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2) 붙어있음,
그것이 곧 열매이다
<요한복음> 15:1~8
/ 이재훈 위임목사
<요한복음> 15장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진리를 단어의 이미지로 알려 줍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붙어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11절까지 11번이나 반복되는 단어가 “붙어 있으라”, “거하라”, “머물러 있으라”입니다. 헬라어 ‘메노’(meno)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제자도의 본질은 우리가 누구에게 붙어있느냐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포도나무와 가지의 연합된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들어 올리고, 붙잡고, 가지치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역할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다”(요 15:1).
이 말씀 헬라어 원문의 어순을 그대로 옮기면 “나는 포도나무, 그 참된 것이다”입니다. 강한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때로는 영광과 권세를 상징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거대한 황금 포도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진정한 포도나무는 성전의 황금으로 된 화려한 조각물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새로운 포도나무가 세워진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농부이시다”라고 말씀합니다.
“내게 붙어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자르실 것이요,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손질하신다”(요 15:2).
농부의 행위를 표현하는 두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첫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자른다’입니다. 둘째, 더 많이 열매 맺도록 가지를 ‘손질하신다’입니다. 첫 번째 동사 ‘자른다’는 헬라어 아이레이(airei)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 잘라 버리신다는 의미로 해석되면 안 됩니다. 아이로(airo)라는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들어 올리다’, ‘높이 들다’라는 뜻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뻗어 나갈수록 점점 무거워져서 땅에 처지게 됩니다. 포도는 땅에 붙어서 성장하는 식물이 아닙니다. 땅에 붙어있으면 햇빛도 받지 못하고, 병충해도 쉽게 맞고, 약하기 때문에 땅에 붙어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땅에 처진 가지를 들어올려야 합니다. 들어 올려서 햇빛도 받고 영양분을 잘 보존하도록 하는 농부의 역할을 설명할 때 이 단어를 씁니다. 무조건 자르는 게 아닙니다. 이 단어의 두 번째 의미는 가지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가지가 불필요하게 자라지 않도록 생장점이 되는 곳을 자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적심’이라고 합니다. ‘아이로’라는 동사 자체가 포도 가지를 들어 올리기도 하고, 더 자라지 않도록 가지를 치는 두 가지 기능을 한 단어에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많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손질하신다’는 것은 ‘가지치기’입니다. 영양분이 불필요한 가지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농부의 역할입니다. 농부는 포도나무가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가지를 끊임없이 돌보고, 그 가지에서 열매가 맺어지도록 끝까지 돌보고 챙기는데 이 모습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정결케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끊임없이 우리를 들어 올리시고, 붙잡아 주시고, 불필요한 영역을 가지를 치십니다.
“머물러 있으라” 받아들임과 동역자
<요한복음> 15장 3절 말씀을 보면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과 보혈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미 깨끗해졌습니다. 하지만 더욱 깨끗해지도록 하나님이 가지를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서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연단하시고 아들로 받으신 사람들마다 채찍질하신다”고 했습니다. 연단하시고 채찍질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손길이 바로 포도나무 가지를 섬세하게 붙들고, 때로는 가지를 치시는 농부 되시는 아버지의 사랑 행위입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 말씀은 우리 스스로 예수님께 붙을 수 있는 것처럼 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리스도께 붙은 존재가 되었으니, 붙어있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계속 주장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 “죄에 대해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 산 자로 여기라”고 명령하신 것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머물러 있으라”는 것은 우리 행함 이전에 받아들임입니다. 여러분, 가지의 본분은 포도나무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나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저 받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된 상태를 계속 주장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가지를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나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생명을 흘려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가지에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가 없어도 완전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없어도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그러나 열매 맺으시는 일, 곧 이 세상에 예수님의 생명을 흘려보내는 일은 가지인 우리를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자들은 아닙니다. 그분의 동역자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우리를
내어 드리고,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은 오직 만물을 창조하시며, 만물을 붙드시며, 만물을 그 뜻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평가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한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만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가지가 열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가지는 운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도의 본질입니다. 제자도의 본질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느냐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주 혼동하는 한 가지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사역과 활동을 하지만, 사역과 열매가 다를 수 있습니다. 많은 일을 했지만, 열매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열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나는 그분의 가지로서 연결되어 있는가?”, “그분의 가지로서 붙어있는가?”, “그분의 가지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늘 되새겨야 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붙어있는 게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께 잡혔다”고 말합니다. “그 잡힌 것을 따라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 거하는 것, 그분께 붙어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붙잡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하라, 내 안에 머무르라”는 명령은 무거운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붙잡고 계신 예수님께 우리를 내어 드리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자도의 본질,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의 열매
<요한복음> 15장 6절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말씀은 기도 응답에 대한 놀라운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앞부분에 방점을 두고 읽어야 합니다. “만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이 가장 중요한 기도의 조건,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그분과 연결되면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뜻,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그리스도가 이루시는 것을 구하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 된 자로 포도나무에 연결되고, 예수님 안에 거할 때 기도가 삶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통로가 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제자가 되고 이것으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요 15:8).
제자도의 본질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의 열매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머무르라, 붙어있으라”는 명령은 선물입니다. 우리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다시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포도나무요 나는 그분의 가지입니다”라고 여기고, 말씀 앞에 늘 귀 기울일 때 나타나는 열매가 제자의 삶입니다. 제자의 삶에서 나타나는 고백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입니다. 예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도록 그분께 연결되고, 붙어있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