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승리한 사자, 죽임당한 어린양
승리한 사자, 죽임당한 어린양
요한계시록 5:1~14
/ 이재훈 위임목사
<요한계시록> 5장에 나타난 예배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동등하게 어린양 예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어린양 예수님이 경배를 받으시는 이유는 그분이 이루신 구속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요한이 바라본 장면에서 어린양이 처음부터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먼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책이 들려 있습니다. 그 책은 두루마리 형태였을 것입니다. 앞뒤로 기록될 만큼 많은 내용이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는 책입니다. 아무나 이 책을 열어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된 말씀, 특히 봉인된 두루마리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계획이 봉인돼 있어서 아무나 펼 수 없다는 예언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강한 천사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가 이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가?” 그러나 하늘에서나 땅에서, 땅 아래도 그 책을 펴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한이 그 책을 펴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자 큰 소리로 슬퍼하며 웁니다. 하나님의 심판 계획이 좌절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바라고 기도했던 게 무위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기에 비탄함을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군림하는 이들, 헛된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독하는 이들, 순결한 성도들을 핍박하며 죽이는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 받는 일이 좌절될 것 같은 슬픔입니다. 그것이 요한의 슬픔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바라보며 이러한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도 그 인봉을 뗄 수 없음을 보았을 때 느끼는 슬픔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그리고 ‘다윗의 뿌리’
그러나 장로 중 한 사람이 요한에게 말합니다. “울지 마라.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승리했으니 그 책과 그 일곱 인을 열 것이다.” 그 책을 열기에 합당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유다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이신 분입니다. 승리하신 분으로, 그 일곱 인봉을 떼고 책을 열 수 있는 분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그리고 ‘다윗의 뿌리’라는 호칭은 구약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나타냅니다.
‘유다지파의 사자’라는 호칭은 야곱이 <창세기> 49장에서 자신의 열두 아들에게 죽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하며 나온 유언적 예언입니다. 그중에 유다 지파를 축복하며 “유다의 자손 중에서 사자의 힘과 맹렬함을 지닌 한 사람이 나올 텐데 그가 원수들을 이기고 모든 백성을 통치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다윗의 뿌리’라는 용어는 <이사야>에서 특히 많이 나옵니다. 메시아를 예언할 때 다윗의 뿌리 혹은 이새의 뿌리, 다윗의 싹, 이세의 싹, 줄기라는 단어들이 나옵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날에 이새의 뿌리가 나타나 민족들의 깃발이 될 것이다. 나라들이 그에게 찾아오고 그가 있는 곳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사 11:10).
민족들의 깃발, 나라들에게 찾아올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이새는 다윗의 조상입니다. 다윗의 뿌리입니다. 두 말씀을 합하면,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 다윗의 뿌리 가운데 메시아가 올 것인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사자 같으신 분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원수를 정복하고 승리할 사자입니다. 요한이 사자에 대해 들었습니다. 사자와 같은 힘과 능력을 가진 분이 다윗의 뿌리에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눈으로 본 것은 사자가 아니라 어린 양이었습니다.
사자처럼 강하신 분이
어린양처럼 연약한 존재가 되어
“또 나는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가운데 어린양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죽임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고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 일곱 영입니다”(6절).
사자이신 분이 오셨는데 그분이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힘이 없어서 죽임당한 게 아닙니다. 이 어린 양은 특별합니다.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습니다. 일곱 뿔은 완전한 권능을, 일곱 눈은 완전한 지혜를 의미합니다. 완전한 권능과 지혜를 가진 어린 양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목적을 가진 자발적인 죽음입니다. 사자 같은 힘과 능력을 가진 분이 어린 양으로 목적 있는 죽음을 이루셨습니다.
“누가 내게서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놓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내놓을 권세도 있고 또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 계명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다”(요 10:18).
사자처럼 강하신 분이 어린 양처럼 연약한 존재가 되어서 자신을 희생함으로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사자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 대적자들을 정복하기 위해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죽음, 상처 입는 죽음으로 승리하는 어린 양입니다. 그 어린 양이 유일하게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펴서 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이유는 그분이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승리는 사자의 힘이 아니라 어린 양의 힘입니다. 자신을 내려놓은 희생의 승리입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은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 승리해야 합니다. 어린 양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섬김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이 어린 양이 보좌에 앉으시고 오른손에서 책을 받아 드실 때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각기 하프와 향기 가득 담긴 금대접을 들고 엎드려 새 노래를 부릅니다. 금대접에 담긴 향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내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두 가지를 드립니다. 하나는 금대접에 담긴 향인데, 그것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진 성도들의 기도가 금대접에 담겨서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천상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취급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합당하게 드려진 우리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금대접에 담겨 향이 되어 드려집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함께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새 노래가 드려집니다.
