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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2018-11-25      제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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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엡 6:10~20 
이재훈 목사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사람의 특징은 언제나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도울 수 없는 누군가를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누군가가 승리한다면 그 사람의 승리는 곧 나의 승리가 되고, 그 사람의 기쁨과 감격은 곧 나의 기쁨과 감격이 됩니다. 기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장 구체적인 섬김입니다. 기도 없이 누군가를 도우려고 할 때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기도는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사역입니다. 기도는 사역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기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중요한 사역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서서 기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도를 ‘중보기도’라 부릅니다. 중보기도를 할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역시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못하는 나 자신, 다른 영혼을 품지 못하는 나 자신이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중보기도를 제대로 하려는 마음을 품기 전까지는 우리 모두 바리새인”이라고 했습니다. 중보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영광을 얻으려는 마음에는 중보기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보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능력, 축복, 영광을 많이 나타내시는 때는 중보기도자들이 많았던 시대입니다. 사탄의 왕국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중보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자를 찾으십니다. 중보기도자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중보기도의 모범 ‘모세’
 
 
“이 땅을 위해 내 앞에서 성벽을 쌓고 성의 무너진 틈에 서서 나로 하여금 성읍을 멸망시키지 못하게 할 사람을 찾았지만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겔 22:30). 
성의 무너진 틈에 서서 성읍이 멸망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중보기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읍이 무너졌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를 찾으십니다. 성의 무너진 틈에 서서 기도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이러한 기도자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구약에서 중보기도의 모범을 잘 보여준 인물이 지도자 모세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을 때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나가서 싸우라고 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언덕 위에 올라가 손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손을 들고 서 있기 어려워서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도와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모세의 손이 들려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들었던 손은 바로 중보기도의 손이었습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보이는 물리적 전쟁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싸움의 승패가 보이지 않는 전쟁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손을 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앞에 항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의 손을 높이 든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손을 들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손을 올려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살펴보고 점검하고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가 우리 마음과 손을 들어 올리자”(애 3:40~41). 
“주의 지성소를 향해 손을 들어 주께 부르짖을 때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시 28:2). 
모세가 기도의 손을 높이 들었을 때 그의 손은 하나님 보좌에까지 닿는 중보기도의 손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그 손을 높이 들었을 때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는 손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보이는 전쟁보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 더욱 중요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든 손이 하나님 보좌에까지 도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32장의 사건에서도 모세는 중보기도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만들었을 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민족을 시작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이들을 벌하시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에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하나님 여호와께 빌며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왜 주의 백성들 때문에 노여워하십니까? 그들은 주께서 큰 능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사람들이 아닙니까? 왜 이집트 사람들이 ‘그가 그들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쓸어버릴 생각으로 끌고 나갔구나’ 하게 하십니까? 주의 무서운 진노를 돌이키시고 주의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께서 친히 주를 두고 그들에게 ‘내가 네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니 이것이 그들의 영원한 기업이 될 것이다’라고 맹세하시지 않으셨습니까?’”(11~13절).
모세는 대담하게 하나님께 반대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진노를 돌이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불순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 가운데서 모세의 기도는 순종이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린 것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하며 돌이켜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백성들의 운명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크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 하나님의 영광,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에 호소한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민족이 이곳에서 멸망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약속이 무너진다면 곧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아닙니까?” 바로 이것이 중보자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존귀하신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것이 참된 중보자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일본을 위해 기도할 때 일본을 따르고, 우상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을 변화시킴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 역사적 앙금이 있고, 씻지 못할 상처를 준 그 민족을 우리가 변화시킴으로 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중보기도의 사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그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려던 마음을 접으셨습니다”(출 32:14).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그 백성들을 진멸하셨어도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시고, 모세에게 계획을 말씀하셨으며, 모세가 반대하자 계획을 변경하셨습니다.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의로우신 분, 뜻대로 행하실 수 있는 분이 백성들의 중보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기도를 통해 한 사람과 상황을 바꿔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멸망 받을 영혼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건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찾고 계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중보기도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회개와 중보기도를 통해 진노를 거두시고, 은혜 베푸실 준비를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모세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무너진 틈에 서서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갔습니다. 우리 삶 속에도 무너진 틈이 많습니다. 가정과 이 나라와 민족에 무너진 틈들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 틈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고, 비판을 하고, 데모를 하고, 정죄를 하고,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의 변화는 무너진 틈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나라와 민족의 역사에 변화가 일어났던 이유는 민족을 위하여 기도했던 중보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민족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던 중보기도자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온 많은 선교사님들과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 간에 주고받은 편지 기록이 있습니다. 그 기록을 보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한반도를 위해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이 땅에 파송한 선교사님들을 물질만이 아니라 기도로 도왔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나라와 민족의 놀라운 영적 변화를 허락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양한 미전도 종족뿐만 아니라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와 민족에 이르기까지 중보기도의 지경을 넓힐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시고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신약 중보기도의 모범 ‘바울’
 
 
신약에 와서 중보기도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은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중보기도자였습니다. 그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기도로 협력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습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고 성령의 사랑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나를 위해 여러분도 나와 함께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 주십시오”(롬 15:30).
