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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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2022-09-03      제14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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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롬 6:12~23 
/ 이재훈 목사 
 
로마서 6장에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었을 때 일어나는 변화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라고 정의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아담과 함께 죄 가운데 죽은 자가 되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일,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을 통해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도록 예수님과 우리를 연합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모든 변화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신학자 존 스토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핵심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의 매 단계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에 있다. 이보다 더 큰 능력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진리는 없다. 우리가 그것을 붙잡을 때 과거와 현재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뒤로 후퇴할 수도 없고, 그 자리에 정체할 수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전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승천, 그리스도의 재림, 이 모든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 연합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십자가에 대한 중요한 네 가지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역사적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둘째, 교리적인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셋째, 개인적인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나를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넷째, 경험적인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의 옛사람이 함께 죽었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죄에 대해 죽은 우리’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의 지배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죄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이 존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계속 죄 가운데 머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고,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이 은혜 아래
   
오늘 본문은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중요한 원리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은혜로 말미암아 이제 순종의 능력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죄가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할 것인데 여러분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14절).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이 은혜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율법 아래 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은혜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은혜 아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살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지적하지만 씻어주지는 못합니다. 율법은 의롭다고 선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고, 의롭다 선언하며,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 또한 부여합니다. 그래서 은혜는 순종의 능력입니다. 은혜는 순종하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부르심과 명령입니다. 영적 성장은 우리가 은혜 아래 있음을 깨달을 때 은혜를 체험하며 자랍니다.
“우리 주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 안에서 성장해 가십시오”(벧후 3:18).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이제는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죄를 이기고, 승리하며, 의롭게 살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는 의의 선물을 넘치도록 받습니다.  
 
불의의 무기에서 의의 무기로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도록 받는 사람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할 것입니다”(롬 5:17).  
‘은혜와 의의 선물’은 죄를 이기고 새 생명으로 살 수 있는 영적인 전투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에게 의의 선물을 주십니다. 싸울 수 있는 능력과 순종의 능력을 주십니다. 은혜 아래 순종의 능력을 부여받은 자들의 변화된 삶을 세 가지 대조를 통해 설명합니다. 첫째, 이제 불의의 무기에서 의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죽을 몸에서 죄가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해 몸의 정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처럼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12~13절).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타락했을 때 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엄청난 무기가 되었습니다. 사탄이 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사탄은 인격적인 존재를 통해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타락시킨 것입니다. 본능을 따라 살아가는 동물과 생명은 있지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식물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는데 일조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불의의 무기가 될 때 엄청난 영향력이 있습니다. 말과 생각, 문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영역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며, 하나님의 세계를 더럽히는 불의의 무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에 사탄을 대적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의의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욕심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전히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잊지 마라. 거룩한 사람들 역시 육체 안에는 사악한 욕심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따르지 않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불의의 무기로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의의 무기로 자신을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둘째,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든지 순종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죄의 종이 돼 죽음에 이르거나 아니면 순종의 종이 돼 의에 이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전해 받은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 죄에서 해방돼 의의 종이 됐습니다”(16~18절). 
‘종’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죄의 종이었다가 이제 순종의 종, 의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무엇입니까?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동물도 주인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왜 죄인입니까? 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왜 죄인이라고 말합니까?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작을 알아야 주인입니다. 어떤 물건의 주인이라면 그 물건 값을 지불해야 주인입니다. 그 물건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고, 시작과 끝을 결정지을 수 있어야 주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왜 그 시점에 그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원래부터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종’이라는 단어를 계속 쓰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는 하나님뿐입니다. 나머지 모든 존재는 누군가에 의해 혹은 무엇에 의해 제한되고 의존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자율도 의존적인 자율입니다. 어떤 대상을 의존할 것인지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의존하기보다 사탄을 의존하고, 자기 자신을 의존할 때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됨으로 죄의 종의 상태에서 중립적인 상태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의의 종으로, 순종의 종으로 바뀌어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구원 받았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했습니다. 왜 출애굽의 역사를 구속의 역사라고 합니까? 인간 전체의 본질을 보여주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출애굽 하게 하셨습니다. 출애굽에서 그치는 역사가 아닙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백성으로 이끄셨습니다. 출애굽만이 아니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종 된 땅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 사이에 광야가 있었습니다. 광야 없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애굽의 종 된 습관이 살아있어서 곧바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광야의 기간을 두신 것입니다. 광야 훈련의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많은 광야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광야를 겪고, 어떤 사람은 자녀 문제, 부부 문제, 고부 문제 등으로 광야를 겪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종으로 완전히 자신을 내어 드릴 때 끝납니다. 광야의 목적은 우리 인생의 밑바닥을 드러냄으로 우리가 무엇의 종으로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종 되었던 습관을 깨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과정에 광야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 어떤 땅에서 살던 애굽이 있고, 광야가 있고, 가나안이 있습니다. 또 불순종했을 때 쫓겨 가는 바벨론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은 네 개의 영적인 땅에서 살아갑니다. 애굽에서 사는 사람이 있고, 광야에서 사는 사람이 있고, 가나안에서 사는 사람이 있고, 바벨론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가지 땅을 경험하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질과 상태는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죽은 우리라는 말 속에 이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죄의 열매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로
  
셋째, 죄의 열매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는 의에 대해 자유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때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그런 일들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는 그것들의 마지막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돼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생입니다(20~22절). 
바울이 세 번째로 택한 단어가 ‘열매’입니다. 열매에는 점진적인 시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과실을 따먹었을 때 곧바로 피를 토하고 죽지 않았습니다. 900년 이상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망이라는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21절에 “여러분은 그때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라고 했는데, 사망의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종이 된 우리에게는 어떤 열매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입니다.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죄의 종으로써 사망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종으로 영생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까? 이제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사용해 영생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삶이 허용되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 변화를 정리하면 불의의 무기에서 의의 무기로,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죄의 열매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로 자신을 드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면 율법적인 명령 아닐까요?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데 왜 갑자기 해야 할 일을 말씀합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일어난 일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명령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이미 죽은 사건이기에 은혜의 명령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이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오직 은혜로 구원하시고,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대신 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것을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를 죄가 아닌 의에 드림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영생의 열매를 맺어가는 삶을 허락하셨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셨으니 당신도 그리스도를 위해 죽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셨을 때 당신의 옛사람도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니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기고 살아가라”는 은혜의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이미 일어난 사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에 근거해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은 “당신은 이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복음은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고 살라”고 합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23절). 
죄의 종으로 사는 사람은 결국 죄의 열매인 사망으로 끝납니다. 그 누구도 죄의 압제 속에서,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의 종,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그 열매인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 주신 의와 거룩함, 자유함을 누리는 영원한 생명의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 되었을 때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고귀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여러분, 사망은 실제입니다. 죽음이 실제인 것처럼 영생도 분명한 실제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실제인 것처럼, 영원한 생명 또한 분명한 실제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살겠습니까?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입니까?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은혜의 명령입니다.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십시오. 율법의 명령이 아니라 은혜의 명령입니다. 부정을 섬기고, 불법을 섬기던 것에서 이제는 의로움과 거룩함을 창조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이제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은혜는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이요,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모든 것을 우리가 믿을 때 놀랍게 순종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입니다. 죄에 이끌려 가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이끌려 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순종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드리면 부활의 생명, 영원한 생명의 열매가 날마다 맺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드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의의 선물을 풍성히 주신다고 했습니다. 의의 선물이란 전투력입니다.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축복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면 능력을 체험하고,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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