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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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소서

 2021-07-10      제13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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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소서
 
합 3:17~19 
/ 이재훈 목사 
 
하박국서 마지막 세 구절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위대한 신앙고백이며, 믿음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서 1장에서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항의하고, 도전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악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은 상황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하박국서를 마무리할 때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로 인하여 염려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하박국의 위대한 고백을 읽으면서 감동하기는 쉽지만, 우리가 이 고백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머리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머물러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박국은 영혼 속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깊이 신뢰를 하게 되었고, 친밀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을 기뻐하기 
 
하박국의 고백 속에 중요한 믿음의 비밀을 담겨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만을 기뻐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것을 기뻐한다면 그것이 상실되었을 때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사라질지라도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욥도 동일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축복 때문이 아닙니다. 만일 욥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면 하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이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게 않았을 것입니다. 사단이 준 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도전을 받아주셨고 욥이 모든 것을 상실하는 고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욥이 가진 모든 것을 상실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여전히 경외할 수 있는지,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를 시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실 때 반드시 이 과정을 적어도 한 번은 겪게 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시험 본질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가’입니다. 하박국은 “여호와 그분을 기뻐하였고”라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만을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조는 “인간의 제일 되는 의무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참된 의무이자 창조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위 목록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율법주의를 만들어 낼뿐입니다. 그 어떤 드림이나 헌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시편에서는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만 가장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믿음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믿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삶이 바로 하박국이 경험한 믿음의 삶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기뻐하기
 
둘째, 하박국은 심판을 통해서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했습니다. 하박국이 기뻐한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하박국은 처음에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박국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ㄹ은 구원입니다. 회복입니다.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재앙이 아닙니다. 때로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구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불순종과 죄악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시적인 뜻입니다. 우리를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적인 뜻을 우리가 이해하기 힘듭니다. 죄 때문입니다. 불순종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뻐하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는 것만큼 신앙의 위기가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단어 이면에는 ‘나는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였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길이 없는 존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잊었다면 신앙에 위기가 온 것입니다. 구원은 죽어 마땅한 존재에서 다시 살아난 생명이 된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는 믿음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박국이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이라도 온 세상의 악을 완전히 심판하시는 일을 끝내신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심판의 이르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심판조차 구원에 이르도록 이용하십니다. 마지막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모든 심판을 담당하셨기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를 이미 심판하신 것으로 간주하시고, 그분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덧입혀 주심으로 새 생명을 주신 이 놀라운 구원이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교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구원이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무시합니다. 잊어버립니다. 그 안에 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일평생 묵상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구원을 진정 기뻐한다면 하박국이 경험한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힘의 원천 되시는 하나님 기뻐하기
 
하박국은 힘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는 영혼에게 계속 힘이 되어주십니다. 그 영혼을 강건하게 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통을 견딜 힘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하박국은 이 기쁨으로 인한 힘을 ‘사슴’으로 표현했습니다. 사슴의 발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높은 곳을 경쾌하게 뛰어다니는 것처럼,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힘을 얻은 영혼의 발걸음은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희망으로 가득한 사람의 발걸음과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발걸음이 다릅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의 발걸음과 방황하는 인생의 발걸음이 다릅니다. 
“주께서 내 발을 암사슴의 발과 같이 만드시고 나를 높은 곳에 세우십니다”(삼하 22:34). 
“그분은 야곱이 그 땅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셨고 들판의 열매로 그를 먹이셨다. 그분은 바위에서 꿀을 내어, 딱딱한 바위틈에서 기름을 내어 그에게 힘을 북돋우셨다”(신 32:13).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하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신 민족인 너 같은 자가 누구겠느냐? 그분은 네 방패이며 도우시는 분이고 네 영광스러운 칼이시다. 네 원수들이 네 앞에서 움츠리고 노는 그들의 높은 곳을 발로 밟을 것이다”(신 33:29). 
높은 곳은 원수를 이기는 승리자의 발걸음을 가리킵니다. 땅에 속한 것에 무너지지 아니하고 하늘에 속한 것으로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죄와 탐욕에 휩쓸려가지 아니하고 주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축복을 누리며 승리하는 승리자의 발걸음을 ‘높은 곳을 뛰어다니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발걸음이 사슴의 발과 같이 되어 높은 곳을 뛰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승리자의 발걸음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양의 원제목 이 ‘높은 곳을 향하여(Higher Ground)’입니다. 저 높은 곳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영원한 천국 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하나님이 영혼의 힘이 되어 주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승리자로 살아갈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만을 기뻐하며 즐거워하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며 새 힘을 얻어 
우리의 발걸음이 사슴의 발과 같이 되게 하옵소서. 
죄와 어둠이 가득한 곳을 다니지 않게 하시고, 
하늘에 속한 인생으로 승리하며 살게 하옵소서. 
하박국의 고백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승리자의 발걸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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