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복음 증거를 위해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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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복음 증거를 위해 기도하라

 2018-12-02      제12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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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증거를 위해 기도하라
엡 6:10~20
이재훈 목사 
 
 
외딴 원주민 마을에서 혼자 사역하는 선교사 집 주변에 선교사님을 공격하려는 원주민 갱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원주민 중 한 사람이 선교사의 집을 습격하려고 밤늦은 시간 혼자 다가갔습니다. 선교사의 집에 가까이 갔는데 수많은 군인들이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그 원주민이 선교사를 만나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당신 집을 습격하려고 늦은 밤에 찾아갔는데 당신이 배치해 놓은 군인들 때문에  되돌아 왔소.” 선교사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어제 밤에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집을 지키도록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원주민이 본 것은 무엇일까요? 선교사는 그 체험을 자신을 파송한 교회에 알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교사를 후원하고 기도하는 책임자가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혹시 그 사람이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라고 합니까?” 그래서 선교사님이 몇 명이라고 말했더니 책임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 숫자가 그날 선교사님을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선교사를 위해 중보기도한 숫자만큼 선교사 집을 지키는 영적 천사가 되었습니다. 신비한 일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는 이러한 영적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체험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헌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갖고 있는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기적이 체험되지 않는 것입니다. 기적을 보면 믿겠다, 능력이 나타나면 참여하겠다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교만이요, 이기적인 태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헌신하고, 참여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역사와 신비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역 성공의 열쇠는 파송 교회의 성도들의 기도에 달려있습니다. 흔히 선교사님들이 사역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를 평가하기 쉬운데 사실 선교사역의 성공 여부는 중보기도에 달려있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이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언제나 기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선교사역에 실패하는 이유는 기도의 힘보다 재정의 힘을 의지하기 때입니다. 기도 없는 재정은 선교 현장에서 영적 공격을 받을 때 아무런 힘이 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때로 재정이 부족할지라도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고, 기도하는 사역자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뛰어 넘어 전진하고 열매 맺는 사역이 됩니다.  
 
 
복음 증거를 위한 기도요청
 
 
영적전쟁의 승리를 위한 교범이 되었던 말씀의 마지막은 ‘복음 증거를 위한 기도요청’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또 나를 위해 기도하기를 내게 말씀을 주셔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내가 이것을 위해 사슬에 매인 사신이 됐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복음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19~20절). 
이 기도는 바울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슬에 매인 자신이 풀려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요청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요청은 자신이 사슬에 매어 있지만 그 상황에서도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슬로부터 자유케 될 것을 간구하지 않고 갇힌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담대하게’라는 단어를 19~20절에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바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말, 마땅히 전해야 할 말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이라는 것입니다. 그 담대함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하나님을 움직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자신의 형편을 뛰어넘어 담대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증거 되는 사역이 열매 맺는 것은 기도에 달려있다고 믿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갇힌 자가 되었지만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복음이 능력 있게 증거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확신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바울이 갇힌 상황에서도 기도를 요청하고, 스스로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바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먼저 선택 받은 이유
 
 
영적 전쟁의 승패는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복음증거 사역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지 혹은 기도로 참여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복음 증거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셨습니다.   
“내 기도는 이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요 17:20). 
우리가 믿게 된 것은 예수님의 기도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전하는 말을 듣고 믿을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이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온 세상을 구원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선택이라는 과정을 사용하십니다. 구원을 전달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먼저 택하시고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서로 사랑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의 사람을 선택하실 때 두 가지 잘못된 반응이 나타납니다. 먼저 선택된 사람들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자신만 선택받은 것처럼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먼저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왜 다른 문화, 다른 종족, 다른 사람들이 믿어야 하는 신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반발합니다. 오해하는 것입니다. 먼저 선택받지 못했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먼저 선택받아서 이루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교 아닙니까?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 되는 일을 위해서 소수의 사람들을 먼저 택하시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먼저 선택받은 것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선택 받은 것은 지적 능력이 뛰어나거나 문화 수준이 높아서, 남들보다 선해서, 분별력이 좋아서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 어떤 이유로 우리가 먼저 믿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것 이면에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 먼저 부르심을 받고 선택을 받은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이면에는 반드시 선교가 있습니다. 선교를 위하여 선택 받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교만에 빠지든지 오해하게 됩니다.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음 증거 사역에 참여하지 않게 됩니다.  
이기적 신앙은 독이 있는 신앙입니다. 나만을 위한 신앙은 참된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나를 통하여, 우리를 통하여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헌신하고, 기도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선교에 헌신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다툼과 분열, 전통과 형식 속에 있는 교회는 선교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선교에 참여하는 일도 없습니다. 함께 열심히 기도하는 일에도 게으릅니다. 선택의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먼저 선택을 받은 이유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적 생명력이 흘러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일에 참여하기
 
