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또 한 번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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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아이들

 2019-11-10      제12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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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자!
 
만 18세가 되면 아동복지시설 퇴소 … 4명 중 1명 빈곤층 전락 
고아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크리스천의 도리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만 18세가 되면 퇴소해야 한다. 그때부터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해야만 한다. 그때 누군가의 관심과 돌봄, 적절한 도움이 제공된다면 그 힘들고 외롭고 처절한 싸움이 한결 수월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고아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크리스천의 경건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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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가 되면 보육원을 퇴소해야 하는 이들을 ‘보호 종료 아동’이라고 한다. 보호 종료 아동이란 아동복지법 제16조에 따라 아동복지시설에 살고 있는 보호대상 아동의 연령이 만 18세에 달하였거나 보호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인정되면 관할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라 아동의 보호 조치를 종료하거나 해당 시설에서 퇴소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2,470명의 보호 종료 아동들이 보육원 등의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했다. 성년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어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빨리 험난한 사회로 나가야만 한다. 또 다른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제도라고 하지만 정말 안타깝고, 어떻게 보면 잔인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자기 몸 누일 곳 찾아 전전긍긍…
보호 종료 아동들의 너무나 열악한 현실
 
가장 큰 문제는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란 이들이 보호 종료가 되어 퇴소한 다음 발생한다.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청소년 4명 중 1명이 빈곤층이나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에게는 자립정착금이 지원된다. 자립정착금은 보호 종료 아동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지원금인데 1인당 300~500만 원 정도다. 자립정착금이 이보다 적거나 아예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자립정착금을 지원하는 기관이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이다 보니 지역에 따라 지원 금액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에게 지원되는 자립정착금이 너무 적다. 서울 신림동 원룸 보증금이 500만 원에 월세가 40~50만 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자립정착금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지난 4월부터 보호종료아동(퇴소 2년 이내)들에게 월 30만원씩 ‘자립수당’이 지급되고는 있지만, 정착금과 수당만으로는 비싼 보증금과 월세를 감당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을 위한 저렴한 임대주택이나 자립지원시설 등이 있지만 그곳에 입소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보호종료 청소년 자립지원 방안’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보호 종료 조치된 인원이 2,593명이다. 그 중에서 835명(32%)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LH임대주택이나 자립지원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에서 살고 있다. 나머지 68%는 스스로 월세를 부담하거나 기숙사, 친인척 집 등에서 머무르고 있다. 10명 중 7명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을 위한 자립지원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자립지원시설은 아동보호시설을 퇴소한 이후 거주지를 마련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기관인데 전국에 12개 밖에 없다. 시설 수용정원은 221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다수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이 자신의 몸 누일 곳을 찾아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의 눈물
경제적 어려움, 주거문제, 심리적 부담감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거주지뿐만이 아니다. 진로의 제한도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대다수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학 진학보다 취업을 선택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발간한 <보호종료 청소년 자립지원 방안>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전체 보호 종료 아동의 대학(전문대 이상) 진학률은 13.7%에 그쳤다. 2017년 우리나라 전체 고교 졸업자들의 대학진학률이 68.9%인데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대학진학률도 낮지만 또래들보다 훨씬 빨리 사회로 나오다보니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2016 보호종결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2017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50.9%가 단순노무직, 서비스직에서 일하고 있다. 임금 또한 박하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의 월평균 수입은 123만원이었다. 2017년 최저임금(약 135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지출은 클 수밖에 없다. 월세 등 생활비로 월평균 138만원을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정적인 자립을 위한 자산을 형성하기는커녕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앞서 언급한대로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4명 중 1명이 빈곤층이나 취약계층으로 전락할까.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사회보장정보원에서 제출받은 ‘시설퇴소아동의 기초수급 및 차상위계층 수급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5년 동안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중에서 기초생활수급자 혹은 차상위계층이 된 사람이 24.4%나 됐다. 빈곤층이 되는 속도 또한 빨랐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88.5%가 단 6개월 만에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통계도 있다. 2016년 보호 종결 아동 자립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어려움(31.1%)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주거문제(24.2%), 심리적 부담감(10.1%), 돈 관리 지식부족(7.7%) 등의 순이었다.   
 
