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해설
“사람들이 이 여인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 26:13)
예수님이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인이 와서 값진 향유를 그분의 머리에 부었다. 이 여인이 너무나 값비싼 향유를 낭비하는 것을 본 제자들이 분개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이 한 일은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함이며,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인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 26:13)”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 여인의 이름을 모른다. 성경이 그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녀의 이름보다 그 행동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이름 대신 ‘자신의 것을 모두 드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이라고 기억한다. 이 여인을 이렇게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이름보다 더 정체성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 될 것이다.
성경이 이 여인의 이름을 감춘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의 이름이 드러났다면 모든 수치스러운 과거 일도 함께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과 같은 영광스러운 이름도, 그 이름과 함께 그의 간음과 살인죄에 대한 기억이 소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의 이름을 감춘 것은 그녀의 이름으로 이룬 모든 삶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은 것이 될 수 있다. 마치 그리스도인이 과거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도말하고 주님의 신부로 새롭게 탄생한 것처럼, 감춰진 이름은 이 여인에게 새로운 신분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한 게 아닐까?
성경에는 이 여인처럼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많은 하나님의 사람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 모두가 이 여인처럼 후대에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배경처럼 등장하다 사라진 것 같은 이 사람들을 통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 우리 대부분 널리 알려진 이름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평범한 삶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서로 연결된 반드시 필요한 몸의 한 지체와 같은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제자들을 통해 우리를 제자의 자리로 초청한다. 또한 그들의 삶이 그때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 우리와 연결되어 현재 삶에 적용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름도 성경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일이 특정 시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기 때문 아닐까?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처럼, 지금도 예수님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망하고 자신의 자리를 떠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만나 주고 계신다.
성경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알게 하신다. 감춰진 이름으로 인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지금 이곳에서도 일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처럼 새로운 정체성을 입고 영원히 기억되기도 한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인지도 알게 하신다.
감춰진 이름들은 우리가 사람에게 불리는 이름에 갇혀 있지 않고, 그 이름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평범한 우리 모두 추구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있다. 지금도 이 땅에서 이뤄지는 하나님 나라에서 낭비처럼 보이는 헌신을 하나님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을 기억하시는 것처럼,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이은일 장로(성동광진공동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