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당신은 예의 바른 크리스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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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의 바른 크리스천입니까?”

 2019-04-14      제1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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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반한 겸손함과 친절 
상대방 인격 존중하고, 차별 없이, 예의 바르게 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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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예의를 잘 지키는 동쪽의 나라’라는 말로 중국에서 한국을 일컫는 말이다. <동이열전>에서는 고대(古代) 한국을 다음 같이 소개했다. 
“그 나라는 크지만 교만하지 않고 그 병사는 강하나 침략하지 않는다. 풍속이 순후하여 길 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고 먹는 자는 밥을 미루고 남녀는 따로 거처하니 가히 동방의 군자국이라 하겠다.”
그 예의 바르고 순후하던 한국이 완전히 달라진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예의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갑질논란’이다. 매스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 고위층의 갑질을 꼬집고 있다. 그런데 그 갑질이 사회 고위층만의 문제일까?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갑질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언제부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대한민국에서 볼썽사나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예의와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들이다.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으로 불리는 사례부터 시작해서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 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횡포, 직원 폭행 및 동물학대 강요 등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백화점 주차요원을 무릎 꿇리거나 제자에게 고문을 가하고 인분을 먹인 교수도 있었다. 이쯤 되면 어이가 없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갑질은 사회 고위층과 그 가족들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들도 알게 모르게 갑질을 하고 있고, 당하고 있다. 노동시민단체 ‘직장 갑질 119’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접수된 직장 내 갑질 사례가 무려 2만3천 건에 달한다. 폭언이나 폭행, 임금체불, 괴롭힘, 부당한 업무지시, 고용보험 문제 등 갑질의 모양과 행태가 참으로 다양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김믿음 자매(가명, 34살)는 학력차별이라는 갑질을 무려 14년 동안이나 당하고 있다.  
“대졸 출신 후배들이 들어오면 상사가 대놓고 저한테는 선배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으로 부르라고 지시해요. 그러면서 저한테는 ‘서번트 정신’으로 일하라고 강요하고요. 그냥 하녀처럼 일하라는 거예요. 대졸 사원들이 입사하면 ‘고졸 사원 대하는 법’을 따로 교육하기도 하고요. 거짓말 같지요? 진짜에요.” 
지난 8일, 대구에서는 한 세무서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횡포를 벌였다는 내부고발이 나왔다. 부하 직원들에게 순번을 정해 밥을 사라고 하는가 하면 금요일에는 집이 있는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며 오후 3시 이후에는 모든 결재를 올리지 못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교회와 크리스천들도 갑질논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박신실 자매(가명, 33세)는 교회 다니는 사장님의 말과 태도에 상처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장님이 직원들한테 ‘마음에 안 들면 확 잘라버릴까 보다’라는 말을 수시로 해요. 사장님 기분에 따라 반응이 천차만별이라 거의 매일 눈치를 보고 있고요. 다행히 교회 다니는 분이라 주일에 등산 가자고 불러내지는 않는데, 회사에서 손 하나 까닥 하지 않아요. 사람 귀한 줄 모르고, 기분 따라 일처리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게 갑질 아니고 뭐겠어요?”
갑질논란의 더 큰 문제는 무례함을 겪은 사람이 나중에 무례한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무례함을 자주 경험한 사람들이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고 한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나중에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인 것이다. 무례함은 자신도 모르게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  
책 <무례함의 비용> 저자 크리스틴 포래스는 “무례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 자신이 무례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무례한 사람들은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되어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정문정 작가 또한 비슷한 말을 했다. 
“나도 무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정신적, 신체적 안락함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견지하며 무례함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하나님은 무례한 자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예절에 이르기까지 예의 바른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고 교훈하신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7장 36~50절에서 시몬(바리새인)의 무례함을 꾸짖으셨다. 시몬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는데 그때 죄인인 한 여인이 향유 담은 옥합을 가져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털로 씻은 뒤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이를 본 시몬이 “만일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당신을 만지는 이 여인이 죄인인 줄 알았을 것”이라며 업신여겼다. 그때 예수님이 시몬의 무례함을 호되게 꾸짖으셨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눅 7:44~46). 
무례한 시몬은 예수님으로부터 꾸짖음을 당했고, 죄인인 그 여인은 그가 행한 예절로 말미암아 믿음을 인정받고 죄 사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 이후 노아가 농업을 시작했다.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하루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는 실수를 하게 된다. 노아의 아들 함이 그런 아버지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형제들에게 알리는 무례를 범하고 만다.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으며 얼굴을 돌려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 함은 무례로 인해 노아로부터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무례한 자의 후손이 예절을 지킨 자들의 후손의 종들의 종이 되리라’는 저주였다. 
무례한 자를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례가 또 있다. 출애굽한 뒤 모세의 아내가 광야에서 죽자 모세는 구스 여인과 결혼했다. 이 일을 놓고 모세의 형과 누이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고 급기야 반감을 표현했다. 결국 미리암은 하나님의 징벌로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나님은 무례한 자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사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아야 한다. 공경심이 있어야 하고, 남의 실수를 들어 무례하게 비방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경외하는 방법일까?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사랑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예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반한 겸손함과 친절이다. 상대방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알고, 내 몸처럼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눅 10:27).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차별 없이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 예의를 행하는 대상에는 빈부귀천이 따로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의 바른 신앙을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마 5:16). 
 

