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잠 21:14). 이 말씀을 처음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성경이 뇌물을 권하는 것인가?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출 23:8)고 분명히 금하신 하나님이 <잠언>에서는 뇌물이 분노를 그치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니 말이다.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잠언>이라는 책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성서해석학에서는 <잠언>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처방적 잠언’(prescriptive proverb)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서술적 잠언’(descriptive proverb)이다. <잠언> 21장 14절은 후자에 해당한다. “뇌물을 주라”는 명령이 아니라 세상에서 선물과 뇌물이 실제로 분노를 가라앉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기술한 것이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난다. 전반절은 ‘은밀한 선물’이 ‘노’를 쉬게 한다고 말하고, 후반절은 ‘품 안의 뇌물’이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고 말한다. 히브리 시는 후반절에서 전반절의 의미를 반복하면서 한층 더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 여기서도 ‘노’보다 ‘맹렬한 분’ 훨씬 격렬한 분노를 가리키고, 그에 대응해 ‘선물’보다 더 강한 표현인 ‘뇌물’이 사용된다. 이는 분노의 강도가 극에 달할수록 그것을 가라앉히는 데 더 큰 대가가 따른다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은밀한’과 ‘품 안의’라는 표현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건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드러내 놓고 주는 선물은 자칫 과시되기 쉽고,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이나 체면의 상처가 될 수 있다. 반면, 남몰래 건네는 정성은 상대방의 마음 깊은 곳을 움직인다. 성경에도 <잠언>과 꼭 들어맞는 사례가 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20년 넘게 쌓인 분노를 알기에 수백 마리의 가축을 앞세워 보냈다.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창 32:20). 야곱의 속마음을 보면 이것은 순수한 감사의 선물이라기보다 자기 잘못으로 빚어진 분노를 무마하려는 전략적 증여였다. 아비가일 역시 남편 나발의 무례로 온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음식을 급히 준비해서 달려갔다(삼상 25장). 이 역시 순수한 호의라기보다는 절박한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행동이었다. 두 사례 모두 순수한 선물과 정의를 왜곡하는 뇌물 경계 어딘가에 있는 ‘위기를 넘기기 위한 선물’이었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늘 뚜렷하지 않은 현실을 성경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잠언> 21장 14절의 지혜이다. 이 말씀은 뇌물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누군가 내게 분노하고 있을 때 자존심을 세우며 맞서기보다 먼저 조용히 손을 내미는 것이다. 내 잘못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관계를 회복하려는 용기, 드러내 놓고 체면을 세우는 화해가 아니라 은밀하게 마음을 전하는 겸손이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이다. 예수님도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마 5:25)고 말씀하셨다. 갈등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세상의 방식을 관찰한 <잠언>이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이다. /오은규 목사(성동광진 공동체)
2026-04-18 제1585호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맛있는 말씀 해설(골 3:16) 말씀이 머무는 자리,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 최근 우리 가족에게 거룩하고 즐거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온누리성경읽기앱’으로 매일 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갖는 일이다. 말씀을 다 들은 뒤에는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매일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기도로 마무리한다.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자녀들의 기도와 고백을 듣다 보면 부모인 나도 큰 위로와 도전을 받는다. 온 가족이 말씀 안에서 하나 되어 기도로 마음을 모으는 이 시간은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깊은 은혜다. 이처럼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듣고 나누는 행위가 우리 영혼에 얼마나 큰 생명력을 불어넣는지 몸소 체험하며, 바울 사도가 골로새교회에 전했던 권면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본문의 첫머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는 권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거하다(νοικετω)’라는 헬라어는 잠시 방문하는 손님이 아니라, 그 집의 주인으로서 ‘안주하다’, ‘뿌리를 내리다’, ‘계속 머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성경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체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중심인 ‘마음’에 자리 잡고,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통치적 권위를 가진다는 뜻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πλουσω)’ 거한다는 것은 말씀이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자리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당시 유행하던 헬라의 철학이나 영지주의, 금욕주의, 신비주의 등 다양한 거짓 가르침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유일한 해답으로 ‘말씀의 내주’를 제시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세상의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속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갖게 된다. 이어지는 말씀은 말씀이 내주한 결과가 공동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라는 구절은 신앙이 결코 개인주의적인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복음은 공동체 안에서 나눌 때 그 생명력이 배가 된다. 여기서 ‘피차(αυτο)’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가르침이 어느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모든 성도가 서로를 세워가는 과정임을 나타낸다.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 위로를 받듯, 성숙한 성도는 연약한 자를 권면하고, 연약한 자는 순수한 고백으로 공동체에 신선한 도전을 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공통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 스승이자 동역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지혜(πσσοφ)’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말씀의 풍성함은 반드시 찬양의 고백으로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본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기록한다. 말씀이 머리에만 머무르면 교만이 되기 쉽고, 가슴에만 머무르면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 영혼 깊숙이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찬양과 감사가 된다. 여기서 ‘감사하는 마음으로(ντχριτι)’는 문자 그대로 ‘그 은혜 안에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형편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있다.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할 수 있는 ‘신령한 노래’를 얻게 된다. 형식적인 노래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감사의 제사가 드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말씀을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하느냐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삶의 자리로 가져가야 한다. 매일의 시간을 구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주인으로 자리 잡도록 ‘말씀이 머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며 서로에게 권면할 때 우리 입술에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감사의 찬양이 터져 나올 것이다. 말씀이 머무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는 성소임을 기억하며 말씀 앞에 우리 마음의 자리를 내어 드리기를 소망한다. / 정현석 목사 (고양은평공동체)
2026-04-04 제1583호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맛있는 말씀 해설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12절과 <누가복음> 15장 4절에서 자신을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셨다. 그리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물으신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양 100마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가 99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그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마 18:12). “너희 중 누가 100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눅 15:4).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물음표라기보다는 느낌표에 가깝다. 우리의 의견을 묻는다기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부의 말이기 때문이다. 양 무리에서 이탈한 양은 생명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양과 목자>의 저자 필립 켈러는 수년 동안 양을 치는 목자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저자는 양의 수가 한두 마리 모자랄 때면 가장 먼저 ‘내 양 중 한 마리가 어딘가에 뒤집혀 있겠구나. 빨리 찾아 일으켜 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고 고백한다. 필립 켈러의 ‘뒤집힌 양’에 대한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다. 뒤집힌 양은 등이 땅에 닿고 네 발이 허공을 향한 채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버둥거리지만 혼자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처음에는 도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매에”하고 소리 내어 울어보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그 울음소리는 오히려 맹수의 표적이 된다. 결국, 양은 두려움과 좌절감 속에서 심하게 발버둥 치다가 지쳐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게 된다. 만일 목자가 빠른 시간 안에 그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그 양은 십중팔구 죽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뒤집힌 양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네 발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는데 버둥거리는 동안 양의 흑위(되새김질 동물의 첫 번째 위) 속에 가스가 차 오르기 시작한다. 가스가 차오르면 몸의 말단, 특히 사지부터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되다가 순환이 멎어버리게 된다. 날씨가 덥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에는 뒤집힌 양이 몇 시간 내에 죽을 수도 있다. 독수리와 들개, 이리, 표범 같은 맹수들에게 뒤집힌 양은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먹잇감일 뿐 아니라 얼마 안 있어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표적으로 삼고 주시한다. 이처럼 길을 잃은 양은 뒤집혀 무력해진 채 죽거나 맹수의 공격으로 죽기 쉽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아는 목자에게 길 잃은 양의 문제는 무엇보다 급하다. 목자는 최우선 순위로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게 된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성경의 비유에는 이처럼 생명을 놓고 벌어지는 시간적 긴박함에 대한 자각이 담겨 있다. 바로 그 시간적 긴박감에서 잃은 양을 찾고자 하는 목자의 뜨거운 열정이 생겨나고, 마침내 찾아낸 양을 데리고 돌아올 때의 무한한 기쁨이 생긴다. 예수님은 자신을 잃은 양을 서둘러 찾아 나서는 목자로 비유하시면서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시간에 대한 긴박함을 품을 것을 권면하셨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십시오”라고 드렸던 우리의 고백이 길 잃은 한 영혼을 향한 긴박한 마음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박철웅 목사 (강남B공동체)
