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그녀들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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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2019-02-22      제12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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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
 
그녀들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바라보는 시선 달라지기를
              
최근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삶을 지원하는 지원금 책정문제가 불거지면서 찬반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대구와 인천에서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되면서 그곳을 터전으로 살던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지원금 1인당 2천만 원(생계비 100만원씩 10개월, 이주지원비 700만원, 직업훈련비 300만원)을 책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충돌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지원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글에 인간으로서의 그녀들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사람’보다 ‘세금’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글들이 정책을 만들어가는 이들을 교란시키는 대중의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글이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을 바라보는 교회와 크리스천의 시선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성매매 피해 여성일 수밖에 없는 이유
 
성매매 피해 여성들은 ‘불법행위’라는 범주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낙인으로 인해 가족은 물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보니 긴 세월동안 최소한의 권리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대부분의 성매매 피해 여성들은 가족에게 자신이 어떤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비밀에 부치고 있다. 그래서 성매매 중에 일어나는 비인격적인 대우나 불이익에 대해 의논할 대상이 없다. 혹시 가족에게 전해져도 주변에 숨기기만 급급할 뿐 그녀들을 지지해 주거나 대변해주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성매매 현장은 성 구매 남성들의 성욕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푸는 비인격적 폭력의 공간, 수입을 위해 어떠한 여성도 마다하지 않는 업주들의 폭주 구간이 되고 말았다. 성 구매 남성들의 선호나 지급수준에 따라 여성의 외모를 A급부터 끝 모를 등급으로 가치폄하 하고 상품화 하고 있다. 업주들로부터 가치상승을 위장한 성형과 다이어트 등의 압박과 종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고가에 해당하는 비용은 모두 성매매 여성들의 몫이고 대부분 빚으로 남는다. 소위 A급 여성에게는 극진한 대우를 통해 ‘여기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렇게 대접할까’ 싶을 만큼 공을 들인다. 그 탓에 밖으로 나갔다가도 결국 거기로 돌아오게 한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상대해야하는 남성의 수는 하루에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다. 이쯤 되면 아무리 고와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그녀들의 정신과 몸은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업주 가운데는 지적장애 또는 경계선에 해당하는 여성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옷값, 화장품값, 목욕비, 병원비, 숙식비로 처리하며 10여 년 동안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을 만큼 파렴치한도 있다. 그들은 폭력행사는 물론이고 아는 건달이나 사채업자와 모의하여 빌리지도 않은 돈에 대해 공증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면 성매매 피해 여성은 억울해 하면서도 그것을 갚기 위해 한 동안 성매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의든 타의든 한 번 발을 디디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든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삶은 상당부분 업주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무력해져가면서 각종 트라우마와 우울증, 불면증, 성격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호소한다. 심리상담을 진행 중인 반 이상의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정신과 치료를 병행한다. 그녀들을 ‘성매매 피해여성’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이 같은 상황이 조직력이나 관례들을 통해 성이 착취당할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업소에서 선불금 1천 만 원을 사용하고 약1년 동안 갚다가 B업소로 옮길 때 A업소 업주는 각종 비용을 추가해서 B업소에서 다시 1천 만 원을 받고 여성을 두고 간다. 그동안 갚은 것은 이자였고, 숙식 등을 해결해줬으니 그 계산이 나온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상황을 경험하면서도 이런 계산법에 반박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록이나 계산력이 약하고, 합리적인 대인관계에 취약하며, 이런 일이 두어 번 반복되면 희망마저 꺾여버리는 여성들의 자포자기를 업주들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구조는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이 길어진 결과다. 그러므로 ‘성매매’라는 거대한 조직에 의해 오랜 세월 길들여지고, 희망마저 무뎌진 그녀들을 ‘피해자’라 아니할 수 없다. 업주들은 재개발이 진행될 때 자기 몫 뿐 아니라 업소 여성들의 것조차 착취하기도 한다. 여성은 재개발사업주로부터 보상 받을 수 없는 구조에 놓인 경우가 많다. 가족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주소지를 다른 곳에 두거나 구두계약으로 전전세로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청량리588’이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폐쇄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일이 다반사였다.
 
