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 강단] 다투지 않고 승리하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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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강단] 다투지 않고 승리하는 인생

 2023-11-04      제1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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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투지 않고 승리하는 인생

창세기 26:17~33
/ 이재훈 위임목사
 
믿음이란 세상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일 중에서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들도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도록 제정하신 성만찬을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것으로 제정해 주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것들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는 이 세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를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배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장 한복판에서, 더 나가 전쟁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믿음은 어떤 상황일지라도,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매일 발생하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의 성도는 “어떤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다스리고 계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났고, 
이삭은 믿음으로 머물렀다!
 
세상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일이 다툼입니다. 마땅히 다퉈야 할 문제도 있고, 다투지 말아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다툼이 일어난 상황에서 믿음의 성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당연히 다퉈야 한다고 여기는 일을 다툰다고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과연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로 태어나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서와 야곱을 양육하는 일에서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믿음의 절정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삭의 믿음이 또 다른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모든 사람이 장단점이 있는 것처럼, 믿음의 영역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의 믿음을 자신의 판단과 기준에 맞춰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영역에서는 믿음이 약할지라도 또 다른 영역에서는 강한 믿음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이 준 언약을 지키심으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그가 부강해졌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 곡식을 심고 그해에 100배를 거두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부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부유해져서 마침내 아주 큰 부자가 됐습니다”(12~13절). 
이삭이 부유해지자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견제를 받게 되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먼저는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했고, 그랄의 양치기들이 이삭의 양치기들과 다퉜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삭의 믿음이 나타납니다. 이삭만이 가진 믿음의 모습, 아브라함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이삭 믿음의 장점입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흉년이 들지 않은 땅을 찾아가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가나안 땅 남부 지역, 이집트와 가까운 지역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지역이 그랄 지역입니다. 이 지역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자지구 남부지역, 이집트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있는 지역으로 보입니다. 이삭이 이집트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셔서 그곳에 머물게 됩니다. 
<창세기> 26장 2~3절을 보면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일러 주는 땅에서 살아라. 이 땅에서 계속 살면 내가 너와 함께 하겠고, 네게 복을 주겠다. 너와 네 자손에게 내가 이 모든 땅을 줄 것이고,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이 맹세한 것을 이루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삭이 이집트로 내려가는 도중에 그랄에 왔을 때 하나님이 멈추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 이삭이 순종하고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으로 우르를 떠날 것을 명령했고, 이삭에게는 그대로 머물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났고, 이삭은 믿음으로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 땅, 그 지역, 그 영역 안에 머무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의 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떠나서는 안 되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요셉을 먼저 애굽에 종으로 보내 총리까지 되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 요셉의 70여 명 되는 가족들을 이집트로 이주시켜서 번성하게 하는 게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그때는 떠나라고 하시면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떠나면 안 됩니다. 기근이 왔다고 떠나면 안 됩니다. 기근 속에서도 그 땅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에 머물게 하심으로써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을 못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물을 팜으로써 기근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땅을 개발하는 아이디어와 힘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셨습니다. 
 
이삭 믿음의 장점, ‘온유함’
 
