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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 "우리는 하나님 나라 청지기!" “우리는 하나님 나라 청지기!” 2024 권사, 안수집사 임직예배 11월 30일 양재 사랑홀 권사 149명(명예권사 6명, 권사 143명), 안수집사 505명(남 171명, 여 334명) 하나님 나라 청지기로 세워지는 ‘2024 권사, 안수집사 임직예배’를 11월 30일(토) 오후 4시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드린다. 이날 권사 149명(명예권사 6명, 권사 143명), 안수집사 505명(남 171명, 여 334명)이 임직된다(11월 20일 기준). 권사‧안수집사 임직대상자들은 임직예배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지각이나 불참하면 임직이 인정되지 않는다. 복장은 남자 검정색 정장(흰색 셔츠), 여자 검정색 또는 짙은색 바지 정장(자켓 필수)에 흰색 블라우스 또는 셔츠다. 당일 교회 주차장은 3인 이상 동반 차량만 이용할 수 있다. 나머지 차량은 양재주차빌딩(양재역주차장, 서초구 강남대로 221)을 이용해야 한다(비용 개인 부담). 이날 12시~16시 30분, 18시~19시 30분 양재역과 교회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2024 권사, 안수집사 임직대상자들은 지난 9월 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이어진 ‘2024 임직자스쿨’을 수료했다. 임직자스쿨에서는 ‘교회론과 목회철학’, ‘온누리교회 비전과 창의적 리더’, ‘건강한 영성 건강한 리더’, ‘일터영성’, ‘안수집사, 권사의 모델’ 등을 주제로 훈련을 받았다. 성경통독, 새벽기도회, 독서보고서 등 개인영성 훈련과 러빙핸드, 주차 봉사, 성찬 포도주 담그기 등 봉사활동도 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교사,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들! ‘차세대 교사 부흥집회’ 11월 27일 서빙고 본당 이재훈 위임목사 설교, 교사와 부모, 성도들 참여 차세대 교사 부흥집회가 ‘교사,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들’을 주제로 막 오른다. 11월 27일(수)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열린다. 다음세대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차세대 교사와 부모, 성도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차세대 교사 부흥집회 ‘교사,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들’은 다음세대에게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기도하는 은혜의 장(場)이다. 파워스테이션(차세대 찬양팀)의 찬양, 이재훈 위임목사 설교, 합심기도 등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차세대 교사 부흥집회는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됐다. 차세대 교사와 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세대에게 올바르고 선한 영성을 전수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차세대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하고, 살아가도록 중보기도 하는 자리다. 지난 3월 열린 상반기 차세대 교사 부흥 집회에는 교사와 부모 1,181명이 참석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2024 엔젤트리 사연 게시 11월 23일부터 국내 온누리교회 로비 ‘2024 엔젤트리’ 사연 2,600여 건을 11월 23일(토)부터 국내 온누리교회 로비에 게시한다. 서빙고와 양재를 제외한 다른 캠퍼스는 일정에 따라 진행한다. 2024 엔젤트리에서 연약한 이웃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전달하고 싶은 성도들은 국내 온누리교회 로비에 설치된 엔젤트리 데스크와 엔젤트리 홈페이지(angeltree,kr)에서 사연을 뽑고,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고, 선물을 보내면 된다. 이웃에게 전달하는 선물은 5만 원 이하(꽃, 음식, 현금 금지)여야 한다. 2024 엔젤트리 사연 모두가 성도들과 연결될 때까지 로비에 게시할 예정이다. 2024 엔젤트리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대상자들이 크리스마스 전에 사랑의 선물을 받도록 배송을 서둘러야 한다. 사연이 연결되면 엔젤트리본부에서 개인 연락처로 이웃의 이름과 주소를 전달해 준다. 문의: 02-3215-3434 / 홍하영 기자 12월 14일 탁구인 맞춤전도집회, 연말까지 모든 순에서 ‘열린순예배’ 2024 탁구인 맞춤전도집회 ‘핑퐁 in Love’가 12월 14일(토) 오후 2시 온누리청소년센터 체육관(지하 1층)에서 열린다. 맞춤전도집회 ‘핑퐁 in Love’에서는 탁구대회, 식사, 설교, 토크쇼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여성민 목사(전도사역본부장)가 설교하고, 양영자 선교사(88년 서울올림픽 탁구복식 금메달리스트, 전 청소년 탁구 국가대표 감독), 가수 이무송, 색소폰 연주가 심상종, 가수 하다쉬 뮤직 등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참가를 원하는 성도들은 하단 QR코드로 신청하면 된다. 탁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회비는 2인 3만 원이다. 한편 연말까지 온누리교회 모든 순에서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을 주제로 열린순예배를 드린다. 각 순에서 열린순예배를 기획하고, 실행하면 된다. 열린순예배에는 여러 사정으로 순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성도들이나 마음에 품고 기도하던 전도대상자(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를 초대하면 된다. 장소는 가정이나 카페, 영화관, 음식점 등 어디든 자유롭게 선정하면 된다. ‘열린순예배 <가이드북>’을 하단 QR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문의: 010-3772-3686(탁구인 맞춤전도집회) / 홍하영 기자

