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약속을 믿음으로 얻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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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약속을 믿음으로 얻는 의

 2022-08-06      제14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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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믿음으로 얻는 의 
 
로마서 4:13~25
/ 이재훈 목사
 
믿음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믿음은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이며,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근거도 없이 뛰어드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과 증거 고, 경험을 통해서 믿음을 세워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인간의 합당한 반응은 믿음뿐입니다. 믿음 외에 그 어떤 것이 첨가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믿음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원하실 때는 인간을 완전히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믿음 없는 인간 안에 믿음을 만들어 주시는 일까지 하셔야만 했습니다. 약속을 통해 믿음의 통로가 된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재차 확인해 주시고, 그 약속을 이루심으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만들어 주시고, 그 믿음을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믿음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중요한 모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율법으로 인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인해 된 것입니다”(13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받은 약속을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약속’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약에는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생애를 요약해서 그가 받은 약속에 이름을 붙인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약속을 주신 것은 지구상의 한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한 시대에 국한된 일도 아닙니다. 온 세상,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우주적이고 범세계적인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파괴된 하나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킨다는 계획입니다. 새로운 창조,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자 모든 사람을 구속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다는 약속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세상의 상속자, 하나님 나라의 주인,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키는 주인공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을 통해서 세상의 상속자가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른 상속자입니다”(갈 3:29).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에게 속한 사람이 되며, 아브라함이 받았던 약속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세상의 상속자라면 우리도 세상의 상속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도 그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상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약속을 통해서 얻어지는데, 믿음에 결코 더 해지면 안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외에 율법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싸우기 위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깊이 뿌리내린 율법은 모세 시대에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율법이 주어지기 430년 전에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시점은 율법이 있기 훨씬 전입니다. 할례도 창세기 17장에서 주셨는데,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15장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어떤 요소도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약속을 믿는 것’과 
‘약속하신 분을 믿는 것’ 
 
“만일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효가 되고 약속은 파기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진노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함도 없습니다”(14~15절).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빛나게 하고, 그것을 보완하며 드러내는 도구로 쓰입니다. 약속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율법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약속이 강조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고,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일체 타협이 없습니다. 온전히 행위만을 요구합니다. 율법은 철저하게 행동 그 자체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의 복음은 믿음만을 받아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온전히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요구됩니다. 약속을 통해 얻는 믿음에 결코 더해질 수 없는 것이 율법의 행위입니다. 반면 약속을 통해 얻는 믿음에 반드시 더해져야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소망을 갖고 믿었습니다. 이는 ‘네 후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나 돼 이미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고 도리어 믿음이 굳건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롬 4:18~22절).  
전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바랄 수 없는 것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믿음이 소망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조상이 됐습니다”(17절).
아브라함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믿음이 약속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입니다. 때로 약속만 바라보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거나 약속을 흔드는 상황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라는 자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된 것 아닙니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무너뜨리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는 것’과 ‘약속하신 분을 믿는 것’을 구별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는 약속하신 분께 소망을 둬야합니다. 약속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약속을 했느냐입니다. 약속하신 그분이 전능하신 분이며,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분이라는 소망을 둠으로써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바쳤습니다. 그는 약속들을 받은 사람이면서도 자기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고 불릴 사람은 이삭으로 말미암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로 말하자면 그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로부터 돌려받은 것입니다”(히 11:17~19).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니까 그 생각이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분이라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순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믿음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도 위한 것입니다”(23~24절).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동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죄와 사망 가운데 죽은 자 되었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생명을 잉태케 하신 것처럼,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활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그것을 체험했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것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셔서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죽음 가운데 다시 일어나게 하는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해 죽음에 넘겨지셨고 우리의 의를 위해 살리심을 받았습니다”(25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 믿음의 근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음의 놓이게 하고, 그분의 부활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다시 살게 하며, 의롭게 하며, 영원히 살게 하는 부활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체험했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체험합니다. 믿음이 의의 원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약속을 통해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약속을 주시고, 그가 그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우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 가운데 살게 합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것은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허황된 개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장 구체적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실제는 죄입니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장애물은 죽음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생명입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풍성하게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날마다 믿음으로 주장하며 살아가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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