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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주일강단-하박국의 기도

 2019-06-02      제12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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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의 기도
합 3:1~19 
이재훈 목사 
 
구약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기도의 축복과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됩니다. 기도의 사람들은 평탄한 삶 가운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고난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고난이 깊고 클수록 그들의 기도는 더욱 진실했고 간절했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우리의 교만을 무너뜨리고, 우리 안에 있는 허영을 벗김으로 하나님을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도록 영혼을 정결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난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고난당할 때조차 기도하지 않고, 그 고난을 이겨보려고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기도의 사람들은 언제나 역사의 위기 한복판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고난을 해쳐갔습니다. 역사의 위기는 언제나 죄와 관련되어 있고, 죄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는 역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이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의 여러 공방으로 인해 어려움 가운데 있었고, 또 어려움 가운데 있을 수 있지만 이 나라의 살 길은 정치적인 지혜가 아니라 죄를 떠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되돌아보면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감사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설 때 놀라운 기적과 역사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하박국 3장 마지막에 나오는 기도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기도입니다. 찬양으로도 불렀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큰 소망과 힘을 주는 기도이자, 시이자, 노래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싹이 트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해도, 올리브 나무에서 수확할 것이 없고 밭은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해도, 우리 안에 양 떼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 해도, 나는 여호와를 기뻐할 것이고 나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내 힘이십니다. 그분은 내 발을 사슴의 발처럼 만드시고 그분은 높은 곳에서 나로 하여금 뛰어다니게 하십니다”(17~19절).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사회가 붕괴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것이 붕괴된 상태를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의 고백처럼 보입니다. 세상과 상관없이 살거나 비현실적인 사람의 독백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쉽게 내뱉은 것이 아닙니다. 비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고백이 아닙니다.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겠다는 위대한 신앙의 승리입니다. 하박국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기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깨닫고 믿음으로 참여하면 이 기도가 진정 나의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1장, 2장에 나오는 까다롭게 보이는 하박국의 고민과 묵상 과정을 함께 거쳐야 합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예언자 하박국은 ‘왜 이 땅에 악인이 번성하는가?’라는 문제와 씨름했습니다. 하박국은 악인이 더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고, 악한 자가 세상에서 득세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을 탓하며 항의했습니다. 
“주의 눈은 정결해서 죄악을 보시지 못하시고 죄악을 그냥 바라보시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들을 파괴시키고 있는데 왜 반역자들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계십니까?”(13절). 
하박국이 악한 바벨론을 통해서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바벨론보다는 유다 민족이 낫기 때문입니다. “유다 민족이 아무리 죄악이 많다 해도 바벨론이 더 심각한 상황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하박국 마음에 있었던 질문이요, 하나님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의 질문에 대답하셨습니다. “죄악을 절대로 묵인하지 않으시며 그 죄악대로 공의로 심판하신다. 유다 민족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심판의 도구가 된 바벨론도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롭게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하박국이 이 상황에서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란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마땅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 죄 없이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의롭게 사는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 하나님의 모든 판단과 조치는 의롭다는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겸손하게 엎드리는 자가 의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항의까지 했던 하박국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마음이 변화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장과 2장에서는 하박국이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하는 기도를 드렸다면 3장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진노 가운데서도 자비를 기억하소서”
 
“오 여호와여, 나는 주의 명성을 듣고 두려웠습니다. 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을 이 시대에 다시 새롭게 하셔서 이 시대에 알려지게 하소서. 진노 가운데서도 자비를 기억하소서”(합 3:2).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을 통해 일하신다는 섭리를 깨닫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이 이 시대에 새롭게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이 시대에 일어나게 해달라는 내용이 바로 “진노 가운데서도 자비를 기억하소서”입니다. 
하박국은 역사에 깊은 의식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시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것은 진노가 임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진노 가운데서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심판 이후에도 그 가족을 남겨두심으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1세대가 들어가지 못했을지라도 여호수아와 갈렙, 그 다음세대가 들어갈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사람들의 진노는 자비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진노 중에도 자비하심이 나타납니다. C.S.루이스는 하나님의 자비를 ‘잔인한 자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것은 잔인할 정도입니다. 죄에 대하여 조금도 타협이 없이 공의롭게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진노를 통해서 자비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잔인해 보이는 것은 악과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정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잔인한 자비가 나타납니다. 왜 구약에 많은 전쟁이 나올까요? 하나님께서 악과 거룩한 용사로서 싸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악에 대해 진노하시며, 싸우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만 때로는 버리십니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죄악을 떠나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시고, 죄악을 품으면 엄청난 진노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일지라도 죄악을 품으면 진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자비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자연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박국 3장 1절로 15절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 앞에 자연도 굴복하는 내용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진동하고, 산과 바다가 그분 앞에 엎드리고, 해와 달이 멈춰섭니다. 결코 변하거나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자연도 하나님 앞에서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애굽과 홍해사건 등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은 자연을 움직이셨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과학, 공학, 지질학을 공부하셨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당시에는 지질학과 지진에 대한 연구가 전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말의 중요한 증거로 지진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 한 가지만 봐도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과학자가 아닌데 왜 지진에 대한 많은 말씀을 하셨을까요? 모든 자연의 움직임과 반응 또한 하나님의 진노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이 땅의 죄와 악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십니다. 
 
