 사람들이 지도자를 고른다면 에글론 같은 사람을 고를 것입니다. 부유하고 강하고, 여러 나라를 자기 밑에 모을 줄 아는 사람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치시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글론이란 이름은 ‘송아지’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받아먹고 살찐 송아지가 되어 스스로 제물처럼 쓰러진 것입니다. <시편> 2편 4절에서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악에 무심하셔서 웃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할 것같이 생각했던 이 세상의 악의 권세가 얼마나 헛되게 무너지는지를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뜻밖의 선택이었다 “그가 그곳에 도착해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를 앞장세우고 그와 함께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에훗이 말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원수인 모압 사람들을 너희 손에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따라 내려가서 모압으로 가는 요단강 나루터를 차지하고 아무도 건너지 못하게 했습니다”(27~28절). 여기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는 자기가 왕을 죽였다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넘겨주셨다”라고 말합니다. 모압의 왕은 이미 쓰러져 있었습니다. 에훗은 이제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백성들을 80년 동안 평온하게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4장에서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끊임없는 악행의 반복, 에글론이라는 악한 왕은 무너뜨렸지만, 그 백성들의 마음의 우상은 사사들이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우상, 끊임없이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우상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에훗에서 끝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진정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야 끝이 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는 에훗보다 뜻밖의 선택으로 오신 분입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무슨 구원자가 날 것인가 사람들이 의아했던 것처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며 고향 사람들마저 그를 인정하지 않았고, 형제 야고보도 “미쳤다”라고 말했던 뜻밖의 선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칼을 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로마를 몰아내 로마 황제를 칼로 찔러 죽이고, 그 나라를 해방해 줄 구원자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유에 누이신 아기를 보내셨고, 헤롯의 핍박으로 도망 다니고 피해 다니는 연약한 모습의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선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원수를 칼로 찔러 죽이는 에훗과 달리, 예수님은 칼을 든 베드로에게 “도로 꽂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훗은 원수의 몸을 찔렀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몸에 그 칼을 맞으셨습니다. <사사기>의 구원자는 원수를 찔러서 백성을 건졌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에 의해서 찔림을 받음으로 원수까지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뜻밖의 선택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더 강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구원자와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큰 승리가 아니라 완전한 패배로 백성을 구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에글론이 하루 만에 구경거리가 되었듯이, 죄와 죽음과 사단의 권세가 십자가에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밖의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면서 선택하신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파서 부르짖고 신음하지만 진정 돌이키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힘들어서 부르짖는 것이지, 진정 회개하며 부르짖는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은혜로, 뜻밖의 선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뜻밖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천국 문에 이르러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으로 불려질 때, 천사들이 질문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대답은 한 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원수를 싸워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따르라”는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뜻밖의 선택을 하셨습니까? “이는 어떤 육체라도 그분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전 1:29). 사람들이 보기에 구원자가 될 만한 사람을 세웠다면 그 사람이 영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의 사람을 통해 구원이 오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뜻밖의 선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뜻밖의 선택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선택에는 후회가 없고, 모든 것을 행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10-02 제1607호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2) 영적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사사기 강해(2) 영적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사사기> 2:10~3:2 / 이재훈 위임목사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유다야,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너희 인애는 아침 구름과 같고 금방 사라지는 새벽이슬과 같다”(호 6:4).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그런데 그 앞 구절에 익숙하게 들었던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가 찢으셨지만 우리를 고쳐 주실 것이다. 그가 때리셨지만 우리를 싸매 주실 것이다”(호 6:1). 돌아가겠다고 하는 백성들의 고백을 들으신 난 바로 뒤에 하나님이 탄식을 하셨습니다. 백성들의 고백이 거짓이어서가 아닙니다. 이 고백을 여러 번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제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아침에 있다가 없어지는 이슬 같은 돌이킴이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결단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자리에 있습니다. 같은 죄를 놓고 같은 기도를 반복해서 드립니다. “하나님,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이 반복이 무서운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사사기>에 나타난 영적인 악순환을 알려주시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하향하는 나선형 ‘영적 악순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그 백성은 진노 가운데 고통스럽습니다. 고통 가운데 신음합니다. 하나님이 그 신음을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 주십니다. 사사가 있는 동안 잠시 구원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평안해지면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갑니다. 이 모습을 계속 반복합니다. 이 반복이 무서운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내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전목마처럼 같은 자리를 돌아오는 게 아니라, 이전 사이클보다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는 하강 곡선입니다. 하향하는 나선형(Downward Spiral), 즉 영적 악순환입니다. <사사기> 2장 말씀이 바로 이 반복을 보여줍니다. 이 사이클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그 우상숭배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대적에게 붙이셔서 괴롭게 하셨고, 그들이 신음했고,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 구원해 주셨지만, 그들은 고통 가운데 신음했을 뿐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단어가 없어서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한층 더 내려갑니다. 고통은 더 심해지고, 사사들도 수준이 점점 낮아집니다. 옷니엘부터 시작하는 사사가 삼손에서 끝나는데, 그는 최악의 사사였습니다. 그 시대의 지도자 수준도 점점 내려가는 것입니다. 영적 악순환이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타락하고,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지도자도 더욱 패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 시대의 역사가, 우리의 삶이 이런 영적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죄로 계속 넘어지고, 고통을 겪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건져 주시지만, 평안해지면 다시 죄로 돌아가는데 그 죄는 전보다 더 깊어져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 때 “그 세대가 모두 조상 곁으로 돌아갔고 그들을 뒤이어 여호와를 모르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도 전혀 모르는 다른 세대가 자라났습니다”(10절). ‘다른 세대’라고 했습니다. ‘다음 세대’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세대’라고 말합니다. <사사기> 말씀에는 3세대가 나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 세대까지도 그 일을 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듣기는 했을 것입니다. 이야기로는 들었을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 요단강이 갈라진 역사,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듣기는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이 부모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한 것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 때, 영적 악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리에 우상이 들어온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에 있던 바알과 아스다롯 신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 비와 폭풍을 다스리며 그 시대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준다고 약속하는 신들이었습니다. 왜 하필 이 신들이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자란 세대는 농사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이웃들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들로부터 “비를 내려주는 신을 잘 섬기면 곡식이 잘 된다”고 들었을 것입니다. 농사를 지은 경험이 없더라도, 노력하면 배울 수 있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실 것인데, 그들의 우상을 섬기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모습이 간간이 보입니다. 첨단 장비를 만드는 공장을 차려놓고, 그 기술을 개발한 CEO가 돼지머리를 앞에 놓고 “이 공장이 잘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빕니다. 누군가로부터 본 것을 배운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해야 이 기업이 잘될 것입니다.”라고 제안을 받은 것입니다. 사사 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면적으로 하나님을 버리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농사만은 확실히 잘하고 싶다”라는 불안과 염려에서부터 우상이 파고들어 오는 것입니다. 원칙보다 실속을 차리는 순간, 우리는 한 계단을 내려가는 것입니다. 어느 구약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 우상들은, 옛 신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다만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이안 프로반) 하나님의 마음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사사들에게 순종하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고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며 걸어왔던 길에서 금세 돌아섰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행하지 않았습니다”(17절). ‘자기 자신을 파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팔고 숭배했습니다. 우상을 섬긴다는 것, 결국 자기 자신을 우상에게 바치는 일입니다. 그 결과 속히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이클을 끊을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는 다섯 가지 단계로 하나님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역사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먼저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18절). 사사 시대 악순환이 끊어지는 은혜가 나타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어서가 아닙니다. 백성들은 그저 고통 속에 신음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신음하는 백성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백성 쪽에서는 돌이킴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돌이켜 주셨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가 먼저 돌이켜서 회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악순환에 빠진 이들에게는 기도조차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신음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신음을 기도로 들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먼저 마음을 돌이켜서 찾아와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행한 죄의 결과까지 면제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사랑하기에 진노하시고, 대적에게 넘긴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진노하시고, 대적에게 넘기십니다. 