2026-03-21 제1581호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맛있는 말씀 해설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8:2a 개역개정).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를 어떻게 이끄셨는지, 어떻게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고 하셨음을 기억하라”(신 8:2).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2세대에게 전한 마지막 설교다. 그 핵심은 바로 “기억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 광야의 고난과 역경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다. 단순한 과거 회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현재의 삶과 연결해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근거로 삼으라는 영적 메시지다. 나약한 인간은 평안하고 배가 부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는다. 그러므로 “지난 광야의 길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키겠다는 결단을 확인시키는 메시지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광야 길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모든 것이 나의 힘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하는 감사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를 허락하신 첫 번째 목적은 ‘너희를 낮추시고’에 있다. ‘낮춘다’는 말은 고통을 겪게 한다거나 겸손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광야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자리한 의와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처방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이집트와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지만, 광야의 현실 앞에서 끊임없이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은 베푸신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들의 영적 교만을 보시고, 그들을 낮추셔서 오직 당신만 의지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처럼,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광야의 길은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늘의 양식인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게 하는 영적 훈련소였다. 하나님이 광야를 허락하신 두 번째 목적은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고 하신 것’이다. 광야 길의 고난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시험하는 장소였다.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괴롭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연단해서 정금처럼 순수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광야라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환경이 시험이 아니다. 그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는 반응이 바로 시험의 본질이다. 그 시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고, 하나님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 즉, 광야에서의 시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하는 시험대였다. 창립 40주년을 지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 온누리교회의 지난 40년 광야 여정을 다시금 돌아본다. 그 여정은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신 연단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허락하신 은혜의 시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길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고, 감사를 발판 삼아 새롭게 펼쳐질 광야의 여정, 약속의 땅을 향해 순종으로 걸어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약속을 붙들고 담대하게 걸어가자. / 제치윤 목사(영종온누리교회)
2026-03-07 제1579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11)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 나를 따르라(11)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 <빌립보서> 2:12~18 / 이재훈 위임목사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의지와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으며, 은혜를 주셔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브리튼 출신 수도사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면인간에게는 이미 그것을 행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입니다. 결론은 펠라기우스의 주장이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은혜 없는 노력, 올바른 복음이 아니다 우리는 구원이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합니다(빌 2:12). 그리스도가 자신을 낮추시고 순종하셨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빌 1:6). 그 ‘선한 일’ 은 구원의 역사입니다. 구원의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이루실 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이들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며, 사랑받는 자녀이자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은 자로 살아갈 것인가를 말씀합니다. 12절은 ‘철저히 끝까지 시작된 것을 끝까지 완성하라’ 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일하라’ 가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은 자로, 구원이 시작된 자로 끝까지 이루어 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향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부터 일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자체가 ‘건져냄을 받았다’ 는 뜻입니다. 자기 스스로 건져낼 수 없으므로 이미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질문이 남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라는 말씀만 붙잡으면 자신의 의지력과 노력으로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판정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설 자리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인간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 없는 노력은 올바른 복음이 아닙니다. 반대로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결단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만 붙잡게 되면 “하나님이 다 하신다면 내가 할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손을 떼고 하나님이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경건한 말씀 같지만, 결국 신앙생활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여러분, 은혜의 교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은혜를 말씀하는 본문에서 어떻게 우리의 행함이 어우러지는지를 깨달으려면 12절과 13절을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부담이 아니라 약속 12절 말씀은 인간의 책임을 말하는 명령이며, 13절은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하시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글 번역에는 빠뜨린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입니다. 12절과 13절을 읽을 때는 접속사 ‘왜냐하면’ 을 붙여야 합니다. “구원을 이루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희 안에서 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연결되어야 하고,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너희 안에 행하고 계시기 때문에, 너희 안에 뜻을 주시고, 그 뜻에 따라 행하게 하고 계시기 때문에 너희는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다’ 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일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함을 부정하고,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부담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행하라고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명령에 순종할 힘을 친히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행할 힘도 함께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순종했을 때 기뻐하십니다. 구원의 세 가지 시제 이것을 신학자들은 ‘구원의 세 가지 시제’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첫째, 과거의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 과거의 모든 삶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구원입니다. 곧 칭의(Justification), 의롭다 칭하시는 구원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끝난 일입니다. 이것은 100% 은혜의 영역입니다. 우리의 행함과 노력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둘째, 미래의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 죄의 존재 자체에서 완전히 건져집니다. 우리의 몸까지 새로워지는 것을 영화(Glorification)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낮은 몸이 그리스도 영광의 몸과 같이 변화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그 사이에 현재의 구원, 성화(Sanctification)가 있습니다.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완성의 날까지 걸어가는 오늘입니다. 그것을 오늘 말씀에서는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칭의의 구원과 별개가 아닙니다. 칭의의 구원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구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은혜 위에서 내가 행하는 모든 것도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앞서 구원이 없었다면 현재의 구원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은혜 위에서 모든 행함도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재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갈 때 장차 온전한 구원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칭의를 흔드는 말씀이 아니라, 칭의 위에 서 있는 말씀입니다. 죄악의 습성이 구원을 가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제거해 나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라는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무서운 종의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조심스러운 자녀의 두려움입니다.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거룩하신 분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분의 일하심을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바울처럼, 많은 수고를 했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나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수고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불평과 분쟁이 없이 하라” 그렇다면 구원을 이루어 가는 모습은 어떨까요? 모든 일을 불평과 분쟁 없이 합니다(14절). 우리 삶에 불평과 분쟁이 없는 것,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구원을 이루는 삶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놀라운 축복을 적용할 때 관계와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 시비와 분쟁이 사라집니다. 이 말씀은 원망과 시비가 없으면 구원받는다는 게 아닙니다. 거꾸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원망과 시비, 불평과 분쟁이 나타나는 것은 구원받은 자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이든 원망과 불평, 시비와 분쟁은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십시오. 어둠을 이기는 길은 어둠을 분석하는 게 아닙니다. 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것, 원망과 시비, 불평과 분쟁 없이 행하는 것이 빛의 자녀로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15절). 어둠이 얼마나 어두운가를 가르고 분석하는 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빛이 드러날 때만 어둠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내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17~18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높이고 자신을 부속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헌신이 믿음의 본 제물이고, 자신은 부속적인 걸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삶은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죽음에 처할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삶입니다. 이것은 즐거움의 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고행과 고통의 삶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망과 불평, 시비와 분쟁을 뛰어넘는 기쁨의 삶으로 초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십시오”라는 명령은 은혜를 취소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은혜가 지금 내 안에서 일하고 있다는 고백과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에 그렇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누리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쁨의 제자도를 이어가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7-31 제1600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10) 곁에 계시던 분이 이제 안에 계십니다 나를 따르라(10) 곁에 계시던 분이 이제 안에 계십니다 <요한복음> 14:15~21 /이재훈 위임목사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15절). 이 말씀 순서에 답이 있습니다. 순종이 사랑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사랑이 순종을 낳습니다. 