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일강단]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누가복음> 1:26~38
/ 이재훈 위임목사
세상에서는 후손들이 조상의 삶과 그 업적을 기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상들이 후손인 그분을 미리 전하고, 예언하고, 어떤 삶을 사실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훌륭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메시아로 인정된 게 아닙니다. 메시아로 오시기로 예언되었고, 그 예언대로 메시아의 소명을 이루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실 의무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과 세상을 내버려두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풍성하신 사랑과 자비하심 때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시기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진노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삼키고, 죄를 이기고, 이 세상과 공중의 타락한 권세들을 무찌르는 능력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친히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담의 후손 가운데서는 그 누구도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가 없었고, 하늘의 천사들 가운데서도 합당한 능력을 갖춘 이가 없었습니다. 오직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여자에게서 나게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 첫 번째 예언이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네 자손과 여자의 자손 사이에 증오심을 두리니 여자의 자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그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을 타락하도록 유혹한 뱀에게, 곧 사단에게 주신 심판과 저주의 말씀 가운데 장차 보내실 구원자를 여자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는 말씀에는 구원의 약속이 포함되지 않고, 뱀에 대한 저주의 말씀, 사단에 대한 심판의 말씀 속에 담아 주신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곧 사단에 대한 심판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의로운 심판을 통과하며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죄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육신하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사단에게 종이 되어 버린 모든 인간과 세상의 죄를 담당하신 그 십자가의 죽음, 그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인의 후손을 통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처녀에게 잉태케 하시는
두 가지 의미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고 그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사 7:14).
‘친히’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지하고, 거부할지라도 강권적으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태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실의 후손 가운데 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거라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는 일을 기대할 리 없습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이루어졌듯이, 모든 인간이 구원을 기대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처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신 아들을 통해서 임마누엘, 함께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다윗의 왕실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인의 후손, 처녀에게 아들을 잉태케 하신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힘으로는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자는 인류 바깥에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 인류는 구원자를 스스로 낳을 수 없고, 교육이나 문명의 발전을 통해서도 구원자를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은혜,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가 없는 완전한 인성을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죄한 상태로 태어나신 것은 처녀의 아들로 태어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과 보호하심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습니다”(마 1:16).
이 족보의 의미는 <창세기> 3장 15절과 <이사야> 7장 14절에 예언된 대로 여인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이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오되 처녀에게서 태어나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타락 직후 주어진 말씀부터 시작해서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언과 역사적 사건을 통해 장차 오실 그분을 준비하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처녀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요셉만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 육신의 어머니를 택하실 때 마리아라는 믿음의 여인을 주목하셨습니다. 그것은 전례 없는 신비로운 일, 그리고 위험한 일을 요셉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오해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응답했고,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성경은 동정녀 탄생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 충격적이고, 당황스럽고,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마리아의 반응을 통해 소개합니다.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라고 인사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에 당황하고 놀랍니다. 이러한 인사법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건한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에게 “은혜를 입은 자여”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경건한 삶을 살지 않았던 여인이었다면, 천사의 음성을 구별하지 못하고 놀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무감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날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천사의 인사와 소식을 듣고 놀라워합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들의 신분과 역할
“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보아라. 네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는 위대한 이가 될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다. 그는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30~33절).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해준 이 소식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압축하고 또 압축한 것입니다. 이 짧은 말씀이 구약의 요약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또다시 놀라워하며 질문합니다. “처녀인 제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마리아의 말은 의심과 불신의 말이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마리아와 비슷하지만 정반대 의도가 담긴 사례가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제사장 사가랴의 질문입니다. 사가랴는 나이든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자녀가 없어서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는데 그때가 늦은 나이였습니다.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여기는 때였습니다. 그때 사가랴가 “제가 어떻게 이 말을 확신하겠습니까? 나는 늙었고 내 아내도 나이 많았습니다. 징조를 보여주십시오”라고 응답했습니다. 사가랴의 ‘어떻게’는 ‘불신의 어떻게’입니다. 두 사람 모두 천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출생에 대한 고지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어떻게’라고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예배합니다. 똑같은 찬송을 부릅니다. 입술로는 똑같은 가사를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과 영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다 아시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질문은 믿음으로 수용하는 자세에서 가르침과 설명을 기대하는 질문입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령께서 네게 임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심으로 네게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역사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임하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므로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주기 위하여 사례를 듭니다. 보아라 네 친척 엘리사벳도 그렇게 많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라 불렸는데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째가 됐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다”(35~37절).
성경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가정에서 아이를 낳는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사례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 가정들에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낳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하나님이 전능한 능력으로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미리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그러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에게서 떠나갔습니다(38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통로로 자신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순간적인 충동이 아닙니다. 평소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어떤 표적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전해준 그 음성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어떤 표적 대신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덮으심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당시 알려진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처녀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마리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천사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는 어둡고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로마의 압제가 있었습니다. 여성의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힘겨운 착취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시 권세자들과 지도자들은 부패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례의 한복판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성육신으로 오신 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은혜가 부어집니다. 여러분, ‘기쁨’과 ‘은혜’는 뜻이 통하는 단어입니다. 연결된 단어입니다. 은혜가 바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리아처럼 은혜를 입은 자로, 기뻐하는 성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27
제15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