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질문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축복이다!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잘 이겨낼 수 있을까요? 고난을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걸까요?”
신앙과 삶이 분리될 수 없다. 신앙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신앙이다. 그래서 삶의 형편과 상황이 때로 믿음의 뿌리를 흔들기도 하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는 지지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난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실제적인 기도제목이다. 어쩌면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고난은 현실의 문제다.
많은 사람이 고난 없는 평탄한 삶을 원한다. 하지만 진정한 고난의 의미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의 단편적인 바람일 뿐이다. 눈이 많이 덮일수록 마른 땅이 물을 품게 되고, 추운 겨울이 지나야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이 오기 마련이다. 내 삶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고난들은 믿음을 더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든다. 고난의 시간을 보내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으며, 여전히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고난은 축복이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주시는 게 아니다. 우리의 인생을 멸하기 위해 허락하시는 것도 아니다. C.S.루이스가 이야기했듯이, 고난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난 속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의 풍랑을 통해 듣게 되는 게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나 유대인의 사도에서 그리스도의 사도로 인생이 변화되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대한 복음전도자로 쓰임 받았던 그에게도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육체의 가시’다. 그에게도 고난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육체의 가시를 고난이 아닌 축복으로 여겼다. 그 가시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부어주신 은혜와 계시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가 교만해지지 않게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하나님이 바울에게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지닌 육체의 가시로 인해 불평하고 절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의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크게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능력을 자랑하는 축복의 통로로 삼았다.
우리는 삶에 고난이 찾아올 때 ‘왜’에 집중한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을까?”, “도대체 왜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걸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의 키워드를 바꿔야 한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로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난의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방법이다. 상황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해야 한다.
고난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다시 사는 축복의 통로다. 고난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는 곳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거룩한 현장이다. 고난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고난은 축복이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 12:9a).
/ 김한국 목사(인천WEB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