순종은 사랑의 뿌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15절 만 읽으면 제자도는 하나의 율법적인 숙제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16절 말씀이 이어집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니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16절). 계명을 주신 분이 우리가 지킬 힘을 받도록 아버지께 구합니다. 예수님은 명령만 남기고 떠나시는 스승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을 명하시되, 명하신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나 공급하심과 함께 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구하시는 성자 예수님, 구한 대로 능력을 주시는 성부 하나님, 그 능력의 근원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제자도는 내 힘으로 버티고, 해내야 하는 과제가 아닙니다. 제자의 길을 걷도록 삼위일체 하나님이 합력하셔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의 오심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그때까지 성령을 주시지 않았던 것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요 7:39).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의미합니다. 거룩하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려면 먼저 죄가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는 일의 준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리셔서 그분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높임 받으신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우리에게 부어주셨는데,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행 2:33).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실 근거를 마련하셨습니다. 부활의 목적은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성령님이 오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의 오심은 연결된 사건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값을 치르시고 부활하신 왕으로서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첫 선물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가 이 땅에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제자로 살아갈 힘을 주십니다. 제자도의 능력, 보혜사 성령님께 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니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 14:16). ‘보혜사(保惠師)’라는 단어는 성경 밖에서는 들을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신 표현에 깊은 위로가 있습니다. 다른 보혜사라고 한다면 첫 번째 보혜사가 계셨다는 말입니다. 첫 번째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보혜사는 제자들 곁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제자들 속에 계실 수는 없었습니다. 성령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면서 다른 분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예수님이 가지셨던 마음으로, 예수님과 같은 사랑으로 그 일을 이루실 분입니다. 예수님은 곁에 계셨지만, 성령님은 우리 속에 계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17절). 마지막 문장이 중요합니다.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안에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로운 영을 줄 것이다. 내가 너희 육신으로부터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너희에게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 성령을 너희 안에 주어서 너희로 하여금 내 법령을 따르며 내 규례를 지키고 행하게 만들 것이다”(겔 36:26~27). 옛 언약, 곧 모세의 율법 아래 계명은 돌판에 새겨져서 사람 밖에 있었습니다. 밖에 있는 계명은 무엇이 옳은지 방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할 힘까지 주지는 못합니다. 계명을 돌판이 아닌 마음 판에 새겨준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도의 능력은 나의 결심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임하신 보혜사 성령님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결단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 2:13).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능력으로 임하신 성령님을 통해 이루시는 약속입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18절). 당시에는 스승을 잃은 제자도 ‘고아’라고 불렀습니다.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다시 오겠다”는 말씀은 종말의 때에 다시 오시는 재림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고아처럼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오시겠다’는 것은 성령님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안에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19~20절). ‘그날에’는 성령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그 날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계시고,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제자들 안에 있음을 알게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님이 오신 뒤 알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그 깊은 사귐 안으로 제자들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을 함께 소유하게 되고, 그 부활의 생명으로 인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귐 속에 우리가 함께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신비로운 일을 우리가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 또한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21절). 15절 말씀이 사랑과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시작했고, 다시 사랑과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끝납니다. 그대로 반복이 아닙니다. 약속 하나 더해져 있습니다.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성령 안에서 순종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더 깊이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면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함으로 더 예수님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에서 사랑으로, 순종에서 순종으로 계속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 어떤 일을 행하시기에 제자들이 따르는 능력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26절). 성령님을 생각할 때 특별한 체험이나 현상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신 성령님의 역할은 우리 내면에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고, 순종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낙심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인해 그분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롬 5:5).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의 열매 첫 번째가 사랑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셋째, 성령님은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갈 5:16).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산다면 또한 성령을 따라 행합시다”(24~25절). 성령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의 옛사람과 함께 죽음에 넘기는 십자가가 될 때 성령님이 새 생명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육체의 욕심은 십자가에 넘겨주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결단과 결심보다, 성령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명을 지킬 힘과 능력을 주실 성령님을 아버지께 구하고,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과해서 성령님이 오심으로써 그분을 믿고 따르는 모든 제자가 스스로 걷지 않도록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곁에 계시던 분이 이제 안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제자들 곁에 계신 분이 제자들 안에 임하셨고 그들을 변화시킨 것처럼, 성령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결심도 신뢰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님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체험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7-25 제1599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 (9) 잃어버림으로 찾는 목숨 나를 따르라 (9) 잃어버림으로 찾는 목숨 <마태복음> 16:24~26 / 이재훈 위임목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을 우리는 귀에 익도록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익숙한 것이 곧 그 말씀을 깨닫고 체험하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보나 지식으로 아는 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체험과 실천으로써 그 의미를 명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주인께 다시 돌려드리는 ‘자기 부인’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라는 것은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수 사람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에게 입학 자격과 같은 것입니다. 졸업 자격이 아니라 입학 자격입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이라고 할 때 ‘따라오려거든’은 예수님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하신 ‘내 뒤로’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 뒤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등을 보고 따라가야 할 우리가 앞에서 이끌고 가려는 모습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다’라는 단어가 정확히 같이 쓰인 경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대제사장의 뜰에서 베드로가 사용한 단어입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세 번째로 한 말에 담겨 있습니다(마 26:74). 여기서 ‘모른다’라는 단어가 ‘부인한다’는 단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을 때 그 단어입니다. “그를 전혀 모른다”라고 부인했던 말을 방향을 바꿔 자신에 대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을 향해서 ‘나는 당신을 모른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기 안에서, 내 뜻과 권리와 방식을 고집하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을 대하듯 등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개선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잘 관리하고 다듬으라고, 나쁜 부분을 고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부인하라, 절연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너 자신을 부인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괴롭히고 학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금욕이나 자존감을 파괴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을 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다스리느냐의 문제입니다. 자아만큼 고약한 것이 없습니다. 괴롭힐수록 더 강해지고, 또 잘해줄수록 더 망가집니다. 도대체 우리의 자아는 스스로 개선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어떤 교육으로도, 어떤 수행으로도 우리의 자아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라, 자신을 향하여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입니다. 내 인생의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그리스도께 내어드리라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란 의지를 반납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내 것이라고 우길 수 있는 의지를 주인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고전 3:23). 베드로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말린 것은 애정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보면 예수님 앞을 막아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24절에 “나를 따라오려거든”이라는 말씀은 “내 뒤에 서라”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베드로가 설 자리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21절 말씀에서 ‘모든 사람’은 바울의 동역자들입니다. 성도들이요,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의 일이라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기의 일을 구하는 행동이 사도 바울의 사역 현장에서도 나타났다면, 우리 가운데서는 얼마나 더 자주 일어나겠습니까? 