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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도마 : 질문하는 신앙

[주일강단] 도마 : 질문하는 신앙

2026-03-07 제1579호

도마 : 질문하는 신앙
<요한복음> 20:24~29
/이재훈 위임목사
 
오늘은 ‘도마’에 대한 말씀입니다. 도마의 또 다른 이름은 ‘디두모’입니다. 헬라식 이름입니다. 도마는 히브리식, 정확하게 말하면 아람어 이름입니다. 두 이름 모두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도마라는 이름을 들으면 곧 떠오르는 단어가 ‘의심’입니다. 도마는 믿음이 없고, 의심이 많아서 부정적인 제자로 알려졌지만, <요한복음>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선입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에게 의심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질문한다고 해서 곧 의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의심 많은 제자라기보다 질문이 많은 제자였다고 평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도 의심이 있습니다. 말을 안 할 뿐입니다. 믿는 척할 뿐입니다. 그러나 믿는 척하는 것보다는 자신 안에 생겨나는 질문을 정직하게 던지면서 확실한 믿음을 세워나가는 자세가 훨씬 바람직합니다. 도마는 ‘질문을 통해 확신을 구하는 신앙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정반대 기질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베드로는 낙천적이면서 다가오는 위험과 도전을 진지하게 살피기보다 확신이 없어도 모든 것을 과신하는 성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확신이 없으면 없다고 인정하면서 확신을 위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도마의 성격과 신앙의 모습
 
도마에 관해서는 <요한복음>에서만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본문은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유대 지방 곧 베다니로 가시고자 하셨을 때 제자들이 당황했습니다. 이미 두 차례나 예수님이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과 10장에 예수님을 공격하는 유대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로 돌아가자”라고 하셨는데, 그곳은 예루살렘의 위성 성읍입니다. 예루살렘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때 도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 11:16).
도마의 이 고백은 이중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께 대한 뜨거운 충성심을 보여줍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관적인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가시면 죽게 되실 게 분명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비장한 헌신이지만 또한 비관적인 태도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의도와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닥칠 위험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마가 “이제 우리도 함께 가서 죽자”고 말한 것입니다. 양면성이 있습니다. 도마는 매우 신중하고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충동적인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제자들보다 예수님 앞에 다가오는 위협을 실제적으로 판단한 사람입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항상 최악을 가정하는 성향을 보여줍니다. 도마는 이미 예수님이 죽음에 이를 거라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위협과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종합해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한 것은 비관의 골짜기를 통과한 비장한 용기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도마의 성격입니다. 그의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도마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두 번째 본문은 도마가 예수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나눌 때 도마가 정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면서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침묵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그 길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분위기상 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는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아는 척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여, 저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요 14:5).  
도마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진실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비합리적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온 질문입니다. 이것은 더디 믿는 의심이 아닙니다. 정직한 질문이며, 합리적인 질문입니다. 믿음에 필요한 질문이기에 예수님이 그 질문을 결코 책망하신 적이 없고,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도마는 결코 쉬운 성격이 아닙니다. 까다로운 성격입니다. 그러나 질문하는 태도는 ‘정직한 갈망의 표시’입니다. 
도마의 이 질문이 없었다면 예수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마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이 주신 대답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입니다. 도마의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이 구원의 길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의 질문을 통해 길이란 세상의 철학이나 도덕적인 교훈이 아니라 살아계신 인격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곧 길, 생명, 진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진리는 어떤 도덕적인 원리나 법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란 당신의 인격, 생명도 인격, 길도 인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어떤 방법을 구합니다. 인생의 문제 앞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찾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관계 말입니다.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도마의 질문하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목적지이시며,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아는 척하지 않는 영적 정직성입니다. 신앙에는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이해될 수 있는 영역도 많습니다. 이해될 수 있는 영역에서도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맹목적 신앙으로 시험당할 때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질문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믿기 원하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질문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라고 자신의 한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할 때 참된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확증을 구하는 도마의 신앙
 
질문하는 도마의 신앙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남에서 증거를 구하는 신앙으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다락방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놀라움과 기쁨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도마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말해줬지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마가 그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소!’하고 말했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내가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며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는 한 나는 믿을 수 없소’라고 말했습니다”(25절).
도마의 이 고백도 이중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만 믿을 수 있다는 면에서는 일종의 이성적인 회의주의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내가 직접 만나보고 경험함으로써 내가 믿고 싶다’는 인격적인 체험을 구하는 갈망입니다. 도마의 고백 속에 나타난 갈망의 긍정적인 면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도마를 의심 많은 제자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묻지도 말고, 볼 필요도 없고 구하지도 않는 게 참된 믿음인 것처럼 생각하기보다는 도마가 추구하는 자세를 먼저 봐야 합니다. 그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만 믿겠다”고만 했다면 이성을 신앙 위에 두는 것이고, 과학을 하나님의 계시 위에 두는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도마를 만나주신 것을 보면, 질문하면서 확증을 구하는 갈망을 이해하시고 받아주시며 채워주신 거로 봐야 합니다. 확증을 구하는 신앙을 무조건 선입견으로, 잘못된 것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확신을 구하는 의심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정직한 의심과 증거를 진지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만져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라’”(27절).
부활하신 예수님은 도마의 의심을 다 듣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계시고, 의심도 다 알고 계십니다. 놀라운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상처를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도마와 도마 같은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되셔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선뜻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가 완전히 사라지고 영광스럽게 되신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을까요? 매우 의도적입니다. 도마와 같은 이가 질문할 것을 아셨고, 예수님을 만나는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도마가 예수님을 만나고 “내 주이시며 내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29절).
우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성령 안에서 그분은 살아계시며,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도, 손으로 만지지 않고도 믿는 복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확증을 원하는 누구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즉각적으로 수용하는 믿음도 좋은 믿음이고, 질문하는 믿음도 좋은 믿음입니다. 도마는 우리가 어떻게 의심을 질문을 통해 확인하고,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우리도 도마와 같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라는 확신 있는 참된 신앙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질문을 정직하게 예수님께 내어드리고, 성령 안에서 대답을 받고 확신에 이르는 귀한 신앙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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