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복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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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복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

 2022-11-19      제14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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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
 
로마서 101~13
/ 이재훈 목사
 
로마서 9장의 핵심 진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우리의 선택 이전에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고, 우리의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구원이 베풀어지기까지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장에서는 구원을 위한 인간의 믿음을 말씀합니다.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로마서 1장부터 4장까지 말씀하셨던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10장에서 다시 꺼내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오해해서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모든 것을 예정 가운데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셔서 그 뜻을 이루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장과 10, 11장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바울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로 시작합니다. 91절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하여 내 마음의 고통을 가졌다는 바울의 근심으로 시작합니다. 10장도 마찬가지입니다. 101절에서는 형제들이여, 내 마음의 소원과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11장은 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9, 10, 11장이 시작되는 첫마디에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들의 구원을 위한 바울의 기도와 간절함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이 인간의 기도한 노력을 전혀 배재한다면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다루는 이 세 장은 이렇게 시작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전적인 은혜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를 거부한 본인 책임입니다. 이 두 가지 요점은 어느 하나 뺄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분명히 상반되지만, 하나 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펄전 목사님은 둘은 이미 사이좋은 친구다. 화해시킬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융합시키려 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진리가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입니다. 모든 사람은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의를 세우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세우려는 노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애쓰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3).
당시 로마 교회는 이방인들이 대다수였고, 유대인들이 소수였습니다. 당시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게 되고, 하나님을 몰랐던 이들이 하나님을 잘 알게 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리낀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의를 포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걸림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때 두 가지 상반된 사람들로 나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이 되는지 아니면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할 걸림돌이 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10장에서 말씀하는 것은 자기 의를 추구하는 인간 죄악의 본성 때문에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반석이 아닌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 없이도 자기 생명까지 내어줄 수 있습니다. 자기 의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습니다. 자기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부 선한 행동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존재가 의롭다고 생각하며 만족합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덜 의로워 보이는 사람들을 항상 무시합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나타난 문제입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2).
헬라어로 지식은 그노시스라는 단어가 있고, ‘에피그노시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노시스는 사실적인, 단편적인, 정보에 해당되는 지식이고, ‘에피그노시스는 완전히 검증된, 체험된, 완벽한, 정확한 지식을 의미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두 번째 단어를 쓴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지만, 진리에 대한 명확하고, 변치 않고, 완전한 깨달음이 없는 상태에서 열심을 가졌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은 열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참된 지식에서 떠난 열심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거짓을 믿는 지식과 동일한 위험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었습니다. 당시 그는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열심이라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참된 지식을 따르지 않은 열심의 결과입니다. 거짓된 열심은 항상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강조점을 두기 마련입니다. 결국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는 열심은 자기 의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된 지식을 따르는 열심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지식
 
지식을 따르지 않았다라고 할 때 그 지식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지식입니다. 죄인 된 인간을 하나님이 심판으로 멸하시지 않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용서하시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생명 가운데 거하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것을 모른 척 했고, 무시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기 의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애쓰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의에 이르게 하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3~4).
유대인들이 참된 지식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는 걸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마침이라는 단어 텔로스는 목적, 목표, 계획의 완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자기의 빠진 사람은 분별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탁월한 법입니다. 도덕적, 영적으로 탁월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받은 것을 자랑했고, 그것으로 자기 의를 추구했고, 율법으로 자기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분은 에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율법의 모든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에 율법을 가지고 자기 의를 쌓았습니다. 율법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지 않고 각색했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유대인들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기 의를 끊임없이 세우는 인간들의 문제라고 지적하기 위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으로 인한 의에 대해 기록하기를 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5).
레위기 185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있는 그대로 사실이며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삽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법을 있는 그대로 지키면 당시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은혜를 누립니다. “지키면 살리라는 말씀은 사실입니다. 지킨 것처럼 포장한 것이 문제입니다. 모두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문제입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닫는 지식 있었다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바울의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한 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속으로 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이것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입니다.) 혹은 누가 지옥에 내려가겠느냐?’ 하지도 말라.’(이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말씀이 네 가까이 있으니 네 입 속에 있고 네 마음속에 있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6~8).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오시도록 모셔오기 위해서 하늘에 올라가는 것처럼이라는 표현은 자기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양입니다. 또 그들은 지옥에라도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구할 것처럼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합니다. 자기 의로 충만한 사람들은 메시아가 세상에 오지 않은 것처럼 스스로 메시아를 만들고, 메시아의 시대가 오게 하려고 끊임없이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신명기 말씀은 그 모든 것이 필요 없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일을 행하셨고,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메시아가 오지 않은 것처럼 메시아가 오도록 하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을 우리가 도와 드리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자기 의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말씀에도 이미 복음의 원리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정말 단순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자기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시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예수님을 오시게 하려고 무엇인가 하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복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은 믿음뿐입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는 믿음이 무엇인지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주님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의 핵심은 열심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열심 이전에 내가 믿는 대상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 모든 사람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이든 이방 사람이든 차별이 없습니다. 동일하신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셔서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십니다”(12).
둘째,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님입니다. 그것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은 차별없이 부요하십니다. 셋째,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합니다.
만일 당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 구원에 이릅니다”(9~10).
이 믿음과 고백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자리가 머리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며, 공적으로 고백할 때 의에 이릅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로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선한 행실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진정 마음으로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심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것을 형식적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나의 구세주일뿐만 아니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임하는 통로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믿고, “자기 의로부터 나는 정말 자유로운가?”, “자기 의를 세우려는 성향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쓰러질 때, 내가 부족하고 때로 불의한 모습이 나타날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 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 모습으로 인해 구원을 의심하게 된다면 행위를 의지하고, 자기 의로 구원받는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연약함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나를 의롭게 하신 하나님의 의를 바라보고 확신한다면 하나님의 의를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복음을 듣는 자들은 책임을 져야합니다. 복음은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누구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복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복음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유용한 길이기에 누구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의 복음 에 믿음으로 온전히 응답하고, 하나님의 의의 은혜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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