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베드로: 우선순위의 재편
[주일강단]
베드로: 우선순위의 재편
<누가복음> 5:1~11
/이재훈 위임목사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행하신 일은 제자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의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고, 올바로 믿게 하려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의도를 가지고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신 게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은 장차 행하실 사역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일종의 예언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택하셨다는 것도 중요한 관점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변에서 제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비범한 목적을 이루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장차 변화될 모습을 바라보시며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열두 제자들의 구성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기질과 관심사도 달랐고, 사회적 직업도 달랐습니다. 핵심 네 사람은 어부였고, 같은 동네 벳새다 출신이었습니다. 어부와 전혀 상관없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시몬은 당시 세리 같은 사람들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폭력을 써서라도 로마 제국과 싸워야 하며, 처단해야 한다고 여겼던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경멸받는 사람이었던 시몬과 마태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였다는 게 매우 충격적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출신 배경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극단적인 반대 입장에 섰던 두 사람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였다는 것은 모든 것을 녹여내는 복음을 능력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의 관계 3단계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의 관계가 3단계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예수님을 따르긴 했지만 간헐적으로, 사정이 허락될 때 따르는 무리입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든지, 예수님이 특별한 가르침을 주셨을 때만 따르던 군중으로서의 제자들입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분명 따랐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허락될 때, 간헐적으로만 따랐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의 직업까지 포기하고 예수님과 생활하면서 따릅니다. 모든 제자들이 이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는 예수님과 생활까지 함께 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사도로 보내심을 받아서 또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은 이 단계에 이르도록 제자들을 훈련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셨습니다.
열두 제자 명단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이 베드로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가장 오랜 시간 친밀한 관계를 맺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지도력의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벳새다 출신,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시몬에게 예수님이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안드레와 함께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왔을 때 이름을 베드로로 바꿔 주셨습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바위, 반석이라는 뜻의 헬라어 ‘페트라’의 아람어식 발음입니다. 게바나 베드로, 페트라는 같은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매우 성급했고, 좌충우돌하고, 때로는 신뢰하기 어려운 약속을 남발하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호언장담하는 안정적이지 않은 성품이었습니다. 반석처럼 견고하고 묵직하게, 차분하게 정돈되기 보다는 항상 말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름과 걸맞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차 베드로가 매우 안정적인 사람으로 변화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앞서 말씀드린 1단계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2단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세계관이 찢어지는 순간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게네사렛 호숫가에 모였습니다. 게네사렛은 갈릴리 호수입니다. 어떤 때는 바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3절을 보면, 예수님이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가르치셨습니다. 의도적으로 시몬의 배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주신 이름대로 베드로와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시몬의 배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이 그물을 씻고 있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를 상당히 당황하게 했습니다. 네 가지 이유로 따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물을 씻고 있다는 것은 일과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미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보았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셋째,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밤에는 얕은 쪽, 아침에는 깊은 쪽으로 고기가 몰리는 법입니다. 더 어려운 시간대, 더 어려운 곳에서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넷째,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의 원어를 보면 복수로 쓰여 있습니다. 가진 그물을 다 내리라는 뜻입니다. 이 상황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베드로는 당연히 ‘아니요’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평범하지 않은 결단을 내립니다.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가진 장점이자, 그가 수제자로 쓰임 받은 이유입니다. 그는 안정적이지 못하지만, 때로 과감한 결단을 하고, 평범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잠재력을 보셨을 것입니다.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려 보겠습니다’”(5절).
자신의 경험과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해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상식, 피곤을 내려놓고, 경험하지 못한 세계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비상식적인 게 아니라 초상식적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묶여 사는 것을 뛰어넘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알지 못한 세계, 보지 못한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순종은 온전한 순종이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세, 말씀의 권세, 능력 행하시는 권세 앞에서 감히 거역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변에 모여 있던 무리 앞에서 예수님을 존중하는 마음도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실주의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던 베드로의 세계관이 그물처럼 찢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는 실제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나의 경험에 갇혀진 세계관이 깨어지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는 변화가 제자의 삶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결정적인 사건
“시몬 베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제게서 떠나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8절).
뜻밖의 고백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해서 많은 물고기를 잡았으면 기뻐하고 감사하고 놀라워하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일 텐데, 갑자기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 기적을 통해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단지 훌륭하신 선생님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둘째, 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어부로서의 자존심을 가지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불신과 의심, 불만 등이 혼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경외심,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 자각능력이 베드로에게 있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적합한 사람인지를 깨닫는 겸손이 베드로의 또 다른 장점입니다. 우리에게도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놀라운 기적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고, 연약하고, 더러운 자인지를 깨닫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이며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10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 1:17).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배를 뭍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예수를 따라갔습니다”(누 5:11).
첫 번째 단계의 제자에서 두 번째 단계의 제자로 넘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단순한 순종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갈릴리 어부들은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보다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학식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미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르심 앞에서 따지지 않고 즉시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른 것입니다. 이들의 행동을 충동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인 됨의 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고,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깨닫는 분명한 인격적인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두 차례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첫 번째가 이 사건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 부활하신 이후 베드로가 다시 어부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질문하시고 그를 다시 부르신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 21:22).
베드로의 생애 전체가 “나를 따르라”는 두 번의 부르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의 부르심과 <요한복음> 21장의 부르심 사이에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많이 흔들리고 좌충우돌하던 베드로를 허용하셨습니다. 사단에게 넘어가 배신하고 좌충우돌했던 그를 이름에 합당하게 변화시키셨습니다. 끝까지 자신을 따르는 제자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3단계의 제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또 다른 사람을 제자 삼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단계의 제자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시몬을 베드로로 부르시고, 흔들리고 실패하고 배신하고 도망치는 그를 또다시 부르셨습니다. 결국 베드로의 이름처럼, 믿음의 초석이 되게 하시고, 그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반석 같은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한번 부르신 제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면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그 부르심 앞에 얼마나 빨리 순종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1-17
제15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