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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신앙에세이] 믿음의 유산 신앙에세이 믿음의 유산 수원온누리교회 차세대 초등부 교역자와 교사, 자녀 21명이 베트남 호치민으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이 여정이 내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다음세대가 신앙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오늘날 한국 교회는 다음세대의 인원 감소라는 현실 앞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숫자가 줄어드는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의 내일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었기에 이번 아웃리치 여정이 더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첫 번째 일정은 베트남 선교사님이 섬기는 구찌 고아원 방문이었다. 한국에서 준비한 ‘하나님의 용사, 다윗’을 주제로 캠프를 열었고, 키즈벤처 찬양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함께 부르며 율동했다. 언어는 달랐지만,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두 함께 영광을 올려드렸다. 교사들과 아이들은 무언극, 태권무, 찬양과 율동을 준비하면서 복음전하는 훈련을 받았고, 선교 현장에서 섬김을 통해 모두의 믿음이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소수민족 기숙사 겸 교회였다. 베트남 사회에서 소수민족은 차별과 배제 속에 살며 공부 기회조차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복음을 듣고 뜨겁게 예배하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깊은 도전이 되었다. 그곳을 섬기는 현지 목사님이 기도제목과 비전을 나눠주셨다. “이 땅의 고아들과 소수민족들, 여전히 복음을 듣지 못한 많은 이들이 복음을 알게 되고, 교육을 통해 세워져 베트남의 새로운 리더로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그 기도제목과 비전을 들은 우리 팀의 마음이 뜨거워졌고, 모두 함께 기도했다. 밤에는 야학을 방문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배우기 위해 모여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단순한 배움 그 이상이었다. 정부 건물에서 운영되기에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었지만, 간접적으로 전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배움과 말씀을 사모하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호치민온누리교회도 방문했다. 해외에서 신앙을 지키며 그 땅을 위해 헌신하는 교역자들과 성도님들의 예배와 기도에서 깊은 은혜가 흘러넘쳤다. 선교사 센터를 방문해서 선교사님들의 사역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분들이 품은 비전을 함께 나누었다. 책이나 강의로 배운 선교가 아니라 땀과 눈물 속에 살아 움직이는 복음의 현장이었기에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아웃리치팀은 매일 저녁 함께 모여 하루를 돌아보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고 찬양과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자리에서 자녀들의 입술을 통해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 흘러나왔다. 교사로 섬기는 부모님들도 은혜를 나누며 자녀들에게 살아 있는 신앙의 본이 되었다. 자녀들이 부모님의 삶과 교사로 섬기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배우며 신앙이 성장하는 체험을 했다. 차세대는 교회의 미래뿐 아니라 현재이기도 하다. 이번 베트남 아웃리치에서 만난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며 예배했다. 그들의 모습은 한국의 다음세대에게 신앙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다시 질문을 해본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믿음을 물려줄 것인가?” 그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부모가 말씀을 가까이하며 기도하고, 교회 공동체가 함께 예배하고 섬기는 삶에서 신앙이 전해진다. 자녀들은 그 모습을 통해 도전을 받고, 아웃리치와 선교 현장에서 만나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믿음의 유산이다. / 하청훈 목사(수원 차세대)

     2025-10-18  제1560호

  • 칼럼

    [멘토가 멘티에게] 멘토는 신호등 그리고 네비게이션 멘토가 멘티에게 멘토는 신호등 그리고 네비게이션 “멘토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난 5월, 인천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에서 개최한 ‘멘토링 정류장 멘토 토크쇼’는 내게 깊은 여운을 남긴 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멘토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였다. 나는 “교통신호등”이라고 대답했다. 멘토란 복잡하고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서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단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신호등처럼 조용히 제자리에 서서 진실하고 분명한 신호를 보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통신호등은 누군가의 선택을 대신하지 않는다. 다만 정확한 신호를 통해 지금이 멈춰야 할 때인지, 천천히 가야 할 때인지, 아니면 힘차게 나아가야 할 때인지를 알려줄 뿐이다. 그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할지는 온전히 운전자에게 달려 있다. 멘토로 산다는 것도 이와 같다. 청년들 곁에 서서 지금은 멈추는 게 안전한지, 이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내딛어도 좋은지를 말씀과 기도로 분별하며 안내해준다. 그러나 그 결정과 책임은 결국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존중하며 기다려준다. 때로는 무심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신호등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멘토의 첫 번째 의미이다. 온누리신문으로부터 <멘토가 멘티에게> 원고를 부탁받으며, 나는 멘토로서의 또 다른 이미지를 떠올렸다. 바로 ‘네비게이션’이다. 목적지까지 방향을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처럼, 멘토는 청년들이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다양한 길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감당한다. 네비게이션은 단 하나의 길만 제시하지 않는다. 가장 빠른 길, 톨게이트가 없는 길, 막히지 않는 길, 때로는 경치가 아름다운 길까지 제시한다. 그중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언제나 운전자 몫이다. 멘토 역시 인생의 정답을 단정 짓기보다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청년들이 삶을 주도적으로 살도록 돕는 것이 멘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네비게이션이 말없이 안내만 하듯, 멘토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때로 길을 잃고 돌아가더라도 곁에서 함께 고민해 주고, 다시 경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다. 그런 멘토가 된다면 청년들의 여정이 훨씬 덜 외롭고 더 따뜻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쯤에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다. 교통신호등과 네비게이션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필요한 게 무엇일까? ‘정확한 정보’다. 신호 체계가 잘못되어 있거나 도로 정보가 오래되었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잘못된 신호는 사고를 일으키고, 부정확한 안내는 소중한 자원(시간, 에너지, 기회 등)을 낭비하게 만든다. 멘토 역시 마찬가지다.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누군가의 진로를 결정짓기도 하고, 신앙의 여정을 흔들리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다짐한다. 멘토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야 하고,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말씀 앞에 서서 삶으로 살아낸 신호를 보내도록 날마다 내 신호등의 전선을 점검하고, 내 네비게이션의 지도를 업데이트해 나가야겠다. 그렇게 할 때 청년들이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등불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그래야 나의 삶이 단순한 조언을 넘어 ‘빛’이 될 수 있고, 청년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만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가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고, 방향을 잃기 쉬운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필요하다. 신호등이 흔들릴 때, 네비게이션이 잠시 꺼질 때, 결국 우리가 의지해야 할 단 하나의 기준은 하나님의 진리이다. 그것이 멘토인 나도, 멘티인 청년들도 날마다 돌아가야 할 원점이다. / 김효수 멘토(인천 WEB대학청년부)

