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강단]
다시 말씀 앞에 서다
여호수아 8:30~35
/ 이재훈 위임목사
<여호수아>에 나타난 가나안 정복전쟁은 거룩한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죄와 전쟁하시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민족이든, 이스라엘 민족이든 죄 가운데 있을 땐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전쟁 승패의 비결이 군사력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략에 귀 기울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승리의 법칙입니다.
아이 성을 정복한 이스라엘이 ‘세겜’이라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모세가 이전에 그들에게 명했던 것을 이행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세겜 땅 에발산에 도착하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두 차례나 명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그 땅으로 너희를 들이실 때 너희는 그리심 산에서 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해야 한다”(신 11:29).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대로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강 건너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면 이 율법의 모든 말씀들을 그 돌들 위에 적어 두라. 그리고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간 뒤에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이 돌들을 에발 산에 가져다 두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르라”(신 27:3~4).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연이어 정복했다면 그 기세를 몰아서 다른 도성을 정복하는 것이 세상적인 원리에서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싸울 필요가 없는 지역, 가나안 민족들의 저항이 없는 세겜이라는 지역으로 올라갔습니다. 전쟁을 멈추고 하나님 말씀 앞에 다시 서기 위해 세겜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멈추고, 다시 말씀 앞에 서는 시간을 갖도록 모세가 당부한 것입니다. 모세의 당부를 여호수아가 기억하고 지키기 위해 세겜으로 갔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매일 전쟁 같습니다. 치열한 삶입니다. 그 치열한, 전쟁터 같은 삶에서 하나님 말씀 앞에 서는 시간이 없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에 파묻혀 버리고,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어도 또 다른 문제로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방향을 조율하고,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삶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조율하고, 방향을 점검해야 합니다. 조율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모세가 그것을 당부했고 명령했습니다.
모세가 두 번이나 당부한 이유
세겜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의 계곡에 있는 곳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야곱이 우물을 팠고,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고, 이곳에 묻힙니다. 단지 역사적 추억이 있기 때문에 에발 산에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한 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갈대아 우르에서 내려온 아브라함이 가나안 지역에 왔을 때 가장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던 곳이 세겜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의 큰 나무 앞에 이르렀는데 당시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그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창 12:6~7).
세겜 땅이 중요하고, 제단을 쌓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구체적으로 가르치신 땅이 세겜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장소가 중요하고, 그곳에서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단을 쌓았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약속이 600년 정도 후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할 때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과거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오늘 나의 삶에서, 후손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할 때 신앙이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아브라함이 세겜에 도착했을 때 여전히 가나안 민족들이 있었고, 그는 혈혈단신 갈대아 우르에서 이주해 온 이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네게 주리라. 네 자손이 번성하게 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600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기억하도록, 우리에게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겨주도록 모세가 두 번이나 당부한 것입니다.
“제단을 쌓고 예배하라!”
“거기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제단, 곧 돌 제단을 쌓을 것이며 그것을 만들 때 어떠한 철 연장도 사용하지 말라. 다듬지 않은 돌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물을 드리라. 거기서 화목제물을 드리고 난 뒤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먹고 기뻐하라. 너희는 너희가 세운 이 돌들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분명하게 기록해 두어야 할 것이다”(신 27:5~8).
그곳에서 행할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제단을 쌓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 제단을 쌓을 때 중요한 지침들이 주어집니다. 제단을 에발 산에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축복이 선포되는 그리심 산에 제단을 세우지 않고, 저주가 선포되는 에발 산에 제단을 세우라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에발 산은 우리의 현재 상태, 실존을 보여줍니다. 죄를 범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 앞에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희생의 제단을 통해 은혜를 베푸신 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 있는 에발 산입니다. 그 한복판에 제단을 세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예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기록되기를 ‘나무에 달린 사람마다 저주를 받았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갈 3:13).
에발 산에 세워진 제단은 세상 한복판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제단, 곧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에발 산에 세워지는 제단을 어떻게 만들어야 될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이방신들에게 바치는 제단들은 한결같이 화려하고 온갖 인간이 상상한 이미지로 만들어졌는데, 하나님께 드려진 제단은 순수한 자연석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제단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의와 생각도 가미되지 않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제단에서 이루어지는 두 가지 제사를 설명합니다. 하나는 번제고, 또 하나는 화목제입니다. 번제는 <레위기>에 나오는 다섯 가지 제사 중에서 첫 번째 제사법입니다. 모든 것을 불태워 하나님 앞에 바치는 온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는 번제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육신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번제물로 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과 제사 드리는 사람이 함께 받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제사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고,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화목제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어졌고,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성찬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번제물이 되셨기에 화목제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단을 세우라는 의미입니다.
“율법을 다시 기록하고,
백성들에게 낭독해서 기억하게 하라!“
둘째, 율법을 다시 기록하고 백성들에게 낭독해서 기억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쓴 모세의 율법을 베껴서 돌에 기록했습니다. 온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고관들과 재판관들과 이방 사람이나 토박이나 할 것 없이 법궤를 향해 서 있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여호와의 언약의 법궤를 든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 절반은 그리심 산을 등지고 섰고 그 절반은 에발 산을 등지고 섰습니다. 이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명령한 그대로 했습니다. 그 이후에 여호수아는 율법의 모든 말씀, 곧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축복과 저주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이스라엘 가운데 사는 이방 사람까지 포함한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 앞에서 모세가 명령한 모든 말씀들 가운데 여호수아가 읽지 않은 말씀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수 8:32~35).
첫 번째는 제단을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율법책을 다시 돌 위에 새기고, 석회를 바르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에발 산에 제단을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그리스도의 제물 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의 복을 의미합니다. 율법을 읽어주었다는 것은 십자가 은혜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법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는 변화를 말씀합니다. 제단과 율법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정죄 받은 에발 산 위에 세워진 제단에 율법이 새겨진 것은 ‘그리스도 십자가 희생의 피가 흐르고, 교제가 회복된 자에게 성령의 법을 따라 살 수 있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말씀이 공개적으로 모든 백성에게 함께 낭독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많은 사람이 문맹이었고, 인쇄 기술이 없었던 시대였기에 함께 낭독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원리는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보급돼 우리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시대일지라도, 우리가 함께 모이는 예배 시간에 성경이 낭독되고 모든 사람이 말씀을 함께 들을 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는 자기 자신이 해석자가 됩니다.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습니다. 자기가 선택합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낭독하고, 들려지는 말씀에 귀 기울일 때는 경청자가 됩니다. 말씀을 낭독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교회가 번성하려면, 우리는 다양한 방식과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유일한 주되심을 신실하게 선포하고 나타내는 성경읽기와 경청공동체로 자신을 형성해야 한다. 말씀을 함께 듣고 읽는 경청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저주의 산 에발 산에 제단이 세워지고, 하나님 말씀에 함께 귀 기울이는 것은 이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고, 성령을 따라 사는 공동체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유업을 누리는 백성이라는 약속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