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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깃든 신앙과 민족정신

 2018-07-29      제12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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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 선교, 그 흔적을 찾아서

 


민족혼을 일깨우는 일이 곧 기독교인의 역할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다. 본지에서는 ‘한국 선교, 그 흔적을 찾아서’를 주제로 여행도 하고, 순례도 할 수 있는 선교여행 코스를 추천하고 있다. 그 네 번째 코스는 ‘강원도’다. 한반도 중부 동쪽에 위치한 강원도는 신앙 선배들의 믿음과 민족정신을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우리가 찾던 바로 그 여행지다.
/ 이소정 기자 s2868@onnuri.org

 


board image▶ 민족 사랑을 실천한 양양교회.

 

 

강원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관광이다. 그만큼 강원도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이 모두 강원도에 있다. 거기다 하얀 모래밭과 푸른 바닷물이 어우러진 동해안은 그야말로 힐링(Healing)을 위한 최적 장소다. 그 아름다운 강원도에서 순례도 할 수도 있다. 춘천, 강릉, 양양에 가면 강원도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앞장선 이덕수 전도사, 하디 선교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바친 김영학 목사, 여성독립운동가 조화벽, 안경록 목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조선의 바울, 이덕수 전도사

 

강원도는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영서지역과 영동지역으로 나눠지는데 영서지역인 춘천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부흥시킨 사람이 있다. 이덕수 전도사다. 이 전도사는 예수 믿기 전만해도 술과 놀음에 빠져 살았다. 아내를 매질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그가 매서인(성경을 배부하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그 길로 교회에 갔다. 그때부터 술과 놀음을 끊고 쪽복음(성경)과 찬미가를 들고 전도를 시작했다. 
당시 춘천 선교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로버트 무스 선교사는 이덕수 전도사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귀가 솔깃했다. 함께 전도할 한국인으로 이덕수 전도사가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둘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그때부터 춘천이 복음화 되기 시작됐다.
이덕수 전도사는 날마다 지게에 쪽복음을 지고 춘천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전도했다. 그 모습은 본 사람들이 이 전도사를 ‘지게 전도자’, ‘조선의 바울’이라고 불렀다. 이 전도사는 자신의 네 칸짜리 초가집을 예배당으로 내주기도 했다. 그 네 칸짜리 초가 예배당이 춘천중앙교회의 초석이 됐다.
현재 춘천중앙교회는 확장 이전해서 강원도 춘천시 퇴계동에 있다. 춘천중앙교회 교육관 1층에는 이덕수 전도사의 이름을 딴 ‘덕수홀’이 있다. 교회 뒤뜰에는 이덕수 전도사 묘지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묘비에 적힌 그의 유언을 보면 오직 복음 전파에만 힘썼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주는 나의 목자,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한국부흥운동 시발점 ‘로버트 하디 선교사’

 

영서지역 복음의 씨앗이 이덕수 전도사라면 영동지역은 로버트 하디 선교사다. 로버트 하디 선교사는 1890년 ‘캐나다 대학생선교회’ 파송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머무는 곳이 곧 병원이요, 선교지였다. 그는 원산에서 시약소를 운영했고, 평안북도 영덕에서 강원도 원주를 찾아다니며 환자들을 돌봤다. 1899년부터는 강원도 순회 전도사역을 시작했다. 1901년에는 강원도 영동지역 일대를 순회하면서 조선인 15명을 전도했고, 무려 5번이나 동해안을 순회하며 강릉중앙감리교회, 고성 간성감리교회, 양양교회를 세웠다. 1903년 있었던 그의 진심어린 회개가 원산부흥운동을 촉발시켰다.
“최선을 다해 섬겼지만 조롱만 돌아올 때 저는 알게 모르게 조선을 증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이 땅을 사랑하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성도들이 뜨겁게 회개하기 했다. 그것이 불씨가 되어 ‘원산부흥운동’이 일어났고 그 여파가 그 유명한 ‘평양대부흥운동’까지 이어졌다. 한국부흥운동의 시발점이 바로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회개였다.

