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
<마태복음> 28:16~20
/ 이재훈 위임목사
온누리교회 머릿돌에 새겨 넣은 <마태복음> 28장 16~20절 말씀은 예수님의 ‘대위임령’, 혹은 ‘지상 명령’입니다. 온누리교회는 그 말씀에 순종해서 39년을 달려왔습니다. “여러분 선교 포기하지 맙시다”라고 외치셨던 하용조 목사님을 기억하면서 온누리교회 모든 성도가 다 시 한번 이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4차 로잔대회는 전 세계 교회 축소판을 보는 대회였습니다. 이 대회의 역사적 의미는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대표적인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함께 참여한 것입니다. 유명 신학교, 선교단체 대표들, 목회자들, 지도자들이 모두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강사로 세운 사람들만 유명한 게 아닙니다. 모든 분들이 강의 하고,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지만, 서로 경청하고 대화하는 그 시간이 소중합니다. 200개국에서 5,394명이 현장에 참여 했고, 온라인으로만 2천여 명, 생중계로 함께 시청한 분이 161개국 3만 여 명, 자원봉사자 2,094명, 매일 중보기도집회에 참여한 분들이 연 6,888명입니다. 가장 많은 대표자들, 중보기도자들, 생중계로 함께 참여한 분들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이 대회에서 우리는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 선교단체, 전문인 선교 동역자들과 함께 이 명령에 순종하기로 헌신하고, 어떻게 이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를 논의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성취되고 있다!
첫째, 순종하는 성도들을 통해 이 명령이 전 세계에서 계속 성취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 같지만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해서 <사도행전>을 기록했던 그 역사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11명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단 11명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11명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고작 11명에게 주어진 이 명령이 예수님 말씀대로 모든 족속으로 퍼져 나갔고, 지금도 계속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이라는 것을 역사 속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부흥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한 <사도행전>의 부흥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전 세계 교회를 통해 성령님이 일으키시는 부흥의 역사에 대한 많은 발표가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한 지도자는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제목으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간증했습니다. 말레이시아 감리교 지도자 화융 박사는 보르네오 정글에서 일어난 부흥을 발표했습니다. 부흥이 일어난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은 알코올, 폭력, 질병으로 사망률이 가장 높은 곳이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이 마을과 다른 부족과의 교류를 차단할 정도였습니다. 그 마을에 C&MA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러 들어갔고, 그 결과 1973~74년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서로 화해하고, 점차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되는 이들이 일어났고, 많은 이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1984~86년 귀한 표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쌀과 물이 밀가루와 기름으로 변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많은 가난한 자가 먹게 되었고, 하늘에 거대한 불덩이들이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사진까지 보여준 장면입니다. 영적 은사들이 나타났고,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급속도로 번졌습니다. 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지난 50년 동안 100만 명가량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믿는 이들이 증가한다!
둘째, 이 명령에 순종하는 성도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런 지역에서 믿는 이들이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부흥의 역사가 계속될 뿐만 아니라 핍박의 역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OMF 국제대표였던 패트릭 펑 선교사는 이름 없는 선교사들을 통해 어떻게 복음이 전해졌는지를 발표했습니다. 그가 런던대학교에서 선교사들의 기록을 모아 놓은 수천 개의 문서를 보는데, 직원이 “여기 문서 하나가 중국 사람을 위해 바쳐진 한 생명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대부분 이름 없는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잊힌 이름들, 이름 없는 선교사들을 기억하며 패트릭 펑 선교사님가 “그들은 잊히기 위해 살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기억되도록 하였다”고 말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전 세계에 지금도 이름 없이 순교하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이란, 파키스탄, 중국입니다. 이란에 처음 복음이 전해진 것이 1850~60년대인데, 전혀 믿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아주 소수의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1996년 7명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들이 모두 순교했습니다. 소수의 그리스도인을 대표할 수 있는 7명이 모두 순교한 그때부터 이란에 복음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내용을 발표한 분이 파르시드 파티라는 이란의 목회자입니다. 그는 2010년 열린 3차 로잔대회에 이란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습니다. 3차 로잔대회 참석하고 65일 뒤 감옥에 갇혔습니다. 국가안보를 위협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5년 징역형을 살았습니다. 2015년 그가 출소한 이후 이란에서 믿는 이들이 급속도로 증가했습니다. 이란 혁명이 일어난 때가 1974년이었는데, 그때 이란의 그리스도인 숫자가 50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5년 만에 그분이 개척한 교회도 20개 도시에서 48개나 됩니다. 이번 대회에 중국에서 100여 명의 지도자들이 공안의 눈을 피해서 왔습니다. 3차대회 때는 참석을 희망했던 200명을 전부 가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명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박해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로잔대회가 적색 단체처럼 분류되어서 참석을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번에는 그 모든 것을 피해서 1백여 명이 왔습니다. 중국 목회자 모임에 제가 참석해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가 이번 로잔대회에 와 있는 동안 공안이 중국 집을 압수수색 하고 가족들에게 “당신 남편은 중국에 돌아오는 즉시 구속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갔다고 합니다. 핍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발표하는 분은 기쁨과 능력으로 충만했습니다.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도 핍박이 매우 심합니다. 테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 교회가 더욱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교회가 쇠퇴하는 지역은 아무런 고난과 핍박이 없는 곳이고, 교회가 성장하는 곳은 고난과 핍박이 있는 지역입니다.
