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어린양의 진노
주일가안
어린양의 진노
<요한계시록> 6:1~17
/이재훈 위임목사
인류 역사가 BC와 AD로 나뉘는 것은 죽임당한 어린 양이 행하신 일과 또 장차 행하실 일 때문입니다. 어린 양이 이루신 일은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죽임당한 어린 양이 ‘승리하신 사자’입니다. 고난당하고 죽임당한 어린 양이 영광스러운 사자라는 것은 역설입니다. 이 교훈이 <계시록>의 핵심적이요, 복음의 진리입니다.
어린 양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심으로써, 그분의 피로 모든 나라와 족속들로부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구속하셨습니다. 죄인들을 대신해 희생되심으로써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그분의 피로 구속받은 이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분이 정복당하심으로써 정복하셨습니다. 죄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어린 양이 장차 이루실 일은 악에 대한 심판을 완전히 실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과 사단의 종노릇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악에 의하여 망가져가고, 자멸하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십자가 부활로 승리하신 어린 양이 악에 대한 심판을 행하시도록 역사하십니다. 일곱 인으로 인봉된 그 책을 펴서 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은 오직 죽임 당하신 어린 양입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은 악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은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완전한 능력과 지혜를 가지신 그분이 악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심판하십니다. 그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악에 의하여 망가진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어린 양이 악을 심판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원수를 정복하실 것이고,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을 온전히 회복하실 것입니다. 어린 양의 진노는 단순한 복수가 아닙니다. 진노와 심판 과정에서도 여전히 자비를 베풀고 구원하십니다. 궁극적인 목적이 이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임당한 어린 양이 세상에 대한 심판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됐으니 그분이 영원토록 왕 노릇 하실 것이다”(계 11:15).
어린 양의 역할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 세상에 온전히 세우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죽임당한 어린 양이 세상에 대한 심판자로 나타나십니다. 어린 양이 그 책의 일곱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씩 실행됩니다. 이 심판은 먼 미래, 마지막 심판 때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현재 보고 경험하는 내용들입니다. 전쟁과 기근, 질병과 지진 등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인류를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일들을 <계시록>에 근거해서 보면 악에 근거한 것이고, 사단에 의한 것이며, 악과 사단에 대한 심판으로 허락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실 때 의로운 이들만 사용하지 아니하고, 악이 악을 심판하는 데 사용되도록 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자멸하는 방법을 통해 심판하십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은 심판 가운데 더욱 연단될 것이고, 심판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써 사람들을 회개에 이르도록 합니다.
<요한계시록> 6장부터 일곱 인들의 재앙이 연이어 나옵니다. 이 재앙들이 각기 일곱 번,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세 번 반복됩니다. 세 번 반복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일곱 번씩 주어졌다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동일한 계시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봉인된 책을 뗀다는 것은 내용이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나팔은 알리는 도구입니다. 심판이 전해진다는 것이고, 대접을 엎으면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드러나고, 전해지고,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점점 강화되고 반복되면서 내용이 추가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기술 방법을 신학자들은 ‘점진적 패턴의 반복’이라고 부릅니다.
네 가지 색의 말과 그 말을 탄 사람들
<요한계시록> 6장에서는 여섯 번째 인까지 나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인이 떼어질 때 일곱 나팔의 재앙이 시작이 되고, 일곱 나팔이 불려질 때 일곱 대접의 재앙이 시작됩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첫 번째 인부터 네 번째 인까지는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다섯 번째 인은 그 가운데 교회가 받을 고난과 핍박을 말씀합니다. 여섯 번째부터 일곱 번째는 주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일곱 인의 재앙에서 모든 심판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설명합니다.
어린 양이 첫 번째 인부터 네 번째 인까지 하나씩 떼실 때 네 마리 말이 등장하고, 그 말을 탄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말이 네 마리인 이유는 동서남북, 온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말은 전투용, 소는 농사용, 나귀는 수송용 동물입니다. 말의 의미는 전쟁입니다. ‘레볼레이션 인카운터’라는 자료에 나온 그림을 보면, 첫 번째 말은 흰 말입니다. 흰 말을 탄 사람은 활을 가지고 있고,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 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페르시아 군대의 후예인 고대 파르티아인들인데, 말을 타고 활을 잘 쏘는 궁사들이 많아서 로마가 가장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신성한 흰 말을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작지만 결코 이길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 했다는 것은 계속되는 정복 욕구를 말합니다.