     2025-10-18  제1560호

  • 칼럼

    [이슈(Issue) 바로보기!] 성경적인 조직과 조직문화 (Biblical Structure and Its Culture)1 이슈(Issue) 바로보기! 성경적인 조직과 조직문화 (Biblical Structure and Its Culture)1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잠 4:23). 사람은 마음의 크기만큼 산다. 우리에게 가장 큰 마음, 즉 정체성을 가르쳐 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정체성을 알려준다. 하나는 흙먼지, 창조의 은혜를 배신한 죽어야 할 행악자, 영원한 형벌을 받은 자 등으로 표현되는 ‘절대 깊이의 정체성’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 부활, 영원한 상속자 등으로 표현되는 ‘절대 높이의 정체성’이다. 최하의 정체성에서 최고의 정체성으로 가는 일은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해진다. 이 두 가지 정체성 모두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한국 또는 미국 같은 개별 국가가 아닌, 열방을 유업으로 품고 이방의 빛이 되는 것이다. 즉, ‘절대 넓이의 비전’이 생긴다. 이보다 큰 정체성과 비전을 주는 사람과 신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성경적인 인문사회학적 소양)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지난 6월 14일 <온누리신문> 9면에서 설명했다. 당대 최고 지성으로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지식을 집대성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칼 막스의 <자본론>을 각각 성공하고 실패하게 만든 차이가 바로 인간 근원에 대한 이해에 있다. 조직의 주춧돌: 정체성과 비전 성경에서의 정체성과 비전은 성막의 구조로부터 알 수 있다. 인류의 타락 이후 번제단에서 정체성이 회복되고, 지성소에서 비전이 회복된다. 번제단은 ‘무한한 용서’를 통하여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상징한다. 이곳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깊이의 십자가 고난, 그리고 절대 높이의 부활(영광)과 함께 구원받은 자의 모든 존재를 다 한 감사와 예배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세계관(world view)의 변화가 이곳에서 일어난다. 가정, 교회, 학교, 기업 등 모든 조직에는 ‘무한한 용서’가 있어야 한다. 그 조직에는 희생양 삼는 ‘비판 정신’(criticizing spirit)’이 있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 정신(accepting spirit)’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조직에 대한 정체성이 강화된다. 희생양 삼는 것은 죄책감을 주는 것이고,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짓누르는 가장 무서운 짐이기 때문이다(롬 6:23). 모든 조직의 정체성은 공동체가 함께 겪은 과거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진다. 그 조직이 겪은 가장 큰 고난과 성취한 가장 큰 영광이 조직원들의 마음에 정체성으로 각인된다. 즉, 모든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셨던 그 길, 십자가의 고난에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동선을 따라가면서 정체성의 깊이와 높이가 형성된다. 따라서 과거 조직을 만들어 주신 선배들의 고난의 깊이와 성취의 높이를 감사하고 선배들의 축복을 받는 것이 정체성 유지의 핵심 요소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식’이다. 번제단을 지나 지성소에 이르면 하나님의 ‘무한한 격려’를 만난다. ‘패배의식’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회복된다.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듣고 마음의 소원과 비전이 생기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긴다(빌 4:13).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 사람은 신학자가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지도자가 된다. 지도자는 이 지성소에서 하나님께 받은 비전으로 공동체의 마음을 모으며 비전을 실현해 나가면서 시대변화를 주도해 미래를 만들어 간다. 이때 공동체에 무한한 격려로 자신감을 지속적으로 불어넣어 주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하나님이 지도자에게 이러한 권능을 허락하신다. 과거 고난의 깊이와 성취의 높이를 통해 정체성의 깊이와 높이를 언어화하고, 과거 선배 세대에 대한 감사를 기반으로 하나의 마음을 만들고, 하나님께 받은 새로운 비전으로 마음이 나뉘지 않도록 해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며,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을 이 시대에 맞는 언어로 재구성해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결국, 모든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자는 역사의식과 비전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역사의식을 통한 정체성에 의해 과거에 대한 감사로 첫 번째 마음이 모이고, 비전 공유에 의한 불같은 소원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두 번째 마음이 모인다. / 박성진 교수(OCC공동체, 포스텍교수)

     2025-10-18  제1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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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진노의 현실, 소망의 미래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진노의 현실, 소망의 미래 10월 20일~26일까지 &lt;스가랴&gt; 7:1~11:17 묵상포인트 1: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종교적 행위의 부족이 아니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상기시키는 과거의 죄악이 무엇인지, 앞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려는 기이한 회복은 무엇인지 묵상하자. ▶벧엘 사람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금식을 계속할지 묻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금식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질타하신다. 이스라엘은 마음을 금강석같이 완고하게 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여러 나라에 흩으셨고, 그들이 살던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이한 회복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시온으로 돌아오시고, 예루살렘이 진리의 성읍이 되며, 그곳 사람들이 번성할 것이다. 다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은 진리를 말하고, 정직한 재판을 하며,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금식이 희락의 절기로 바뀌게 될 때, 많은 나라가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것이다. 묵상포인트 2: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를 위해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에 새로운 왕을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왕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묵상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괴롭힌 이방 민족들의 심판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하드락, 다메섹, 하맛, 두로, 시돈, 블레셋 등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새로운 왕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신다. 공의롭고, 구원을 베풀며, 겸손해 나귀를 탄 그 왕은 세상에 화평을 전할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와 에브라임을 무기로 삼아 대적들을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양 떼처럼 구원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땅에 정착시켜 왕관의 보석같이 빛나게 하실 것이다. 묵상포인트 3: 하나님은 백성을 바르게 이끌도록 지도자들을 세우신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방식을 따르면, 백성은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게 된다.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의 구별 기준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지도자의 악행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묵상하자. ▶하나님께 봄비를 구하면 소낙비를 내려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신다. 하나님은 그분께 구하지 않고 헛된 우상을 찾는 악한 지도자들(목자들, 숫염소들)을 벌하시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 나라에 흩으셨던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회복의 날에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해 견고히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들(레바논의 백향목과 바산의 상수리나무)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몰락할 것이다. 양 떼를 불쌍히 여기지 않은 목자들은 결국 다른 나라에 넘겨질 것이다. 은총(하나님과의 관계)과 연합(사람과의 관계)을 깨뜨린 악한 목자에게는 칼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이스라엘이 패망한 이유는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신앙이 종교 행위에 머물지 않도록 주의하자. 하나님 말씀을 마음 다해 듣고 힘써 순종하자.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왕관을 빛나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가 나와 공동체에도 임하기를 간구하자. ▶풍성한 추수를 위해 봄비를 내리는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나와 공동체의 필요를 오직 하나님께 아뢰고 응답의 기쁨을 누리자. ▶지도자의 사명은 목자처럼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공동체 구성원을 바르게 이끄는 것이다. 하나님께 심판받는 지도자가 되지 않도록 내게 맡겨 주신 양 떼를 성심껏 보살피며 섬기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5-10-18  제1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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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말씀 해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 19:24). 맛있는 말씀 해설 &ldquo;&hellip;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rdquo;(마 19:24). 이 말씀을 들으면 누구나 마음속에 의문이 생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인데,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그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 당시 제자들조차 놀라며 &ldquo;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rdquo;라고 되물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했다. &ldquo;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rdquo; 이 말씀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lsquo;낙타&rsquo;와 &lsquo;바늘귀&rsquo;를 비유로 드셨을까? 낙타는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큰 동물이었고, 바늘귀는 사람이 사용하는 가장 작은 구멍이었다. 예수님이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며 인간은 불가능한 일임을 강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예루살렘 성문중에서 작은 문을 가리킨다거나, &lsquo;낙타&rsquo; 대신 &lsquo;굵은 밧줄&rsquo;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문의 흐름과 공관복음 전체의 병행 구절을 보면, 예수님의 의도는 명확하다. 애초에 과장된 표현을 통해 충격을 주려는 것이었다. 인간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점을 뚜렷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돈 자체가 죄라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돈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기 쉽다는 데 있다. 재물이 많아질수록 그것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의존은 약해진다. &lt;마태복음&gt; 6장에서 &ldquo;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rdquo;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lt;마가복음&gt;은 이 점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며, &ldquo;재물을 의지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rdquo;라고 기록한다. 단순히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뢰하는 태도가 문제임을 드러내는 말씀이다. 결국, 재물은 마음의 우상이 되기 쉽고,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초대교회에 부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자기 무덤을 내어놓은 부자였고, 삭개오는 회개한 이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참된 제자의 길을 걸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부자가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지 않으면 그만큼 더 위험하다는 경고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며 재물을 선하게 사용하는 부자들은 하나님 나라 확장에 귀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성경은 보여준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 말씀은 날카로운 도전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재물은 곧 성공과 안정의 상징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부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각자가 의지하는 무언가(돈, 명예, 지식, 혹은 자기 능력)가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면 그것이 바로 바늘귀 앞의 낙타와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마음의 중심을 다시 하나님께 두고,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두려움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예수님은 불가능을 말씀하시며 동시에 가능한 길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재물은 우리 손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는 대신 그것을 나누고 베풀 때, 그 재물은 나를 속박하는 쇠사슬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넓히는 씨앗이 된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동일하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이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ldquo;저의 소유와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재물이 저를 지배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가 되게 하소서.&rdquo; 이 고백 속에서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오은규 목사(성동광진 공동체)

