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세상을 멈추다
<여호수아> 10:1~15
/이재훈 위임목사
가나안 정복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을 조금씩 쫓아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 출애굽기> 20장 30절에서 “그 땅을 정복할 때 조금씩 쫓아내도록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바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 나라와 민족들을 정복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은 단번에 큰 성취를 이루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순종하는 발걸음 속에서 그분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성과 아이 성의 전멸에 이어서 기브온 족속이 자발적인 항복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속을 맺었다는 것을 듣고, 가나안 땅 남부지역의 여러 부족 왕들이 몹시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다섯 왕이 동맹을 맺고 자신들을 배반한 기브온 성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입니다. 한 성을 상대로 싸우기도 힘든데, 다섯 왕이 동맹한다면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불리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들이 연합함으로 인해서 도리어 한 번의 전쟁으로 남부지역을 장악하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타작마당의 곡식단을 모으듯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남부지역 연합군을 결성하는 일은 예루살렘의 왕 아도니세덱이 주도했습니다. 성경에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명이 처음 등장합니다. <창세기> 14장 18절에 ‘살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살렘왕이 멜기세덱이었습니다. 살렘이 예루살렘으로 이어진 것이라면, 아도니세덱은 멜기세덱의 후손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도니세덱은 히브리어로 ‘아도니째덱’인데, ‘아도니’는 ‘나의 주님’, ‘쩨덱’은 ‘의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과 정반대되는 생을 살았던 타락한 가나안 민족의 일원이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보려고 연합군을 결성해 기브온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 일을 그가 주도한 것은 가장 먼저 위험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연합군을 구성해 대적하려고 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기브온은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 급히 올라와 구원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기브온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었기에 요청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는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해 곧바로 길갈에서 기브온으로 떠납니다.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약한 언약을 지키는 것이기에 분명한 그분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필요한 일처럼 보입니다. 다섯 동맹국이 이스라엘을 지금 공격하는 게 아니라 기브온을 공격하는 것이니 그 땅의 민족들끼리 싸우도록 내버려 둬도 괜찮을 것처럼 보입니다. 또 기브온과 언약을 맺게 된 것이 속임수에 의해서 맺어진 조약 아닙니까? 그러나 맺어진 언약이었기에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호수아는 판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태도를 기쁘게 여기시고 격려하셨습니다. 언약을 맺은 이상 충실하려고 하는 태도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격려와 승리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의무를 뛰어넘어 최대화하는 믿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너를 당해낼 자가 없을 것이다’”(8절).
하나님이 언제 이 격려와 승리의 약속을 주셨는지가 중요합니다. 여호수아의 결심이 먼저입니다.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 대해서는 다시 물을 필요 없이 순종하는 행동, 결심, 실행이 중요합니다. 명백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명백한 하나님의 뜻, 거룩한 삶에 대하여 다시 질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명백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의 태도로 나아갈 때 그분이 함께하시고 격려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워 행군해 가서 불시에 그들에게 들이닥쳤습니다”(9절).
길갈에서 기브온까지 약 38km입니다. 밤새워 행군했습니다. 대단한 헌신입니다. 더구나 그 지역은 산악지대입니다. 매우 힘든 행군이었을 것입니다. 그 거리를 쉬지 않고 밤새도록 행군해서 올라갔다는 것은 엄청난 헌신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의무를 최소화하지 않고 최대화하는 모습이 여호수아에게 발견됩니다.
우리 삶에서 맺어진 언약관계가 있습니다. 부부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무엇보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주어진 의무를 최소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관계만 깨지지 않을 정도로, 직장에서 쫓겨나지만 않을 정도로 하는 정도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헌신을 언제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관계에서도 헤어지지 않을 만큼만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 쫓겨나지 않을 정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만 간신히 유지하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뛰어넘어 삶에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최선을 다해 사랑을 풍성하게 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그것을 최소화해서 지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군가 너에게 5리를 가고자 하면 10리를 가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이 사람들을 부릴 때 5리까지는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라면,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기꺼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의무를 최소화하는 삶이 아니라 의무를 뛰어넘어 최대화하는 믿음이 여호수아에게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앞에서 그들을 혼란에 빠뜨려 기브온에서 그들을 대대적으로 살육하셨고 벧호론으로 올라가는 길을 쫓아 아세가와 막게다에 이르러 그들을 치셨습니다”(10절).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큰 두려움과 공포가 임합니다. 반대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평화와 담대함이 임합니다. 기브온을 치려던 남부동맹군에게 큰 두려움과 혼란이 임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은 언제나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에 최대로 순종하려는 이들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계시
“또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쳐 벧호론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거기서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하늘에서 큰 우박을 내리셔서 그들이 죽었습니다. 우박에 맞아 죽은 사람이 이스라엘 군사들의 칼에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았습니다”(11절).
“네가 눈의 창고에 들어가 본 적이 있으며 우박의 창고를 본 적이 있느냐? 그것은 내가 고난의 때를 위해, 전쟁과 전투의 날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다”(욥 28:22~23).
하나님이 내리신 큰 우박으로 대적들을 치셨습니다. 그런데도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기브온에서 벧호론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도망가는 이들이 1차는 이스라엘의 칼에 의해서, 2차는 큰 우박에 의해서 무너졌지만, 그래도 빨리 도망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어두워지면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바로 그때 여호수아가 사상 전례 없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에 넘겨주신 그날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오 해야, 기브온에 그대로 멈춰 있어라. 오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그대로 멈춰 있어라’”(12절).
해가 지기 전에 여호수아가 해와 달을 향하여 “그대로 멈춰 있으라”고 명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을 멈춘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여호수아가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그의 생각대로 명령했더니 해가 멈춘 게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가 있을 때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한번 멈춰보겠다’는 생각에서 그것을 명하면 세상이 멈춘다고 믿으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여호와께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여호와께 이 상황을 올려드리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의 계시를 주셨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분명히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할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다는 계시를 의지하며 해와 달을 향하여 명한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 때,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시는 특별한 음성과 명령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이 없었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아뢨더니 “반석을 향하여 명령하여 물을 내라” 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세가 순종했을 때 물이 터져 나왔던 것처럼,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해와 달을 향하여 명하도록 계시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이 사건을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성경에는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계속 나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만물을 통치하고 계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능력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할 때 일어납니다. 비슷한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엘리아입니다. 이런 믿음은 한순간에 형성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의 여러 역사를 통해 쌓여갑니다. 엘리야도 그릿시냇가에서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수동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훈련받았습니다. 그는 사르밧 과부에게 마지막 음식을 달라고 했습니다. 뺏어먹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을 때 오병이어같이 놀라운 기적이 임했습니다. 엘리야는 그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리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점진적으로 훈련합니다. 여러 시험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해와 달이 멈추는, 이 세상을 멈추는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세상이 멈추는 기적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하지만 자연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신 하나님께는 쉬운 일입니다. 불순종하는 인격을 가진 인간을 다루는 것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통치하시는 게 그분께는 더 쉬운 일입니다.
이기적으로 사는 삶에서 놀라운 기적을 기대하고 구한다면 하나님이 들어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서 믿음의 기도를 드린다면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담대한 수준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