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크리스마스의 진짜 주인공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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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진짜 주인공은 예수님!

 2019-12-29      제12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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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크리스천들이 꼭 알아야 할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
예수님의 성육신 … 하늘 보좌 버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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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지난 25일(수)은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성탄절이었다. 수많은 성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면서 성탄의 기쁨을 만끽했다. 교회와 카페, 대형 쇼핑몰 곳곳에서는 캐럴송이 울려 퍼졌고, 거대하고 화려한 트리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에게 선물 받기를 고대하며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그런데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행사, 노래, 문화 등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즐기고 있을까?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는 흐려지고, 화려한 분위기와 근사한 선물에만 취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크리스천들이 꼭 알아야 할 크리스마스 참된 의미를 다 시 한번 되새겨 보자.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메리 크리스마스!” 
교회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많이 하는 인사말이다. 그런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쓰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Christ’와 미사를 뜻하는 ‘mass’가 합쳐진 단어다. ‘예수님께 미사(예배)를 드린다’는 뜻이다. ‘Merry’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인데 ‘기쁜’ 혹은 ‘즐거움’을 의미한다. 이를 모두 합치면 메리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경배하자’는 의미이다. 성탄절에  주고받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사말이다. 간혹 크리스마스를 ‘X-mas’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X는 그리스어의 그리스도(
Χριστός)의 첫 글자를 의미한다. 
예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크리스마스 인사말이 나라마다 다르다. 스페인 “펠리쓰 나비닷(Feliz Navidad)”, 독일 “프로에 바이나흐텐(Frohe Weihnachten)”, 프랑스 “조이유 노엘(Joyeux Noel)”, 중국은 “셩탄 콰일러(
shèng dàn kuài lè)”, 일본 “메리 쿠리수마수(メリ-クリスマス)”다.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트리?
메시아 아기 예수의 탄생!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밤에 다녀가신대♪”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캐럴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 할아버지가 예수님보다 중요한 인물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K성도도 얼마 전 딸과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딸(6세)이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받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기에, 제가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주인공이지 산타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딸이 ‘아냐. 산타 할아버지는 다 알고 있어. 아빠 그러면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못 받아’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린이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산타 할아버지는 과연 누구일까? 실존 인물일까? 산타클로스는 3세기(약 270년)경 소아시아 지방(지금의 터키)에서 태어나 많은 선행을 베풀고 대주교가 되었던 성 니콜라스(St. Nicholas)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라틴어로는 ‘상투스 니콜라우스’이다. 네덜란드인들이 그를 ‘산 니콜라우스’라고 불렀다. 그들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산테 클라스’라고 불렀고, 오늘날 ‘산타클로스’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산타의 모습은 뚱뚱하다. 붉은 옷과 붉은 모자를 쓰고, 불룩한 배와 곱슬곱슬 흰 수염이 덥수룩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모습은 성 니콜라우스의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된다. 성 니콜라우스가 그려진 중세 벽화를 보면 전혀 살이 찌지 않았다. 오히려 말랐다. 마른 모습의 니콜라우스가 어떻게 뚱뚱하게 변하게 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산타의 모습은 철저한 마케팅의 산물이다. 
처음 산타가 삽화로 등장한 것은 1860년대 토마스 나스트(Thomas Nast)라는 사람이 잡지 <하퍼 위클리>에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남북전쟁 중에 연합군 캠프를 방문하는 산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수염이 덥수룩한 푸짐한 몸매가 인상적인 할아버지다. 다만 옷은 빨간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 
산타의 빨간색 복장은 코카콜라 마케팅에서 비롯됐다. 1931년 코카콜라가 겨울철 콜라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이를 막기 위해 홍보 전략으로 코카콜라의 상징적인 색인 빨간색을 산타클로스에게 입히면서 백화점 홍보에 나선 것이 크게 알려졌다. 하든 선드블롬(Haddon Sundblom)이라는 화가가 자신의 친구를 모델로 그린 이 산타 이미지는 코카콜라의 마케팅과 함께 전 세계 산타의 표준이 되었다. 이 산타클로스 마케팅은 코카콜라의 상업적 초대박 성공의 하나로 기록되었다. 