     2024-11-23  제1517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폭풍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폭풍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사도행전 27:9~26 /이재훈 위임목사 인생의 폭풍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사회적 지위나 전문적인 지식, 재물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폭풍이 찾아옵니다. 인생의 폭풍을 만날 때 당황하고, 방향을 잃어버리고, 때로는 소망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폭풍은 곧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시인 조지 허버트가 “기도를 배우기 원하면 바다로 가라”고 했습니다.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폭풍을 만나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폭풍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불평하고 항의하는 인생들에게 그분의 주권을 깨닫게 해주는 방법입니다. 욥은 많은 고난 속에서 호소하며 하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이 폭풍 속에서 나타나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친구들의 많은 권면에도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의를 주장했던 그가 하나님이 폭풍 속에 나타나셔서 질문 하시자 비로소 회개했습니다. 욥은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폭풍은 불순종하는 인생들을 하나님 뜻대로 되돌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뜻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가던 요나에게 하나님이 폭풍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뜻 가운데 순종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요나도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또한 폭풍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제자들도 폭풍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불어 닥친 폭풍 상황에서 예수님이 오시니까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제자들을 폭풍 속에서 찾아오셨습니까? 폭풍이 끝나고 잠잠해 질 때 찾아오신 게 아니라 왜 폭풍 한가운데 찾아오셨습니까? 휘몰아치는 폭풍 한 가운데서도 평안히 걸어오실 수 있는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기 원해서입니다. 그분의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게 잠잠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배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모든 상황을 잠잠케 하시자 그분께 경배를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폭풍이 잠잠해지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많은 기적을 봤지만, 경배 드렸다는 표현은 여기서 처음 나옵니다. 병자를 고치셨을 때도,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고 회복시킬 때도, 군중에게 설교하실 때도 “제자들이 예수님께 경배드렸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직 폭풍 속에서 걸어오셨을 때, 그 폭풍을 잠잠케 하신 뒤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폭풍 가운데 모든 소망이 끊어진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매우 근거 있는 충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을 태운 배가 로마로 가는 중에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만납니다. 그 폭풍 가운데 예수님이 바울을 다시 한 번 만나 주셨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벨릭스 통독, 베스도 총독, 헤롯 아그립바 2세 등 로마 통치자들의 심문을 받은 이후에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서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 가는 여정은 매우 깁니다. 3,200km나 됩니다. 오늘날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이 없었기에 배를 타거나 육지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육지로 가면 바다가 중간 중간에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해안을 따라 가야만 했습니다. 그 중간에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호’라는 큰 곡물선으로 갈아타게 됩니다. 계속 역풍이 불어와서 크레타 섬의 아름다운 항구, 미항이라는 곳에 잠시 머물게 됩니다. 이때 바울이 충고를 합니다.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금식하는 절기도 지났기 때문에 항해가 위험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람들에게 충고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보니 우리가 이렇게 계속 항해하다가는 재난에 빠지고 배와 짐이 큰 손실을 입을 뿐 아니라 우리 목숨도 위태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따랐습니다”(9~11절). 사실 유대인들에게는 바다가 친숙하지 않습니다. 바다에 친숙한 민족은 남쪽 애굽 사람들, 북쪽으로 페니키아, 그리스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항해에는 친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인데 특이하게 바다 여행 경험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세 번이나 난파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하루 밤낮 나무 기둥을 붙잡고 바다를 떠다닌 적도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경험보다 바울에게 주어진 이 시기에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인해서 다가올 위험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또한 절기적으로도 바울은 근거 있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금식하는 절기도 지났기 때문에 항해가 위험해졌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금식하는 절기가 지났다는 것은 그 시기가 언제인지를 설명해 주는데, 양력으로 10월 초순경입니다. 당시 지중해는 9월 중순 경부터 11월 중순까지 항해하기가 위험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매우 근거 있는 충고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 항해하다가는 재난을 만나고,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1절을 보면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따랐습니다”라고 합니다. 지극히 당연해 보입니다. 피고인의 신분으로 호송되고 있는 바울의 충고보다 선장과 선주가 훨씬 전문가이기에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합당할 경우가 언제입니까? 전문가가 진실할 경우입니다. 전문가가 올바르고 정직한 경우에는 그 말을 따르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진실과 공의를 버리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대다수 사람이 모르는 영역, 소수의 전문가만 아는 영역에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우리만 알기에 우리만 모른척하면 진실은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작이 일어나고, 진실이 가려지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전문가들이 진실할 때만 그 전문성이 합당합니다. 폭풍이 부는 바로 그 때,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바울이 보기에는 시기적으로 항해가 위험한 시기라고 판단했는데, 그 배를 운영하는 선장과 선주는 계절적인 위험을 몰랐을까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계속 항해하기로 결정했습니까? 바울이 탄 알렉산드리아호는 큰 곡물선입니다. 이 배는 하루라도 빨리 이탈리아로 가야 경제적인 이득이 주어집니다. 욕심과 조급함이 큰 사고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도 이런 일 아닙니까?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면서 진실하지 못 할 때 큰 사고가 나지 않습니까? 더 빨리 가서 조금 더 이익을 보려는 욕심이 위험을 불러오지 않습니까? 비상식적인 판단을 내릴 때 더 큰 위험이 찾아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따랐습니다. 결국은 그 계절이 가져오는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폭풍을 만났을 때 그들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했습니다. 구명정을 붙들어 매고, 밧줄로 선체를 묶고, 닻을 내리고, 배에 있는 짐들을 다 바다에 버렸습니다. 버리지 말아야 할 것까지 버렸습니다. 소망까지 버렸습니다. “여러날 동안 해와 별도 나타나지 않고 폭풍만 계속 불어 닥치자 결국 우리는 구조될 모든 소망을 포기했습니다”(20절). ‘해와 별도 나타나지 않고’라는 말은 방향을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같이 GPS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해와 별을 보고 항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폭풍이 계속 불어 닥치자 구조될 소망까지 포기했습니다.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소망까지 버리게 된 인생입니다. 방향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소망까지 잃어버린 인생입니다. 배의 닻을 내려도 소망의 닻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생입니다. 그들은 아비규환이 되었고, 소망까지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상황을 보십시오. 왜 이렇게 됐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말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진실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그들이 속은 이유가 있는데 처음에 부드럽게 바람이 순풍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부드러운 남풍이 불어오니까 ‘선장과 선주가 한 말이 맞나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순풍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순풍을 따르겠습니까? 폭풍을 따르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어느 편을 선택 할까요? 순풍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순풍이 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위험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폭풍이 불어도 하나님 뜻 가운데 있다면 그 폭풍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폭풍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소망까지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빠서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바쁜 게 아니라 악한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악함이 우리 마음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풍에 잘 속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순풍이 불어오면 정신 바싹 차리고 경계해야 됩니다. ‘이 순풍을 따라가다가 내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폭풍이 다가옵니까? 그러면 우리는 두렵고, 떨며 ‘과연 내가 이 폭풍을 만나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오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고 계신 것입니다. 오직 바울만이 폭풍 속에서 흔들림 없이 사람들 안심시키고, 당부하며 그들을 이끕니다. ‘인생의 주인’과 ‘영적 주도권’ “그러나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고 배만 손상될 것이니 안심하기 바랍니다. 어젯밤 내 하나님,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 마라. 네가 마땅히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네게 맡겨 주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 내게 말씀하신 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밀려서 어느 섬에 닿게 될 것입니다”(22~26절). 바울은 이 위기 상황에서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둘째, ‘네가 가이사 앞에 설 것’이라는 하나님이 바울을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음성입니다. 셋째, ‘너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네게 맡겼다’는 음성입니다. 바울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바울에게 맡겼다는 것은 그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생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폭풍 속에서 표류하는 배의 영적 선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가진 지도력은 폭풍 속에서 드러납니다. 폭풍이 오면 진정한 지도자가 누구인지가 드러납니다. 인생의 폭풍이 올 때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였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인생의 주인이었던 사람은 폭풍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인 사람은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한 주인이 하나님이 아닌 배는 폭풍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배의 영적 주도권을 가져가야 합니다. 한 나라와 민족이 폭풍을 만날 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사람들을 권면하고 이끌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수호하고,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낙태가 자유롭게 용인되는 일이 법으로 제정되면 얼마나 많은 아기가 죽겠습니까? 그 생명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교회가 영적 주도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생명을 해치는 수많은 폭풍이 불어올 때 영적 선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이 세상의 거센 폭풍 속에 사람들이 휩쓸려 갑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폭풍들이 유럽과 북미를 휩쓴 것입니다. 거기에 교회가 없어서 그런 법이 제정되었습니까? 그런 문화가 일반 문화가 되었겠습니까? 이제야 각성하고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상황에서 영적 주도권을 발휘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어젯밤 하나님의 천사가 나에게 나타나서 ‘두려워 마라. 네가 마땅히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너와 함께하는 모든 생명을 네게 맡겼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 내게 말씀하신 대로 이뤄질 것입니다”(22~25절). 바울은 재판을 받을 때도 영적 주도권을 가졌습니다. 그가 피고인 신분이었고, 법에 의해 제한받는 인생이었지만 양심을 따라, 성령의 감동을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영적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그는 영적 주도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선원들은 자기들만 살려고 구명정을 띄워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보겠다고 해서는 결코 살지 못합니다. 이 구명정이 여러분들을 살려주지 못합니다. 여러분을 살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여러분은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구명정이 살 길입니다. 그러나 지금 구명정을 타면 폭풍이 피해갑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십시오”라고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담대하게 외칠 때 영적 주도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했습니다. 폭풍 속에서 마치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평안하게 감사하며 식사했습니다. 폭풍이 치는 가운데 평안히 식사 모습에서 누가 떠오릅니까? 갈릴리 호수에서 폭풍이 있었는데 평안히 잠을 자시던 예수님입니다.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위험한 상황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영적 리더십,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모습을 통해서 바울에게 임하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항해 했던 이들 모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여러 명은 바울이 믿는 하나님을 자신도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풍랑 속에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난 이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폭풍이 다가왔습니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욥을 찾아오신 것처럼, 요나를 찾아오신 것처럼,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바울을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 인생의 배가 폭풍을 만날 때, 스스로 힘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때로 소망까지 잃어버릴 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폭풍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폭풍을 타고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폭풍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4-11-23  제1517호