순종해야 할 책임은 모든 성도에게 있다!
셋째,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할 책임은 모든 성도에게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위기는 이 명령을 소수의 선교사, 소수의 사역자에게만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을 때 찾아왔습니다. 이 명령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졌습니다. 배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유람선이 있고, 군함이 있습니다. 유람선 같은 교회는 소수의 사역자들만 일하고 나머지는 관광하듯 구경합니다. 그러나 군함은 모든 사람에게 자기 일이 있습니다. 모두 사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서울선언문 43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교회는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도록 부름을 받았다. 대위임령은 복음의 메시지를 믿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순종을 가르침으로써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뜻에 동참하도록 모든 신자를 모든 곳으로 초대한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지켜보는 세상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충만한 임재(Christ-filled presence), 그리스도 중심의 선포(Christ-centered proclamation),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실천(Christlike practice)을 통해 이를 수행한다(마 28:18~20)”
이번 로잔대회의 중요한 단어 중에 ‘다중심적 선교’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네 지역이 나오는데, 전 세계를 압축해서 표현하신 것입니다. 네 지역을 동시다발적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그곳에서 선교사가 될 때 다중심적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선교사로 존재할 때 다중심적 선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 세계 기독교 지형이 바뀌었습니다. 50~60년 전만 해도 대다수는 서구 유럽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구 유럽과 북미가 30%정도로 줄었고, 나머지 70%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입니다. 한국 교회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이제는 서구에서 비서구로 가는 선교사 개념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모든 지역에서, 모든 성도가 선교의 사명을 다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넷째, 이 명령에 순종하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 포함돼 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빛이 아닙니다.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춰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전도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리고 사회적 책임만 말씀하신 것입니까? 구분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의 모든 선한 삶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로잔대회 주제가 교회가 다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Declare), 그 다음에 삶으로 나타내자는 것입니다(Display). 대위임령에서도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자 삼고 세례를 준다는 것은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명령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모든 것’은 산상수훈의 교훈을 포함해서 세상 속에서 선한 행실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사도 바울도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을 할 때 끊임없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로마서> 15장에서는 서바나(스페인)로 가고자 했습니다. 아직 복음이 전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이들에게 구제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먼저 거기로 가야겠다”고 말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만 세운 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선교사역에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님들이 교회 사역만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만 드리고, 말씀만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배고픈 자를 먹이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함께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빨리 변화된 것입니다.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구분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입니다. 복음 전파의 역사를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으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로잔운동이 주장하고 있고, 한국 교회 초기 선교사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순종할수록 그리스도의 임재를 더 강하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게 아닙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온누리교회에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 나타난다면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일에 헌신해 온 믿음의 선배들 덕분입니다. 온누리교회는 바로 이 명령에 단순하게 순종하면 됩니다. 이것이 목회 철학이고, 목회 방법이고, 모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위임 대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온누리교회의 존재 목적이요, 비전이요, 목회 철학이요, 모든 것입니다. 이 한 가지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일에 헌신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4-10-12
제15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