태어난 지 6,570일이 되면 
다시 혼자가 되는 그들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지 6,570일이 되면 아동복지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들은 싫든 좋든 홀로 세상에 나가야 한다. 그때부터 외롭고, 힘들고, 처절한 싸움이 시작된다. 그들은 아마 가장 빨리 빈곤의 덫에 허덕이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디 경제적 문제뿐이겠는가. 외롭고, 쓸쓸한 그 심정은 또 어떠한가. 부모 없다고, 시설에서 자랐다고 기피하거나 업신여기고,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시선은 어찌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진리가 있다.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랐어도, 부모가 없어도,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그들은 분명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귀하디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교회와 크리스천 말고는 그 아름다운 일을 해낼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그들을 어떻게 도우면 될까? 오창화 팀장(사회선교부 입양커뮤니티 제이홈)과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가 그 방법을 제시했다. 오창화 팀장은 멘토가 되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은 그야말로 기댈 곳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입양된 사람들이잖아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엄청난 빚을 감당하셨는데, 정작 우리는 기댈 곳 하나 없는 그들의 빚을 갚아줄 생각조차 못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아동복지시설과 결연을 맺어서 그들의 멘토가 되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는 아동복지설 퇴소자들에게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가족이 되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혼자라는 사실만큼 서러운 게 없습니다.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에게 정말 따뜻하고, 포근하고, 사랑을 듬뿍 주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다.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9). 
또한 성경은 고아를 돌보는 것이 곧 크리스천의 경건한 삶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전문가 기고>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동의 이름
우리가 100만 고아들의 눈물을 닦아줍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동의 이름이 무엇일까? 나는 고아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지켜주고, 지지해주고, 사랑해줘야 할 부모가 버린 존재가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인 고아이다. 
나도 고아이다. 1985년 화창한 어느 여름 당시 7살이던 나를 어머니가 고속터미널에 데려갔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사라졌는데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오지 않았고, 그 길로 나는 시설에 넘겨졌다. 나를 발견한 경찰은 유기범(부모)에 대한 조사나 실종신고 혹은 어떠한 조치나 기록도 하지 않고 그냥 시설에 넘겨버렸다. 어머니의 손을 놓친 지 불과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나는 가장 불쌍한 이름인 ‘고아’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만약 그때 조금만 인내를 갖고 부모를 찾아줬으면 어땠을까? 고아원에 내던지듯 보내지 말고 입양할 부모를 만나게 해줬다면 고아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다니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시설(보육원) 생활은 정말로 비참했다.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사랑은 고사하고 조금의 관심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는 생존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일을 시키면 땀을 가장 많이 흘려야 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힘 있는 선배한테 상납해야 한다. 선배들의 눈을 절대로 봐서도 안 된다. 거짓말 같지만 선배들이 똥을 먹으라면 먹는 시늉을 해야 했다. 안 그러면 진짜 죽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배들에게 대들었다가 호미에 찍혀서 평생 뇌전증을 안고 사는 아이들을 종종 봤다. 힘을 키워서 싸움을 잘하지 않는 한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해야만 살 수 있었다. 이쯤에서 궁금할 것이다. 원장님과 시설의 선생님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문제가 외부에 알려지면 그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아원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아무리 심각해도 얼른 덮고 무마시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이처럼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당시 고아원 동기가 이런 말을 했을 정도다. 
“고아원에서 맞은 것밖에 기억나는 게 없다. 고아원의 ‘고’자도 듣기 싫다.”
 
만 18세, 퇴소 후에 찾아온 더 큰 고난 
 
만 18세가 되었다. 나도 여느 보육원 동기들처럼 시설을 퇴소해서 사회로 나오게 되었다. 의지할 곳도, 상담할 곳도 없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겨우 지하 단칸방에서 보육원 동생들 10명과 칼잠을 자며 힘들게 살았다. 대학 졸업 이후 취업을 하려고 면접을 볼라치면 고아라는 주홍글씨가 취업의 문을 막았다. 그나마 선심을 베풀 듯 동정하는 마음으로 고용한 회사와 사람들도 내가 잘못하면 “역시 고아는 안 돼”라고 쓰디쓴 말을 내뱉으며 해고했다. 
외롭고 힘들었던 나는 빨리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정말 운 좋게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여자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부모라도 있으면 어떻게 생각해 보겠는데, 고아라 안 되겠다.”
지금의 아내는 두 번째 여자친구이다. 다행히 장인, 장모님께서 입양에 대한 생각을 갖고 계셨던 분이셨다. 장인, 장모님은 아들을 입양하는 마음으로 고아 사위를 맞이해주셨다. 그 기쁨과 감격도 잠시, 이번에는 아내와 단둘이 살 신혼집을 구하는 게 문제였다. 살 집이 있어야 하는데 모아둔 돈이 없었다. 결국 처남이 살던 전세집 방 한 칸을 빌려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동복지시설 퇴소자에 대한 주거 지원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었다. 임대아파트나 취약계층의 주거지원 프로그램을 알아봤는데 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저소득층에 대한 혜택만 있지 나 같은 고아나 보육원 퇴소자들을 위한 혜택은 없었다. 얼마나 막막하고 서러웠던지 보건복지부에 전화를 걸어 울면서 호소했던 기억이 있다.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들을 위한 집을 마련해달라고 애원했다. 
보육원이 폐쇄 됐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지 못했던 선배가 하나 있었다. 그 선배는 폐허가 된 시설에서 전전긍긍했다. 지금은 생사를 알 수 없다. 그 선배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살아있을까? 죽었을까? 고아는 죽는 순간에도 철저히 외로운 존재이다. 무연고자 사망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무연고자 장례는 가족이 나타날 때까지 10년 동안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가 기간이 지나도 가족에게 인도되지 못하면 공원부지에 매장되거나 자연장으로 처리된다. 고아한테 가족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슬퍼하는 이 하나 없는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고아들의 슬픈 숙명이다.   
 
