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요한: 사랑의 머무름
[주일강단]
요한: 사랑의 머무름
<요한복음> 19:25-27, <요한계시록> 1:9
/ 이재훈 위임목사
요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은 야고보의 동생, 세베대의 아들입니다. 갈릴리의 어부였던 세베대의 아들인 그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부유한 미래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또한 안드레와 함께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야고보와 비슷하게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격렬한 성격이었기에 ‘우레의 아들들’이라는 예언적 이름을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야고보와 함께 세속적 야망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1·2·3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원숙한 목회자요, 신학자로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증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행적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다른 시각으로 기록했습니다. 신학자들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같은 관점에서 기록했다고 해서 ‘공관복음(共觀福音)’이라고 부릅니다. 공관복음서들은 주로 갈릴리 사역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유대와 예루살렘 중심이며,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최후 일주일을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짧은 비유들을 중심으로 기록했지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긴 설교, ‘강화’라고도 부르는 내용을 중심으로 기록했습니다. 공관복음에는 기적 그 자체를 기록했지만, <요한복음>은 기적의 의미를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을 역사적 순서대로 기록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밝히는 데 집중합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독자적인 기록들이 나옵니다. 요한이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체험을 한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환상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형제이며 예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인내를 함께 나누는 사람인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언 때문에 밧모 섬에 있었습니다”(계 1:9).
당시 요한은 초대교회에 매우 잘 알려진 성숙한 지도자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다른 서신서나 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계시와 예언들이 나타납니다. 성경 66권을 마무리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을 일깨워 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요한이 격렬한 성격에서 변화되어서 영적으로 깊이 있는 증언과 기록을 남기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환난과 인내하는 성숙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이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매우 흔한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그 이름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성경 곳곳에 쓴 글에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몇 구절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자들 중 하나인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예수 곁에 기대어 앉아 있었습니다”(요 13: 23).
“마리아는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요 20:2).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주이시다!’ 시몬 베드로는 ‘주이시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벗어 두었던 겉옷을 몸에 걸치고 물로 뛰어들었습니다”(요 21:7).
“베드로가 돌아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제자는 만찬에서 예수께 기대어 ‘주여, 주를 배반할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던 사람이었습니다”(요 21:20).
요한은 여러 곳에서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고 하고, 13장과 21장에서는 ‘예수께 기대어 있던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있었던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예수님 가장 가까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분의 몸에 기대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요한의 이때 나이를 10대 중후반으로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어렸습니다. 요한은 천진난만해서 예수님 품에 기대고 의지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였습니다. 가장 나이 어린 제자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사촌 동생입니다. 친척 관계이기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하셨을 때, 모든 제자가 입 다물고 있었지만, 요한은 “주님을 배반할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신성과 영광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했습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는 표현이 나올 때는 직접 경험한 것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직접 경험한 것들을 기록했기 때문에 매우 상세하게 예수님 최후의 행적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재판 과정, 십자가 처형 장면, 십자가 위에서 주신 말씀들, 베드로의 배신과 그 회복의 여정에 이르기까지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요한이 있었습니다. 남자 제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예수님의 사촌 동생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요한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어머니와 그 곁에 사랑하는 제자가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에게는 ‘보아라. 네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예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25~27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끔찍하게 처형을 당한 장면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제자는 네 명이었고, 남자 제자는 한 명이었습니다. 끔찍한 십자가 처형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십자가와의 물리적인 거리가 곧 예수님의 사랑의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멀찍이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멀리서 지켜봤습니다. 자신에게 위험이 닥쳐올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끝까지 지킨 사람은 군병들과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소수 제자, 다섯 명입니다. 요한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23절과 24절에서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찢어서 나눠 가지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옷이 찢어져 떨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이 십자가로 더 가까이 다가갔을 거로 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을 때 흘리는 피와 지친 몸 때문에 멀리 보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가까이 다가왔을 때 오늘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머니 보십시오, 아들입니다. 당신의 아들입니다.”
여기서 당신의 아들이라는 건 요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한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이 말씀은 이제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모셔달라는 요청과 명령이고, 마리아에게는 이제 나 대신 요한이 모실 거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제 저와 어머니의 관계는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 요한이 당신의 아들로서 당신을 모실 것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서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에베소에 가보면 지금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다는 기도원이 있습니다. 요한은 열두 사도 중에 가장 오래 살았던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저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이고, 예수님이 당신의 어머니를 위탁할 정도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하나님 사랑에 관한 증언을 합니다. 특히 <요한일서> 4장에 사랑에 대한 위대한 말씀을 남깁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완성됩니다”(요일 4:10~1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셔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 <요한일서> 4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합니다. 요한의 서신들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강조하며 사랑에 사로잡힌 사도가 되었습니다.
‘제롬’이라는 분에 의해서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베소에 노쇠할 때까지 머물렀던 요한이 거동하기가 어려워서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예배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많은 말을 할 기력이 없기도 했지만, 모일 때마다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그가 늘 같은 설교를 하는 것에 따분함을 느끼고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왜 항상 같은 말씀 하십니까?” 요한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며, 또한 서로 사랑하는 일만 제대로 행한다면 더는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 외에는 모든 것을 잊은 사람처럼 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내용을 몰라서가 아니라 행할 수 있는 말씀을 붙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붙잡고 죽기까지 충성한 제자였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다시 받을 때 요한에 대해서 묻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베드로와 항상 같이 있었던 제자가 요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 내가 원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님이 ‘머문다’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요한은 사랑에 머무는 제자였습니다. 형 야고보는 순교의 우렛소리가 되었지만, 동생 요한은 사랑의 우렛소리가 되었습니다. 안드레와 함께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른 제자였고, 가장 오래 예수님을 따른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였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는 제자였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면 머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면 말씀 앞에 머물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과 임재를 사랑하면, 그분 앞에 머물러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 때 우리는 그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전하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주의 사랑 안에 머무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2-07
제15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