     2025-10-18  제1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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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강단] 감사와 충성  감사와 충성 &lt;여호수아&gt; 14:6~14 /이재훈 위임목사 인생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현미경의 관점이고, 또 하나는 망원경의 관점입니다. 현미경은 아주 작은 것을 크게 확대해서 실제보다 크게 보는 기능을 가져다줍니다. 망원경은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실제처럼 보이게 해줍니다. 불평은 현미경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문제를 크게 확대합니다. 불평하면 할수록 작은 문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문제로 확대됩니다. 감사는 망원경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축복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충성되게 섬기는 마음은 감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할수록 충성합니다. 감사와 충성으로 충만한 &lsquo;갈렙&rsquo; 구약 역사에서 감사와 충성으로 충만한 한 사람을 꼽으라면 갈렙입니다. &lsquo;갈렙&rsquo;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lsquo;켈렙&rsquo;인데, 목자를 돕는 개를 가리킵니다. 동물의 이름을 사용한 것을 비천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는 참 위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구약 역사에서 주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중부 여리고와 아이성을 정복하고, 남부로 내려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메롬 물가 전투, 혹은 하솔 전투라고 불리는 북부 연합 세력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입니다. 가나안 땅의 전반적인 지배권을 가져온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가나안 원주민들은 정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각 지파가 맡게 된 영역은 알아서 정복하게끔 하는 시점입니다. 그만큼 전반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는 전체적인 전투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대세를 장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각 지역에 숨어있거나 흩어진 가나안 민족들은 부족들이 알아서 점령하도록 임무를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 땅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상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기본적인 원칙은 &lsquo;그 부족의 숫자대로, 그 인원대로 땅을 배분하라&rsquo;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lsquo;제비를 뽑아서 나누라&rsquo;입니다. 정치적인 판단이나 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제비를 뽑아서 땅을 분배하고, 인원에 따라서 배분하라는 원칙을 주셨습니다. 두 지파 반은 이미 빠졌고, 레위 지파는 분깃이 없으므로 또 빠졌습니다. 나머지 지파만 분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역할은 여호수아와 대제사장과 족장들에게 맡겨졌습니다. 바로 그 시점입니다. 그때 갈렙이 유다 자손, 유다 지파들과 함께 여호수아에게 나온 것입니다. 유다 지파는 야곱의 열두 지파 중에서 리더 역할을 했습니다. 그 민족의 가장 절대적이고, 영향력 있는 지파였습니다. 예수님이 유다 지파로부터 나셨고, 메시아가 오셨을 뿐만 아니라, 그 종족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족속입니다. 유다 족속의 리더가 바로 갈렙이었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와 &ldquo;제비 뽑는 일에서 우리를 제외시키고 자신들이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도록 배정해 달라&rdquo;고 요청합니다. 더 많은 땅을 얻기 원하는 이기심에서 하는 요청이 아닙니다. 헤브론 산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무덤이 있고, 아브라함이 최초로 자기 돈으로 구입한 막벨라 굴이 있는 땅이 있었습니다. &ldquo;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날 내게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당신도 그때 직접 들었다시피 거기에는 아낙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성은 크고 강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듯이 내가 그들을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12절). &lsquo;그날에 말씀하신 산지&rsquo;가 헤브론 산지입니다. 아낙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크고 강한 산지를 정복하겠다는 것입니다. 갈렙이 이 시점에 요청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 감사와 충성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 충성된 모습을 보십시오. &ldquo;그런데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약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마음을 다해 내 하나님 여호와를 따랐습니다. 그러자 그날 모세가 내게 맹세했습니다. &lsquo;네가 마음을 다해 네 하나님 여호와를 따랐으므로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유산이 될 것이다&rsquo;&rdquo;(8~9절). &lsquo;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따랐다&rsquo;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곧 충성된 믿음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따르던 갈렙의 믿음입니다. 갈렙의 고백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충만하게 나타납니다. &ldquo;이제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나를 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하던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 말씀을 하신 지 45년이 됐습니다. 지금 내가 85세가 됐습니다. 모세가 나를 보냈던 때처럼 나는 아직도 강건하고 내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드나드는데 기력이 왕성합니다&rdquo;(10~11절).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살려주셨고, 하나님이 강건하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넘쳐납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따르는 충성된 믿음과 감사가 갈렙의 마음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신앙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 감사와 충성이 가득한 갈렙에게 세 가지 신앙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의 불신앙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ldquo;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 땅을 정탐하라고 나를 보냈을 때 내 나이 40세였습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에 확신이 서는 대로 그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약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마음을 다해 내 하나님 여호와를 따랐습니다&rdquo;(7~8절). 갈렙이 성경에서 처음 소개되는 장면은 &lt;민수기&gt; 13장입니다. 그가 유다 지파의 대표로서 열두 정탐꾼의 일원으로 가나안을 정탐했습니다. 그때 일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한 것은 사실 하나님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원해서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나와 불안과 두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ldquo;백성들이 그 땅에 가봐야 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rdquo; 했더니 &ldquo;그러면 열두 명의 각 지파의 리더들이 그 땅을 가서 살펴보고 오게 하라&rdquo;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두 명을 정탐꾼으로 보내 그 땅을 살펴보라고 하신 단어가 군사용어가 아닙니다. &lsquo;살펴본다&rsquo;는 단어가 가장 많이 쓰인 곳이 지혜서입니다. &lt;잠언&gt;과 &lt;전도서&gt; 같은 곳에서 같은 단어가 쓰였는데, 지혜를 통해서 살펴보고, 탐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을 확인하고 맛보는 의미의 정탐이지, 군사적 의미의 정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lt;민수기&gt; 13장에서 하나님이 &ldquo;그래 살펴보라&rdquo;고 하는 것은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땅인지 소망을 품고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을 미리 보고 백성들에게 잘 전하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살펴본 열 명의 정탐꾼들이 불신앙의 보고를 했습니다. 그 불신앙에 백성들이 휩쓸렸습니다. 열 명의 보고에 사람들이 넘어간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을 옳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때 갈렙이 나서서 &ldquo;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답이다&rdquo;라고 했습니다. 그 땅에서 가져온 포도송이를 보여주며 &ldquo;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은 이렇게 좋은 땅이다&rdquo;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대로 보고를 한 사람이 갈렙입니다. 후에 여호수아도 합세했지만, 불신앙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가장 흔들리고 두려워할 때 나서서 말한 사람은 갈렙입니다. 그는 매우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그 열두 명이 가나안 땅, 특히 헤브론 산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묘가 있는 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고 아브라함이 돈을 주고 막벨라 굴을 산 땅입니다. 역사적인 땅입니다. 그래서 그 땅을 집중적으로 봤는데, 그 땅에 아낙 자손들이 강한 것을 보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거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때 갈렙이 &ldquo;아니다. 우리는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기 때문이다&rdquo;라고 믿음의 보고를 합니다. 열 명의 불신앙은 자신들의 힘과 거인들을 비교했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거인들과 하나님을 비교한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와 충성은 불신앙의 목소리가 아무리 크고 많아도 절대로 휩쓸리지 않습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불신앙의 소리는 더 커집니다. 과학을 더 숭배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세력들이 득세할 것입니다. 불신앙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휩쓸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자신의 위치보다 사명을 더 중요하게 둘째, 갈렙은 자신의 위치보다 사명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출애굽한 세대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20세 이상 성인들은 다 죽고 차세대만 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역사에 부각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수십 년 간 여호수아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무대에서 가려지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지만, 그는 변함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사람을 좇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충성된 믿음은 자신의 위치보다 사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45년 동안 여호수아와 동역했습니다. 여호수아 옆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갈렙의 충성된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따르는 충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소명과 임무가 중요했습니다. 사명보다 직분이 중요한 교회는 결국 싸우게 됩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서 일하느냐가 중요한 교회는 결국 분열과 다툼,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길을 자청하는 믿음 셋째, 갈렙을 통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길을 자청하는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헤브론 산지를 자신의 지파에게 맡겨달라고 한 것은 가장 쉽고 좋은 땅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땅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험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서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제비를 뽑아서 맡은 것만 해도 될 텐데 헌신을 자청했습니다. 질서를 무너뜨리는 요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비를 뽑으라고 하신 것은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지 최선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갈렙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그런데도 충성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감사하는 믿음, 충성된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고 희생하고 헌신하게 합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며 많은 헌신을 했던 갈렙이 지금도 그 감사와 충성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갈렙이 45년 동안 지치지 않고 인내했고, 85세가 되었어도 감사와 충성이 가득한 믿음으로 도전하는 힘은 인간적인 힘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충성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힘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ldquo;여호와의 눈은 세상을 두루 볼 수 있어서 그 마음이 온전히 그분께 향하는 사람들을 힘 있게 하십니다(대하 16:9).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힘 있게 하십니다. 건강도 힘 있게 하시고, 믿음도 힘 있게 하시고, 일터도 힘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가 헤브론 산지를 갈렙에게 맡깁니다. 갈렙은 그 산지를 훌륭하게 정복했습니다. 유다 지파는 헤브론 산지의 중심부를 도피성으로 제공합니다. 성업 자체를 레위 자손들에게 제공합니다. 정작 자신들은 변두리 산지와 촌락에 거주합니다. 그렇게 희생하고 헌신해서 얻은 기업을 하나님께 다시 바쳤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갈렙처럼 감사하며 충성하는 사람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갈렙과 같이 감사와 충성이 가득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입니다. 감사와 충성이 가득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0-18  제1560호