두 번째 말은 붉은 말입니다. 그 위에 탄 사람은 커다란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땅에서 평화를 걷어내고,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붉은 말을 타고 있는 기사 역시 전쟁의 힘을 의미합니다. 붉은색은 전쟁, 피 흘림과 연관됩니다. 서로 죽이는 것은 사회악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악한 것에는 언제나 선함이 가지고 있는 지구력이 없습니다. 악의 에너지는 순간 강하게 분출되지만 곧 힘을 잃어버립니다.
세 번째 말은 검은 말입니다. 그 위에 탄 사람은 저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밀 1리터, 한 대나리온에 보리 3리터,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손상시키지 말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검은 말을 탄 기사가 들고 있는 저울은 기근을 상징합니다. 밀과 보리는 기본 주식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 적어도 4~ 5인 가족의 하루 품삯입니다. 밀 1리터는 하루치 음식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합니다. 인플레이션이 매우 심하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생필품을 살 수 없는 심각한 기근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는 손상시키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필수품은 아닙니다. 이 상황은 필수품 없이 굶주린 이들이 있고, 없어도 되는 것이 가득 찬 사람들이 넘쳐나는 기근불균형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네 번째 말은 푸르스름한 청황색 말입니다. 그 말을 탄 사람의 이름을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음부가 그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칼과 기근과 사망과 땅의 들짐승들로 땅의 4분의 1을 죽일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푸르스름한 말을 탄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상징합니다. 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사망한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 색의 말과 그 말을 탄 사람들에 의하여 이 세상에 진노가 부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국한된 심판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곧 종말입니다. 전쟁과 기근, 질병과 지진 등은 악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악을 통해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허락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진노가 실행될 때
세 가지 주목할 점
어린양의 진노가 실행될 때 세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비하심을 베푸십니다. 땅의 4분의 1을 죽일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은 엄청난 진노입니다. 그러나 4분의 3은 여전히 인내하시며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 이후 일곱 나팔일 때는 3분의 2를 죽일 권세가 주어졌지만, 여전히 3분의 1을 하나님이 인내하시며 자비를 베푸십니다. 여전히 회개할 기회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심판 가운데서도 악인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습니다. 일곱 인에 네 번째 인이 떼어질 때 4분의 1이 죽임당하고, 일곱 나팔 때는 3분의 1이 죽임당하며 심판이 강화되지만 악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심판 그 자체는 회개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징벌이 주어지면 사람들이 회개할 것 같지만 악인들은 심판이 실행돼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셋째,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의 순교적 증언을 통해서 회개를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이 악을 심판하실 때 절대로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어진 소명은 순교입니다. 증언입니다. 순교와 증언을 통해 심판으로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이 돌아옵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의 순교적 증언을 통해 사람들이 돌아옵니다. 그것을 알려주시는 것이 다섯 번째 인을 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인이 떼질 때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인해 죽임을 당한 영혼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제여. 언제까지 땅에 사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우리의 피값을 갚아주지 않으시려는 것입니까?”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에게는 흰 옷이 주어졌고, “그들과 같이 죽임을 당하게 될 그들의 동료 종들과 함께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잠시 더 쉬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순교자가 더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의 순교적 증언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만 구원하시고, 안 믿는 사람들은 쓸어버리시는 방식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까지도 먼저 믿은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을 통해서, 그들의 증거를 통해서, 그들의 순교까지도 반역자들이 회개하는 일에 사용하시기를 원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심판으로도 회개하지 않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심판으로도 회개하지 않는 영혼들이 먼저 믿은 성도들의 순교적 삶과 증언을 통해서 회개할 수 있기 때문에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더 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그래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숨겨 다오. 이는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누가 견뎌낼 수 있겠느냐?’”(16b~17).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지는 것은 마지막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인내하고, 심판의 과정에서도 자비를 베푸시며, 심판을 통해서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어린 양을 따른 이들의 순교적 증언을 통해 돌아오게 하시지만,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 이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냐면 산과 바위를 향해 “그냥 무너져서 나를 좀 죽여다오”라고 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진노 앞에 서는 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누가 이 진노를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라고 끝납니다. 견뎌낼 수 있는 이들은 어린 양의 피로 희게 된 사람들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은 이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의 진노를 견딜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은 어린 양의 피로 씻음을 받아 의롭게 되고, 이 진노를 견딜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나타난 14만 4천명은 숫자적인 인원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은 어린 양의 진노의 심판이 이 세상 가운데 이루질 때 순교적 증언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회개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순교적 증언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도 돌아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에 쓰임받기를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이들입니다. 어린 양이 승리한 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를 때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03-29
제15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