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각자의 땅에서, 하나의 백성으로 

주일강단

[주일강단] 각자의 땅에서, 하나의 백성으로 

 2025-11-15      제1564호

공유하기

[주일강단]
 
각자의 땅에서, 하나의 백성으로 
<여호수아> 22:1~9, 33~34
/이재훈 위임목사
 
가나안 땅 분배가 완료됨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호와께서는 그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그 모든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 살게 됐습니다”(43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집에 하신 모든 선한 약속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뤄졌습니다”(45절). 
하나님이 약속들을 신실하게 지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지파별로 땅이 분배된 것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하나님 약속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입니다.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은 이제 그 백성들에게도 신실함을 요구하십니다. 이제 남은 일은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다른 나라 민족과는 다른 ‘구별된 삶’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실로’라는 지역에 회막을 세우시고 예배 공동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예배를 수종 드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성읍도 분배해 주셨습니다. 땅 분배를 통해 각 지파가 자기 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땅 분배를 통해 하나 되어 거룩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땅 분배 끝에서, 절정에서 하나 됨을 명하십니다. 땅을 주시는 축복을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의 축복으로 이어져야 함을 말씀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 됨으로 존재하시는 것처럼,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에는 질서가 있고, 하나 됨을 이루는 오묘한 손길이 숨어 있습니다. 미물의 세계에서도 서로 하나 됨을 유지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숨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조화롭게 하나 되는 하나님의 질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도,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게 신실하게 책임을 다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보면 자신의 책무를 담당함으로써 하나 됨을 유지하고, 생존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더욱 하나 됨의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고전 12:26).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공동체 의식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제 각자의 땅을 분배받았으니 하나의 백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첫째, 그들은 서로에게 신실하게 책임을 다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 대하여 신실함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만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죄의 첫 번째 증상은 ‘책임 전가’입니다. 끊임없이 책임을 전가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파별로 땅을 분배하고 남은 일이 있었습니다. 요단 동편에서 가족들을 남겨 놓고 함께 싸우러 서편까지 건너온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를 돌려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요단 동편에 이르렀을 때 소유한 가축들도 많고 해서 강을 건널 수 없고, 여러 이유로 “우리는 이 땅에 남겠다”라고 했을 때 그 자발적인 의사를 받아들였습니다. 대신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조건이었습니다. 그들은 7년 동안 약속을 지켰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은 요단 동편에 남겨두고 서편으로 건너와서 치열하게 함께 싸웠습니다. 중간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빨리 보내 달라고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땅 분배가 끝난 이후에 먼저 찾아온 것도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먼저 “이제 당신들은 돌아갈 때가 됐다”라고 인정합니다. 서로에게 신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축복했다”
 
둘째, 그들은 서로 격려하고 축복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 된 공동체에는 서로에 대한 격려와 축복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떠나보내면서 영적인 축복과 물질적인 축복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명령과 율법을 잘 지켜 행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분의 길로 다니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을 꼭 잡고 너희의 마음과 영혼을 다해 그분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들을 축복하고 떠나보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 장막으로 돌아갔습니다”(5~6절)
영적인 축복입니다. 반복되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길로 다니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을 꼭 잡고” 같은 말씀입니다.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했던 말을 다른 단어로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7절과 8절에서는 많은 물질로 축복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그들의 장막으로 떠나보내며 복을 빌었습니다. 이어서 그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큰 재산과 많은 가축들과 은과 금과 청동과 철과 수많은 옷가지들을 다 가지고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 원수들에게서 얻은 그 전리품을 너희 형제들과 나누라’”(7~8절).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나눠 줍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이후에 백성들에게 보여준 태도를 보면 큰 그릇의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백성들의 희생으로 자신의 이름과 권력을 나타내는 지도자가 있고,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유명하게 해 주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분명 후자입니다.
요단 동편으로 떠나는 두 지파 반을 축복하고, 격려하고, 영적으로 권면하고, 이제 명예롭게 떠나도록 축복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두 지파 반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최선을 다해서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서로에게 일어나는 오해를 해소했다”
 
셋째, 그들은 서로에게 일어나는 오해를 해소했습니다. 사단이 공동체를 허물 때 사용하는 것이 오해입니다. 사람들의 지식에는 언제나 오류와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왜곡될 수 있고, 내가 왜곡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합니다.
22장에서 두 지파 반이 요단 동편으로 돌아간 이후에 어떤 사건이 생깁니다. 분위기가 급반전됩니다. 여호수아가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축복해서 보냈는데, 요단 서편의 지파들이 흥분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한다. 너희가 이렇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신의를 저버리다니 이게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냐? 오늘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 너희를 위해 제단을 쌓는 것이 여호와께 거역하는 것이 아니냐?’”(16절).
요단 동편에 간 지파 사람들이 제단을 쌓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흥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다니, 여호와께 등을 돌리다니, 우리가 싸워야 된다, 이걸 막아야 된다”는 여론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에게 제단은 신앙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중심지였습니다. 다른 제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정치적인 독립의 선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고, 섬기지 않는다는 표시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나선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중요한 교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2장에 두 개의 사건이 제시됩니다. 첫 번째는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바알브올’ 사건입니다. 그가 반역을 일으켜서 2만 4천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두 번째는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아간이 탐욕을 일으켜서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사건입니다. 그들은 이 사건들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한 지파라도 하나님께 반역했을 때 그분은 모든 백성에게 공동의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편 지파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오해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단을 세운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정치적인 독립이 아니라 교육용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여호와께 등을 돌리려 하거나 그 위에 번제나 곡식제사나 화목제를 드리려고 제단을 쌓았다면 여호와께서 친히 추궁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후에 당신들 자손들이 우리 자손들에게 이런 말을 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들과 갓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강을 경계로 두셨다. 그러니 너희는 여호와 안에 아무 몫이 없다’면서 당신들 자손들이 우리 자손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경외하지 못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번제물이나 희생제물이 아닌 제단을 쌓자고 말했습니다”(23~26절). 
요단 동편에 있는 사람들 마음속에 ‘우리의 다음 세대가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고, 후손들이 그렇게 취급받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단 서편에 있는 지파들과 하나’라는 것을 후손들이 깨닫게 하려고 교육용으로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말과 말로 전해지는 소문은 확대되고 부풀려지고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자칫하면 동족 간의 전쟁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그들은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오해라고 설명합니다. 동편이나 서편이나 동기는 같았습니다. ‘하나 됨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쪽은 다음세대에 하나 됨이 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서 증거물을 남기려 했고, 다른 한쪽은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게 아닌가 두려워서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서쪽 지파는 분열과 배반의 표시로 보았고, 동쪽 지파는 도리어 하나 됨을 지키려는 신실함의 표시로 보았습니다. 선의에서 난 행동이 오해가 되어서 하나 됨이 깨질 뻔했습니다.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들이 함께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로 올라가 그들과 싸워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치자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르우벤 자손들과 갓 자손들은 그 제단을 엣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심에 대한 우리 사이의 증거물이 될 것이다’라고 하는 뜻에서였습니다”(33~34절).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증거물입니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각자가 신실하게 책임을 다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축복하고, 공동체에 오해와 왜곡된 소식이 없도록 늘 대화하고, 진실을 찾고, 서로가 죄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가 다투고 분열하고 깨어지고 싸우는 모습이 없도록 거룩한 하나 됨을 계속 지켜가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1,057개 글

리스트보기
검색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1 2 3 4 5 6 7 8 9 10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