  • 국내캠퍼스

    [News] 지금 여기, 사도행전 지금 여기, 사도행전! 10월 4~5일 온누리교회 창립 40주년 기념 주일 대중교통 이용의 날, 축제 캠페인, 특별순예배 10월 21~23일 온누리사역축제(OMC) 10월 4일(토)과 5일(일)은 온누리교회 창립 40주년 기념 주일이다.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행사가 10월 23일(목)까지 이어진다. 10월 4~5일 온누리교회 창립 40주년 감사예배를 온누리교회 국내 12개 캠퍼스 본당에서 드린다. 이재훈 위임목사가 설교하고, 설교 영상을 각 캠퍼스에 송출한다. 10월 4일(토) 오전 7시부터 5일(일) 오후 6시까지 &lsquo; 대중교통 이용의 날&rsquo; 캠페인을 한다. 교회주차장은 거동이 불편한 성도, 75세 이상 어르신, 장애인, 임산부, 36개월 이하 동반 자녀, 다자녀(3명 이상) 가정 차량만 이용할 수 있다. 셔틀은 일요일에만 운영한다. 40주년 축제 캠페인, 특별순예배, 온누리사역축제(OMC)는 &lsquo; 지금 여기, 사도행전&rsquo; 을 주제로 열린다. 40주년 축제 캠페인에서는 &lsquo; 은혜의 40주년&rsquo; , &lsquo; 작은 시작&rsquo; 등을 주제로 7주 동안 추억의 사진전, 원로 성도 인터뷰, 토크쇼, 공모전, 팟캐스트 라이브, 부흥회, 마라톤 대회 등을 한다. 40주년 기념 웹페이지(40th.onnuri-church.com)도 문을 열었다. 40주년 축제 캠페인 자세한 일정 및 추억의 사진전, 선교사 기도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별순예배는 10월 셋째 주까지 &lsquo;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꾸다&rsquo; , &lsquo; 큐티하면 행복합니다&rsquo; , &lsquo; 일대일은 온누리에 주신 선물입니다&rsquo; 등을 주제로 특별순예배를 드린다. 이재훈 위임목사의 주제 강의를 듣고, 온누리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관해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온누리사역축제(OMC)는 10월 21일(화)부터 23일(목)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에서 막 오른다. 21일(화) &lsquo; 교회, 복음으로 서다!&rsquo; , 22일(수) &lsquo; 교회, 문화로 퍼져가다!&rsquo; , 23일(목) &lsquo; 교회, 선교로 꽃피우다!&rsquo; 를 주제로 주제 강의, 패널토의, 선택식 강의, 저녁 집회 등을 개최한다. 21일(화)에는 이재훈 위임목사 &lsquo; 교회, 복음의 공동체&rsquo; , 이인용 장로(법무법인 율촌) &lsquo;세상이 왜 이런가요?&rsquo; , 류현모 교수(서울대학교) &lsquo; 세계관과 복음&rsquo; 을 주제로 강의한다. 패널토의는 &lsquo; 반기독교 사조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의 대응&rsquo; 을 주제로 진행된다. 저녁 집회에서는 &lsquo; 온전한 복음&rsquo; 을 주제로 홍정길 원로목사(남서울은혜교회)가 설교한다. 22일(수)에는 이재훈 위임목사 &lsquo; 교회, 문화의 변혁자&rsquo; , 김경훈 집사(글로벌 AI기업 한국 사장) &lsquo; AI시대와 교회&rsquo; , Christopher Wright 박사(랭함 파트너십 인터내셔널) &lsquo;폭력, 고통, 두려움의 세계 문화 속의 선교&rsquo;를 주제로 강의한다. 저녁 집회에서는 이동원 원로목사(지구촌교회)가 &lsquo; 샘 곁에 무성한 가지처럼&rsquo; 을 주제로 말씀을 전한다. 23일(목)에는 이재훈 위임목사 &lsquo; 교회, 선교의 촉매제&rsquo; , Nelson Jennings 박사(GMLF 이사장) &lsquo; 변화에 잘 대응하는 선교&rsquo; , 유병국 선교사(WEC) &lsquo; 글로벌 선교 협력&rsquo; 을 주제로 강의한다. 저녁 집회에서는 이재환 선교사(컴미션)가 &lsquo; 선교사역 완성&rsquo; 을 주제로 메시지를 전한다. 온누리사역축제 참가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10월 12일(일)까지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저녁집회는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저녁집회 참가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교회에 와야한다. 각 캠퍼스에서 실시간 중계로도 참여할 수 있다. OMC 등록 문의: 각 캠퍼스 목회지원실 OMC 문의: 02-3215-3234(3122, 3534) 주차 문의: 02-3215-3434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추수감사절&lsquo;사르밧 프로젝트&rsquo; 10월 19일까지 헌금 및 대상자 접수 추수감사절 &lsquo; 사르밧 프로젝트&rsquo; 헌금 및 대상자를 10월 19일(일)까지 접수해야 한다. &lsquo; 사르밧 프로젝트&rsquo; 는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과 성경 나눔을 실천하는캠페인이다. 헌금은 각 캠퍼스 송금 계좌로 6만 5천 원(쌀 20Kg 한 포대가격)을 기준으로 형편에 맞게 봉헌하면 된다. 헌금을 입금할 때는 공동체, 다락방, 순 이름을 일곱 자 이내로 기재해야 한다. 개인 참여도 가능하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재하면 된다. 송금 계좌는 서빙고 &lsquo; 하나은행 573-91001 9-14805&rsquo; , 양재 &lsquo; 하나은행 573-910021-35705&rsquo; 다. 나머지 캠퍼스는 목회지원실에 문의하면 된다. 사르밧 프로젝트 나눔 대상자는 반드시 공동체 담당목사와 대표장로의 확인을 거친 다음, 공동체를 통해서 10월 19일(일)까지 이메일로 접수해야 한다(서빙고: 25thanksgiving@naver.com, 양재: hyomin2021@naver.com). 나머지 캠퍼스는 목회지원실에 제출하면 된다. 문의: 02-3215-3434(서빙고), 각 캠퍼스 담당 간사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러브소나타 시가 &lsquo;세 겹줄, 삼포요시의 인생&rsquo; 10월 29~30일 모리야마 시민홀 러브소나타 시가가 &lsquo; 세 겹줄, 삼포요시(하나님과 이웃과 조화)의 인생&rsquo;(전 4:12)을 주제로 10월 29일(수)과 30일(목) 모리야마 시민홀에서 막이 오른다. 한국 참가자, 봉사자 및 스태프 7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10월 29일(수) 세미나와 러브소나타 전야제 &lsquo; 가스펠 나이트&rsquo; , 30일(목) 리더십 포럼(한일친선오찬회), 러브소나타 집회가 이어진다. 29일(수) 가스펠 나이트에서는 시모자와 겐지 목사가, 30일(목) 러브소나타에서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말씀을 전한다. 집회 실황을 러브소나타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한다. 문의: 02-570-7415 / 박지혜 기자 10월 6~10일 &lsquo;전력 증설 공사&rsquo; 서빙고온누리교회 임시 휴관 서빙고온누리교회 전력 수변전설비 증설 공사를 10월 6일(월)부터 10일(금)까지 한다. 이 기간 서빙고온누리교회 건물전체 전기가 차단되고,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출입이 전면 통 제된다. 이 기간 서빙고온누리교회 모든 예배와 사역 활동도 중단된다. 주중예배는 국내 다른 캠퍼스에서 드리면 된다. 문의: 02-3215-3120 / 홍하영 기자