<전문가 기고>
 
크리스천의 에티켓과 매너 
에티켓은 ‘도리((道理)’, 매너는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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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예절’을 영어로 ‘에티켓(Etiquette)’ 또는 ‘매너(Manner)’라고 쓴다. 그런데 에티켓과 매너가 어떻게 다를까? 이 질문에 한 전문가가 이렇게 답했다. 
“에티켓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으로써 형식적 측면이 강하고, 매너는 그 형식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방법적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에티켓은 ‘있다, 없다’로 표현하고 매너는 ‘좋다, 나쁘다’로 표현하는 것 같다. 에티켓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이고, 매너는 상대방 입장에서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배려이다.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
 
악수(握手)에도 에티켓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악수는 상대방을 친근하게 끌어당길 수 있고 마음을 열게 하는 인사법이다. 악수는 19세기 황야의 무법자들이 판치던 아메리카 개척시대에 유래했다. 손에 무기가 없다는 표현으로 오른손을 잡으며 ‘당신과 잘 지내고 싶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 손을 바지에 넣은 채 악수를 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손을 잡는 강도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밝은 표정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고 약 2초 정도 흔들면서 눈을 바라봐야 한다. 간혹 악수하면서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두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다. 
여자에게 무엇인가를 양보할 때 ‘레이디 퍼스트’라고 말한다. 레이디 퍼스트는 기독교 정신과 중세 기사도 정신에 입각하고 있다. 서양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레이디 퍼스트 매너를 교육 받은 탓에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가령 아내나 애인이 외투를 입고 벗을 때 꼭 도와주고, 식당이나 공연장에서 외투를 벗어 맡길 때나 찾을 때 남성이 그 역할을 한다. 식사 테이블에 앉을 때도 여자가 앉도록 의자를 빼준다. 드나들 때도 여성이나 노약자가 지나가도록 남자가 문을 열어주거나 잡아주는 것이 좋다. 좁은 계단을 올라갈 때는 남자가 여자보다 앞서고, 내려갈 때는 여자가 앞서는 것이 에티켓이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사람이 다 내리고 나서 타는 것이 상식이고, 남자는 여자와 어린이, 노약자 다음에 타고 내리는 것이 예의이다. 자동차 좌석의 상석은 운전석의 대각선 우측 좌석이 최상석이고, 맨 좌측이 두 번째 상석, 중앙이 세 번째, 운전기사 옆자리가 말석이 된다. 보도를 걸을 때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우측에 두는 것이 에티켓이다. 남자가 차도 쪽으로 걸어야 한다. 
 