자기 부인이 없는 봉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은 자기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부인이 없는 영적 훈련은 할수록 자아가 더 단단해지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끝까지 주도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그다음 걸음을 말씀합니다. 자신의 주권을 내려놓은 손에 들어야 할 것이 있는데,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24절 후반부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친숙합니다. 이제 십자가는 두려운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친숙해지면서 그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였을까요? 그들에게 떠오르는 십자가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의 모습입니다. 되돌아오지 못하는 발걸음입니다. 장례 행렬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라고 할 때 흔히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고생스러운 일들이라고 해석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닙니다. 자기 십자가를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문제를 만들어 놓고 자기 십자가라고 하는 것도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자기 십자가는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감수하는 대가’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기 때문에 감수하게 되는 손해와 오해, 좁아지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두시는 걸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종양, 영혼의 문제를 수술하시려고 깊이 칼을 대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내 길에 놓인 십자가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선언,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 <누가복음> 9장 23절에는 ‘날마다’라는 단어가 덧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내려놓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자기 십자가에 붙들어 매는 것은 못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순종을 통해서 날마다 몸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도 ‘날마다’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번의 체험으로 자아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갓난아기가 하룻밤 자고 나면 30대 청년이 되게 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질서처럼 씨앗이 뿌려지고 서서히 자라듯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 ‘날마다’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는 한 번 은혜를 체험했다고 자아가 완전히 부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정입니다. 끊임없이 날마다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신 죽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분의 죽음을 우리 옛사람의 죽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롬 6:6).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언,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바로 이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그 선언 위에서 우리가 자기를 부인할 수 있지, 자신을 죽이려고 몸부림치며 수고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우리의 신앙은 무거운 짐이 되고 율법주의가 됩니다. 복음의 은혜 없이 자기를 부인하려고 하면 율법주의가 되고, 자기를 짓누르게 됩니다. 반대로 자기 부인이 없는 은혜를 추구하는 것은 본회퍼가 말한 ‘값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잃어버림이 아니라 맡겨지는 것 25~26절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의 의미를 예수님이 한 문장으로 해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잃는 것은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림이 아니라 맡겨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뒤를 따라간다면 다시 찾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다시 찾는 것입니다. 온 천하, 온 세상과 비교해도 우리의 영혼이 더 가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나라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는 자는 다시 찾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내가 이 길을 가봤소. 그러므로 나를 따라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부인이란 자신에 대하여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 앞에 두신 순종의 길을 날마다 못 박힌 자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숨을 잃게 되는 자리라 할지라도 두려움 없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앞서가시는 예수님이 “이 길은 내가 가본 길이다. 이 길 끝에는 생명이 있다.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7-16 제1598호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8)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에게 나를 따르라 (8)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에게 <요한일서> 1:3~7 / 이재훈 위임목사 우리는 공동체에 기대하며 참여합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 다르거나 기대가 무너지고 때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열심을 내어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고,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대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로 생각하지만, 때로는 더 악화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오늘 말씀에 근거하면, 사귐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귐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올바른 공동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깊이 홀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 깊이가 관계 속에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관계만이 ‘진정한 공동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파합니다. 이는 여러분과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입니다.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가득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3~4절). 요한이 이 편지를 읽는 성도들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그 사귐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끼리의 사귐, 곧 수평적인 사귐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사귐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모양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가로축부터 절대 세울 수 없습니다. 세로축부터 세워진 다음에 가로축을 덧붙이는 것처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의 뿌리가 없으면 우리의 모든 수평적 사귐은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귐’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코이노니아(Koinonia)’는 단순히 함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공유한다고 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때로 물질을 공유할 때도 쓰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 성도에게 헌금을 요청해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함께 참여할 때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 복음 증거에 함께 참여하는 것에도 쓰였습니다. 무엇을 함께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함께 가지고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귐은 비교할 수 없는 더 깊은 사귐을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모시고, 그분을 함께 공유한 자로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사귐의 본질, 이 사귐의 방향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공동체는 힘을 잃어버리고, 시험을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서로에게 닿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우회한 친밀함은 아무리 따뜻해 보여도 결국 위태롭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사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관계만이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교제 안으로 우리를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참된 사귐의 조건 ‘빛’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함께 교제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고전 1:9). 위에서부터 내려온 이 사귐은 우리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 예수님을 통한 사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입니다. 곧 하나님은 빛이시니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여전히 어둠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는 거짓말하는 것이며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5~6절). 요한이 사귐을 말하다가 ‘빛’을 말씀합니다. 참된 사귐의 조건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이란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신을 감추지 아니하시고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 거짓이 전혀 없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에서 시작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거룩, 곧 빛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곧 빛 앞에 설 때에야 우리가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 앞에 선다는 것은 십자가 앞에 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인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할 만큼 우리의 죄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 빛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모든 더러움이 드러납니다. 어둠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사귐은 과연 이 빛 가운데 여전히 견딜 수 있는 사귐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귐은 빛 가운데서의 사귐인가, 아니면 어둠을 함께 나누는 사귐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어둠의 일에 함께 참여하면서 서로의 죄를 덮어주고 가까워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빛이 들어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기 때문에 빛 가운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닙니다.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직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설 때 연약함, 허물, 죄를 정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귐의 조건입니다. 우리가 빛 되신 하나님 앞에 서면서 자신의 허물과 죄가 그 거룩하신 빛 앞에서 드러나게 될 때 정직하게, 겸손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서로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은 빛 가운데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에게는 서로 사귐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7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빛 앞에서 드러난 죄를 깨끗하게 해 주는 사귐입니다. 빛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면 서로 부끄러워 등을 돌릴 거라는 생각은 오해요, 착각입니다. 도리어 빛 가운데 행하면 진정한 사귐이 가능합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사귐, 공동체의 비밀이 있습니다. 빛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지만, 빛 가운데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깨끗한 사람들이 어떤 자격을 갖추고 모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이 드러나지만, 예수의 피로 정결함을 입고 서로 용서를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공동체에서 때로 상처를 받고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공동체 참여할 때 마음속에 이상적인 그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환상이 깨지는 것 또한 은혜입니다. 