     2025-10-04  제1559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순종이 승리의 길입니다  순종이 승리의 길입니다 &lt;여호수아&gt; 11:1~16 /이재훈 위임목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는 불신앙의 이유가 &lsquo;예수님을 믿게 되면 내 자유를 잃어버리고 억압되고 구속받는 것이 싫다&rsquo;입니다. 이 반응은 두 가지 사실을 내포합니다. 하나는 정확한 것이고, 또 하나는 정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확한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부정확한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자유를 잃어버린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건강 법칙에 철저히 순응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경제법칙에 철저히 순응합니다. 사회의 법과 질서에도 순응합니다. 육체의 법칙뿐만 아니라 자연의 법칙, 생물학적인 법칙, 사회의 법칙 등에 순종하며 살아감에도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지켜야 할 영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영적 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모순입니다. 그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 과연 자유를 잃어버리고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일까요? 정반대입니다. 어떤 영역이든 법칙을 무너뜨리고 불응하는 사람은 자유와 행복을 잃어버립니다. 반면 진리의 법칙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은 자유롭고 행복을 누립니다. 우리의 순종 그 자체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는 율법이라는 체계로 법을 말씀하셨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법을 따라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우리의 행복이요, 기쁨이요, 자유의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여정에서도 그것을 알려줍니다. &lsquo;순종이 곧 승리의 길&rsquo;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여러 전쟁을 치르면서 단계마다, 문제마다 순종할 때 해결되고 승리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성과 아이 성을 정복하고, 기브온에 모여든 남부지역을 정복할 때 각기 다른 전략을 주셨습니다. 북부지역 전쟁에서 하나님은 구체적인 전략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강조했습니다. &lsquo;하솔&rsquo;은 가나안 전체에서 가장 강하고 큰 도시였습니다. 그 주변에 있던 도시들이 하솔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ldquo;그러자 그들이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는데 그 사람들이 많아서 바닷가의 모래 같았습니다. 말과 전차도 대단히 많았습니다. 이 모든 왕들이 약속된 장소에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합세해 메룸 물가에 함께 진을 쳤습니다&rdquo;(4~5절). 북부지역에 있는 모든 도시국가가 연합한 것입니다. 가장 큰 위협 앞에 서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소문이 퍼졌음에도 대적해서 싸우고자 하는 것은 인간들의 완악함을 보여줍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가 되면 인간의 완악함이 극에 달해서 하나님이 더는 은혜 베푸는 것을 멈추시고 거두면서 인간은 심판받아 마땅한 상태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ldquo;여호와께서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해서 그들을 진멸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셨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절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rdquo;(20절). &lsquo;세상이 혼란하고 죄악이 많은 것을 두고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다는 증거 아닐까?&rsquo;라고 생각하지만, 정반대로 그분이 살아계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래도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면 세상은 우리가 숨 쉴 수 없는 심판 받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강력한 대적에 대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대응했을까 궁금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침묵합니다. 도리어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의 순종을 강조합니다. &ldquo;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대로 여호수아는 그대로 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남김없이 행했습니다&rdquo;(15절). 아무리 강한 대적이라도, 아무리 강력한 동맹 연합군이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가장 불리하고 위기 상황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도리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아이성을 무너뜨린 것보다 간단하게 &lsquo;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다&rsquo;라고 선포합니다. &ldquo;이스라엘은 그들을 치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그들을 쳤습니다&rdquo;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적적인 일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브온에서의 싸움과 같이 자연을 멈추게 하는 기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리고성처럼 성벽을 돌며 소리칠 때 무너지는 기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때로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지만, 일반적으로 순종을 통해 승리를 주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언제나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순종 그 자체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길 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길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ldquo;그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lsquo;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일 이맘때 내가 그들 모두를 죽여 이스라엘에 넘겨줄 것이다.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전차를 불로 태워라&rsquo;&rdquo;(6절). 하나님의 보호를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가 우리 앞에 놓일지라도, 아무리 큰 대적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이 보호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ldquo;대적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전차를 불로 태워라&rdquo;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말과 전차를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 봐 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순종하는 자에게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ldquo;그러자 여호수아가 그 모든 군사들과 함께 메롬 물가에 있는 그들을 급습해 덮쳤습니다&rdquo;(7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는 것과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은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ldquo;규례와 법도들을 잘 지키라. 이것으로 여러 민족들에게 너희의 지혜와 통찰력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례들에 대해 듣고 &lsquo;이 위대한 민족은 지혜롭고 통찰력 있는 백성이다&rsquo;라고 할 것이다&rdquo;(신 4:6).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지혜와 통찰력을 주십니다. 모든 상황,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모든 일상의 영역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와 지혜 그리고 통찰력을 주심으로 승리하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사람은 작은 문제 앞에서도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사람은 큰 문제 앞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가 주어져도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사람은 두렵지 않고 휩쓸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임이 나타날 뿐입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명하신 것도, 모세를 통해 명하신 모든 것을 남김없이 순종했습니다. 남김없이 순종하는 온전한 순종이 가져다준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조금도 장벽이 없는, 거리낌이 없는,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계속되면, 순종이 거듭될수록, 이전보다 더 친밀하게, 이전보다 더 가깝게, 이전보다 더 하나님과의 연합을 경험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승리란 하나님과 연합된 삶의 부수적인 열매일 뿐입니다. 순종이 살 길이며, 승리의 길 &ldquo;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너희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너희가 다다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 위에 있지 않으니 너희는 &lsquo;누가 하늘로 올라가 그것을 잡겠으며 우리에게 선포했다고 해서 우리가 순종하게 하겠는가?&rsquo; 하고 물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바다 밑에 있는 것도 아니니 너희는 &lsquo;누가 바다를 건너가 그것을 잡겠으며 우리에게 선포했다고 해서 우리가 순종하게 하겠는가?&rsquo; 하고 물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 말씀은 네게 아주 가까워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 너희가 순종할 수 있다&rdquo;(신 30:11~14). 하나님의 말씀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우리가 다달을 수 없는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바다 밑에 있어서 깊은 곳에 가야만 순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ldquo;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lsquo;말씀이 네 가까이 있으니 네 입 속에 있고 네 마음속에 있다&rsquo;라고 했으니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만일 당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rdquo;(롬 10:8~9). 입술과 마음으로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고, 받아들이면, 성령 안에서 순종할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의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믿음이 우리를 순종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네 가지 상태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타락 이전입니다. 타락 이전의 상태는 죄는 없지만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죄를 지었습니다. 둘째, 타락 이후입니다. 타락 이후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의인은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셋째, 구원 이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는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 말씀과 성령 안에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상태, 죄는 있지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면 언제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로 넘어갑니까? 순종을 통해서입니다. 여전히 죄가 있지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로 넘어가는 능력과 가능성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넷째, 구원 완성입니다. 이제는 죄가 전혀 없는 상태,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세 번째 단계에서 네 번째 단계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단계에서 우리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임하고, 성령이 임하시기 때문에 이제 순종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길입니다. 구원의 길이며, 승리의 길입니다.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이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날마다 경험하며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를 죄악으로 넘어뜨리려는 거대한 세력이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장이시고, 순종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과 더 친밀하고, 구원받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순종이 살 길이며, 승리의 길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0-04  제15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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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한 생활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한 생활 9월 29일~10월 5일까지 &lt;로마서&gt; 11:11~13:14 묵상포인트 1: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성으로 알 수 없는 신비다. 유대인의 복음 거부는 이방인의 구원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바울이 찬양한 하나님의 심오한 구원 계획에 대해 묵상하자.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고 알았음에도 이를 거부해 넘어졌다. 그들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되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접붙임의 비유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참감람나무 가지 중에서 얼마는 꺾어 내시고, 돌감람나무 가지들을 접붙여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게 하셨다. 뿌리는 이스라엘 족장들을, 돌감람나무 가지는 이방인을 가리킨다. 유대인보다 먼저 믿게 된 이방인은 교만한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 때가 되면 유대인들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놀랍도록 심오하다. 묵상포인트 2: 1~11장은 칭의와 구원의 교리를 다루고, 12~16장은 삶의 적용을 다룬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lsquo;예배하는 삶&rsquo;이다. 일상의 모든 현장에서 우리가 삶으로 나타낼 예배의 모습에 대해 묵상하자. ▶구원받은 성도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현장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시어 한 몸을 이루며 교회를 섬기게 하셨다. 성도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한다. 형제자매를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하고 우애해야 한다. 부지런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고, 기도에 힘쓰며,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야 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겸손히 행하고, 사람들과 화목하고, 원수를 하나님께 맡기며,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묵상포인트 3: 국가는 국민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고, 성도는 국민의 일원으로서 담당할 의무가 있다.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울이 국가와 지도자를 향해 어떤 태도를 가지라고 권면하는지 묵상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에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 악을 행하는 자라면 권세를 가진 자를 두려워해야 한다. 권세자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보응하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신에게 부과된 조세나 관세를 바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한다. 성도는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 아무에게도 빚을 져서는 안 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깝기에 성도는 빛이신 그리스도로 옷 입고 어둠과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유대인의 거부로 이방인에게 구원이 이르렀으나, 때가 되면 하나님이 유대인도 구원하실 것이다. 먼저 구원받은 자로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자. ▶주일예배가 마치면 그때부터 진정한 삶의 예배가 시작된다. 평일에도 말씀에 순종하며 예배하는 삶을 이어가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삶의 현장에서 진실한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삶, 화목하는 삶, 축복하는 삶을 살아가자. ▶원수에 대한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고, 날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선택하자.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성실하게 맡겨진 책무를 감당하도록 기도하자. ▶빛이신 그리스도로 옷 입고, 죄악에 빠지게 하는 어둠의 일들을 멀리하며, 다시 오실 주님의 날을 준비하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제공