교회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
 
범위를 좁혀 교회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살펴보자.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수직적인 매너와 성도들과 교제하는 수평적 매너가 요구되는 곳이다.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사실 토요일부터 준비한다. 입고 갈 옷을 단정하게 다려놓고, 헌금도 미리 준비하고, 자동차 기름도 미리 채워놓는다. 주일 아침 예배에 늦지 않기 위해 토요일 밤늦게까지 TV를 시청하거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예배 안내를 하다보면 일찍 나와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예배시작 30분이나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무표정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성도들이 있다. 예배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은 예배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배를 보는 게 아니라 드린다는 개념을 잊지 말고 집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복장이 단정하지 못한 성도들도 있다. 특히 여름에 짧은 반바지(핫팬츠)에 슬리퍼를 끌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들어오는 젊은 커플들이 종종 눈에 띈다. 해변에서나 입을 법한 짧은 바지에 어깨가 드러난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온다. 
주보를 나눠주며 예배 안내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 연장자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인사를 해도 받지 않거나 무시하며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가벼운 목례와 함께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정도는 해주는 게 성도로서의 매너이다.
예배 중에는 휴대폰을 옷이나 가방 안에 넣어두어야 하는데 설교 중에도 쉼 없이 SNS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예배드리는 한 시간 반 동안 휴대폰을 꺼내지 않는다고 해서 지구의 종말이 오지는 않는다.  
교회에는 다양한 봉사 영역이 있다. 그 중에서 주차봉사야말로 ‘극한 봉사’가 아닐까 싶다. 겨울이면 매서운 칼바람을 견뎌야 하고, 한여름에는 폭서에 시달린다. 요즘은 미세먼지에 노출돼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가장 큰 고통은 교회를 드나드는 성도들의 질서무시와 폭언이다. 교통신호에서 수신호가 우선한다는 것은 기본상식이다. 매주 주일 교회 입구의 복잡한 차량정리를 하고 있는 안내자의 수신호에 절대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불만이 있어도 주차봉사자에게 화를 내거나 반말과 욕설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성도이다. 어떤 교회에서 수년 동안 주차봉사를 하신 분이 “성도들이 반말을 하고, 돈을 주며 발렛파킹을 시키는 성도가 있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도 사회에 나가면 CEO인데 교회에서 도리어 시험에 든다는 그분의 푸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
 
요즘 교회마다 식당과 카페가 잘 되어 있다. 주일에는 사람이 몰려 정신이 없다. 식사 후에 잔반을 정리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구분해서 반납하는 것은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의 수고를 덜어준다. 식사를 받을 때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식판을 반납할 때는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기본이다. 한번은 나이 든 분이 식판을 던지며 “너 같으면 이런 걸 먹겠냐?”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모욕적인 행동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힌다고 하셨다. 온갖 교만과 죄성이 묻어나는 사람의 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순모임에서도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지난 순장수련회에서 순장이라는 직분을 ‘극한직업’으로 패러디한 콩트를 보고 모두가 공감의 폭소를 터뜨렸다. 순모임에서 질문하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요약해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훈련이다. 믿지 않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참석하는 순원인 경우 시간이 길어지면 초조해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엄수하는 훈련에 모두 협조해야 한다.  
‘모티켓’이라는 말이 있다. 모바일(Mobile)과 에티켓(Etiquette)이 결합된 용어이다. 온라인 네트워크(SNS)를 사용하면서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가장 일반화되어 있는 ‘카카오톡’ 메신저의 단체카톡방에서 받는 스트레스 지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단톡방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때에는 불만이나 인신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공지사항은 관리자가 맨 위로 올려 다른 대화에 밀리지 않도록 해놓아야 한다. 누군가 공지사항을 올렸을 경우에는 당분간 상관없는 내용의 글은 올리지 말고, 그 공지에 대한 답변들이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행사나 개인사진들은 묶어 보내기 기능으로 보내야 단출하다. 개인사진은 본인한테나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공해에 불과하다. 
선진국의 기준을 공공질서와 투명성에 두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어린이합창단 수십 명을 인솔해서 미주 순회공연을 간 적이 있다. 어린이들이 외국항공 기내에서 어찌나 떠들던지 책임자로 불려나가 마이크를 들고 여러 번 조용히 시킨 적이 있었다. 자녀를 한 명 정도 낳아 왕자와 공주로 키우는 젊은 엄마들은 공공질서를 해치는 자녀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이 시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시킨 예절교육의 참맛을 알 필요가 있다. 
자유란 질서를 지킬 때 주어지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상대방 중심의 사고와 태도를 가진 성숙한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정과 학교, 교회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지속적인 예절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홍보대행사 대표, 칼럼니스트) 
 
 
<발문>
이 시대는 예절교육의 참맛을 알 필요가 있다. 
자유란 질서를 지킬 때 주어지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상대방 중심의 사고와 태도 가진 
성숙한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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