14절에 나오는 ‘팔아넘기셔서’라는 단어를 주목하십시오. 앞서 ‘팔다’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2장 17절에서 “다른 신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고 숭배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우상에게 자신을 팔았기에, 하나님이 원수들의 손에 팔아넘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신 백성들을 완전히 넘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진노의 뜻을 깨닫는 것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두 번째 실마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미워하셔서, 진멸시키려고 진노하시고 원수들에게 넘겨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진노하셨고, 대적에게 잠시 넘기신 것입니다. 진노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서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는 언제나 대적의 손만 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그들의 손만 봅니다. 그러나 <사사기> 말씀은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그 손은 우리를 아프게 하려고, 버리려고 치시는 게 아닙니다. 돌이키게 하시려고, 거룩하게 하려고, 더 귀하게 사용하려고 잠시 진노를 허락하셔서 대적들의 손에 붙이시는 것입니다. 남겨둔 민족들로 하여금 백성을 시험하고 훈련하게 한다 셋째, 하나님의 손은 남겨둔 민족들로 하여금 백성을 시험하고 훈련하게 하십니다.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과 맺었던 약속을 어기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죽으면서 남겨 놓은 민족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내가 더 이상 이스라엘로부터 몰아내지 않을 것이다’”(20~21절). 하나님이 왜 남겨둔 민족들로 하여금 그 백성을 괴롭히도록 하십니까?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들은 모든 가나안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험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남겨 두신 민족들입니다. 이전에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삿 3:1~2). <사사기> 2장 10절 말씀이 다시 나옵니다. 악순환이 어디서 시작이 됐습니까?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안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군대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여리고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아이성을 어떻게 무너뜨리셨는지를 통해서 그들이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험이 필요했습니다. 자기가 직접 치르는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려고 전쟁터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엄청난 전쟁을 치르며 바라보았던 하나님의 역사를, 이 세대가 자신들의 전쟁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알도록 하려고 시험을 통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 전쟁은 치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순종했더라면 여호수아 시대에 끝났을 일입니다. 남겨진 가나안은 어떤 모습이든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의 결과를 우리를 시험하는 교실로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시험을 통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세우시고, 더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남겨진 가나안이 있다면, ‘왜 이 문제가 아직 그대로인가?’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겨두신 것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훈련하시고, 악순환이 끊어지는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오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자로 훈련하면서 우리에게 옵니다. 악순환 끊는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게서 온다 넷째, 악순환을 끊는 구원은 백성들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게서 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셨습니다. 사사들은 그들을 침략자들의 손에서 구해 냈습니다”(16절). 사사는 백성들이 투표해서 뽑은 지도자가 아닙니다. 여호와가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사와 함께하셨습니다. 사사들이 강해서 건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전체에서 이스라엘은 한 번도 자신들의 힘으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통해서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17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사사들에게 조차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악순환은 끊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게는 순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그 구원에 기한이 있었습니다. 사사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나마 하나님이 함께하신 은혜 속에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요청하지도 않고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이 그 사사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사가 사라지면 또다시 둑이 터져서 우상숭배 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입니다. 만일 사사가 죽지 않고 지속이 된다면, 사사가 외부의 대적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까지 구원할 수 있다면, 구원의 역사가 지속되지 않겠습니까? <사사기>에 반복되는 순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죽지 않는 사사, 영원히 있는 사사, 외부의 대적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까지 변화시켜 주시는 사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적 악순환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시는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집니다.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사들이라고 말하지만, <사사기>에서 ‘사사’라는 칭호로 불린 이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를 뿐입니다. 한 분만 사사라고 불립니다. “…심판자인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족속 가운데 누구를 심판하시는지 지켜봅시다”(삿 11:27). 이 심판자가 영어로 ‘Judge’, 사사입니다. <이사야> 33장 22절에서도 “여호와는 우리의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진정한 사사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를 할 때 사사 시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사사들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울, 다윗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어떠한 사사도, 지도자도 소망이 없고,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만 구원이 있다.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만 구원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사사는 영원히 사시는 분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대적만을 무너뜨리는 사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사건을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심으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사가 사는 날 동안’이라는 말씀이 오늘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가 보내신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십니다. 사사 시대는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계단의 마지막 바닥에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를 다시 건져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의 진정한 사사입니다. 영적 악순환은 우리의 힘, 기술, 방법, 지도자가 끊지 못합니다.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통치하심의 역사만이 악순환을 끊습니다. 영적 악순환을 끊어내는 나라와 민족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9-18 제1606호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1) 절반의 순종이 남긴 것 사사기 강해(1) 절반의 순종이 남긴 것 <사사기> 2:1~9 / 이재훈 위임목사 나무로 된 물건을 다루다가 손에 작은 가시가 박혀본 경험이 한 번쯤 있으실 것입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제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가시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문제를 일으킵니다. 염증을 일으키고, 그 부위가 부어오르게 합니다. 계속 신경 쓰이게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역사 속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바로 <사사기>의 역사입니다. “너희가 남겨둔 것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리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뽑지 않고, 뽑지 못하고 남겨둔 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말씀을 통해서 비춰봐야 합니다. <사사기>는 3천 년 전 기록이지만, 오늘의 거울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사기> 21장 25절에서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어서 모두가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고 말씀합니다. 절대적 기준을 부정하고 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절대화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그야말로 사사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 오래된 책이 소중하고,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와 우리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사기>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12명의 사사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 사사들이 역사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흠이 많았습니다. 겁이 많았던 ‘기드온’, 경솔했던 ‘입다’, 정욕에 흔들린 ‘삼손’까지 흠이 많았던 이들입니다. 그 흠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의 순간을 기록하셨고, 그들을 통해서는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듭 배신을 당하면서도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사사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그 언약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사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하나님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 <사사기> 1장은 서론 역할을 합니다. 1장 내용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기록을 보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각 지파에 대하여 나오는 기록들에 반복되는 표현이 있는데, “쫓아내지 못하였다”입니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은 산간 지대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쫓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철로 만든 전차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삿 1:19). ‘철로 만든 전차’를 ‘철병거’라고 합니다. 1장 27절과 28절에 므낫세 지파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강해지자 가나안 사람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않았습니다. 쫓아내지 못했던 것도 있고, 쫓아내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스불론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파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쫓아내지 못했다”는 문장이 반복됩니다. 히브리어 표현으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 없는 것을 지적합니다. 처음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고 살도록 허용되는 정도였습니다. 쫓아내지 않고 허용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단계에 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한가운데 들어와 삽니다. 그다음에는 거꾸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 가운데 산다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아셀 사람들도 그 땅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삿 1:32). 아셀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이 이스라엘 가운데 사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에게 밀려서 산지로 쫓겨가게 됩니다. ‘밀렸다’라는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압제당할 때 쓰던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쫓아내라고 보낸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살다가 결국 쫓겨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철병거 때문에 그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의 힘이 강해지고, 가나안 사람들을 부리는 일꾼으로 쓰기 위해서 타협을 한 것입니다. 무리한 전쟁보다 실리 있는 공존이 낫다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했던 것입니다. 