     2025-09-27  제1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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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말씀 해설] “…너희 땅에 있는 너희 형제들 가운데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손을 펴 도우라”(신 15:11). 맛있는 말씀 해설 &ldquo;&hellip;너희 땅에 있는 너희 형제들 가운데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손을 펴 도우라&rdquo;(신 15:11). &lt;신명기&gt;는 &lsquo;거룩&rsquo;에 관한 말씀이다. 거룩은 기본적으로 &lsquo;구별됨&rsquo;을 의미한다. 그런데 거룩에 관하여 오해하는 것들이 있다. 거룩은 &lsquo;기도를 얼마나 하는가, 예배를 얼마나 드리는가, 헌금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rsquo; 하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거룩은 &lsquo;종교적 거룩&rsquo;이 아니라 &lsquo;일상의 거룩&rsquo;이다. 다시 말해, 거룩은 종교성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의 기준과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lsquo;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 거룩을 드러내는가?&rsquo;, 바로 그것이 &lt;신명기&gt;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lt;신명기&gt; 15장은 당시 사회의 약자로 구분되던 이방인, 고아, 과부와 같은 사람들을 돌봐야 할 책임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연약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주변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지만, 사회를 돌아보면 언제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나님도 &lt;신명기&gt; 15장 11절에서 &ldquo;이 땅에는 항상 가난한 사람이 있을 것&rdquo;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런 세상 속에서 &ldquo;손을 펴서 도우라&rdquo;고 명령하신다. 모세는 마음과 눈 그리고 손이라는 세 가지 신체 부위를 언급하며 연약한 이들을 돕고 배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의지를 담은 마음과 그 마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 실용적인 손을 통해 율법을 우리 현실의 현실, 즉 일상에서 살아가야 함을 뜻한다. 주변에 연약한 자들이 보면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한 불쌍함이나 동정심을 넘어서 진정한 연민(Compassion)을 가지라고 명령하신다. 진정한 연민은 감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정 이상의 &lsquo;행동&rsquo;을 요구한다. 진정한 연민은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lt;마태복음&gt; 23장에서 눈먼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부르짖을 때, &lt;마가복음&gt; 1장에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무릎 꿇고 애원할 때, &lt;누가복음&gt; 7장에서 외아들을 잃은 여인을 보시고 예수님이 동일하게 느끼셨던 감정이 있다. 각각의 상황은 달랐지만, 예수님은 늘 동일하게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여기서 &lsquo;불쌍히 여기다&rsquo;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 &lsquo;스플랑크니조매&rsquo;는 &lsquo;창자가 움직인다&rsquo;는 뜻을 의미이다. 즉, 예수님은 단순한 감정적 동정이 아니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의 깊이로 연민을 느끼셨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 고통을 느끼는 데서 멈추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진정한 연민으로 눈먼 자들의 눈에 손을 얹으셨고, 나병 환자들의 몸에 손을 대셨으며, 죽은 외아들의 관에 손을 내미셨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실 뿐 아니라 손을 펴서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셨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바로 그것을 보여 준다. 우리의 죄 가운데, 우리의 연약한 삶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당신의 손을 내밀어 우리를 만지신 사건이다. 연민의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결코 자연스럽지도, 쉽지도 않다. 우리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 연약한 자들에게 손을 펴서 돕기까지 삶의 관점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먼저 예수님처럼 속도를 늦춰야 한다. 바쁜 일상으로 분주해진 삶의 속도는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바쁘셨지만, 절대 분주하지 않으셨다. 힘듦을 각오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예수님이 부정한 자를 만지시고, 죄인과 세리와 함께하실 때 힘듦을 각오하셨다. 그들의 손을 움켜쥐지 않고, 펴는 것은 나의 권리를 내려놓는 일이다. 예수님은 힘듦을 각오하시고, 우리를 위해 왕의 보좌를 포기하시며, 손을 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우리는 마음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연약한 이들의 필요 가운데로 한 걸음 나아가 손을 펴고 도와야 한다. 그것을 일상에서 이루어 내면서 일상의 거룩을 지키며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 양진범 목사(평택온누리교회)

