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1:19~25
/ 이재훈 위임목사
마땅히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몰라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알면서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하는 줄 알면서 하지 않습니다. 말을 조심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화가 나면 말로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염려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간격을 오래 붙들고 살아서 당연하게 여기는데, 본래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생각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생각하신 바를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도 본래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죄가 우리에게 들어온 이후에 생각과 행함이 분리된 것입니다.
말씀, 영혼을 비추는 거울
“그러므로 누구든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이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약 4:1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에서 자유함을 받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습은 생각과 행함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앎과 행함 사이에 간격이 있습니다. 이 간격이 바로 우리에게 미친 죄의 영향력이자 흔적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해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22절).
단지 실수했거나 게으르다고 지적하지 않습니다. ‘속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감정을 속인다는 게 아닙니다. ‘계산을 잘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다’는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중요한 한 단계를 지났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 행함이 없다면 스스로 계산을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감동한 것을 순종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깨달은 것을 실천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동이나 동의, 깨달음이나 결심, 그 어떤 것도 순종이 아닙니다.
“만일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자기의 생긴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거울을 보고 돌아서서는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금방 잊어버립니다”(23~24절).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거울을 보며 얼굴이나 외모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살핍니다. 당시에는 투명하고 정확하게 보이는 거울이 없었습니다. 청동을 문질러서 만든 거울이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자세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씻지 않고 잊어버린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모습이 바로 거울을 자세히 살피고도 돌이켜서는 잊어버리는 모습과 같다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네 가지 의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말씀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첫째, 이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약 1:18).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낳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결심하고 노력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뜻을 따라 말씀을 통해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우리를 낳은 통로가 된 진리의 말씀입니다.
둘째, 이 말씀은 ‘우리 마음에 심겨진 말씀’입니다(21절).
어떤 분들은 사람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양심이나 이성이 아니냐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받으라’는 동사를 보십시오. 밖에서 온 것, 곧 하나님이 심어주신 것입니다. 심는 일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의 말씀을 이미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셋째, 그 말씀은 ‘영혼을 능히 구원할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에 심긴 말씀이 영혼을 능히 구원합니다. 영혼은 우리의 존재와 생명 전체를 의미합니다. 구원의 값은 십자가에서 이미 다 치러졌습니다. 마음에 심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고, 그 말씀이 온전한 구원을 이룰 때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넷째, 이 말씀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25절).
온전한 율법, 곧 자유의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보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계명보다 구원이 먼저 있었습니다. 율법이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죽은 문자로 남아 우리를 정죄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 말씀이 되었을 때, 자유를 누리는 율법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같은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는 법에서 자유케 하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율법 안에 거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자리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 곧 하나님의 율법 안에 머문다는 것을 ‘그 안에 거한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우리가 본래 지음을 받은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 말씀에 대한 태도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해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22절).
이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요, 우리를 낳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들려오면 우리는 이끌려 가게 됩니다. 이 말씀은 마음에 심겨진 말씀이고, 영혼을 구원할 말씀입니다. 자유케 하는 그 말씀 안에 우리는 이미 들어 있습니다. 없는 것을 내놓으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말씀이 표현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는 진리의 말씀이 새겨져 있고, 손에는 자유케 하는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함이 없는 것은 씻을 물이 준비되어 있고 더러운 것도 있는데 씻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의 거울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비추는 것이 아니라 씻김의 자리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이며, 믿음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십자가 은혜와 사랑, 회복을 날마다 경험하는 것이 실천입니다. 없는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깨달은 것,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대한 태도를 우리의 관계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천천히 하며 노하기도 천천히 하십시오”(19절).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닫고, 자신의 말만 빨리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도 동일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자신의 말을 삼가고, 분노를 삼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마음에 심긴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백성이 구경거리를 보러 나오는 것처럼 네게 나와서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 네 말을 듣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행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탐욕을 추구하고 있다. 너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네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다.”(겔 33:31~32).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심긴 말씀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입니다. 내가 이 말씀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노에 사로잡힐 때보다 마음이 닫힐 때가 없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화내기를 더디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 사람은 자신이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25절).
직역하면 ‘그의 행함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만일 복이 행함의 삯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꾼일 뿐입니다. 복이 행함의 자리에 있는 것이라면, 그 과정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행함 때문에 복을 받는 게 아니라, 그 행함 안에서 복을 받습니다. 순종하는 과정 자체에 복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에 있던 미움의 쇠사슬이 풀려나기 시작합니다. 그 행동이 이미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섬긴 뒤에만 복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몸을 굽혀 내가 누군가를 섬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순종을 미룰 때, 실천을 미룰 때 늘 같은 말을 씁니다. 조금 더 기도한 뒤에, 마음의 준비가 되면, 형편이 좋아지면. 이 변명들이 그쳐지고, 바로 지금, 오늘 행하는 실천이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이 간격은 우리 스스로 메울 수 없습니다. 이 간격을 메워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의롭게 된 것과 우리의 죄인 된 상태를 연결해 주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끊임없이 아는 것과 행하는 간격을 좁혀가시는 분입니다. 이미 듣고, 마음에 심긴 말씀을 끝까지 주장하고, 행함으로 연결하는 복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8-28
제16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