“여러분도 우리를 위해 기도로 협력해 주십시오. 이는 많은 사람의 기도로 우리가 받은 은사로 인해 우리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후 1:11). 
바울은 중보기도의 힘을 믿었습니다. 바울의 기도는 단지 능력을 얻기 위해 기도원에 올라가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였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중보기도였습니다. 바울의 서신서에는 언제나 기도가 나옵니다. 그의 서신서를 보면 자신이 성도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했는지 그 내용을 요약해서 기록했습니다. 그 기도를 보면 바울이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약 곳곳에 바울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으로 인해 기뻐하는 모든 기쁨에 대해 우리가 하나님께 여러분에 대해 어떤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온전케 하기 위해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우리의 길을 여러분에게로 바로 인도해 주시고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주께서 여러분 서로 간에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치게 하시고 풍성하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실 때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거룩하고 흠 없이 세우시기를 빕니다”(살전 3:9~13).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기 위해서 밤낮으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서로 간에 사랑이 넘치도록,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기도했습니다. 왜 이 기도가 중요합니까? 바울의 기도대로 데살로니가교회가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이 보충되었습니다. 믿음의 모범이 되었고, 거룩함이 있었고, 사랑이 있는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도 바울의 중보기도로 교회에 대해 갖기 쉬운 네 가지 통념을 깨뜨렸습니다.
첫째, 흔히 교회의 성숙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는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케도니아 대륙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둘째. 교회의 성숙은 아무런 고난이나 시련이 없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들에게는 가족과 사회관계로부터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교회는 건강하게 성숙해 갔습니다.
셋째. 교회가 성숙하려면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개척한 데살로니가교회에는 바울이 불과 3개월 남짓 밖에 체류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리더십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넷째,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은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이 통념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는 말씀을 받은 그날부터 말씀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케도니아 일대에 복음을 증거한 선교적 교회로 자라났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그의 기도대로 교회가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다시 방문하고자 했을 때 사탄이 그 길을 여러 번 막았지만 기도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방이 막혔지만 기도는 막히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기도는 섬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섬김의 중심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기도한 내용을 가르쳤고, 모든 가르침은 기도로 정리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성도들뿐만 아니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직접 만났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기도 목록에는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온누리교회가 지금까지 성숙하고 성장해 온 것도 많은 성도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기도의 섬김, 권사님들의 계속적인 기도, 새벽기도와 순 모임에서 함께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로 온누리교회를 세웠습니다. 또한 선교지에서도 온누리교회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반경이 더욱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만을 위한, 우리 가족만을 위한 기도에서 이 나라와 민족, 세계 열방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이 필요한 영혼들, 시련 속에 있는 교회들,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우리의 기도 속에 품어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중보기도로 서로를 돕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세워주는 기도의 섬김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전쟁은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했던 모세처럼, 바울처럼, 기도하는 이들을 사용하십니다. 중교개혁도 마틴 루터가 교리적으로 논쟁을 통해서 이룬 것이 아닙니다. 역사에서 잘 밝혀지지 않은 것은 루터가 얼마나 기도의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중교개혁의 힘은 루터의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종교개혁 기간 중에 하루 2시간 씩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의 교리적인 정교함은 기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에 대항하여 담대하게 싸울 수 있는 용기도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루터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의 중심적 인물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만약 그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진리를 드러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겨야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이 시대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많은 부르짖음이 있고, 광장에서 외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 이 시대를 위한 기도만이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에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이 임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모세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돌이키실 줄로 믿습니다. 연약한 모든 교회들이 우리의 중보기도를 통해 데살로니가교회 같은 교회로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주변에 믿음이 약하고, 방황하고, 위기가운데 있는 많은 영혼들도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돌아올 것입니다. 
진정한 전쟁은 기도의 골방에서 이루어집니다. 모세가 기도로 승리했을 때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골방에서 중보기도로 승리해야 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 전쟁은 기도의 전쟁입니다. 우리 모두가 중보기도의 영역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권찬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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