미세한 균열, 절반의 순종, 결국 전체의 불순종으로 <사사기> 2장 말씀에서 여호와의 천사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 말합니다. 1장 내내 반복되는 단어가 ‘올라간다’였습니다. 유다가 올라가고, 그다음에 요셉 가문이 올라가고, 마지막에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사기> 1장은 전체 흐름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쫓아낼 수 있는 백성들을 여러 이유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쫓아내지 않다가 그들과 섞이게 되고, 언약을 맺고, 결국 단 지파가 그들에게 쫓겨 나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데려와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땅으로 인도했다. 내가 말했다. ‘나는 너희와 맺은 내 언약을 결코 어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을 부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너희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1~2절). 돌이켜 기억해 보십시오. 여리고성이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철병거보다 견고한 성벽이 있었지만,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사사기> 몇 장을 앞서가면 드보라와 바락이 철병거 900대를 앞세운 시스라의 군대를 무너뜨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철병거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이 다른 것입니다. 마땅히 순종할 수 있는데, 순종하지 아니하는 모습입니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모습을 우리는 ‘절반의 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늘 핑계 대고 변명하는 모습, 그래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모습이 이 백성들 가운데 나타납니다. 이미 <사사기> 1장 첫 장면에서도 이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유다가 올라가서 이겼지만, 형제 시므온을 불러서 함께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은 것입니다. 최대한 인원을 많이 확보하려는 인간적인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섬세한 머뭇거림, 작은 불신앙이 결국 철병거 앞에서 후퇴하고 타협하는 일들을 만든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합니다. 정탐꾼은 자신들의 능력을 적의 능력과 비교해서 “우리가 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자리에 인간적인 계산이 들어오면 처음에는 불순종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세한 균열이 나타나고, 그것이 절반의 순종이 되고, 결국 전체의 불순종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저마다 철병거처럼 보이는 일들이 있습니다. 공동체에도 있습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 교회 사역을 내다보면 할 수 없는 게 전부입니다. 철병거 앞에서 변명하는 모습이 많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이요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화 그때 길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옵니다. 출발지가 주목을 끕니다. 길갈하면 <여호수아>에서 떠올라야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길갈의 열두 돌,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첫발을 내디뎠던 곳, 광야에서 미루었던 할례를 행함으로 첫 번째 유월절을 지켰던 곳, 하나님이 바로 그곳에서 말씀하시고, 새롭게 해 주셨던 출발지입니다. 은혜의 자리요, 영적 전쟁의 출발지입니다. 그 길갈에서부터 왔다는 것은 장소가 메시지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냥 나타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온 곳이 길갈입니다. ‘하나님이 왜 길갈에서 너희들을 새롭게 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역사적 기억을 되돌려 준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말한 것은 추궁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고, 너희들이 순종하기만 하면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한 책망의 내용은 실패가 아니라 타협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1장 19절에서 백성은 쫓아내지 못했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2장 2절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한 것이다.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이고,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타협이 문제”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왜 타협했을까요? <사사기> 1장 28절을 보면 그들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강성해졌을 때, 가나안 족속을 노동력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힘이 있을 때, 그 힘으로 순종한 것이 아니라, 그 힘으로 그들을 부리려고 했습니다. 그 힘으로 타협한 것입니다. “진멸하라”고 하신 명령을 “그 백성을 활용하라”라고 왜곡해 버린 것입니다. <사사기> 1장 첫머리에 보면, 유다가 가나안 땅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고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릅니다. 포로를 욕보이는 가나안 전쟁의 풍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첫 전투에서부터 심판하러 온 그 대상을 향해서 가나안 민족의 방식으로 행하는 모습이 <사사기> 전체에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모습이 아닌 이방인들의 흉내를 낸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 전체의 주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스라엘의 가나안화’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백성처럼 닮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 앞에 신실하게 되면 누구를 닮아갑니까?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그런데 그 그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면 그 백성들을 닮아갑니다. 절반의 순종이 가져온 큰 위험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요, 그들의 신은 너희에게 덫이 될 것이다”(3절). 남겨둔 민족은 가시가 되고, 남겨둔 신들은 덫이 됩니다. 가시는 바깥에서 찔러오는 고통이요, 덫은 미끼를 놓아서 잡아먹는 도구입니다. 그들 스스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민족이 그들을 찌르는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이 이스라엘을 사로잡는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절반의 순종이 얼마나 큰 위험을 가져오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과 타협하며 실리를 추구하고, 우상도 따랐습니다. <사사기>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절반의 순종은 결국 전체의 불순종으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있는 풍요의 신 바알, 아스다롯,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게 되었고,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져다준다고 했던 노동력, 일하지 않고 편리하게 살려고 했던 편리주의, 이 모든 것들이 가시와 덫이 되어서 그들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절반의 순종은 무엇인가? <사사기> 강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은 이 장면을 ‘절반의 제자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절반만 따르는 삶은 결국 전부를 따르지 않게 됩니다. 회개가 아니라, 후회의 눈물 “여호와의 천사가 온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 말을 하자 백성들이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의 이름을 보김이라고 하고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4~5절). 온 회중이 통곡했습니다. 그 자리에 ‘우는 자들’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부흥의 한 장면처럼 보입니다. 눈물이 있고, 돌이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변화는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으며 바알 신들을 섬겼습니다”(11절). 눈물은 흘렸지만, 그 눈물은 금세 마르기 마련입니다. 회개라고 하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보김’이라는 장소를 언급한 것도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와서 보김이라는 곳에 왔습니다. 보김은 벧엘이라는 지역 바로 옆입니다. 하나님의 집,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바로 그곳에서 백성들이 울며 모였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후회의 눈물이 아닙니다. 진정한 돌이킴의 회개입니다. 잠깐 감동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그들은 죄가 아프고 끔찍해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닙니다. 죄의 결과가 두려워 흘린 눈물입니다.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의 눈물일 뿐입니다. <사사기>는 눈물의 책입니다. 2장은 보김에서의 눈물로 시작해서 벧엘에서의 눈물로 끝납니다. 첫 울음이 진정한 돌이킴의 회개가 되지 못했기에 마지막까지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사사기>의 순환이 바로 그것입니다. 죄악을 범하고, 고통당하고, 고통 속에 부르짖고, 하나님이 사사로 구원해 주시고, 그러나 또다시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의 말에 희망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와 맺은 내 언약을 결코 어기지 않을 것이다”(1절b) <사사기>는 어둡고, 눈물의 역사였지만 우리에게 복음의 소망을 주는 이유는 이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사사기>가 혼란한 반역의 역사임에도, 하나님은 그 언약을 끝까지 붙잡고 계십니다. 사사들은 그 언약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백성들은 절반의 순종으로 가시와 덫에 찔리고 빠졌습니다. 우리가 뽑지 않은 가시, 스스로 자초한 죄악이 만든 가시들을 예수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심으로 머리에 쓰셨습니다. 보김에서 백성들은 눈물 흘렸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겟세마네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천사’ 혹은 ‘여호와의 사자’라고 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예외가 아닌 이상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시적인 나타나심으로 해석합니다. 길갈에서 보김으로 와서 그들에게 언약을 확실히 지킬 거라고 선언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불순종의 가시와 덫을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셔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오늘 사사 시대,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김에서 흘렸던 이들의 눈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시대 절반의 순종이 다음 세대 전반적인 배교가 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타협이 자녀들에게 가시와 덫이 됩니다. 이 시대의 위기는 조상들이 한 절반의 순종이었고, 우리 절반의 순종이 다음 세대에 불신앙으로 번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길갈에서부터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심판하러 오시는 걸음이 아니라, 언약을 결코 어기지 아니하시는 분으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분으로, 우리의 가시를 온전히 제거해 주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새 언약에 믿음으로 참여하십시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언약의 저주를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언약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9-11 제1605호
[주일강단]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 <빌립보서> 3:7~16 / 이재훈 위임목사 흐린 날에는 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를 창조하시고, 낮을 다스리도록 명하신 이후부터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단지 그 해가 구름에 가려졌을 뿐입니다. 신앙생활에도 흐린 날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무관심한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시편>에도 보면 “하나님, 어찌하여 그 얼굴을 가리십니까?”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스스로를 숨기시는 하나님”이라며 그 나라와 민족의 멸망 한복판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측면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가리는 때도 있지만, 인간 스스로 만든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얼굴이 가려지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다 “보라. 여호와의 손이 너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귀가 너무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이다. 너희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사 59:1~2). 이 말씀에서 얼굴을 가린 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녀의 신분이 끊어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버지와의 사귐이 흐려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분 스스로 숨어 계시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내 머리 위에 있도록 만들고 허용한 무엇이 하나님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14세기 영국의 이름 없는 수도사가 쓴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만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려고 할 때 발견하는 것은 일종의 어둠에 속한 무지의 구름이다. 단순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한 그것이 무엇인지 식별하기 어렵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 구름은 항상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언제나 자녀를 향하고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속죄를 완성하셨기에, 모든 죄와 허물과 수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얼굴은 그 자녀를 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흐린 날 이렇게 속삭입니다. “하나님은 너를 미워하신다. 