산타클로스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오래된 설은 고대 이집트에서 동지제(冬至祭)를 지낼 때 사용하던 나뭇가지 장식이 트리라는 것이다. 로마 기원설도 있다. 로마 축제 행렬에서 촛불을 단 월계수 가지 장식 등 성목(聖木)숭배 풍습이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이라고 한다. 
종교개혁가 루터로부터 크리스마스트리가 시작됐다는 설도 있다. 루터가 크리스마스 이브 밤중에 숲속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평소 어둡던 숲이 등불을 켜놓은 듯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깜작 놀랐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롱한 달빛이 소복하게 눈 쌓인 전나무 위에 비쳐서 마치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주변이 환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 루터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은 저 전나무와도 같다. 한 개인은 어둠속의 초라한 나무와도 같지만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주변에 아름다운 빛을 비추일 수 있는 존재이다.”
루터는 이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고, 이 전나무에 눈 모양의 솜과 빛을 발하는 리본과 촛불을 장식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트리의 시작이라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증명할 길은 없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습관적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인사를 하고, 선물을 사서 나눈다. 아이들은 오매불망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손꼽아 기다린다.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 거리 곳곳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는 눈이 부실 정도다. 케이크 가게는 또 어떠한가.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 혹은 연인과 크리스마스를 만끽하기 위하여 케이크를 사느라 북새통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아주 뜻 깊은 날이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중대하고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났을 때 천군천사들이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며 찬양했다(눅 2:13~14). 또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빛난 예수의 별을 보고 찾아와 값비싼 예물(황금, 유향, 몰약)을 바치며 아기 예수에게 경배 드렸다(마 2:1~10).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에 심기가 불편해진 헤롯 왕이 베들레헴과 부근에 있던 2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학살했다. 요셉과 마리아, 아기 예수는 대학살을 피해 이집트에서 피난생활을 해야만 했다(마 2:13~18). 이러한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뒷전인 채 상업화된 분위기에 편승해서 밝고 화려한 면만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크리스천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크리스마스의 진짜 주인공은 산타 할아버지도, 선물도, 케이크도, 반짝반짝 트리도 아니다.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어떤 은혜가 임하게 되었는지를 깊이 되새겨야 한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들이 꼭 알아야 할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이다.   
 

<전문가 기고>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태어난 날이다!
에밀 놀데(1867~1956년)의 ‘거룩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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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르자!”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이 되면 길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넘쳐났다. TV에는 성탄 소재의 드라마나 특집방송이 연일 방영되었다. 유명 가수나 개그맨들이 정통 버전 혹은 코믹 버전의 크리스마스 캐럴송을 담은 앨범을 앞 다퉈 내기도 했다. 성탄절 당일이나 전야에 눈이라도 올라치면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모습이 사라졌다. 저작권법의 영향이 있다. 캐럴 한 곡 틀 때마다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상점이나 카페 소유주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여기다 말로 표현하거나 용어를 사용할 때 인종, 민족, 종교, 성차별 등의 편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자는 움직임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운동’이 만연하면서 상황이 더욱 안 좋아졌다.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운동이 도를 넘어서면서 자신들이 듣기 싫은 소리는 무조건 거부하는 또 다른 차별과 편견을 가져오고 있다. 이제는 소수자가 차별반대라는 이름으로 다수자를 옭죄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시작부터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한 것 같다. 모두들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셨는지.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즐거운 성탄절이었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이 땅에 사랑을 전하러 오신 예수님의 메시지를 잘 받들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실현되기를 기도한다. 