  • 칼럼

    [신앙에세이] 오늘도 스몰 스텝! 신앙에세이 오늘도 스몰 스텝! 지난해 여름 즈음부터 매일 꼭 하려고 애쓰는 일이 하나 있다. 팔굽혀펴기다. 체력 관리의 필요성을 점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했었다. 그런데 비교적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가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몇 번 가보지도 못하고 회원권이 명을 다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지속 가능한 운동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팔굽혀펴기를 떠올리게 됐다. 팔굽혀펴기는 사실 대단하게 여겨지는 운동은 아니다. 하지만 별 운동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팔굽혀펴기도 ‘매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근 1년 동안 정말 불가피한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팔굽혀펴기를 했는데, 시간이 쌓이면서 명백한 효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체력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예전과 다르게 몸이 가벼워진 게 명확하게 느껴지고, 일상생활에 활기가 돌았다. 아내는 내 안색이 정말 좋아졌다고 기뻐했다. 예전에는 피곤할 때 얼굴이 똥색으로 변했는데, 요즘은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했다. 아직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스몰 스텝’은 말 그대로 매일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다. <스몰 스텝>이라는 책을 쓴 박요철 작가는 생존이나 생계에 급급한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찾는 삶’을 살기 위해 간단한 실천들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루 3줄 글쓰기, 하루에 영어단어 5개씩 외우기 등 평범한 실천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실천들이 3년 정도 이어지면서 작지 않은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에게 그의 놀라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스몰 스텝’은 운동이나 일상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신앙생활에도 큰 유익이 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육체를 단련하는 것은 조금은 유익하나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이 세상과 앞으로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육체와 일상을 위한 스몰 스텝도 유익하지만, 경건을 위한 ‘홀리 스몰 스텝’이 더 크고 영원한 유익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가장 많이 동참하는 홀리 스몰 스텝은 단연 QT일 것이다. 만나처럼 매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말씀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께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다. 비록 짧은 분량의 말씀이라도 그 묵상을 매일매일 지속한다면 영적 파급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내디딜 수 있는 또 다른 홀리 스몰 스텝은 무엇일까? 하루 10분 기도하기, 하루 한 명에게 하나님 이야기하기 등 다양한 걸음이 있을 것이다. 차세대사역본부에서는 매월 말씀 한 구절을 정하고, 그 말씀으로 말씀 식빵, 말씀 띠부띠부씰, 말씀송을 만들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 배포한다. 그러면 모든 캠퍼스 차세대 자녀들이 한 달 동안 주어진 말씀을 눈길이 닿는 곳에 두고 암송하고 노래하며 자연스럽게 마음에 새긴다. 짧은 말씀이고, 한 달에 한 구절 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 말씀이 자녀들의 마음에 더욱 확실하고 깊게 새겨진다. 몇 개월이 지나도 그 말씀이 설교 중에 나오면 말씀송을 흥얼거리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작은 것을 통해 놀랍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꾸준히 떨어지는 물방울은 바위를 뚫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물론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다. 스몰 스텝을 내딛기가 정말 힘든 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한 회사의 광고 문구처럼 ‘JUST DO IT’(그냥 하라)의 마음으로 무엇이 됐든 ‘딱 하나만’ 해볼 것을 추천한다. 팔굽혀펴기를 한 번만 하든, 말씀을 한 절만 읽든 말이다. 그러면 ‘생각보다 할 만한데’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날의 스몰 스텝을 모두 내디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당장 오늘부터 당신만의 스몰 스텝을 내딛기를 바란다. 어느 날 돌아보면 나도 모르게 ‘빅 스텝’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것이 ‘홀리 빅 스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 김승겸 목사(인천온누리교회 차세대)

     2024-11-23  제1517호

  • 칼럼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 상담] 갈등을 넘어 수용과 회복으로!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 상담 갈등을 넘어 수용과 회복으로! 연구에 따르면, 신혼부부가 경험할 수 있는 어려움이 서로 다른 성격과 사고방식 충돌, 의사소통에서 오는 갈등, 배우자 원가족과의 마찰, 성장 배경에서 오는 갈등, 성적인 부적응, 맞벌이와 역할 분담에서 오는 갈등 등이다. 신혼부부는 서로를 더욱 적극적이고 깊이 탐색한다. 결혼 전에 예상했던 것이 과연 그대로 이루어지는지를 확인하기도 하다. 예비 결혼단계는 지도를 펼쳐놓고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갈 곳을 미리 확인하고 기대하며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고 해도 막상 여행을 시작하면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당황스러운 경험들이 신혼부부 갈등으로 드러난다. 신혼부부는 서로 다른 성격과 생활방식 등에 우선 적응해야 한다. 지문이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성격과 생활방식, 생각이 같은 사람은 없다. 형제라도 다른 성격과 생활방식을 가진 경우가 훨씬 많다.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본격적으로 하나 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부부는 정말 많은 다른 점을 발견한다. 넉넉히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들도 발견한다. 때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차이도 발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꿀 수 없는 배우자의 독특한 특성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점은 서로 다른 점들이 돌출되면 부부가 긴장하고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신혼부부에게 의사소통은 또 다른 차원의 과제다. 서로 다른 성격과 사고방식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소통이 잘돼서 결혼했는데 이렇게 막힌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답답해진 가슴을 치는 부부도 있다. 신혼부부의 의사소통은 부부 관계의 터를 새롭게 쌓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잘될 때도 있고, 좌절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너진 의사소통의 터를 다시 쌓고 반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이고, 예의 바르게 표현하고, 배우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서로 깊은 소통 경험을 쌓아야 한다. 신혼부부는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소통해야 할 수많은 주제가 부부에게 생긴다. 결혼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들도 있다. 양가 가정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원가족과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배우자라면 그 이야기가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늘 재정적인 부담을 주는 원가족, 자주 문제를 일으키는 원가족 구성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마다 배우자를 끌어들이는 원가족의 부정적 영향력 등은 신혼부부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원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느끼면서 신혼부부는 결혼은 자신들뿐 아니라 양가 가족이 심리 정서적 연결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신혼부부는 서로 원가족의 영향력에 경계선을 세울 필요가 있다. 긍정적인 영향력이라면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원가족의 압력이라면 과감하게 선을 긋고 견고한 담을 쌓을 필요가 있다. 성적 관계도 신혼부부에게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가장 민감하고, 서로의 깊고 내밀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가장 큰 기쁨과 행복도 주지만, 가장 깊은 좌절과 낙심을 경험하기도 한다. ‘친절함과 따뜻함’이라는 가이드와 함께 서로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대화와 배려’라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서로의 몸과 마음에 대한 지식 쌓기에도 열심을 내야 한다. ‘친절한 거절’이라는 매너도 갖출 필요가 있다. 가장 강렬하고 즐거운 성적 관계가 되도록 부부가 세심하게 그리고 더 민감하게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거절과 승낙’이라는 스위치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부부가 되어야 한다. 부부의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 특히 맞벌이 부부라면 역할 분담과 실행에서 원망과 갈등이 심각해지지 않도록 대화할 필요가 있다. 맡은 역할이 공평하지 않거나 가사의 짐을 오롯이 자신이 감당하고 있다고 느끼면 배우자에 대한 원망과 짜증이 쌓일 수밖에 없다. 서로가 인식하는 가사와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해야 한다.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함께 지고 가는 섬김이 필요하다. 신혼기에는 많은 영역에서 맞춰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갈등과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충돌과 갈등 지점에서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갈등을 넘어 수용과 회복으로 나아가는 부부가 되기를 소망한다. / 황규복 박사, 김숙경 소장 부부(두란노 결혼예비학교 부부 강사, <사랑해서 결혼한 당신에게> 저자)