 

그 중심에 있는 ‘양양교회’와 ‘강릉중앙교회’

 

지금도 강원도에 가면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발자취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양양교회다. 춘천중앙감리교회에서 동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 15분 거리에 있다.
평일 낮에도 양양교회에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양양교회에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이름을 딴 ‘하디 어린이집’에서 나는 소리다. 양양교회 3층 대예배실 이름도 ‘하디예배실’이다. 1901년 10월 양양교회를 창립한 로버트 하디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또한 양양교회는 신앙뿐만 아니라 민족 사랑을 실현하는 사령부 같은 곳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는 인물이 김영학 목사와 여성독립운동가 조화벽이다.
김영학 목사는 양양교회 5대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당시 상황은 처절했다. 농지수탈, 기독교 근절정책, 강제 이민 정책 등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일제의 만행이 심해질수록 김영학 목사는 민족정신과 신앙을 강조했다.
“여러분, 주님을 바로 믿고 나라 사랑을 생활화하십시오!”
1919년 김영학 목사는 만세운동 선봉에 섰다. 그 일로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출소한 뒤에는 ‘철원애국단’에서 활동했다. 조선독립을 위한 비밀결사조직이었는데 발각되어 1년 6개월 동안 또 다시 투옥됐다. 시련이 이어져도 김영학 목사의 민족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1922년 출소한 김 목사는 시베리아 선교사로 자원했다. 당시 시베리아에는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은 수많은 동포들이 망명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공산혁명이 일어나 교회 핍박이 극심했는데도 김 목사는 동포들을 위로하고 애국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그곳으로 갔다. 그런 그에게 또 다시 고난이 찾아왔다. 1930년 공산당들이 김 목사를 ‘반동분자’라는 죄명을 씌어 구금하고 배교를 강요했다. 김 목사는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목사는 교회를 위하여 순교하는 것이 마지막 사명이라.”
그의 말처럼 김영학 목사는 영하 40~50도의 극심한 추위 속에서 복역하다 깨진 얼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순교했다. 양양교회 2층에 가면 그의 이름을 딴 ‘김영학홀’이 있다. 
김영학 목사만큼 민족을 사랑하고, 양양지역 3.1만세운동의 불씨가 된 이가 있다. 조화벽 여사다. 조화벽 여사는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의 아내다. 조 여사는 개성 3.1만세운동 당시 호수돈 여학교 비밀결사대 주역으로 활동했는데 조선총독부의 휴교령에 따라 학생들이 고향으로 흩어지면서 조 여사도 양양으로 왔다. 위기는 곧 기회였다. 조화벽 여사는 어렵게 독립선언서를 숨겨왔는데 그것이 강원도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양양 3.1만세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조화벽 여사가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김필선이 전달받아 면사무소 등사판으로 복사하고, 교회청년들과 함께 태극기를 만들었다.
또한 조화벽 여사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무산아동 교육시설인 ‘정명학원’을 설립해 농촌계몽에도 헌신했다. 양양교회 1층에 가면 ‘조화벽기도실’이 있다.
강릉중앙교회도 의미 있는 곳이다. 양양교회에서 남쪽으로 차타고 30분정도 가면 있다. 1901년 5월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윤성근과 함께 명국성 성도의 여덟 칸짜리 초가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곳이 지금의 강릉중앙교회가 됐다. 강릉중앙교회는 1910년 의숭학교, 1915년 의숭유치원을 설립해서 교육에도 앞장섰다. 민족운동에도 힘썼다. 1919년 강릉지역 만세운동이 강릉중앙교회 청년들 주축으로 일어났다. 그 중심에 강릉중앙교회 5대 담임목사였던 안경록 목사가 있다. 안경목 목사와 청년들은 1919년 4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했는데 시작도 해보기 전에 위기를 맞았다. 거사계획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안 목사와 청년들은 더욱 강화된 일경의 감시와 검속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교회 지하실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만들어 장날이었던 4월 2일 사람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눠주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 일로 안 목사는 옥고를 치렀지만 굴하는 법이 없었다. 민족혼을 일깨우는 일이 곧 기독교인의 역할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강릉중앙교회 출입문 오른편에는 하디홀이 있고, 앞마당에 가면 안경록 목사의 흉상이 있다. 안경록 목사의 강직한 표정을 보노라면 민족을 향한 절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 강릉의 민족혼을 일깨운 안경록 목사.


코스: 춘천중앙감리교회-양양교회-강릉중앙교회

 작성자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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