여러분, 하나님이 머물라고 하는 곳에 머물고, 떠나라고 하는 곳으로 떠날 때 복이 임합니다. 복의 출발이 무엇입니까? 환경이 아닙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할 때 떠나지 않는 것은 복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머물라고 할 때 머물지 않고 떠나는 것도 복된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그랄에 머물라고 하셨을 때 순종하고 머물렀습니다. 믿음의 모습입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떠나줄 것을 요구합니다. 시기와 견제를 받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고약하게 이삭의 종들이 팠던 우물을 덮어버림으로써 타격을 주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들이 복을 받을 때 시기하는 이들의 견제와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때로 견제와 공격을 허용하심으로 시험하시기도 합니다. 그 백성을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까? 다윗이 사울과 동일한 태도로 복수하고 싸우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승리한 것처럼, 이삭도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과 다투지 않고 승리하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의 영적 축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변 사람과 다툼 없이 하나님께 온 복을 누렸습니다. 
이삭이 속임수를 쓰지 않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 아내 리브가와 아들 야곱 역시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이지 않고도 동일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떠나 달라고 요구하는 블레셋 왕 아비멜렉의 요구에 따라 그랄 골짜기로 가서 진을 치며 머물렀습니다. 옮길 수 있는 곳으로 옮겨 준 것입니다. 그랄 골짜기에서 우물을 봤더니 또 신선한 새 물을 발견했습니다. 또다시 그 지역 양치기들이 우물이 자신들의 거라고 주장하며 다퉜습니다. 이삭은 또다시 그 우물을 내어 주고 다른 곳으로 가서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은 다투지 않고 양보하며 새로운 우물을 파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이삭에게 나타난 믿음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을 ‘약한 자’, ‘겁쟁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온유함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자신을 끌고 가는 이들에게 온유함으로 대하셨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아무런 대항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은 온유함을 유약함으로 여깁니다. 물론 마땅히 다퉈야 하는 정당한 다툼까지 피하는 기질이라면 유약한 겁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툴 수도 있지만 더 넓은 마음, 하나님의 온유한 태도로 새로운 길을 택해서 지경을 넓혀가는 것 또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마지막은 절제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다투지 않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다투지 않고 승리하는 인생 원리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다투지 않고 승리하는 네 가지 인생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다툼 그 자체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만일 블레셋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다투지 않고 피하며 새로운 우물들을 파지 않고, 우물을 차지하려고 다퉜다면 우물은 차지할 수 있을 줄 모르지만, 우물에서 마시는 물은 생수가 아니라 미움과 욕심에 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러분은 불평이나 분쟁 없이 하십시오. 이는 여러분이 흠 없고 순전한 사람들이 돼 뒤틀리고 타락한 세대 가운데서 책망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세상에서 하늘의 별들처럼 빛나게 하려는 것입니다”(빌 2:14~15). 
우리가 다툼에 휘말릴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다툼을 걸어오는 이가 없을 때까지 양보해야 합니다. 이삭이 언제까지 계속 양보하며 새로운 우물을 팠습니까? 싸움을 걸어오는 이가 없을 때까지입니다. 이것은 유약함이 아니라 믿음의 강건함입니다. 
“이삭이 그곳에서 옮겨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 자리를 넓게 하셨으니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할 것이다’하며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했습니다”(22절).
아무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는 지경까지 양보하고 피하며 새로운 우물을 팠을 때 하나님이 이삭의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우리는 싸움을 걸어오는 이가 없을 때까지 다툼을 피하고 양보할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바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유약함이 아니라 도리어 믿음의 강건함입니다. 
셋째, 다툼을 피하고 양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삭이 아무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을 때까지 양보한 이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날 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해 네게 복을 주고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겠다’”(24절).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네게 복을 주고 자손이 번성하게 하겠다”는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삭에게 생생한 음성으로 들려 온 것입니다. 피하고 양보하면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기적인 태도로 가득한 사람은 이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태도로 순종하고 헌신하며 양보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속 깊이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손해 보고, 희생하고, 양보할 때입니다. 자존심과 이기심, 내 권리를 내 세울 때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1997년, 제가 차세대 사역할 때입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어린이축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목표는 ‘아이들 때문에 어른들을 불편하게 만들자’였습니다. ‘우리들도 살아 있다’,  ‘아이들의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값비싼 장비들을 빌려서 5월 첫 주일에 축제를 하려고 준비했는데, 문제는 그 값비싼 장비들을 그냥 두면 분실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여러 교역자와 함께 준비를 마치고 나서도 가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누군가 밤을 새서 지켜야 했습니다. 제가 지키겠다면서 모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비닐을 뒤집어쓰고 밤새 보초를 섰습니다. 이슬을 맞으면서 꼬박 밤을 샜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밤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날 아침 너무 추워서 목욕탕에 갔는데, 그때 하나님이 ‘그래 너 잘했다. 내가 너 잘 해줄게’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음성이 그렇게 위로가 됩니다. 그 음성이 제가 밤새 희생한 일 이후에 왔습니다.
이삭이 아무도 공격할 수 없는 때까지 양보하니까 하나님이 “내가 너 잘 해줄게. 내가 너 복 주고 번성하게 해줄게.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네 편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전에는 이삭에게 이러한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넷째, 이삭과 같이 믿음의 태도로 다툼을 피하는 성도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대와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 사이, 곧 우리와 이삭 사이에 맹세가 있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대와 언약을 맺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건드리지 않고 항상 잘 대해 주고 평화롭게 보내 주었던 것처럼 당신이 우리를 해치지 않게 말입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28~29절).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
다툼을 피하고 승리하는 인생
 
두 번씩이나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쫓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삭이 브엘세바까지 내려갑니다. 인근이긴 하지만 그랄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옮겼습니다. 여기서 이삭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예. 알겠습니다”라고만 했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바로 그곳이 브엘세바입니다. 무엇인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그냥 반응하는 믿음이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믿음의 성숙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변 사람들,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그의 친구 아훗삿과 군대 사령관 비골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대와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잘 봐 주십시오. 당신과 좋게 지내고 싶습니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보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정반대로 최악의 비난이 무엇입니까? “당신을 보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당신을 보니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절대 안 믿겠습니다”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삭처럼 부유하게 해 주시면 다투지 않고 양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순종하기를 기다리십니다. 먼저 순종할 수 없는 사람은 복이 주어져도 순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은 다툼을 피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삽니다. 져도 이기는 삶이 있고, 이겨도 지는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심을 믿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다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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