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길, 진리, 생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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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길, 진리, 생명(2)

 2023-01-14      제14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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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진리, 생명(2) 
 
요한복음 14:1~6
/ 이재훈 목사
 
올해 온누리교회의 영적 표어는 길, 진리, 생명입니다. 이 시대 세상을 주관하는 이데올로기적 다원주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진리를 왜곡시키는 이념에 대해 이 말씀은 움직일 수 없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이러한 세상이 올 것을 아셨기에 이 말씀을 남겨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이 눈엣가시처럼 빼내고 싶고, 부정하고 싶고, 이 말씀을 근거로 ‘기독교가 독선적이다’, ‘배타적이다’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우리가 확신하지 않으면 신앙이 무너집니다. 이 말씀이 독선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진리는 배타적입니다. 이 말씀이 참이기에 교회는 역사 속에 존재해 왔고, 이 말씀이 진리이기에 세상의 그 어떤 공격과 위협에도 교회를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면 교회는 벌써 세상 속에 사라져야 했을 것입니다. 역사 속에 이 말씀이 살아있는 진리,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참으로 옳은 말씀이라는 것을 체험한 믿음의 선배들과 이 시대 사역자와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신앙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말씀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우리 삶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꼽으라면 아버지입니다. 어떤 분은 “어머니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은 개인의 삶과 사회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합니다. 관련 통계도 있습니다. 미국의 ‘National Center for Fathering’이라는 단체에 의하면 미국에는 2천만 명이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가리켜 ‘아버지 없는 전염병(Fatherless Epidemic)’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합니다. 청소년 시기 감옥에 간 사람의 85%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나왔습니다. 문제 행동을 가진 어린이 85%, 약물 중독에 있는 사람 75%, 고등학교에서 중퇴하는 이들의 71%, 10대 임신하는 이들의 71%, 모든 노숙인과 가출 어린이의 90%, 청소년 자살의 63%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사회에서 심각하고,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Fatherless Home’입니다. ‘Fatherless’란 단순히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버지가 계시지만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친 아버지인 경우입니다. 세계 역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무신론 사상가들의 대부분이 아버지와 심각한 문제에 빠진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 아버지들에게 질문하면 그들도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고 할 것입니다. 비슷한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조상 탓만 할까요? 아버지의 문제, 그 아버지의 아버지 문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의 문제일까요? 인류가 진정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비롯된 문제입니다. 입양된 사람들이 친부모를 간절히 찾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싶기도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고, 그 가정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육신의 아버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인류 전체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14장에서 17장까지 집중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26번, 15장에서 11번, 16장에서 14번, 17장에서 52번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셨습니다. 합하면 103번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라는 호칭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시기를 위해서이고,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러 세상에 오셨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이 103번이나 사용하신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뜻을 이루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여주셨고,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셔서 우리가 있을 곳을 마련하신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구하셔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신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로서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때에 다시 오셔서 믿는 자들을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이 땅에서 이루신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원래는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아들이기에 예수님만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신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이루실 일은 우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할 아버지 집에 거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고, 아버지로 부르며,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은 육신의 아버지가 아무리 큰 상처와 아픔을 줬다 할지라도,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버지를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고아로 자랐다 할지라도, 육신의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과 이 땅에서 주는 최고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행복을 누립니다. 예수님의 오심, 이 땅에서 행하심, 떠나심, 다시 오심을 아버지와의 관계, 아버지의 계획, 아버지의 때, 아버지의 뜻 안에서 이루셨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운명을 결정짓는 일을 행하셨다는 의미가 바로 길, 진리, 생명이라는 세 단어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축복을 예수님이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삼중적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분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과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었고, 아버지의 생명 안에 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졌고, 진리가 아닌 거짓을 따라 살게 되었고, 아버지의 생명이 아닌 육신의 자연적 생명에 갇혀 결국 죽음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길을 잃어버렸고, 진리를 잃어버렸고,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길
 
예수님이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행하신 일은 죄 가운데 처해있는 인류에게 필요한 세 가지 축복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인류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길입니다. 아버지 집으로 가야 하는 상태라면 아버지 집 밖에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집이란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그 나라가 우리 마음에 임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마련하시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나라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현재 상태, 실존이라고 말하는 이 상태는 아버지의 집 밖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들어 주신 비유가 누가복음 15장의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세 가지 비유가 연속적으로 나옵니다. 첫 번째 비유는 백 마리의 양을 치는 목자가 한 마리를 잃어버렸을 때 그 양을 끝까지 찾아 와 기쁨을 나누었다는 비유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열 드라크마를 가진 여인이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을 때 그 드라크마를 찾으려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결국 찾아내 기쁨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비유는 둘째 아들이 유산을 먼저 요구하고 아버지 집 밖으로 나가 방탕하게 살다가 먹을 것이 떨어져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는 상태에 이르러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기쁨으로 그 아들을 맞아 주고, 잔치를 베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연속적인 세 가지 비유에서 주시는 교훈도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교훈은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목자에게는 양이 소중한데 그 양이 잃어버려져 있고, 여인에게 드라크마가 소중한데 드라크마를 모두 잃어버렸고,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소중한데 그 아들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잃어버려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죄 가운데 아버지의 집 밖에 있는 존재로 잃어버려진 상태입니다. 잃어버려진 상태이기에 인간에게 결핍이 있고, 근심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 밖에 있기 때문에, 잃어버려져 있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열심히 산 거 같은데 허무하고, 스스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이루었어도 허무감이 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잃어버려진 것이 소중한 만큼 찾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그 양을 찾았습니다. 목자의 양에 대한 사랑, 잃어버려진 양을 찾는 목자의 기쁨과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마음을 강조합니다. 아버지는 찾아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돌아왔을 때 기쁨으로 달려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세 번째 교훈은 잃어버린 것을 찾았을 때 함께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연속적인 비유는 인류의 상태, 실존을 의미합니다. 초점은 세 번째 비유에 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고 찾듯이 아버지는 집을 떠난 인류를 찾고, 찾아오십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듯이, 드라크마를 찾듯이, 찾을 때까지 열정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찾은 자가 돌아왔을 때 기뻐하며 잔치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아버지 집 밖에 있는 우리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오게 하시려고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집에 그냥 들어갈 수 없습니다. 회개를 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아버지 집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 회개한 흔적이 있습니까? 거짓말로 변명하고, 숨겼습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문제는 타락한 인간 스스로 회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자각과 이성적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게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회개, 아버지의 집에 들어올 수 있는 회개는 인간 스스로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유일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회개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길이 우리가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회개의 길입니다. 인류에게 진정 필요한 길은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 길이 회개입니다. 회개가 가능하게 하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난주간이 예수님을 긍휼히 여겨 주는 주간이 돼버렸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불쌍히 여김을 받기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너희 자신과 너희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고난당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불쌍해서 믿어주고, 예수님이 불쌍해서 교회 나와 준다면 신앙의 근본이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회개의 길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죽음이고 곧 나의 옛사람의 죽음임을 믿을 때 회개가 가능하게 됩니다. 아버지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에 이제 아버지의 집에 예수님과 함께 당당히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갈라짐으로 히브리서 말씀처럼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길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회개의 길이 됩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진리
 
