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주일강단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2018-05-20      제11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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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목사

 

마 16:13~19
 

 

두세 사람이 함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것이 교회가 가진 하늘나라의 열쇠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에 대한 오해가 가장 많습니다. 교회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교회 앞에 붙는 이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교회 이름으로 불리는지가 교회 자체보다 중요하게 기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할 때 교회 이름을 짓는 것이 큰일이고, 교회를 새롭게 하고자 할 때도 교회 이름을 새롭게 짓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 이름이 싫어서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 그리스도 앞에 설 때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교회의 일원이었는지, 어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지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 예수님께서 주인 되신 교회였는지, 우리가 진정 교회였는지가 진짜 문제입니다. 온누리교회를 부를 때도 어디에 강조점이 있어야 할까요? ‘온누리’입니까, ‘교회’입니까? 당연히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 이름을 말할 때 자신도 모르게 교회의 이름을 강조하게 됩니다. 이것이 교회에 대한 심각한 오해입니다. 교회 자체가 너무나 소중한 이름이고, 교회 자체가 예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소중한 단어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언급한 첫 번째 본문이 마태복음 16장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8장에서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라는 단어를 세 번 언급하셨습니다.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예수님께서 세 번 언급하심으로 교회에 대한 계획과 청사진을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앞에 어떤 이름이 붙어 있는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 에클레시아 자체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 예수님이 주인 되신 교회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믿음생활을 해야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열쇠 가진 공동체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와 꿈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드러내시고,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하려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연결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세상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유한한 세상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연결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이 세상은 땅에 속해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땅에 속한 세상과 하늘에 속한 하나님 나라를 연결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얼마나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부르심입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니 지옥의 문들이 이것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네게 하늘나라의 열쇠들을 줄 것이다. 무엇이든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8~19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시고 그 교회에 “하늘나라의 열쇠들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하늘나라의 열쇠들을 주심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고, 이 세상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 나라를 살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하늘나라의 열쇠는 무엇입니까? 하늘나라의 열쇠는 베드로의 손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권세를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로 대표되는 교회에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구체적인 제도나 조직에 대한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경험하는 민족, 나라, 언어, 교파에 따라 제한받은 제도적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는 모든 것을 초월해서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워져서,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바로 그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가진 공동체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책임과 놀라운 권세를 부여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열쇠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질문을 하신 시점도 중요합니다. 예수님 생애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이때부터 예수님께서 고난과 십자가를 향해 나아갑니다. 바로 그 시점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인기나 평가에 연연하셨기 때문에 질문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 한 분이라고도 합니다”라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평가를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신비한 능력과 놀라운 가르침을 보고 예수님이 보통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위대했던 역사 속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규명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이 아니라 가까이서 보고 듣고 함께 산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질문을 한 이유는 그들의 대답이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가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바로 사용하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하면서 날마다 던져야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라는 질문 앞에 서야만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고 들어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들어갈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는 유일한 길은 이 질문 앞에 계속 서는 것입니다. 이 질문 앞에 서는 것이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습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에 따라 열쇠로 하나님 나라를 여는지 혹은 열지 못하는지가 결정 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16절).
이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복이 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은 제자들의 실력으로 나온 대답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이것을 네게 계시하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다’”(17절).
100점 만점 대답인데 베드로의 실력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실력도 아니고, 역사에 축적된 지식의 결과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우리의 지적인 판단으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적 판단, 추론, 실험의 결과로 나올 수 있는 대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은 기적처럼 내 영혼 속에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의 계시가 임할 때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고백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떨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혼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로 베드로가 이 고백을 하게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계시로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둘째, 하나님 나라의 열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고백의 모범을 보인 직후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열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는 일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말했습니다. “주여, 그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돌아다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거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이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23절).
방금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받은 평가와 정반대입니다. 조금 전에는 “너는 베드로다”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지금은 “너는 사탄이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조금 전에는 반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지금은 걸림돌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조금 전에는 “너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는 “너는 복이 있다”라고 평가받았는데 지금은 “너는 내 뒤로 물러가야 한다”고 평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왜 이렇게 추락하게 됐을까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었던 신앙고백을 했는데 지금은 왜 사탄과 걸림돌이 되고, 뒤로 물러가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이 시대에도 놀라운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하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한 교회가 마치 하나님 나라의 문을 가로막는 걸림돌, 사탄,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제발 내 뒤로 물러가면 좋겠다”고 하시는 것처럼 추락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베드로는 첫 번째 열쇠는 열었지만 두 번째 열쇠는 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고난과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참된 그리스도라면 결코 고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약한 죽음으로 끝나는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고난과 죽음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서 “다시 산다”는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허락되기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다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의 권세에 눌려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교회를 세우리니 이 교회는 음부의 권세, 지옥의 문들이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지옥문이 있습니다. 세상으로 계속 가면 거기에 지옥이 있습니다. 거짓으로 계속 가면 거기에도 지옥이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지옥의 문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죽음의 문을 이기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음부의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그 어떤 권세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뺀다면 하늘나라의 열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교회, 십자가 없는 믿음생활은 하늘의 문이 닫히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 16:24).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아니라 우리의 십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을 경험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 삶에서 제외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교회는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십자가를 지는 만큼 하늘나라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하심

 

셋째, 하늘나라의 열쇠는 그리스도의 임재입니다.
“내가 네게 하늘나라의 열쇠들을 줄 것이다. 무엇이든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9절).
교회는 땅에서 매고 푸는 권세가 있습니다. 교회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무엇을 매고 풉니까? 역사적으로 많은 해석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 해석의 권리라고 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해석입니다. 교회 조직에 속하느냐 마느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를 결정한다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의 권징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어떤 사람에게 진정으로 권면했는데도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시킬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이처럼 여러 해석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주시면서 또 다른 가르침을 더해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다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땅에서 어떤 일이든지 마음을 모아 간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마 18:18~20).
예수님께서 교회의 매고 푸는 권세를 말씀하신 후에 “땅에서 두세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매고 푸는 권세는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입니다. 문제해결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두세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임재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것 자체가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늘나라의 삶을 경험합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늘나라의 열쇠로 쓰임을 받는 것은 두세 사람이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교회가 매고 푸는 것을 전도와 용서의 능력이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면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 용서가 됩니다. 믿지 않았던 영혼이 믿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우리를 통해 나타날 때 그 영혼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세 사람이 함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것이 교회가 가진 하늘나라의 열쇠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늘나라를 여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순예배에서 순식구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고, 두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면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분의 임재가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에 주신 이 놀라운 권세를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신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땅에서 매고 푸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역사에 참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온누리교회가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누리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예수님께서 주인 되신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참된 신앙고백이 있는 교회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이 나타나기 원합니다.
삶과 공동체에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 나타나기 원합니다.
모두가 참된 교회로서 주님 앞에 온전히 드려지기 원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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