환상이 깨질 때 우리 눈앞의 진짜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점투성이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은 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충분히 깨끗해서 사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마음에 들 만큼 괜찮은 사람이어서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순서가 반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더럽고 추한 죄인이지만 그 피로 씻음을 받은 이들이 서로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으로 출발해서 빛 가운데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 만일 공동체에서 외롭다면 그 외로움의 뿌리를 다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혹시 나는 사람에게서 채워지기를 바라며 옆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이 채워줄 수 없는 자리를 요구하면 모두가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으로부터 출발해서 빛 가운데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은 공동체라는 사귐의 뿌리가 분명할 때 수평적 사귐이 올바로 갈 수 있습니다. 공동체와 순예배는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함께 빛 가운데로 걸어가기로 약속한 작은 공동체입니다. 순예배가 살아나는 길은 재밌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함께 그리스도와 십자가 앞에 서는 데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고, 서로를 용서하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이 사귐이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완벽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 되었을 때 그 자체가 세상에 증거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서로에게 가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위로 올라갈 때 닿습니다. 서로가 그 빛을 향해 걷다 보면 어느새 같은 빛 아래서 나란히 걷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서로에게 다가간 사귐은 세상 그 무엇도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향해 다시 걸어가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위를 보고, 그다음 옆을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7-10 제1597호
[News] 하용조 목사 소천 15주기 하용조 목사 소천 15주기 7월 27~31일 ‘하용조 목사 추모 기간' 새벽기도회 설교 영상 상영, 31일 추모예배 온누리교회가 하용조 목사를 추모한다. 온누리교회는 하용조 목사 소천 15주기를 맞아 7월 27일(월)부 터 31일(금)까지를 ‘하용조 목사 추 모 기간’으로 지정했다. 이 기간 온누리교회 새벽기도회에서는 하용조 목사 생전 설교 영상이 상영되 고, 7월 31일(금)에는 하용조 목사 소천 15주기 추모예배를 드린다. 새벽기도회 설교 주제와 본문은 7 월 27일(월) ‘복음의 빚진자’(롬 1:8~15), 28일(화) ‘ 믿음은 들음에 서 난다’(롬 10:14~21), 29일(수) ‘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버리지 않으 셨다’(롬 11:1~10), 30일(목) ‘구원 의 삶, 몸을 드리라’(롬 12:1), 31일 (금) ‘구원의 축복’(롬 11:3 3~36)이다. 하용조 목사 소천 15주기 추모예 배는 7월 31일(금) 오전 11시 Acts2 9비전빌리지에서 유가족과 온누리 교회 리더십을 중심으로 드린다. 박 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 담당) 가 사회를 보고, 이인용 장로 대표 기도, 블러썸챔버 특순, 강부호 목사 (양재온누리교회 담당) 메시지, 이 재훈 위임목사 축도 등의 순서로 진 행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하용조 목 사님을 기억합니다’ 추모 게시판에 도 성도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성도들이 하용조 목사를 통해 받은 은혜와 삶의 변화 등을 고백하는 댓 글을 남기고 있다. CGN 퐁당에서는 ‘하용조 목사 특별관’을 공개했다. 故 하용조 목 사 성경 강해 시리즈와 주제별 말 씀, 특집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콘 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QR코드 참고). 문의: 02-868-8425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여름 아웃리치 열기 뜨겁다! 해외 146팀 2,609명, 국내 200팀 4,689명 참가 ‘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를 주제로 이어지고 있는 온누리교회 여 름 아웃리치 열기가 뜨겁다. 올해 여름 아웃리치에는 성인공동체 해외 55팀 1,126명, 국내 35팀, 1,630명, 대학청년부 해외 59팀 959명, 국내 138팀 2,493명, 차세대 해외 32팀 524명, 국내 27팀 566명이 참가한다. 총 해외 146팀, 2,609명, 국내 200팀, 4,689명이다(7월 24일 기준). 임현진 형제(SNSCross청년부)는 “낯선 땅에 아웃리치 와서 묵묵히 헌신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보고 지금도 살아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미디어사역본부는 ‘여름 아웃리치 동영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여름 아웃리치 영상을 60~90초 분량으로 제작해서 8월 31일(월)까지 이메 일(onnurismart@gmail.com) 또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온누리아웃 리치2026)와 온누리교회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onnuri.acts29) 태그,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응모하면 된다. 에서는 여름 아웃리치 간증과 사진을 모집한다. A4용 지 1장 분량의 간증과 가로형 사역 사진, 작성자 최근 정면 사진을 이메 일(wisdom7@onnuri.org)로 제출하면 8~9월 에 게재한 다. / 박지혜 기자 우누스오케스트라 창단 10주년 기념 음악회 8월 8일 오후 7시 30분 서빙고 본당 우누스오케스트라(단장 김용섭) 가 창단 10주년 기념 음악회 ‘Conn ect with’를 개최한다. 오는 8월 8일 (토)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 회 본당에서 열린다. 우누스오케스 트라와 온누리교회 장애인사역본 부가 공동 주최하고, 제주 성안교회 (위임목사 류정길)와 우누스오케스 트라 학부모회가 후원한다. 우누스오케스트라는 장애・비장애 청소년이 함께하는 오케스트라다. 10여 년 전 제주 성안교회에서 열린 온누리사랑챔버오케스트라 연주회 가 우누스오케스트라 창단으로 이 어졌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우누스오케스 트라, 첼리스트 김영환, 바이올리니 스트 손인경, 온누리사랑챔버오케 스트라, 사랑퀸텟(Sarang Quintet, 사랑챔버 소속 5중주팀) 등이 공연 한다. ‘Over The Rainbow / You Are My Sunshine’, ‘아주 먼 옛날 ’ , ‘ 첼로 모음곡 1번’, ‘파사칼리아’, ‘ 나바라’, ‘쥬피터’, ‘신세계 교향곡 ’ 등을 연주한다. 문의: 010-5645-5450, 02-3215-3263 / 홍하영 기자 차세대, 믿음으로 여름나기 차세대가 믿음으로 여름나기를 실 천한다. 8월 말까지 차세대 슬기로 운 방학생활 ‘QT하고 수박먹자’, 여 름 캠프, 아웃리치를 한다. ‘ QT하고 수박먹자’는 7월 20일 (월)부터 8월 15일(토)까지 일요일 을 제외한 총 24일 진행된다. 가족이 함께하는 ‘가족 QT’ 4회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모든 일정을 완주한 차세대에게는 수박 간식을 선물로 준다. 차세대 여름캠프와 아웃리치 는 8월 말까지 이어진다. 예수님의 꿈아이와 꿈이자라는땅 여름캠프는 ‘ 여호수아, 약속의 땅’을 주제로, 파 워웨이브는 ‘돌파’를 주제로 온누 리교회각캠퍼스본당과외부에서 개최한다. 올해 차세대 여름 아웃리치에는 해외 32팀 524명, 국내 27팀 566명 이 참가한다. 문의: 02-3215-3521
2026-07-25 제1599호
[News]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여름 아웃리치 해외 142팀 2,510명, 국내 196팀 4,337명 참가 미디어사역본부 ‘아웃리치 동영상 공모전’, <온누리신문> 간증 모집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 열기가 뜨겁다. ‘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를 주제로 8월까지 이어지는 올해 여름 아웃리치에는 해외 142 팀 2,510명, 국내 196팀 4,337명이 참가한다. 구체적으로 성인공동체 해외 51팀 1,027명, 국 내 31팀 1,278명, 대학청년부 해외 59팀 959명, 국내 138팀 2,493명, 차세대 해외 32팀 524명, 국내 27팀 566명이 복음 들고 열방으로 떠난다(7월 16일 기준). 해외 아웃리치는 몽골, 스리랑카 등지에서 선교사 블레싱, 마을 전도 등의 사역을 한다. 국내 아웃리치는 진도, 원주 등지에서 교회 보 수, 예배 지원 등을 한다. 조연희 자매(SNSCross청년부)는 “몰도바 아웃리치에서 하나님이 이 땅에 복음을 세워 가시는 현장을 직접 보며 큰 은혜를 받았다” 면서 “몰도바를 일으키시고 회복시키실 하나 님을 더욱 기대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미디어사역본부와 에서는 여 름 아웃리치 영상과 간증을 모집한다. 미디어사역본부는 ‘2026 여름 아웃리치 동 영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여름 아웃리치 영상을 60~90초 분량으로 제작해서 8월 31일 (월)까지 응모하면 된다. 제작 영상은 이메일 (onnurismart@gmail.com)로 제출하면 된다. 인스타그램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 게시글에 해시태그(#온누리아웃리치2026) 하거나 온누 리교회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onnuri.acts 29) 태그 또는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보내 면 된다. <온누리신문>에서는 여름 아웃리치 간증과 사진을 모집한다.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까지 간증(한글 파일 기준 글자 10포인트 크기로 A4용지 1장)과 사진(가로 형태 사역 사진, 간 증을 쓴 성도 사진)을 이메일(wisdom7@onn uri.org)로 보내면 7~8월 에 게 재한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NGO 더멋진세상, 베네수엘라 긴급구호팀 파견 지진 피해 지역 주민 900여 명에게 구호물품 전달 NGO 더멋진세상이 최근 대규모 지진 피해 를 본 베네수엘라 라과이라 지역에 긴급구호 팀을 파견했다. 베네수엘라 긴급구호팀 선발 대는 지난 7월 14일(화)부터 16일(목)까지 구 호물품을 포장해서 현지 병원, 어린이 시설, 이 재민 쉘터 등에 전달했다. 지원 대상은 미겔 페레스 카레뇨 국립병원과 닥터 도밍고 루시 아니 국립병원의 장애인과 부상자 330명, 카라카스 시몬 어린이 시립재단과 라과이라 이 재민 쉘터의 아동 500명, 라과이라 노인 쉘터 의 노인 70명 등 총 900여 명이다. 후원 계좌: 하나은행 573-910009-09905 (사 )더멋진세상 문의: 02-2271-2248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하용조 목사 소천 15주기 7월 27~31일 ‘하용조 목사 추모 기간’ 온누리교회가 하용조 목사 소천 15주기 추모행사를 한다. 7월 27일(월)부터 31일 (금)까지를 ‘하용조 목사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추모예배를 드린다. 하용조 목사 소천 15주기 추모예배는 7 월 31일(금) 오전 11시 Acts29비전빌리지 에서 유가족과 온누리교회 리더십을 중심 으로 드린다. 찬양, 특순, 설교, 유가족 인 사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추모 기간 온누리교회 모든 새벽기도회 에서는 故 하용조 목사의 생전 설교를 상 영한다. 故 하용조 목사는 지난 2011년 8월 2일 향년 65세로 소천했다. 1976년 한국 최초 연예인교회 개척, 1980년 두란노서원 창립, 1985년 온누리교회 창립, 2005년 CGN TV 설립, 2007년 첫 러브소나타 개최, 2010년 NGO 더멋진세상을 창립했다. / 홍하영 기자 “QT하고 수박먹자!” 차세대 슬기로운 방학생활 7월 20일부터 8월 15일까지 차세대 슬기로운 방학생활 ‘ QT하고 수박먹 자’가 7월 20일 (월)부터 8월 15 일(토)까지 이어 진다. ‘QT하고 수박 먹자’는 차세대 들이 방학 동안 QT하면서 하나님과 친밀 해지고, 신앙 성장을 이루도록 돕는 프로 그램이다. 차세대 QT 교재 ,<예수님이 좋아요>, <예수님이랑 나랑>, <새벽나라>와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는 CGN 퐁당 콘텐츠를 활용한다. ‘QT하고 수박먹자’는 일요일을 제외한 24일 동안 진행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가족 QT’도 4번 있다(필수). 전체 QT를 달 성한 차세대들에게는 수박 간식을 선물로 준다. 참여 일수에 따른 차등 선물도 준비 되어 있다. 문의: 02-3215-3521 / 홍하영 기자
2026-07-18 제1585호
[News]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 ‘714연합기도대성회’ 7월 17~18일 잠실학생체육관 한국 교회 연합기도 운동, 500여 교회 성도 2만여 명 참석 예정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 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 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를 기억하시 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사 62:6). 500여 한국 교회 2만여 성도가 62 장 6절 말씀을 품고 한국 교회 연합기도 운동을 한다. ‘714연합기도대성회’(이하 714 기도 회)가 7월 17일(금)과 18일(토) 잠실학생체육 관에서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사 62:6)를 주제로 막 오른다. 올해 714기도회에서는 이틀 동안 5개 세션이 진행된다. 첫째 날(17일)에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세션 1’이 진행된다. 이기용 목사(신 길교회)가 설교하고, 안광복 목사(상당교회), 이해영 목사(성민교회)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찬양은 신길교회 찬양팀이 한다. 오후 6시 30 분부터 8시 30분까지 ‘세션 2’가 이어진다. 이 인호 목사(더사랑의교회)가 설교하고, 김도훈 목사(신림동산교회), 김형석 목사(필그림교 회)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더사랑의교회 찬양 팀이 찬양한다. 둘째 날(18일)에는 오후 1시 30분부터 3시 20분까지 ‘세션 3’이 진행된다. 문대원 목사 (대구동신교회)가 설교하고, 이요한 목사(수 원순복음교회), 류성룡 목사(흩어진화평교회) 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찬양은 아이자야61이 한다. 오후 3시 40분부터 5시 20분까지 이어 지는 ‘세션 4’에서는 이재훈 목사(온누리교 회)가 말씀을 전하고, 이지훈 목사(대구범어 교회), 남경우 목사(GMTC)가 기도회를 인도 한다. 찬양은 온누리교회 찬양팀이 한다. 마지 막 ‘세션 5’는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이어진 다. 이정규 목사(시광교회)가 설교하고, 기도 회는 이종필 목사(세상의빛교회), 김경석 목 사(강서침례교회)가 인도한다. 찬양은 아이자 야61이 한다. 714 기도회 참가를 희망하는 성 도들은 홈페이지(714praymov.org)나 하단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이름, 연락처, 이메일, 소속 교회 및 단체, 직분, 참석 일자 등을 기입하면 된다. 714연합기도대성회는 7장 14절 말씀에 기초해 매년 7월 열리는 한국 교회 연 합기도 운동이다. 올해가 4번째 행사다. 한국 교회의 회개와 영적 각성, 한 반도와 열방을 위한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문의: 02-868-8425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복음 들고 열방을 향해 여름 아웃리치 국내외 338개 팀, 6,847명 참가 여름 아웃리치가 본격 시작됐다. 올해 온누 리교회 여름 아웃리치는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를 주제로 진행된다. 