고아는 그저 피해자일뿐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고아를 단순히 불쌍한 아이, 자선을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동정했다. 이는 고아들의 눈물과 한은 외면한 일방적 접근이다. 고아는 취약계층이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일방적으로 정의하고, 걸인에게 적선하듯 동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평생 고마워하며 살아라”, “부모도 버린 너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 것만으로 평생 은혜를 잊지 말고 살아라”며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고아는 명백한 피해자이다. 1차 가해자는 그들을 버린 부모이고, 2차 가해자는 그런 부모의 유기범죄를 제재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한 국가이며, 3차 가해자는 ‘오죽하면 버렸겠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회이다. 결국 가해자는 우리 모두인 것이다.  
고아들은 만 18세가 되면 더욱 냉혹한 현실에 처하게 된다. 보호 종료가 돼 그동안 살아온 시설에서 퇴소해야 한다. 보육원 퇴소자들의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 백석대 교정보안학과 김안식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교도소 수용자들의 경우 교정시설 퇴소 이후 절반 이상이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로 들어오는데 반해, 보육원 퇴소자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서 80% 이상이 교정시설로 다시 들어온다. 한번 보육원을 퇴소하면 더 이상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갈 곳이 그곳밖에 없다. 
교도소, 군대, 보육원 등 대표적인 수용시설의 처우를 비교해 봐도 고아들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알 수 있다. 세 군데 수용시설 모두 식사를 제공해주고, 옷을 입혀주고, 잠을 재워주고, 소정의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도소와 군대의 경우 상담 프로그램이 있지만 보육원에서는 원아들의 상담이 미비하다. 범죄자와 군인들은 이유야 어찌됐든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지만, 고아는 부모로부터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다.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인권보호 및 감독 실태도 교도소와 군대에 비해 보육원이 더 나쁘다. 폭력과 학대 정도는 또 어떠한가? 교도소가 가장 적고 다음이 군대, 그리고 보육원이다. 보육원에서 발생하는 학대가 가장 많다. 시설 안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에도 차이가 있다. 교도소와 군대는 피해보상을 해주지만 보육원에서는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세 군데 수용시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퇴소 이후 대책이다. 교도소와 군대를 퇴소하면 가족들에게 돌아가지만, 고아들은 보육원을 퇴소하면 갈 곳이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보육원을 거쳐 성인이 된 아이들의 자립률이 7%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3%가 교정시설에 수용되거나 노숙을 하는 셈이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7). 
여기서 ‘신원(伸冤)’의 의미는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버리다’는 뜻이다. 이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자식을 보육원 등의 시설에 맡기고 나 몰라라 한 부모들은 뒤늦게라도 그 자녀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했으면 좋겠다. 국가는 고아들이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퇴소자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강화해야 한다. 보호자도 없고, 제대로 된 사회적응 교육도 못 받고 거리로 내몰리는 고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정해져있다. 범죄에 빠지거나, 윤락가로 빠지거나, 생활고를 못 이겨 사채를 쓰고 빚더미에 앉는 것이다. 그들을 위한 멘토링, 상담 프로그램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사회는 ‘오죽하면 버렸겠니’라는 폭언을 함으로써 고아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을 삼가야 한다. 그들이 보육원 퇴소 이후에도 사회에 잘 적응해서 정상적인 궤도에 오를 때까지 인내와 배려,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아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고아들을 돌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고통 받던 60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출해내셨다. 이 땅에는 100만 명의 고아들이 존재한다. 100만 고아들의 한과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들을 가나안 땅에 데리고 들어가라!” 
/ 조윤환 대표(고아권익연대, 1급 사회복지사)
 
 
<발문>
“이 땅에는 100만 명의 고아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한과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 
그들을 가나안 땅에 데리고 들어가라!”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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