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노아>에 대해 논란이 많다. 영화 제목만 보면 성경 영화일 것 같았는데, 막상 보니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계 일부에서는 이 영화가 반(反)기독교 영화라고 비판하며 보지 말아야 한다고 흥분하고 있다. 과연 영화 <노아>는 반기독교 영화일까? 필자는 전문 영화평론가가 아니다. 다만 성서학을 전공한 사람이요 목회자로서 성도님들께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려고 한다.
이 영화는 성경 내용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인데, 성경 내용과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모두가 아내가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셈만 아내가 있다. 또 홍수가 시작된 것은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이 다 방주에 들어간 뒤 7일 후였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그 때서야 문을 닫는다. 그것도 노아의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방주에 타려는 장면까지 나온다. 가장 성경의 내용과 다른 부분 가운데 하나는 ‘감시자들’(the Watchers)로 불리는 존재다. 감시자들은 원래 하늘의 존재인데, 인간을 도우려고 이 땅에 내려와 신의 저주를 받아 돌로 된 거인이 된다. 영화에서 감시자들을 영어로 the Watchers라고 하는데, 창세기 6:2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로 보는 견해가 반영된 것 같다. 그러나 타락한 천사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문헌이 있다. 주전 2세기 유대문헌인 <에녹1서>를 보면 the Watchers 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에녹1서 1-36장을 <the Book of the Watchers>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도 the Watchers는 타락한 천사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the Watchers는 노아를 도와 방주를 만든다. 가인의 후손을 다스리는 왕 두발가인의 군대에 맞서 싸우고 방주를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한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혹자는 이를 두고 타락한 천사가 의로운 일을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은 기독교의 이신칭의 교리를 거부하는 이단적 요소라고 주장하는데, 매우 자의적이고 유치한 해석이요 지나치게 감독의 숨은 의도를 찾으려는 과도한 집착이다.
성경 내용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반기독교적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감독의 상상력에 따라 내용이 각색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성경의 내용과 다른 부분들을 기독교인들이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용인의 정도가 기독교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서 영화 다빈치 코드는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성관계를 가졌고, 그래서 예수님의 후손이 이 땅에 생존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필자가 보기에 예술 창작의 자유 범위를 벗어나 기독교를 모독한 행위다. 그렇다면 영화 노아는 어떤가?
노아에 대한 감독의 해석,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영화 노아와 관련하여 가장 논란이 되는 점은 노아가 지나치게 잔인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이고, “하나님과 동행”한 자다(창 6:9). 그런데 영화에서 노아는 첫째 아들 셈과 그의 부인 일라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필자는 왜 노아가 자기 손녀들을 죽이려고 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영화 노아는 한마디로 인간의 사악함에 대해 정의(正義)를 수행하는 노아와 이런 노아를 죽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대로 살려는 두발가인의 싸움이다. 영화에서 노아가 자주 말하는 단어는 정의(justice)다. 노아는 인간이란 이 땅에서 소멸되어야 할 사악한 존재다. 홍수를 통해 사람은 다 멸절되어야 하며, 방주에 탄 자기들도 자손을 남기지 않고 죽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새로운 세상은 인간으로 인해 오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노아는 첫째 아들 셈과 그의 부인 일라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또 둘째 아들 함이 자기 아내로 삼고 싶은 어떤 여자를 방주에 태우려고 했으나, 노아가 덫에 걸린 그 여자를 외면하고 결국 죽게 내버려 둔 것도 함과 그 여자를 통해 후손이 생기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노아는 성경에서처럼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묵묵히 이행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이처럼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홍수로 사람을 심판하신 이유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실만큼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노아를 위와 같은 캐릭터로 설정한 것을 두고 이견은 있을 수는 있다 할지라도 반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노아는 두 손녀를 죽이지 않는다. 인간에 대해 철저히 비관적 생각을 가지고 있던 노아마저 인간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노아가 가족들을 축복하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명령으로서 이후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성경 전체의 핵심 메시지)고 선포한 내용인데, 이것은 그의 변화된 태도를 보여준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노아가 두 손녀를 살려준 것은 인간인 노아가 자비를 베풀었고, 그래서 인간이 생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노아라는 인간이 인간을 구원한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필자는 동의할 수 없는 오독(誤讀)이다.
두발 가인, 하나님을 거역한 철저한 인본주의자
노아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철저한 인본주의자 두발가인이다. 성경에서 두발가인은 저 유명한 라멕(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아니라 동명이인의 사람)의 두 아내 가운데 하나인 씰라의 아들이다(창 4:22).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였다. 도구를 만드는 자요, 이런 도구가 결국 무기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그는 힘을 추구하는 자, 폭력을 사용하는 자다. 영화에서 두발가인은 노아 당시 가인의 후손들의 왕으로 등장한다. 그는 인간을 에덴에서 쫓아내고 그 후로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한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내세우는 철저한 인간중심주의자다. 방주에 몰래 들어간 그는 노아를 죽이고 방주의 모든 여자를 차지하여 새 세상의 통치자가 되고, 자기 형상을 닮은 후손들을 낳으려고 한다. 성경은 인간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피조세계를 관리하는 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두발가인은 철저히 성경의 인간상을 거부하는 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 인생과 세상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려는 자다. 영화의 결말은 노아가 두발가인을 이기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반기독교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아닌가.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납득하기 어렵고 혐오스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소년 노아에게 뱀껍질로 팔을 두른 뒤 축복하려고 노아의 손가락에 손을 대려고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에 뱀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장본인으로서 몇 차례 등장하다가 홍수 후 정착한 땅에서 노아가 뱀껍질로 팔을 두른 뒤 가족들, 특히 셈과 그 아내를 통해 태어난 두 손녀를 축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왜 인간을 유혹하여 타락하게 한 뱀의 껍질을 라멕과 노아가 둘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노아는 타락한 가인의 후손을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여겼는데, 그런 그가 인간을 타락하도록 유혹한 사탄의 화신 뱀의 껍질을 두른 것은 영화 자체 안에서도 논리의 모순이다. 영화를 잘 아는 내 후배에게 물어보니 뱀의 껍질을 두른 이유는 홍수 심판 이후에 살아 남은 인간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의 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사탄’이란 공식을 요지부동의 절대 진리로 삼아 뱀껍질을 두른 사실만 가지고 사탄을 숭배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만약 무조건 ‘뱀=사탄’이라고 한다면 영화에서 노아가 뱀들을 방주에 타게 한 것은 사탄의 무리들을 태운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창세기 6:20과 7:8에 따르면 하나님은 정결한 짐승은 물론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을 실으라고 하셨다. 뱀도 여기에 속하지 않는가?
노아, 문제는 분명 있지만 소란을 피울 것까지는 없다.
영화 노아는 개인적으로 별로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아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취향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성도 솔직히 별로다. 또 기독교인으로 불쾌한 요소도 있다. 그러나 반기독교 영화라고 낙인을 찍어 SNS를 이용하여 난리법석을 피울 필요도 없다. 그럴수록 괜한 호기심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만 늘어날 뿐이다. 이럴 때는 쿨하게 ‘그 영화 별로야’ 이렇게 말하고 넘어가는 것이 그 영화를 잠잠케 하는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최원준 목사(강동 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