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백배의 축복을 부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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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배의 축복을 부어주셨어요”

 2018-07-13      제12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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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국가대표 농구선수 김윤호, 순장이 되다 


board image엘리트 농구선수에서 멋있는 신앙인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김윤호 순장.


 
 
얼마나 겸손한지 모른다.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은 얼굴만 봐도 그가 얼마나 유명한 선수였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도 “그냥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고 손사래를 친다. 
김윤호 순장은 농구선수 출신이다. 그것도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될 수 없는 국가대표 출신이다. 굵직한 국제대회에도 수차례나 출전했다. 농구선수 은퇴 이후 삶이 궁금했는데 하나님만 정말 사랑하는 순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참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시합을 제압한다.”
수많은 남학생들을 농구코트로 모이게 했던 스포츠 만화의 레전드 <슬램덩크>의 명대사 중 하나다. 실제로 농구시합에서 성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한 것이 리바운드다. 리바운드를 주로  하는 포지션이 센터인데 김윤호 순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센터였다.  
“저는 센터치곤 체격이 왜소한 편이에요. 농구에 소질이 크게 있었던 것은 아닌 거 같고요. 그래서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매일 새벽 운동하러 남산에 올라갔어요. 야간에 운동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힘들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요.”
하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한 그를 배반하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부터 국가대표가 되어 국제대회에 수차례나 출전했다. 물론 센터로서 좋은 신체조건은 아니었지만 실력만큼은 으뜸이었다.
“아시아청소년대회 두 번, 유니버시아드 대회 세 번, 올림픽에 한 번 출전했어요. 저는 스타플레이어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들 대회에 모두 출전한 이력을 갖고 있는 선수는 저 말고 별로 없을 거예요.”
잘나가는 엘리트 농구선수였지만 신앙은 빵점이었다.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서 유난히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릴 때 교회에서 사탕이나 과자 같은 거 많이 나눠주곤 했잖아요. 저는 그 흔한 사탕 하나도 얻어먹은 적이 없을 정도로 교회에 거부감이 있었어요.”
사탕 한 조각도 얻어먹기 싫을 정도로 교회를 거부했던 그가 지금은 어엿한 순장이 되었다. 순원들을 다독이고, 교회에서 봉사도 참 많이 한다.  
 
큰누나네와 친구 덕분에 예수를 만나다
 
김윤호 순장은 선수생활 은퇴 이후 지도자 생활을 하던 시절 하나님을 만났다. 원동력은 큰누나(김계순 권사)와 매형(조성현 장로, 이촌공동체)의 회심과 전도였다. 
“큰누나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나보더라고요. 그 힘든 시기를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다고 하더라고요.” 
큰누나네는 국비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갔는데 도중에 장학금이 끊어졌다고 한다. 얼마나 궁핍했냐면 어린 아이 우유값 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누나네가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아마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김윤호 순장의 말처럼 심적으로나 경제적인 궁핍했던 큰누나네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그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 그리고 큰누나와 매형이 가족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매형이랑 토론을 참 많이 했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냐 아니냐, 살아계신다면 어떤 분이냐를 주제로 밤새 토론을 한 적이 많았어요.”
큰누나와 매형의 노력으로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견고한 거부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그를 전도했다. 이번에는 영어 잘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김윤호 순장이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즈음 우리나라에도 프로농구 시대가 개막했다. 외국인 용병 선수가 많이 들어왔다. 김윤호 순장은 용병 선수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라도 영어를 배우려고 영어 잘하는 친구를 만나러 교회에 갔다. 
“동시통역 교수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 친구한테 영어 배우려고 교회에 갔어요. 처음에는 예배당 뒤쪽에서 팔짱끼고 앉아서 예배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어요.”
친구 만나려고 몇 번 교회에 나가면서 마음이 조금씩 바뀌었다. 어느 날부턴가 주변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설교하는 목사님만 보이더란다. 
“정말 신기했어요. 목사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조금씩 마음이 열린 김윤호 순장은 ‘더 이상 헛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확신을 가지고 제대로 믿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방법도,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만 “제발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다. 방언의 은사는 덤으로 주셨다. 
 
멋진 신앙인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김윤호 순장에게 하나님은 여러 번 기도응답을 통해서 확신을 주셨다. 김윤호 순장은 선수로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은퇴 이후에는 광야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실업팀 코치를 하던 시절에 결혼을 했는데  한 달 만에 코치직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자리가 금방 날 줄 알았거든요.”
오산이었다. 금방 날 줄 알았던 지도자 자리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가 찾아왔다. 구직활동이 안되자 눈을 낮춰 고등학교 농구부 감독으로라도 가려고 했는데 이마저도 잘 안됐다. 백수생활이 길어졌다.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그래도 남아도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성경을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경읽기가 시간 때우기 용이었는데 신기하게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었다. 성경이 너무 재미있어서 두고두고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이러다가 당신 목사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걱정을 할 정도였다.   
성경을 읽으면서 새벽기도를 하게 되었다. 새벽기도를 하면서 막힌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 40일 동안 새벽기도를 했는데 K대학교 농구부에서 코치직을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다.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김윤호 순장은 정말 열심히 했고 시합에서도 승리했다. 내심 정식 코치가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K대학 농구팀은 김윤호 순장에게 1주일 분 급여 50만원과 특별수고비 조로 30만원을 보태 80만원을 지급했다. 그렇게 받은 돈을 고스란히 헌금했다. 
“당시 제가 수입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선교헌금을 80만원 내겠다고 멋모르고 작정한 게 있었어요. 그 돈이 내 돈 같은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선교헌금을 했습니다.”
여전히 성경을 읽고 있는 그에게 이번에는 방송국에서 프로농구 해설자로 와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렇게 한 시즌 농구해설을 하고 한 프로팀으로부터 코치직 제안을 받았다.  
“제가 그 프로팀 코치를 맡게 되면서 받은 연봉이 제가 헌금한 돈의 백배나 되요. 하나님께서 백배의 축복을 부어주셨어요.”
코치와 감독으로 맹활약하던 그는 2011년부터 대학교에서 리더십 강의를 시작했다. 지도자에서 교육자로 또 한 번 진로를 바꿨다. 정말이지 하나님을 믿고 난 이후 그의 삶은 너무 멋있는 신앙인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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