 
선교는 교회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훌륭한 선교사님의 통찰력 있는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선교는 교회가 주변의 세상을 정복하려고 자신의 힘과 지혜를 발휘하는 그런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세상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분의 영의 능력을 발휘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이다.” 
선교는 성령님께서 앞서 행하시며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이기에 교회가 따라가는 겁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선교는 교회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루시는지를 깨닫기 위해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시는지를 깨닫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순종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고, 선교 현장에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현장에 필요를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증거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그동안 이룰 수 있었던 복음증거 사역은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누리교회에 30년 이상 선교사님을 위한 기도모임을 섬기는 권사님들이 계십니다. 지하기도실에서 릴레이로 중보기도하는 성도님들과 보이지 않는 기도의 헌신들이 온누리교회의 복음증거 사역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누리교회에 많은 사역을 맡겨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재정이 있어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온 세상을 위한 비전에 헌신하라고 많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복음증거를 위한 기도에 온누리교회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쏟아 부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에 온전히 복음이 증거 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왜 이 나라가 세상의 헛된 이념에 휩쓸립니까? 우리가 복음 증거에 열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이념보다 강력한 것이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한 사람의 공산주의자가 한 마을에 들어가면 공산화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한 사람이 그 마을에 있는데 복음화가 안 되는 걸까요? 복음 증거를 위한 우리의 헌신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세상의 이념보다 못합니까? 아닙니다. 먼저 선택을 받은 자가 복음 증거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세속화 이념에 휩쓸려 가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들과 젊은이들이 다시 한 번 복음을 증거하도록 기도할 때 이 나라와 민족이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열심보다 기도가 앞서고,
헌신보다 기도가 깊어져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 이후에 하셨던 기도를 우리는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17장 이후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제목들이 연이어 나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독생자라는 것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고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21절). 
둘째, “세상이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내 영광, 곧 아버지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소서”(23~24절).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도 복음증거를 위한 기도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주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 6: 9~10).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것은 회개의 기도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고는 이 세상에 소망이 없습니다. 회개의 기도입니다. 또 응답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에게 임하게 하소서. 저 민족에 임하게 하소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소서. 복음 증거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응답하지 않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저 북녘 땅에도 주의 나라가 임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주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복음 증거의 간절한 기도가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위험은 열심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이 기도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선교사의 위험도 열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심이 기도보다 앞설 때가 위험한 것입니다. 사역자들은 열심보다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 우리 헌신보다 기도가 깊어져야 합니다. 새해 작은 예수 40일 새벽기도회를 준비하면서 온누리교회의 기도가 더욱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복음 증거를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 더욱 합심하여 기도하는 온누리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복음 증거에 참여하기 
 
 
이사야서를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재미있는 표현을 쓰면서 기도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습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네 성벽에 파수꾼을 세워 두었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잠잠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를 일깨워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지 말고 그분이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세상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실 때까지 여호와께서 쉬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사 62:6~7). 
“여호와께서 쉬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비유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쉬셔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하나님을 괴롭혀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교회의 사명은 성벽의 파수꾼과 같다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이 세상에 복음이 증거 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일깨워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귀에 음성이 들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주의 나라가 온 세상에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이 능력 있게 전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각 가정에 복음이 증거 되고, 자녀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고, 이 땅에 온 이주민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고,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이 증거 되고, 온갖 매체를 통해 복음이 증거 되는 일을 위해 기도할 때 사탄의 왕국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의 승리는 우리가 얼마나 복음 증거에 참여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탄의 왕국이 무너지고 주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는 일에 헌신하고 기도하십시오. 각자 정해진 시간에 따라 복음 증거를 위한 기도모임에 참여하고, 기도에 열심을 내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권찬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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