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기획_크리스천의 삶과 신앙시리즈2. 노동의 품위(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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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크리스천의 삶과 신앙시리즈2. 노동의 품위(땀의 가치)

 2019-06-09      제12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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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크리스천의 삶과 신앙시리즈
2. 노동의 품위(땀의 가치)  

땀 흘리고 수고하는 모든 노동은 귀하다
누군가의 땀의 가치를 비하하거나 조롱하지 말라!
직업의 귀천 따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품위’

 

“특별한 기술도 지식도 필요 없는데 국회의원보다 연봉이 많다.”
얼마 전 한 시의원이 자신의 월급보다 환경미화원의 월급이 더 많다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없다는 인식이 아직도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짱깨, 철가방, 때밀이, 잡상인, 딴따라 등 특정 직업과 직업인을 비하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면 몹시 곤란하다. 미개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땀 흘리고 수고하는 모든 노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귀하다. 이것은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진리요, 꼭 갖춰야할 진정한 품위다. 누군가의 땀의 가치를 그 어떤 이유로도 비하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된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마저도 직업과 사회적 수준으로 평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여기, 자칭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가 있다. 길거리에서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을 보고 자칭 나쁜 부모가 말했다. “너 공부 안하면 저런 사람 되는 거야.” 옆에 있던 자칭 좋은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저런 사람도 잘 살도록 도와줘야 해.”
누가 나쁜 부모이고, 누가 좋은 부모일까? 둘 다 잘못됐다. 자칭 나쁜 부모와 좋은 부모 모두 환경미화원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느끼고 있고,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자녀가 어떻게 성장할까? 모르긴 몰라도 부모 힘 빠지면 무시하고 괄시하는 정도는 거뜬히 하지 않을까? 보고 배운 게 그래서 무섭다.

 

아무렇지 않게 비하하는 직업?
아무나 될 수 없는 귀한 직업!

 

수많은 사람들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까?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재벌, 군 복무 잘하고 오라고 보낸 남의 집 귀한 아들을 하인 부리듯 한 직속상관 부부, 하청기업이나 직급 상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상관 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갑질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다.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적어도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인 것은 분명하다.
아직도 일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자극을 준다는 명분으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커서 저렇게 살고 싶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런 사람 된다?”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말을 해댄다. 그런데 그 부모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세상에서 거저 갖는 직업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경북 구미시에서 환경관리원 여섯 명을 모집하는데 185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이 30.8대 1이나 됐다. 2017년 21.7대 1, 2018년 17.2대 1을 훌쩍 넘는 역대 가장 높은 경쟁률이었다. 눈여겨볼 점은 지원자들의 학력이다. 대졸 이상이 52%를 차지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타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울산 동구 환경미화원을 세 명 채용하는데 113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이 무려 37.6대 1이었다. 2017년 경쟁률과 비교했을 때 약 두 배 가량 높았다. 지원자의 학력도 전문대졸 이상이 58명으로 과반을 넘었다. 석사학위 소지자도 두 명이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비하하는 직업이 아니라 아무나 될 수 없는 귀한 직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환경미화원, 이삿짐센터 일꾼, 정화조 청소하는 일, 고층빌딩 유리 닦는 일 등은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그 일이 볼품없다거나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결코 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워서 안하는 일을 대신 맡아 해주는 감사한 사람들이다. 모두가 ‘사’자 들어가는 직업만 선택한다면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그들도 육체노동자였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위인들도 소위 말하는 육체노동자였다. 엘리야에 이어 놀라운 이적을 행한 선지자 엘리사는 농부였다.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12쌍의 황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왕상 19:19).
아모스 선지자도 목자이자 농부였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암 7:14).
사도 바울은 텐트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 이름으로는 사울, 로마식 이름으로는 바울이다. 그는 날 때부터 로마 시민(행 22:25~28)이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고, 베냐민 지파인 순수 히브리인이며,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유대에 정통한 자라고 강조했다(롬 11:1, 고후 11:22, 갈 1:14, 빌 3:5~6). 바울은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던 가말리엘 학파의 율법교사(행 22:3)이자 로마 시민이며,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교를 공부한 신분과 지식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바울의 직업이 천막 만드는 것이었다.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파 유대인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특이한 사항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허용 가능한 직업이 구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죽으로 천막을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천한 직업이었다. “죽은 동물 가죽 만지는 것은 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율법에 열심인 자들에게 바울의 직업은 혐오와 천대의 대상이었다.
로마 시민이자 지식인인 바울이 노동을 경멸하는 로마 문화에서 스스로 육체노동자가 되었다. 바울이 율법을 어기는 비천하고 혐오스런 직업을 생업으로 택한 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 나라의 전파를 위해 바울은 스스로 낮아졌다. 바울을 두고 누가 비천한 육체노동자라고 폄하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 또한 공생애 시작하기 전에 직업이 목수셨다. 육체노동자였다.

 

직업의 귀천이 아니라
‘역할(소명)’이 다를 뿐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자신의 구두를 직접 닦았다고 한다. 비서관이 그것을 만류하자 링컨은 “자신의 구두를 닦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 세상에 천한 일이란 없네. 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교회에서조차 자신이나 배우자, 자녀의 학벌과 직업, 수입의 많고 적음으로 우월감을 갖거나 혹은 주눅이 드는 경우가 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홍범식 장로(두란노해외선교회)가 이와 관련한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제가 처음 교회에 왔을 때 하용조 목사님이 그러셨어요. 쟁쟁한 사람들 사이에서 택시기사였던 내가 교회에 잘 적응할까 걱정했는데 잘 해줘서 감사하다고요. 나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그분들 사이에서 자격지심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이고,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정체성은 직업의 귀천에 있지 않아요. 그 일을 주님께 하듯 열심과 성심으로 하느냐에 달려있어요.”
흘리는 땀의 가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게 아니라 역할이 다를 뿐이다. 직업에 따라 다른 사람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행동은 오히려 자신이 천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사람에게서 진정한 품격이 묻어 나온다. 물질의 많고 적음, 사회적 지위 등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은 신성하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애 동안 해 아래에서 먹고 마시고 열심히 일해서 보람을 얻는 것이 가장 선하고 분수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받은 몫이다”(전 5:18).
“무엇이든지 네 손으로 할 만한 일을 찾으면 온 힘을 다해 하여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전 9:10).

 

 작성자   김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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