너에게 관심이 없으시다. 너에게서 돌아서셨다.”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신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회개하는 모든 죄인, 그분의 자녀에게서 돌아서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해에 있지 않습니다. 그 해가 우리를 비추지 못하도록 가리는 구름에 있습니다. 그 구름은 우리 스스로 놓아두고, 치우지 않은 것입니다. 좋은 것도 내 것이 되면 하나님을 가린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올려놓은 구름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구름을 제거하고 나서 <빌립보서> 3장의 고백을 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체험이 없으면 이 말씀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첫째, 좋은 것도 내 것이 되면 하나님을 가린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섬긴다고 확신했고, 그 확신으로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7절). 여기서 ‘유익’이라는 단어와 ‘해’라는 단어는 사업하는 사람의 회계 용어입니다. 이익과 손실이라는 칸에 적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보면 ‘유익’은 여러 개를 뜻하는 복수형이고, ‘해’는 하나를 뜻하는 단수형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력서를 이익과 유익한 편에서 적어 내려갑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것을 다 합한 순간 그 답은 바로 ‘해’, 손해였습니다. 8절에서는 그 손해가 배설물로 여겨집니다. ‘개에게 던져주는 찌꺼기’라는 풀이가 되는 말입니다. 길에다 내버리는 오물과 쓰레기를 가리킵니다. 이력서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의 혈통도, 열심도, 흠 없는 의도는 모두 좋은 것이었습니다. 죄가 아니었고, 해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해로 여길까요?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을 가리는 구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좋은 것이 내 것이 될 때,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을 가려버릴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구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를 가리는 첫 번째 구름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좋은 것들, 유익한 것들입니다. 내게 유익한 것들이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이 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구름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경쟁자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과 경쟁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구름이 됩니다. 인간적인 야망도 그렇습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분이 주시는 것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거래가 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가리는 것이 내 죄가 아니라, 내 소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도 내 사역이 되는 순간, 내 소유가 되는 순간 하나님을 가릴 수 있습니다. 사업도, 직분도 내 것이 되는 순간 구름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내가 참으로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 의, 곧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로서 난 의입니다”(8~9절).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긴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밤하늘의 별은 해가 떠올랐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해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던 이력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그에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찬란한 햇빛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나를 의롭게 하신 그 의가 있어야만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발견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C&MA 교단을 시작한 A. B. 심슨(Albert Benjamin Simpson) 목사님이 남긴 'Himself'라는 제목의 찬양 가사가 있습니다. 새찬송가에는 441장으로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이라고 번역이 됐는데, 한글 가사로 보면 원래 가사보다 조금 다른 의미로 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한때는 축복이었지만 이제는 주님이시라네. 한때는 감정이었지만 이제는 주님의 말씀이라네. 한때는 주님의 선물을 원했으나 이제는 그것을 주시는 주님을 원하고, 한때는 치유를 구했으나 이제는 주님 자신만을 구한다네.” 그래서 'Himself', 그분 자신을 구한다, 그분 자신에게 초점을 둔다는 가사의 내용입니다. 그 찬송가 가사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Everything is in Christ, Christ is everything.”(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릴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을 가리는 구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고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자 합니다”(10~11절). 8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한 바울이 10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동참함을 알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기에 모든 것을 해로 여긴 그가 10절에서는 또다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내용으로 부활의 능력과 고난의 동참함을 알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활에 이르고자 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아는 사람이 또 알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안다’는 것은 정보를 더 얻고 싶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친밀히 사귐 속에서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단어는 친밀한 부부 관계의 앎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동침함에’라고 할 때 그 안다는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시험지에 답을 쓰는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삶으로써 아는 것입니다. 사귐을 통해서 깊이 알아가는 앎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이라고 지식으로 아는 것과 병상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앎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이 고백 속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다 압니다. 그렇지만 그는 알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 순서도 주목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먼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사도 바울은 부활부터 시작합니다. 부활의 능력을 알고 고난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로 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때는 부활의 능력부터 경험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깨닫고 예수님을 알기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와 능력 속에서 그분을 만나고, 그러고 나서 십자가의 고난으로 나아가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체험적인 고백입니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된 체험이 아닙니다. 바울이 쓰는 표현들을 주목하십시오. “알고자 합니다, 얻고자 합니다, 이르고자 합니다, 잡으려고 달려갑니다” 모든 것이 진행형입니다. 아직 진행 중인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은 언제 사형 선고가 내려질지 모르는 감옥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는 알고자 했고, 얻고자 했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한 교회의 영성과 수준을 알려면 그 교회의 가장 오래된 분들을 보면 압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오래된 분들이 여전히 사도 바울처럼 이르고자 하고, 알고자 하고, 잡으려고 달려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했던, 이르고자 했던, 그리고 여전히 새신자처럼 달려가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 혹은 성경 지식이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가로막는 구름이 된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내가 아는 성경 지식, 내가 아는 교회 경험이 하나님과 나를 가리는 구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세대보다 하나님에 관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가 늘어난 만큼 하나님의 얼굴이 더 가까워졌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왔다고 여기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가려진다 셋째, 우리가 다 왔다고 여기는 순간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가려집니다. “나는 이미 얻었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갑니다. 이는 나도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기 때문입니다”(12절).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쫓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 붙잡힌 증거가 무엇입니까? 붙잡으려고 쫓아간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께 붙잡히지 않은 사람은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붙잡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빌립보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혹시 다른 무슨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내시리라는 것입니다”(15절). 자신을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온전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그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말할 수 있는데,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위해 푯대를 향해서 좇아갑니다”(13~14절). 자신의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마치 결승점에서 더 빨리 가려고 몸을 앞으로 쭉 뻗듯이 달리는 주자처럼 예수님께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이 고백을 <무지의 구름>을 쓴 저자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 무지의 구름이 당신의 머리 위, 곧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있듯이, 당신의 밑, 곧 당신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는 망각의 구름(cloud of forgetting)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들을 당신 아래에 두어 당신과 당신의 하나님 사이에 있지 않게 하십시오.” 발아래 두라는 것입니다. 위에 두지 말고 아래 두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잊어버린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둘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어둠을 제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낮 12시부터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 심판의 어둠을 통과하시는 그 3시간, 그 어둠을 지나가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얼굴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지식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발아래 두고, 구름을 뚫고 하나님의 얼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다 왔다고 여겼던 자기만족을 내려놓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자기 교만과 야망과 두려움이 망각의 구름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과 나 사이에 두지 말고, 발아래 둠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여 나아가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 비추시고,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 향하여 드시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9-04 제1604호