     2024-11-23  제1517호

  • 성인

    [맛있는 말씀 해설] “그 후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마 4:1~11). 맛있는 말씀 해설 “그 후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마 4:1~11).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이 있다. 첫째, 돌이 빵이 되게 하는 것, 둘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 셋째, 세상 모든 나라와 영광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이 시험들을 살펴보면 40일 금식하신 예수님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돌이 빵이 되게 하라는 시험은 ‘하나님을 잊으라’는 유혹이다. 40일 밤낮을 금식하신 예수님은 당연히 배가 고프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이 육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공격하며 유혹할 때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며 <신명기> 8장 3절 말씀을 인용해서 사탄을 물리치셨다. 가나안을 앞둔 출애굽 2세대에게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당부하신 말씀이다.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마귀의 전략은 눈앞에 있는 배고픔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스스로 필요한 것을 채우고,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보지 못하게 가리려는 목적이 있다. 둘째, 뛰어내리라는 시험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평하라’는 유혹이다. 사탄은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를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라고 유혹한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는 맛사에서처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는 <신명기> 6장 16절 말씀으로 대적하신다. 맛사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 마실 물이 없자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불신한 것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유혹, 시험, 다툼이라는 뜻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이 계신지를 의심한 것을 반영한 지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대들면서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우리와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는 것입니까?”라고 원망했다. 어느덧 하나님을 의지함이 사라지고 눈 앞에 원망과 불평만 가득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지만 안 계신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는 사탄의 전략이다. 셋째, ‘세상 모든 나라와 영광을 가지라’는 유혹이다. “당신이 만약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라는 사탄의 초점은 ‘모든 것을 주겠다’가 아니라 ‘네가 영광을 다 받아라’에 있다. 예수님은 이때도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됐다.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신 6:13)는 말씀으로 대적하셨다. 세상 모든 나라와 영광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밀어내고 내 인생의 목적으로 바뀐다면 완전한 우상이 된다. 그래서 사탄이 “십자가 고난 없이 영광을 모두 네가 취하라! 그 영광을 모두 다 받으라!”고 유혹한 것이다. “스스로 삼가서 너희를 이집트에서, 그 종살이 하던 땅에서 이끌어내신 여호와를 잊지 않도록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분만을 섬기고 그 이름을 두고 맹세하라”(신 6:12~13). 이 말씀은 여호와를 잊지 말라는 의미다.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만을 섬기고, 다른 우상과 신을 네 앞에 두지 말 것을 명령한다. 이것이 제1계명이며, 모든 계명 중에 첫째 되는 계명이다. 좋은 환경과 물질, 권력과 명예는 쉽고 빠르게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초대 왕 사울이 왕권에 취해 하나님이 왕 되심을 잊었을 때 자신이 모든 영광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에게 영광을 거두셨지만, 그는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할 정도로 왕권이 즉시 중단되지 않았다. 모든 영광을 내가 받고 있어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세 가지 시험과 그 대응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행동 지침이다.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고,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직 하나님만 왕으로,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 신동식 목사(평택온누리교회)

     2024-11-23  제1517호

  • 인물

    [만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바로 그것입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바로 그것입니다!” 뮤지컬 <바울과 나> 그리고 김효선 작가 뮤지컬 <바울과 나>를 관람하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바로 ‘크리스티나’의 행동이다. 아들 스데반의 억울한 죽음에도 ‘크리스티나’는 그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뮤지컬 <바울과 나>의 김효선 작가는 그 이유를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이유를 알게 된다면 오히려 그 고난이 살아갈 이유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월 19일(화) 김효선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의 삶과 뮤지컬 <바울과 나>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 박지혜 기자(wisdom7@onnuri.org) 김효선 작가는 SBS 미니시리즈 <아름다운 그녀>, KBS 드라마 <반쪽이네> 등 다수의 드라마를 집필한 베테랑 드라마 작가이다. 그런 그녀가 기독 뮤지컬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 통의 전화였다. “‘내가 매일 기쁘게’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는데 그걸 보시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교회 부활절 연극 대본을 써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성극은 생각도 해본 적 없어서 거절했는데 자꾸 마음에 걸려서 결국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글을 쓰려고 성극 대본을 찾았는데 대부분 너무 오래됐거나 성극 대본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독 문화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문화의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일반 문화와 격차가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즈음 하나님의 콜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혼을 위한 작품을 만들라. 기독 문화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기독 문화를 널리 알려라!” 김효선 작가는 누구보다 문화가 사람, 더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자극적인 세상 문화가 너무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기독 문화를 널리 알리는 방법을 찾았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녀에게 준 사명이기 때문이었다. “문화 분야에 크리스천이 많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힘을 합치면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극단 ‘좋은나무좋은열매’를 설립했습니다. 극단을 만들고 기독 뮤지컬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그 첫 열매가 뮤지컬 <더 나은 노래>입니다.” 기독 뮤지컬 공연을 올리면서 김효선 작가는 드라마를 집필했을 때와 차원이 다른 경험을 했다. 기독 문화를 널리 알리겠다는 사명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무신론자였던 제자가 제 공연을 보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동안 집필했던 수많은 작품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고백이었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작품을 쓴다는 것, 그것으로 영혼의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기독 문화 관련 작업을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단순히 기독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 수를 일반 공연과 비교하면 매우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그들이 받는 은혜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경험은 헤어나올 수 없는 굉장한 매력입니다.” 오히려 그 고난이 살아갈 이유 김효선 작가는 기독 문화를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하면서 하나님이 이 시대에 가장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지금 시대는 분노가 팽창하고 복수가 흥행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의 가치가 하위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용서의 힘을 바라고 계실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바울’이 떠올랐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한 단어로 설명하면 ‘용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서 새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서의 힘을 전달할 매개체로 바울의 회심 과정을 썼습니다.” 김효선 작가는 바울을 선택하고 그의 회심 과정을 집필하며 가상의 인물 ‘아니스타’를 등장시켰다. 그 이유도 용서의 힘과 맥을 같이 한다. “역사적인 인물을 무대 위에 올렸을 때 단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관객이 받는 감동과 별개로 그 인물의 삶과 관객의 삶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가 잘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작자로서 그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의 삶과 관객의 삶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구현할지를 무척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 끝에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물을 만들면 관객들이 자기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겠다’는 지점에 도달했고, ‘아니스타’를 탄생시켰습니다.” 김효선 작가는 뮤지컬 <바울과 나>가 지금까지 집필했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뮤지컬 <바울과 나> 초고를 쓰고 이석준 연출과 만나 내용을 수정하는 과정을 10여 차례 반복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으면서 픽션(fiction)과 넌픽션(nonfiction)의 간격을 조율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또 바울의 생애에 가상의 인물을 넣는 것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지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준비했습니다. 바울의 회심 과정이 성경에서는 몇 줄의 설명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짧은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기까지 13여 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 말씀을 내면화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해 봤습니다. 본인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自服)하는 시간이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바로 그날 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붙잡고 회심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집필했습니다.” 김효선 작가는 뮤지컬 <바울과 나>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하나님의 섭리’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이 내 삶에 고난을 주신 이유를 알게 된다면 오히려 그 고난이 살아갈 이유가 됩니다. 이것은 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15년 전 제 딸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고난의 이유를 물었을 때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말씀이 극 중에서 아니스타와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주셨던 <사도행전> 26장 16절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저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나>는 용서와 화해를 다룬 이야기이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역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아니스타와 바울이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뮤지컬 <바울과 나> 마지막에 ‘에게로이’라는 합창이 나옵니다. 에게로이는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다’는 의미입니다. 이 합창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우리를 일으키시고, 살리신다는 섭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작가에서 기독 문화 리더로 뮤지컬 <바울과 나>와 김효선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대한 하나님의 꿈을 꾸고 있었다. “뮤지컬 <바울과 나> 공연이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의 기도와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돕는 손길과 하나님 은혜로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기독 문화 확장은 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뮤지컬 <바울과 나>뿐만 아니라 더 많은 기독 공연을 무대에 올리도록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힘을 보태주시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류가 전 세계 의 관심을 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 문화도 충분히 역량이 있고 반드시 통할 것입니다. 뮤지컬 <바울과 나>와 저도 해외 진출이라는 하나님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위대한 생각을 하면 위대한 일이 벌어지니까요.”