성인공동체, 대학청 년부, 차세대 국내외 338개 팀 6,847명이 참가 한다(7월 10일 기준). 국내 아웃리치는 진도, 문경 등지에서 교회 보수, 노방전도 등을 한다. 해외 아웃리치는 몽골, 베트남 등지에서 마을 전도, 선교사 위로 등의 사역을 한다. 미디어사역본부에서는 ‘2026 여름 아웃리 치 동영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8월 31일(월) 까지 올 여름 아웃리치 영상(릴스, 숏츠 등)을 60~90초 분량으로 제작해서 응모하면 된다. 제작 영상은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해시태그(# 온누리아웃리치2026) 하거나 온누리교회 공 식 인스타그램 계정(@onnuri.acts29) 태그 또 는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보내면 된다. 이메 일(onnurismart@gmail.com) 제출도 가능하 다. 에서는 여름 아웃리치 간증 과 사진을 모집한다.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까 지 간증(한글 파일 기준 글자 10포인트로 A4 용지 1장)과 가로 형태 사역 사진, 간증을 쓴 성도 최근 정면 사진을 이메일(wisdom7@on nuri.org)로 보내면 된다. / 박지혜 기자 한일청년연합집회 ‘The Way’ 한국과 일본 목회자, 청년 450여 명 참석 러브소나타본부가 주관한 ‘2026 한일 청년연합집회 The Way(이하 2026 The Way)’가 막을 내렸다. 지난 7월 3일(금)~ 4일(토) ‘He wil make your paths strai ght(그가 네 길을 곧게 하시리라)’(잠 3:6)를 주제로 일본 인자이시 문화홀과 TCU(도쿄기독교대학)에서 열린 집회에 는 한국과 일본 목회자 및 관계자, 청년 450여 명이 참석했다. 7월 3일(금) 인자이시 문화홀에서 열린 ‘ 2026 The Way’ 집회에서는 토미야스 스미토(CCM 싱어송라이터), 해금 연주 자 조형주 특순, 이재훈 위임목사 ‘감추 인 보물’(마 13:44~46) 설교, 헌신자 초 청 등의 순서가 이어졌다. 4일(토) TC U(도쿄기독교대학)에서 이어진 ‘YUM E 콘퍼런스’에서는 레크리에이션, 야마 구치 요이치 목사(TCU 특별교수) ‘한일 기독교 역사의 과거와 미래’ 전체강의, 선택식 강의, 한일연합기도회 등을 했다. 시미즈 미키 자매(야마토갈보리교회) 는 “The Way를 통해 한국과 일본을 넘 어 전 세계 청년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되 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차세대 여름사역 본격 시작! 차세대사역본부가 여름사역을 본격 시작했다. 7월과 8월 여름 캠프와 아웃 리치가 이어진다. 여름 캠프는 연령별로 진행한다. 예수 님의꿈아이와 꿈이자라는땅은 ‘여호수 아, 약속의 땅’을 주제로 8월 9일(수)까 지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 본당과 외부 에서 여름캠프를 한다. 파워웨이브 여 름 캠프는 ‘돌파’를 주제로 7월 17일 (금)부터 8월 4일(화)까지 국립평창청소 년수련원, 서해안청소년수련원, 도교교 원연수원, 양평숲속작은나라 등지에서 한다. 차세대 여름 아웃리치는 8월 30일(일) 까지 국내외에서 팀별로 진행된다. 국내 팀은 전라남도 담양, 경기도 부천, 충청 남도 보은 등지에서 노방전도, 성경학 교, 어르신 섬김 등을 한다. 해외팀은 중 국, 캄보디아, 일본, 몽골 등지에서 어린 이 캠프, 노방전도, 환경 미화 등을 한다. 한편, 온누리교회 국내 모든 캠퍼스 ‘ 카페’에서 7월 한 달 동안 대학청년부 및 차세대 여름사역 중보기도문이 담긴 컵홀더를 사용한다. 컵홀더에 인쇄된 QR코드로 접속해서 중보기도문을 확 인하고, 기도하면 된다. / 홍하영 기자 7월 비전헌금, ‘IJM’ 후원 7월 11~12일 봉헌하는 비전헌금은 ‘IJ M(International Justice Mission)’을 후 원하는 데 사용한다. ‘IJM’은 전 세계에 서 벌어지는 가난으로 인한 폭력과 착취 에 맞서는 국제 NGO이다. 17개국 29개 사무국에서 국가기관과 협력해서 정의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돕고 있다. 사법체계를 강화하고, 피해자 구출 및 재활을 돕고, 범죄자를 처 벌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한다. ‘IJM ’ 의 비전은 2030년까지 5억 명을 보호하 고, 수백만 명을 구하는 것이다. /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2026-07-11 제1597호
[News] 여호수아, 약속의 땅으로 여호수아, 약속의 땅으로 7~8월 차세대사역본부 여름 캠프 및 아웃리치 여름 캠프 1만여 명, 아웃리치 59개 팀 1,090명 참가 온누리교회 차세대사역본부의 여름사역이 본격 시작됐다. 7월과 8월 성경 인물 ‘여호수 아’의 삶과 신앙을 배우고 닮아가는 여름 캠 프와 아웃리치가 이어진다. 여름 캠프에는 국 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차세대 113개 부 서 1만여 명의 학생이 참가한다. 아웃리치에 는 국내 27개 팀 566명, 해외 32개 팀 524명이 참가한다. 예수님의꿈아이(영아부·유아부·유치부)와 꿈이자라는땅(유년부·초등부·소년부) 여름 캠프는 ‘여호수아, 약속의 땅’을 주제로 열린 다. 7월 4일(토)부터 8월 9일(수)까지 온누리교 회 각 캠퍼스 본당과 온누리청소년센터, 이천 자연나라, 포천 염광수련원, 피노키오청소년 수련원, 너리굴 문화마을 등지에서 성경 퀴즈, 적용 놀이, 체험 활동 등을 한다. 예수님의꿈 아이와 꿈이자라는땅이 대상이다. 파워웨이브(중고등부) 여름 캠프는 ‘돌파’ 를 주제로 7월 17일(금)부터 8월 4일(화)까지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서해안청소년수련원, 도교교원연수원, 양평숲속작은나라, 원주힐링 파크 등지에서 진행된다. ‘두려움을 돌파하라 ’ , ‘ 불가능을 돌파하라’, ‘망설임을 돌파하라’ 를 소주제로 찬양과 설교, 주제 강의, 기도회 등을 한다. 차세대 여름 아웃리치는 7월 3일(금)부터 8 월 30일(일)까지 국내외에서 팀별로 진행한 다. 국내 팀은 전라남도 담양, 경기도 부천, 충 청남도 보은,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노방 전 도, 성경학교, 어르신 섬김 등의 사역을 한다. 해외 팀은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일본, 몽골 등지에서 어린이 캠프, 노방 전도, 환경 미화 등을 한다. 한편, ‘2026 교사 기도회’가 지난 7월 1일 (수)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믿음으로 걷는 교사들’을 주제로 열렸다. 차세대 교사 와 부모, 성도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설교는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가 ‘요단강 도 하’를 주제로 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 714연합기도대성회, 7월 17~18일 잠실학생체육관 ‘ 714연합기도대성회’(이하 714기도회)가 7월 17일(금)과 18일(토)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복음의 증인, 기도로 서는 교회’(사 62:6)를 주제로 막 오른다. 7장 14절 말씀에 기초해 매년 7월 열리는 한국 교회 연합 기도 운동이다. 참가를 희망하는 교회와 성도들은 714연합기도운동 홈페이지(714praymov.org) 나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올해 714기도회에서는 이틀 동안 총 5개 세 션이 진행된다. 7월 17일(금) ‘세션 1’에서는 이기용 목사가 설교하고, 안광복 목사, 이해영 목사가 기도회를 인도한다. 찬양은 신길교회 찬양팀이 한다. ‘세션 2’에서는 이인호 목사 가 설교하고, 김도훈 목사, 김형석 목사가 기 도회를 인도한다. 찬양은 더사랑의교회 찬양 팀이 찬양한다. 7월 18일(토) 이어지는 ‘세션 3, 4, 5’에서는 문대원 목사, 이재훈 목사, 이정규 목사가 메 시지를 전한다. 기도회는 이요한 목사, 류성룡 목사, 이지훈 목사, 남경우 목사, 이종필 목사, 김경석 목사가 인도한다. 찬양은 온누리교회 찬양팀과 아이자야 61이 한다. 문의: 02-868-8425 예수 따라 열방으로! 여름 아웃리치 국내외 323개 팀 6,379명 참가 2026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가 시작됐다. 올해 7월과 8월 이어지는 여름 아웃리치에는 성인공동체, 대학청년부, 차세대 국내외 323개 팀 6,379명이 참가한다(7월 1일 기준). 국내 아웃리치는 경남 통영, 전남 해남, 충남 보은 등지에서 교회 보수, 마을 전도, 군장병 초청 잔치 등을 한다. 해외 아웃리치는 인도네시아 롬복, 일본 요코하마, 태국 파타야 등지에서 선교지 방문, 선교사 위로, 현지교회 연합 집회 등의 사역을 한다. 미디어사역본부에서는 ‘2026 여름 아웃리치 동영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8월 31일(월)까지 올해 여름 아웃리치 영상(릴스, 숏츠 등)을 60~90초 분량으로 제작해서 응모하면 된다. 영상은 가로, 세로 형식 모두 사용 가능하고, 90초 이상 영상은 심사에서 제외한다. 비공개 지역 등 노출되지 않아야 할 정보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제작 영상은 온누리교회 인스타그램 계정(@onnuri.acts29) 태그, 다이렉트 메시지(DM), 해시태그(#온누리아웃리치2026)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 전송하면 된다. 이메일(onnurismart@gmail.com) 제출도 가능하다. <온누리신문>에서는 여름 아웃리치의 생생한 은혜와 감동이 담긴 간증과 사진을 모집한다.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까지 간증(한글 파일 기준 글자 10포인트로 A4 용지 1장)과 사진(사역 사진, 간증을 쓴 성도 사진)을 이메일(hha0@onnuri.org)로 보내면 된다. 제출한 간증은 7~8월 <온누리신문>에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 홍하영 기자 수원 창립 23주년 감사예배 7월 5일 오전 9시, 11시 30분 수원온누리교회가 창립 23주년 감사예배를 ‘ 하나가 되다 우리가 되다’(요 17:21~23)를 주제로 7월 5일(일) 오전 9시와 11시 30분 명 지대학교 채플관 예배당에서 ‘세대 통합예배 ’ 로 드린다. 7월 7일(화)~9일(목) 오후 7시 30 분 기흥 ICT밸리 1층에서는 말씀집회가 열린 다. 장경철 교수(서울여대 기독교학과 교수)가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 6월 28일에는 공동체 리더십과 사역팀 별 찬양인도자 및 싱어를 대상으로 리더십 예 배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김승훈 목사(수원온 누리교회 담당), 장동원 목사(예배본부 본부 장), 황병원 장로(예배포럼 및 예배학교 장로) 가 강의했다. 수원온누리교회는 사도행전적 비전을 품고 다음세대와 이주민 등을 섬기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2026-07-04 제1596호
[마리아행전] "예수님처럼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겠습니다!” 나와 교회, 민족과 세상을 위한 왕의 기도! “예수께서 이말씀을하시고눈을 들어 하늘 을 우러러보시고 기도하셨습니다”(요 17:1a).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이 눈을 들어 하 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셨다. 자신을 위해, 제 자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마리아들이 바로 그 왕의 기도를 따라, 나와 교회, 민족과 세상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첫째 날, 자신을 위한 왕의 기도 6월 10일(수) 오전 9시 40분,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마리아들이 하나둘 모였다. 이윽고 예배당이 그녀들의 기도로 채워졌다. 오전 10시, 집회가 시작됐다. Blossom 챔버의 연주와 찬양이 울려 퍼졌다. 송정미 사모의 특 순이 끝나고, 조호영 목사(여성사역본부장)가 단상에 올랐다. “내 욕심과 뜻을 앞세우는 기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어떤 기도를 원하시는지 배워보십시 오.” 첫째 날 설교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왕의 기도’(요 17:1~5)를 주제로 했다. 기도회는 김정희 목사(양재여성사역)가 ‘자신을 위한 기도’ 를 주제로 인도했다. 둘째 날, 교회를 위한 왕의 기도 마리아행전 둘째 날 집회는 The Blessing 챔 버의 연주와 찬양, 기도로 시작됐다. 설교는 정 명호 목사(혜성교회)가 ‘세상 안으로 보내심 을 받은 자들의 기도’(요 17:6~19)를 주제로 했다. 마리아들의 기도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 졌다. 둘째 날 기도회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 다. 김현실 목사(부천 여성사역)가 ‘교회를 위 한 기도’를 주제로 인도했다. 말씀을 잃지 않 는 교회가 되도록,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 하지 않는 교회가 되도록, 진리로 거룩해지는 교회가 되도록 부르짖었다.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회도 이어졌다. 이윤재 목사(수원 여성사역)가 ‘정치, 법, 사회를 위한 기도’를, 김미정 목사(인천 여성사역)가 ‘교육, 문화, 미디어를 위한 기도’를 주제로 인도했다. 셋째 날, 세상을 위한 왕의 기도 집회 마지막 날,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마리아들이 모였다. 설교는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원로목사) 가 ‘아버지, 하나 되게 하소서’(요 17:20~26) 을 주제로 했다. 기도회는 배순양 목사(제주 여 성사역) ‘북한, 통일을 위한 기도’, 권오향 목 사(남양주 여성사역) ‘열방을 위한 기도’를 주 제로 인도했다. 백미는 세리머니였다. 마리아 들이 서로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손을 맞잡고 축복했다. / 홍하영, 박지혜, 남현영 기자 인터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 평소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왕, 선 지자,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하나 님 나라가 임하고,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도도 꾸준히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단의 계략을 분별할 지혜와 영적 전쟁을 감 당할 능력을 주셨음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 다. 그런데 첫날 메시지를 들으면서 기도의 은 사를 충분히 사용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 다. 세상의 우상뿐만 아니라 제 안의 우상도 돌아봤습니다. 이것을 무너뜨릴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며, 마지막 시대 성도 에게 순교적 신앙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겼습 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제가 죽기를 원합니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보자” 다”라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부 어주시는 사랑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웠 습니다. 그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비로소 타인 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다고 믿습니 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한 삶은 예배하는 일상에서 시작된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존 재로 지으셨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참된 예 배자로 부르고 계신다 고 믿습니다. / 이승진 집사(강남B공동체)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보자" 평소에도 교회를 위한 기도를 매일 드렸는 데,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결국 점점 악해질 텐데, 내가 기도한다고 달라 질까’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지만, 그 기도가 실제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품은 채 마리아행전 자리에 앉았 습니다. 말씀을 듣는데 무엇인가 달라지기 시 작했습니다. 우리가 연합해서 기도할 때 하나 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 내 기도가 작아 보여도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음으로 붙 들게 됐습니다. 특히 “무너진 곳을 세우는 중 보자”라는 말씀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함 께 기도하는 지체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한 군 대가 되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 니다. 교육, 미디어, 정치 등 세상의 모든 영역 을 위해서 지금보다 구체적으로, 더욱 민감하 게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포함해서 하루 한 시간은 기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기도할 제목이 많아졌습니다. 교회 리더십을 위해, 세속화되는 이 시대를 분별하기 위해, 다음세 대를 위해 더 깊이 무 릎 꿇겠습니다. / 박진영 집사(이수공동체)