[News] 온누리사역축제‘하이브리드 교회’ 온누리사역축제‘하이브리드 교회’ 10월 13~15일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 및 부속실 리더십 최소 하루 이상 참석, 강의 7개 이상 청강 2학점 인정 모든일정등록자에게 이재훈위임목사 <촉매적 리더십> 증정 2026 온누리사역축제(OMC, Onn uri Ministry Celebration)가 오는 10월 13일(화) 개막한다. ‘하이브리 드 교회’를 주제로 15일(목)까지 서 빙고온누리교회 본당과 부속실에서 열린다. 3일 동안 하루 3개 세션씩 총 9세션이 진행된다. 2026 온누리사역축제에서는 오전에는 주제 강의, 오후에는 선택 강의 와 오픈 집회가 이어진다. 주제 강의 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서 빙고 본당에서 열린다. 이재훈 위임 목사가 복음의 양면을 함께 붙드는 ‘ 하이브리드 교회’의 의미와 구체 적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선택 강의는 매일 오후 2시부터 4 시까지 서빙고 부속실에서 온누리 교회 14개 사역본부별로 진행된다. 선택 강의 신청은 사역축제에 등록 한 성도에게 개별 안내한다. 오픈 집회는 매일 오후 7시 30분 서빙고 본당에서 한다. 13일 김우준 목사(지구촌교회), 14일 김다위 목 사(선한목자교회), 15일 이재훈 위 임목사가 메시지를 전한다. 이웃과 새가족도 집회에 초청할 수 있다. 집 회 시간에는 선교관 2층 꿈아이홀 에서 탁아방을 운영한다. 2026 온누리사역축제는 온누리교 회 리더십과 성도, 국내 체류 선교 사, 협력 기관 리더십, 타 교회 성도 가 대상이다. 온누리교회 장로, 권사, 안수집사, 순장, 각 사역팀 리더십은 최소 하루 이상 반드시 참석해야 한 다. 임직 후보자는 9세션 중에서 3회 이상, 전임교역자는 3일 동안 모든 일정에 참석해야 한다. 행사 기간 모 든 스쿨과 강의, 기도모임, 순예배는 사역축제 참석으로 대체된다. 모든 일정 등록자에게는 이재훈 위임목 사의 신간 을 증정 한다. 참가 신청은 소속 공동체나 사역 팀을 통해서 하면 된다. 순에서 신청자를 모아 공동체가 일괄 접수한다.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은 성도는 ‘ ONCARE’ 앱에서 신청할 수 있다. 10월 11일(일) 이후에는 현장 등록 만 가능하다. 주제 강의와 선택 강의 를 포함해서 강의 7개 이상을 청강 하고, 소감문을 제출하면 임직 2학 점(선택)이 인정된다. 학점 관련 자세한 사항은 로비에 설치되는 ‘학점 관리데스크’에서 확인하면 된다. 행사 기간 교회에 올 때는 대중교 통을 이용해야 한다. 서빙고온누리 교회 주차장과 공원 임시주차장은 3인 이상 탑승한 차량만 주차할 수 있다. 외부 주차장도 이용할 수 있 다. 한강시민공원 이촌제2, 3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비를 지원한다. 이 촌역 4번 출구, 서빙고역 1번 출구, 한강시민공원 이촌 제2, 3주차장에 서 서빙고온누리교회를 오가는 셔 틀도 운행한다. 문의: 02-3215-3234(행사 문의), 02-3215-3220(주차, 셔틀 문의)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온누리 미래&가족 축제 ‘AI 시대의 제자도’ 10월 27~31일 서빙고 본당, 온라인, 양재 기쁨홀 온누리교회 미래성장위원회가 제 4회 온누리 미래&가족 축제(OFFC) 를 온라인(유튜브)과 오프라인(서빙 고, 양재)으로 개최한다. ‘AI 시대의 제자도’(마 16:24)를 주제로 10월 27일(화)부터 31일(토)까지 이어진 다. 온누리교회의 미래에 대해 청장 년이 함께 고민하고 교제하는 장 (場)이 열린다. 10월 27일(화) 오후 7시 30분 서빙 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는 ‘세상 가 운데 제자로의 삶’을 주제로 이인용 장로가 강의한다. 10월 28일부터 30 일까지는 온라인 특강을 한다. 10월 28일(수) ‘제자도의 이해와 실천’을 주제로 박태성, 김영욱 장로, 29일 (목) ‘로잔운동에서의 제자도’를 주 제로 김홍주 목사, 30일(금) ‘AI에 대한 성경적 관점 및 활용 가이드’ 를 주제로 김경훈 집사가 강의한다.매일 오후 7시 30분 온누리교회 유 튜브 채널로 중계한다. 본 행사는 10월 31일(토) 양재온누 리교회 기쁨홀에서 ‘AI 시대의 제 자도’를 주제로 열린다. 주제 강의, 설문 결과 발표, 대학청년부 공모전 우수작 발표, 패널 토의 등을 한다. 주제 강의는 이재훈 위임목사, 설문 결과 발표는 박태성 장로가 한다. 패 널 토의는 이인용 장로가 사회를 보 고, 이재훈 위임목사, 이서진 목사, 유혁 집사, 하선희 집사 등이 패널로 참가한다. 온누리교회 미래성장분과위원회 에서는 제4회 온누리 미래&가족 축 제(OFFC) 행사에 앞서 ‘AI 시대의 제자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있 다(하단 QR코드 참고). 10월 5일 (월)까지 참여하면 된다. 설문조사 는 온누리교회 성도들의 제자도에 대한 인식 및 실천, 말씀 묵상(QT), 전도, 일대일제자양육의 현황, AI 시 대에 예수님의 제자로서 무엇을 지 키고,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에 대 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다. 문의: 02-3215-3234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10월 10~11일 ‘대중교통 이용하는 주일’ 교회주차장은 다자녀, 장애인 등 지정 차량만 이용 10월 10일(토)과 11일(일)은 ‘대중 교통 이용하는 주일’이다. 국내 온 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10월 10 일(토) 오전 7시부터 11일(일) 오후 6시까지 교회주차장 이용을 제한한 다(캠퍼스는 상황에 맞게 진행). 이날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교회 에 와야 한다. 교회 주변 아파트나 상가, 도로변에 불법 주차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교회주차장은 장애인, 임산부, 36개월 이하 동반 자녀가 있는 차량만 이용할 수 있다. 다자녀(3 명 이상) 가정의 차량은 주차장 입 구에서 자녀 3명 탑승을 확인하고 입차할 수 있다. 서빙고온누리교회에서 이촌역, 국 립중앙박물관, 거북선 나루터,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양재역 환승주차장 을 오가는 셔틀은 일요주일(10월 11 일)에만 운영한다. 문의: 02-3215-3434 / 홍하영 기자 10월까지 CGN 정기후원의 달 10월까지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를 주제로 CGN 정기후원 캠페인이 이어진다. 참여 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전화(02 796-2243) 또는 CGN 웹사이트(cgn korea.net), 모바일로 신청하면 된다. 한편 CGN이 정기후원의 달을 맞 아 특집 다큐멘터리 ‘땅끝의 증인 들: 출동! 섬마을 변반장’을 공개했다. 기독 OTT ‘퐁당’과 CGN 유튜 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 드림온브릿지(DreamOn Bridge)’ 캠페인도 한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 한 선교지에 저궤도 위성 인터넷(스 타링크)을 연결해 주는 사역이다< 관련 기사 5면>. 개인과 공동체 단위 로 참여할 수있다. 문의: 02-796-2243 / 박지혜 기자 10월 비전헌금 ‘거제 홍수 피해 및 농어촌 교회’ 후원 10월 10~11일 봉헌하는 비전헌금 은 ‘거제 홍수 피해지역 및 농어촌 교회’를 후원하는 데 사용한다. 지난 8월 15~18일 거제시 일대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심각한 침수와 산사태가 발생했다. 정부는 거제시를 특별재난지역으 로 선포했지만, 교회를 비롯한 종교 시설은 사유 시설로 분류돼 보상 대 상에서 제외된다. 후원 대상은 새중 앙교회와 옥산교회, 농어촌 미자립 교회이다. /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2026-10-03 제1607호
[News]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9월 19~20일 CGN 정기후원 행사, 특집 다큐 ‘땅끝의 증인들’ 공개 위성 인터넷 지원 프로젝트 ‘드림온브릿지’ 캠페인 시작 CGN과 함께 미디어 선교사로 헌신하는 정기후원 행사가 열린다. ‘선교지와 복음을 잇 는 다리가 되어주세요’를 주제로 9월 19일 (토)과 20일(일)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에서 진행된다. 9월 20일(일) 일요주일예배에 서는 CGN 정기후원 참여를 독려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춘천새순교회, 방주교회, 안양제일교회 등 협력 교회에서도 10월 중에 CGN 정기후원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CGN 정기후원 행사에 참여를 희망하는 성 도들은 전화(02-796-2243) 또는 CGN 웹사이 트(cgnkorea.net), 모바일로 신청하면 된다. 기존 후원자는 증액도 가능하다. 가족과 전도 대상자 이름으로도 후원 신청을 할 수 있다. 정기후원의 달을 맞아 CGN이 특집 다큐멘 터리 ‘땅끝의 증인들: 출동! 섬마을 변반장’을 공개한다. 9월 19일(토) 0시 기독 OTT 퐁당을 시작으로, 같은 날 오전 10시 CGN 유튜브, 9월 20일(일) 오전 10시 30분 CGN TV에서 방송한 다. CGN 정기후원 행사를 기점으로 ‘드림온 브릿지(DreamOn Bridge)’ 캠페인도 본격 시 작한다. ‘드림온브릿지’는 인터넷 환경이 열 악한 선교지의 선교사들에게 저궤도 위성 인 터넷(스타링크)을 연결해 주는 사역이다. 선교 현장에 안정적인 온라인 환경을 조성해 선교 사들이 필요한 자료와 말씀을 인터넷에서 찾 고, 사역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세상과 소통 할 수 있는 장(場)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올해 개국 21주년을 맞은 CGN은 광고 없이 오직 후원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기독 미디어 다. 후원자들의 참여로 복음 콘텐츠를 제작하 고, 선교 현장을 지원하는 사역을 이어가고 있 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드 교회’ 10월 13~15일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 및 부속실 2026 온누리사역축제가 ‘하이브리드 교회’ 를 주제로 열린다. 10월 13일(화)부터 15일(목)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과 부속실에서 진행된다. 주제 강의, 선택 강의, 저녁 오픈 집 회 등이 이어진다. 저녁 오픈 집회 시간 선교 관 2층 꿈아이홀에서 탁아방을 운영한다(만 36개월~초등 3학년). 참가를 원하는 성도들은 소속 공동체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은 성도들은 ‘ONCARE’ 앱을 설치하면 개별 신청할 수 있다. 온누리교회 리더십 및 임직 훈련생은 최소 하루 이상 반드시 참석해야 한 다. 전체 일정 참가자에게는 이재훈 위임목사 신간 을 선물로 증정한다. 이 기간 교회에 올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야 한다. 교회 주차장과 온누리청소년센터 임시주차장은 3인 이상 탑승한 차량만 주차할 수 있다. 한강시민공원 2, 3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비를 지원한다. 이촌역, 서빙고역, 한강시 민공원 주차장에서 서빙고온누리교회를 오가는 셔틀도 운행한다. 문의: 02-3215-3234(행사 문의) 02-3215-3220(주차, 셔틀 문의)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이재훈 위임목사 목회서신 새로운 사십 년의 첫해를 함께 열며 무더위가 물러가고 열매를 거두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각자 맡겨진 자리를 묵묵히 지키시는 제직 여러분께 주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지난해 우리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온누리사역축제’를 열었습니다. <지금 여기, 사도행전>을 펴내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를 기록하였고, 열네 개 사역본부가 저마다 사역매뉴얼을 정리하여 사십 년의 사역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한 지점을 지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41주년을 맞이합니다. 저는 올해를 마흔한 번째 해라고 부르기보다 ‘새로운 사십 년의 첫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사 43:18~19).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에 안주하면 교회는 어느새 과거의 교회가 되어버립니다. 온누리교회의 다음 사십 년은 지금 제직 여러분이 어떤 교회론과 목회철학을 가지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돌아보면 과거 여러 차례의 온누리사역축제는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주신 교회론과 목회철학을 함께 듣고 나누며 미래의 온누리교회를 꿈꾸던 자리였습니다. 최근 <촉매적 리더십>을 준비하면서 하 목사님의 리더십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역축제 때마다 전해 주셨던 말씀들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 말씀들이 온누리교회 리더십들의 마음을 빚어 왔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 되어 소명을 감당해 올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온누리사역축제는 외부 교회의 리더십들에게 우리 교회를 소개하는 자리이기 이전에, 온누리교회 제직들이 하나 되어 교회론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온누리사역축제가 바로 그런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온누리사역축제에서 저는 ‘하이브리드 교회’라는 주제로 강의하려고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은혜와 진리는 서로 반대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고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이 둘은 하나였습니다. 복음에는 이렇게 교회가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양면이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 은혜와 진리, 사랑과 정의, 거룩과 화평, 교제와 선교가 그것입니다. 이 다섯 쌍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교회의 목회 실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와 제도, 친밀함과 개방성, 돌봄과 훈련, 모달리티와 소달리티,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교회 안의 많은 갈등은 자기에게 익숙하고 강한 쪽만 더 강하게 붙들고 다른 쪽을 놓아버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를 물으며 갈등하는 교회가 아니라, 둘 다(Both/And)를 붙들며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교회, 이것이 교회가 교회답게 변화되는 길입니다. 이번 주제 강의를 통해 우리 교회의 소명을 이 자리에서 함께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오후에는 각 사역팀이 하이브리드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 자기 사역을 어떻게 더 전문성 있는 사역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발표하고 함께 논의합니다. 저녁 집회에는 복음 안에서 우리와 동역하고 있는 두 분의 담임목사님, 지구촌교회 김우준 목사님과 선한목자교회 김다위 목사님이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일터를 소홀히 할 수 없기에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그 형편을 충분히 이해하며, 그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다만 일정을 조정할 수 있거나 그 기간에 참석이 가능한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자리를 함께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는 몇몇 사람이 대신 채울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앉아 계셔야 온누리교회의 다음 사십 년이 그려집니다. 새로운 사십 년의 첫해를 여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뵙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사십 년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행하실 새 일을 함께 바라보며, 제직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9월 온누리교회 위임목사 이재훈 드림
2026-09-19 제1606호