     2024-11-23  제1517호

  • 성인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어린양께 드리는 경배와 찬양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어린양께 드리는 경배와 찬양 11월 25일~12월 1일 &lt;요한계시록&gt; 3:14~7:8 묵상포인트 1: &lt;요한계시록&gt;은 찬양과 경배의 책이다. 사도 요한은 우상숭배와 황제숭배가 만연한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 경배의 대상이심을 선포한다. 요한이 본 하늘 보좌의 모습, 고난당하는 교회(성도)를 돌보시는 주권자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묵상하자. ▶주님은 일곱 교회 중에서 마지막으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신다. 그들은 스스로 부자라 말하지만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신들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주님에게서 불로 연단한 금과 흰옷과 안약을 사야 한다. 이기는 사람은 주님 보좌에 함께 앉을 것이다. 일곱 교회에 대한 계시 이후 사도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고, 또 장엄한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는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를 찬양하며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린다. 묵상포인트 2: &lt;요한계시록&gt;은 예수님을 언급할 때 &lsquo;어린양&rsquo;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죽임당하신 어린양은 모든 원수를 멸망시키고 죄인들을 구원하신 강력한 권세자다. 믿음을 지킨 성도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과 더불어 어린양을 찬양하는 천상의 모습을 묵상하자.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가 있는데,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실 이는 &lsquo;어린양&rsquo;뿐이다.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취하시자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거문고와 금대접을 가지고 어린양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금대접에 가득 담긴 향은 성도들의 기도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 그리고 수많은 천사가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높여 찬양한다. 모든 피조물과 그들 가운데 있는 만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도록 돌리라고 외친다. 묵상포인트 3: 어린양이 일곱 인을 하나씩 떼시자 심판이 진행된다. 어린양이 심판자시기에 성도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진노의 날에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보호하신다. 재림의 날, 곧 진노의 그 날에 하나님 보좌 앞에 서는 자가 되도록 어떻게 준비할지 묵상하자. ▶어린양이 차례로 인을 떼시니 흰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이 나온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제단 아래에 있는 순교한 영혼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 하늘이 떠나가고 산과 섬이 옮겨지자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로부터 가려지기를 바란다. 어린양이 여섯째 인까지 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ldquo;하나님 종들의 이마에 인 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를 해하지 말라&rdquo;라고 외친다. 인 침을 받은 자의 수는 모두 144,000이다. 이는 상징적인 수로, 이방인을 포함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현재 나의 신앙은 어떠한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뜨거운 신앙인으로 거듭나기를 간구하며 힘쓰자. ▶&lt;요한계시록&gt;은 천상의 모습을 보여 주며 하늘나라를 소망하게 한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고난받는 나를 돌보고 계심을 확신하고, 현재 내게 주어진 고난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자. ▶죽임당하신 어린양은 인류의 소망이시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들을 때마다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어린양 예수님께 깊은 감사의 고백을 드리자. ▶하나님과 어린양이 행하시는 마지막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일이다. 심판 날이 내게 위로와 승리의 날이 되도록 날마다 말씀을 지켜 행하며 믿음과 인내로 살아가자. /&lt;생명의 삶&gt;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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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일강단

