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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안드레: 연결하는 제자도 

[주일강단] 안드레: 연결하는 제자도 

2026-01-24 제1574호

안드레: 연결하는 제자도 
<요한복음> 1:35~42  
/이재훈 위임목사
 
예수님이 열두제자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그 많은 무리에서 소수의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는데, ‘12’라는 숫자에 중요한 의미를 두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가 12명만 있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12명을 따로 뽑아(이들을 사도라 부르시고)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내보내셔서 전도도 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도 주셨습니다”(막 3:14~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새 세상에서 인자가 자기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게 되면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마 19:28).
‘12’라는 숫자를 신약에서 반복하는 것은 12명만 위대하다 뜻이 결코 아닙니다. 12라는 숫자는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새 예루살렘과 새 이스라엘의 완성이 12라는 숫자가 가져다주는 메시지였습니다. 12사도의 이름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공통적으로 시몬 베드로부터 시작해서 가룟 유다의 이름으로 끝납니다. 영향력 순서대로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간에 있는 명단은 약간씩 상이합니다. 
“예수께서 세우신 12사람들은 베드로라 이름 지어 준 시몬, ‘우레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너게’라 이름 지어 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동생 요한,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열심당원 시몬과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였습니다”(막 3:16~19).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약간 상이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름이 여러 개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는 이 이름으로, 다른 복음서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나오는 제자가 두세 명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을 보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가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 기적에도 있었고, 일종의 소그룹 리더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격과 성품으로 섬김 
 
안드레는 네 번째로 등장합니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두 번째 나옵니다. 마태와 누가는 안드레가 베드로의 동생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두 번째로 올려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형제입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형제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벳새다라는 어촌 출신입니다. 이들이 후에 가버나움으로 옮겼는데, 그곳도 어촌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가버나움에서 야고보와 요한을 만났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두 형제는 모두 어부였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첫 번째 그룹이자 핵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서 여러 사건에 등장하는 핵심 역할을 했지만, 안드레는 그들만큼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서신을 쓰지도 않았고, 초대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리더로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 때 베드로와 야고보처럼 나서서 발언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참된 제자의 모습이 분명 있습니다.
첫째, 위치가 아니라 인격과 성품으로 섬기는 모습입니다. 안드레는 12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른 제자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안드레를 ‘프로토클레토스’라고 불렀는데, ‘프로토’는 제일 먼저라는 뜻이고, ‘클레토스’는 부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름 자체가 ‘제일 먼저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알력이나 다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부름을 받았고,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해 줬는데도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거나 내세우거나, 요구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습니다. 만일 가장 먼저 부름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는 경직되고 분열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은사와 섬김과 성품에 따라 그 역할이 주어지는 게 중요합니다. 단지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지가 어떤 위치와 역할을 결정하기 시작하면 교회 공동체는 영적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바람직한 것은 이 둘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안드레에게는 자신이 주목받지 않아도 늘 조용하고 겸손히 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러 명단에 보면 언제나 ‘시몬 베드로의 형제다’라고 언급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예수님께 더 인정받고자 노력하지 않고, 중심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이 가장 중심에 있었고, 베드로는 늘 나서기를 좋아하는 모습이 분명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서로 높은 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안드레는 다른 제자들과 갈등의 중심에 서지 않았습니다. 천성적인 성품일 수도 있겠지만, 안드레가 세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였다는 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철저한 금욕 생활을 했고, 인내와 절제가 요구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로 먼저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마음으로, 남보다 두드러지지 않아도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조용히 섬기는 영성이 훈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을 따르지 않고 말씀을 따르는 
 
둘째, 안드레를 통해 배우는 제자도는 사람을 따르지 않고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세례 요한을 따르다가 이제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요한은 자기 두 제자와 함께 다시 그곳에 서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 말을 듣고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를 따라갔습니다”(35~37절).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였습니다”(40절).
요한이 <요한복음>을 썼습니다. 그는 늘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제자는 대개 요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따랐던 제자가 자신이기에 그대로 쓴 것입니다. 안드레와 요한이 세례 요한을 따르다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6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이 증언했던 그분이 지금 세례를 주고 있어서 다 그분께로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경쟁자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는 세례를 주는 일을 주로 했기 때문에 이름이 세례 요한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불평하고 있습니다. 질투와 경계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내가 전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고 증언할 사람들이 바로 너희들이다. 신랑을 얻는 자는 신부다. 신랑의 친구는 그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으로 인해 매우 기뻐하는 법인데 나는 그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분은 흥해야겠고 나는 쇠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다가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는 것입니다. 나는 신랑의 친구일 뿐이고, 그분이 신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따르던 이들이 예수님께 가는 것을 경계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기뻐했던 세례 요한의 영성이 올바른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증언을 듣고 곧바로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사람이 안드레와 요한입니다. 안드레와 요한은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움직인 안드레와 요한이 올바른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게 오면서 자기 부모 아내와 자식과 형제 혹은 자매와 자기 생명일지라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 14:26~27).
안드레에게는 사람이 아닌 말씀을 따르는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걸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따랐기 때문에 안드레를 예수님이 제자로 초청하신 것입니다.
 
연결하는 다리 ‘안드레’
 
셋째, 가로막는 벽이 되지 않고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모습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자신의 형 시몬을 예수님께 연결합니다. 
“안드레는 가장 먼저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41절).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시작해서 예수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형 시몬이 고분고분 따라올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담대하고 단호하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메시아를 만났습니다”라고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안드레는 최초의 전도자 모습을 보입니다. 전도자는 메시아를 만난 직후부터 가능합니다. 좋은 것을 발견하고 체험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드레는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에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진정 만났다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았다면 모든 성도가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안드레는 오병이어 기적의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가르치신 후에 굶주린 수천 명의 사람들을 보시고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들을 먹이겠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빌립이 대답했습니다. “조금씩만 주어도 200데나리온으로도 모자랍니다.” 그때 안드레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을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제자들 중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가 말했습니다. ‘여기 한 소년이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소용이 있겠습니까?’”(요 6:8~9).
빌립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안드레는 적은 가능성을 가지고 그 소년과 예수님을 연결했습니다. 안드레가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한 소년이 도시락 가지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마도 이 소년은 안드레와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 소년만 도시락을 쌌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안드레는 연결하는 제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안드레는 한 그리스인, 헬라 이방인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통로가 됩니다. 한 그리스인이 빌립을 찾아와서 예수님 뵙기를 청합니다.  
“명절에 예배드리기 올라온 사람들 중에 그리스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 빌립에게 와서 간청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예수를 뵙고 싶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이어 안드레와 빌립이 함께 예수께 말했습니다”(요 12:20~22).
빌립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부탁했으면 거절당할 가능성이 많다고 본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왜 빌립에게 갔을까요? ‘빌립’은 이방 이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제자 중에서 가장 그리스인과 통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한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께 가장 연결이 잘 될 사람으로 안드레를 지목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까지 마음이 열려 있고, 편견 없이 한 영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품이 안드레에게 있다는 걸 알고 데려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볼 때 안드레는 최초의 이방인 선교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섬기지만, 한 영혼 한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에 대해 언급된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전승과 설화에는 안드레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안드레는 러시아에서 유명한 선교사였고, 그리스에서는 순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드레는 신실한 제자로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께로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벽에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또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되어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연결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과 인내, 사랑과 자신을 내어 드리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고 연결하는 제자가 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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