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우리는 영적 군사입니다

주일강단

우리는 영적 군사입니다

 2018-08-12      제12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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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rd image이재훈 목사

 

에베소서 6장 10~20절

 

영적 싸움을 피할수록 더 큰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용맹스럽게 나아갈 때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는 믿음의 용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영적 전쟁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 정확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을 시리즈로 설교하는 동안 이 말씀을 매주 동일하게 진행합니다. 영적 전쟁의 각 부분을 세부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이 시리즈 설교가 끝날 때 이 본문을 모두 암송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고 봉독하는 것이 아니라 암송해서 매일 묵상할 수 있도록 매주 조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적 전쟁과 진정한 평화

 

구약에는 전쟁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대가 현대보다 전쟁이 많아서일까요? 아닙니다. 고대나 현대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역사가에 의하면 과거 3천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기간이 268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 20세기만 해도 약 2억 명 가량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전쟁들은 혈과 육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생존 전쟁입니다. 전쟁이야기는 구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 10:34).
매우 특이한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을 통해 분명 예수님께서 우리의 평화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 본인은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상반되는 것 같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싸움에서 우리가 이기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가 되십니다. 그러나 그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싸움 과정에서 고난 받으셨고 그 싸움의 절정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싸움에서 패배하신 것 같지만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승리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싸울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평화가 무엇입니까? 적에게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도 평화인 것처럼 보입니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에게 식민 지배를 당할 때도 평화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싸워 이겨서 자신의 주권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악’은 ‘선’에 대한 반역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우리에게 전쟁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전쟁은 혈과 육으로 인하여 싸우는 생존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때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영적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의 본질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영들과의 전쟁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며 빛과 어두움의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었던 천사 중에서 타락한 무리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해서 일어나는 전쟁입니다. 후에 말씀드리겠지만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라고 하니까 하나님과 사탄이 대등하게 싸우는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은 처음부터 대등하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원론적인 세계관은 선과 악이 대등하게 처음부터 존재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악은 선에 대한 배반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성어거스틴은 ‘악이란 선에 기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악이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세상의 악을 보아도 선을 이용합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은 처음에는 믿게 합니다.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선을 이용하고 악용함으로써 악을 이룹니다. 악은 반드시 선에 기생합니다. 그것은 악은 선에 대한 반역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바로 영적 전쟁의 시작입니다.

 

거대한 하나님 군대의 일원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축복하시는 백성들에 대한 악한 영들의 공격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전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칼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예수님까지 공격했던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칼을 들고 싸워야합니다.
구약에 ‘여호사밧’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당시 주변에 있던 모압과 암몬의 큰 세력들이 공격해 왔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싸울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식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아하시엘’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역 10:15b).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영적 전쟁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는 것은 사사롭게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하나님 군대의 일원으로써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전쟁을 보십시오. 치열한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사들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싸우기 싫은데도 싸우는 것입니다.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위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때로는 지도자의 결정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모든 군사들은 개인의 목적과 계획대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에 대항하는 공격과 전쟁 속에서 우리가 그 일부분이 되어서 싸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 속한 전쟁의 부분으로 싸우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법칙을 기억하며 이 전쟁에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쟁

 

