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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예술] 기독교 세계관과 예술이 교차하는 방식

 2024-04-06      제1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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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예술
 
기독교 세계관과 예술이 교차하는 방식
 
우리는 교회에서 활동과 세상에서 삶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저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기 일, 직업, 학문영역에서 크리스천의 세계관을 담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필자도 작업과 신앙을 연결하는데 많이 고민했다. 마치 독립투사가 된 것처럼 혹은 커밍아웃하듯이 나름 비장한 결단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결단의 이유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로 교육받은 나의 세계관 교정이 필요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종교적 성향의 작업에 대한 동시대 예술 현장의 거북한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인종, 성별, 민족성, 성 지향성과 같은 개인적 정체성의 표현 등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지금의 세상에서 종교는 마지막 금기로 남아있다. 소수민족들의 토속신앙이나 무속마저 통용되는 동시대 미술에서 기독교와 같은 거대종교가 설 자리가 없다. 기독교적 표현이 유일하게 허락된 자리는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비판하는 경우뿐이다. 이외에도 커밍아웃을 고민했던 더 큰 이유는 세상의 언어,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통용되는 어법으로 복음과 신앙을 이야기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제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전문용어를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그처럼 세상의 언어, 동시대 미술 현장의 언어로 기독교 세계관을 전할 수는 없을까? 그리스도인으로서 특별은총을 받은 우리는 “일반은총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의 각 영역에 들어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확보하라”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강령처럼, 교회 안에 게토화 되지 않으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담아낼 방법이 없을까?
예술과 신앙에 대한 이러한 고민은 비단 필자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예술작품을 대하는 많은 성도가 유사한 고민이 있을 것이다. 기독교 문학의 권위자이자 성서의 문학적 접근을 시도한 리랜드 라이켄(Leland Ryken)은 예술과 기독교의 관계를 “경건한 스타일이나 경건하지 않은 스타일 같은 것은 없다”고 한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의 주장을 인용해서 설명했다. 그러면서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예술은 성경처럼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제안하는 예술과 기독교 신앙이 교차하는 세가지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 세계관을 명백히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예술은 작품의 주제가 전적으로 기독교적인 예술, 즉 그리스도의 인격, 기독교 교리, 또는 성경의 인물과 사건을 다룬다. 또한 기독교 어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예술이 신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을 할 때 그것은 기독교 예술로 식별된다. 둘째, 암시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표현하는 예술이 있다. 성경 또는 기독교 교리나 기독교 상징을 암시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상징이 의미하는 바가 작품의 주제나 의미와 연관되는 경우에는 암시적 요소가 기독교 세계관적 예술을 정의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현대 예술가들이 기독교 이미지나 기독교 어휘를 사용해서 비기독교적이거나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표현하기에 이는 분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포괄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드러내는 예술이다. 기독교 신앙이나 성경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포괄적이고 내재적 관점에서 기독교의 가치와 시각을 전달한다. 암시적 관점의 예술이 어느 정도 기독교적 요소를 표현하는 것에 비해, 이 경우는 기독교에 대한 직접적 텍스트나 표현이 없다는 게 그 특징이다. 
더 나아가 라이켄은 예술가의 의도를 넘어서 그리스도인이 기독교 세계관의 렌즈로 작품을 볼 때, 그 작품이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몇 년 전 어떤 사극을 시청하다가 드라마의 전개 과정과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에스더와 많이 닮아서 기독교 세계관이 반영된 드라마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나 프로듀서가 기독교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에스더서>를 읽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라이켄의 관점에서 이러한 예술을 기독교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일반은총의 관점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본다면 조금은 더 자유롭게, 더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기독교와 예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방식이 크리스천 예술가들이 세상에 침투해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 시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예술의 외연을 넓히는 전략 아닐까? 
/ 김지혜 권사(온누리세계관학교, 서빙고공동체)
 

 작성자   김다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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