     2025-09-27  제1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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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강단] 기도로 세상을 멈추다  기도로 세상을 멈추다 &lt;여호수아&gt; 10:1~15 /이재훈 위임목사 가나안 정복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을 조금씩 쫓아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lt; 출애굽기&gt; 20장 30절에서 &ldquo;그 땅을 정복할 때 조금씩 쫓아내도록 하실 것&rdquo;이라는 말씀을 주신 바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 나라와 민족들을 정복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은 단번에 큰 성취를 이루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순종하는 발걸음 속에서 그분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성과 아이 성의 전멸에 이어서 기브온 족속이 자발적인 항복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속을 맺었다는 것을 듣고, 가나안 땅 남부지역의 여러 부족 왕들이 몹시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다섯 왕이 동맹을 맺고 자신들을 배반한 기브온 성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입니다. 한 성을 상대로 싸우기도 힘든데, 다섯 왕이 동맹한다면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불리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들이 연합함으로 인해서 도리어 한 번의 전쟁으로 남부지역을 장악하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타작마당의 곡식단을 모으듯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남부지역 연합군을 결성하는 일은 예루살렘의 왕 아도니세덱이 주도했습니다. 성경에서 &lsquo;예루살렘&rsquo;이라는 도시명이 처음 등장합니다. &lt;창세기&gt; 14장 18절에 &lsquo;살렘&rsquo;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살렘왕이 멜기세덱이었습니다. 살렘이 예루살렘으로 이어진 것이라면, 아도니세덱은 멜기세덱의 후손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도니세덱은 히브리어로 &lsquo;아도니째덱&rsquo;인데, &lsquo;아도니&rsquo;는 &lsquo;나의 주님&rsquo;, &lsquo;쩨덱&rsquo;은 &lsquo;의로우시다&rsquo;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과 정반대되는 생을 살았던 타락한 가나안 민족의 일원이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보려고 연합군을 결성해 기브온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 일을 그가 주도한 것은 가장 먼저 위험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연합군을 구성해 대적하려고 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기브온은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 급히 올라와 구원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기브온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었기에 요청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는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해 곧바로 길갈에서 기브온으로 떠납니다.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약한 언약을 지키는 것이기에 분명한 그분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필요한 일처럼 보입니다. 다섯 동맹국이 이스라엘을 지금 공격하는 게 아니라 기브온을 공격하는 것이니 그 땅의 민족들끼리 싸우도록 내버려 둬도 괜찮을 것처럼 보입니다. 또 기브온과 언약을 맺게 된 것이 속임수에 의해서 맺어진 조약 아닙니까? 그러나 맺어진 언약이었기에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호수아는 판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태도를 기쁘게 여기시고 격려하셨습니다. 언약을 맺은 이상 충실하려고 하는 태도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격려와 승리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의무를 뛰어넘어 최대화하는 믿음 &ldquo;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lsquo;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너를 당해낼 자가 없을 것이다&rsquo;&rdquo;(8절). 하나님이 언제 이 격려와 승리의 약속을 주셨는지가 중요합니다. 여호수아의 결심이 먼저입니다.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 대해서는 다시 물을 필요 없이 순종하는 행동, 결심, 실행이 중요합니다. 명백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명백한 하나님의 뜻, 거룩한 삶에 대하여 다시 질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명백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의 태도로 나아갈 때 그분이 함께하시고 격려하시고 축복하십니다. &ldquo;그리하여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워 행군해 가서 불시에 그들에게 들이닥쳤습니다&rdquo;(9절). 길갈에서 기브온까지 약 38km입니다. 밤새워 행군했습니다. 대단한 헌신입니다. 더구나 그 지역은 산악지대입니다. 매우 힘든 행군이었을 것입니다. 그 거리를 쉬지 않고 밤새도록 행군해서 올라갔다는 것은 엄청난 헌신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의무를 최소화하지 않고 최대화하는 모습이 여호수아에게 발견됩니다. 우리 삶에서 맺어진 언약관계가 있습니다. 부부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무엇보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주어진 의무를 최소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관계만 깨지지 않을 정도로, 직장에서 쫓겨나지만 않을 정도로 하는 정도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헌신을 언제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관계에서도 헤어지지 않을 만큼만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 쫓겨나지 않을 정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만 간신히 유지하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뛰어넘어 삶에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최선을 다해 사랑을 풍성하게 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그것을 최소화해서 지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ldquo;누군가 너에게 5리를 가고자 하면 10리를 가라&rdquo;고 하셨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이 사람들을 부릴 때 5리까지는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라면,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기꺼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의무를 최소화하는 삶이 아니라 의무를 뛰어넘어 최대화하는 믿음이 여호수아에게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ldquo;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앞에서 그들을 혼란에 빠뜨려 기브온에서 그들을 대대적으로 살육하셨고 벧호론으로 올라가는 길을 쫓아 아세가와 막게다에 이르러 그들을 치셨습니다&rdquo;(10절).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큰 두려움과 공포가 임합니다. 반대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평화와 담대함이 임합니다. 기브온을 치려던 남부동맹군에게 큰 두려움과 혼란이 임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은 언제나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에 최대로 순종하려는 이들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계시 &ldquo;또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쳐 벧호론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거기서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하늘에서 큰 우박을 내리셔서 그들이 죽었습니다. 우박에 맞아 죽은 사람이 이스라엘 군사들의 칼에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았습니다&rdquo;(11절). &ldquo;네가 눈의 창고에 들어가 본 적이 있으며 우박의 창고를 본 적이 있느냐? 그것은 내가 고난의 때를 위해, 전쟁과 전투의 날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다&rdquo;(욥 28:22~23). 하나님이 내리신 큰 우박으로 대적들을 치셨습니다. 그런데도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기브온에서 벧호론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도망가는 이들이 1차는 이스라엘의 칼에 의해서, 2차는 큰 우박에 의해서 무너졌지만, 그래도 빨리 도망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어두워지면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바로 그때 여호수아가 사상 전례 없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ldquo;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에 넘겨주신 그날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lsquo;오 해야, 기브온에 그대로 멈춰 있어라. 오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그대로 멈춰 있어라&rsquo;&rdquo;(12절). 해가 지기 전에 여호수아가 해와 달을 향하여 &ldquo;그대로 멈춰 있으라&rdquo;고 명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을 멈춘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여호수아가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그의 생각대로 명령했더니 해가 멈춘 게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가 있을 때 &lsquo;세상을 내 마음대로 한번 멈춰보겠다&rsquo;는 생각에서 그것을 명하면 세상이 멈춘다고 믿으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여호와께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여호와께 이 상황을 올려드리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의 계시를 주셨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분명히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할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다는 계시를 의지하며 해와 달을 향하여 명한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 때,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시는 특별한 음성과 명령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이 없었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아뢨더니 &ldquo;반석을 향하여 명령하여 물을 내라&rdquo; 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세가 순종했을 때 물이 터져 나왔던 것처럼,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해와 달을 향하여 명하도록 계시하신 것입니다. &lt;여호수아서&gt;에 나오는 이 사건을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성경에는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계속 나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만물을 통치하고 계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능력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할 때 일어납니다. 비슷한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엘리아입니다. 이런 믿음은 한순간에 형성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의 여러 역사를 통해 쌓여갑니다. 엘리야도 그릿시냇가에서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수동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훈련받았습니다. 그는 사르밧 과부에게 마지막 음식을 달라고 했습니다. 뺏어먹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을 때 오병이어같이 놀라운 기적이 임했습니다. 엘리야는 그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리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점진적으로 훈련합니다. 여러 시험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해와 달이 멈추는, 이 세상을 멈추는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세상이 멈추는 기적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하지만 자연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신 하나님께는 쉬운 일입니다. 불순종하는 인격을 가진 인간을 다루는 것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통치하시는 게 그분께는 더 쉬운 일입니다. 이기적으로 사는 삶에서 놀라운 기적을 기대하고 구한다면 하나님이 들어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서 믿음의 기도를 드린다면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담대한 수준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09-27  제1558호