하박국의 변화
염려자, 관찰자, 예배자!
 
“주께서 활을 꺼내서 많은 화살들을 시위에 놓고 당기셨습니다. 주께서 강으로 땅을 쪼개셨습니다. 산들이 주를 보고 뒤틀리고 억수 같은 물이 휩쓸며 내려갑니다. 깊은 바다가 소리를 높이고 물줄기는 힘 있게 높이 치솟습니다. 빛처럼 나는 주의 화살과 번쩍이는 주의 창 때문에 해와 달이 하늘에서 멈춰 버립니다. 주께서는 진노로 땅을 점령하셨고 분노로 민족들을 짓밟으셨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나오셨습니다. 주께서 악한 사람의 집 우두머리를 쳐부수셨고 발에서부터 머리까지 발가벗기셨습니다”(9~13절).  
하나님께서 모든 자연 만물까지 사용하심으로 악에 대하여 심판하셨습니다. 여러분, 뉴스를 보며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악을 떠나면 사는 것이고, 악을 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대한 하박국의 반응이 16절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내 뱃속이 뒤틀립니다. 그 소리에 내 입술이 떨립니다. 내 뼈가 썩어 들어가고 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침략하려고 오는 백성들에게 닥칠 재앙의 날을 조용히 기다릴 것입니다”(16절).     
침략하려고 오는 백성들에게 닥칠 재앙의 날을 조용히 기다린다고 합니다. 바벨론입니다. 뱃속이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어 들어가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깊이 두려워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께서 악과 싸우시며 악에 대하여 잔인할 정도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의 날을 조용히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무섭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운 분이신지, 적절하고 완벽하게 심판하시는 분인 동시에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인지, 진노 가운데서도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이 고작 “왜 선하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에 악인들이 존재하고 악인들이 형통합니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역사의 한 부분밖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계시며, 악인들까지도 공의롭게 다루심으로 더 큰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뤄 가십니다. 악인으로 인한 현재의 고난이 마지막이 아니고, 머지않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으로 반전될 것이기 때문에 하박국의 마지막 고백이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3장에서 하나님에 대한 항의가 찬양으로 바뀝니다. 1장에서는 항의했지만 3장에서는 찬양합니다. 1장에서는 두려움이었지만 3장에서는 믿음이 됩니다. 1장에서는 염려했지만 3장에서는 경배로 바뀝니다. ‘워런 위어스비’라는 목사님이 하박국의 변화를 세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1장에서 그는 염려자(Worrier)로 시작해서 2장에서 그는 관찰자(Watcher)가 되었다가 3장에서는 예배자(Worshiper)가 되었다.” 
하박국의 고백은 역사를 바라보고 염려하고, 근심하며, 두려워했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기에 염려할 것이 없고, 두려워할 것이 없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하며, 하나님 앞에 항의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무화과나무가 싹이 트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해도, 올리브 나무에서 수확할 것이 없고 밭은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해도, 우리 안에 양 떼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 해도, 나는 여호와를 기뻐할 것이고 나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내 힘이십니다. 그분은 내 발을 사슴의 발처럼 만드시고 그분은 높은 곳에서 나로 하여금 뛰어다니게 하십니다”(17~19절). 
모든 일이 잘 되어갈 때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고난과 역사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우리 옛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국 대각성 운동을 주도했던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적절한 행복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인간이 육신적인 출생으로 받은 것들로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다.”    
하박국이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은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의 모든 죄에 임하는 진노였습니다. 그 진노 가운데 예수님이 고통을 참으실 수 있었던 이유를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개역개정).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셨던 비결은 하나님을 즐거워하셨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는 심판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하박국 안에 존재했기에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고난에서 면제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록 만들기 위해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영화롭게 되십니까? 하나님을 가장 즐거워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영화롭게 되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입니다. 세상에는 악이 횡행합니다. 악인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하박국 같은 질문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왜 지금 가만히 계십니까?” 하나님은 하박국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눈 감고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거룩한 용사로서 싸우고 계신다. 하나님은 악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악인에게 반드시 임할 것이다. 그러나 너도 조심하라. 네 안에 악이 있다면 너도 심판에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예언서를 읽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은 모든 죄와 악에 임하기에 죄악에서 떠나지 않으면 심판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잔인한 자비하심으로 공의로운 심판으로부터 살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분의 잔인한 자비하심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진노 가운데서 자비를 기억해 달라는 하박국의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잔인하신 자비하심입니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고난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가운데 있을지라도, 죄로 인하여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이 나의 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 삶에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열매와 양과 소가 없는 것 같은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쁨과 즐거움을 가진 이들의 발은 사슴처럼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발걸음이 아니라 사슴이 높은 곳을 뛰어다니듯 힘찬 발걸음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박국의 기도는 쉽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바로 서면 하박국의 기도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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