2026-06-13 제1593호
[장애인주일 특집]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라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인사역본부 부모와 교사들의 솔직담백한 고백 장애인사역본부 공동체 부모와 교사들 을 만났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고 담백 한 고백을 들었다. 누군가는 자녀가 처 음 장애 진단을 받던 날 병원 계단을 기 억했고, 누군가는 장애인 자녀가 그린 작품을 전시한 날의 기쁨을 고백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장애인과 함께 걷는 길에서 경험한 감동을 노래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려고 목적지에 맞게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탔는데, 착륙지는 이탈리아가 아닌 알래스카의 어느 공항이었다.” 장애인 자녀를 맞이하는 부모의 당혹감을 표현한 이 문장이 낯선 비유처럼 들리지만, 그것을 몸으로 겪어낸 이들에게는 가장 정확한 고백이다. 오랜 시간 ‘장애’라는 칼바람이 부는 북극에서 사는 방법을 익혀온 이들의 솔직 담백한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원망도, 불평도 어려웠던 그 시간 자녀의 장애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이선아 성도(부천온누리교회)는 아들 윤후(부천 사랑부)의 장애 검사 결과지를 받던 20여 년 전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또래보다 발달 속도 등이 범주를 벗어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도, 막상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병원 계단에서 통곡하고 말았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7살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료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이후 희귀 난치 질환 진단과 수술, 뇌전증 대발작, 척추측만증 교정 수술까지 더 큰 난관들이 찾아왔다. 그 모든 시간을 버티면서도 원망도, 불평도 편하게 뱉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해진다는 말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남편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게 보였고, 저는 계속 울부짖으며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하시네요’라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이 죄가 되어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봐 애써 머리를 흔들며 애꿎은 기도 시간만 늘렸습니다.” 이지영 자매(강동 사랑부)의 어머니 오금옥 성도(강동온누리교회)도 딸의 장애 진단 앞에 무너져 내렸다. 이지영 자매가 4살 될 무렵, “자폐증입니다. 혼자 살아가기 힘들 겁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신(神)을 원망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없다, 부처님도 없다’며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모든 신을 끄집어 와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아이의 장애가 나의 죄라 여기며 세상의 눈치, 가족의 눈치, 아이의 눈치를 보면서 그 암흑 같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박혜신 자매(서빙고 예수사랑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도, 김수 자매(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도, 김재원 형제(서빙고 사랑부)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도 다르지 않았다. 자녀의 장애 진단 앞에 상한 마음을 감추고 끝나지 않을 그 세월을 살았다. 하나님 원망도 해보고, 울며불며 매달려 보면서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뎠다. 북극에도 봄은 온다 시간이 흘렀다. 살을 에는 칼바람만 부는 것 같았던 북극에도 따스한 볕이 드는 봄이 찾아왔다. 인생의 계절이 바뀌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윤후 형제가 올해 스무 살이 됐다. 뇌전증 대발작은 여전히 찾아오고, 희귀 난치 질환은 평생 안고 가야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이선아 성도는 그 기쁨의 비결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부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윤후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사랑부 선생님들의 사랑과 헌신이 우리 가정에 기쁨을 가져다줬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충분히 유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지영 자매는 혼자 밥을 차려 먹고, 대중교통을 타고, 치료기관을 찾아간다.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린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거라던 아이가 씩씩하고 명랑한 청년 작가가 됐다. 이지영 자매가 견뎌낸 그 숱한 세월이 엄마 오금옥 성도를 하나님 앞으로 초대했다. “지영이가 저를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의 삶을 통해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곧잘 그려내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봄볕은 이 가정에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김수 자매, 김재원 형제, 박혜신 자매, 최희민 형제에게도 찾아왔다. 그들은 지금 ‘장애인 청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장애인 청년 작가 5인(김수, 김재원, 박혜신, 이지영, 최희민)이 사랑홀갤러리(서빙고온누리교회 신관 1층)에서 장애인의 달 특별전 ‘우리들의 찬양’을 열고 있다. 박혜신 자매는 지난해 연말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도 하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김명희 권사가 지난해 연말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을 꺼냈다. 박혜신 자매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활짝 핀 자목련 그림을 구매했고, 그 그림을 품에 안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 속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저는 혜신이의 그림을 보면 하나님의 미소를 대하는 듯합니다. 성도들이 갤러리 복도를 오가면서 손 내미시는 하나님을 만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재원 형제의 어머니 박정애 성도에게는 전시회보다 “행복하다”는 아들의 고백이 더 큰 선물이었다. “재원이가 전시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행복하다’는 고백을 참 많이 했습니다. 재원이의 그림을 보고 ‘위로 받았다’, ‘소중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등의 평을 남겨주시는 관객들과 만나면서 큰 용기도 얻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사랑홀갤러리에 걸린 아이들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와 따뜻한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김수 자매의 어머니 김영화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딸의 은사를 성도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온누리교회 장애인 예배가 우리 모녀의 안식처입니다. 늘 위로와 사랑을 받기만 하다가 특별전을 열고 작게나마 성도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수가 이 기회를 좋은 토양 삼아 더 큰 믿음의 자녀로 성장할 것입니다.” 곁에 머무는 사랑, 페이스메이커 ‘장애’라는 북극의 추위를 견디는 이들 곁에서 묵묵히 품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사역본부 교사들이다. 정길우 성도(서빙고 사랑부 교사)는 직장 신우회 활동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장애인 시설에서 무려 20여 년을 봉사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년퇴직 이후 공동체에서 장애 자녀를 둔 가정들을 만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이유를 어느 주일 발견한 ‘사랑부 교사 모집’ 광고에서 알 수 있었다. 무작정 사랑부 예배를 찾아갔고, 교사로 지원했다. 사랑부를 섬기면서 정길우 성도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랑부 여름 캠프에서 한 형제의 배변을 돕고 샤워를 시키다가 문득 아무 거리낌 없이 섬기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그때 동료 교사가 건넨 한마디가 그 기쁨의 정체를 알려줬다. “‘사랑부가 아니면 이런 경험을 평생 못 했을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기에 할 수 있는 일이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부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은 멀리서 돕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해 문석윤 성도(서빙고 예수사랑부 교사)에게 예수사랑부를 섬기던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싱어를 구하고 있으니 함께 섬기자고 제안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선택인지 망설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사 43:1)을 붙들고 예수사랑부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8개월이 흘렀다. “예수사랑부 청년들을 보면 순전한 예배자가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이곳에 10년 이상 몸담고, ‘나의 남은 삶은 이곳’이라 고백하는 선배 교사들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사랑부가 그 이름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경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2년째 부천 사랑부 총무로 섬기는 김도훈 집사(부천온누리교회)도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어느새 가장 소중한 사역지가 됐다. 대학생이 된 딸도 함께 교사로 섬기고 있다. 찬양할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 뛰는 사랑부 청년들의 미소에서 예수님을 본다. “마라톤에는 선수 곁에서 속도를 조절해 주는 페이스메이커가 있습니다. 사랑부에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뛰어줄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사랑부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여러분의 섬김이 사랑부 아이들에게 평생의 온기를 나눠줄 큰 빛이 될 것입니다.” 이탈리아행 비행기에서 내려 북극에 섰던 이들이 그 땅에서 이글루를 짓고 있다. 북극의 모진 추위를 이기고 튼튼하고 따듯한 이글루를 함께 지어줄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문의: 02-3215-3263
2026-04-18 제1585호
[예수를 따르는 사람]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여기가 선교지! 내 달란트는 선교 도구! ‘캠퍼스 복음화’ 꿈꾸는 백은희 교수의 확신 “나를 따르라”(마 16:24). 2026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전제한 그리스도의 엄중한 명령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한 모든 이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온누리신문>에서‘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과 고백을 듣는다. 그 일곱 번째 주인공은‘국립공주대학교 백은희 교수(양재온누리교회)’다. 그녀는 캠퍼스를 선교지로 여기고, 자신의 달란트와‘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라는 선교 도구를 사용해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는‘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현장 이른 아침, 아직 캠퍼스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인데 강의실 불이 하나둘 켜졌다. 그리고 전공 서적 대신 성경책을 든 예배드리는 사람들, 교수와 학생, 지역 교회 성도들이 모였다. 국립공주대학교 신우회 소속 교수들, 기독동아리 학생과 간사, 지역 교회 성도들이다. 그들은 무릎부터 꿇었다. 그리고 학교와 학생들, 캠퍼스 복음화를 간구하며 뜨겁게 부르짖었다. 그들은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교단과 소속을 넘어 기독교 공동체 이름으로 하나 된다. 그들의 기도와 예배는 특별하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선교지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는 선교 도구”라는 고백을 일상에서 증명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 갈망이 캠퍼스 복음화라는 엄청난 비전을 완수하는 원동력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지난해 KUPM(전국교수선교회)과 CCC연합평창대회에서 백은희 교수의 발표로 전국 대학 기독 공동체에 소개되며 점차 더 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바로 국립공주대학교 교수신우회와 기독동아리가 함께 드리는 ‘ 국립공주대기독연합예배’ 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는 2010년대, 국립공주대학교 음악교육과 백기현 교수가 교수신우회 회장을 역임할 당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로 시작했다. 기독동아리 학생들과 간사, 교수들이 함께 모여 ‘ 복음 전도’ 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린 연합예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지경이 넓어졌다. 