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 그들도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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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 그들도 보게 하소서

 2020-01-19      제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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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보게 하소서


요한복음 17장 20~26절


/ 이재훈 목사

 

기도는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입니다. 기도를 들어보면 기도하는 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보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기도는 예수님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예수님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예수님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기도의 원리요, 기도에 담겨 있어야 할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직접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하셨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 남겨져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자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려면 반드시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기도를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으려면 반드시 우리의 기도가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에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기도하셨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셨고, 믿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내 기도는 이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20절).
‘이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은 당시로 말하면 미래의 제자들이고, 이 시대 우리들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이 기도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고, 우리를 위해 준비하셨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간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로 인하여 미래의 제자들, 곧 지금의 제자들인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에 대한 반대와 핍박과 훼방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실 때도 의심했던 제자들이 변화되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연약해 보이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된 것도 예수님의 기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당시 앞으로 믿게 될 미래의 제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역사

 

교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기도가 교회 전체의 기도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역시 미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기도를 드리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중보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 중보기도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통해 믿게 된 사람들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실 때 먼저 부름을 받고,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하나 됨을 통해서 구원하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개개인을 부르셨기 때문에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먼저 부름 받아 선택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선택이라는 과정을 사용하실까요? 인간이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통해 믿게 되고, 관계를 통해서 알게 되고, 관계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선택받은 목적은 선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님께서 먼저 선택하신 이들을 사용하신 역사입니다. 그들이 온전히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순종했고, 어떤 이들은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먼저 선택받은 이들과 그들의 공동체를 통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이 시대의 선교적 기회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훌륭한 선교학자의 통찰력 있는 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선교는 교회가 주변의 세상을 정복하려고 자신의 힘과 지혜를 발휘하는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분의 영의 능력을 발휘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이다.”

선교는 교회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앞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앞서가십니다. 선교의 주체는 성령님이시며, 교회는 성령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성령님께서 행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사역이 이주민과 난민사역입니다. 전 세계에 3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주하고 있습니다. 잘 살기 위해 떠나는 사람이 있고,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주민들이 고국을 떠나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250만 명의 이주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지형이 바뀌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이 시대의 선교적 기회입니다. 성령님께서 앞서 행하시는 일들을 우리가 따라가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율법에서 먹지 말라 한 음식을 먹으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먹지 못하겠다고 하자 하나님이 “정결하다는 것을 네가 부정하다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고넬료를 만나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왜 그것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을까요? 율법의 전통에서 내려온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 시대에 작용해 보면 ‘단일민족’이라는 고정관념일 것입니다. 단일민족이라는 전통 속에서 우리가 이주민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그들을 학대하고, 무시하고, 비하하고, 이용하려고만 하지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모습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부정하다고 여기고 그들에게 복음이 불필요하다고 여겼던 모습과 동일한 것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들에게 성령의 놀라운 축복이 임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우리나라에 온 250만 명의 이주민들이 성령을 받고, 변화되고, 세례를 받고,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개척하는 비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선교, 하나님 선물의 통로

 

사도행전 11장 17절에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교제한다는 소문을 듣고 유대인 신자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주신 바로 그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누구라고 감히 하나님을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행 11:17).
선교란 무엇입니까? 선교란 믿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선물을 자신만 받기 원하는 사람은 선교가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기에 또 다른 이들에게, 내가 만난 이들에게, 우리에게 찾아온 이들에게, 내가 찾아갈 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선물이 아니오, 내가 선물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선물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선교는 선물을 주는 이들까지 변화시킵니다. 선교는 세상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도 변화시킵니다. 선교는 성령님께서 세상과 교회를 동시에 새롭게 하시는 일입니다. 고넬료만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이 과정을 통해 베드로도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먼저 선택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하여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분을 알아가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초대교회가 다른 차원의 회심을 경험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끊임없이 회심하는 일들이 생기는데 선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선교의 통로가 되어왔던 지난 역사에 순종하면서 계속 회심되어 왔습니다. 온누리교회가  성령님이 행하시는 선교에 끊임없이 순종하면서 변화되어왔습니다. 온누리교회의 생명력은 선교에 순종해왔던 역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지난주 영국의 ‘옥스퍼드 센터 포 미션 스터디’라는 선교기관의 대표님과 조찬을 했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많은 교회가 젊은이들이 모이지 않는데 온누리교회에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순간적으로 두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첫째, 젊은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탈권위적인 문화, 수평적인 문화가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선교에 헌신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통계를 보니까 지난해 온누리교회  아웃리치에 참여한 성도들이 국내 170개 팀 5,285명, 해외 189개 팀 3,411명 등 총 359개 팀 8,696명입니다. 성인공동체도 많이 참여하셨지만 대다수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참여하면서 배웁니다. 선교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예배당에서, 설교에서, 교제에서 전혀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젊은이들이 선교현장에 가서 수고하는 선교사님들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 헌신하는 교회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변화되는 일은 선교에 헌신할 때 이루어집니다. 더 깊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들이 선교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교에 헌신한 교회의 기도제목

 

온누리교회가 선교에 헌신한 교회라면 바로 이 기도가 모든 성도가 품어야 할 기도제목입니다. 첫 번째 기도제목은 “세상이 믿게 하소서”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고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21절).
믿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할 뿐이고, 믿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전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두 번째 기도제목은 “세상이 알게 하소서”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23절).
세상에 가장 중요한 필요는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에 온갖 추악한 문제들의 원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기도제목은 “세상이 보게 하소서”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내 영광, 곧 아버지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소서”(24 절).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봐야 합니다. 영광을 보는 자는 엎드리고 경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광을 본 자는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광을 본 자는 세상에 휩쓸릴 수 없습니다. 이 기도제목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서 앎으로 영광을 봅니다. 세상은 내가 영광을 봐야 알고 믿겠다고 하지만, 신앙의 순서는 거꾸로 입니다. 믿으면 알게 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일을 위해서 먼저 우리 안에서 이뤄져야 할 조건이 예수님의 기도에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 됨은 큰 조직적인 연합체로서 하나 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생명력이 있었지만 연합체나 조직으로서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정관이 없었습니다. 어떤 규칙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생명력이었을 뿐입니다. 어떤 규칙도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을 붙잡는 것이 신앙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더욱 모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 됨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하나 됨입니다.

 

네 가지 하나 됨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고…”(21절).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23절).
예수님의 기도내용을 보면 네 가지 하나 됨이 나옵니다.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됨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 됨입니다. 신비한 하나 됨입니다. 둘째, 예수님 안에 있는 두 가지 본성의 하나 됨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기에 아버지와 하나 되시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시기에 우리와 하나 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완전한 중보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분 안에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신 두 본성이 완전한 하나가 되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의 하나 됨입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그분의 지체된 이들이 하나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하나 됨입니다. 넷째,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입니다. 이 네 가지 하나 됨이 예수님의 기도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 네 가지 하나 됨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삼위일체 하나 됨이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하나 됨을 만들었고,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하나 된 분이기에 예수님과 우리의 하나 됨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기에 우리의 하나 됨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 됨을 이루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이 하나 됨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 안에 하나 됨이 이루어집니다. 이 하나 됨은 계속 뻗어 나갑니다. 우리의 하나 됨도 계속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아직 믿지 않는 이들을 계속 초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그리스도와 하나 됨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됨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선교란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알게 하고, 그분의 영광을 보게 하려고 선택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감과 동시에 끊임없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흘러갈 줄로 믿습니다. 이 일에 쓰임 받은 온누리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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