  • 국내캠퍼스

    [News] 열방과 함께, 온누리와 함께! 열방과 함께, 온누리와 함께! 이주민 추석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lsquo;Renewal&rsquo; 10월 4~6일 파주 영산수련원, 16개국 이주민 787명 참석 드디어 온누리M미션이 주최하는 이주민을 위한 추석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가 &lsquo;Renewal(다시 새롭게)을 주제로 10월 4일(토)부터 6일(월)까지 파주 영산수련원에서 막 오른다. 네팔, 러시아,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아랍,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등 16개국에서 온 이주민 787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올해 하비스트에서는 &lt;에스겔&gt; 37장을 주제 말씀으로 네 번의 집회가 이어진다. 4일(토) 이재훈 위임목사 &lsquo; 회개&rsquo; , 5일(일) 인도네시아 마주 목사(안디옥국제선교회 평택교회 책임 자) &lsquo; 말씀&rsquo; , 해럴드 김 목사(영어예배) &lsquo; 성령&rsquo; , 6일(월) 김태완 목사(온누리M미션 담당) &lsquo; 비전&rsquo; 을 주제로 메시지를 전한다. 국제문화축제, Mini Nations Tour 등 이주민과 함께 맛보고 즐기는 문화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열릴 예정이다. 10월 6일(월) 집회 마지막 날에는 이주민 성도들이 작성한 소망과 비전이 담긴 리뉴얼 프로젝트를 선포하고, 함께 헌신하는 시간을 갖는다. 김태완 목사는 &ldquo;열방의 이주민들이 이번 하비스트를 통해서 메마른 심령 가운데 진정한 영적 갱신과 부흥을 경험하기를 바란다&rdquo;면서 &ldquo;온누리교회 성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 를 부탁한다&rdquo;고 당부했다&lt;관련 기사 10면&gt;. 재정후원: 하나은행 573-810031-74605(온누리교회 온누리M미션)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10월 23일까지 온누리교회 창립 40주년 기념행사 특별순예배, 축제 캠페인, 온누리사역축제(OMC) 10월 23일(목)까지 온누리교회 창립 40주년 기념행사 특별순예배, 40주년 축제 캠페인, 온누리사역축제(OMC)가 이어진다.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순에서 &lsquo; 특별순예배&rsquo; 를 드리고 있다. 10월 셋째 주까지 &lsquo;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꾸다&rsquo; , &lsquo; 큐티하면 행복합니다&rsquo; , &lsquo; 일대일은 온누리에 주신 선물입니다&rsquo; , &lsquo; 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rsquo; , &lsquo;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맞춤전도&rsquo; 등을 주제로 순예배를 드린다. 특별순예배는 온누리교회 주요 사역을 이해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다. 매주 이재훈 위임목사의 특별 주제 강의를 듣고 공동체와 사역에 관해 나눈다. &lsquo;40주년 축제 캠페인&rsquo; 에서는 &lsquo; 은혜의 40주년&rsquo; , &lsquo; 작은 시작&rsquo; , &lsquo; 부흥의 기억&rsquo; , &lsquo; 선교와 나눔&rsquo; , &lsquo; 다시 새롭게&rsquo; , &lsquo; 세대를 잇다&rsquo; , &lsquo; 비전의 선언&rsquo; 을 주제로 추억의 사진전, 원로 성도 인 터뷰, 토크쇼, 공모전, 팟캐스트 라이브, 부흥회, 마라톤 대회 등을 한다. 40주년 기념 웹페이지도 오픈했다. 축제 캠페인 및 온누리사역축제(OMC) 일정 및 내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또는 하단 QR코드로 접속할 수 있다. &lsquo;2025 온누리사역축제&rsquo;(OMC)는 10월 21일(화)부터 23일(목)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에서 막 오른다. 21일(화) &lsquo; 교회, 복음으로 서다!&rsquo; , 22일(수) &lsquo; 교회, 문화로 퍼져가다!&rsquo; , 23일 (목) &lsquo; 교회, 선교로 꽃피우다!&rsquo; 를 주제로 강의 및 패널토의, 선택강의, 저녁집회 등을 개최한다. 이재훈 위임목사, 이인용 장로(법무법인 율촌), 류현모 교수(서울대학교), 홍정길 원 로목사(남서울은혜교회), 김경훈 집사(글로벌 AI기업 한국 사장), Christopher Wright 박사(랭함 파트너십 인터내셔널), 이동원 원로목사(지구촌교회), Nelson Jennings 박사 (GMLF 이사장), 유병국 선교사(WEC), 이재환 선교사(컴미션) 등이 강의한다. 참가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10월 12일(일)까지(사전등록 마감) 하단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저녁집회는 따로 참가 신청을 받지 않는다. 저녁집회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교회에 와야 한다. 선착순 입장하면 된다. 각 캠퍼스 본당에서 저녁집회 실시간 중계로도 참여할 수 있다. OMC 등록 문의: 각 캠퍼스 목회지원실 OMC 행사 문의: 02-3215-3234(3122, 3534)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추수감사절&lsquo;사르밧 프로젝트&rsquo; 감사의 쌀과 성경 나눔 &hellip; 10월 19일까지 헌금 및 접수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과 성경 나눔 &lsquo; 사르밧 프로젝트&rsquo; 에 참여를 희망하는 순과 성도들은 10월 19(일)까지 헌금 및 대상자를 접수해야 한다. 헌금은 각 캠퍼스 송금 계좌로 6만 5천 원(쌀 20Kg 한 포대 가격)을 기준으로 형편에 맞게 봉헌하면 된다. 송금 계좌는 서빙고 &lsquo; 하나은행 573-910019-14805&rsquo; , 양재 &lsquo; 하나은행 573-910021-35705&rsquo; 다. 나머지 캠퍼스는 목회지원실에 문의하면 된다. 순에서 헌금을 입금할 때는 공동체, 다락방, 순 이름을 일곱 자 이내로 기재해야 한다. 개인 참여 성도들은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재하면 된다. 사르밧 프로젝트 나눔 대상자는 공동체 담당목사와 대표장로의 확인을 거친 다음, 공동체를 통해서 10월 19일(일)까지 이메일로 접수하면 된다(서빙고: 25thanksgiving@nav er.com, 양재: hyomin2021@naver.com). 나머지 캠퍼스는 목회지원실에 제출하면 된다. 문의: 02-3215-3434(서빙고) 각 캠퍼스 담당 간사 / 박지혜 기자 CGN 정기후원 행사 결과 발표 1,761명 동참, 3억7천5백만 원 약정 2025 CGN 정기후원 행사에 1,761명이 동참해 3억7천5백만 원을 약정했다(9월 26일 기준). 후원금은 CGN 방송 프로그램 제작, 장비운영, 방송위성 사용 등 미디어 선교를 위해 사용한다. 지난 9월 20일(토)과 21일(일) 열린 &lsquo; CGN 정기후원 행사&rsquo; 는 &lsquo; 당신이 무명(無名)의 선교사입니다&rsquo; 를 주제로 진행됐다.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CGN 사역 소개, CGN 창립 20주년 사진전, 가족사진관 운영 등을 했다. 후원 모금 방송도 방영했다. 기독OTT &lsquo; 퐁당&rsquo; 에서 다시 시청할 수 있다. 9월과 10월은 CGN 후원의 달이다. CGN 후원에 동참하고 싶은 성도들은 CGN 홈페이지(cgnkorea.net)나 전화(02-796-2243), 기독 OTT &lsquo; 퐁당&rsquo; 인앱 페이지(QR 참고)에서 참여하면 된다. 문의: 02-796-2243 / 홍하영 기자 10월 6~10일&lsquo;전력 증설공사&rsquo; 서빙고온누리교회 임시 휴관 서빙고온누리교회가 10월 6일(월)부터 10일(금)까지 전력 수변전설비 증설공사 작업으로 인해 임시 휴관한다. 교회 건물 전체 전기가 차단되고,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출입을 전면 통제한다. 공사 기간 서빙고온누리교회에서 진행되는 모든 예배 및 사역 활동은 중단된다. 문의: 02-3215-3120 &lsquo;대중교통 이용의 날&rsquo; 10월 4일 오전 7시부터 5일 오후 6시까지 온누리교회가 10월 4일(토) 오전 7시부터 5일(일) 오후 6시까지 &lsquo; 대중교통 이용의 날&rsquo; 캠페인을 한다. 이 기간 교회주차장은 이용이 제한된다. 주차증이 발급된 차량 중에서 75세 이상 어르신, 장애인, 임산부, 36개월 이하 동반 자녀, 3명 이상의 다자녀 동반 차량만 이용할 수 있다. 셔틀은 5일(일)만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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