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6) 숨은 자를 찾아 세우시는 하나님
사사기 강해(6)
숨은 자를 찾아 세우시는 하나님
<사사기> 6:11~16
/ 이재훈 위임목사
<사사기>에는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원수, 대적의 손에 넘기십니다. 백성은 부르짖고, 하나님이 구원자를 세우십니다. 그렇게 세워진 구원자가 ‘옷니엘’이었고, ‘에훗’이었습니다. ‘드보라’와 ‘바락’도 그랬습니다. 드보라의 노래가 끝난 이후 그 땅은 40년 동안 평온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악으로 돌아갑니다.
“그 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사 6:1).
하나님이 세우신 대적, 원수는 ‘미디안’이었습니다. 미디안은 성을 점령하고 다스리는 대신에 해마다 추수 때가 되면 메뚜기처럼 약탈자로 몰려와 곡식을 가로채고, 먹어 치우고, 양과 소와 나귀까지 끌고 가는 약탈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리고 수고했지만,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7년 동안이나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속에 피난처와 동굴과 요새를 만들어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서 숨어 지내는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숨을 만큼 숨고 나서야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사사기> 6장에는 숨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기드온’입니다. 기드온만 숨은 게 아닙니다. 당시 백성들이 모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 기드온입니다.
사람은 숨고, 하나님은 찾으시고
오늘 본문에서 “포도즙 짜는 큰 통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11절). 포도즙 짜는 통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실제로는 바위를 파낸 구덩이 같은 곳입니다. 밀을 털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기드온에게도 그곳은 밀을 추수하는 곳 이전에 숨는 곳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타작을 하는 사람 기드온이 <사사기> 6장의 주인공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숨는 이야기는 에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나무 사이에 숨었을 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람은 숨고,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그러나 성경 역사의 결론은 하나님 앞에서는 숨을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6장에서도 숨어 있는 이들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들 곁에 내려오시고,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숨은 사람, 기드온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이 <사사기> 6장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왜 우리에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13절).
우리에게도 익숙한 질문입니다. 기도해도 달라지지 않는 육체의 병, 닫혀 있는 재정의 문, 일터의 위기, 돌아오지 않는 자녀를 기다리는 시간에 우리는 ‘왜’, 혹은 ‘어찌하여’라고 질문합니다.
구원자보다 말씀을 먼저 보내셨다
“여호와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그대, 용맹스러운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신다’”(12절).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는 말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사사기> 6장은 하나님이 어떻게 숨은 자를 찾아 세워 주시는지를 차례대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곧바로 구원자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사기>에 반복되는 사이클은 백성들이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곧 구원자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사이클이 깨졌습니다. 부르짖음 다음에 온 것은 구원자 사사가 아니라 이름 없는 선지자, 예언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하지 않는 것,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다. 너희가 거주하고 있는 땅의 사람들인 아모리 족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10절).
구원자를 보내시겠다는 약속도 없고, 벌하겠다는 경고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지 않은 일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고치시려고 한 것은 미디안으로부터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기드온의 “어찌하여”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그들이 듣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버린 백성에게는 말씀을 보내지 않으십니다. 동굴과 요새에 숨어 살고 있는 백성에게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숨어 있는 이들을 찾아오신다
“여호와의 천사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땅인 오브라에 와서 떡갈나무 밑에 앉았습니다. 그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즙 짜는 큰 통 속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11절).
우리말성경에는 떡갈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상수리나무라고 되어 있습니다. 숨어 있는 구덩이 바로 곁, 그 나무 곁에 앉으신 것입니다. 그 숨은 구덩이에 밀을 타작하는 기드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끌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곁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라는 질문에 답하지 아니하시고, “너와 함께하리라”는 대답을 주셨습니다. 숨은 사람의 곁에 앉으신 하나님, 기다리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가드온에게 처음 건네신 말씀이 “그대 용맹스러운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신다”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말씀입니다. 숨어서 밀을 타작하는 그가 어디를 봐서 용맹스럽습니까? 그가 용맹스럽다고 평가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장차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날이 서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기운을 내고 가서 미디안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라. 내가 너를 보내는 것 아니냐?’”(14절).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네가 가서 그 일을 끝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는 좁은 구덩이에 숨어서 밀 타작하는 힘이 전부였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내 집안은 므낫세 가운데 가장 작고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15절).
이번에는 “무엇으로 내가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처음에 “어찌하여,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하나님이 대답을 안 해 주시고, “큰 용사여, 용맹스러운 용사여,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기드온이 “내가 무엇으로 구원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내 집안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 가장 작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라고 질문합니다.
기드온 스스로가 느낀 자기 모습이었습니다. 두려움이 많았고, 소심했고,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숨어 지내던 기드온은 누가 봐도 용사라고 말할 수 없는 겁쟁이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자신을 연약하게 여기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찌해서 이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고, ‘내가 무엇으로 일할 수 있습니까?’라고 뒤로 물러서서 숨어 있는 이들을 찾아오십니다.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니 너는 미디안 사람들을 한 사람을 치듯이 무찌를 것이다’”(16절).