    [주일강단]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lt;사도행전&gt; 26:19~32 /이재훈 위임목사 바울은 죄수 신분으로 그리스도 증인의 소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 계속 이어지는 당시 재판관들 앞에서 나타난 바울의 모습은 그가 사형을 받을 만한 죄만이 아니라 재판받을 만한 죄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당시 로마 최고 지도자에게 상소할 수 있는 법을 이용해서 가이사에게 상소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대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추가적인 심문을 받습니다.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바울이 아그립바 2세 앞에서 자신에 대해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 연설에서 &ldquo;자신은 유대민족을 배반한 적이 없다. 자신은 과거에도 유대인이었고, 현재도 충실한 유대인이다. 도리어 자신은 정통적이고 충실한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이 유대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고,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그 약속을 따라 소망을 가졌을 뿐이다. 그 소망 때문에 여기에 이르게 된 것&rdquo;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을 설명하는 장면이 세 번째입니다. 그러나 가장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lt;사도행전&gt;을 기록한 누가가 뒤로 갈수록 그 장면을 더욱 세심하게 기록했기에 이 내용을 읽어 보면 바울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깨닫고, 부르심을 받은 두 가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깨닫게 되고, 부르심을 받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아그립바 2세에게 설명합니다. 첫째, 약속을 따라 오신 메시아가 예수님이고, 그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첫 번째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예언자를 통해 약속하신 핵심의 실체가 바로 죽은 자의 부활이며, 그분이 바로 우리의 메시아이며, 우리도 그분처럼 부활하게 된다는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 사람에게도 구원의 빛을 비추도록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ldquo;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셔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활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rdquo;(23절). 로마 황제를 대리하는 지도자들이 바울의 메시지를 듣다가 이제는 입을 닫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가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씀이 여기서도 나타납니다. 베스도가 소리 높여 외칩니다. &ldquo;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많은 학식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rdquo; 베스도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이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와 비슷합니다. &ldquo;당신은 너무 광신적인 것 아니야? 그저 여유 있을 때, 매주 교회 나갈 필요 없이 가끔 가면 되고, 자신이 주인이 된 인생을 살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가끔 기도하면 되고, 액세서리처럼 필요할 때 믿으면 되는 것이지, 전적으로 예수님이 주인 되시고, 매일, 주일마다 게다가 공동체까지 참여하면서 물질로 헌신하면서 너무 광신적인 건 아니야?&rdquo;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옥한흠 목사님 메시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ldquo;세상 사람들에게 100% 칭찬만 받는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rdquo;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미쳤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미친 사람들이요,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미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대답합니다. &ldquo;베스도 각하.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사실이며, 제정신으로 하는 말입니다.&rdquo; 그리고 계속해서 아그립바 왕에게 호소합니다. &ldquo;왕은 이 사실을 알지 않습니까? 이것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대에 소문이 다 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의 소식을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rdquo; 그러면서 아그립바 왕에게 도전합니다. &ldquo;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저는 왕께서 믿으신 줄 알고 있습니다.&rdquo; 재치 있는 한 수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관리하고, 대제사장을 임명하는 위치에서 예언자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ldquo;예언자들을 믿지 않습니까?&rdquo;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ldquo;예언자들을 믿는다면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이 성취되는 것을 믿어야 하지 않습니까?&rdquo;라고 호소하려고 아그립바 왕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기에 거부 &ldquo;그러자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lsquo;네가 이 짧은 시간에 나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rsquo;&rdquo;(28절). 아그립바 왕은 바울이 자신을 지금 전도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고, 자신을 설득해서 모든 예언자가 약속한 것을 이루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아그립바 왕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ldquo;이 짧은 시간에 나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지금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짧은 시간에는 안 된다&rdquo;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ldquo;당신은 예언자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예언자를 믿으십니까?&rdquo;라고 말했을 뿐인데, 아그립바 왕이 안 것입니다. 바울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도 모두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바울이 한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맞는 말이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이 틀려서가 아니라 믿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그립바 왕이 바울 심문을 끝내고 집에 가면서 속으로 &ldquo;하마터면 믿을 뻔했네&rsquo;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lsquo;오늘 내가 믿을 뻔했지&rsquo;라고 말입니다. 아그립바 왕이 &ldquo;네가 이 짧은 시간에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rdquo;고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넘어 온 것입니다. 설득됐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부하는 것입니다. &lsquo;아니야. 난 믿으면 안 돼.&rsquo; 내가 믿는 순간 자신의 위치가 무너지고, 자신이 쌓아왔던 거짓이 무너지고, 어쩌면 내가 로마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고, 이 세상에 온갖 것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것뿐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이 세상 그 어떤 사상보다 진실하고, 복음은 이 세상 그 어떤 논리보다 명확하고, 복음은 그 어떤 주장보다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삶과 역사에 대해 가장 진실하고, 정확하고,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고,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이 그런 태도였습니다. 로마까지 가야하고, 가이사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기에 &ldquo;바울이 대답했습니다. &lsquo;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왕뿐 아니라 오늘 제 말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이 이 쇠사슬을 제외하고는 저처럼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rsquo;&rdquo;(29절). 이 말을 하는 바울은 지금 죄수의 신분입니다. 이 말을 듣는 이들은 헤롯 아그립바 2세, 총독 베스도입니다. 귀족들입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위치가 바뀐 것 같습니다. 아그립바 왕이나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ldquo;이 쇠사슬을 제외하고는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rdquo;고 말하는 게 세상적으로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반대로 죄수가 자신을 재판하는 이들에게 &ldquo;이 쇠사슬을 제외하고는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rdquo;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교만이나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분명한 진리 위에 서 있는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ldquo;당신도 나와 같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를 바란다&rdquo;는 구원의 초청, 생명으로의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담대합니다. 억울해 하지도 않습니다.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보이지 않습니다. 몸은 매여 있지만, 마음은 자유롭습니다. 그가 끌려가는 상황에서 도리어 이끌고 있습니다. 법적인 주도권은 총독에게 있지만, 영적인 주도권은 바울에게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법적 제도를 통해 벌을 받고 있지만, 진정 바울을 보호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보호하시는 이유는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증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lt;사도행전&gt; 전체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모습은 선교사의 여정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이 영적 주도권을 가지게 됩니다. 영적 주도권을 가졌다는 증거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서 나타납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해서 로마까지 가야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ldquo;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lsquo;이 사람이 황제께 상소하지만 않았더라도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오&rsquo;라고 말했습니다&rdquo;(32절). 이 말은 재판 과정에서 무죄가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에 상소하지 않았어도 바울이 풀려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시민권을 이용해서 상소했기 때문에 죄수의 신분이 연장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바울이 풍랑을 만나고, 죽을 뻔한 위기를 거치면서 로마까지 갑니다. &lt;사도행전&gt; 16장 빌립보에서는 그가 갇힙니다. 그때는 재판도 받지 않습니다. 공개석상에서 매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사실 그때 바울이 &ldquo;나, 로마시민이요&rdquo;라고 말했다면 함부로 못 때렸을 것입니다. 빌립보라는 도시에서 로마 시민권의 가치가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갇혀 있을 때라도 &ldquo;나, 로마 시민이요&rdquo;라고 했다면 풀려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매 맞을 때도, 갇혀 있을 때도 한마디도 안합니다. 감옥 문이 열리고, 지진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간수가 차라리 죽어야 되겠다고 생각할 때 그를 말리고 전도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라고 말합니다. 풀어줄 때가 되니까 로마 시민권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상황을 보면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잘못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풀려날 수 있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될 걸 상소함으로써 죄수의 신분이 연장되고, 빌립보에서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계속 죄수의 신분으로 갇힙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이용해서 감옥에 들어가지 않고 풀려날 수 있었는데 정반대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에서는 나중에 밝혀서 감옥에 갇히고, 가이사랴에서는 분명하게 호소해서 계속 갇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주어진 사회의 특권을 자신을 보호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정반대로 희생하는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전하는 일을 자신이 풀려나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ldquo;네가 예루살렘에서 나를 증거한 것 같지 로마에서도 나를 증거하여야 하리라&rdquo;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제 로마에게 가서 가이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은 죄수의 신분이 연장되는 것뿐이기에 항소한 것입니다. 자신의 무죄가 드러나기를 바라서 상소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까지 가야하고, 가이사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 시민권이라는 특권을 자신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죄수의 신분이 될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 부활과 복음을 증거하는 일의 기회로 사용했습니다. 바울의 이 태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하는 말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모든 상황에서, 모든 이들에게 &ldquo;&lsquo;아그립바 왕이여, 제가 오늘 당신 앞에 서서 유대 사람들의 모든 모함에 대해 저 자신을 변호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rsquo;&rdquo;(2절). &lsquo;다행으로 여긴다&rsquo;는 것은 이제 풀려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닙니다. 아그립바 왕을 만나서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증거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ldquo;그러나 저는 바로 이날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왔기에 여기 서서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앞으로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rdquo;(22절).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다면 벌써 풀려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도움과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라면 어려운 상황에서, 무고한 상황에서 풀려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텐데, 바울은 정반대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신이 죄수의 신분으로 높고 낮은 많은 사람에게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각이 다른 것입니다. 몇 년 전 두란노서원에서 출간한 케네스배 선교사님의 간증집 &lt;잊지 않았다&gt;가 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로서 북한사역을 하려고 중국에 여행사를 세워서 북한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일을 하면서 그 땅을 밟고 기도하다가 실수로 외장하드를 가지고 간 것입니다. 거기에는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lsquo;여리고 작전&rsquo;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게 드러나서 15년 형량을 선고받습니다. 강제노역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lsquo;나를 구해 주십시오. 빼내 주십시오&rsquo;라고 기도했는데, 점차 그분의 기도가 &lsquo;나를 이 상황에서 사용해주십시오&rsquo;라고 바뀌었다고 합니다. 만 2년 만에 풀려놨는데 이 기간이 흥미롭게도 바울이 가이사랴와 후에 로마의 셋집에 억류되었던 시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 시기에 케네스배 선교사님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ldquo;하나님이 이 상황을 통해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 지를 기도하게 되었다&rdquo;는 고백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는 다른 사람들이 쇠사슬 외에는 자신처럼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자신을 재판하지만, 언젠가 하나님이 그들을 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수치스러운 위치를 계속 지키려고 복음을 외면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이들이 자신을 통해 이제는 당당하게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이들로 변화되기를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모든 상황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ldquo;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rdquo;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4-11-16  제1516호

