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나를 따르라(7)  한적한 곳에서 다시 세워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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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나를 따르라(7)  한적한 곳에서 다시 세워지는 삶

 2026-07-03      제15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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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7) 
한적한 곳에서 다시 세워지는 삶

<마가복음> 1:32~38
/ 이재훈 위임목사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자꾸 뒤로 밀리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시간이 없어서가 아닐지 모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분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내가 해야 하는 의무로만 느껴진다면 번거로운 숙제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가 만나고 싶은 분이라면 언제나 기쁘게 시간을 내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늘 “혼자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은 누구보다 많은 일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홀로 기도하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35절). 
예수님 앞에 서면 우리의 변명이 힘을 잃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리시고, 밤늦도록 병자를 고치시고 맞이한 다음 날 새벽, 예수님은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 기도 시간 직후에도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또 찾고 있었지만, 그 무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시고 또 다른 마을들로 향하셨습니다. 
 
쫓기며 분주한 이유
 
본문에 나온 ‘그날 저녁 해 진 후에’라는 표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32~33절).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일하거나 이동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일몰 때까지 기다렸다가 해가 지자 일제히 병든 식구와 친구들을 둘러업고 몰려온 것입니다. 회당에서 귀신을 내쫓으시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다는 소문으로 인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중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병이 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저녁 무렵부터 모여든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면 아마 자정을 넘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새벽이었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예수님이 경험하신 ‘문 앞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의 요청과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늘 처리해야 될 일, 응답해야 할 메시지, 채워줘야 할 기대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이것들을 외면해서는 사회 속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늘 급한 일에 쫓기는 삶을 살다 보면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삶에 충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두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늘 급한 일에 쫓기는 삶이 있고, 부르심에 충실한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 해를 돌아볼 때 늘 같은 고백을 합니다. 긴급한 일에 중요한 일을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휴대폰 알람 소리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주시는 알람은 늘 나중으로 미룹니다. 우리의 손은 세상의 부름에는 항상 빠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한없이 느립니다.
우리가 늘 급한 일에 쫓기고 분주한 데는 숨은 이유가 있습니다. 홀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무리에 휩쓸리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홀로 하나님과 마주하는 자리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로 채우고 분주하게 만듭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로 도망치고, 관계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홀로 있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과 단둘이 있지 못하는 사람은 상황과 무리에 휩쓸려 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압박이 예수님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더 열심히’가 아니라 ‘물러남’

기도하러 가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찾아 나섰습니다(36~37절). ‘뒤를 샅샅이 뒤져 사냥하듯 추적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도자들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가장 큰 유혹은 ‘대중의 유혹’입니다. 많은 사람이 찾고 따른다는 그 짜릿함을 좀처럼 뿌리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모순이 나타납니다. 더 열심히, 더 효과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분주함은 사실 도피일 때가 많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허영심 때문입니다. 둘째, 스스로 결단하기 싫어서 남이 정해주는 대로 떠밀려 사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허영심과 게으름 때문에 실상은 바쁘지 않아도 되는데 바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답을 예수님이 보여주십니다(35절).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매우 이른 새벽’, ‘아직 어둑어둑할 때’는 시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장소도 강조합니다. ‘외딴곳으로 가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예수님이 기도하셨습니다. 육체의 피곤을 넘어서는 목마름,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갈망, 모든 상황에서 부르심을 따라가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에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큐티’(Quiet Time)의 기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외딴곳’은 곧 광야입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던 그 광야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홀로 기도하시는 장면을 세 번 기록합니다. 첫 번째가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인 이 새벽입니다. 두 번째는 오병이어 기적 이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할 때 산으로 물러가 혼자 기도하시던 때입니다. 세 번째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에서 홀로 기도하시던 때입니다. 이 세 가지 경우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찾고 높이려 할 때마다 예수님은 도리어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홀로 엎드리셨습니다. 여기에 열쇠가 있습니다. 밀려드는 무리의 요구 앞에서 예수님의 답은 ‘더 열심히’가 아니라 ‘물러남’이었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다급한 요청과 보고 앞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집중하셨습니다. 수많은 무리의 요구 앞에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중의 박수가 아니라,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며 언제나 사명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군중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이 중요했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가 그분의 하루를 붙잡아 세웠습니다(38절). 
예수님이 물러나서 기도하시는 것을 통해서 이루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의 길을 거절하시고, 고난받음으로 이루시는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끝까지 그 길을 가셨습니다. 무리를 거절하신 예수님의 물러남은 우리를 끌어안는 것이었습니다. 인기의 자리에 머무르는 대신, 잃어버린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침내 구원하기 위한 발걸음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보냄을 받은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님은 그 길에서 이탈하지 않으셨고, 십자가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시기 위해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각오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심에 기초하면 얼마 못 갑니다. 예수님이 끊임없이 물러나시며 한적한 곳에 기도하신 이유는 우리를 끌어안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적한 곳에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얻어내는 종교적인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기 전에,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는 예수님이 먼저 열어주신 기쁨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분은 단 한 번도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기를 쉬신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만나시려고 하늘의 영광을 비우셨고, 새벽마다 광야로 나가셨으며, 마침내 십자가까지 나아가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응답입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시간을 내어주신 분을 우리가 기쁨으로 만나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통해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교정됩니다. 매일매일의 큐티가 제자도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종교적인 수행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나아갈 때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잡히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다시 정립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삶의 우선순위가 계속해서 바로잡힙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한적한 곳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다른 마을로 가는 발걸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장 깊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가장 멀리 보냄을 받게 됩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는 땅끝을 향해 걸어가는 선교의 발걸음이 됩니다. 골방의 기도가 열방의 선교로 이어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쁘셨던 예수님의 삶이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통해 열방의 선교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이 “나를 따르라” 하시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요청에 기쁘게 응답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에 온전히 충성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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