지금도 ‘CCC(Campus Crusade for Chris), JDM(Jesus Disciple Movement), DFC(Disciples For Christ), SFC(Student For Christ), ESF(Evangelical Student Fellowship), IVF(Korea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 비전선교단’ 등 주요 기독동아리 구성원들과 간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 장로와 권사, 선교사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매주 적게는 7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의 인원이 모인다. 캠퍼스와 지역 교회가 연결되는 통로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의 특징이 뚜렷하다. 교수신우회, 기독동아리, 지역사회 교회와 함께하는 연합예배는 개강 및 공강 감사예배만 드리는 게 아니다. 매 학기 약 11주 동안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주 수요일 오전 8시부터 8시 50분까지 진행된다. 예배는 기독동아리 학생들의 찬양을 시작으로 교수신우회 교수들의 기도, 간사 및 지역사회 목회자들의 말씀 나눔으로 이어진다. 또한 국립공주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생에게 문이 활짝 열린 예배다. 이 지속성과 개방성은 학생들이 복음을 더욱 쉽게 접하는 환경을 만든다. 기독동아리에 가입한 대부분 학생은 이미 크리스천이다. 신앙을 가진 학생들을 돌보고 신앙 안에서 굳건하게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연합예배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학생들이 친구 초대로 왔다가 부담 없이 예배드리고,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복음은 관계에서 전해지기 때문이다. 연합예배의 핵심은 ‘ 연합’ 에 있다. 국립공주대학교 6개 기독동아리, 교수신우회 소속 교수들이 늘 그 자리를 함께한다. 모든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하나님이 주신 캠퍼스 복음화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다.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가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선교 도구인 이유가 바로 그것 이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삶으로 보여주는 신앙 “최근 대학가는 상대적 가치관의 혼란과 영적 황폐함, 갈수록 교묘해지는 이단 및 사이비 단체의 포교로 인해 복음화가 더욱 어려워지는 실정입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에서 크리스천 교수님들이 예배의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은 학생들에게 큰 힘과 영적 귀감이 됩니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이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수들에게 이 여정이 쉬운 길은 아니다. 치열한 연구 성과와 업적 평가가 생존과 직결되는 대학에서 매주 시간을 내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작지 않은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백은희 교수의 생각은 분명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는 게 훨씬 큰 축복이고, 영향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백은희 교수는 그래서 국립공주대 기독연합예배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자리’ 라고 고백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이 영향력을 전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그들의 신앙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말로 전하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큰 울림을 준다고 믿습니다. 저와 같은 믿음과 확신을 가진 교수님들이 교수신우회에서 활동하고, 기독동아리와 학생들이 서로 연결되어 함께 드리는 연합예배는 그 존재만으로도 전도의 파급력이 대단합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제자도 실천’ 백은희 교수가 생각하는 ‘ 예수를 따르는 삶’은 특별한 환경이나 특정 순간에만 드러나는게 절대 아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 곧 일상의 자리에서 이어지는 제자도 실천이 핵심이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 국립공주대학교 캠퍼스는 저의 선교지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수 전하는 일을 함께하며 선교 도구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복음을 전하며, 캠퍼스 복음화의 꿈을 이뤄내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제자도 실천이라고 확신합니다.” 특수교육과 교수로서 장애 학생을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는 백은희 교수는 일과 업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고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묻습니다. 하나는 ‘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 또 다른 하나는 ‘ 이 일이 장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입니다. 이 두 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하면 비록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고 시간을 내어야 하는 힘든 선택일지라도 기꺼이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순종입니다” 그렇게 선택한 일을 할 때에는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을 상기한다고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백은희 교수가 대학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크리스천 교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지입니다. 특별한 사역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강의실과 연구실, 학생들을 만나는 모든 장소가 복음을 전하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2026-04-10 제1584호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엄학실 성도가 압록강 건너 예수 따르기까지 “나를 따르라”(마 16:24). 2026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전제한 그리스도의 엄중한 명령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한 모든 이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온누리신문>에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과 고백을 듣는다. 그 네 번째 주인공은 엄학실 성도(부천한사랑공동체)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제가 배운 역사 교과서 속 미국 선교사들은 '하느님을 전한다면서 사과를 훔쳐먹어 이마에 도적이라 새긴 자들'이었습니다.” 엄학실 성도에게 하나님은 첫인상이 아주 나빴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고, 선교사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두메산골에서 자란 엄학실 성도에게 신이라는 개념은 삶의 영역 밖에 있었다. 국가가 곧 절대였고, 김일성 일가는 신을 넘어선 존재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를 담은 <혁명역사도록>을 줄줄 외우며 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은 스쳐 지나는 왜곡된 이야기 속 인물, 나쁜 사람으로만 남아 있었다. 엄학실 성도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뜨린 끔찍한 경험이 있었다.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고,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던 그녀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의 방향을 잃었다.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이 떠나고 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막막함뿐이었습니다. 손주들 밥을 축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차피 죽을 거라면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심은 곧 국경을 향한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압록강으로 향하던 길 위에서 엄학실 성도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을 찾았다. “3월의 압록강은 녹지 않은 얼음과 불어난 물로 가슴 높이까지 차올라 있었습니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느님, 하느님, 내가 압록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른 채 드린 저의 첫 번째 기도였습니다.” 압록강에 다다른 그녀의 눈앞에 믿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강 위로 쓰러져 다리처럼 놓여 있었다. 그 덕분에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 한 구절이 나를… 중국에서의 삶 역시 쉽지 않았다. 공안의 단속을 피해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옮겨야 했다. 이전보다 형편은 조금 나아졌지만, 불안은 여전했다. 함께 중국으로 건너온 딸은 가사도우미, 엄학실 성도는 농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마음 한편에는 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엄학실 성도의 입술에서 다시 같은 이름이 흘러나왔다. “하느님, 우리 딸과 손자가 공안에 잡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우리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게 해 주십시오.” 그때도 여전히 그것이 기도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절박한 순간마다 무심코 부르게 되는 이름이었다.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딸이 한국으로 떠나자고 제안했다. 점점 자라는 손자를 위한 선택이었다.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그날 밤 꿈이 엄학실 성도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미 중국으로 도망쳐온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나려니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너희가 먼저 가서 좋으면 나를 데리러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꿨습니다. 넓고 길고 곧은 길 위에 큰 개 세 마리가 죽어있는 꿈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꿈에 나온 개가 경찰을 뜻합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아, 안전하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딸에게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일터에 거짓말하고 나온 딸과 손자와 함께 밤 11시에 창문을 넘어 도망쳤습니다.” 엄학실 성도는 여러 경로와 재판을 거쳐 한국대사관 방콕 수용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성경책을 봤다. “방콕 수용소에는 한국 영화와 책 그리고 성경책 등이 있었습니다. 문득 ‘북한은 왜 그렇게 성경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핍박했을까?’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일하려고 국경을 넘나들던 시절 성경책을 겉옷에 숨겼다가 공안에 붙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성경책이 무엇이길래 그렇게까지 할까?’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성경 읽기가 곧 ‘통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이 한 구절이 엄학실 성도의 마음을 붙잡았다. 나도 하나님을 믿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마침내 한국에 도착한 엄학실 성도는 하나원에서 만난 동기에게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인도받은 곳이 부천온누리교회 한사랑공동체다. 그곳에서 엄학실 성도의 신앙이 비로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말씀과 사랑이 그녀를 감쌌고, 김혜경 목사와 한사랑공동체의 돌봄 덕분에 하나님 앞에 서는 믿음이 조금씩 생겼다.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마다 하나님께 말을 걸었고, 새벽과 밤을 기도로 채웠다. 그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또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했다. "평소처럼 새벽에 혼자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 <레위기> 11장 45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책을 펼쳐서 확인해 봤더니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명령이라고 느꼈습니다. 연약한 저는 매일 넘어지고 또 엎어지겠지만, 하나님의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엄학실 성도에게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말씀 앞에 서는 삶, 말씀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이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는 것이 그녀가 이해하는 예수 제자의 모습이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을 보면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뜰만 밟듯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것을 붙들고 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가지를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첫 자리에 놓고, 삶의 모든 순간에 기도하며, 예배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현장이 곧 선교지가 되어야 합니다." 엄학실 성도는 복음 통일을 바라보며 그날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북한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어떤 경로로든 하나님을 만나고,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복음 통일이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가족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도록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 훈련받으며, 준비해야 합니다.”
2026-03-21 제15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