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해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3~5).
이 말씀 중에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구절을 얼핏 보면 친구들의 노력으로 중풍병자가 구원받은 것처럼 들린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인간의 선행을 인정하는 것이 이신칭의 교리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의 문맥과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가는 공생애 기간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큰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고 보도한다. 예수님이 수많은 기적과 이적으로 하나님 나라 맛보기(foretaste)를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2장은 예수님이 한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풍병자는 혼자 힘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에게 중풍병자를 반드시 예수께로 인도하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수님이 사역하던 가버나움의 집 초입부터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서 더는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중풍병자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지 모른다. 혹은 그의 친구들이 먼저 팔레스타인의 평지붕에 올라가 구멍을 냈을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 부분에 침묵하고 있기에 추측만 할 뿐이다. 필자의 생각은 중풍병자가 주도적으로 친구들에게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풍병자가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에서 타인에게 몸을 맡기고 지붕을 뚫고 내려간다는 것은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무모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그들이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놀라운 반응이 있었다. 예수님이 그들의 대책 없는 행동을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셨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풍병자의 죄 문제와 질병까지 치유해주셨다. <마가복음>에서 하나님 나라는 일관되게 미완료 형태(점진적이고 지속적인 의미)로 묘사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그의 통치와 주되심을 인정할 때 표적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막 1:15, 2:2). 이는 구약의 구원론과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사 40:9~10, 52:7).
하나님의 구원은 매개(media)로써 우리의 믿음을 필요로 하는데 구원론적으로 “그들의 믿음”(5절)은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네 명의 친구들의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중풍병자의 믿음과 친구들의 믿음이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다. 전자로 보면 중풍병자의 구원은 마치 친구들의 선행으로 얻는 것으로 보이지만, 후자로 보면 구원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때의 믿음은 중풍병자나 친구들이 구원의 주체가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공동체적인 믿음과 연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구에 의해 최초의 믿음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이때만큼은 중풍병자에서 시작한 믿음이 그의 친구들과 하나님의 마음이 구원을 위해 일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선행에 의해 구원받았다는 것과 의미가 전혀 다르다. 따라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5절)라는 구절은 그들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에 대한 신뢰와 약속을 수용하고, 행동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그들의 믿음은 다른 성경과 상충하지 않고, 신약의 믿음과도 일치하게 된다(막 9:23~24, 11:22~24, 갈 3:6, 5:22, 롬 1:5, 10:9~10, 고전 15:2). 그래서 예수님이 질병의 치유보다 근원적인 죄 문제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5절).
/ 김상수 목사(대전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