[News]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드 교회’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드 교회’ 10월 13~15일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 및 부속실 주제 강의, 선택 강의, 오픈 집회 … 리더십 필수 참석 2026 온누리사역축제(OMC, Onn uri Ministry Conference)가 오는 10월 13일(화)부터 15일(목)까지 ‘ 하이브리드 교회’를 주제로 막 오 른다.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과 부 속실(두란노홀, 비전홀, 사랑홀 등) 에서 주제 강의, 선택 강의, 오픈 집 회 등이 이어진다. 2026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 드 교회’에서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총 여섯 차례 주제 강의를 한다. ‘하이브리드 교회’의 의미와 구체적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온누리교 회 14개 사역본부(공동체본부, 예 배본부, 양육본부, 가정사역본부, 사 회선교본부, 여성사역본부, 장애인 사역본부, 전도사역본부, 회복사역 본부, 선교사역본부, 국제사역본부, 차세대사역본부, 대학청년사역본 부, 미디어사역본부)별 선택 강의도 이어진다. 저녁 오픈 집회는 13일 김우준 목 사(지구촌교회), 14일 김다위 목사 (선한목자교회), 15일 이재훈 위임 목사가 말씀을 전한다. 2026 온누리사역축제는 온누리교 회 리더십 및 성도, 국내 체류 선교 사, 협력 기관 리더십, 타 교회 성도 등이 대상이다. 온누리교회 장로, 권사, 안수집사, 순장, 각 사역팀 리 더십은 최소 하루 이상 반드시 참 석해야 한다. 임직 훈련생은 하루를 선택해 오전부터 오후까지 모든 일 정에 참석해야 한다. 행사 기간 온 누리교회의 모든 스쿨과 강의, 기도 모임은 온누리사역축제 참석으로 대체된다. 온누리교회 성도는 소속 공동체 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은 성도들은 ‘ONCAR E’앱(QR코드참고)을 설치해 개별 신청하면 된다. 본당에서 진행되는 주제 강의와 선택 강의를 포함해 강의 7개를 청 강하면 2학점을 부여한다. 학점 관 련 자세한 사항은 행사 당일 로비 에 설치되는 ‘학점관리데스크’에 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2-3215-3234(3122, 3534)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2026 사르밧 프로젝트 시작 10월 11일까지 순, 개인 헌금 및 나눔대상자 접수 ‘2026 사르밧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10월 11일(일)까지 순과 개인별 헌금 및 나눔대상자 접수를 받는다. 사르밧 프로젝트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과 ‘성경책’을 전달하는 사역이다. 참여를 원하는 순 또는 개인은 10월 11일까지 각 캠퍼스 지정 계좌로 헌금하면 된다. 헌금액은 쌀 20kg 한 포대 가격인 65,000원을 기준으로 하되, 순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순 단위로 참여할 때는 입금자명 에 공동체, 다락방, 순 이름을 일곱 자 이내(예: 한강마리아2순)로 적고, 개인은 이름과 생년월일(예: 온누리851006)을 적으면 된다. 개인 헌금은 연말정산에 반영된다. 송금 계좌는 서빙고 하나은행 573-910019 14805, 양재 하나은행 573-910021-35705다. 다른 캠퍼스는 각 캠퍼스 지정 계좌를 이용하면 된다. 나눔대상자 추천도 받는다. 선정 순위는 온누리교회 공동체 소속 성 도, 외부 기관, 외부 개인 순이다. 신청서는 공동체를 통해 10월 11일까 지 이메일(서빙고: 26thanksgiving@naver.com, 양재: hyomin2021@n aver.com)로 보내면 된다. 이메일에는 공동체 담당목사와 대표장로를 참조인으로 포함하고, 본문에는 ‘승인 확인 문구’를 꼭 기록해야 한다. 문의: 02-3215-3434(서빙고), 각 캠퍼스 담당자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9~10월 CGN 정기후원의 달 … 19~20일 정기후원 약정행사 9월과 10월은 CGN 정기후원의 달 이다.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를 주제로 국내 온누리 교회 모든 캠퍼스와 춘천새순교회, 방주교회, 안양제일교회 등 협력교 회에서 정기후원 행사가 열린다. 9월 19일(토)과 20일(일)에는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CGN 정기후원 약정 행사를 개최한다. 9 월 20일(일) 일요주일예배에서는 다 양한 이벤트를 한다. 협력교회에서 는 10월 중에 CGN 정기후원 행사 를 열 예정이다. 한편, CGN이 정기후원의 달을 맞 아 특집 다큐멘터리 ‘땅끝의 증인들 ’을 공개한다. 9월 19일(토) 자정 기 독OTT 퐁당, 같은 날 오전 10시 CGN 유튜브, 9월 20일(일) 오전 10 시 30분 CGN TV에서 방송한다. 디지털 사각지대에서 사역하는 선 교사들을 지원하는 ‘드림온브릿지’ 캠페인도 시작한다. CGN 정기후원은 전화(02-796 2243) 또는 홈페이지(cgntv.net), 모 바일로 참여하면 된다. 기존 후원자 는 증액이 가능하고, 가족, 전도대상 자 이름으로 후원할 수도 있다.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 ‘Reset’ 2026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 이하 2026 하비스트)’가 9월 25일(금)부터 27일(일)까지 파 주 영산수련원에서 ‘Reset(To Follo w Christ)’을 주제로 막 오른다. 16 개국에서 온 이주민과 차세대가 한 자리에 모일 예정이다. 2026 하비스트에 함께할 자원봉사 자 150명도 모집한다. 참가신청은 9 월 15일까지 QR코드로 하면 된다. 회비는 2박 3일 7만 원, 1박 2일 및 당일 참 가 4만 원(티셔츠 무료, 숙소 요청 가능). 이주 민 선교에 관심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신청 할 수 있다. 문의: 031-491-9650 후원: 하나은행 573 810033-13205 온누리교회 ‘2026 전도엑스포’ 9월 13일 서빙고, 양재 '2026 전도엑스포’가 9월 13일 (일) 서빙고온누리교회 이천만광장 과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 앞 원형 광장에서 열린다. 전도엑스포에서 는 전도사역의 의미와 유익, 필요성 을 안내하고, 전도사역본부 사역팀 을 소개한다. 여성민 목사(전도사역 본부장)는 “많은 성도님이 전도엑 스포에 참여해서 전도에 더 큰 관심 과 사명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문의: 010-5219-8707
2026-09-12 제1605호
[News] 온 누리와 함께 감사와 기쁨을! 온 누리와 함께 감사와 기쁨을! 2026 사르밧 프로젝트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 나눔 10월 11일까지 순, 개인별 헌금 및 나눔대상자 접수 2026 사르밧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9월 5일 (토)부터 10월 11일(일)까지 순 또는 개인이 참 여할 수 있다. 사르밧 프로젝트는 추수감사절 의 감사와 기쁨을 온 누리와 함께 나누는 행사 다. 도움이 필요한 성도, 교회 밖 이웃, 외부 기 관에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을 전달한다. 사르밧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순과 개인은 10월 11일(일)까지 사르밧 프로젝트 헌금을 각 캠퍼스 지정 계좌에 봉헌하면 된다. 헌금액 은 쌀 20kg 한 포대 가격인 65,000원을 기준으 로 하되, 순의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순 단위로 참여할 때는 입금자명에 공동체, 다락 방, 순 이름을 일곱 자 이내로 기입하면 된다 (예: 한강마리아2순). 개인이 참여할 때는 이 름과 생년월일을 적으면 된다(예: 온누리 851006). 개인 헌금은 연말정산에도 반영된다. 송금 계좌는 서빙고 하나은행 573-910019-1 4805, 양재 하나은행 573-910021-35705다. 다른 캠퍼스는 각 캠퍼스 지정 계좌를 이용하 면 된다. 나눔대상자 추천도 받는다. 선정 순위는 온 누리교회 공동체 소속 성도 1순위, 외부 기관 2순위, 외부 개인 3순위다. 대상자 접수는 공 동체를 통해 이메일로만 가능하다. 10월 11일 (일)까지 이메일(서빙고: 26thanksgiving@n aver.com, 양재: hyomin2021@naver.com)로 보내면 된다. 이메일을 보낼 때는 공동체 담당 목사와 대표장로를 참조인으로 반드시 포함 해야 한다. 본문에는 ‘**공동체 ***목사님과 ***대표장로님께 승인받음’이라는 문구를 기재해야 한다.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은 공동체가 추천한 대상자에게 현지 업체가 직접 발송한다. 서빙 고와 양재를 제외한 캠퍼스는 상황에 맞춰 대 상자에게 전달하면 된다. 서빙고에서 쌀 발송 을 원하는 캠퍼스는 담당자가 대상자 리스트 를 취합해 10월 11일(일)까지 서빙고로 접수 하고, 서빙고 계좌로 금액을 이체하면 된다. 문의: 02-3215-3434(서빙고), 각 캠퍼스 담당자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드 교회’ 10월 12~14일 서빙고온누리교회 2026 온누리사역축제(OMC, Onnuri Minis try Conference)가 오는 10월 12일(월)부터 14일(수)까지 ‘하이브리드 교회’를 주제로 열 린다. 온누리교회 리더십 및 성도, 국내 체류 선교사, 협력 기관 리더십 등이 참석한다. 10월 12~14일 오전에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총 여섯 차례 주제 강의를 한다. ‘하이브리드 교회’의 의미와 구체적 방향을 제시할 예정 이다. 오후에는 선택 강의와 저녁 오픈 집회 가 열린다. 선택 강의는 온누리교회 14개 사역본부가 주관하고, 저녁 오픈 집회에서는 이 재훈 위임목사, 김우준 목사(지구촌교회), 김다위 목사(선한목자교회)가 말씀을 전한다. 2026 온누리사역축제는 리더십 수련회를 겸한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순장, 각 사역팀 리더십은 최소 하루 이상 참석해야 한다. 임 직 훈련생은 하루를 선택해 오전부터 오후까 지 모든 일정에 참석해야 한다. 행사 기간 온 누리교회의 모든 스쿨과 강의, 기도모임은 온 누리사역축제 참석으로 대체된다. 참가신청 방법 및 이수 학점 관련 내용은 추후 안내한 다. 문의: 02-3215-3234(3122, 3534) / 홍하영 기자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9~10월 CGN 정기후원의 달 글로벌 선교 미디어 CGN이 9월과 10월 을 정기후원의 달로 정하고, ‘선교지와 복 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를 주제로 후원 행사를 한다.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를 비롯해 춘천새순교회, 방주교회, 안 양제일교회 등 협력교회에서도 후원행사 가 이어진다. 9월 19일(토)과 20일(일)에는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CGN 정기후원 약정 행사를 개최한다. CGN이 정기후원의 달을 맞아 특집 다 큐멘터리 ‘땅끝의 증인들’을 공개한다. 9월 19일(토) 자정 퐁당, 오전 10시 CGN 유 튜브, 9월 20일(일) 오전 10시 30분 CGN TV에서 방송한다. ‘드림온브릿지’ 캠페인 도 시작한다. 디지털 사각지대에서 헌신 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위성 인터넷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CGN 정기후원은 전화(02-796-2243) 또는 홈페이지(cgntv.net), 모바일로 참여할 수 있다. / 박지혜 기자 2026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 ‘Reset’ 2026년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 이하 2026 하비스트)가 9월 25일 (금)부터 27일(일)까지 파주 영산수련원에 서 ‘Reset(To Folow Christ)’ 을 주제로 열린다. 네팔, 몽골, 아랍 등 16개국에서 온 이주민과 차세대가 참석할 예정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의 2026 하비스트 참가비 지원을 위한 후원금과 이주민 가정을 위한 추석선물세트, 시상 품 등 물품 기증을 받는다. 추석선물세트, 프로그램 시상품, 영양제, 간식, 학용품 등 을 9월 20일(일)까지 안산M센터로 보내 면 된다. 2026 하비스트에 함께할 자원봉 사자 150명도 모집한다. 참가신청은 9월 15일까지 QR코드로 하면 된다. 회비는 2박 3일 7만 원, 1박 2일 및 당일 참가 4만 원. 후원: 하나은행 573-810033-13205 온누리교회 문의: 031-491-9650 / 박지혜 기자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 참가자 모집 가을학기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 참가자를 모집한다. 9월 11일부터 12월 11일까 지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2시 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진행된 다. 간단한 간식을 나누며 교제하고, 공동체성 경읽기와 신앙 서적 읽기(팀켈러 목사의 )를 한다. 문의: 010-4549-2925 / 박지혜 기자 대전온누리교회 창립 23주년 대전온누리교회 창립 23주년 감사예배를 9월 5일(토)과 6일(일) 대전온누리교회본당과 세종교육관 본당에서 드린다. 이재훈 위임목 사 축하 영상 상영, 유현목 목사(대전온누리 교회 담당) 설교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에게 떡을 제공한다. 유현목 목사(대전온누리교회 담당)는 “대전 온누리교회가 창립 23주년을 맞이할 수 있도 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면서 “성도 모두가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다음세대와 이웃, 열방을 향해 나아가며, ‘ACTS29’ 비전을 계속 써 내려가는 교회 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 남현영 기자
2026-09-05 제1604호
[서초B, NGO 메디엑세스, 브릿지33+ 태국 아웃리치] 벌써, 다시 가고 싶다! 서초B, NGO 메디엑세스, 브릿지33+ 태국 아웃리치 벌써, 다시 가고 싶다! 땀방울, 웃음과 눈물, 아이들의 노래, 마주 웃던 얼굴들 평균 나이 60세, 55명, 5박 7일. 조합되 기 어려워 보이는 이 단어들을 보석으로 엮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 서초B공 동체, NGO 메디엑세스 라파팀, 브릿지 33+공동체 연합 아웃리치팀(이하 연합 아웃리치팀)이다. 이들이 지난 7월 25일 (토)부터 31일(금)까지 태국에서 연합 아 웃리치를 했다. 선교사들의 발을 씻기 고, 아픈 이들을 진료하고, 아이들과 함 께 뛰어놀았다. 그 꿈결 같은 시간을 담 았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 벌써, 다시 가고 싶다.’ 지난 7월 31일(금) 오전 9시 40분. 태국 수완 나품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한국 땅에 발을 딛자마자 이 생각부터 했다. 모두 같은 마음이라 더 신기하고, 특별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얼른 쉬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이번엔 달랐다. 함께 간 사람들 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벌써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과 차를 팔아 산 그 땅에서 태국은 인구 95%가 불교를 믿는 나라다. 그 나라 헌법에도 ‘국왕은 불교도’라는 조항이 명시돼 있을 만큼, 불교는 태국에서 신앙을 넘 어 국가 정체성으로 여겨진다. 그 영향으로 태 국 기독교는 2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음에도 여전히 인구 1%대에 머물러 있다. 그 좁은 길에서도, 그 땅을 너무 사랑해서 복 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연합 아웃리치팀 사역지였던 ‘엘드림기독국제학교 ’ 가 그 시작이자 주인공이다. 1996년, 주태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근무하 던 유철준 집사(서초B공동체, 글로비전선교회·엘드림기독국제학교 공동 이사장)는 선교사 들을 만날 일이 잦았다. 그들과 대화하다가 태국 선교사들의 가장 큰 고충이 자녀 교육이라 는 걸 알게 됐다. 이후 유철준 집사가 이규식 선교사(글로비전선교회·엘드림기독국제학교 공동 이사장)가 담당하는 임마누엘선교교회를 섬기게 되면서 두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게 됐다. 선교사 자녀 50명을 학교에서 돌보 면 선교사 25명이 자녀 걱정 없이 오지로 떠날 수 있고, 선교사 한 사람이 100명에게 복음을 전하면 2,500명에게 닿을 수 있을 거로 여겼다. 그 꿈이 조금씩 영글어갔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이규식 선교 사가 유철준 집사에게 “좋은 땅이 나왔습니다 ”라고 연락했다. 땅 가격은 시세의 3분의 1, 크 기는 무려 1만 9천 평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찬양 ‘천국은 마치’ 가사처럼, 집과 차를 팔아 기어이 그 땅을 샀다. 진흙 위에 시멘트가 발리 고, 건물이 세워지는 동안 이학일 장로(서초B 공동체, NGO 메디엑세스 이사)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헌신이 더해졌다. 그렇게 그 땅이 전 세계에서 온 아이들이 뛰놀며 하나님 을 찬양하는 축복의 장(場)이 됐다. 2020년 3월 9일 태국 방라뭉에 설립된 이 국제학교에는 12 개국(태국, 한국, 중국, 러시아, 폴란드 등)에서 온 학생 51명이 재학 중이다. 열방의 방주가 되 어 하나님의 일꾼들이 배출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기도하며 가르치고 있다. 연합 아웃리치팀은 지난 7월 25일(토) 이 학교 기숙사에 짐을 풀며 5박 7일의 여정을 시작 했다. 첫날부터 부엌은 ‘식사섬김팀’ 차지였 다. 낯선 주방에서 팀원들의 끼니를 챙기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역만리 타국에서 받아 든 집밥 한 끼가 지친 팀원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됐다. 둘째 날엔 방라뭉 새빛교회에서 연합예배를 드렸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이들이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했다. 몇 주 동안 연습한 특순도 이어졌다. 이한규 목사(서초B공동체 담당)의 설교는 영어와 태국어로 동시 통역됐고, 성도들은 연신 “아멘”으로 화답했다. 오후엔 이 학교를 섬기는 유철준 집사, 조혜 숙 권사 부부와 이규식, 최영미 선교사 부부, 그 사역을 이어받은 이반석, 이기쁨 선교사 부부를 위한 블레싱이 이어졌다. 