  • 칼럼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그럴 수도 있지!”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ldquo;그럴 수도 있지!&rdquo; 한 가족이 일주일 동안 가족여행을 떠났다. 오랜만에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 바다를 보면서 답답했던 마음의 찌꺼기들을 날려 버렸다. 가족들 마음에 있던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면서 행복한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그 즐거운 추억을 안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가족들이 길고 먼 귀갓길에 올랐다. 장거리 운전 이후 한가득 여행 짐과 다시 쌓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가족이 휴가 가 있는 동안 에어컨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아내가 참지 않고 &ldquo;여보 내가 출발하기 전에 에어컨 끄라고 했지! 전기요금 폭탄을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당신 때문에 못살아 정말!&rdquo;이라며 분노와 원망의 말을 차갑게 쏟아냈다. 남편은 죄인이 된 듯 아무 말도 못 하고 거친 숨만 내쉬었다. 즐겁고 행복했던 여행의 추억이 한순간에 박살 나 버렸다. 아내는 아내대로 마음이 상했고,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화가 났다. 부부 싸움을 보는 아이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이 흔히 일어날 수 있다. 함께 여행을 가거나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종종 예기치 못했던 일이 발생할 때가 있다. 모든 방의 전등이 환하게 며칠 동안 켜져 있을 수도 있고, 에어컨이 쉬지 않고 작동해서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정신없이 여행 혹은 외출을 준비하면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이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상황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 누구든 직접적인 비난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난 혹은 비판받을 만한 일을 저질렀다 해도 어떻게든 변명하는 말을 만들어 낸다. &ldquo;당신은 내가 얼마나 정신없이 출발 준비를 했는지 알아? 당신이 확인하고 출발했으면 안 됐어?&rdquo; 등 상대에게 들은 원망의 말에 받았던 고통 그 이상을 배우자에게 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정말 성숙한 사람만이 &ldquo;내가 실수했네. 다음부터는 더 주의할게&rdquo;라고 말할 것이다. 부부 사이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성숙하다고 할 수 있다.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서로 말할 수 있다. &ldquo;에어컨이 커져 있었네!&rdquo; 라고 말이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비난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도 가능하면 비난과 질책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비난보다 완곡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 둘째,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고약한 심보 중 하나가 상대방의 실수를 보면 그냥 두지 않고 지적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깊은 상처를 조심스럽게 나눴는데 그 이야기가 가십거리로 떠돌기도 한다. 상대방의 허물과 아픔을 덮어두기보다 드러내고 말하고 싶은 게 인간의 연약함일 것이다. 즐거운 휴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벌어진 누군가의 실수를 곧바로 지적하고 책임을 추궁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일반적인 마음이지만, 그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야말로 미덕이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님의 눈감아주는 배려를 받고 자랐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눈감아 주고 품어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작은 실수를 덮어주고 품어준다면 그 행동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허물을 덮어주는 행동이 선순환되면 부부와 가족이 더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쌓을 수 있다. 셋째, 역할 분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계기로 삼는 것도 좋다. 일에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lsquo;상호점검&rsquo;하는 것은 일하는 현장에서 매우 필요한 작업이다. 업무가 잘 전달됐는지,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서로 점검하고 격려하면서 일이 완성되도록 해야 한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필요한 게 분명한 업무 분담과 부단한 대화이다. 부부와 가족이 계속 가사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업무 분담이 분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에어컨 끄는 것의 역할에 누수가 생겼다면 다음에는 같은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부부와 가족은 앞으로도 함께 수많은 외출과 휴가, 여행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수없이 반복될 수 있다. 계속 누수가 발생하는 업무라면 더욱 분명하게 분담하고 상호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사랑과 온유함으로 말하는 것이 필수적 요소이다. 넷째, 부부싸움을 할 만큼 중대한 일인지 평가해야 한다. 정말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일들이 큰 부부싸움으로 번질 수 있고, 자녀들을 타당하지 않게 혼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족에게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분류해 보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엄청나거나 대단한 게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목숨 걸 일이 아니라면 &ldquo;그래 그럴 수 있지&rdquo;라며 수용하고 넘어가는 부부가 되면 좋겠다. 여행 다녀왔는데 며칠 동안 가동됐던 에어컨을 본다면 누구나 당황할 것이다. 책임을 져야 하는 누군가에게 비난과 책망을 돌리고 싶을 것이다. 피곤이 많이 쌓인 상태라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도 있다. 전기요금 폭탄을 생각하면 미친 듯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수용과 용납이 필요한 게 가족 관계이다. &ldquo;그럴 수도 있지&rdquo;라고 덮어주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 황규복 박사, 김숙경 소장 부부(두란노 결혼예비학교 부부 강사, &lt;사랑해서 결혼한 당신에게&gt; 저자)

     2024-11-16  제1516호

  • 대청

    [멘토가 멘티에게] 갈등과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 멘토가 멘티에게 갈등과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 Q. 공동체에 다퉈서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그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하나요?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안 되나요? 공동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해결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게 가능한 선택일까 싶다. 많이들 갈등 상황을 피하거나 방치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고, 장기적으로 자기 자신과 공동체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갈등을 무시하면 감정을 억압해서 &lsquo;감정 누적&rsquo;을 초래할 수 있다. 감정은 억누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억눌린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Freud)는 억압을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했다. 그는 개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나 충동을 무의식 속으로 억누르면 억압된 감정이 나중에 부정적인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인관계에서 갈등과 분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밝혔다. 갈등을 무시하고 회피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불만과 상처가 쌓여서 장기적으로 더 큰 폭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 갈등을 방치하면 관계의 질이 점차 악화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다. 서로 관계 안에서 사랑하며 행복을 느끼도록 창조되었다. 그래서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상호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공동체에서 이런 상황은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공동체의 신뢰마저 흔들릴 수 있다.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개인의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계속 갈등 상황을 피하려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진다. 부정적 정서를 보상하기 위한 중독에 빠지거나 우울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결하지 않은 지속적인 갈등 상황은 개인의 자존감에도 악영향을 미쳐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사회적 관계에 불안감을 높여 적절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알고 계시기에 &ldquo;그러므로 네가 만약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네 형제가 너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 생각나면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두고 우선 가서 그 사람과 화해하여라. 예물은 그다음에 돌아와 드려라&rdquo;(마 5:23~24)고 말씀하셨다. 왜 갈등을 해결해야 할까? 긍정적인 갈등 해결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문제를 잘 해결할 때 더 깊은 신뢰가 형성되고, 관계가 더욱 성장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ldquo;내가 네게 명령하지 않았느냐? 강하고 담대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 여호와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할 것&rdquo;(수 1:9)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위로와 힘을 주신다. 공동체에서 어려운 관계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면 문제를 더 키우는 선택이 될 뿐이다. 갈등과 문제는 피하기보다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공동체가 더욱 단단해지고, 개인 역시 성장할 수 있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갈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더욱 친밀해지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충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최숙영 멘토(인천WEB대학청년부)

