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감사와 최선이 성공 기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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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최선이 성공 기준 아닐까요?” 

 2019-06-23      제1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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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요’ 대표 강신봉 집사와 그의 아내 유경아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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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홍보팀에서 알면 혼날 것 같은데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본지와의 인터뷰를 어렵게 수락한 강신봉 집사(한강공동체)의 첫 마디다. 강신봉 집사는 음식배달 중개 플랫폼 및 배달음식 주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요기요’의 대표이다. 회사 대표로서 사업과 관련한 인터뷰는 많이 했지만, 본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인터뷰는 모두 거절해왔다. “내세울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순종이다. 공동체 담당목사님이 부탁했기 때문에 수락했다. 인터뷰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강신봉 집사와 그의 아내 유경아 집사를 겸손과 순종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었다. 요즘처럼 갑질이 만연한 때 대표라고 으스대지 않고, 자신을 낮추며, 담당목사의 말에 순종하는 그들을 보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강신봉 집사와 그의 아내 유경아 집사의 첫 인상은 참 겸손하고 소박했다. 유명 회사의 대표이자 사모님인데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앙이 그들 부부를 그토록 겸손하게 만든 걸까? 유 집사가 남편 강 집사를  전도했다. 사실 강 집사가 어릴 때부터 기독교와 전혀 관계없는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천주교 집안이어서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성당에 다녔다고 한다. 게다가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모두 미션스쿨을 나왔다. 그 덕분에 찬송가, 채플, 예배가 생활의 한 부분일 정도로 익숙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개인적인 믿음이 없었다. 강 집사가 교회에 온 이유는 아내 유경아 집사 덕분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에서 MBA 과정을 공부할 때였다. 
“아내가 저만 믿고 미국까지 따라왔는데 낯설고 물선 곳에서 생활하는데 공동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는 아내에게 교회에 가자고 제안했어요. 아내에게 도움을 주려고 교회에 갔다가 제가 도리어 은혜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됐어요.”
온누리교회에는 2006년부터 나왔다. 미국에서 귀국하면서부터 출석했다. 귀국을 앞두고 어느 교회에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미국 교회 성도가 온누리교회를 추천했다. 
 
조카 입양 그리고 혹독한 시련 
 
강 집사 가족은 2009년 또 다시 이국생활을 하게 됐다. 강 집사가 중국에서 일하게 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상해 온누리교회가 있어서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생활을 해봐서 그런지 중국 생활은 오히려 적응하는 게 쉽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상해에서 생활하는 동안 믿음이 성숙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물론 힘든 때도 있었지만 그때가 축복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강 집사 부부가 힘들었지만 그때가 축복의 시간이라고 고백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때 유 집사의 조카를 입양했기 때문이다. 유 집사의 큰언니가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식물인간 상태로 10년 동안이나 쓰러져 있다가 소천했다. 큰언니가 쓰러졌을 당시 조카는 겨우 100일 밖에 안 된 갓난아기였다. 조카는 10살이 넘도록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조부모가 큰 사랑으로 키웠지만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것 같다. 조카는 엄마의 사랑을 목말라하며 비행을 저질렀다. 심각한 수준의 비행이자 방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 집사가 너무나 섬뜩한 꿈을 꿨다. 
“물이 흘러나오기에 가봤더니 조카가 목매달아 죽어있더라고요. 너무 끔찍해서 눈을 떴어요. 도대체 무슨 일일까 걱정 되서 기도하는데 조카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바로 한국에 전화해서 엄마에게 조카를 중국으로 보내라고 했어요. 제가 맡아서 키우겠다고요.”
그렇게 조카를 입양했다. 당시 조카 나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부터 혹독한 시련이 시작됐다. 유경아 집사는 조카를 사랑하기 때문에 조카를 충분히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산(誤算)이었다. 조카는 이미 반항과 불만이 가득 찬 상태였다.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패싸움도 하고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감옥에 갈 뻔한 일도 있었다. 
“조카가 안경 쓴 학생의 눈을 때려서 상해를 입힌 적이 있어요. 엄마 없이 이모와 산다고 놀려서 홧김에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그 일이 커져서 살인미수로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거였어요. 한번 감옥에 들어가면 빼낼 수도 없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몰라요. 각서도 쓰고, 치료비도 우리가 모두 내겠다고 사정사정했어요. 그때는 정말 하루하루 하나님만 의지했어요.”
유 집사는 조카를 입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뎌준 남편에게 너무 고맙다.  
“조카를 입양한 것도, 같이 살게 된 것도 남편이 동의해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이해해주고 품어준 남편에게 정말 감사해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조카는 지금 군 복무중이다. 대학교를 다니다 군대에 갔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랐다. 강 집사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여러 번 고비를 넘기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됐고,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었어요. 정말 힘들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붙잡고 의지하면서 믿음도 성숙했고요.”
 
이번에는 아내의 암 투병
 
조카도 잘 크고, 강 집사의 비즈니스도 승승장구했다. 2017년 ‘요기요’ 대표로 취임했다. 이제 걱정거리 없이 안정 되나 싶었는데 뜻하지 않은 고난이 또 찾아왔다. 아내 유 집사에게 유방암이 생겼다. 지금도 유 집사는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강 집사 부부가 그 힘든 와중에도 힘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교회공동체 식구들의 기도다.
“투병하는 동안 사역팀과 공동체 식구들의 기도가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저 혼자였으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남편에게도 너무 감사해요. 회사일 만으로도 바쁠 텐데 제 병간호와 고등학생 아들 뒷바라지까지 혼자 감당해줬거든요.” 
아내의 말을 곁에서 묵묵히 듣던 강 집사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본인만 할까요? 항암치료가 얼마나 힘든지 안 해본 사람은 정말 모를 거예요. 아내가 몸이 많이 좋아져서 지난주부터 서빙고 온누리교회 주일 2부 예배를 다시 함께 섬기게 됐어요.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처조카를 입양해서 키운 것도 대단하고, 가정과 일도 소홀하지 않았다는 점도 정말 대단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까지 이뤘으니 어찌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강 집사는 끝까지 손사래를 쳤다.  
“한 회사의 대표가 된 것으로 성공했다고 정의하면 성공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된 것 같아요. 유명 회사의 대표가 돼서 성공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최선을 다했느냐가 기독교인의 성공 기준이 아닐까요? 지금의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면서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것이 크리스천으로서의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 유 집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요. 물질적 성공보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게 더 중요해요.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주님 안에 잘 붙어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집사 부부에게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다.  
“아내의 병이 재발되지 않고 완치되는 게 가장 큰 기도제목이에요.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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