하나님께 속한 전쟁은 하나님께서 지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령관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전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쟁이 아무리 힘들고 치열해 보이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보여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의 여러 전쟁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때로는 연약하고 부족해 보여도 승리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민족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전쟁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명예, 하나님의 영광이 달려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순종하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믿음의 싸움입니다. 신약 곳곳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의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때로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두려움에 빠져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늘 깨어있다고 하지만 깨어있지 못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때로는 졸고 있고, 때로는 두려움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지 않으시다면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왜 세상이 어지러운지 모르겠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정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나마 살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인 동시에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을 둘러서 진을 치고 구원하십니다(시 34:7).”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천사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영의 존재도 믿어야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면서 하나님 나라 일에 쓰임 받는 천사들의 존재도 믿어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천사들이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 주위에 진을 치고 보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며 살아가고자 할 때 우리의 힘과 능력만으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우리를 돕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하나님의 천사가 도왔습니다. 예수님을 도왔던 천사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믿지 못하는 사이에,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돕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 가족들과만 인사하면 안 됩니다. 우리를 돕고 있는 천사에게도 수고 많으셨다고 인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사를 통한 보호하심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를 경외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의지와 선택으로 악의 길로 걸어간다면 천사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천사도 인격적인 존재이고, 우리도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할 때 우리가 주를 경외하지 않는 걸음으로 나아간다면 천사들의 보호막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삶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인 동시에 우리가 싸워야 할 전쟁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과 함께하심,
우리의 믿음과 순종의 결합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권력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2절).
우리의 싸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싸워야 할 전쟁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께 맡긴다는 것을 이렇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다 싸워주시겠지.” “나는 넋을 놓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주님께서 알아서 다 하십니다.”
물론 그런 영역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졸고 있을 때도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부분이 있지만, 믿음의 싸움은 내가 싸워야 합니다. 만일 ‘주님께서 알아서 싸워주시겠지’라고만 생각하면 우리의 영적 책임을 떠넘기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생각을 하면 우리가 죄를 범할 때 마치 주님께서 싸움에서 져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악한 영에 의하여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변명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은 악한 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싸워야 할 싸움을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강건하지 않았고, 내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았고, 내가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진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 나의 인격적인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면 왜 주 안에서 강건하라고 하고,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은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 믿음으로 순종하며, 그분의 임재하심에 내어드리고,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는 치열한 영적 싸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찬양 몇 곡 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이 영적 전쟁은 주님의 임재 약속과 함께하심의 약속과 더불어 우리의 믿음과 순종이 결합될 때 승리를 경험할 수 있는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승리 경험하는 ‘믿음의 용사’

 

오늘은 영적 전쟁의 서론에 해당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예수님께서 싸우시고, 성령님께서 지원하시는 전쟁에 참가하는 군사들이라는 것입니다. 소수의 몇 사람만 대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싸워야 하는 군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전쟁이 싫습니다. 체질상 저와 맞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그런 전쟁은 목회자들이나 대표자들이 싸우는 것 아닙니까? 저는 믿은 지도 얼마 안 됐습니다. 제발 이 전투에서 빼주십시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는 초신자든 오래된 성도든 상관없이 이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갈수록 이 전쟁이 민감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어린아이 때 싸우는 전쟁이 있고, 장성했을 때 싸우는 전쟁이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 영적 전쟁을 피하려하고, 무시하면서 살아가면 더 큰 위기와 어려움이 생깁니다. 믿음의 삶에서 당하는 위기는 영적 전쟁이 때문이 아니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합니까, 도망갈 때 뒤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합니까? 사탄이 우리 등 뒤에서 공격하도록 내어줘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견고해질수록 이 싸움은 맹렬해집니다. 이 세상의 전쟁은 끝나기도 하고, 냉전도 있고, 휴전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전쟁은 냉전도 없고 휴전도 없습니다. 사탄과의 평화협정은 없습니다. 사탄은 거짓 평화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만 합니다. 세상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이 전쟁에서 예외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전쟁에서는 명예 제대도 없습니다. 의가사제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도망갈 수도 없고, 대체복무도 없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모순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병역의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전시 중인 하나님 나라의 전쟁에서 병역을 거부하면 적에게 자신을 밥으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영적 병역 거부를 했을 때 일어나는 비참한 사건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구약의 사건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집트에서 능력을 보여주셨고, 광야를 지나는 동안 놀라운 기적과 은혜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앞두고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는 자리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왜 거부했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그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 땅에 들어가서 싸우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만일 싸움 없이 들어가라고 했다면 아무 말 없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서 싸우라고 하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땅에 거인들이 있어서 두려웠고, 둘러싸인 성벽이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며 싸우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38년 동안이나 광야를 유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배우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익숙해졌습니다. 광야에 익숙하다 보니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하심에 안주하려 했던 것입니다. 싸우기를 거부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에 빠져서 불순종하고, 안일한 태도로 악의 영과 죄와 싸우기를 거부하면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더 크게 방황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악의 영과 싸우는 군사들입니다. 일주일 내내 적들에게 패배하고, 주일날 교회가 패배를 보고하는 자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승리를 보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싸우는 것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과 보호하심과 승리가 약속된 크고 위대하시고, 강하신 용사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싸우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싸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패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용맹스럽게 나아갈 때 놀랍게 베풀어 주신 영적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는 믿음의 용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믿음과 순종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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