둘째, 인류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남으로 진리를 잃어버렸고, 예수님이 바로 그 진리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버지 집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아버지의 말씀인 진리를 버림으로 거짓을 믿었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그 말씀을 버리고,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는 거짓말을 믿음으로 타락했습니다. 그것이 타락의 본질입니다. 타락의 본질은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따르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를 일컫는 말이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입니다. 탈진리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이 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증거가 있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는 바가 옳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 시대가 그것을 규정하고, 분석을 할 능력이 발달한 것뿐이지 태초 타락부터 그랬고, 더욱 심화된 것입니다.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스트 트루스’는 진리를 버린 인간의 죄악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사실이 나왔는데도 믿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아무거나 믿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거나 무엇인가를 믿고 있습니다. 가훈을 믿든지, 과거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믿든지, 어떤 책에서 나온 말을 믿든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인생철학을 믿든지, 무엇인가를 믿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거짓의 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을 살펴보면 거짓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거짓말을 스스로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한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심각한 인간의 질병은 바로 타락의 모습입니다. 진리를 잃어버렸어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에게는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양심이 남아 있고, 윤리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모두 본능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넣어 주신 진리의 그림자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윤리입니다. 인간의 윤리는 진리의 그림자입니다. 원래 우리는 진리를 따라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을 때 우리는 옳고 그름과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바로 그 진리”라고 말씀하셨고,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이 존재하고, 바로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며, 우리는 그 아버지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윤리를 뛰어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보면 당시 그 어떤 법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합니다. 하나님 진리의 그림자를 율법에 담아서 보여주셨는데 세상 그 어떤 나라의 법전보다 탁월합니다. 십계명이 모든 윤리와 법전의 근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진리이시고,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진리의 영인 성령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리의 근원이신 아버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들이 세상에서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지혜로운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지식은 진리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세상의 많은 지식이 없어도 예수님을 바르게 믿었던 믿음의 조상들에게 놀라운 영적 분별력이 있었기에 이 나라와 민족이 이처럼 번영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 되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치신 분이 아니라 그분이 진리입니다. 진리이신 그분이 육신이 되셨기에 그분은 살아있는 진리이십니다. 그분이 성령 안에서 우리 안에 거하는 존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지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세상에서 그 어떤 위기가 닥쳐도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는 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참과 거짓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세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 거하기에 양심이 허락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미워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보호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생명
 
셋째, 인류는 죄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주신 생명을 잃어버렸지만, 예수님이 바로 그 생명이 되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조치하신 것이 있습니다. 에덴동산 밖으로 쫓아내셨지만 두 번째 생명나무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집 밖으로 쫓겨난 상태에서 생명나무 실과를 계속 먹으면 하나님이 영생하도록 계획하신 실과이기 때문에 타락한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징벌로 그들이 죽음에 처하도록 하셨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계획이 있으셨기에 타락한 상태, 아버지와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가 영원히 지속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생명나무의 실과 12그루가 나오는데 그것이 완전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실과가 있는 곳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회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거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없습니다. 다시는 시험이 필요 없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래서 동산 밖으로 쫓아내 생명나무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우리가 자연적 생명만 의존하는 인생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생명을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영적 생명, 영원한 생명인 ‘조에(zoe)’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연적 생명인 ‘비오스(bios)’입니다. 자연을 의지해야만 하는 생물학적 생명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적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제한적인 자연을 의지해야 하는 생물학적 생명만 남았습니다. 자연적 생명에는 동물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있습니다. 동물의 생명을 보면 본능과 자연 질서에 순응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만큼은 땅에 딛고 있지만 우주를 탐험하고, 바다를 탐험하고, 자연 질서에 의존하면서도 자연 질서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연적 생명과 영적 생명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연적 생명에 국한한 인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류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일하신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넣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그 아들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 하는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가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십니다. 아버지의 집 밖에 있는 인류가 아버지 집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되셨고, 사탄의 거짓에 속아 살아가는 인간에게 진리가 되어 주셨고,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을 얼마나 확신하느냐에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얼마나 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확신하고 체험하는 것은 전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 전하는 삶이 없다면 확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생명력이 선교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 이 진리, 이 생명, 이 길을 온 세상에 알리는데 힘을 다하는 온누리교회 되기를 축원합니다. 
/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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