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2019년 추석 감사예배 및 추모예배

국내캠퍼스

2019년 추석 감사예배 및 추모예배

 2019-09-06      제1261호

공유하기


board image
                                                                        
* 가정예배 지침

1) 제사는 죽은 영혼에 대한 것이나 추모예배는 고인을 회고하며 유일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본분을 지켜 제사상에 절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2) 감사예배의 경우 가족들이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립니다. 추모예배의 경우 고인의 사진을 세워 놓고 고인이 쓰던 성경, 찬송가 또는 유품을 펼쳐 놓은 뒤 주변을 꽃으로 장식합니다. 향이나 촛불을 켜지 않으며, 지방을 쓰거나 음식상을 차려 놓지 않습니다. 
3) 예배 후 함께 식사를 나눈 뒤 소박한 상품과 함께 가족별 장기자랑을 하거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작은 사랑을 실천한다면 보다 더 의미 있는 명절이 될 것입니다. 
 
 
감사예배순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 경배와 찬양 67장(날 구원 하신 주 감사) ............................ 다같이 
기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시편 118:28~29 ..................................... 가족 중에서
설교 ............................................ 사랑하기 때문에 ............................................ 설교자
감사와 기도제목 나누기 ....................................................................................... 다같이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기도제목을 나눈다.
중보기도 ............................................................................................................ 다같이
찬송 .......................... 경배와 찬양 160장(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 다같이 
주기도문 ............................................................................................................ 다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들어가는 말   
누군가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도대체 그 사람의 어떤 점이 좋아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 자체를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 때문에 주어지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감사하겠노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작은 것 하나를 주셔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선물 그 자체에 대한 만족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크고 작은 감사의 내용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 자체가 시시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우리의 상황과 현실에 상관없이 언제나 동일하게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는 사실 때문에 한없이 감사한 것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이러한 마음은 고난과 역경에 대해서도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합니다. 위기와 시련이라는 구체적인 사실들에만 매달려 괴로워하기보다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이루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거듭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로만 작용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드는 기회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주님 밖에서 살아가는 형통함보다 행복한 것이며, 주님 앞에서 쓰라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주님의 등 뒤에서 웃는 것보다는 훨씬 희망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주를 의지하며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말할 수 없이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고 싶어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 소원이 생겨나게 됩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주님께 기쁨이 될까? 어떻게 살아야 주의 이름을 높여 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래서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내게 너무나 큰 소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쁘시다면 나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라는 진실한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주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삶입니다. 
 
나가는 말   
오늘 추석 명절, 우리 가족 모두가 이렇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합니다. 잘했다면 좋지만 못했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사랑하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는 이제 전심으로 하나님께 드려져서 한평생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추모예배순서
 
오늘 우리는 고(故) OOO님을 추모하며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시간 신령과 진리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겠습니다. 
묵도 ............................................. 시편 145:1-4 ............................................... 다같이
찬송 .................................. 찬 435장(나의 영원하신 기업)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같이
대표기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마태복음 16:25~28 ................................... 가족 중에서
설교 ........................................ 주를 위해 사는 인생 .......................................... 설교자
찬송 .................................. 찬 380장(나의 생명 되신 주) .................................... 다같이 
추모하는 이야기 ................................................................................................. 다같이 
고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나 유품을 통해 고인에 관한 추억을 나눈다. 
주기도문 ............................................................................................................ 다같이
 
 
주를 위해 사는 인생
 
들어가는 말
고인이 우리의 곁을 떠나가신지 OO주기를 맞이하여 드리는 이 추모예배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이며 우리 모두에게는 하늘의 위로와 평안이 넘치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고인을 추모하는 이 시간은 단지 지나간 고인의 과거를 회상하는 자리만이 아니라 아직 삶의 여정 가운데 남겨진 우리 모두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잃는 사람을 얻게 될 것이다”(25-26절) 
예수님은 온 세상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기의 목숨이며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밝히셨지만(26절), 이렇게 소중한 목숨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잃으면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5절, 막 8:35).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있을 수 없지만 그 목숨이야말로 오직 주와 하나님으로부터만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기에 진리가 됩니다. 따라서 정말 목숨이 소중하다면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주신 분을 위해 사는 것이 합당한 이치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지 지금이라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다시 올 것이다”(27절) 
곧이어 예수님은 자신의 다시 오심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처음 오심은 베들레헴의 구유, 비천함 가운데 오셨지만 그의 다시 오심은 전능하신 심판주로 영광중에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모든 사람은 그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의 다시 오심이 결코 막연한 미래의 사건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비롭게도 이 미래는 벌써 현재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요 3:18).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며 사는 것 자체가 벌써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며, 아직 미약할지라도 주를 믿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자체가 벌써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영광이 됩니다. 
“인자가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28절)
예수님은 당시 말씀을 듣던 사람들 가운데서 죽기 전에 주의 다시 오심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확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시의 사람들은 이미 모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지나친 과장법이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의미는 단지 물리적인 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은 궁극적으로 미래에 있지만 그 실상은 성도의 믿음 안에서 이미 현재 속에서 역사하는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도들은 모두 이러한 신앙의 신비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녁식탁의 행복과 기쁨은 밥을 먹는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밥 짓는 냄새가 문 앞까지 흘러가는 순간에도 시작된 것이며, 동네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에게 “얘들아! 들어와 밥 먹자”라는 어머니 목소리에서부터 벌써 그 행복과 안식은 시작된 것입니다. 
 
나가는 말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단순히 종교적 생활을 실천하는 작은 주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이, 세상의 마지막이 벌써 우리 삶에 들어와 있다고 확신한다면 이제 우리의 목숨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결단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인을 추모하는 것은 여기 남아있는 우리들이 이제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고인을 품에 안으시고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와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 이해영 목사(남양주 온누리교회)

 작성자   정현주 기자

4,203개 글

리스트보기
검색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1 2 3 4 5 6 7 8 9 10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