그 얼굴에 씌워 줄 화관은 전날 밤늦도록 팀원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55명의 팀원이 세 부부의 발과 어 깨에 손을 얹고 눈물의 기도를 했다.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가 흔한 이 학교 구석 구석을 ‘방역팀’이 소독약을 짊어지고 돌기 시작한 것도 이날부터였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 원래는 태국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의료봉사가 이번 아웃리치의 중심 사역이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태국 정부가 제동을 걸었 다. 몇 달을 준비한 계획은 방콕 한인 성도와 태국을 섬기는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소규 모 진료로 바뀌었다. 진료소를 찾은 이들 상당수가 병원 문턱조차 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통역 없이는 진료 한 번 받기도 어려웠고, 보험이 안 될 때는 진료비 와 약값이 한 달 생활비와 맞먹었다. 그래서 웬 만큼 아파서는 참는 게 익숙해진 이들이었다. 진료는 병원이 아닌 예배당(방콕한인연합교회, 더블레싱한인교회)에서 했다. 수액 걸이가 없어서 빨랫줄과 보면대에 링거를 걸었다.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수액이 다 떨어질 때까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눴다. 치과 진료실도 사정은 비슷했다. 전용 의자 대신 매트리스 한 장을 펴거나 일반 의자 머리맡에 목베개를 걸어 대신했다. 그들에게 ‘ NGO 메디엑세스 라파팀’의 진료는 가뭄에 내린 단비 같았다. 안경자 권사(방콕한인연합교회)가 감사 인사 를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진료도 봐주시고,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제대로 치료는 받고 있는지 물어주시는 그 따 뜻한 마음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어금니가 깨진 채로 몇 해를 참아온 최도열 선교사가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태국에서 일반 병원에 가면 진료비도 만만 치 않을뿐더러, 그 수준을 믿고 맡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진료를 받고, 쉼 과 위로를 얻게 되니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낯선 땅에서 몇십 년을 홀로 버텨온 선교사들을 위한 블레싱 자리도 마련했다. 팀원들이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화관과 선물을 전달하며 축복했다. 태국에서 22년째 교회 개척 사역을 하는 정영란 선교사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직 선교사들을 만나려고 이 먼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과 화관을 씌워주시고, 극진한 보살핌과 치료까지 해주셔서 제가 공주가 된 것 같았습니다.” 흔들리는 유치를 뽑고 나온 임하엘 어린이 (임진석, 양윤희 선교사 자녀)도 인사했다. “이가 흔들려서 걱정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어린이들과 함께 놀아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 요. 태국에 친구들이 많이 없어서 심심할 때가 많았거든요.” 의료팀이 진료소 불을 밝히는 동안 ‘청소년 사역팀’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은 태국 땅의 어린 영혼들을 품었다. 엘드림기독국제학교와 반진자이 고아원(Baan Jing Jai Children Home)에서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 웃으며, 예수의 사랑을 전했다. 뙤약볕 아래서 아이들과 함께 물총을 쏘며 놀고, 제기를 차고, 줄넘기를 뛰고, 색칠 놀이를 했다. 작은 사진관을 차려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고, 액자와 키링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깜짝선물을 줬다. 반진자이 고아원 아이들이 연합 아웃리치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전부터 노래 하나를 몰래 연습했다고 했다.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를 한 소 절 한 소절 불렀다. 그 노래 한 곡이 며칠 간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냈다. 비행기가 태국 하늘을 벗어나던 밤,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사진을 몇 번이고 꺼내봤다. 팀원들의 땀방울, 선교사들의 웃음과 눈물, 서툰 한국어로 부르던 아이들의 노래, 뙤약볕 아래 서 마주 웃던 얼굴들이 자꾸만 나를 그 땅으로 다시 끌어당겼다. 그 땅을 사랑한 이들의 마음이 나에게도 옮겨붙은 모양이었다.
2026-08-15 제1601호
[마리아행전] "예수님처럼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겠습니다!” 나와 교회, 민족과 세상을 위한 왕의 기도! “예수께서 이말씀을하시고눈을 들어 하늘 을 우러러보시고 기도하셨습니다”(요 17:1a).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이 눈을 들어 하 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셨다. 자신을 위해, 제 자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마리아들이 바로 그 왕의 기도를 따라, 나와 교회, 민족과 세상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첫째 날, 자신을 위한 왕의 기도 6월 10일(수) 오전 9시 40분,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마리아들이 하나둘 모였다. 이윽고 예배당이 그녀들의 기도로 채워졌다. 오전 10시, 집회가 시작됐다. Blossom 챔버의 연주와 찬양이 울려 퍼졌다. 송정미 사모의 특 순이 끝나고, 조호영 목사(여성사역본부장)가 단상에 올랐다. “내 욕심과 뜻을 앞세우는 기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어떤 기도를 원하시는지 배워보십시 오.” 첫째 날 설교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왕의 기도’(요 17:1~5)를 주제로 했다. 기도회는 김정희 목사(양재여성사역)가 ‘자신을 위한 기도’ 를 주제로 인도했다. 둘째 날, 교회를 위한 왕의 기도 마리아행전 둘째 날 집회는 The Blessing 챔 버의 연주와 찬양, 기도로 시작됐다. 설교는 정 명호 목사(혜성교회)가 ‘세상 안으로 보내심 을 받은 자들의 기도’(요 17:6~19)를 주제로 했다. 마리아들의 기도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 졌다. 둘째 날 기도회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 다. 김현실 목사(부천 여성사역)가 ‘교회를 위 한 기도’를 주제로 인도했다. 말씀을 잃지 않 는 교회가 되도록,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 하지 않는 교회가 되도록, 진리로 거룩해지는 교회가 되도록 부르짖었다.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회도 이어졌다. 이윤재 목사(수원 여성사역)가 ‘정치, 법, 사회를 위한 기도’를, 김미정 목사(인천 여성사역)가 ‘교육, 문화, 미디어를 위한 기도’를 주제로 인도했다. 셋째 날, 세상을 위한 왕의 기도 집회 마지막 날,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마리아들이 모였다. 설교는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원로목사) 가 ‘아버지, 하나 되게 하소서’(요 17:20~26) 을 주제로 했다. 기도회는 배순양 목사(제주 여 성사역) ‘북한, 통일을 위한 기도’, 권오향 목 사(남양주 여성사역) ‘열방을 위한 기도’를 주 제로 인도했다. 백미는 세리머니였다. 마리아 들이 서로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손을 맞잡고 축복했다. / 홍하영, 박지혜, 남현영 기자 인터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 평소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왕, 선 지자,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하나 님 나라가 임하고,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도도 꾸준히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단의 계략을 분별할 지혜와 영적 전쟁을 감 당할 능력을 주셨음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 다. 그런데 첫날 메시지를 들으면서 기도의 은 사를 충분히 사용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 다. 세상의 우상뿐만 아니라 제 안의 우상도 돌아봤습니다. 이것을 무너뜨릴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며, 마지막 시대 성도 에게 순교적 신앙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겼습 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제가 죽기를 원합니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보자” 다”라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부 어주시는 사랑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웠 습니다. 그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비로소 타인 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다고 믿습니 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한 삶은 예배하는 일상에서 시작된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존 재로 지으셨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참된 예 배자로 부르고 계신다 고 믿습니다. / 이승진 집사(강남B공동체)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보자" 평소에도 교회를 위한 기도를 매일 드렸는 데,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결국 점점 악해질 텐데, 내가 기도한다고 달라 질까’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지만, 그 기도가 실제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품은 채 마리아행전 자리에 앉았 습니다. 말씀을 듣는데 무엇인가 달라지기 시 작했습니다. 우리가 연합해서 기도할 때 하나 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 내 기도가 작아 보여도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음으로 붙 들게 됐습니다. 특히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 보자”라는 말씀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함 께 기도하는 지체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한 군 대가 되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 니다. 교육, 미디어, 정치 등 세상의 모든 영역 을 위해서 지금보다 구체적으로, 더욱 민감하 게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포함해서 하루 한 시간은 기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기도할 제목이 많아졌습니다. 교회 리더십을 위해, 세속화되는 이 시대를 분별하기 위해, 다음세 대를 위해 더 깊이 무 릎 꿇겠습니다. / 박진영 집사(이수공동체)
2026-06-13 제1593호
[장애인주일 특집]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인사역본부 부모와 교사들의 솔직담백한 고백 장애인사역본부 공동체 부모와 교사들 을 만났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고 담백 한 고백을 들었다. 누군가는 자녀가 처 음 장애 진단을 받던 날 병원 계단을 기 억했고, 누군가는 장애인 자녀가 그린 작품을 전시한 날의 기쁨을 고백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장애인과 함께 걷는 길에서 경험한 감동을 노래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려고 목적지에 맞게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탔는데, 착륙지는 이탈리아가 아닌 알래스카의 어느 공항이었다.” 장애인 자녀를 맞이하는 부모의 당혹감을 표현한 이 문장이 낯선 비유처럼 들리지만, 그것을 몸으로 겪어낸 이들에게는 가장 정확한 고백이다. 오랜 시간 ‘장애’라는 칼바람이 부는 북극에서 사는 방법을 익혀온 이들의 솔직 담백한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원망도, 불평도 어려웠던 그 시간 자녀의 장애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이선아 성도(부천온누리교회)는 아들 윤후(부천 사랑부)의 장애 검사 결과지를 받던 20여 년 전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또래보다 발달 속도 등이 범주를 벗어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도, 막상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병원 계단에서 통곡하고 말았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7살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료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이후 희귀 난치 질환 진단과 수술, 뇌전증 대발작, 척추측만증 교정 수술까지 더 큰 난관들이 찾아왔다. 그 모든 시간을 버티면서도 원망도, 불평도 편하게 뱉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해진다는 말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남편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게 보였고, 저는 계속 울부짖으며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하시네요’라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이 죄가 되어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봐 애써 머리를 흔들며 애꿎은 기도 시간만 늘렸습니다.” 이지영 자매(강동 사랑부)의 어머니 오금옥 성도(강동온누리교회)도 딸의 장애 진단 앞에 무너져 내렸다. 이지영 자매가 4살 될 무렵, “자폐증입니다. 혼자 살아가기 힘들 겁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신(神)을 원망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없다, 부처님도 없다’며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모든 신을 끄집어 와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아이의 장애가 나의 죄라 여기며 세상의 눈치, 가족의 눈치, 아이의 눈치를 보면서 그 암흑 같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박혜신 자매(서빙고 예수사랑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도, 김수 자매(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도, 김재원 형제(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도 다르지 않았다. 자녀의 장애 진단 앞에 상한 마음을 감추고 끝나지 않을 그 세월을 살았다. 하나님 원망도 해보고, 울며불며 매달려 보면서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뎠다. 북극에도 봄은 온다 시간이 흘렀다. 살을 에는 칼바람만 부는 것 같았던 북극에도 따스한 볕이 드는 봄이 찾아왔다. 인생의 계절이 바뀌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윤후 형제가 올해 스무 살이 됐다. 뇌전증 대발작은 여전히 찾아오고, 희귀 난치 질환은 평생 안고 가야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이선아 성도는 그 기쁨의 비결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부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윤후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사랑부 선생님들의 사랑과 헌신이 우리 가정에 기쁨을 가져다줬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충분히 유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지영 자매는 혼자 밥을 차려 먹고, 대중교통을 타고, 치료기관을 찾아간다.