     2024-11-16  제1516호

  • 사역

    [양재 이웃사랑팀과 함께] 새로운 기억을 선물하는 공간! 양재 이웃사랑팀과 함께 새로운 기억을 선물하는 공간 가정폭력피해자 쉼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가족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하고 엄청난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다. 그들의 소원은 그 아픈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양재 이웃사랑팀과 함께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기억을 선물하는 공간을 찾았다. &lsquo;가정폭력피해자 쉼터&rsquo;다. 가정폭력피해자 쉼터에서는 피해자들에게 쉼과 안정, 위로와 회복을 제공하고, 자립을 돕는다. 그들과 함께 가정폭력 피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꿈을 꾸도록 도와준다. 가정폭력피해자 쉼터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ldquo;그 기억을 지울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hellip;&rdquo; 어느 가정폭력피해자의 고백이다. 그녀는 그토록 사랑하고 의지하던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그 날의 기억을 도려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지우고 싶을수록 그 기억이 더욱 선명해져서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그녀를 폭행하던 남편의 손이 어린 딸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와 남편이 찾지 못하는 곳으로 숨었다고 했다. 그 끔찍한 기억을 지우고 싶은 것은 그녀만의 소원이 아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 모두가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한다. 가족에게 당한 그 끔찍한 폭력과 씻지 못할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그 끔찍한 기억 때문에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지난달 27일, 30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들이 어머니에게 술값을 내놓으라며 또 폭언을 퍼붓는 아버지를 둔기로 살해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아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함께 생을 마감하려다 실패하고 자수했다. 아들이 써둔 유서에는 오랜 시간 가정폭력을 일삼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아들은 &ldquo;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미안하지 않다&rdquo;는 말을 남겼다. 범죄를 두둔하거나 옹호하는 게 절대 아니다. 살인은 말을 보탤 필요가 없는 범죄다. 그러나 이 사건 이면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 가 △2021년 21만 8,680건 △2022년 22만 5,609건 △2023년 23만 830건으로 매년 1만여 건씩 증가했다. 지난해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신고된 가정폭력이 모두 90만 6,552건이나 된다. 한 해 평균 22만 6,638건의 가정폭력 신고가 있는 셈이다. 가정폭력피해자 현황도 있다. 여성이 12만 532명으로 남성(3만 849명)보다 4배가량 많다. 연령은 △40대 3만 4,510명 △30대 3만 2,623명 △50대 2만 7,675명 순이다. 그런데 그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누가 도와줄까?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피해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잠시나마 머무는 곳이 &lsquo;가정폭력피해자 쉼터&rsquo;다. 두 번째 가족, 가정폭력피해자 쉼터 우리나라에 가정폭력피해자 쉼터가 67곳 있다. 가정폭력피해자 쉼터는 최대 1년까지 머물 수 있는 &lsquo;단기 쉼터&rsquo;와 자립 및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lsquo;장기 쉼터&rsquo;로 구분된다. 가정폭력피해자 쉼터에는 1366(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긴급 전화상담)이나 경찰서에 신고된 피해자들이 입소한다. 대부분 긴급 상황으로 입소한다. 외투는커녕 슬리퍼나 맨발, 심지어 속옷 차림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양재온누리교회 이웃사랑팀에서 어느 가정폭력피해자 쉼터를 돕고 있다. 피해자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쉼터 이름을 밝히지 않고 &lsquo;A쉼터&rsquo;라고 칭했다. A쉼터에는 가정폭력피해자 50여 명(엄마와 자녀)이 생활하고 있다. 이곳은 단기 쉼터여서 1년 정도 머물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자립생활시설로 이동한다. A쉼터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머무는 동안 그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엄마와 아이들의 정서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 프로그램, 엄마들의 자립을 돕는 공공작업장 운영, 아이들의 진로 탐색을 위한 진로 프로그램, 정서발달을 위한 키즈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관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진짜 가족이 되어준다. 명절에는 함께 전을 부치고, 갈비와 잡채, 송편과 떡국을 만들어 먹는다. 매주 주일에는 함께 손을 잡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여름에는 가족 여행을 떠난다. 크리스마스 파티도 한다. A쉼터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그 자리에 행복한 기억을 덧입히고 있다. 가정폭력피해자 쉼터가 그들의 두 번째 가족이다. 가정폭력피해자 쉼터의 역할 A쉼터에서 생활하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남편, 누군가는 아빠, 누군가는 아들, 누군가는 사위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다. 그 끔찍한 상처를 입고 쉼터에 입소했다. 그런데 쉼터에 입소했다고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 가정폭력 행위자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산다.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lsquo;내가 무능해서 아이들까지 폭력을 당하게 만들었다&rsquo;, &lsquo;내가 힘이 없어서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rsquo;며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린다. 그래서 우울과 불안, 무기력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A쉼터에서 바로 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A쉼터에서는 엄마들의 회복과 자립을 돕기 위해서 공동작업장 &lsquo;봄봄&rsquo;을 운영하고 있다. 벌써 6년째다. 공동작업장 &lsquo;봄봄&rsquo;에서는 에코백, 파우치, 옷, 신발 등을 만든다. 이곳에서 일하는 엄마들의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다. 튼튼하고 실용적이고 디자인까지 세련된 제품들을 만들고 있다. 한번 보면 바로 사고 싶어질 정도다. 엄마들의 솜씨 덕분에 고정 고객이 늘고, 홍보 물품 주문도 늘고 있다. 가정폭력피해자 쉼터에 입소하는 아이들은 가정폭력 행위자 몰래 학교를 옮겨야 해서 &lsquo;비밀 전학&rsquo;(학대 가해자로부터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주민등록 주소지를 바꾸지 않고 보호시설 주변 등 인근 학교로 전학이나 입학을 지원하는 제도)을 한다. 친구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A쉼터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A쉼터에서는 아이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lsquo;희망스튜디오&rsquo;와 &lsquo;희망스피커&rsquo;의 후원을 받아 예술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책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도록 돕는다. 아이들이 직접 동화를 쓰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 난 그 자리에 행복한 기억, 성공의 기억을 채운다. 아이들이 쓴 글과 그림을 모아 책 &lt;꼬마작가 앨리스, 마법의 힘으로 어둠을 물리치다&gt;도 출판했다. 꼬마 작가들의 출판기념회가 지난달 24~26일 온누리청소년센터에서 있었다. 책 &lt;꼬마작가 앨리스, 마법의 힘으로 어둠을 물리치다&gt;에는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기 싫어서 날개를 가지고 싶다는 물고기 이야기, 보름달이 뜨는 밤이 되면 늑대로 변해서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이야기, 마법의 힘을 가진 지팡이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성장하는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동화 속 주인공이 작가인 아이들과 많이 닮아있다. 책 &lt;꼬마작가 앨리스, 마법의 힘으로 어둠을 물리치다&gt;은 시중 서점이나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 A쉼터 돕는 세 가지 방법 후원과 자원봉사, 중보기도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lsquo;A쉼터&rsquo;를 돕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후원과 자원봉사, 중보기도가 그것이다. 가정폭력피해자 쉼터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정부에서 한 달에 33만 원 정도를 지원한다. 그 돈으로 엄마와 자녀들이 먹고, 입고, 생활해야 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나머지 생활비는 A쉼터에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해 줬으면 좋겠다. 생필품이나 식료품 후원도 큰 도움이다. 쌀과 김치, 라면, 옷, 신발, 가방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생필품과 식료품 후원과 자원봉사 문의는 양재 이웃사랑팀에게 하면 된다. 자원봉사자도 필요하다.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남자 어른 상(狀)을 보여주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자원봉사자가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상처를 지우고, 그 자리에 사랑의 기억을 채워주시도록 모두 함께 중보기도했으면 좋겠다. 후원: 농협 301-0354-1238-01 생필품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010-3343-4842(양재 이웃사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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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말씀 해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 4:5). 맛있는 말씀 해설 &ldquo;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rdquo;(창 4:5). &lt;창세기&gt; 4장 5절은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많은 성경 독자가 이 내용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왜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 두 형제가 각각 제물을 드렸는데, 가인의 제물은 거부되고 아벨의 제물만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사실은 표면적으로 불공평해 보일 수 있다. 특히 성경 본문에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사건의 배경과 이유를 명확하게 알기 어려워하고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가인은 첫 번째 사람 아담과 하와의 첫째 아들이다. 땅의 소산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인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농작물이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기 때문에 둘의 제물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본문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여럿 존재한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제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제사 드린 사람, 즉 가인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가인이 어떤 농산물을 드렸는지, 아벨이 어떤 양을 드렸는지 깊이 다루지 않는다. 대신 &lt;히브리서&gt; 11장 4절에서 아벨의 제사가 믿음으로 드려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ldquo;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rdquo;라는 구절은 아벨의 제사가 단순히 양의 첫 새끼를 드린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제사에 담긴 아벨의 신앙과 믿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신 요소였음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단순한 제물의 종류나 크기를 보신 게 아니라 제사 드리는 자의 믿음과 신앙 상태를 보신 것이다. 아벨은 그 제물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자신의 첫 열매를 드리는 마음을 표현했지만, 가인의 경우는 믿음과 순종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lt;창세기&gt; 4장 7절에서 하나님이 가인에게 &ldquo;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rdquo;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가인의 내적 상태, 그가 제사 드리는 데 있어서 올바른 마음과 태도가 부족했음을 암시한다. 가인의 분노와 실망은 그의 제물이 거부된 이후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인의 마음이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무조건 거부하신 게 아니라 그가 올바른 믿음과 마음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외적인 제물의 종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시고 제사 드리는 자의 마음가짐과 태도, 믿음을 보신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이 사건은 현대의 독자들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준다. 첫째, 하나님은 외형적인 제사나 행위보다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보신다. 아무리 좋은 제물을 드리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순종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면 그 제사는 의미가 없다. 아벨의 제물은 그의 믿음을 반영하는 제사였고, 하나님이 그 믿음을 기쁘게 받으셨다. 우리의 예배와 헌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의 뜻에 맞춰야 한다. 가인의 실패는 하나님의 기준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제사 드린 결과였다. 이는 우리의 예배와 헌신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과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외적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에 담긴 믿음과 순종이다. 결론적으로 &lt;창세기&gt; 4장 5절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본질이 외형이 아니라 마음과 믿음에 있음을 가르친다. 따라서 가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배와 헌신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마음가짐에 있다는 교훈을 주면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 오은규 목사(성동광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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