내 이름은 ‘윤락가 선교사’
 
2010년 3월, 사역에 대한 아내와의 갈등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윤락가 선교’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사역 시작 전 나고 자란 지역에 유명 집창촌이 있었던 까닭에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서 신학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게도 누군가를 보내 달라’는 기도 끝에 어느 날부터 ‘이러다가 내가 가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올라올 즈음 그 기도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부담을 덜어내고 싶어 1년만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찾아가 전도하겠다고 결정했다. 1년의 전도기간 중에 다행히 아내의 반대가 수그러들기를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내의 반대가 내가 이 사역을 끝까지 가지 않아도 될 면죄부가 되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길이 녹록치 않았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도 당위성만 충족된다면 언제든지 접으리라는 생각이 순간순간 들기도 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은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위한 사역에 필요한 것을 한 번도, 어김없이, 때에 맞게 채워주셨다.
사역 3년차가 되었을 무렵 매주 지속되는 전도활동을 지켜보던 한 여성이 도움을 요청해 왔다. 본인은 한 업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나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업소에서 무조건 탈출시키기에는 그 여성에게도, 선교회 사역에도 위험부담이 크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자메시지로 서로의 상황을 전하며 그녀의 자유를 도모하였다. 드디어 그녀를 구조한 날, 엄청난 감격과 감사가 밀려왔다. 쉼터를 완강히 거절하던 그녀가 마땅히 거주할 곳이 없었다. 그 무렵 아내는 사역의 동역자가 되어 있었고, 그녀를 흔쾌히 집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가정은 수입이 거의 없는 형편이었고, 많지 않은 후원금은 오롯이 아웃리치와 그녀를 위해 사용했다. 15평 남짓의 투룸에 우리 부부가 성인 여성과 동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도와 고심 끝에 그녀를 위한 작은 원룸을 준비하고 나니 지출할 비용이 더욱 커졌다. 샴푸를 사 달라는 요청에 다음 후원금이 들어올 때까지 며칠을 기다린 적도 있다. 그녀에게는 점점 필요한 것들이 많아졌고, 그것들을 충족시킬 만큼 여유롭지 않았던 우리는 모든 상황을 이해시키고 지역 내 쉼터에서 기거하도록 권면하였다. 고마움과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 그녀는 못내 아쉬워하면서 쉼터로 옮겼으나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어느 날 언니가 아파서 본인이 돌보게 됐다며 떠났다. 그 후에는 독일에 다녀올 건데 돌아올 때 맛있는 차를 사 오겠다는 글을 남긴 채 연락이 두절 되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 일을 다시 시작한 게 아닐까? 그것을 숨기려고 독일행을 연출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어떤 이들은 ‘그것 봐. 그렇게 된다니까’할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그때의 시간들을 의미 없다고 할 수 없다.
2016년 가을, 또 다른 여성이 업주가 자기를 이리저리 팔아넘기려고 한다며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그 무렵 청량리 588을 철거하면서 주거지를 잃은 여성들을 위해 선교회 자체적으로 준비해 둔 쉼터가 있어 그곳에서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녀의 정신적 불안감과 생활능력은 혼자 쉼터에서 지낼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그녀는 늘 많이 아팠다. 다행히 그 무렵에는 상담소에 나오는 정부지원금이 있어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으나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한정액이 있어 최대한 아껴 쓰도록 하였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생활능력은 물론 아무 런 기술이 없는 그녀를 근처 고시원으로 옮겨주었고, 상담소로 매일 나와 상담도 하고, 자잘한 일거리를 주면서 안정을 찾게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지적장애 검사결과 3급이었고 그밖에 지병에 대한 검진결과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삶이 유지될 수 있는 희망의 끈이 생기자 처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후 그녀는 1년 3개월 동안 선교회에서 찾아준 부업으로 월 35~40만원을 벌고, 수급비로 생활하고 있다. 올해 2월 LH의 도움으로 아늑한 보금자리도 생겼다. 물론 2~3개월에 한 번씩 휴대전화를 바꾸는 등 자기조절능력이 아직은 어렵기는 해도 스스로 밥해 먹고, 청소하고, 유쾌한 웃음을 지을 줄 안다. 청량리에서 오래도록 그녀를 봐왔던 다른 성매매 피해 여성들도 선교회 예배시간에 그녀를 만날 때마다 놀라곤 한다.
이 글 서두에 성매매 피해 여성지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안타까워하였다. 또 성매매 피해 여성이 왜 피해여성이냐는 질문에 내가 본 현장이야기로 답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돌보는 사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10년 동안의 사역을 통해 그것을 주장한다고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나와 함께 해온 자매(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그녀들을 위해서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우리가 애써 지원하는 그녀들이 모두 탈성매매나 새로운 삶에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들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감사드린다. 우리의 시각에서 약간의 이기심과 편견을 닦아내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이미 알고 있으리라.
누군가 지원금 2천만 원 줄 테니 당신이 하는 생업을 접고, 준비되지 않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선택하겠는가? 그것이 전부인 여성이 그곳에 아직 많이 있다.
/ 최선 선교사(이웃사랑선교회)

 작성자   김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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