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린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거라던 아이가 씩씩하고 명랑한 청년 작가가 됐다. 이지영 자매가 견뎌낸 그 숱한 세월이 엄마 오금옥 성도를 하나님 앞으로 초대했다. “지영이가 저를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의 삶을 통해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려내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봄볕은 이 가정에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김수 자매, 김재원 형제, 박혜신 자매, 최희민 형제에게도 찾아왔다. 그들은 지금 ‘장애인 청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장애인 청년 작가 5인(김수, 김재원, 박혜신, 이지영, 최희민)이 사랑홀갤러리(서빙고온누리교회 신관 1층)에서 장애인의 달 특별전 ‘우리들의 찬양’을 열고 있다. 박혜신 자매는 지난해 연말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도 하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가 지난해 연말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을 꺼냈다. 박혜신 자매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활짝 핀 자목련 그림을 구매했고, 그 그림을 품에 안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 속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저는 혜신이의 그림을 보면 하나님의 미소를 대하는 듯합니다. 성도들이 갤러리 복도를 오가면서 손 내미시는 하나님을 만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재원 형제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에게는 전시회보다 “행복하다”는 아들의 고백이 더 큰 선물이었다. “재원이가 전시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행복하다’는 고백을 참 많이 했습니다. 재원이의 그림을 보고 ‘위로 받았다’, ‘소중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등의 평을 남겨주시는 관객들과 만나면서 큰 용기도 얻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사랑홀갤러리에 걸린 아이들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와 따뜻한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김수 자매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딸의 은사를 성도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온누리교회 장애인 예배가 우리 모녀의 안식처입니다. 늘 위로와 사랑을 받기만 하다가 특별전을 열고 작게나마 성도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수가 이 기회를 좋은 토양 삼아 더 큰 믿음의 자녀로 성장할 것입니다.” 곁에 머무는 사랑, 페이스메이커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디는 이들 곁에서 묵묵히 품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사역본부 교사들이다. 정길우 성도(서빙고 사랑부 교사)는 직장 신우회 활동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장애인 시설에서 무려 20여 년을 봉사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년퇴직 이후 공동체에서 장애 자녀를 둔 가정들을 만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이유를 어느 주일 발견한 ‘사랑부 교사 모집’ 광고에서 알 수 있었다. 무작정 사랑부 예배를 찾아갔고, 교사로 지원했다. 사랑부를 섬기면서 정길우 성도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랑부 여름 캠프에서 한 형제의 배변을 돕고 샤워를 시키다가 문득 아무 거리낌 없이 섬기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그때 동료 교사가 건넨 한마디가 그 기쁨의 정체를 알려줬다. “‘사랑부가 아니면 이런 경험을 평생 못 했을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기에 할 수 있는 일이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부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은 멀리서 돕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해 문석윤 성도(서빙고 예수사랑부 교사)에게 예수사랑부를 섬기던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싱어를 구하고 있으니 함께 섬기자고 제안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선택인지 망설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사 43:1)을 붙들고 예수사랑부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8개월이 흘렀다. “예수사랑부 청년들을 보면 순전한 예배자가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이곳에 10년 이상 몸담고, ‘나의 남은 삶은 이곳’이라 고백하는 선배 교사들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사랑부가 그 이름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경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2년째 부천 사랑부 총무로 섬기는 김도훈 집사(부천온누리교회)도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어느새 가장 소중한 사역지가 됐다. 대학생이 된 딸도 함께 교사로 섬기고 있다. 찬양할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 뛰는 사랑부 청년들의 미소에서 예수님을 본다. “마라톤에는 선수 곁에서 속도를 조절해 주는 페이스메이커가 있습니다. 사랑부에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뛰어줄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사랑부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여러분의 섬김이 사랑부 아이들에게 평생의 온기를 나눠줄 큰 빛이 될 것입니다.” 이탈리아행 비행기에서 내려 북극에 섰던 이들이 그 땅에서 이글루를 짓고 있다. 북극의 모진 추위를 이기고 튼튼하고 따듯한 이글루를 함께 지어줄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문의: 02-3215-3263
2026-04-18 제1585호
[예수를 따르는 사람]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캠퍼스 복음화’ 꿈꾸는 백은희 교수의 확신 “나를 따르라”(마 16:24). 2026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전제한 그리스도의 엄중한 명령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한 모든 이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온누리신문>에서‘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과 고백을 듣는다. 그 일곱 번째 주인공은‘국립공주대학교 백은희 교수(양재온누리교회)’다. 그녀는 캠퍼스를 선교지로 여기고, 자신의 달란트와‘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라는 선교 도구를 사용해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는‘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현장 이른 아침, 아직 캠퍼스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인데 강의실 불이 하나둘 켜졌다. 그리고 전공 서적 대신 성경책을 든 예배드리는 사람들, 교수와 학생, 지역 교회 성도들이 모였다. 국립공주대학교 신우회 소속 교수들, 기독동아리 학생과 간사, 지역 교회 성도들이다. 그들은 무릎부터 꿇었다. 그리고 학교와 학생들, 캠퍼스 복음화를 간구하며 뜨겁게 부르짖었다. 그들은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교단과 소속을 넘어 기독교 공동체 이름으로 하나 된다. 그들의 기도와 예배는 특별하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선교지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는 선교 도구”라는 고백을 일상에서 증명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 갈망이 캠퍼스 복음화라는 엄청난 비전을 완수하는 원동력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지난해 KUPM(전국교수선교회)과 CCC연합평창대회에서 백은희 교수의 발표로 전국 대학 기독 공동체에 소개되며 점차 더 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바로 국립공주대학교 교수신우회와 기독동아리가 함께 드리는 ‘ 국립공주대기독연합예배’ 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는 2010년대, 국립공주대학교 음악교육과 백기현 교수가 교수신우회 회장을 역임할 당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로 시작했다. 기독동아리 학생들과 간사, 교수들이 함께 모여 ‘ 복음 전도’ 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린 연합예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지경이 넓어졌다. 지금도 ‘CCC(Campus Crusade for Chris), JDM(Jesus Disciple Movement), DFC(Disciples For Christ), SFC(Student For Christ), ESF(Evangelical Student Fellowship), IVF(Korea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 비전선교단’ 등 주요 기독동아리 구성원들과 간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 장로와 권사, 선교사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매주 적게는 7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의 인원이 모인다. 캠퍼스와 지역 교회가 연결되는 통로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의 특징이 뚜렷하다. 교수신우회, 기독동아리, 지역사회 교회와 함께하는 연합예배는 개강 및 공강 감사예배만 드리는 게 아니다. 매 학기 약 11주 동안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주 수요일 오전 8시부터 8시 50분까지 진행된다. 예배는 기독동아리 학생들의 찬양을 시작으로 교수신우회 교수들의 기도, 간사 및 지역사회 목회자들의 말씀 나눔으로 이어진다. 또한 국립공주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생에게 문이 활짝 열린 예배다. 이 지속성과 개방성은 학생들이 복음을 더욱 쉽게 접하는 환경을 만든다. 기독동아리에 가입한 대부분 학생은 이미 크리스천이다. 신앙을 가진 학생들을 돌보고 신앙 안에서 굳건하게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연합예배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학생들이 친구 초대로 왔다가 부담 없이 예배드리고,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복음은 관계에서 전해지기 때문이다. 연합예배의 핵심은 ‘ 연합’ 에 있다. 국립공주대학교 6개 기독동아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이 늘 그 자리를 함께한다. 모든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하나님이 주신 캠퍼스 복음화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가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선교 도구인 이유가 바로 그것 이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삶으로 보여주는 신앙 “최근 대학가는 상대적 가치관의 혼란과 영적 황폐함, 갈수록 교묘해지는 이단 및 사이비 단체의 포교로 인해 복음화가 더욱 어려워지는 실정입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에서 크리스천 교수님들이 예배의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은 학생들에게 큰 힘과 영적 귀감이 됩니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이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수들에게 이 여정이 쉬운 길은 아니다. 치열한 연구 성과와 업적 평가가 생존과 직결되는 대학에서 매주 시간을 내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작지 않은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백은희 교수의 생각은 분명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는 게 훨씬 큰 축복이고, 영향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백은희 교수는 그래서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자리’ 라고 고백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이 영향력을 전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그들의 신앙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말로 전하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큰 울림을 준다고 믿습니다. 저와 같은 믿음과 확신을 가진 교수님들이 교수신우회에서 활동하고, 기독동아리와 학생들이 서로 연결되어 함께 드리는 연합예배는 그 존재만으로도 전도의 파급력이 대단합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제자도 실천’ 백은희 교수가 생각하는 ‘ 예수를 따르는 삶’은 특별한 환경이나 특정 순간에만 드러나는게 절대 아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 곧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 제자도 실천이 핵심이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는 저의 선교지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수 전하는 일을 함께하며 선교 도구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복음을 전하며, 캠퍼스 복음화의 꿈을 이뤄내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제자도 실천이라고 확신합니다.” 특수교육과 교수로서 장애 학생을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는 백은희 교수는 일과 업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고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묻습니다. 하나는 ‘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 또 다른 하나는 ‘ 이 일이 장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입니다. 이 두 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하면 비록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고 시간을 내어야 하는 힘든 선택일지라도 기꺼이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순종입니다” 그렇게 선택한 일을 할 때에는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을 상기한다고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백은희 교수가 대학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지입니다. 특별한 사역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강의실과 연구실, 학생들을 만나는 모든 장소가 복음을 전하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2026-04-10 제15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