또다시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라는 대답만 주십니다. 기드온은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는 “어찌하여,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두 번째는 “무엇으로 내가 일을 할 수 있습니까?”입니다. 하나님은 이 질문에 답변하지 아니하시고, “네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지를 기억하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기드온처럼 연약하고, 소심하고, 숨어 있는 사람을 찾아서 세우실까요? 기드온과 같은 이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강한 믿음으로 나서는 이보다, 연약하고 소심한 마음으로 뒤로 물러서 있는 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포도즙 짜는 틀, 곧 구덩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기로 한 일터일 수도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로 아무것도 맡지 않기로 한 사역일 수도 있습니다. 상처받고 돌아온 가정일 수도 있습니다. 좁고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서 몇 줌의 밀을 타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숨어 있는 신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결코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숨은 곳을 아십니다. 그리고 찾아오십니다. 곁에 앉아 계시며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표징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계속 그를 위해 일을 하십니다. 그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역사하십니다. 기드온은 표징을 구하고 집에 가서 예물을 준비합니다.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삶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구웠습니다. 7년 동안 약탈당한 집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준비합니다. 그때 천사가 그 위에 불을 붙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두려워합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천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기쁨의 소리가 아니라, 두려움의 외침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해 본 자는 곧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이 아니라 평안을 주셨습니다. 미디안을 두려워해서 숨었던 사람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사 6:23).
하나님 앞에 드러난 사람은 죽는 줄 알았는데, 그가 들은 음성은 “두려워하지 마라, 안심하라”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 자리를 평강이라는 이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드온을 미디안과 싸우는 구원자로 세우기 전에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시고, 그와 함께하신다는 약속과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그에게 “집안에 있는 제단을 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을 치기 전에 기드온의 집에 있는 바알을 먼저 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고, 7년 된 수소를 잡아 그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에게 이 행위를 요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진짜 문제는 미디안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안을 불러들인 ‘바알’과 ‘아세라’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비를 내리고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던 우상이었습니다. 우상을 섬긴 결과가 그들의 수확을 미디안에게 모두 빼앗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제의 근원인 바알 신상을 허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집에 숨어 있는 것도 찾아내십니다. 기드온은 그 밤에 종 열 명을 데리고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
아침이 되자 성읍이 들끓었습니다. 사람들이 “바알 제단을 헌 자를 죽여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우상을 허문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외칠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분노해야 할 사람은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였습니다. 그런데 요아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지금 바알을 위해 변호하는 것이오? 만약 바알이 신이라면 그 제단이 허물어졌으니 자기가 자신을 변호해야 할 것이오.”
기드온의 아버지가 갑자기 우상 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회심한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 사랑입니다. 아들이 우상을 허물었다는 것을 알고, 아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논리적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는 아버지의 지혜가 나왔습니다. 그날 기드온이 ‘여룹바알’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바알이 스스로 다투게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의 아버지를 통해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그 아버지도 바알이 자신의 가정을 지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미디안과 싸우는 급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먼저 백성에게 평안을 주시고,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기드온을 숨은 자리에서 찾아내셔서 제단을 헐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계속 하나님께 반문했습니다. 하나님은 “함께하겠다”는 말씀을 계속 주셨습니다.
기드온의 “어찌하여”라는 반복되는 질문이 이루어진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기드온의 질문을 그대로 외치십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의 아들이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우상 숭배로 인해 쌓여 있는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그분이 짊어지셨습니다. 바위에서 나온 불이 기드온의 제물을 불살랐듯이, 하나님 심판의 불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분이 받으신 고통, 그분이 받으신 버림 때문에 우리에게 “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않겠고 또 결코 버리지 않겠다”라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잃어버려진 자, 숨어 있는 자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숨은 구덩이에 있는 자를 찾아오셔서 말씀을 주시고, 그 곁에서 약속을 주시고, 용맹스러운 용사로 불러 주십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삭개오를 찾아오셨고, 밤에 은밀히 온 니고데모를 찾아오셨고, 우물가의 여인을 찾아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구덩이에 숨어 있던 기드온처럼,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기드온에게 포도즙 짜는 구덩이가 있었다면, 제자들에게는 문을 걸어 잠근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기드온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기드온에게 주신 말씀의 순서가 교회에서 그대로 이어집니다. 숨어 있는 이들을 찾으셔서 그에게 평강을 주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에 의해 발견된 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을 찾아 부르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도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숨어 있는 자, 바람이 들지 않는 구덩이에서 밀을 털던 사람들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너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찾아오십니다.
말씀은 두려운 소식이 아니라, 복된 소식입니다.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찾지 못할 곳도 없으며, 하나님이 버린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내십니다.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그들을 보내신 것처럼, 말씀을 붙잡고 숨어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들에게, 집안의 우상부터 무너뜨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베푸십니다. 이 시대의 기드온처럼 이 시대의 미디안을 무너뜨리는 자로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대적해야 할 미디안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숨게 만드는 미디안들이 있습니다. 그 미디안을 향하여 나아가기 전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 “어찌하여”라고만 질문하는 우리에게 “내가 너와 함께한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