“그들은 새 노래를 부르며 말했습니다. ‘주는 그 책을 취해 인들을 떼기에 합당하십니다. 이는 주께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들로부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구속해 드리셨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께 나라와 제사장들이 되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땅 위에서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9~10절).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어린 양의 죽음으로 흘리신 피로 모든 족속과 나라 사람들을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민족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과 나라들을 구속하셨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신다는 것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여준 게 출애굽입니다. 하나님이 애굽 땅에 임한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실 때 쓰신 방법이 피를 통한 구별입니다. <출애굽기> 12장 13절에서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 너희 사는 집에 피를 발랐으면 그것이 표시가 돼 내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러므로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너희를 멸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일종의 식별 표시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 하나님이 피를 보고 그냥 지나치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유월절의 ‘유월’은 ‘넘어간다(passover)’는 뜻입니다. 피가 발라져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죽어진 제물이 있다는 것이고, 그 제물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이 이미 그 집에서 실행되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냥 봐준다는 게 아닙니다, 심판이 그 집에 임했다고 간주하심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안 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전부 집행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에게 심판이 내려진 것으로 간주하심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 양을 통한 구속입니다.
그 피가 하나님의 아들, 어린 양의 피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제단에서 속죄를 하는 용도로 주었던 것이 바로 피다. 이는 피가 생명을 대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레 17:11).
이 말씀에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선언합니다, 첫째, ‘피는 생명’이다. 둘째, ‘피가 속죄’를 이룬다. 셋째, ‘속죄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 약속의 피를 주신다’입니다. 피가 생명의 상징이고, 피가 속죄를 이루고,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이 죽어서 속죄되는데, 그 속죄의 피를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 피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어린 양의 피입니다. 유월절의 피가 하나님이 정하신 속죄의 피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유월절에 잡는 양을 표시할 때 쓴 관사가 특이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할 때 단수만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중에는 오직 한 마리의 양만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갈보리에서 죽으신 어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 양을 표시할 때 관사를 계속 바꿉니다. <출애굽기> 12장 3절에서는 ‘어린 양 한 마리(a Lamb)’라고 합니다. 4절에서는 ‘그 양(The Lamb)’이라고 합니다. 5절에서는 ‘너희의 어린 양(Your Lamb)’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 한 마리의 양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의 죄악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보게 하실 때 그 한 마리의 양은 ‘바로 그 어린 양’,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약속과 심판의 약속이 담겨 있는 어린 양입니다. 유일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피로 내가 구속받았음을 알았을 때 그분은 나의 양이십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을 경배하는 두 번째 이유는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그 땅에서 왕노릇 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내게 온전히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 특별한 내 보물이 될 것이다. 온 땅이 다 내 것이지만 너희는 내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출 19:5~6).
어린 양이 구속하신 이유는 구속받은 이들이 제사장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단어 자체가 선교적인 용어입니다. 제사장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구속받은 이들을 또 다른 이들이 구속받는 제사장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때 요한이 보좌들과 생물들과 장로를 에워 싼 수많은 천사가 큰소리로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찬양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임당한 어린 양이 부활하심으로 인간과 만물을 구속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원수를 정복하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승리의 길’
“또 나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이 영원토록 있기를 빕니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에 네 생물은 ‘아멘’하고 화답했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13~14절).
이제 모든 피조물들이 <요한계시록> 4장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5장에 나타난 어린 양께 함께 경배를 드립니다. 어린 양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위치에서 동일한 경배를 받으십니다. 이 천상의 예배를 보여주신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때로 그분의 돌보심과 주권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은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 양이신 그분은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책을 여시고, 그 심판대로 집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사자이신 분이 죽임 당한 어린 양이 되신 것처럼, 자기희생의 모습으로 그분이 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 양을 따르는 ‘승리의 길’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을 찬양하고 높여드릴 때 이 땅에서 천국의 예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03-22
제15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