서구에서는 ‘성탄 시기(Christmas tide)’라고 해서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뿐만 아니라 성탄전야인 24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크리스마스 인사와 새해 인사를 함께 한다. 크리스마스카드에 보면 나오는 계절인사(season's greeting)라는 말이 바로 그 의미다.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이어’를 연창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명화로 보는 아기 예수 탄생 
 
오늘 소개할 명화는 표현주의 스타일로 그려진 에밀 놀데(1867~1956년)의 ‘거룩한 밤’이다. 표현주의는 아주 강렬한 원색과 거친 붓 터치, 형태의 대담한 변형과 단순화를 특징으로 하는 미술의 한 유파이다.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표현주의 미술 작품은 에드 바르트 뭉크(1868~1944년)가 그린 ‘절규’이다. 작품 절규를 생각하면 표현주의 미술의 특징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그린 에밀 놀데의 ‘거룩한 밤’을 한번 보자. 기존의 화가들이 그린 성화(聖?)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낄 것이다. 성서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성경 속 예수 탄생 스토리를 매우 경건하게 묘사하려 했던 전통을 이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 처녀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리라고 전할 때, 처음에는 놀라고 당혹했으나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아멘”으로 하늘 아버지의 뜻을 받들던 마리아의 순종적인 모습을 그렸던 수많은 수태고지(受胎告知) 그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마리아는 사랑을 상징하는 빨간 치마에,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녀의 기다랗게 우뚝 솟은 코는 전형적인 히브리(유태) 여인의 그것이다. 아주 검고 긴 머리, 커다란 눈동자, 관능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도톰하게 붉은 입술은 그녀의 글래머러스한 가슴과 함께 새 생명을 잉태했다가 갓 출산한 산모 마리아의 건강함을 잘 보여준다. 
아직 핏덩이 상태인, 막 세상에 나온 어린 예수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의 탄생은 장차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아기 예수를 번쩍 들어 세상에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음을 선포하는 이 장면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에서 무파샤왕의 아들 심바의 탄생을 세상에 선포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세상은 아직 어둡다. 그러나 암흑의 세상을 밝게 비출 세상의 빛 메시아가 막 태어났으므로 어두운 세상은 곧 환하게 밝아질 것이다. 에밀 놀데는 아기 예수의 뒤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을 배치함으로써 구세주 탄생을 다 시 한번 강조한다. 저 언덕 너머로는 천사로부터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목동들이 오고 있다. 아마도 저 동쪽 지방 멀리 어딘가 에서는 동방박사들이 저 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한 대장정의 짐을 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마구간에서는 겸손함을 상징하는 나귀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 
순수한 10대 소녀였던 마리아는 자신의 몸을 열어 하늘 아버지의 말씀이 육화(肉化)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2천 년 전, 하늘 아버지가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오실 수 있도록 하는데 헌신한 것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몸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이 육화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가 인간 세상에서 가르치고 치유하고 전파하는 사역을 통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데 일조했다. 그렇다면 2천 년이 지난 우리는 뭘 해야 할까? 마리아가 자신의 몸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육신의 토대가 되었다면, 우리는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아기 예수 탄생의 그 의미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혼돈스럽다. 지난주 성탄절을 맞아 다 시 한번 나를 돌아보고 성탄의 의미를 묵상했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다. 단순히 즐거운 공휴일(Happy Holidays)로 불러서는 안 된다. 물론 크리스마스는 즐거워야 한다(Merry Christmas). 그렇다고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크리스마스를 할로윈데이 파티처럼 흥청망청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법이나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영향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화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체 교단 차원의 치밀한 정책수립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치고 나가는 저돌성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고도의 전략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거대한 문화전쟁이자 영적 전쟁이 될 것이다. 이 문화전쟁과 영적전쟁에서 승리해서 거리마다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가 다시 넘쳐나고,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good news)을 마음껏 전하며, 온 맘 다해 찬양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성탄절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크리스마스의 진짜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근본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셨던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태어나셔야 한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온전히 새롭게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다시 한 번 경배 드리고 찬양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들도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되었기를, 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 김진국 집사(융합심리학연구소장, 한강공동체)

<발문>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크리스마스의 진짜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 닮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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